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511 호 [기사입력] 2016년 12월 0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다르게 보는 안경이 필요한 사회

A: 나, 노안 때문에 요즘 안경 두 개 쓴다.
B: 두 개?
A: 응. 가까운 거 볼 때랑, 길거리에서 먼 데 볼 때랑 바꿔 써.
B: 불편하겠다.
A: 응. 젤 불편할 때는 사람들 얼굴 보며 얘기해야 하는 데 자료도 같이 봐야 할 때야. 자료를 보려고 이 안경을 끼면 사람들 얼굴이 흐릿해 보이고. 사람들 얼굴 자세히 보려고 딴 안경을 끼면 자료가 안 보이고.
B: 늘 두 개의 시야 사이를 오가네. 나도 요즘 시야가 흐릿한 데 곧 그렇게 되겠다.
A: 두 시야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조리개가 있었으면 좋겠어.
B: 우리들 시력에만 그런 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아. 갈수록 느끼는 건데 한국 사회에도 안경 같은 게 필요한 거 같아.
A: 무슨 안경?
B: 다르게 볼 수 있는 안경 말이야.
A: 어떤 안경을 끼느냐에 따라 사람과 사물이 엄청 달라 보이는 데, 사회에 요구되는 다르게 볼 수 있는 안경은 뭐로 만들지?
B: 인권교육 같은 걸로?

지긋지긋한 공부

A: 맨날 공부해야 할 게 허다한데 뭘 또 배워? 공부라면 지긋지긋하다.
B: 네가 지긋해하는 그런 공부 말고.
A: 그럼 무슨 공부?
B: 넌 왜 공부가 지긋지긋한데?
A: 음… 내가 지긋지긋해 하는 공부란… 하면 할수록 남과 비교해서 내가 초라해지는 공부, 갈수록 암기하고 익혀야 할 것만 늘어나는 공부야.
B: 또 하면 할수록 전문가들을 우러러보게 되는 그런 공부지. 그래서 주눅 들고. 공부하다 보면 빚도 엄청 쌓여. 돈이 좀 많이 들어야 말이지.
A: 그러니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무기력해져. 인권교육은 그런 공부와 뭐가 다를까?
B: 네가 싫어하는 공부를 뒤집는다고 생각해봐.
A: 뒤집는다? 그럼 경쟁과 비교 말고, 암기 말고, 전문가나 가르치는 쪽의 우위 말고, 전문가의 일방적 전달 말고, 무기력 말고…. 뭐 이렇게 되네.
B: 반대말을 모아 보면 협력과 공유, 비판적 사고, 위계를 지우고 서로 배우기, 힘이 생기는 배움이 되네.
A: 그런 공부가 세상에 어딨어? 너무 이상적인 것 아냐. 우리가 생각해 온 공부는 학교에 다녀야만 하는 것, 위계에서 더 높은 학교로의 진학만을 목표로 삼는 거였는데.
B: 이상적이지. 근데 인권교육의 이상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배움이 할 수 있는 참다움이 아닐까? 암기와 기술만을 요구하는 교육에 이미 우린 너무 물렸잖아. 이제 그만이라 말하고 싶지 않아?

인권교육은 권리다

B: 무엇보다도 인권교육은 그저 하면 좋은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우리의 권리이기도 해.
A: 우리의 권리라고?
B: 그래. 권리! 자기 권리가 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권리를 지킬 수 있겠어? 또 권리를 모르면서 어떻게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수 있겠어?
A: 우리 주변을 보면, 인권이나 평등 관련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걸.
B: 그렇게 권리를 모르는 채 내버려두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 아닐까?
A: 권리 침해라는 생각까지는 못해봤는데… 내 경우엔 내가 받는 모욕과 무시를 ‘내가 못나서’라고 내 탓으로 여기게끔 길들여져 온 것 같아. 또 노동착취를 열정 또는 헌신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B: 우리 주변엔 차별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문제제기하는 쪽을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내모는 사람이 많아. 나도 거기에 쉽게 동조하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아.
A: 특히, 타인에 대한 혐오나 약자에 대한 무시를 자기의 자유로 착각하는 일도 많지.
B: 이상한 제목과 명칭을 씌워 피해자를 모욕스럽게 부각시키고 가해자의 존재는 지워주는 언론보도를 볼 때마다 인권감수성 결핍이란 생각도 자주 하게 돼.
A: 돌이켜보니 구석구석 인권교육이 필요한 데가 많구나.
B: 지금껏 못 배웠다면 지금부터라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해 알 수 있어야지. 그 앎을 통해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권리를 요구할 줄 아는 훈련을 받을 수 있어야 해.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만든 인권교육길잡이 책<인권교육,날다>

 

