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조 · 자립 · 개인책임 · 불개입 vs 연대의 권리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이 있다. 이들을 인권피해자로 보느냐 낙오자로 보느냐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런데 현실에서 가장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흔히 사회에 기생하는 존재로 낙인찍히거나 부정적으로 묘사될 때가 많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자조, 자립,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논리들이고 간섭받지 않고 개입하지 않는 것이 자유로 인식된다. 사회적·국가적 책임, 그리고 연대의 권리라 얘기되는 것들은 자유에 대한 부당한 간섭으로 치부된다.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의 요구는 도덕적 해이, 무임승차, 애써 일하고 성취한 사람들의 성과를 거저먹으려는 것처럼 치부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조치들은 역차별이라는 공격을 받거나 성공하려는 동기와 성취의식을 훼손한다는 반발을 산다.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보통사람들 의식의 밑바닥에 어떻게 뿌리박고 있는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재산권 vs 실질적 자유 · 평등 

흔히 ‘밥그릇 싸움’으로 폄하되는 생존권과 ‘불가침의 기본권’으로 여겨지는 ‘재산권’이 인권의 이름으로 병존하고 있다. 각종 인권투쟁은 공공재산, 시민의 재산에 대한 침해로 공격받기도 한다. 이속에서 인권운동은 생존권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생존권’이란 단어만 되뇌고 되뇔 때가 많다. 생존권 투쟁의 당사자들이나 옹호자들이 자신 있게 간단명료하게 생존권을 설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싶다. 인권활동가들은 재산권 일반에 대해 그냥 도리질을 치는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실질적인 자유와 평등의 내용이라 할 생존권 보장을 위해 어떤 성격의 재산권에 대한 거부와 제한이 요구되는지를 한국사회의 현안과 결부시켜 상세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연대의 권리(의무)'에 대하여 

인권하면 3대 요소로 떠올리는 ‘자유·평등·연대’가 있다. ‘자유’, ‘평등’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어왔지만, ‘연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소수자 권리나 많은 인권현안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사회적 연대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투쟁을 불편해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판을 치고 정작 중요한 여론의 힘을 조성하기 어렵다. 인권교육에서도 중요한 것이 사회적 연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인데, 도대체 무엇이라 말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일선 학교에서 인권교육이 제도화될수록 가장 필요한 내용도 ‘연대’에 대한 것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인권연구소는 ‘연대’의 의미, 역사, 내용, 다양한 사례들을 연구하려 한다.

 재판규범을 넘어서는 인권의 이행 · 구제방법 

인권침해에 대해 재판을 청구해서 구제받는다는 것 외에는 흔히들 떠올리지를 못한다. 권리의 구제방법에 대한 생각은 극히 제한돼있다. 나아가 예방에 대한 조치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러나 이미 많이 이용되고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고, 새로운 모색들이 있다. 법적 구제 말고도 인권침해의 예방, 인권의 이행, 구제에 관련된 다양한 원칙과 대안들을 찾아내 인권운동에 소개한다. 

 사회권 · 발전권 vs 경제만능주의 

모든 인권의 실천에는 자원이 요구된다고 한다. 그래서 인권운동이 사회권과 발전권을 옹호할수록 그에 대한 공격에는 경제발전우선주의, 경제만능주의가 있다. 발전권과 개발독재를 구분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경제만 잘 되면야 만사 괜찮다’는 인식이야말로 인권운동에 큰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사회권·발전권에 대해 국내 인권운동은 도입과 소개의 수준이지, 이행방법과 이들 권리 자체에 대한 계속되는 논쟁에 대해서는 정체상태다. 개발주의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시급히 대안이 요구되는 인권과제이다. 

 권리의 과잉과 기본적 인권의 실효성 

사회 급변에 따라 각양각색의 권리들도 등장하고 있다. 새로운 인권침해 현상과 경향에 대해 인권의 논리로 맞서기 위해 ‘권’을 붙여 싸우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인권의 논리에 맞불을 놓기 위해 ‘권’을 붙여서 악용하는 현상도 늘어간다. 소위 권리의 과잉 시대다. 이속에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인권의 실효성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인권의 일반적인 원칙과 성격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자유권에 대한 편향, 사회권에 대한 편향 둘 다를 지양하는 인권실천론 

자유권에 편향됐다고 평가돼 온 인권운동은 사회권을 강조했다. 사회권 운동이 무르익지도 않았지만 사회권의 강조가 자유권에 대한 방기, 또다른 편향이 될 우려도 있다. 인권의 불가분성의 원칙을 녹여내는 인권실천론을 모색한다. 

 인도주의적 개입, 소위 '테러와의 전쟁'과 인권의 국제적 보장

인권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인권절대주의가 오히려 인권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 국제 현실이다. 국경 없는 인권의 옹호가 국제적 인권보장체제의 국내적 적용과 실천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히려 제국주의적 침략과 횡포를 인권수호로 위장하고 전파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인도주의적 개입의 논리, 테러와의 전쟁의 기만성을 살펴보는 것은 남남갈등, 북미갈등, 남북갈등의 관계 속에 있는 한국사회에서 더욱 절실하다. 

 인권 보편성의 심화; 사실상의 무리권리자들의 인권옹호를 위한 논리 

이주노동자, 국제결혼가정과 이주여성의 증가, 분쟁과 난민의 증가 등은 전통적인 국적을 가진 시민의 권리로 포괄될 수 없는 문제들을 낳고 있다. 인권은 모든 사람의 것이라 하지만 사실상의 ‘무’ 권리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무’ 권리자들의 인권보장을 위한 인권 보편성의 심화가 요구된다. 

 권리와 책임(의무)


인권의 주장은 흔히 ‘누구에게 무슨 권리가 있다’는 권리목록을 나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권리에 대해 누가 어떤 의무를 갖느냐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누가 어떤 의무를 갖느냐에 대한 논의가 무슨 권리가 있느냐는 논의에 비해 빈약하다는 것은 인권의 이행이 그만큼 공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의무에 대한 논의는 자칫 개인의 도덕적 의무, 준법의 의무, 시민의 의무라는 식의 꼬리표를 달아 책임전가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인권보장에 대해 누가 어떤 의무와 책임을 갖느냐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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