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83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문헌읽기] 도시권에 관한 세계헌장(World Charter on the Right to the City, 2004)

류은숙


도시에 수식어를 붙인다면 각자 입장에서 아주 다른 수식어를 붙일 것이다. ‘달콤한’ 도시, ‘잔인한’ 도시, ‘화려한’ 도시, ‘추한’ 도시, ‘풍부한’ 도시, ‘가난한’ 도시, ‘따뜻한’ 도시, ‘냉혹한’ 도시….

도시 치장이 갈수록 요란해지는 요즘, 치장을 위한 청소질도 요란하다. 문제는 청소하는 것이 쓰레기나 먼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살고 있는 사람과 그 집을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쓸어버린다. 노점상을 쓸어버리고 오랜 골목과 이웃을 쓸어버린다. 단속과 추방으로 비시민권자를 추려내 쓸어버린다. 효율성을 기한다면서 급식지원이나 장애인활동보조비 같은 데 쓸 돈을 쓸어서 다른데 준다. 그러나 사람은 쓸어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이건 애초에 청소라 부를 수 없는 행위이고 야만이고 인권침해일 수밖에 없는 행위이다.

대안 주거 없는 겨울철 철거에 누군가가 목숨을 버려도 개발업자를 위한 대공사 계획은 거침없이 돌진하고, 디자인 수도를 위한 잔치 속에서 카펫 밑에 묻히는 먼지처럼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혀버린다. 평생 벌어도 도저히 못 벌 것 같은 액수의 돈을 들고도 전세방조차 못 구하는 사람들, 인생은 대출금 갚는 것이란 노래가 구슬픈 가운데 도시의 조명이 화려하게 빛난다.

이 도시에는 광장이 없다. 가난하고 냉대 받은 사람들이 호소할 수 있는 광장, 누구나 의견이나 신념에 관계없이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광장 대신에 연일 토목공사가 벌어지는 쇼 윈도우 광장이 있을 뿐이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엄청나게 찢겨져 있다. 소득 수준과 사교육 수준에 따라 생긴 간극은 땅값, 아파트값이 치솟는 만큼 커진다. 분열된 도시를 연결하는 연대의식과 책임감,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건 안 팔리고 절판되는 책에나 나오는 말이다.

이런 도시들을 겨냥하여 세계시민사회는 ‘도시에 대한 권리 헌장’이란 걸 만들었다. 2001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레에 세계시민사회포럼으로 모였던 사람들이 계속 대화한 결과 2004년 미주 사회포럼(에콰도르 키토)과 2005년 세계 도시 포럼(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다듬었다. ‘도시’라 했지만 농촌지역을 제외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다른 지역을 착취하여 번영하는 도시의 상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많은 정부와 지자체의 참여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가 계속 논쟁 중이다.

이 헌장에 따르면 무엇보다도 도시란 ‘사회적’ 기능을 해야 하는 곳이다. 경제적 성취의 야심을 고층으로 쌓아올리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삶을 돌보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시민의 복지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인간다운 생활에 필수적인 것들을 평등하게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적 기능이다. 이런 기능을 위해 시의 운영은 민주적이어야 하고 투명해야 한다. 시민들은 연대의 의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이런 권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점이다.

그런 건 말 뿐인 원칙일 뿐, 강행할 힘이 있는 법조문이 아니라고 대꾸할 도시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으로 추구할 원칙 없는 도시에는 금지의 법만이 넘치는 것 아닌가. 원칙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창조적으로 실천하게 돕는 도구이다. 금지와 제약의 선을 엄격히 준수하며, 다양해진 도시의 쇼를 관람하고, 우울해지는 사회면 기사는 적당히 무시하고 사는 것이 자유인은 아닐 것 같다. 도시의 자유인은 금지와 제약의 선에 저항하며, 냉대 받고 잊게 된 이들을 생각에서 지우지 않고, 좀 따뜻한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꾸며 차가운 연말의 거리를 종종 걸음치는 그 누군가가 아닐까 한다.

도시권에 관한 세계헌장
(World Charter on the Right to the City, 2004)

전문
새 천년에 들어가면서 세계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살고 있고 2005년까지는 도시화의 비율이 65%에 이를 전망이다. 잠재적으로 도시는 거대한 부의 지역이고 경제적․환경적․정치적․문화적으로 다양한 지역이다. 도시의 생활양식은 우리가 동료 인간과 지역과 맺는 관계의 양식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런 잠재성과는 반대로, 현재 대다수 3세계 도시에서 이행되는 개발 모델에선 오직 소득과 권력의 집중이 발견될 뿐이고 가속화된 도시화과정은 환경의 파괴와 사회적․물리적 분리를 양산하고 있는 공공영역의 민영화이다.

대부분의 도시는 그 거주자에겐 평등한 조건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 인구의 상당수는 그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또는 인종적 특성이나 성별 또는 연령 때문에 기본적인 필수품의 충족을 박탈당하거나 제한받고 있다.

이런 현실에 직면하여 시민사회는 2001년 제1회 세계사회포럼 이후 계속 교류하며 문제를 분석하고 토론했다. 지속가능한 도시사회와 생활양식 모델을 제시하려고 도전했고, 이 도전은 연대․자유․존엄성과 사회정의라는 우선적인 원칙들에 토대하고 있다.

도시권에 관한 세계헌장은 도시의 투쟁에 기여하고 국제인권체계 속에 도시권을 인정하도록 하는 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도구이다. 도시권의 핵심요소는 지속가능성과 사회정의의 원칙을 고려하는 도시의 평등한 사용권이다. 도시권은 모든 도시 거주민의 집단권, 특히 취약하고 냉대 받는 사람들의 권리로서 이해돼야 한다.


제 1조 도시에 대한 권리
1. 모든 사람은 이 헌장의 원칙과 규범에 따라 성, 연령, 인종, 민족, 정치적 및 종교적 지향성에 따른 차별 없이 문화적 기억과 정체성을 보존할 도시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5. 이 헌장의 목적을 위해 시민이란 영구적으로나 일시적으로나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제 2조 도시권의 원칙들
1. 도시의 민주적 운영
모든 시민은 직접적으로나 대표를 통해 도시의 관리, 도시 계획 및 통치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 모든 시민은 도시의 계획, 설계, 관리, 운영, 복원 및 개선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2. 도시의 사회적 기능
도시는 모든 사람에게 도시의 경제, 문화 및 자원을 완전히 이용할 것을 보장해야 제 사회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또한 평등한 분배 기준을 준수하고 문화와 생태의 지속가능성을 존중하고 오늘의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 모든 시민의 복지가 자연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계획과 투자된 자본이 시민의 혜택을 위해 이행될 때야 도시는 제 사회적 기능을 하는 것이다.

3. 재산의 사회적 기능
a. 도시와 시민에게 속한 공공 및 사유 공간과 재산은 사회적, 문화적 및 환경적 이익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이용돼야만 한다. 모든 시민은 사회정의의 이상 위에서 지속가능한 환경의 조건 하에서라는 민주적인 변수에 기반하여 도시 영토의 소유권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공공정책의 형성과 이행에 있어서 도시 공간과 토지 둘 다의 사회적으로 공정한 이용이 성평등과 환경평등, 안전과 더불어 증진돼야만 한다.
b. 도시 정책의 형성과 이행에 있어서 사회적 및 문화적 이익이 개인의 재산권보다 우위에서 우선권을 가져야만 한다.

