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08. 8 25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제9조

어느 누구도 자의적인 체포, 구금 또는 추방을 당하지 아니한다.

제10조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형사상의 혐의를 결정함에 있어서, 독립적이고 편견 없는 법정에서 공정하고도 공개적인 심문을 전적으로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11조

1. 형사범죄로 소추당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변호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장치를 갖춘 공개된 재판에서 법률에 따라 유죄로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행위시의 국내법 또는 국제법상으로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유죄로 되지 아니한다. 또한 범죄가 행하여진 때에 적용될 수 있는 형벌보다 무거운 형벌이 부과되지 아니한다.

선언의 9-11조를 짧게 말하면, ‘제멋대로 잡아 가두거나 쫓아낼 수 없다’, ‘재판은 공정하게’, ‘잡혀도 반드시 유죄라고 볼 수 없다’이다. 이들 권리는 인권의 역사 중에서도 그 역사가 깊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구금, 즉 자유로운 인간이 '갇힌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인권침해이다. 인신의 자유는 근대국가의 인권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속하는 자유이다. 아무런 또는 적절한 설명 없이 사람을 잡아넣을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모든 자유가 침해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인권 사상의 기초를 제공하는 문서들에서 9-11조의 뿌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마그나카르타에서 프랑스 인권 선언까지

다른 나라에서의 근대 '인권선언'에 해당하는 것이 영국에는 없다. 하지만 1215년의 마그나카르타, 1628년 권리청원, 1679년 헤이비어스 코퍼스(인신보호법), 1689년의 권리장전 등이 실질적으로 일종의 인권선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들 문서는 '일반적인 원리'로서의 인권을 선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의 법률과 관습에 의해 승인받고 있는 신민의 권리와 자유를 국왕이 침해했다는 고충의 토로이다. 지배자와 귀족간에 합의하여 명시된 특권을 보호한다는 협정의 형식이었고, 이들 문서에서 말하는 ‘자유민’의 개념은 귀족, 왕국의 봉신들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이러한 영국의 권리선언에는 ‘절대적인’ 이른바 ‘기본적 인권’은 없지만 ‘각별히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몇가지 권리가 있는데 개인의 안전과 자유가 여기 포함된다.

개인의 안전이란 ‘생명, 사지, 신체, 건강 및 명예를 향유하는 것’이다. 법은 생명과 사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함부로 사형을 과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란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않는다면 구금 또는 억제, 강제이동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 표는 마그나카르타에서 권리장전까지 등장하는 관련 조항을 정리한 것이다.

