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돌봄, 지방공무원이 현장에서 풀어가는 관계의 방정식=(혁신×관계)+공공민간협력+오차항
『통합돌봄의 길을 내다 - 시범사업 7년의 현장 기록』 (장숙랑, 유애정, 윤종성, 이재철, 박영근, 한진희 지음/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26)
최홍조(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역사는 2026년을 한국사회의 통합돌봄 원년으로 기억할 수 있다. 통합돌봄지원법이 시행된 첫해이기 때문이다. 준비 없는 새로운 정책, 제도, 사업은 없다. 『통합돌봄의 길을 내다』는 돌봄 전문가 2인과 지방공무원 4인이 각자 2026년을 준비해 온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통합돌봄은) 하나 같이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처음 시작하는 낯선 것”이라고. 그렇게 시작한 통합돌봄의 공간을 주민들이 자발적 모임으로 채우고 만들었다. 의료와 복지의 협력은 한참을 돌아왔지만,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례를 모으고 토론하는 공간은 관료적 회의장에서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이 책은 혁신에 대한 이야기다.
광주 서구는 우리 동네 75세 이상 노년의 삶을 전수조사하고, 부천시는 전체 동의 돌봄자원을 조사했다. 당시에는 무모하고 과도한 업무로 여겨졌을 것이다. 전통적 복지사업 – 중앙정부가 예산과 세부 지침을 내리고, 지방정부는 그대로 실행하는 – 의 문법을 반복하지 않고, 진천군은 “자율 결정”이라는 언어의 의미를 몸에 새겼다. 중앙정부가 시군구 단위로 설치/운영하라던 “지역케어회의”를 청양군은 주민들의 삶에 더 가까운 읍면 단위로 설치/운영했다. 자연스레 “지역케어회의”는 주민들 사이의 깊이 있는 돌봄의 “치열한 토론”장이 되었다.
이 책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통합돌봄은 “아는 관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 같이 일하는 관계를 확장”하는 과정이다. 더 나아가 “목적과 가치를 충분히 공유”하는 관계의 최고 형태를 지향해야 한다. ‘관찰’과 ‘애정’을 넘고 ‘실천적 연대’를 통해 ‘입장의 동일함’을 강조했던 신영복 님의 글이 떠오른다. 어떤 관계를 다루는지 한눈에 이해하기 위해 본문 35쪽의 “지역사회 통합돌봄 개념도”를 우선 살피고 넘어가시길 바란다. 가장 어렵고 여전히 쉬이 만들지 못한 관계는 보건의료와 복지의 협력이다. 한 공간 – 회의나 사무공간 공유 - 에 모여있더라도 함께 일하는 관계가 아닐 수 있다. 전담인력이 없이 새로운 사업을 할 여유를 만들기 어려운 보건사업의 현실을 복지담당자가 이해하는데는 실패의 경험이 필요하다. 재택의료센터와 통합돌봄팀의 협력 경험이 없었다면, 조정자로서의 공공/정부 역할이 왜 필요한지 절실히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관계맺기에서 좌절의 경험이 없었다면, “주민은 서비스 수혜자가 아니라 제도를 지속시키는 ‘사회적 기반’”이라는 고민까지 확장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지방정부와 민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들은 통합돌봄에서 “공공” - 여기서는 중앙/지방 정부를 의미 - 은 조정과 사례관리를 담당하고, 민간은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는 것을 하나의 공식으로 제시한다. 당장의 부족한 돌봄자원을 통합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공공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민간과 지방정부의 협력은 경직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공공’은 지시와 통제의 주체로서 실행의 역할을 외주화하던 중앙/지방 정부의 행태를 지적한다. 다시 말해, 공공/정부가 실행기관과 수평적 협력관계임을 받아들여야 통합돌봄의 공공민간협력이 가능하다. 부천시의 통합방문간호센터의 경험에서 민간에 서비스 제공을 떠넘기듯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재택의료센터를 조정/조율할 ‘지원’센터 역할을 지방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설명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7년의 결론이 조정자로서의 공공/정부와 실행자로서의 민간기관의 협력관계라면, 앞으로의 7년, 10년은 어떤가. 조금 더 공공성을 강조하는 서비스 제공기관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협력구조를 공식이자 원칙으로 세우는 순간, 미래는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공공은 ‘생산과 실행’의 역할을 직접하지 않고 민간에 의존해야만 할까. 돌봄의 생산을 조금 더 공공적 방식으로 강화할 수 있는 고민의 출발선도 지금일 필요가 있다.
읽고 나서 중요하지만 아직 확인 못한 질문이 많이 남았다. 통합돌봄 7년의 실험 이후, 마을은 어떻게 변화하고, 가족 돌봄의 부담과 구조, 돌봄의 젠더화, 돌봄 결핍 경험과 사회적 돌봄 비용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직 살피지 못했다. 다음 책이 궁금하고 필요한 이유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많은 이들을 더 포함하지 못한” 아쉬움을 풀어줬으면 한다.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공교롭게도 모두 남성 지역 공무원의 이야기다. 책에서 등장하는 간호직 공무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마을 돌봄 서클에 참여한 이들의 기쁨과 고뇌를 듣고 싶다. 지역케어회의에 묵묵히 참여하다 어느 순간 돌봄을 토론하기 시작한 부녀회분들도 초대하자. 통합돌봄의 “사회적 기반”인 돌봄수혜 주민들의 이야기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통합돌봄을 다루는 소위 전문가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당신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들었다. 이제 당신들도 현장의 이야기를 들으시라. 혹여, 몇 페이지 넘기고선 다 아는 이야기라 느끼신다면, 부디 통합돌봄의 논의에서 비켜나 주시면 좋겠다. 혁신도, 관계도, 협력도, 현장에서 나고 지고 다져진다. 알고 있었으나 몰랐던 맥락이 있고, 안다고 생각했으나 돌파해 보지 못했던 경험이 이 책에는 있다. 이 책은 통합돌봄의 방정식의 일부를 잘 풀어 설명한다. 이제 남아 있는 오차항 – 혹은 아직은 모르는 미래의 가능성 –을 하나씩 밝혀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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