4. 시민권의 완전한 행사
도시는 평등과 정의, 거주지의 사회적 생산을 완전히 존중하는 속에서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집단적 복지를 보장하는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한 장소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도시에서 연대의 의무를 지는 동시에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및 환경적 발전에 필수적인 조건을 찾을 권리가 있다.

5. 평등과 비차별
이 헌장에 새겨진 권리는 영구적으로나 일시적으로나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연령, 성, 성적 지향성, 언어, 종교, 의견, 인종 및 민족적 출신, 소득 수준, 시민 또는 이주자 상황에 따른 어떤 차별도 없이 보장돼야 한다.

6. 취약한 사람과 집단을 위한 특별한 보호
더 취약한 집단과 개인들은 보호와 통합을 위한 특별한 조치에 대한 권리, 기본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 차별과 싸울 권리를 갖는다.
이 헌장의 목적을 위해 취약한 사람들이란 다음과 같다: 빈곤 상태에 있는 사람, 건강과 환경적 위험에 처한 사람, 폭력의 피해자, 장애인, 이주민, 난민, 각 도시의 현실 속에서 나머지 다른 집단과 비교하여 열악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이런 집단 속에서도 노인, 여성, 아동에게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제 5조 도시 운영의 투명성
1. 도시행정의 투명성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공무원과 정부의 책임성을 시민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개방하는 방식의 행정 구조를 도시는 조직해야 한다.

제 6조 공공 정보에 대한 권리
1. 모든 사람은 시 행정부의 어떤 부서에 대해서나 입법 또는 사법 당국에 대해서나 그 부서들의 행정 및 재정활동,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 계약을 맺은 회사와 사적인 경제협회, 민관혼합의 경제협회의 활동에 관해 완전하고, 정확하고, 충분하고, 시기적절한 정보를 요구하고 받을 권리를 갖는다.
2. 시민으로부터 정보 요청을 받은 시 정부 또는 사적 부문의 고용인은 자기 권한의 영역을 언급하고 해당 시기에 가용성 있는 정보를 만들고 생산할 의무가 있다.


제 9조 결사, 집회, 표현의 권리와 도시의 공적 공간의 민주적 이용의 권리
모든 사람은 결사, 집회, 표현의 권리를 갖는다. 도시는 공공 구역을 개방된 모임과 비공식적 모임을 위해 이용가능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제 14조 주거권

3. 도시는 취약한 집단과 홈리스 집단이 주택법과 프로그램에서 우선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6. 모든 사람은 퇴거, 몰수, 강제적 또는 자의적인 이주에 대해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 장치의 수단에 의해 자신의 집의 점유의 안정성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9. 도시는 자의적인 퇴거로부터 거주자들을 보호해야 하고 주거 임대를 규제함으로써 고리대금에서 차용자를 보호해야 한다.

( 원문 전체는 http://v1.dpi.org/lang-en/resources/details.php?page=124 에 가면 볼 수 있다.)

인권오름 제 183 호  [기사입력] 2009년 12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작성일자 : 2007. 3. 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전권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유엔독립전문가의 논문을 살펴봤다. 20세기의 마지막 국면에 인권의 장에 등장한 발전권은 논쟁적이며, 모호하며, 미완이라는 수식에 싸여있다. 유엔독립전문가의 논문에서도 발전권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얻을 수 없는 한계는 여전하다. 오늘은 이 논문에 대한 다양한 비평들을 살펴본다.


< 글 싣는 차례>

(1) 발전권의 이론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3) 발전권의 실천

(4) 이 논문에 대한 비평들

“‘발전’ 자체가 문제다”

먼저 발전권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들 수 있다.

첫째, 개인을 강조하고 국가의 개입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인권의 관점에서의 비판이다. 권리의 주체도, 권리의 대상도, 의무의 주체도 모호한 권리를 내세우는 것은 인권의 보편성과 신성한 권위에 흠집을 낼 뿐이라는 것이다.

집단을 권리의 주체로 내세울 때 모호한 집단의 확대는 3세계나 남반구 전체로까지 확대돼 결국 ‘국가’들이 권리의 주인이 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이로 인해 독재정부가 발전을 명분으로 개인의 인권을 억압하는 것을 정당화할 위험성이 크다고 비판한다. 특히 유엔독립전문가의 주장처럼 발전권은 ‘과정’에 대한 권리라는 식의 주장은 권리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말할 성질의 것을 권리의 목적이자 대상으로 만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라는 반응이다. 국제사회의 의무, 초국적 기업의 의무, 다양한 비국가행위자의 의무 등 의무 주체를 무한 확대하는 것 또한 권리와 의무의 소재를 흐릴 뿐이라고 본다.

둘째, ‘권’이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발전’의 본래 개념이 바뀔 수 없다는 시각이 있다. 인권도 경제도 잘돼가고 있는 곳은 발전돼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은 ‘발전도상국’이니 ‘미발전국 또는 저발전국’이라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발전한 나라’나 ‘발전도상국’ 모두가 사실상 ‘발전’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발전이라 부르는 것은 사실상 경제발전이고 그것은 지구 위의 모든 인간과 자연을 산업경제 시스템 속으로 집어넣는 일이다. 경제발전은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원인이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되면 지구가 다섯 개 아니 그 이상이 있더라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빈곤 등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다.

유엔독립전문가의 글에서도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경제성장 자체를 강조하고 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경제성장을 수단일 뿐 아니라 목적으로 보는 부분도 나타난다. 이에 대해서는 입장이 나뉜다. 경제성장이 발전권을 실현하는 프로그램에 포함되는 부분이라 할지라도 성장에 대한 강조나 성장 자체를 목적으로 내세우는 것에 우려를 표하는 입장이 있는 반면, 세계은행 등의 논평가들은 이런 시각을 환영한다. 경제성장을 인권침해의 주온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인권의 장에 너무 팽배해 있다는 불평이다. 따라서 유엔독립전문가가 경제성장을 강조한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가치체계의 문제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기존의 가치체계는 경쟁, 개인주의적 경향, 공동의 사회적 목표에 대한 무관심이다. 그래서 경제적 가치는 ‘통합적’인 것이 아니라 ‘배타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발전권을 주창하면서 기존의 가치체계에 단지 인권의 차원을 덧붙이는 것으로는 될 수 있는 일이 없다.

경제체제를 인간화하고 부를 창출하는 전체과정에 발전권을 통합시키는 것은 가치체계의 변화가 요구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발전권은 특수한 가치주장을 내재한 권리가 된다. 그리고 그에 기반한 모든 개혁은 사회의 특수한 생산체제와 직접 연관된다. 인권의 보편성은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것에 기반하고 있는데 특정 가치체계를 미리 정해놓고 그것에 대한 권리를 외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그 결과는 서로 다른 가치들의 갈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또한 발전에 대한 청사진이 단일하거나 통일적으로 있지도 않은 상태에서 발전권에 기초한 가치체계의 변화를 옹호하는 것은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는 모순이 된다. 사회의 다양한 행위자들은 새로운 사회구조와 합의를 만들기 위한 틀거리를 제공받기 전까지는 발전권을 옹호하기도 반대하기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발전권에 포함된 많은 요소들, 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참여와 권한강화, 좋은 거버넌스(공치)와 파트너쉽, 투명성, 책임성 등을 도덕적, 윤리적으로 부르짖거나 권리 실현의 도구로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나 권리 체계 자체에 넣는 일은 어렵다는 비판이 주로 제기된다.