마그나카르타〜권리장전

· 형벌비례의 보장 및 형벌의 내재적 한계
“경범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의 경미함을 고려해 벌금을 과하고, 중범죄를 범할 때에는 그 죄의 막중함을 고려해 벌금을 과한다. 생계유지에 필요한 재산은 벌금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마그나카르타 20조-여기서 ‘00조’는 훗날 편의를 위해 붙인 것이다.)
· 사법권의 독립
“민사소송은 짐의 궁정에 따라 이동됨이 없이, 일정한 장소에서 열린다”(마그나카르타 17조)
· 증거재판주의
“사건에 관한 신뢰할 만한 증인 없이, 진술만을 근거로 재판을 할 수 없다”(마그나카르타 38조)
· 적법절차의 권리 보장
“자유인은 동료들의 적법한 판결에 의하거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금되지 않으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않고, 추방되지 않으며, 또한 기타 방법으로 침해되지 않는다”(마그나카르타 39조, 권리청원 3조)
·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정의와 재판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지 않는다”(마그나카르타 40조)
· 권리구제 및 그 절차의 보장
“적법한 판결없이 토지, 성, 자유, 또는 권리가 짐에 의해 탈취된 경우에는 이를 즉시 그 자에게 반환한다”(마그나카르타 52조, 61조)
· 변론권(소명권)의 보장
“신분이나 지위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도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답변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됨 없이, 토지 혹은 소유지에서 추방되거나 체포, 구금되지 않으며, 상속권이 부인되거나 살해되지 않는다”(권리청원 4조)
·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생명권 및 신체의 권리 침해’ 제한
“어느 누구도 대헌장과 국법의 규정에 반하여 생명이나 지체를 재판에 의해 박탈당하지 않는다”(권리청원 7조)
· 죄형법정주의 및 소송권의 보장
“어떤 종류의 범법자에게도 폐하의 왕국법률에 따라 적용되어야 할 소송절차에서 제외되지 않으며, 폐하의 왕국법률에 따라 과해야 할 형벌이외의 것을 받지 않도록 되었다”(권리청원 7조)
“나라의 법률에 따라 재판받고 처형될지언정, 다른 규정에 따라 재판되고 처형되어서는 안된다”(권리청원 8조)
· 보석권의 보장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모든 자들에게 신속한 구제를 주기 위해...다음과 같이 정한다...수감된 자를 위한 인신보호영장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건...관리에게 제시되고 송달되어...영장송달 후 3일 이내에 동 영장에 대하여 답변을 해야 하며, 구속된 당사자의 신병을 동영장이 명하는 바에 따라...재판관 앞에 송치하여...구금한 진정한 이유를 명시해야 한다.”(인신보호법 2조)
“지정기간 내 답변할 것을 태만하거나 거부하고, 수감자의 신병연행을 태만하거나 거부한 경우...벌금을 수감자에게 몰수당하여, 관직에 재임하여 직무를 수행할 자격을 상실하도록 한다”(인신보호법 5조)
“개정 시기의 최초 1주간 혹은 순회재판이나 일반수감자석방순회재판의 개정기 최초일에 공개법정에서 심리받기를 탄원 혹은 청원했음에도...소추되지 않은 경우에는...재판관이 수감자를 보석하는 것이 적법”(인신보호법 7조)
· 일사부재리의 원칙
“동일한 범죄혐의로 반복 수감되어 불공정한 고통이 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인신보호영장에 의해서 해금되거나 자유롭게 된 자는 그 이후 어떠한 자에 의해서도 동일한 범죄혐의로 재감금되거나 재수감되지 않는다”(인신보호법 제6조)
· 소급적용의 금지
“본법에 상응되는 규정이 있을지라도 1679년 6월 1일(인신보호법 제정일) 이전에 집행된 감금이나 또는 그러한 감금과 관련하여 조언을 받고 초래된 일에 대해 효력이 미치는 것으로 간주, 해석 또는 양해될 수 없다.”(인신보호법 제15조)
· 공소시효의 부과
“피해자가 수감되어 있지 않은 경우 범죄가 있는 때부터 2년 이내에, 피해자가 수감중이면 수감자의 사망이나 석방 중 빠른 것에서부터 2년 이내, 가해자가 소추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로 인해 소추되거나 고통받거나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인신보호법 17조)
· 무죄추정의 원칙
“유죄의 판결이 있기전에 그 자에게 과해질 벌금 혹은 몰수에 관해서 권리를 주거나 약속을 하는 것은 모두 위법이며 무효이다”(권리장전)



근대인권선언의 선두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의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영국의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모방한 것이지만, 여기서 권리를 다루는 방식은 영국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특정한 제 권리를 ‘모든 인간’이 타고났고, 그 제 권리가 정치조직의 기초를 이룬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내재된 타고난 권리란 “재산을 획득하고 소유”하며 “행복, 안전을 추구”할 권리다. 같은 해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서도 폭정에 대한 자기 방어의 권리를 원초적인 “자연”계약으로부터 도출했고, 모국인 영국에 맞선 전쟁을 “자연적 정의”의 방패아래 두었다. 이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권리의 향유를 부인하는 정부를 ‘내쫓을 권리’도 있다.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그 목적에서나 효과에서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섰다. 1789년 선언의 체계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권을 가지며 그 권리는 사회 상태에서도 계속 유지된다는 선언이다. 둘째, 이 자연권을 보전하려는 목적을 위해 정치적 결사(국가)의 형성이 승인된다. 셋째, 국가에 의한 자연권의 보전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국민주권·권력분립의 원칙과 주권자 국민의 구성원인 시민의 여러 권리가 선언된다.