인권교육을 옹호하는 근거들

A: 인권교육은 한편으론 의무이기도 한 것 아닐까? 인정받을 권리는 곧 타인을 인정할 의무이고 자유를 주창할 권리는 곧 타인을 자유로운 존재로 존중할 의무이니까.
B: 그래. 세계인권선언에 보면 “모든 개인과 사회의 각 기관은 교육을 통해 이러한 권리와 자유에 대한 존중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력”(전문)해야 한다고 돼 있어.
A: 교육의 목적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강화”(제 26조)여야 한다고도 써있네.
B: 또 있어. 유엔에서는 ‘인권교육훈련선언’을 2011년에 채택했어. 그에 앞서 1994년에는 유엔인권교육을 위한 10개년 행동계획을 채택하기도 했어. 이런 행동계획의 요지는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이 우리 삶을 위한 학습이란 거야.
A: 그럼, 한국에서도 그에 따른 노력이 있어야 할 것 아냐?
B: 물론이지. 많은 민간단체들이 인권교육에 노력해왔어. 무엇보다도 국가는 인권교육에 대한 의무가 있어. 유엔의 ‘인권교육훈련선언’에서는 국가가 입법이나 행정 정책과 절차를 적용해 인권교육훈련을 실행하고, 지원하고, 협력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 7조)고 명시했어.
A: 그러니까 인권교육훈련에 기반이 되는 법 제정 등을 해야 한다는 거네.
B: 그렇지. 가령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교육훈련을 증진하고 공공기관과 민간 활동가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해. 2014년에는 인권교육지원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어.
A: 그래서 인권교육법안이 생겼어?
B: 아니. 법안 철회로 끝났어.
A: 왜?
B: 일부 단체들이 ‘인권교육법은 동성애를 조장한다’ ‘동성애 옹호 등으로 국민의 안전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식의 반대활동을 벌여서 결국 법안이 철회됐어.
A: 반대의 이유 자체가 인권과 거리가 머네. 정말 다르게 보는 안경이 필요한 것 같은데.
B: 그러게. 인권교육의 원칙은 평등, 존엄, 화합, 반차별인데 말이야.
A: 인권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기본적인 인권이라 했는데, 자기 권리를 걷어찬 것과 마찬가지야.
B: 인권을 내세우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자격조건을 다는 것, 그런 조건부 인권의 주장은 이미 ‘특권’이라 할 수 있어.

비판적 사고의 힘

A: 나는 말을 잘 듣고 지시에 복종하는 게 좋은 태도라고 배워왔는데… 비판적 사고를 가지라는 요구를 받을 때는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B: 나도 비판적 사고라는 말보다는 ‘삐딱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어.
A: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창조성’을 요구하곤 했지.
B: 비판적 사고든 창조성이든 ‘자유’를 필요로 하는데 우린 그런 자유를 방해받는 일이 더 많았지. 우리 자신의 언어가 아니라 엘리트의 언어나 표준화된 언어로만 말할 걸 요구받곤 했어.
A: 내겐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안경이 필요한 데, 그게 도대체 뭘까?
B: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란, 모호함을 떼어내는 훈련이 아닐까?
A: 모호함을 떼어낸다?
B: 가령 ‘성폭력’이라 명백히 지목할 일을 ‘어쩌다보니’, ‘몹쓸 손’, ‘스트레스로 인한 일탈’ 등으로 모호하게 말하는 일이 많잖아.
A: 그런 일을 ‘성폭력’이라 말할 수 있으면 불투명하게 그려졌던 현실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거네.
B: 또 ‘노력이 부족해서’, ‘눈높이가 높아서’ 등으로 설명하는 언어들은 대규모의 실업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가리는 모호한 언어야. 뿐만 아니라 나의 현실이 아닌 누군가의, 가령 지배엘리트의 시각으로 해석된 현실이야.
A: ‘변화란 불가능하다’, ‘현실은 바꿀 수 없는 거다’ 이런 것도 누군가, 변화를 원치 않는 세력의 시각일 뿐인데, 그걸 나의 시각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거. 이런 것도 비판적 사고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
B: 내 삶의 구체적 문제를 드러내고 뭔가 요구하고 싶은 데, 그걸 국가안전이니 애국이니 하는 추상적인 논의와 맞불을 붙일 때가 많아. 그래서 내 문제를 말하는 것 자체를 불순하게 몰거나 침묵시키지. 그런 것에 도전하는 것도 비판적 태도 아닐까?
A: 우리가 당연시 했던 해석을 당연하게 보지 않는 것, 또 불투명하게 그려졌던 현실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비판적 사고란 거네.
B: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면, 기존에 당연시되던 권력의 작동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고, 내가 원하는 변화를 찾아내야 해.
A: 그런 변화를 찾아내는 힘을 스스로 긍정하고 서로에게 격려할 수 있는 것에 비판적 사고의 힘이 있을 거야.

