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11. 2. 19

작성자 : 유해정(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 <시사인 177호/ 2011.2.15>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경기도 성남시 단대동 철거 현장에서 준우란 아이를 만나던 날도 그랬다. 아파트 건설 현장 펜스에 기대 세워진 판잣집.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라는 현수막이 없었다면 혹한에 장사를 접은 포장마차인 줄 알았을 그곳에 철거민들이 산다. 한낮이건만 빛 한줌 들어오지 않고 바람만 피했을 뿐 말할 때마다 입김이 서리는 천막 안에서 준우는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을 물어도 아이는 입을 열지 않는다. 농담을 건네도 웃지 않는다.

다른 이를 통해 알았다. 아이의 이름이 준우라는 것도, 올해 열한 살이 됐다는 것도, 그리고 아빠 김창수씨가 용산 참사로 구속된 이후 그 충격에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도. 김창수씨는 2009년 1월 용산 망루에 올랐다가 4년형을 선고받았다. 준우 엄마는 화를 참을 수 없다고 했다. 한순간에 집을 빼앗긴 것도 기가 막힌데 남편을 교도소에 보내고, 노모를 모시며 어린 두 아이를 홀로 키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우리만 살기도 벅찬 세상에 왜 남편은 용산 철거민들을 돕겠다고 망루에 올랐는지, 내쫓으면 사라지면 될걸 왜 우리도 사람이라고 외쳤는지. 때로는 제 발로 사지에 들어간 남편이, 용산 철거민들이 원망스럽다. 슬픔과 무기력은 사라지지 않고,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회사 측의 정리해고에 맞서 77일간 파업을 벌이던 2009년 여름, 쌍용차 노동자의 아내들과 아이들도 그런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빠의 긴 부재에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경찰만 보면 엄마에게 숨으라고 했다. 구사대가 내뱉는 욕을 배웠고, 막대기와 돌멩이 던지는 것을 배워 소꿉장난을 했다.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지은 것 같다며 가슴을 쳤다.

이겨야만 했던 싸움은 패배로 끝났다. 노동자 90여 명이 구속됐고 파업 참여 노동자들은 민사소송에 휘말리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해고된 이들은 생활고에 아이의 우유를, 학원을 끊었다. 누군가에겐 ‘지난 사건’이 이들에게는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었고, 오늘도 계속되는 삶이다. 혹독한 삶의 무게에 지난 2년간 쌍용차 노동자 다섯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 남의 일이라며 뒷짐만 져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얘기한다. 혹독한 세상, 안될 일에 미련 두지 말고 빨리 손 털라고. 부모의 무책임한 행동에 아이들만 상처받는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평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들을 돌아봤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정부와 지역사회가 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정부는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고, 사법부는 ‘법대로 했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건설회사는 계산기만 두들기고, 많은 어른들은 남의 일이라며 뒷짐을 진다.

발전과 경제성장만이 화두인 세상에서 내몰리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는데,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이들의 고통과 그 가족의 아픔은 오롯이 그들 몫이다. 사회적 고통이 되지 못하고, 화두가 되지 못한다. 얼마나 서글픈 시대인가.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도 서러운데,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도, 분노도, 죄책감도 다 그들 몫으로 고스란히 남겨지는 세상은.

언젠가 아이들이 물을 거다. ‘정리해고’ ‘강제철거’ ‘승자독식’이 무슨 뜻이냐고. 그때 우리는 이 말들의 의미를 설명해줄 수 있을까? 발전·경제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집과 부모를, 동심을 빼앗긴 아이들이 있다는 걸 이해시킬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외면해야 했다고, 우리 가족이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해야 할까? 오늘도 준우는 아빠를 기다리고, 수많은 준우의 부모들은 망루에, 타워크레인에 오른다.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 <시사인 177호/ 2011.2.15>

인권오름 제 183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문헌읽기] 도시권에 관한 세계헌장(World Charter on the Right to the City, 2004)

류은숙


도시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각자 입장에서 아주 다른 수식어를 붙일 것이다. ‘달콤한’ 도시, ‘잔인한’ 도시, ‘화려한’ 도시, ‘추한’ 도시, ‘풍부한’ 도시, ‘가난한’ 도시, ‘따뜻한’ 도시, ‘냉혹한’ 도시….