“발전권 실현은 어렵다”

발전권에 대해 옹호하건 반대하건 간에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발전권의 ‘실현’이 어렵다는 것이다. 추상적인 발전권을 구체적이고 특수한 정책과 프로그램에 가져다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많은 정부들이 발전권을 국익 개념을 위해 이용한다는 것이다. 실천을 위한 대화보다는 뻔한 정치적 입장을 나열하는 대화가 발전권의 등장 시기부터 문제가 됐다. 부당한 국제 경제질서에 대한 변화와 보상을 기대하며 무역조건의 증진, 부채 해소 등 선진국의 원조 의무를 강경하게 주장하는 3세계의 도전이 있었다. 이에 대해 선진국들은 원조는 기부국들이 주권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발전권 증진의 명목 하에 구속력있는 국제적 의무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독립전문가의 논문에서는 이런 초기의 대립과 거기서 사용된 언어가 오늘날에는 적절성을 상당히 잃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독립전문가의 논문에서 실천방법으로 제시된 ‘개발원조’와 ‘발전계약’에는 상당 부분 그런 대립의 요소가 내재돼 있다.

둘째, 발전권 하면 ‘모호하다’는 말이 나오듯이 발전권의 이론적·경험적 지식은 취약하다.
발전권이 추상적 개념을 실천 단계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발전과정에 무슨 일이 벌어졌고, 어떻게 결정이 이뤄졌으며, 어떤 압력이 우선순위 설정에 영향을 주며, 어떤 참여가 이뤄졌는지를 심도 깊게 이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권영향평가를 포함하여 분명한 지침, 평가기준, 모니터링 등이 있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엔 차원에서 지침과 점검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아직 시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추상적인 발전권을 현실화하는데 있어 초점을 맞출 것은 구체적인 ‘빈곤퇴치전략’이라는 의견들이 자주 제출된다.

셋째, 이론적 취약성과 맞물린 실천의 부재이다. 듣기 좋은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전권에 근거해 정책과 프로그램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자원을 할당하는 예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개별국가도 물론이지만 국제인권의 장에서 빠짐없이 발전권을 선언문에서 언급하기는 하지만 행동계획에서는 무시되고 있다.

일례로 유엔밀레니엄발전목표를 채택하면서 “발전권을 모든 사람에게 현실로 만들고 전체 인류를 결핍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고 했지만 지금 세계는 성장과 번영, 보다 개방적인 시장,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실제 정책목표로 취하고 있지, 가난한 사람들의 발전권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발전권 실현을 위한 실천은 그 성격상 장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흔히 목격되는 대응은 즉각적인 도전과 요구에 대한 대응이다.

“발전의 중심은 사람이다”

독립전문가가 논문에서 주장한 바와는 달리 발전권에 대한 회의와 반대, 적극적인 옹호간의 차이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일치점을 찾는다면 ‘발전’의 중심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도덕적 호소에 대한 동의일 것이다.
발전의 관심은 모든 사람의 존엄성, 모든 인간의 상호의존성, 그리고 모든 생명의 보전에 있다. 따라서 그것이 ‘권리’이건 아니건 간에 발전은 인간 능력의 실현에 관한 것이다. 내가 완전히 사람일 수 있기에 필요한 것, 사람이 자신의 인격을 충분히 실현하기에 필요한 것이 발전이고, 그것에 대한 실현방법은 무력감을 느끼고 도움과 보조에 의한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발전에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전에 대한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는 점은 인권에 대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이다. 기존의 인권 규범의 개인적이고 나열적인 성격을 고려할 때 종합적·구조적으로 인권을 규정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발전권의 존재 이유이다. 그것은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단순히 합산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의 상호의존성을 고려하는 속에서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발전에 대한 접근은 경제적인 것에만 머물 수가 없다. 제도, 참여, 재정, 경제, 법, 사회적 통합 등을 포괄하는 모든 요소를 총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어디로 가느냐와 어떻게 가느냐는 둘 다 중요한 문제이다. 발전권 선언에서 말한대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상태로 가기 위해 “사람은 발전의 적극적인 참여자와 수익자”가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적극적이고 자유롭고 의미있는 참여의 기초”위에서 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류은숙]

작성일자 : 2007. 3. 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3) 발전권의 실천

A. 국제협력

발전권은 1970년대 신국제경제질서(NIEO) 수립을 둘러싼 남반구와 북반구 국가들 간의 대립과 결합되어, 3세계 국가들이 주창한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국제관계에서의 동등한 처우, 주로는 자원의 이전과 무역과 금융에서의 유리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3세계 국가들이 사용했던 언어의 상당수는 오늘날 적절성을 상당히 잃었다. 그렇지만 발전수준의 차이에서 생기는 문제와 국제 협력에 대한 의존성의 본질적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부채 문제 해결, 생필품 가격과 수출 소득의 불안정성 감소, 국제 금융 체제의 부적절성 등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국제협력은 다양한 형태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 국가들에서, 발전권과 관련된 목적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추가 자원의 유입보다는 기존 자원의 효과적 이용이 보다 중요하다. 투명성, 책임성, 형평과 권한강화의 증대로 이어지는 권리에 기반한 접근이 외국 원조의 더 많은 투입 요구를 줄일 수 있다. 국제협력이 바람직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할지라도, 발전권을 이행해야 할 3세계 국가들 자신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인권적 접근에서 국가의 책임은 절대적이다. 국가는 입법을 하고, 적절한 조치를 채택하고, 공공활동을 하고, 풀뿌리 차원의 권한강화를 위한 계획을 공식화해야 한다.

발전권 이행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 의무 또한 절대적이다. 국제협력에는 두 차원이 있다. 하나는 다변적 과정으로 모든 개도국들이 접근할 수 있는 편의를 선진국, 다국적 기구, 국제 제도가 참여하여 제공하는 것이다. 하나는 특수 상황에 적합한 조치를 요구하는 문제를 다루기 위해 쌍무적 편의 또는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조정을 통하는 것이다. 인권의 구조 속에서 이러한 국제협력은 의사결정과 이익의 공유 둘 다에서 투명성과 비차별성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평등하며 참여적이어야 한다.

1. 개발 원조

국제 경제 협력의 방법 중의 하나는 공적 개발 원조(ODA) 또는 대외 원조라는 것이었다. 공적 개발 원조는 시장 보상에 이끌리지 않고, 공공당국의 재량에 따라 주어지고 이용될 수 있다. 많은 개도국들은 사회적 보상이 높다 할지라도, 시장 보상을 산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적 자본을 유인할 수가 없다. 공적 개발 원조는 교육, 건강, 영양 등 사회발전의 지표에서 매우 높은 사회적 보상을 갖는 활동들을 재정지원 할 수 있다. 공적 개발 원조는 또한 위험을 공유하고 합작 또는 보조금을 통한 프로젝트를 통해 사적 자본의 유입을 증가시키는데 이용될 수도 있다.