인권교육의 방법

A: 그런 힘을 기를 수 있는 인권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B: 일단 내용 자체가 내 삶의 내용, 내 삶과 관련된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구체적인 권리의 내용, 내 삶의 터에 존재하는 인권규범, 주요한 인권침해에 대한 지식, 인권에 대한 책임을 진 기관과 제도에 대한 지식 같은 것들…
A: 또 배움의 방식이 날 존중하는 것이어야 할 것 같아. ‘꿇어’, ‘외워’ 식으로는 안 될 거 아냐. 검열이 아닌 성찰을 요구하고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는 대화를 통한 것이면 좋을 것 같아.
B: 공부할수록 날 무력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어야 해. 인권을 옹호할 수 있는 구체적 역량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해. 가령 ‘카더라’ 통신과 근거 있는 주장을 구별하는 능력,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쟁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제시할 줄 아는 능력, 상호 연대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하는 능력….
A: 나는 그런 교육을 통해 멋진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B: 다시 태어난다고?
A: 응. 우린 그냥 우연히 태어나 저절로 시민권이란 걸 가졌잖아. 그런 걸 누군가 “저절로 된 시민”이라고 말했어. 그런 시민이 다른 운을 갖고 태어난 동료 인간에게 거들먹거리고 배타적으로 군다면 시민성의 의미가 빛이 바래. ‘저절로 된 시민성’에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가치를 알고 존중할 줄 아는 ‘민주주의적 시민성’으로 거듭나는 것, 멋지지 않아?
B: 그래. 좋은데! 아주 멋져!
A: 어느 장애인 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장애를 만드는 건 환경이고 느끼게 하는 건 사람입니다.”
B: 인권교육이 세상을 전부 바꿀 순 없을 거야. 하지만 적어도 사회와 그 구성원들이 어떤 환경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나 또는 우리가 타인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를 성찰하는 힘을 기를 순 있을 거야.
A: 요즘 광장에서 우린 많은 것을 서로에게서 배우고 있어. 누군가를 배제하는 폭력이 뭔지도 느끼고 있어. 이런 배움이 비판적 성찰로 이어져 우리 삶을 꾸리는 동력이 됐으면 좋겠다.

 

인권오름 제 511 호 [기사입력] 2016년 12월 0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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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제 167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25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기나긴 연대의 세월

인권운동은 연대다. 고 김대중 대통령의 일대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인권침해로 인한 고난이라면 그 동전의 다른 면은 전 세계적인 인권운동의 연대라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국제 앰네스티(AI)의 활동 기록을 살펴봤다.

- AI 사무총장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항의 전문을 보냈다. 김대중과 그의 아내 이희호를 포함한 양심수에 대한 석방과 민주적 권리의 회복을 촉구했다.(1976년 3월 10일 AI 보도자료)
-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명동성당 구국선언을 읽었다는 이유로 김대중에게 8년의 중형을 부과한 것에 항의한다.(1976년 8월 31일 AI 보도자료)
- 명동성당 구국선언으로 구속된 김대중은 신경통과 관절염으로 “심각하게 아프다”.(1976년 11월 1일)
3월 7일 김대중이 단식농성을 시작했다.(AI 1977년 인권보고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런 기록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인권의제의 해결을 촉구하면서 발표한 한 문건에 다음과 같이 요약돼 있다.

김대중은 1970년대의 대부분을 가택 연금이나 감옥에서 보냈다. AI가 김대중을 양심수로 처음 채택한 게 이 기간이었다. 그는 1976년 3월 유명한 명동성당 구국선언에 서명한 이유로 구속됐고, 1980년 5월 광주 학살 직전에 내란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1980년 9월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장남 김홍일과 형 김대현도 동시에 투옥됐고, 아내 이희호는 부분적인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AI와 다른 많은 인권 단체들은 이 기간 동안 정열적으로 김대중을 위해 캠페인을 했다. 1981년 국제단체들의 광범위한 국제적 항의와 캠페인이 있은 후 사형선고는 감형됐다. 1982년 그는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1985년 2월 그는 또다시 2년간의 미국망명에서 돌아온 날 가택연금을 당했다. 가택 연금과 괴롭힘은 1986년 2월까지 계속됐다.
1993년 런던 방문 중에 김대중은 AI 피에르 싸네 사무총장에게 자신이 쓴 서예 작품을 선물 했는데, 거기 쓰인 네 글자 한자의 의미는 “모든 민족은 한 가족이다”였다.(AI Index: ASA 25/05/98)

단 존스와 김대중

서거 정국에서 한 인권활동가가 떠올랐다. 칠순을 바라보는 영국 앰네스티의 활동가 단 존스(Dan Jones)씨다. 그는 AI 회원으로서 1970년대부터 김대중, 김지하, 서준식․서승 형제 등 한국의 양심수들을 위한 캠페인을 했다. 직업적으로 AI에서 일하게 된 1987년 이후부터는 한국에도 자주 왔고 수많은 양심수 가족들과 인연을 맺고 최루탄 냄새와도 친해 졌으며 광주 망월동 묘지를 아끼는 사람이다. 광주항쟁 20주년 기념식에 초청받은 일을 생애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긴다. 구명운동을 했던 양심수들이 석방되면 뛸 듯이 기뻐했다. 그런 그에게 구명 운동을 펼쳤던 이전 사형수의 대통령 당선이 어떤 의미였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에피소드 하나. 단 존스씨는 인권교육가로서 전 세계를 누비며 인권교육 방법을 훈련한다. 그는 그 여행길에 ‘대통령 김대중 영부인 이희호’라 쓰인 시계를 차고 다녔다. 가운데 봉황이 새겨진 시계였다. 그런데 어느 밀림 속에서 넘어져 시계가 박살났다고 했다. 이런 저런 인권활동을 같이 하며 10여년 넘는 인연을 맺어온 나에게 그런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이미 퇴임한 대통령의 시계가 어디 남아있을까’ 궁리하다가 머리에 퍼뜩 떠오른 것이 호남 출신이 아니면서도 고인의 책이나 연설 비디오 등을 무지 좋아하는 아빠의 소장품들이었다. 아빠의 소장품 가운데서 그 시계를 발견한 나는 멎어있는 시계의 배터리를 갈아 넣어 런던에 보냈다. 작은 물건에 무지 기뻐할 할아버지 활동가를 떠올리며 즐거웠다. 그런 그가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허탈해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글의 자료를 구하기 위해 이런 저런 연락을 취하다 들은 얘기다.