도시 치장이 갈수록 요란해지는 요즘, 치장을 위한 청소질도 요란하다. 문제는 청소하는 것이 쓰레기나 먼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살고 있는 사람과 그 집을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쓸어버린다. 노점상을 쓸어버리고 오랜 골목과 이웃을 쓸어버린다. 단속과 추방으로 비시민권자를 추려내 쓸어버린다. 효율성을 기한다면서 급식지원이나 장애인활동보조비 같은 데 쓸 돈을 쓸어서 다른데 준다. 그러나 사람은 쓸어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이건 애초에 청소라 부를 수 없는 행위이고 야만이고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대안 주거 없는 겨울철 철거에 누군가가 목숨을 버려도 개발업자를 위한 대공사 계획은 거침없이 돌진하고, 디자인 수도를 위한 잔치 속에서 카펫 밑에 묻히는 먼지처럼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혀버린다. 평생 벌어도 도저히 못 벌 것 같은 액수의 돈을 들고도 전세방조차 못 구하는 사람들, 인생은 대출금 갚는 것이란 노래가 구슬픈 가운데 도시의 조명이 화려하게 빛난다.

이 도시에는 광장이 없다. 가난하고 냉대 받은 사람들이 호소할 수 있는 광장, 누구나 의견이나 신념에 관계없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광장 대신에 연일 토목공사가 벌어지는 쇼 윈도우 광장이 있을 뿐이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엄청나게 찢겨져 있다. 소득 수준과 사교육 수준에 따라 생긴 간극은 땅값, 아파트값이 치솟는 만큼 커진다. 분열된 도시를 연결하는 연대의식과 책임감,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건 안 팔리고 절판되는 책에나 나오는 말이다.

이런 도시들을 겨냥하여 세계시민사회는 ‘도시에 대한 권리 헌장’이란 걸 만들었다. 2001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 세계시민사회포럼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계속 대화한 결과 2004년 미주 사회포럼(에콰도르 키토)과 2005년 세계 도시 포럼(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다듬었다. ‘도시’라 했지만 농촌지역을 제외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다른 지역을 착취하여 번영하는 도시의 상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많은 정부와 지자체의 참여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가 계속 논쟁 중이다.

이 헌장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도시란 ‘사회적’ 기능을 해야 하는 곳이다. 경제적 성취의 야심을 고층으로 쌓아올리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삶을 돌보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시민의 복지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인간다운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을 평등하게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기능이다. 이런 기능을 위해 시의 운영은 민주적이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시민들은 연대의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이런 권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점이다.

그런 건 말 뿐인 원칙일 뿐, 강행할 힘이 있는 법조문이 아니라고 대꾸할 도시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으로 추구할 원칙 없는 도시에는 금지의 법만이 넘치는 것 아닌가. 원칙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창조적으로 실천하게 돕는 도구이다. 금지와 제약의 선을 엄격히 준수하며, 다양해진 도시의 쇼를 관람하고, 우울해지는 사회면 기사는 적당히 무시하고 사는 것이 자유인은 아닐 것 같다. 도시의 자유인은 금지와 제약의 선에 저항하며, 냉대 받고 잊게 된 이들을 생각에서 지우지 않고, 좀 따뜻한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며 차가운 연말의 거리를 종종 걸음치는 그 누군가가 아닐까 한다.

도시권에 관한 세계헌장
(World Charter on the Right to the City, 2004)

전문
새 천년에 들어가면서 세계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고 2005년까지는 도시화의 비율이 65%에 이를 전망이다. 잠재적으로 도시는 거대한 부의 지역이고 경제적․환경적․정치적․문화적으로 다양한 지역이다. 도시의 생활양식은 우리가 동료 인간과 지역과 맺는 관계의 양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런 잠재성과는 반대로, 현재 대다수 3세계 도시에서 이행되는 개발 모델에선 오직 소득과 권력의 집중이 발견될 뿐이고 가속화된 도시화과정은 환경의 파괴와 사회적․물리적 분리를 양산하고 있는 공공영역의 민영화이다.