선진국들의 공적 개발 원조는 목표치인 국민총생산(GNP)의 0.7%에 도달한 적은 결코 없지만, 미국을 제외한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 전체 국가들의 지원 수준은 국민총생산의 0.32~0.33% 정도에 이른다. 미국의 공적 개발 원조는 냉전의 종결과 함께 급격하게 줄었다. 공적 개발 원조는 국제협력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남아 있으며 양이 늘어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단지 도덕적 구속력을 가질 뿐이지만, 국내총생산(GDP)의 0.7%를 대외원조로 제공하기로 한 선진국들의 약속을 이행할 것을 촉구해야 할 것이다.

2. 발전 계약(Development Compacts)

원조국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자원이 효과적으로 쓰이는지에 당연히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받는 쪽의 자발적 동의 없이 조건이 부과된다면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의 정신에 반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조건이 프로그램 이행에 대한 상호 약속에 기반하는 것이라면 발전권 실현을 위한 효과적 도구가 될 수 있다.

“계약”이라는 생각을 처음 제안한 것은 1980년대 말 노르웨이의 외무부 장관 T.스톨텐베르그(T.Stoltenberg)였고, 다른 발전 경제학자들과 인간발전보고서를 통해 다듬어졌다. 발전 계약은 연속된 정책 구상을 따라 개도국들이 수행하기로 되어 있는 프로그램 지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원조국은 원조수령국가의 노력에 부합되는 재정지원과 여타의 정책들로 그 프로그램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것을 분명히 약속한다.

발전 계약에서 명시돼야하는 상호 의무는 세심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세계은행과 IMF의 연구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우에 재정지원 프로그램에 부과된 조건이 작동하지 않은 것은 그 조건이 외부에서 부과된 것이지, 당사국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조건 제한이건 의무건 간에 당사국들이 자신들의 관심사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하고 스스로 대부분을 모니터할 수 있어야 한다. 권리에 기반한 접근에서는 처우의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 점이 특히 중요하다. 발전 계약에서, 개도국들은 인권을 보호하고 실현할 의무를 져야 한다. 이 의무이행을 모니터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방법은 각 국가에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판단하는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하는 것일 수 있다.

발전 계약에는 국제사회의 의무도 또한 설정돼야 한다. 원조국들과 국제기구들은 무역과 금융 접근에 대한 모든 차별적 정책과 장애물 제거를 보장해야 하고 발전권 이행을 위한 추가 비용을 적절히 공유해야 한다.

계약 사상은 국제 협력 중에 한 가지 모델에 지나지 않으며, 계약 사상의 실행가능성과 다른 대안들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B. 발전권 이행 프로그램의 요소들

발전권 실현을 위한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가져야 할 기본 성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a) 발전권의 이행은 발전의 ‘총체적인’ 계획 내지 프로그램으로 봐야 한다. 여기서 일부 또는 대부분의 권리가 실현되는 동시에 어떤 권리도 침해돼서는 안된다. 발전권 실현을 위한 자원 제공을 증가시키고, 발전권 실현을 촉진하는 생산과 분배 구조의 증진이 있는 지속된 경제성장이 있어야 한다.

(b) 어떤 권리의 이행도 고립적으로 행사될 수는 없으며, 타 권리들의 이행을 위한 계획은 시간과 부문간 일관성을 고려하여 구상돼야 한다.

(c) 전체 계획의 이행과 개인의 권리 실현은 인권기준에 따라 수행돼야 한다. 즉, 투명성, 책임성을 가지며 비차별적이고 참여적인 태도로 형평과 정의로 수행돼야 한다. 실제적으로 발전계획은 풀뿌리차원에서 당사자들이 의사결정과 이행에 참여할 뿐 아니라 혜택을 평등하게 공유하는 것으로 형성되고 이행돼야 한다. 즉, 발전계획은 당사자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계획을 포함해야 한다.

(d) 발전권의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의존성은 경제적·정치적·사회적·법적 제도와 규범, 그것이 작동하는 절차로 결정되며, 인간발전과 형평과 정의 속의 기회의 확대는 이들 제도와 규범의 근본적인 변화를 흔히 요구한다. 발전권의 실현은 이러한 제도적 구조의 변화를 포함하며 국가 제도를 뛰어넘어 국제적 제도의 변화를 포함하기도 한다.

(e) 1986년 유엔 발전권 선언에 명시된 것처럼 발전권의 보유자는 개도국 인민들과 개인들인 반면에 의무 수행자는 일차적으로 국가들, 그리고 국제사회, 시민사회의 여타 구성원들이다. 따라서 이들 의무를 수행하기 위한 정책들을 상술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초국적 기업, 원조국 및 기타 정부들, 국제기구로 구성된 국제사회와 당사국들은 이들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인권준칙 속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으로 분명히 확인된 바는 아닐지라도,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의 동기는 가장 불우하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빈곤은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의 형태이며 따라서 형평과 정의에 기초한 인권실현 프로그램이라면 당연히 빈곤을 표적으로 삼게 된다. 빈곤 퇴치를 위한 국제협력에 대한 합의가 더 커진다면, 발전권 실현에 유익할 것이다. 인구 중에 가장 가난한 30-40%의 몫이 증진된다면, 그보다 부유한 인구 부분에 무슨 일이 생기든 적어도 발전의 첫 번째 국면에서는 문제될게 없다. 빈곤퇴치 프로그램이 아닌 시장의 힘에 기반한 경제 정책이 그 나머지들의 복지를 증진할 것이다. 유념해야 할 유일한 문제는 시장의 힘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빈곤의 성격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빈민의 수를 늘리는 경제 및 금융위기의 조건을 만들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빈곤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소득 빈곤으로, 한 국가 국민의 몇 %가 최저 소득(또는 소비) 수준 이하에 속하느냐와 관련된다. 두 번째는 건강, 교육, 주거, 영양 등에 접근성이 증대됨으로써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빈민의 능력과 관련된 것이다. 인권실현의 관점에서 보면, 빈곤의 개념은 단순한 소득 빈곤을 넘어서는 것으로, 인간 존엄성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수준의 박탈을 의미한다. 아마르타 센(Amartya Sen)은 빈곤을 단지 저소득이 아닌 기본 능력의 박탈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능력(capabilities)은 본질적으로 인권과 관련된 것으로, 인간이 가치있게 여기는 존재가 되고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선택과 자유의 확대를 말한다.

앞에서 말한 발전권 이행을 위한 프로그램은 중앙집중식 계획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당사자들의 참여와 권한 강화를 통해 탈중앙화된 의사결정과정에 전적으로 기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발전 계획은 시민사회와 당사자와의 협의 과정을 통해 비차별적이고 투명한 태도로 형성돼야 한다.

빈곤퇴치를 위한 발전 계획은 소득 빈곤만이 아닌 더 넓은 의미의 능력 박탈의 문제를 다뤄야 한다. 여기서 모든 권리들이 총체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당장에 모든 권리가 실현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기본적인 세 가지 권리, 예를 들어 식량권, 건강권, 교육권에 집중하는 것이 실현가능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시민·정치적 권리를 포함하여 여타의 권리가 왜곡되거나 침해돼서는 안된다.