15년 전 나는 한국의 인권활동가인데 인권교육을 배우고 싶으나 돈도 없고 길도 없다는 이메일 한통을 보냈다. 그는 흔쾌히 자기 집에서 9개월간 무전취식을 제공해줬다. 그를 따라 다니면서 인권교육을 귀동냥 하는데 정규시간의 활동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것은 그의 과외활동이었다.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들 집회, 이주노동자 동네 모임, 주말시장에서 하루 종일 꼬박 나 홀로 캠페인,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인권교육을 고민하는 교사모임 등 AI 정규 활동과 상관없이 눈뜨고 있는 모든 시간을 인권을 위한 연대활동에 바치는 삶이었다. 그의 집에는 나 말고도 전 세계에서 이런 저런 일로 런던을 찾는 인권활동가들을 위해 언제든지 잠자리와 부엌이 무료로 열려있었다. 인권은 연대라는 걸 깨닫고 실천하는 삶, 그것이 인권교육의 핵심이었다.

연대를 호소하는 오늘의 인권의제

서거정국이 끝나고 실천정국이 시작됐다. 10여 년 전의 인권의제를 오늘 다시 풀어 헤쳐 본다. 이 의제들은 1998년 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취임 전에 AI가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 언급된 10여 개의 요구사항들은 오늘도 한결같은 현안들이다.

언론인, 노동자, 촛불시민의 대량연행․구속 재판을 비롯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인한 구속자 등 멀어져갔던 양심수 의제는 다시 현안이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는 조직축소와 무자격자의 위원장 도둑 취임을 겪었고, 국가인권위원장이란 사람이 전 세계적인 캠페인의 대상이 되어온 국가보안법에 대해 망언을 했다. 국가인권위 조직축소로 인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시행 등을 위한 활동이나 인권교육의 강화는 저만큼 멀어졌다. 이로 인해 세계의 인권향상에 기여할 무대였던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의장국의 기회를 차버렸을 뿐 아니라 등급의 강등마저 얘기되고 있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에 명단을 올린 지 얼마 안됐는데 다시 사형제의 도입이 호시탐탐 고개를 든다. 과거 권력기구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침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위원회의 활동들은 산적한 일을 남겨두고 통폐합되거나 중단되게 됐다. 비정규직 시대의 여성 인권의 참담함에 보태진 것은 여성부 축소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 계속되는 조치의 ‘절약’이다.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국장이 있던 날 유가족이 또 경찰에게 폭행당했다. 기무사가 민간인 사찰에 나선 것을 비롯해 공안기구의 노골적인 맨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 쌍용 자동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은 노동자의 기본권인 결사의 권리와 파업의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보복 속에서 몸과 정신이 신음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은 살인적인 단속에 신음하고 있고 한국의 외국인, 국제결혼가정의 구성원들은 각종 차별로부터 안전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하다.

오늘날의 인권의제를 퇴행 속에서가 아니라 인권향상을 위한 전진 속에서 마련하는 일, 연대와 보듬음을 통해 그 열쇠를 찾아내는 일이 살아있는 자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인권 의제(국제 앰네스티 1998년 2월)

1997년 10월 AI 사무총장은 대선 후보자 모두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 편지는 후보자들에게 당선된다면 인권 개혁 프로그램에 헌신할 것을 촉구했다.

AI가 이 서한을 발표한 후, 김대중은 전부는 아니지만 양심수 일부를 석방하겠다고 공언했다. 대통령 당선 후에는 인권개혁을 위한 다수의 제안들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안기부 개혁, 인권위원회 설립, 여성의 권리 보호를 위한 조치들, 한국의 법과 관행을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도록 보장하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 AI는 이러한 김 대통령의 제안들을 환영했다.

AI는 1998년 2월 다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아래와 같이 인권개혁을 위한 제안들을 담은 서한을 보냈다.

양심수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라
AI는 모든 양심수를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을 요구한다. 최근 AI는 수백 명의 수인들을 위해 캠페인을 해왔고 이들의 사례는 국가보안법에 따른 인권침해의 유형을 논증하고 있다. AI는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비폭력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유로 현재 구금돼있는 모든 양심수의 석방을 촉구한다.

(…)

안기부를 개혁하라
AI는 새 대통령이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과거 이름)를 개혁하겠다고 제안한 것에 고무됐고 이러한 개혁이 정보기관이 기본권 권리를 침해하는 걸 방지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최근 몇 년 간 AI는 안기부가 자행한 고문과 부당한 처우에 대한 보고들을 받아왔다. AI는 1996년 12월 안기부의 권한이 남용되지 않도록 보장하거나 막기 위한 추가조치 없이 안기부의 권력을 확대하는 법률이 통과된 것에 우려한다.