이들 근대의 인권선언에서 9-11조의 기초가 되는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
8. 사형 또는 모든 형사 소송의 경우 당사자는 그 고발의 이유와 성격에 관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 고발자와 증인을 대면할 권리,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시할 권리, 공정 무사한 동네 배심원에 의한 신속한 재판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 배심원들의 만장일치의 결의 없이는 유죄가 되지 않는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 제시를 강요당하지 아니하며, 어떤 개인도 국법 또는 동료들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는 그의 자유가 박탈되지 아니한다.
9. 과도한 보석 요청은 없어야 하며, 이와 함께 과도한 벌금의 부과 또는 상도에 어긋난 형벌이 있어서도 안 된다.
10. 관리 또는 집달리(執達吏)로 하여금 범행 사실에 대한 증거 없이 의혹이 가는 장소를 수색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름이 명시되지도 않고 또 범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나 증거의 뒷받침도 없이 어떤 개인이나 다수의 사람을 체포하게 할 우려가 있는 일반 구속 영장은 국민들의 원망을 살 억압적인 것이므로 결코 발급되어서는 안 된다.
11. 재산에 관련된 분쟁이나 개인 대 개인의 송사에 있어서는 고대의 배심 재판 제도가 다른 제도들보다 더 바람직하며, 따라서 신성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1789)
제7조. 누구도 법이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또 법이 규정한 형식에 의하지 않고서는 고소,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없다. 자의적인 명령들을 간청, 발령, 집행하거나 또는 집행시키는 자들은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에 의해 소환되거나 체포된 시민은 모두 즉시 복종해야 한다. 그것에 저항하는 자는 유죄가 된다.
제8조. 법은 엄격하고 명백하게 필요한 형벌만을 규정해야 하며, 누구도 범법 행위 이전에 제정, 공포되고 또 합법적으로 적용된 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처벌될 수 없다.
제9조. 모든 사람은 유죄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므로, 그를 체포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의 신체를 확보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모든 가혹행위는 법에 의해 엄격하게 억제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과 그 이후

선언의 문구는 짧고 모호하다. 선언의 양식에 관해 토론한 결과가 “간략하고 단순한 일반원칙의 천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요소들은 선언에서 빠졌고 미래의 조약들의 과제로 남겼다. 따라서 선언 이후 등장한 인권문서들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표 참조)

 

세계인권선언 9조의 상세화
모든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누구든지 자의적으로 체포되거나 또는 억류되지 아니한다. 어느 누구도 법률로 정한 이유 및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그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9조 1항)

모든 개인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사전에 법률로 규정된 이유와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특히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체포되거나 구금당하지 아니한다.(아프리카 헌장 6조)

모든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다음의 경우에 있어서 법률로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a. 권한 있는 법원의 유죄결정 후의 사람의 합법적 구금.
b. 법원의 합법적 명령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거나, 또는 법률이 규정한 의무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사람의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
c. 범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 또는 범죄의 수행이나 범죄수행 후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때, 그를 권한 있는 사법당국에게 회부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되는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
d. 교육적인 감독의 목적으로 합법적 명령에 의한 미성년자의 구금, 또는 권한 있는 사법당국으로 회부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합법적인 미성년자의 구금
e. 전염병의 전파를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정신이상자,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및 부랑자의 합법적 구금
f. 불법입국을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강제퇴거나 범죄인인도를 위한 절차가 행하여지고 있는 사람의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유럽인권협약 5조 1항)

당사국의 헌법이나 그에 따라 제정된 법률에 미리 규정된 이유와 조건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미주인권협약 7조 2항)



* 구금의 적법성
구금이 적법해야 한다는 요건은 구금 및 후속 절차 둘 다의 근거가 된다. 적법절차에 대한 상세한 규정에 대해서는 국내법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지만 중요한 예외가 있다. 계약상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음을 이유로 한 구금의 금지이다.(“어느 누구도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1조)

* “자의적”의 의미
선언 기초과정에서 ‘불법’ 또는 ‘부당한’ 또는 ‘불법적이고 부당한 둘다’와 같은 의미라는 견해가 표현됐다. 1965년 선언 9조에 관한 유엔 연구는 “법에 정해진 절차가 아닌 절차나 근거에 따르거나, 사람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에 대한 존중과 양립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진 법률 조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일 때 체포나 구금은 자의적”이라 정의했다.