또한 앞서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언급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원의 성장이란 국내총생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발전권 실현을 위한 자원에는 법적, 기술적, 제도적 자원도 포함된다. 자원의 성장 전략은 형평과 인권기준에 대한 존중에 기반해야 한다. [류은숙]

이 논문은 1998년부터 6년여 발전권에 관한 독립전문가로 활동(현재는 인권과 극빈에 관한 독립전문가)한 아르준 센굽타(Arjun Sengupta) 씨가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들에 근거하여 쓴 것이다. 최근 개발과 인권간의 문제, 발전권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인권오름>을 통해 네 차례에 걸쳐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정리하여 소개한다.


< 글 싣는 차례>

(1) 발전권의 이론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3) 발전권의 실천

(4) 이 논문에 대한 비평들

작성일자 : 2007. 3. 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1.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사회권 내지 발전권은 자연권이 아니므로 인권이 아니라는 것이 전통적으로 이들 권리를 반대하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자연권이란 사회적 협력의 산물로서가 아닌 인간에게 내재된 권리로서, 보편적이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갖는 것이다. 이런 인식 체계 속에서 인권은 오직 개인의 권리이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권리들(생명권, 자유, 언론의 자유 등)은 소극적 자유로서 이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법으로 살인 등의 행위를 금지하면 된다. 그러나 사회권은 적극적 자유와 결합되는 것으로서 국가가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이를 보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권이 아니며 인권이 아니다. 발전권은 집단적 권리와 적극적인 경제적 권리와 결부되기 때문에 인권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이런 주장들은 문헌 속에서 상당히 거부돼왔다. 세계인권선언의 많은 요소들은 자연권의 원칙을 넘어서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은 경제·사회적 권리의 요소들을 상당히 가진 국제법의 다원주의적 기초위에 굳게 서있다. 또한 개인의 인격은 본질적으로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 권리를 이행할 의무와 의무의 담지자가 그것을 보장할 것을 규정하기만 한다면, 논리적으로도 집단의 권리가 개인의 인권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라는 근거는 없다. 더욱이 시민·정치적 권리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둘 다가 소극적인(방지) 행위뿐만 아니라 적극적인(증진 또는 보호) 행위를 요구하기 때문에 단지 시민·정치적 권리만 인권이고 경제·사회적 권리와 집단적 권리는 인권이 아니라고 간주하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인권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이행할 의무가 국가에게 있다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와 관계된 인민들이다.

2. 사법심사가능성

발전권에 대한 또다른 비판은 사법심사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즉, 법적으로 이행할 수 없는 권리는 인권으로 간주될 수 없고 기껏해야 사회적 열망이나 목표의 제시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견해에서는 재단을 통해 옷을 얻는 것처럼 권리란 입법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인권과 법적 권리를 혼동하고 있다. 인권은 법에 선행하는 것이고 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존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인권은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권이 입법화된 법적 권리가 되는 것의 유효성을 흐리는 것은 아니다. 인권의 실현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법적 장치를 만들고 채택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행될 수 없으면 인권으로 호소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아주 부적절한 것이다. 법정을 통하기보다는 의무 이행의 대안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유익하고 필수적일 때가 있다.

양대 인권규약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시민·정치적 권리를 존중할 의무에 법적 효력을 부과한다. 더욱이 노동권과 같은 경제·사회적 권리는 이미 국내법으로 보호되고 있고, 국제노동기구(ILO)의 절차로나 국내 법원에서나 사법심사가 가능하다.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는 국제 규약 내지 조약으로 규범화됐고, 상당수 국가들이 비준을 했지만, 발전권 선언의 지위는 국제조약과는 다르며 따라서 법률 체제에서 이행될 수는 없다. 그렇다 할지라도 여전히 발전권을 실현할 국가들(그리고 개인 및 국제사회)의 책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발전권을 실현하겠다는 약속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감시와 감독의 메커니즘이 필수적이다. 이런 메커니즘은 국제조약기구 만큼의 법적 지위는 아닐지라도 사회적 압력, 민주적 설득, 시민사회의 헌신 등을 통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3. 이행 감시

많은 권리들의 문제에서 (법적) 강제가능성보다는 이행가능성이 더 중요한 문제이다. 권리들에 대한 입법을 애쓰기보다는 권리의 실현을 촉진할 수 있는 행동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이럴 경우에 필요한 것은 사법재판소가 아니라 감시 기구나 분쟁 해결기관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민주적 제도, 민간단체, 공공 소송 기관 등은 권리에 기반한 문제들을 다루는 데 아주 효과적일 수 있다.

감시기구 또는 협의 기구를 만드는 것은 국제 사회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국제적 의무의 사법심사가능성은 국내적 의무의 이행과는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 물론 국제재판소를 포함하여 국제중재를 위한 다양한 기구들이 있다. 무역과 금융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와 절차들이 수립돼 있다. 그러나 인권에는 이런 기구들이 유용하지 않다. 인권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에 요구되는 것은 국제기구와 관련 정부들이 함께 모여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공개토론의 장이다. 여론의 민주적 압력을 조건으로 하는 투명한 협의 절차야말로 외부의 어떤 사법부보다도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4. 집단적 권리 대 개인적 권리

발전권에 대한 끈질긴 반대 중에는 집단권에 대한 비판이 있다. 3세계 지도자와 1세계의 비평가들이 발전을 위해 국가들과 민족들의 집단적 권리로서 발전권을 주창했다는 것이다.

집단권을 적절하게 정의하고 그 자체로서 개인권에 적대적인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스러워야 한다. 분명 집단권을 인정하고 그 기반 위에 만들어진 법적·제도적인 협약과 규약들이 있다. ‘유엔 발전권선언’ 자체가 1조에서 집단적인 인민의 권리를 인정했다. 1조에서는 모든 인간과 인민들은 발전권과 자결권을 갖는다고 했고, 여기에는 “천연자원과 부에 관한 완전한 주권을 위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의 행사”가 포함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집단권은 개인의 권리에 적대적이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다. 발전권 선언 2조에서는 “인간은 발전의 중심주체”이며 “발전권의 적극적인 참여자와 수익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3세계의 입장에서 집단권을 가장 분명하게 옹호하는 이들 중 하나인 조지 아비샵(Georges Abi-Saab) 교수는 집단권에 대한 두 가지 가능한 정의를 제시한다. 첫째, 개인들의 총합, 권리들의 총합이라는 이중의 총합으로서의 발전권이다. 둘째, (개인의 인권을 총합하는 과정 없이) 집단권을 집단의 관점에서의 권리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 발전권은 자결권의 경제적 차원 또는 자결권에 필적하는 권리로 고려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정의 모두 개인의 권리 위에 서 있다. 자결권은 분명 국가들에게 “천연 자원과 부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주지만, 이 주권은 모든 개인들을 위해 행사돼야만 한다. 개인권의 경우에는 권리의 소유자가 또한 권리행사의 수익자이다. 자결권 등 집단권의 경우에는 권리 소유자가 국가나 민족처럼 집단적일 수 있으나 그 권리 행사의 수익자는 개인이어야 한다. 물론 특정 개인의 권리가 집단의 권리와 갈등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서로 다른 개인들의 권리 또한 특정 상황에서 갈등할 수 있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투명성 있는 절차를 제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을 이해하려면 개인과 집단권이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경우에 개인의 권리는 집단적 환경 속에서라야 충족될 수 있고, 국가나 민족의 발전권은 개인들의 권리 이행과 발전 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5. 자원의 제약

발전권과 관련된 문제는 재정적, 물리적, 제도적 자원의 문제이다. 시민·정치적 권리는 법으로 즉각 보호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견해가 일찍이 있었다. 반면에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는 자원이 소비되는 장기간의 적극적인 조치가 요구되고, 자원은 언제나 제한돼 있기 때문에 이들 권리의 실현은 당연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제한된 시간 내에 완전히 실현되고 보장될 수 없는 권리는 인권으로 간주될 수가 없다.