과거와 현재의 인권침해를 조사하라
AI는 과거와 현재 한국에서 보고된 모든 인권침해에 대한 전반적이고 공정하며 독립적인 조사를 요구한다. 여기에는 1980년 광주에서의 학살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와 과거 정권 하에서 자행된 고문, 정치적 구속과 부당한 재판 사건이 포함된다. AI는 과거와 현재의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자들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고된 모든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는 인권침해에 대한 불처벌 종식을 추구하는 국제인권기준에 부합돼야 한다. 국제인권기준은 인권침해에 대한 모든 보고는 철저하게 공정하게 조사돼야 하며, 조사결과는 공표돼야 하며, 인권침해의 책임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고, 피해자들은 적절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권 증진과 인권 교육을 향상시켜라
세계인권선언 50주년에 AI는 새 대통령에게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서 시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권리의 중요성을 향상시킬 것을 촉구했다.
AI는 새 대통령에게 인권교육을 학교 수업에 통합하고 모든 정부공무원, 법집행 공무원, 군사요원 훈련프로그램에 인권교육의 포함을 보장하도록 촉구했다. 또한 여성과 취약집단에 대한 사회적 및 제도적 차별을 방지하도록 한국사회 도처에서 평등을 증진할 것을 촉구했다.

인권위원회를 설립하라
AI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겠다는 새 대통령의 제안에 고무됐고 국가위원회법이 인권위원회에 대한 국제기준에 부합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새로운 위원회의 임무에는 정보기관에 의한 인권침해를 포함하여 보고된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 법률 개혁을 위한 제안, 인권교육활동의 주도가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효과적인 법률구조나 독립적인 사법부의 대체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인권위원회가 효과적이려면 독립적이고 공정해야 하며 한국의 인권옹호자와 대중의 신뢰와 존중을 받아야만 한다.

(…)

사형제를 폐지하라
1997년 12월 30일 23명이 처형된 후에 AI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그의 임기 중에는 사형을 폐지할 것을 촉구했다. 그 첫 단계로서 모든 사형 선고를 감형하고 더 이상의 처형 명령이 없도록 보장할 것을 새 대통령에게 촉구한다.

노동조합의 권리를 존중하라
AI는 새 대통령에게 노동 법률을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관한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한국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권리와 차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제 87호와 제 98호 조약을 비준함으로써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

외국인의 권리와 망명자의 권리를 보호하라
어떤 국적이건 한국에서 망명을 구하는 사람은 인권침해에 직면할 국가로 돌려보내져서는 안 되며, 망명을 구하는 모든 사람은 공정하고 만족스러운 난민 지위 결정 과정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겐 국제 기준에 부합되도록 그들의 시민적 및 사회적 권리에 대한 합법적인 보호막이 제공돼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권을 증진하라
유엔의 능동적인 구성원으로서 한국은 국제적으로 인권상황의 향상을 위해 압력을 가할 책임이 있다. AI는 인권증진을 위한 유엔의 활동에 대한 지지를 표현할 것을 새 대통령에게 촉구하며 김대중 정부가 유엔 체제 안에서나 다른 정부와의 쌍무관계 속에서나 적극적인 인권외교에 헌신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선언을 지지하고 증진할 것을 요청한다

인권오름 제 167 호  [기사입력] 2009년 08월 25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26조

1.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교육은 최소한 초등기초단계에서는 무상이어야 한다. 초등교육은 의무적이어야 한다. 기술교육과 직업교육은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하며, 고등교육도 능력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어야 한다.
2. 교육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 교육은 모든 국가들과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간에 있어서 이해, 관용 및 친선을 증진시키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엔의 활동을 촉진시켜야 한다.
3. 부모는 자녀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종류를 선택함에 있어서 우선권을 가진다.

자명한 권리, 지키지 않는 약속

26조의 대전제는 교육 그 자체가 보편적인 권리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에 대해 어떤 국가도 반대를 표명할 이유가 없었다. 너무 자명한 것이었기에 별다른 토론이 없었고, 모든 대표자들의 동의를 받았다.
예를 들어 브라질 대표는 “모든 사람의 교육에 대한 권리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것”이라며 “인류의 유산을 공유할 권리는 우리 문명의 기초를 형성했고 그 누구에게도 부인될 수 없었다. 교육 없이는 개인이 자신의 인격을 발전시킬 수 없었고, 이 인격은 인간 생활의 목적이자 가장 견고한 사회의 기초”라 했다. 파나마 대표는 “교육에 대한 권리 같은 기초적인 인권이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지를 보였다. 현실적으로도 당시 40여개 국의 헌법이 무상의무교육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었기에 교육권이 보편적 인권이라는 것에 의심이 없었다.

