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43 호 [기사입력] 2007년 02월 2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물가는 뛰고 벌이는 신통치 않거나 아예 없다. 이럴 때 절실한 것이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일텐데, ‘그림의 떡’으로 여겨지거나 먹어도 배고픔이 가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권리일 수 있을까?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우리 사회는 많이 갈구하는 듯하면서도 그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사회보장에 대한 2001년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의안이다. 문서의 제목은 ‘사회보장: 새로운 합의’라고 되어있다.
국제인권준칙 중에서 대표적으로 세계인권선언 22조는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했고, 25조에서는 사회보장의 여러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이어받은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 9조는 “모든 사람이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표적인 이 문서들에는 사회보장에 대한 정의가 없고 사회보장의 구체적 내용은 몇 가지 예시에 머물러 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회보장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사회보장 관련 원칙들을 보는 것이다. 여러 국제 전문기구들 가운데서도 국제노동기구는 1919년 창설 이래로 사회보장을 그 핵심 수임사항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을 통해 국제노동기구는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할 필요성을 천명했고, 사회보장에 대한 일련의 조약과 권고들(2006년 현재까지 31개 조약과 23개 권고)을 발전시켰다.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을 담당하는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사회보장권의 구체적 내용을 국제노동기구 관련 규정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 규정은 일반적으로 고용과 연관된 사회보장이다. 즉, 노동자의 소득과 상황에 기반한 것으로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권리 또는 적절한 자원이 없는 사람 누구나가 ‘필요’에 기반하여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보다는 좁은 의미이다. 물론 필라델피아 선언이나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 관련 결의안에서는 “사회보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과 포괄적인 의료보호를 제공할 것”을 거듭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안점은 고용과 연관된 사회보장이다.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 관련 기준을 볼 때는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제노동기구보다 광의의 개념의 사회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유럽사회헌장에 따른 국가의 의무는 사회보장 제도를 설립하고 유지할 의무(12조 1항)이다. 유럽사회권위원회에 따르면 사회보장체제에 상당한 격차가 있거나 급여수준이 낮다면 12조 1항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된다. 즉 사회보장제도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으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엔 또는 국제노동기구의 회원국들은 국제노동기구 헌장과 세계인권선언, 그리고 여타의 국제인권조약을 수용함으로써 일정 수준의 사회보장을 자국의 모든 시민에게 제공할 의무를 갖는다. 그렇지만 이런 국제기준들은 회원국이 추구해야 할 실제적인 보장의 수준이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회원국들에 재량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오늘 읽어볼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에 대한 결의안에서도 마찬가지로 회원국들에 재량의 여지를 남긴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회보장에 관한 지도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 적용범위는 보편적이어야 하고, 급부(benefits)는 충분해야 한다.
- 국가는 급부가 제때 정당한 권리로서 제공될 것을 보증하고 충실한 거버넌스 구조를 보 장해야 할 궁극적이고 일반적인 책임을 진다.
- 사회보장은 사회적 연대에 기초하여 조직돼야 한다. 특히 남성과 여성간의 연대, 다양한 세대 간의 연대, 취업자와 실직자 간의 연대, 부자와 빈민 간의 연대에 기초해야 한다.
- 사회보장 체제는 지속가능해야 한다.
- 일국 및 국제적 수준 모두에서 법의 지배가 보편화돼야 한다.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의 의미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라고 할 때 그것은 이전 시대의 구빈이나 자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빈 차원의 사회부조에서는 수급자의 권리를 부인하고, 베풀어준다는 은혜성과 그에 따른 굴욕적 조건을 달았다면 권리로서의 사회보장은 다르다. 개인의 잘잘못이 아니라 이 체제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세계인권선언 22조에서의 표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생활 곤궁이나 불능 상태를 전제로 사회보장의 권리가 인권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 권리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기 때문에 수급자의 기여에 의존하지 않고 전적으로 국가의 공적 부담에 의해 이뤄지는 게 그 성질상 당연하다. 그리고 권리이기 때문에 구빈의 차원을 벗어나 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고, 사회는 자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험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는 ‘인간 존엄성’과 ‘인간의 자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시혜를 이유로 여타 인권에 대한 국가 개입을 마음대로 강화하게 한다든가, 자유와 교환하자는 식으로 여겨져선 안된다.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이행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활동할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의의 원칙에 부합돼야 하며, 국가의 적극적 활동이 여타의 기본권 침해를 합리화할 근거는 될 수 없다. 사회보장의 이행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국가 개입의 강화가 여타 인권의 침해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방패막이는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 자유의 강화이다.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서로 연대해야 한다. ‘사회권’에서 ‘사회적’(social)의 어원인 ‘socialis’는 ‘결연’했다는 뜻으로 사회 속의 모든 시민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연대라 할 때 ‘연대’의 어원인 ‘in solidum’은 채무자의 연대책임을 말하는 것으로 ‘전체로부터 부분을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채무자 각자가 전체로서 빚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훗날 공동체 관계, 상호의존과 부조, 구제와 지원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게 됐다.
인간은 사회 속에 존재하므로, 인간의 상호의존성과 연대는 인간의 동의에 선행하며 인간의 의사에 우선하는 자연적 사실이다. 인간이 이러한 인간의 결사로부터 물질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사실’로서의 연대라 말할 수 있다.
이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 대해서 채무자라는 것이다. 각자의 능력과 활동의 자유로운 발전은 동시대의 다른 인간들의 능력 및 활동의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의 발전단계는 과거 인간의 능력과 활동의 축적된 노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사회에 대해 지는 채무로부터 ‘의무’로서의 연대 개념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이나 교육을 통해 과거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향유하면서 사회에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는 사람이 있는 한편 상속재산도 교육도 자본도 없어서 더 적게 받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사회적 ‘정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와 정의를 권리로 표현한 것이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회적 연대를 이해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강조하는 해석에서부터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까지 다양한 입장들 사이의 충돌이 존재하고 있다.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사회보장은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류은숙] <2007년 02월 28일 인권오름 제43호>
사회보장: 새로운 합의(ILO. Social Security: A New consensus, 2001) … |
인권오름 제 43 호 [기사입력] 2007년 02월 2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