대부분의 도시는 그 거주자에겐 평등한 조건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 인구의 상당수는 그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또는 인종적 특성이나 성별 또는 연령 때문에 기본적인 필수품의 충족을 박탈당하거나 제한받고 있다.

이런 현실에 직면하여 시민사회는 2001년 제1회 세계사회포럼 이후 계속 교류하며 문제를 분석하고 토론했다. 지속가능한 도시사회와 생활양식 모델을 제시하려고 도전했고, 이 도전은 연대․자유․존엄성과 사회정의라는 우선적인 원칙들에 토대하고 있다.

도시권에 관한 세계헌장은 도시의 투쟁에 기여하고 국제인권체계 속에 도시권을 인정하도록 하는 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이다. 도시권의 핵심요소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의 원칙을 고려하는 도시의 평등한 사용권이다. 도시권은 모든 도시 거주민의 집단권, 특히 취약하고 냉대 받는 사람들의 권리로서 이해돼야 한다.


제 1조 도시에 대한 권리
1. 모든 사람은 이 헌장의 원칙과 규범에 따라 성, 연령, 인종, 민족, 정치적 및 종교적 지향성에 따른 차별 없이 문화적 기억과 정체성을 보존할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5. 이 헌장의 목적을 위해 시민이란 영구적으로나 일시적으로나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제 2조 도시권의 원칙들
1. 도시의 민주적 운영
모든 시민은 직접적으로나 대표를 통해 도시의 관리, 도시 계획 및 통치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 모든 시민은 도시의 계획, 설계, 관리, 운영, 복원 및 개선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2. 도시의 사회적 기능
도시는 모든 사람에게 도시의 경제, 문화 및 자원을 완전히 이용할 것을 보장해야 제 사회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또한 평등한 분배 기준을 준수하고 문화와 생태의 지속가능성을 존중하고 오늘의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 모든 시민의 복지가 자연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계획과 투자된 자본이 시민의 혜택을 위해 이행될 때야 도시는 제 사회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3. 재산의 사회적 기능
a. 도시와 시민에게 속한 공공 및 사유 공간과 재산은 사회적, 문화적 및 환경적 이익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이용돼야만 한다. 모든 시민은 사회정의의 이상 위에서 지속가능한 환경의 조건 하에서라는 민주적인 변수에 기반하여 도시 영토의 소유권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공공정책의 형성과 이행에 있어서 도시 공간과 토지 둘 다의 사회적으로 공정한 이용이 성평등과 환경평등, 안전과 더불어 증진돼야만 한다.
b. 도시 정책의 형성과 이행에 있어서 사회적 및 문화적 이익이 개인의 재산권보다 우위에서 우선권을 가져야만 한다.

4. 시민권의 완전한 행사
도시는 평등과 정의, 거주지의 사회적 생산을 완전히 존중하는 속에서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집단적 복지를 보장하는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한 장소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도시에서 연대의 의무를 지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및 환경적 발전에 필수적인 조건을 찾을 권리가 있다.

5. 평등과 비차별
이 헌장에 새겨진 권리는 영구적으로나 일시적으로나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연령, 성, 성적 지향성, 언어, 종교, 의견, 인종 및 민족적 출신, 소득 수준, 시민 또는 이주자 상황에 따른 어떤 차별도 없이 보장돼야 한다.

6. 취약한 사람과 집단을 위한 특별한 보호
더 취약한 집단과 개인들은 보호와 통합을 위한 특별한 조치에 대한 권리, 기본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 차별과 싸울 권리를 갖는다.
이 헌장의 목적을 위해 취약한 사람들이란 다음과 같다: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 건강과 환경적 위험에 처한 사람, 폭력의 피해자, 장애인, 이주민, 난민, 각 도시의 현실 속에서 나머지 다른 집단과 비교하여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이런 집단 속에서도 노인, 여성, 아동에게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제 5조 도시 운영의 투명성
1. 도시행정의 투명성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과 정부의 책임성을 시민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개방하는 방식의 행정 구조를 도시는 조직해야 한다.