* 체포의 이유를 고지 받을 권리
체포당하는 사람은 누구나 체포 사유와 혐의에 대해 고지 받아야 한다. 또한 고지는 신속하게 또는 체포와 동시에 돼야 한다. 두 경우 본질은 똑같다. 체포의 이유 고지는 실제적 체포와 연계되어 이뤄져야 한다. 체포 이유의 고지에 관해서는 형사 절차에 따른 체포와 다른 여타의 근거에 의한 체포간에 어떤 차이도 없다. 하지만 형사절차에 있어서는 수사를 완성하고 상세한 혐의사항을 고지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피구금자는 자신이 직면하게 될 피의 사실을 ‘신속하게’ 고지 받을 권리를 가진다.

* 체포와 구금의 사법적 통제에 대한 권리
형사절차에서의 체포와 구금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두가지 기본 요건을 가진다. 1) “판사 또는 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목적으로 권한을 가진 기타 공무원 앞에 신속하게 보내질” 권리, 2) “합리적인 시간 내에 재판을 받을 권리 또는 석방될” 권리이다.
주요 국제협약에서의 규정은 이점에서 동일하다.(유럽인권협약 5조 4항, 아프리카인권헌장7조6항,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9조 4항: 체포 또는 억류에 의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은 누구든지, 법원이 그의 억류의 합법성을 지체없이 결정하고, 그의 억류가 합법적이 아닌 경우에는 그의 석방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법원에 절차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
사법적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법적으로 권한을 가진 기타 공무원이라 함은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 등에 따르면 특히 행정부와 검사로부터 독립성을 가진 것을 말한다.

* 신속하게
사법적 심사에 앞서 구금되는 최대기한에 대해 유엔자유권위원회는 9조에 대한 논평에서 수일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했다. 법원은 지체 없이 체포 또는 구금의 적법성을 결정하고 구금이 적법하지 않는다면 석방을 명해야 한다.

유엔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8, (2): 형사상의 죄의 혐의로 체포되거나 또는 구금된 사람은 즉각적으로 법관 또는 법률에 의하여 사법권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받은 기타 공무원에게 인치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보다 정확한 시간적 제한은 대부분의 당사국에서 법률에 의해 정해져 있고, 본 위원회는 지체가 수일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본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신속한”에 대한 더 명확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4일을 초과하는 것은 수용될 수 없다.

* 자의적 추방의 금지
선언에서 논의한 ‘추방’이란 대개 자국에서 국민을 추방하는 걸 의미했다. 또한 ‘내부 추방’ 또는 ‘국경 내에서의 배제’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후자는 이동의 자유의 권리와 연관된다.
추방의 금지는 다른 인권 문서에서는 형사피의자·피고인의 권리 가운데 열거돼지 않고 ‘추방’이라는 단어조차 사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자국에 들어갈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이동의 자유의 권리를 다루는 조항이 있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2조 4항: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유럽 제4의정서 3조, 아프리카헌장 22조 5항은 국민의 추방을 금지하고 있다.)