고용최저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아동에 대한 교육은 무상이고 의무여야 한다는 규범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선언 보다 훨씬 이전인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에는 14세 미만 아동 노동 철폐를 얘기했다면 오늘날의 기준은 18세 미만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되고 확고한 약속인 교육권은 날로 위태로워지고 있다. 말로만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교육을 외칠 뿐 정부와 국제사회가 실제로는 교육권 보장을 위한 의무를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대학에 갈 수 없는 것도 화가 나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초등교육조차 위태로운 아이들이 늘어가는 일이 참을 수 없을 만큼 목격되고 있다. 자국에서 교육권을 잘 보장하고 있는 국가들이라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다. 교육제도와 서비스를 소위 ‘수출’하고 있는 국가 정부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교육을 인권으로 보장하는 데 반대한다. 인권으로서 공교육이 강화되면 자신들이 팔아먹을 상품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는 은행 구실에 충실한 국제기구들도 마찬가지다. 국제무역의 규범에 충실한 상품으로서 교육을 다루고 싶어 하지, 보편적 인권으로서 교육을 고려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대외 원조나 부채 구제에 대한 결정에서 잘 드러난다. 한 예로 세계은행이 교육에 대한 컨설팅을 해준답시고 500일간 쓴 비용이 그 나라에서 5천명의 교사를 고용하는 것과 같은 비용이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데 그런 컨설팅을 통해 나온 조언이란 게 공적 서비스로서의 교육을 지지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공교육을 강화하려면 교사의 확충이 중요한데 세계은행은 공공부문의 임금이 늘어나게 될 테니 그걸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육을 빈곤을 줄이기 위한 도구라고 강조한다. 교육을 이런 식으로 도구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빈곤을 줄인다는 명목으로 교육의 양과 질을 국제금융기구와 은행에게 결정하게 한다. 그런 교육의 양과 질은 싼 노동력을 빠른 시간에 대량으로 만들어내는데 치중한다. 이런 식으로 교육이 시장의 상품, 경제의 규모와 효율성에 따라 조절되는 것, 싼 노동력을 빨리 만들어내는 것으로 치부된다면 교육이라는 이름에 걸맞을 수가 없다.

인권의 존중 강화가 교육의 목적

교육권이 필수적인 인권이란 데 반대의견이 없다 했지만, 문제는 무엇을 위한 무엇에 대한 교육인지에 대한 합의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각 국은 자신만의 고유 브랜드를 가진 교육을 선호했는데, 그것은 “도덕적 시민의 훈련”, “국가 윤리의 발전”, “조국애, 조국의 민주제도에 대한 사랑, 그것을 위해 투쟁한 이들에 대한 사랑” 등으로 표현됐다. 이중 어떤 것이 보편적인 시민 교육의 상이라고 정할 수도 없거니와 국가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무엇이든지 국민에게 주입하도록 내버려둘 수도 없었다. 국가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교육을 지배하는 핵심원칙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대략이라도 써야할 필요성이 제안됐다. 그 결과가 2항에 담긴 교육의 정신이다.
26조 2항에 담긴 교육의 목적은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이다. 여기에도 반대의 여지는 없었다. 세계인권선언 자체가 그러하지만 교육권 조항은 전쟁 경험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조항이었기 때문이다. 교육권 조항에서 전쟁 경험이라 함은 히틀러 체제하에서 독일 청소년에게 저질러진 세뇌(brainwashing)를 떠올린 것이다. 나치는 교육을 아주 강조하고 놀라울 정도로 잘 조직했지만, 그 체제하의 교육은 히틀러의 표현대로 “인종적 정서와 인종적 감정을 청소년의 본능과 지능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전쟁을 준비하고 전쟁에 몰두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기능이었고 그 결과 파국을 맞았다. 따라서 ‘인권존중의 정신을 강화’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했다.
히틀러 체제에 대한 반감은 2항에서만이 아니라 3항의 부모의 선택권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다. 3항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종류를 선택함에 있어서 우선권을 가진다’고 한 것은 나치체제가 국가 통제로 오염된 학교에 모든 아동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부모의 권리를 강탈했다고 봤기 때문에 삽입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부모의 선택권을 더 비싸고 더 대학가기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자유로 해석하는 것은 큰 오해이다. 여기서는 국가 권력의 남용을 반대한 것이지, 교육권의 공공성과 공적의무를 방기할 의도는 없었다.

교육은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는 교육을 제공하는 사람, 교육을 받는 사람, 교육을 받는 사람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는 사람 등 다양하며 때론 서로 갈등·대립하는 교육 주체들이 포함돼 있다. 교육권의 역사는 이들 다양한 교육주체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공정한 균형을 취하기 위한 시도로 이뤄져 왔다. 세계인권선언에서 교육권에 대한 의사결정은 국가와 부모 사이에 이뤄지는 것으로 돼있는데 이것은 아동이 교육권의 주체라는 개념이 자리 잡은 지금에는 구시대적인 것이다.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을 생각한다면 이들 관계 속에서 가장 약자의 처지에 있는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이 요구된다.

인권교육의 이상 담은 교육권

2항에 담긴 또다른 교육의 목적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이다. 원래는 “인격의 신체적, 지적, 도덕적, 정신적 발전”으로 제안되었으나 몇 개의 수식어로 교육의 모든 목적을 요약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완전한 발전”으로 고쳐졌다. “모든 국가들과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 간에 있어서 이해, 관용 및 친선의 증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엔의 활동을 촉진”시킨다는 목적은 ‘국제적 친선의 증진’이라는 단순한 표현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특히 유엔의 임무가 언급된 것은 ‘평화유지’라는 유엔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교육받은 대중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상의 교육의 목적을 정리하면 그것은 곧 인권교육의 이상이라 할 수 있다. 유엔은 인권교육에 대하여 “지식을 제공하는 것 이상이며, 모든 발달 단계에 속하는 사람과 모든 사회 계급의 사람들이 타인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배울 수 있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중을 보장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포괄적인 전 생애 과정”이라 했다. 교육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는 국가는 이러한 교육의 목적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질과 내용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인권교육을 흔히 ‘역량강화교육’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비되는 것은 ‘은행저축식 교육’이다. 은행저축식 교육개념에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 대해서 스스로 아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는 것이다. 즉 학생은 무지하고 교사는 안다는 것이다. 이런 개념은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며 학생들이 또한 교사를 교육하기도 한다는 측면을 무시한다. 또한 탐구 과정으로서의 교육과 지식을 무효로 한다.