제 6조 공공 정보에 대한 권리
1. 모든 사람은 시 행정부의 어떤 부서에 대해서나 입법 또는 사법 당국에 대해서나 그 부서들의 행정 및 재정활동,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 계약을 맺은 회사와 사적인 경제협회, 민관혼합의 경제협회의 활동에 관해 완전하고, 정확하고, 충분하고, 시기적절한 정보를 요구하고 받을 권리를 갖는다.
2. 시민으로부터 정보 요청을 받은 시 정부 또는 사적 부문의 고용인은 자기 권한의 영역을 언급하고 해당 시기에 가용성 있는 정보를 만들고 생산할 의무가 있다.


제 9조 결사, 집회, 표현의 권리와 도시의 공적 공간의 민주적 이용의 권리
모든 사람은 결사, 집회, 표현의 권리를 갖는다. 도시는 공공 구역을 개방된 모임과 비공식적 모임을 위해 이용가능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제 14조 주거권

3. 도시는 취약한 집단과 홈리스 집단이 주택법과 프로그램에서 우선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6. 모든 사람은 퇴거, 몰수, 강제적 또는 자의적인 이주에 대해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 장치의 수단에 의해 자신의 집의 점유의 안정성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9. 도시는 자의적인 퇴거로부터 거주자들을 보호해야 하고 주거 임대를 규제함으로써 고리대금에서 차용자를 보호해야 한다.

( 원문 전체는 http://v1.dpi.org/lang-en/resources/details.php?page=124 에 가면 볼 수 있다.)

인권오름 제 183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139 호  [기사입력] 2009년 02월 10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내가 처음 철거민을 본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바람고개라 불리는 언덕 주변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 아는 언니, 오빠,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터 집들은 눈에 띄게 사라져가고 돌무더기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비닐 천막이 한두 개씩 늘어갔다. 영문을 모르는 내가 단지 궁금했던 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비닐집에서 옷은 어떻게 갈아입으며 용변은 어떻게 해결할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의 눈물을 봤다. 비닐집에 사는 친구였다. 혼자서 비닐집에 앉아(너무 추웠다) 빨래를 개며 그 친구는 연신 중얼거렸다. “울 엄마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울 엄마가 뭘 잘못했다고….” 어린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서야 그 눈물에 담긴 서러움을 짐작하게 됐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닥쳤기 때문이다. 철거는 아니지만 단칸방까지 빚쟁이에게 넘어가는 일이 흔했다. 몇 차례 같은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건 집달리는 꼭 새벽 4시경에 온다는 거였다. 잠에 취한 식구들이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그들은 살림을 밖으로 집어던진다. 차가운 새벽바람에 정신을 차린 식구들이 체념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하면 그들의 우악스럽던 손길이 좀 얌전해졌다. 엄마가 밥풀로 벽에 붙어뒀던 상장들이 찢기고 밥상이 깨진 후 길바닥에 나동거리는 초라한 살림을 주워 모았다. 이불보따리 위에 앉아 임시거처를 구하러 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동생들은 창피하다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나 홀로 알량한 살림을 지키느라 이불보따리 위에 앉아 있으면, 나와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대학교 때 철거지역에서 잠깐 공부방을 했다. 거의 다 부서진 동네에서 역시 반쯤 부서진 집 이층을 청소하고 마련한 거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같이 노는 활동이었다. 학년도 성별도 다른 아이들은 공부에는 집중하려 하지 않았고, 어쩌다 같이 간 남학생들은 아이들이 하도 말을 태워달라고 해서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학교 축제로 한 주를 건너뛰고 찾은 공부방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이미 부서진 집이었음에도 공부방이 눈꼴셨는지 철거반원들이 공부방에 오르는 계단조차 아예 무너뜨렸다. 아이들과 작별인사도 못했고 다시 보지도 못했다.