국적은 주권 국가의 국민과 국가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국적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일은 용인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자의적 체포, 구금과 추방으로부터 자유로울 모든 사람의 권리에 대한 유엔 연구’는 ‘추방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관찰과 결론은 자국민에게 해당하는 추방만을 고려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선언에서 말하는 “추방”은 자국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기에 현재에 고려해야 할 심각한 인권문제에 미치지 못한다. 바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 22조
1.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집단적 추방조치는 금지된다. 각 추방사건은 개별적으로 심리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2.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은 권한 있는 당국에 의하여 법률에 따른 결정에 의하여만 당사국의 영역으로부터 추방될 수 있다.
3. 추방의 결정은 그가 이해하는 언어로 통고되어야 한다. 본인의 요구가 없으면 의무적인 아닌 경우라도 만약 요구를 하면 결정은 문서로 통보되어야 하며, 국가안보에 의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정의 이유가 진술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는 결정 이전 또는 늦어도 결정시에는 당사자에게 고지되어야 한다.
4. 사법당국에 의한 최종 판결이 발표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당사자는 자기가 추방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출할 권리가 있으며,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하여 그 사건이 심사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단, 국가안보상의 긴요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심사 기간 중 당사자는 추방결정의 집행정지를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
5. 이미 집행된 추방결정이 나중에 무효로 되었을 때, 당사자는 법률에 따른 보상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전의 결정은 그가 당해 국가로 재입국하는 것에 방해사유가 될 수 없다.
6. 추방의 경우 당사자에게는 출국 전 또는 후에 임금청구권, 그에게 귀속될 다른 권리 또는 현행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7. 추방결정의 집행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결정의 대상인 이주 노동자 또는 그 가족은 출신국 이외의 국가로의 입국을 모색할 수 있다.
8. 이주노동자 또는 그 가족이 추방되는 경우 추방 비용을 당사자에게 부담시켜서는 아니된다. 당사자는 자신의 여행경비의 지불을 요구받을 수 있다.
9. 취업국으로부터의 추방 그 자체로는 임금수령권과 그에게 귀속될 다른 권리를 포함하여 이주노동자 또는 그 가족이 그 국가의 법률에 따라 획득한 어떠한 권리도 손상시키지 아니한다.



또한 ‘내부에서의 추방’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흔히 ‘인권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시설로 강제 수용돼 10년이고 20년이고 사회로부터 단절돼 살아가는 사람의 얘기가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것이 한국 사회이다. 2007년 말 인신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수용시설에 수용·보호 또는 감금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한가닥 길이 열렸다. 위법한 수용에 대하여 또한 적법한 수용이라 할지라도 수용의 사유가 없어졌는데도 계속 수용되었을 때 구제를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지적되고 있고, 특히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보호된 자, 즉 외국인보호소의 경우는 이 법의 보호에서도 배제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세계인권선언 10조의 상세화
모든 사람은 재판에 있어서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그에 대한 형사상의 죄의 결정 또는 민사상의 권리 및 의무의 다툼에 관한 결정을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권한 있는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원에 의한 공정한 공개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보도 기관 및 공중에 대하여서는, 민주사회에 있어서 도덕, 공공질서 또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하거나 또는 당사자들의 사생활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공개가 사법상 이익을 해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법원의 견해로 엄격히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한도에서 재판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형사소송 기타 소송에서 선고되는 판결은 미성년자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당해 절차가 혼인관계의 분쟁이나 아동의 후견문제에 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1항)

모든 사람은 민사상의 권리 및 의무, 또는 형사상의 죄의 결정을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원에 의하여 합리적인 기한 내에 공정한 공개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판결은 공개적으로 선고되며, 다만 민주사회에 있어서의 도덕, 공공질서 또는 국가안보를 위한 경우, 미성년자의 이익이나 당사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공개가 사법상 이익을 해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 엄격히 필요한 한도 내에서 보도기관 또는 공중에 대하여 재판의 전부 또는 일부가 공개되지 아니할 수 있다.(유럽인권협약 6조 1항)



선언 10조가 다루는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는 두 요소로 구분된다. 사법절차(공정하고 공적인 심문)와 사법부의 조직(독립적이고 공명정대한 법원)이다.

원래 제출됐던 선언의 1차 초고에는 ‘권리와 의무, 독립적이고 공명정대한 법원에 대한 접근보장, 공정한 심문, 자신이 선택한 자격 있는 대리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양식으로 설명을 들을 절차에 대한 권리, 그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포함됐다. 그러나 이후 토론에서는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부터 뒷부분 내용이 모두 생략됐는데, 그 이유는 내용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조항을 간결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특히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를 빼는 것에 대한 강력한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공정한 재판의 질을 규정하는 자세한 내용은 이후 국제규약이 정할 일’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공정한 재판의 개념을 규정하는 기본 요소들은 선언에서 10조 바깥에 위치한다. 예를 들어 국내법원의 권한에 대해서는 8조에, 피고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11조에 규정돼 있다.

* 공정한 재판의 구성요소들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예를 들어 법원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에 사람은 우선 법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이라는 단어의 단순한 사용자체가 사법 절차에 내재돼야할 특정한 최소한의 보장을 내포하고 있다.