권리가 있다는 것은 자원의 가용성 또는 권리의 실현방법에 달린 것이 아니다. 일단 인권으로 인정되면, 그들 권리는 당사국의 객관적 조건에 따라 실현의 방도를 결정하기 위한 지표가 돼야 한다.

국제인권규범들은 자원의 제약성이 중요한 문제임을 인정하고 있다. 사회권규약과 발전권 선언에서는 “가용자원의 최대한도까지”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점진적으로 성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점진적”의 의미는 정부들이 권리의 실현 보장을 위한 노력을 막연히 무기한으로 미루어도 된다는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모든 국가는 즉각적으로 조치를 취할 의무를 갖는다. 점진적 실현의 의무는 자원을 증가시키는 노력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인정된 권리가 실현되기에 필수적인 사회적 자원의 발전을 통해 효과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점진적 성취의 의무는 자원의 증가와는 무관하게 존재하며 가용자원의 효과적 이용을 필요로 한다. 여기서 가용자원이란 한 국가 내의 자원만이 아니라 국제협력과 지원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가용할 수 있는 자원 모두를 의미한다. 권리의 실현을 위해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는가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가용자원에 대한 평등하고 효과적인 이용과 접근에 유념해야 한다.

이 모든 접근법이 기반하고 있는 것은 모든 국가들이 의무 이행을 위해 “최상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국제인권조약 감시기구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러한 최상의 노력이 기울여졌느냐에 관한 검토와 의견표명이다. 많은 자원의 지출 없이도 즉각적으로 취해질 수 있는 조치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용가능한 서비스에 대한 차별 금지와 입법조치를 예로 들 수 있다.

자원의 지출을 필요로 하는 권리들의 실현에 있어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우선순위’의 문제이다. 우선순위의 문제는 할당제로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거나 취해야 할 조치를 회피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돼선 안된다. 이들 권리의 실현에 요구되는 대부분의 활동은 많은 재정적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재정적 또는 물리적 기반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의지에 달려있는 행정적·조직적 자원의 투입을 더욱 필요로 한다. 따라서 많은 국가들에서 자원의 제약은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기존 자원을 더 나은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자원의 공급을 늘리는 것보다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원의 제약성은 국가마다 다르다. 인권규범에서 주장되는 대로 모든 권리가 동등한 가치와 중요성을 갖는 것이라면, 국가마다 다른 자원의 제약성의 성격이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가장 구속력 있는 의무이고 최소의 지출이 요구되는 그런 권리들이 먼저 실현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의 궁극적 목적인 사회변화를 초래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예를 들어 빈곤 아동에게 초등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외딴 촌락에 사는 아동이건 도시 지역에 사는 아동이건 간에 똑같이 중요한 문제이지만, 도로와 교통시설이 제한된 국가에서는 외딴 지역의 아동이 무시될 수 있다. 전국의 빈곤 가정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에 동등한 가치가 부여된다할지라도, 사회개혁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않는다면 시골지역의 여자아이는 계속적으로 굶주릴 수 있다. 발전에 대한 인권적 접근은 권리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 뒤편에 쳐져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집중해야 하고, 그들 편에서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한다.

자원의 제약성이 심각한 경우에는 권리 간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우선순위를 둔다고 해서 모든 인권의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및 상호연관성의 원칙을 거스를 필요는 없다. 다른 어떤 권리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특정 권리가 침해될 수는 없다. 권리간의 거래는 있을 수 없고, 어떤 권리에 대한 침해도 다른 권리 실현이 증진된 것으로 보상될 수는 없다.

모든 권리가 점진적으로 실현되는 과정으로 발전권을 이해할 때, ‘우선순위’가 의미하는 바는 어떤 권리도 침해하거나 후퇴시키지 않으면서 일부 권리가 다른 권리보다 더 일찍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인 우선성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의 문제에 대해 헨리 슈(Henry Shue)는 “기본적” 권리를 얘기했다. “기본적” 권리란 그 권리의 향유가 모든 다른 권리의 향유에 필수적인 권리를 말한다. 따라서 어떤 권리가 진정으로 기본적 권리라면, 그 권리를 희생함으로써 다른 어떤 권리를 누리겠다는 시도는 그야말로 자멸적인 논리다.

이에 대해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최소한의 핵심의무”를 언급했다. “최소한의 핵심의무”란 각 권리의 최소한의 필수적 수준의 충족을 보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수적인 식량, 필수적인 기초 의료, 기본적인 주거,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교육을 박탈당한 사람의 숫자가 상당한 국가는 사회권 규약의 의무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원의 제약이 무엇이건 간에, 이들 최소 의무는 충족돼야 한다. “최소한의 핵심 의무” 또는 “기본적 권리”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권의 구조 속에서의 공적 토론을 통해서이다. 참여적인 협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공공의 선택에 기반해야 한다.

6. 권리의 상호의존성과 발전의 과정

발전권은 포괄적인 권리 또는 일련의 권리의 총합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에 대한 권리이다. 개인들이 자신들의 복지를 증진시키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자유를 확대하는 과정이다. 과정은 다양한 요소들의 상호의존성을 포함한다.

발전권에서 ‘과정’과 ‘과정의 결과’ 둘 다가 인권이지만 과정이 그 결과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과정은 과정의 결과물과 구분돼야 한다. 비록 결과로서 권리들이 충분히 실현될 수 없거나 혹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만 실현될 수 있다 할지라도, 그 과정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높은 개연성이 있고, 권리로서의 과정을 요구하는 것이 주어진 상황에서 최상의 선택일 수 있다면 과정은 수립될 수 있고 즉각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과정에 대한 권리로서의 발전권은 모든 권리들의 매개체로 묘사할 수 있다. 발전권 자체가 인권인 것처럼 발전권의 각 요소는 인권이다. 이들 권리들은 인권 기준을 따라 이행돼야 한다. 이 모든 요소는 특정 시점에서나 일정 시간이 경과해서나 상호의존적이다. 예를 들어 건강권의 실현은 현재와 미래 모두에서 식량권이나 주거권, 개인의 안전, 정보의 자유 실현 수준에 달려있다.