인권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후 이런 문건을 접했다. ‘세계주거권회의’라는 게 있는 데 거기서 한국을 남아공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인간적으로 철거를 하는 국가로 지목했다는 거였다. ‘참 안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심각성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거권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법적 해석은 1991년에 발표된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적절한 주거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4"이다. 이에 따르면 주거권은 물리적인 주거만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말한다. '적절한 주거'의 개념에는 여러 요소가 포함되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반드시 자기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집을 소유할 수도 있고, 임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유하든 임대하든, 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에서 살든 간에 안정적으로 살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 임대했던 집에서 갑자기 쫓겨나거나 집이 철거되거나, 또는 그 집에 살 수 없도록 강한 협박․폭력에 시달리는 경우,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갑작스럽게 거주 공간을 빼앗기거나 위협을 받는 경우, 국가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거나 안정된 주거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유엔에서는 또한 이런 주거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대표적인 현상을 지목하였다. 그건 바로 땅 투기와 부동산 투기이고, 토지 몰수와 수용, 토지 소유의 불평등, 토지 파벌의 성장을 통제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이다. 또한 저소득자가 생계를 위해 필수적인 토지 및 부동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정부의 시장개입의 소극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용산 참사가 벌어지고 참 속상한 일들이 많이 이어졌다. 철거민을 옹호하거나 공격하는 측의 대립도 적지 않다. 인간의 죽음 앞에서 벌일 일이 아닌 일들이 많다. 그중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거슬렸다.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에 왜 경찰력이 끼어들었느냐’는 식의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 일은 국가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주거권에 소홀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원인은 거기에 있다.

애초에 주거권이란 인권이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거리에 치우치지 못하도록 사회경제적 강자의 탐욕을 통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국가가 나서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적 폭력인 용역이 와서 괴롭히면 공권력이 나서서 퇴거 대상인 사람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손잡고 춤을 췄다.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에 괜히 끼어든 게 아니라, 공권력은 고의적으로 늦게 왔고, 작정하고 저들의 편에 섰다.

법은 강자에게 엄하고 약자의 설움을 껴안아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강자도 약자도 법을 외면할 것이다. 강자는 굳이 법을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고, 약자는 ‘법에 호소해 봤자’라고 체념할 테니 말이다. 아니, 체념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법이 있고 공권력이 있고 생계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당국이 있었다면 망루가 세워졌겠는가. 당신들의 세상과 당신들의 법과 당신들의 공권력에 대한 체념이 무엇으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들이 감당 못할 그 무엇이 될 것은 확실하다. 

<철거민이 본 철거>,1998

철거반만 오면 아이들은 놀다가도 “엄마, 철거반 아저씨들이 곡괭이, 몽둥이 들고 와. 빨리 나와!”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허겁지겁 맨발로 뛰어나와 살림을 챙기고 판자조각이라도 부서질까봐 주섬주섬 뜯을 때는 정말 숨이 꽉 막히고 심장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나마 판자조각이라도 없어지면 당장 한데서 자야 하는 저희들의 신세고 보니 사정도 해봅니다. “아저씨, 제발 우리가 뜯을 테니 부수지 말아요”하고 두 손 모아 애타게 애원하지만, “높은 사람이 위에서 보고 있으니 곤란하다”면서 사정없이 부숴버리는가 하면 방 구들까지 곡괭이로 마구 파버리고 갑니다.…(1975년, 중랑천변 철거민 ‘어머니의 호소’)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호화주택이나 고급 아파트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새끼들이 살 수 있으면 하는 땅과 집입니다. 하늘과 땅을 사람에게 준 하나님 왜 우린 한국에서 태어나 땅도 집도 없이 쫓겨다니며 살아야 합니까? 돈을 벌기 위해 양심가지고 하루종일 일해도 땅도 집도 살 수 없으니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까? 어디를 가도 땅도 집도 많은데 우리 집 땅은 하늘에나 있는지요. 잠시 살다가 갈 땅과 집이 없으니 어떻게 자식 새끼들하고 살아야 합니까? 63층 건물속에 살아있는 수족관 물고기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까? 죽을까봐 수억을 들여 살게 합니다. 똑같은 1표의 투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도 왜 우린 쫓겨다니고 짐승취급도 못받고 소리치면 때리고, 목조르고, 감옥에 집어 넣는다고 호통을 칩니까? 하나님, 한국은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 그래서 세계에서 발전한 우방 대열속에 끼는 것이 됩니까? 우리도 도둑질하고 때리고 죽여서 잘 발전된 사회를 만들며 살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칠까요? 어떻게 해서든지 돈만 벌어 땅과 집을 마련하여 잘 살라고 가르치고 계속 투기, 투기, 투기해서 부자 되어 살라고 할까요? (1984년 목동. 신정동 ‘셋방살이 어머니 호소’)