반면 역량강화 교육은 ‘스스로 배우고 더불어 배운다’고 한다. 교육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증대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지식은 억압적인 사회, 정치, 경제 조직의 유형을 이해하고 의문시할 수 있는 것이고, 비판적 의식을 획득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비판적 의식을 통해 역량강화된 사람들은 억압적인 관계를 변화시킨다. 억압적이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인간존엄성을 보호하고 증진할 수 있는 조직과 활동양식을 계획하고 발전시키는 능력을 추구한다.

역량강화 교육이 되어야

인종, 성별, 언어, 종교, 계급, 재산 등에 따른 차별 금지를 26조에서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지는 않다. 이미 세계인권선언 2조에 그런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 열거는 없더라도 교육에 있어 차별을 금지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이나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하고 “평등하게 개방되어야”한다는 구절에서도 반복되는 점은 교육상의 차별금지이다.
교육에 대한 접근에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요건이란 없다. 유일한 기준으로 언급된 것은 고등교육에서의 ‘능력(merit)’이다. 정부의 공식번역본에서 ‘능력’이라 쓰고 있지만, ‘장점’이라는 표현이 더 나을 듯하다. 여기서의 능력 내지 장점이란 특정 부문의 교육에 열중할 수 있는 관심이나 소질을 말하는 것이지 과도한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나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한 능력을 말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한국에서는 요원한 무상 교육

의무교육의 전제조건은 ‘무상’이다. 무상교육이 아니라면 의무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무상이라는 전제에서 초등교육이 ‘의무’로 규정돼 있는 것이기에, 여기서 의무라 함은 국가가 무상교육을 보장할 의무를 말하는 것이고, 돈 걱정 없이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상태여야만 부모가 자녀에 대한 의무를 방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무상’에 대한 유엔사회권위원회의 해석은 수업료 등 직접적인 비용을 부과하는 것은 물론이고, 간접적인 부과, 예를 들어 의무적인 기부금, 상대적으로 비싼 교복 착용 등도 안된다는 것이다.

“최소한” 초등교육이 무상이어야 한다는 선언의 규정은 다른 단계의 교육에도 확장되는 원칙이다. 선언을 만들 때 초등교육만이 아니라 고등교육을 포함한 모든 교육이 무상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 근거는 무상이 아니라면 재능에 기초하여 교육에 평등한 접근권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각 국의 경제사정을 고려해야 했기에 최소로 합의한 것이 초등의무무상교육이었다.
세계 10위권이라는 경제력을 갖춘 한국 같은 나라에서 초등무상교육을 하는 것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소득수준은 사교육비 지출과 비례하고 또한 학업성적과 비례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고치기 위한 교육이 불평등 유전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이다. 교육의 불평등을 염려하는 교육단체나 언론 은 한국이 대학교육까지 무상교육을 실현하는 일은 결코 불가능이 아니라고 얘기해왔다. 가령 GDP 대비 6%의 교육재정만 확보해도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교육비를 충당하고도 수조원이 남으며, 이것을 대학에 투자하면 무상교육의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다. 한국이 중학교까지 달성했다는 무상교육도 진짜 의미의 무상 공교육이라 볼 수 없다. 법적으론 무상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한다. 당사자가 사적으로 지불해야만 하는 교육비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이 천문학적 수준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대학만이 아니라 무상교육단계에서부터 그렇다.

유엔 교육특별보고관은 이것을 “공교육의 민영화”(privatization of public education)라 비판했다. 거죽은 공교육일지 모르지만 속은 사교육비로 채워져 있기에 이런 교육을 공교육이라 부를 수는 없다고 했다. 사교육비를 지출하지 않는 학부모와 학생이 ‘맘 놓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가 물어봤을 때, 그게 아니라면 교육은 권리가 아니라 돈 주고 사는 상품인 것이다.

교육의 자유

또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자유권과 사회권의 도식적 구분이다. 흔히들 26조에 있는 교육권을 사회권으로 분류한다. 세계인권선언의 전반부를 자유권으로, 22조부터의 후반부를 사회권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고도의 정신적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정신적 자유권의 하나이다. 교육권은 정신적 자유권을 바탕으로 하면서 사회권적 요소를 지닌다. 사회권으로서의 교육권은 국가가 교육의 모든 단계에서 무상의 비종교적 공교육을 조직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다.