모든 인권은 침해할 수 없고 그 어느 것도 다른 권리보다 우월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한 권리의 증진이 다른 권리의 악화를 상쇄시킬 수는 없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시민·정치적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증진할 수 있고, 기본적인 인권기준을 구성하는 평등, 비차별, 참여, 책임성과 투명성의 원칙을 존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권기준을 존중하는 가운데 수행된 프로그램이어야 발전권의 주창 목적으로서의 발전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자원의 제약이 심각한 상황일 때 위에서 말한 조건은 엄격한 것일 수 있다. 현실적으로 어떤 권리도 침해하지 않고 권리를 충족시킨다는 것이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이익이 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재화와 서비스의 제공을 희생시킨다면 적어도 당분간은 일정 권리의 향유를 악화시킬 수 있다. 부정적 효과를 중화시킬 수 있는 보충적인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이익이 되는 프로젝트라는 것이 발전권을 침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들과 그보다 더 많은 상당수 사람들의 이익을 비교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인간 사이에서 이익을 비교하는 것은 절대 안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들이 충분히 보상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고, 보상은 그러한 보상이 있은 후에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된 것으로 더 이상 간주하지 않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보상은 꼭 금전일 필요는 없으며 특별한 프로그램의 채택을 포함할 수 있다. 보상의 결정과 분쟁의 해결을 위해서는 프로그램 집행 전에 관련 당사자들의 감수성을 충분히 존중하는 속에서 적절하고, 투명하며, 합의적인 제도가 있어야 한다. 즉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잘 수립된 참여적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7. 과정으로서의 발전권의 부가가치

이미 경제·사회적 권리 등으로 인정되고 있는 권리를 새삼 발전권으로 제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가가치가 있는가? 발전권을 과정으로서 바라볼 때 분명한 부가가치가 있다. 각 권리를 단지 개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효과가 특정 시점에서나 시간이 경과된 후에나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함께 실현하는 것이다. 발전권의 실현에 증진이 있었다는 것은 다른 어떤 권리를 침해하거나 악화시키지 않고 어떤 권리가 증진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모든 권리의 실현은 모든 자원을 사용하는 포괄적인 발전 프로그램에 기반하는 것이므로, 국내총생산(GDP)만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평등한 기술과 제도의 성장을 발전권의 일환으로 계획하고 이행해야 한다. 이러한 자원들의 성장은 불평등의 감소 또는 평등을 보장하는 속에서 인권의 기준을 따라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발전 프로그램 속에서의 발전권은 경제의 생산과 분배 구조에서의 변화를 포함하는 것이며, 시장 메커니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국제협력을 필요로 한다.

발전의 과정은 단계적인 목표의 실현을 장기간 지속성을 갖고 유지하는 프로그램 또는 정책 계획들로 구성된다. 이 과정에 대한 권리는 그 과정의 결과물에 대한 권리와는 다르다. 하지만 결과로서 나타날 모든 권리 실현에 높은 개연성을 주는 것은 과정이다. 따라서 과정 에 대한 권리로서의 발전권은 권리에 대한 권리라 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에 인권으로서 인정된 모든 권리를 실현하는 것의 유효성과 성취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합의도 없다 할지라도, 이들 권리의 실현을 가져올 수 있는 개연성 높은 발전과정으로서 발전권을 이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합의할 수 있다. [류은숙]

이 논문은 1998년부터 6년여 발전권에 관한 독립전문가로 활동(현재는 인권과 극빈에 관한 독립전문가)한 아르준 센굽타(Arjun Sengupta) 씨가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들에 근거하여 쓴 것이다. 최근 개발과 인권간의 문제, 발전권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인권오름>을 통해 네 차례에 걸쳐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정리하여 소개한다.


< 글 싣는 차례>

(1) 발전권의 이론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3) 발전권의 실천

(4) 이 논문에 대한 비평들

작성일자 : 2007. 3. 7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이 논문은 1998년부터 6년여 발전권에 관한 독립전문가로 활동(현재는 인권과 극빈에 관한 독립전문가)한 아르준 센굽타(Arjun Sengupta) 씨가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들에 근거하여 쓴 것이다. 최근 개발과 인권간의 문제, 발전권의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인권오름>을 통해 네 차례에 걸쳐 이 논문의 주요 내용을 발췌·정리하여 소개한다.


< 글 싣는 차례>

(1) 발전권의 이론

(2)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3) 발전권의 실천

(4) 이 논문에 대한 비평들

(1) 발전권의 이론

1. 인권으로서의 발전권

발전권이 인권으로 여겨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발전권을 인권으로 인정하느냐(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와 발전권과 관련된 의무를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를 구분해야 한다. 법실증주의 전통에서 인권이란 한 사회가 스스로의 권위로 자신에게 부여한 권리이다. 어떤 외적인 권위에 의해 부여되거나 자연적인 또는 신적인 원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권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사회의 개념에 따라 한 사회 속에서 법을 만드는 권위에 의해 인정됐기 때문에 인권인 것이다. 일단 규범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받아들여지면 이들 권리는 사회에 구속력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의 주장을 국가에 의해 통치되는 사회들과 국제 사회에도 할 수 있다. 유엔은 이런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 기여할 수 있다. 국제조약을 채택하고, 국가들이 그것에 서명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그것을 비준한 국가들에게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의무를 지우는 등으로 특정한 인권의 의미는 점차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요구한다. 인권운동의 초기 역사에서는 권리에 부응하는 의무가 너무 경직되게 이해됐다. ‘완전한 의무’라 일컬어진 이 관계에서는 실현가능할 경우에만 권리가 권리로서 수용가능한 것이 될 수 있고, 의무자가 의무를 수행할 것으로 증명된 방법이 있는 경우에만 권리는 의무와 관계 맺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경직된 권리관은 권리-의무관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이해에 굴복하게 됐다. ‘불완전 의무’로 일컬어지는 견해에서는 ‘인권에 대한 요구는 (인권의 실현을) 도울 수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 실현의 의무가) 제기되는 것’이고, 그래서 권리는 타인, 국가 또는 국제사회 등 그 권리의 이행에 기여할 수 있는 행위자들의 ‘규범’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떤 요구가 권리로서 인정되려면 그 권리를 실현할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사회적 목표이거나 ‘선언된 권리’ 또는 ‘추상적 권리’에 머물 수 있다. ‘불완전 의무’의 세계 속에서도 여전히 권리의 실현가능성은 구성되어야 한다. ‘원칙적으로 유효한 권리’가 재판할 수 있는 ‘법적’ 권리로 전환되는 입법이 그런 절차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이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다양한 의무자를 구속하는 합의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은 많다.

인권은 모든 국가, 시민사회, 국제사회가 성취해야 할 보편적 기준과 규범을 설정한다. 그리고 그런 권리들을 성취할 수 있기 위한 불가침의 의무를 이들 모두에게 부과한다. 발전권을 인권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적용성과 불가침성을 가진 권리의 지위를 제기하는 것이다. 또한 발전권의 실현을 위해 국가적 및 국제적 자원과 능력을 최우선 순위로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사회기관, 국가, 국제사회에 발전권을 실현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2. 발전권의 내용

발전권은 발전의 과정을 언급한다. 발전의 과정은 인권의 실현으로 귀결돼야 하고, ‘권리에 기반한 접근’의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권리에 기반한 접근’이란 국제인권기준을 준수하는 것으로 참여적이며, 비차별적이고, 책임성이 있으며, 의사결정과 발전과정의 열매를 공유하는 데 있어 평등한 투명한 과정이다.

