작성일자 : 2011. 3. 11

작성자 : 유해정(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중증 장애인으로 6시간만 살아보라

3년 전 여름이었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를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땡볕 아래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건만 결국 바람을 맞았다. 다음 날, 그와 연락이 닿았다. 병원에 입원했단다. 집에서 휠체어를 타다가 넘어져서 네 시간이나 휠체어에 깔려 있었다고 한다. 괜찮으냐고 묻자, 일전에는 넘어져서 밤새 그러고 있었던 적도 있었으니 이번엔 그나마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하체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상체도 거의 쓰지 못하는 그가 휠체어에 깔려 사투를 벌였을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집으로 들어가는 건 어떠냐고 말하고 싶었다. 이런 속마음을 아는지 그가 먼저 입을 뗐다. “혼자 살려면 감수해야죠. 집엔 안 알리려고요.”

독립과 자유를 향한 열망에 장애라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나랑 같이 죽어야 할 텐데…”라는 부모의 넋두리를 듣고 사는 중증 장애인일수록 독립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하다. 그런 사람에게 안전을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라고 할 순 없다. 그렇다고 시설을 추천할 수도 없다. 시설의 비리와 인권침해는 이제 뉴스조차 되지 못한다. 만에 하나 좋은 시설이 있다 한들, 평생을 시설의 일과표대로, 주어진 식단대로 따르며, 사적인 생활을 통제받으며 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방법은 중증 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서비스를 강화하는 거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는 중증 장애인의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을 지원하는 것인데 정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정부의 의지와 예산이 부족해서 이 서비스는 매번 비판을 받는다. 혼자 생활하는 1급 중증 장애인이 정부 지원을 받는 활동보조 서비스는 한 달에 180시간, 하루 평균 6시간이다(지방자치단체가 추가 지원을 하기도 한다). 이 시간 내에 씻고, 삼시 세끼 밥 먹고, 화장실 드나들고,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에서 장애인들은 일상을 보내고 외출을 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하지만 하루에 6시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자기부담금 4만원 이외에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장애인 33만명 중 30만명, 활동보조 서비스 못 받아

노동시장에 거의 진입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에게는 매달 4만원도 큰돈이다. 그러다보니 열성적인 가족들이 있지 않은 한 사회생활은 불가능하다. 대다수 중증 장애인이 학교 가기를 포기하고 텔레비전을 벗 삼아 지내는 건 그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극장에 한번 가기 위해 며칠 동안 한 끼씩 굶어가며 시간을 비축한다. 밖에서 아는 얼굴이라도 만나면 화장실을, 식사를, 이동을 부탁하기 바쁘다. 미안함이, 부끄러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책상에 앉아 활자로만 이들의 삶을 엿보는 국회와 정부는 서비스 이용 문턱을 더욱더 높였다. 지난해 정부가 발의해 한나라당이 날치기한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장애인이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내는 돈을 4만원에서 8만원으로 100% 인상했다. 그리고 같이 사는 가구원의 소득에 따라 매달 최대 21만원까지 자기부담료를 내게끔 했다.

‘공짜 복지병’을 얘기하기 전에 중증 장애인으로 한번만 살아보심이 어떨까? 24시간인 하루를 6시간만 살아보시라. 활동보조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 33만명 중에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나머지 30만으로 살아보시라. 매달 부담금을 21만원씩 내야 하는 중증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아보시라. 중증 장애인에게 필요한 만큼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정부가 선심을 베푸는 게 아니다. 그들의 것이어야 할 삶을, 그 삶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시사인 2011. 3. 17 / 유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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