근대 자유주의의 교육권과 현대적 인권으로서의 교육권이 구별되는 이유가 이러한 사회권의 요소이다. 교육은 돈이 있는 자가 자기 돈을 내고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이라고 이해되던 시대에는 교육의 ‘자유’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현대의 교육권은 국가에 대해 의무교육의 실시나 교육시설의 정비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돈이 없는 사람도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국가가 그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점을 당연히 그 권리 속에 포함한다. 이런 국가 활동 없이는 현대의 공교육이 성립될 수 없다.
자유에 대한 불간섭과 적극적인 국가 행동 둘 다를 요구하는 주장의 결합이 세계인권선언의 26조에 나타난다. 정신적 자유권을 기반으로 하는 교육권은 자유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측면에서 국가 활동을 요구하는 것이지, 정신활동에 대한 개입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자유권 또는 사회권 어느 한편으로 교육권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국가의무의 4요소; 가용성, 접근성, 수용성, 적응성

유엔 교육특별보고관은 교육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의무로서 4가지 요소를 지적한 바 있다.
첫째, 가용성(availability)이다. 모든 학령기 아동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든 아동이 공립학교에만 다니는 것은 아니므로, 공립학교를 포함한 모든 교육기관은 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해 최소한의 일치된 성격을 보장해야 한다. 뭐가 일치돼야 하느냐면 국내외적으로 금지된 차별이 없어야 하며, 초등무상교육의 원칙이 보장돼야 한다. 정부는 모든 교육기관이 최소 기준을 충족시키도록 보장해야 하며 차별과 배제 없는 통합교육을 보장하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감독하고 재정 지원하는 것은 국제인권법에 부응해야 한다. 모든 교육기관에서 교사들의 지위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포함하여 국제적으로 보장된 권리를 누려야 한다.

둘째, 접근성(accessibility)이다. 선언에서는 교육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어야”한다고 표현했다. 접근성과 밀접한 문제는 교육비이다. 직·간접적인 교육비용, 통학비용 등의 장벽이 제거돼야 한다. 의무교육 이후의 교육에서도 비차별적이고 감당할만한 수준의 교육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 교육은 결코 상품으로 취급돼선 안되며 시장이 실패하면 국가가 개입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도 안된다.
비차별은 즉각적으로 완전 보장돼야 하는 원칙이다. 가령 장애아동의 경우 학교 건물이나 교실이 그들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실질적으로 배제되는 것이다.

셋째, 수용성(acceptability)이다. 교육은 교육 참여자들이 용납하고 수용할만한 것으로 확인된 최소한의 기준을 보장해야 한다. 최소한의 기준에는 교육의 질, 안전, 건강한 환경이 포함돼야 한다. 학교 규율과 교수방법은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령 교육 참여자의 평등권, 프라이버시, 인격의 발전을 침해하는 처벌과 규제는 안된다.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란 아동은 억압에 제대로 맞설 수가 없다. 억압과 비교될 수 있는 대안적인 시스템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억압이 사라져도 언제든지 억압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교육과정에서 습득하고 실현해보는 가치여야 한다. 배우는 과정은 또한 물리적 장벽의 제거를 요구한다. 가령 교육을 방해하는 빈곤, 교육에서 채택한 주류언어로 인한 차별, 장애로 인한 교육 장벽이 제거돼야 한다.

교육권 위협하는 상품으로서 교육

넷째, 적응성(adaptability)이다. 아동 최선의 이익을 위해 교육내용과 과정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이 개념에서 특히 주목한 점은 일하는 아동을 위한 교육이 무엇인가이다. 극단적 형태의 아동노동, 아동노동에 대한 착취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 그래서 기초교육을 마치는 나이와 고용, 결혼, 징병, 형사책임을 묻는 나이를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일하는 아동에게 교육이 제공돼야 한다는 적극적 측면의 고려도 있어야 한다. 많은 지역과 가정의 현실은 아동이 일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학령기 아동은 무조건 일을 하지 않고 학교에 있어야 한다는 방식의 접근으로는 아동의 교육도 노동도 보호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 교육이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하고 배운다’,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주경야독’의 접근법이 요구된다. 한 예로 고용된 아동의 하루 노동시간을 6시간 정도로 제한하여 적어도 2시간 이상의 교육과 병행하도록 하고, 그 비용을 고용주에게 지불하도록 한 국가도 있다. 빈곤한 가정이 아동을 학교에 보내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시도도 있다. 교육이 적응성을 갖는다는 것은 학교 밖의 교육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유를 상실한 아동, 난민아동, 국내실향민, 일하는 아동 등 교육기관에 접근할 수 없는 범주를 위한 교육이 적극 고려돼야 한다.

또한 공식 교과과정이라는 것이 아동의 실제 삶과는 상관없이 다음단계의 상급교육과정(사실상 많은 아동이 갈 수 없는)으로 진학하기 위한 내용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도 문제이다. 직업교육을 진학교육보다 열등한 것으로 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 내용의 적응성은 교육을 통한 인권보장을 염두에 둔다. 다른 세계와 문화, 역사, 성역할 등에 대한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고 불평등·편견·차별의식과 싸울 수 있는 교육이 요구된다.

교육권은 흔히 인권 중의 인권으로 얘기된다. 유엔교육특별보고관은 “교육은 여타 인권을 풀어내는 열쇠”라고 했다. 세계인권선언에 교육권을 넣을 때는 ‘자명’한 것으로 합의했지만, 실천에서는 그 열쇠가 제대로 맞지 않을 때가 많다. 교사 100명당 적어도 150명 정도의 군인이 있는 것이 현세계이다. 거래하고 소비하는 상품으로서의 교육이 교육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인권을 풀어내는 열쇠를 그런 식으로 소진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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