발전의 목표는 의무자가 보호하고 증진해야 하는 권리소유자의 요구 또는 권리의 시각에서 표현돼야 한다. 유엔 발전권 선언은 발전권 실현의 일차적 책임이 국가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발전권을 유효하고 구체적인 권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권리들이 적절한 사회 제도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의무 수행 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

발전권의 내용은 유엔 발전권 선언에 근거하여 분석할 수 있다. 선언 1조는 “발전권은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기에 모든 인간과 민족들은 경제, 사회, 문화, 정치적 발전에 참여하고 이에 기여하며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그 속에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다.”

여기서 세 가지 원칙이 나온다. 첫째는 불가양성이다. 발전권은 빼앗기거나 협상될 수 없다. 둘째는 발전의 과정을 인권의 실현과정으로 정의한다. 셋째는 발전과정에 ‘참여하고 기여하며 향유할 수 있는’ 권리의 용어로써 발전과정을 정의한다. 이런 권리를 의무자는 보호하고 증진해야만 한다.

선언의 전문에 있는 발전에 대한 정의는 “포괄적인 경제·사회·문화·정치 과정으로서, 발전과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있어서 자유롭고 적극적이며 의미 있는 참여의 기초 위에서 전 인구와 모든 개인에 대한 복지의 부단한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선언 2조 3항에 따르면 국가는 위에서 말한 발전과정을 목표로 국가발전정책을 공식화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선언 8조는 이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기본적 자원, 교육, 보건 서비스, 식량, 주거, 고용 그리고 소득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모든 사람의 기회의 균등”을 보장해야하고 “여성이 발전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하도록 보장하는” 효과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또한 “모든 사회적 부정의를 근절하기 위한 적절한 경제·사회적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

3. 발전의 ‘과정’에 대한 권리로서의 발전권

발전에는 다양한 경로가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나는 발전, 소득분배 없는 산업화, 소규모나 비공식 부문이 주변화되는 발전 등. 관습적인 의미에서는 이 모든 것이 발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발전은 평등한 기회가 제공되는 과정이 동반되지 않는 한 인권적인 발전의 과정으로 간주될 수 없다.

부와 경제력의 집중으로 불평등이 증가하는 경제성장, 사회발전의 지표나 교육, 보건, 성별균형에서 어떤 개선도 없는 경제성장, 인권기준을 존중하는 환경 보호가 없는 경제성장,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정치적 권리의 침해와 결합된 경제성장은 인권적인 발전을 실현할 수 없다.

물질적 상품 생산과 시장에서 잘 팔리는 서비스의 성장에 여념이 없는 경제 발전에 대한 통상적인 접근법과 발전권의 접근은 상당히 다르다. 발전권은 형평과 정의의 과정을 의미한다. 발전권 선언을 논의하고 채택하는 과정에서 발전권의 지지자들이 요구한 것은 형평과 정의에 기초한 경제적 및 사회적 질서였다. 세계 경제에서 ‘가진 것 없는 나라들’은 부유한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의사결정의 권리와 이익의 분배 둘 다를 평등하게 공유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국가 경제 내에서도 인권으로서의 발전은 형평성에 굳게 뿌리박아야 한다. 발전권이 인권이라는 요구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발전 과정에 대한 요구이다.

발전권에 따르면 형평과 정의에 대한 고려가 발전의 전체 구조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빈곤은 빈민의 권한을 강화하고 극빈지역을 개선함으로써 감소될 수 있다. 이런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발전정책을 통해 생산구조가 조정돼야 한다. 정책의 목표는 전반적인 생산의 성장 등 여타 목적들에 최소한의 영향을 끼치면서 이 일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만약 가능해보이는 최대치보다 성장 수준이 낮을 것 같다면, 형평성에 대한 배려를 위해 이를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발전과정은 참여적이어야 한다. (발전권의) 수혜자들이 충분히 참여하는 속에서 결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수준의 복지를 누릴 수 있으려면 구호품이나 보조금을 통한 단순한 소득의 이전은 옳은 정책이 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일할 기회를 제공받거나 자영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며, 이것은 시장의 힘에 단순 의존함으로써 보장될 수 없는 활동들을 요구한다.

발전이 단지 소득의 증가만이 아니라 교육, 보건, 사회적 발전과 인간발전의 확산이라는 주장은 국민총소득(GNP)을 최대화하려는 원칙들에 설득되었다. 1인당 생산의 증가가 인간에게 자기 환경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주며 그럼으로써 인간의 자유가 증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철저히 규명하지 못했다. 기회의 ‘형평’을 보장하기 위한 진지한 행동과 결합되지 않고서는 국민총소득이 성장한다고 해서 ‘모든 개인들’이 자신들의 환경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 채택된 구체적인 정책들이 없고서는 자유가 국민총소득과 함께 자동적으로 증가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발전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틀이 또한 인간발전접근법에 도입됐다. 아마르티야 센(Amartya Sen)은 발전과정을 “실체적 자유의 확대와 동등시되는 복지의 확대”이자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삶의 유형을 이끌 수 있는 능력(capabilities) 또는 소중히 여길 이유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의 확대”로 정의했다. 이런 능력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자유야말로 발전의 ‘구조적 역할’이자 ‘수단적 역할’ 속에서의 발전의 ‘일차적 목적’이자 ‘원칙적 수단’이다. 여기서 “능력”이라 불리는 것은 좋은 건강상태에 있는 것, 교육받는 것,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것, 자유롭게 말하는 것, 자유롭게 결사하는 것 등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하거나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발전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유형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 또는 실체적 자유의 확대가 된다. 발전에서의 이런 능력은 그 능력들을 더욱 확대시키기 위한 도구가 된다. 예를 들어 교육받고 건강하면 사람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시민·정치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인민의 자유로운 기관은 이런 과정에 필수적이다.

발전권은 인간발전 개념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인간발전에 대한 권리로 규정할 수 있다. 인간발전이란 실체적인 자유를 확대하고 그럼으로써 모든 인권을 실현하는 발전과정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인간발전이 인권으로 주장되면 이것은 질적으로 다른 접근이 된다. 이것은 단지 발전의 목표를 성취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목적이 성취되는 과정에 필수적으로 성취돼야하는 방식인 것이다. 목적이 인권을 실현하는 것이자 이를 실현하는 과정 또한 인권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은 모든 인권의 특질을 가져야 한다. 즉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 형평과 참여의 개념을 존중하는 것이다.

발전권의 실현은 인간발전의 증진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제시하는 인간발전지표같은 것들은 대개 국내총생산(GDP)과 기대수명, 문해력, 학령기 등의 보건·교육 지표들을 조합한다. 그러나 이런 지표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런 지표들이 어떤 방식으로 증진됐는지, 또는 인권을 실현한 것인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전통적으로 그 결과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 다양한 사회 정책들의 결과물에 초점을 뒀다. ‘인권적 사고’는 이러한 산출의 성격에 대해서 뿐 아니라 그것이 나오게 된 방법에 대해서도 유념한다. 이런 점에서 발전권의 접근은 인간발전에 대한 접근을 그 안에 포함하는 것이다. 발전권은 인간발전의 과정을 인권의 기준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류은숙]

이후 이어질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 발전권을 둘러싼 논쟁들>

자연권으로서의 인권

재판가능성

이행 감시


집단권 대 개인권

자원의 제약

권리의 상호의존성과 발전의 과정

과정으로서의 발전권의 부가가치


<발전권의 실천>

발전 원조

발전 계약

실례가 되는 프로그램 요소

경제 성장의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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