저희 세입자도 마찬가지로 주민세, 재산세, 오물세 등 주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내야할 세금은 다 내고 살아왔습니다. 지키라는 법 다 지켰고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역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권리를 찾지 못하고 내쫓겨야만 합니까 아파트 입주권이 무슨 말입니까 입주권을 얻어서 그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더욱이 이 지역 주민 중 많은 사람들이 전세 월세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세입자들에게도 아무런 대책이 없이 그냥 나가라고만 하니 나가 죽으란 말입니까 이렇게 쫓겨 날 수는 없습니다. 도저히 우리는 못나갑니다.
각하! 남은 돈 벌 때 뭐하고 이제 와서 억지를 부리느냐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어려운 작업장에서 잘살아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인 자식 놈까지 사회에 뛰어들어 가정을 도우고 있지만 우리는 좀처럼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난도 부도 모두가 사회가 만들어 내었다고. 그래서 가난에 대해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으니까 세입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구청에도 수십번 찾아가고 시청에도 갔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아 이 딱한 사정 좀 들어보라고 어쩔 수 없이 시위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갖은 수모와 구타 심지어 머리가 찢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살아보겠다고 살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해야 합니까 정의사회 구현이 이런 겁니까 힘없고 가난하고 그래도 생명이라고 살아볼려고 바둥대는 우리들을 군화발로 짓밟고 부유하고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호화 아파트를 짓고 그 돈으로 공원 만드는 것이 정의사회란 말입니까? (1985년 목동, 신정동 지역주민)

재개발이 도대체 뭐 길래, 이렇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듯 사람이 다치고 들것에 들려나가고 피눈물이 그치지 않는 겁니까?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투기꾼 복부인 그리고 재벌회사를 위한 사업이 아닙니까?
그러니 돈 많고 권력 있는 저들이 돈 벌기 위해 하는 짓이면 뭐든 그게 다 법인 세상입니다. 그거 반대하면 무조건 위법이 되는 거구요.
권력과 돈이 한통속이 되어 깡패를 내세워 폭력 청부를 주고 우리를 죽이러 오는데 그렇다고 우리라고 가만히 병신처럼 죽은 듯 엎드려 있어서야 어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 자식들 앞에서라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싸워야겠습니다.

민주 애국 시민여러분!
근본적인 것은 가난한 국민이 집에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주택정책이 세워져야 하는 것인데 이 정부는 그 책임을 우리 같은 철거민들에게 뒤집어 씌워 무조건 우리더러 일방적으로 당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희생이 되고 쓰레기가 되어야 합니까?
이 나라 정부가 근본적으로 가난한 국민은 사람 취급도 안한다는 증거가 바로 살인 철거인 셈이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끼리 이 나라를 말아먹은 다른 증거가 바로 재개발 사업인 것입니다. (1985년 사당동 철거민)

어려운 교육여건 속에서도 올바른 2세를 키우기 위해 노심초사 애쓰시는 선생님께 드립니다.
부족하고 철없는 아이들이지만 항상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 선생님의 고마우신 마음 항상 마음속에 담고 있습니다.
찾아뵈고 아이들에 대해 상의도 드리고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었지만 여유 없는 생활에 쫓기다 보니 마음뿐이군요.
더구나 대비 없이 갑자기 당한 강제철거로 아이들의 학습준비는 물론 먹고 입는 것조차 챙기지 못해 학교에서 아이들 문제로 더욱 큰 걱정을 하시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온갖 세상풍파 겪고 살아온 어른들이야 그럭저럭 참고 산다고 치더라도 잘못된 현실로 인해 어린 아이들까지 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모로서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문입니다.
…저희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싸워야 하고 앞으로도 싸워야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희의 삶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큼은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저희가 이렇게 살다보니 혹여 또 다시 강제철가 들어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서 안이 될 런지. 저들의 말로는 난지도에 우리들의 짐을 버린다고도 하니 앞으로의 일을 예기치 못하게 되어,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등교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점 이해해주시고 저희들을 격려해 주십시오. (1990년 서초 3동 철거민 학부모 일동)

인권오름 제 139 호  [기사입력] 2009년 02월 10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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