* ‘법원’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다양한 사법체계가 존재하기에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철저한 목록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서비스와 재직의 조건, 임명과 해임의 방식, 안정성의 정도, 외부의 압력과 폭력으로부터의 물리적, 정치적, 법적 보호 등이 중요한 것들이다. 판사의 독립성과 연관된 문제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양해서 세계의 어떤 곳에서는 판사의 봉급을 단체 협상하는 체제가 있는가 하면 물리적 실종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등 국제인권법은 법원이 “법에 의해 설립”될 것을 요구한다. 즉 법원은 행정부의 재량에 의존해서는 안되며, 법원의 조직구조에 관한 한 법률에 의한 제정에 기초해야 한다. 특별 법원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용인될 수 있다.

* 법원의 ‘공정성’에 관하여
법원은 공정한 것으로 보여야만 한다. 공정성은 주관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공정해야 한다. 판사의 공정성은 재판 당사자의 평등에 부응하는 것이다. 공정한 심사란 최소한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을 당연 포함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포괄한다.

법정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많은 방식으로 판사의 그것과 연관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특정 상황 하에서 무료 법적 조력에 대한 접근은 민사절차에서조차 공정한 재판의 요소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공개적’인 심문
심문은 ‘공개적’이어야 한다. 공개성의 문제는 복잡하다. 공개성은 소송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고, 재판을 공적인 감시에 놓이게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법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강화한다. 반면에 공개성은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적대적인 언론의 보도는 어떤 상황에서는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권리를 침해하고, 재판의 공정성에 편견을 가할 수 있다. 공개성의 요건에 예외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공개성의 종류와 정도는 결국 전반적인 공정성 평가와 연관된다.

* 신속성
시민·정치적 권리규약은 이에 대해 언급 안하고 있는 것과 달리 유럽과 아프리카 인권협약은 재판이 “합리적인 시간 내에”이뤄져야 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법의 지체는 정의가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특히 형사 범죄로 기소당한 사람에게는 운명의 불확실한 상태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형사 책임만이 아닌 권리와 의무의 결정
1948년 미주인권선언은 오직 범죄혐의의 사람과 연관해서만 공정한 재판의 권리를 언급했고,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유럽인권협약 또한 형사 책임에 관해서 더 상세하다. 대부분의 인권문서가 형사절차와 형법 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아마도 역사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은 초기에 형법의 맥락에서 더 현저했다. 반면에 다른 분야의 인권운동은 법적 투쟁에서 나중 무대에 출현했다. 현대의 복지 사회는 복잡한 법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의 범위와 영향이 더 넓어지고 있다.
미주인권협약 8조 1항은 공정한 재판의 권리를 민법의 권리와 의무의 결정뿐만 아니라 ‘노동, 재정 및 기타 성격’의 것까지 확대하고 있다.(“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한 형사기소를 확정함에 있어서나 자신의 민사상, 노동, 재정상 또는 기타 성격의 권리와 의무를 결정하기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사전에 설립된 권한 있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법원에 의하여 정당한 보장을 받으며 합리적인 기한 내에 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민사상 사항에만 제한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대 공공당국이 당사자일 때도 공정한 재판은 요구된다. 사회보험의 급여에 대한 고려로도 확장되고 있다. 개인이 타인, 기업, 노조, 정부와 다투고 있는 어떠한 법적 청구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확대되고 있는 경향이다.

 

세계인권선언 11조의 상세화
11조 1항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2항, 유럽인권협약 6조 2항, 미주인권협약 8조 2항, 아프리카 인권 헌장 7조 1.b
11조 2항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 유럽인권협약 7조, 미주인권협약 9조, 아프리카 인권 헌장 7조 2항
피고인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에 관한 것;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3항, 유럽인권협약 6조3항, 미주인권협약 8조 2항

이중 시민·정치적 권리규약만 살펴보면,
모든 형사피의자는 법률에 따라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14조 2항)
모든 사람은 그에 대한 형사상의 죄를 결정함에 있어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보장을 완전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가진다.
(a) 그에 대한 죄의 성질 및 이유에 관하여 그가 이해하는 언어로 신속하게 상세하게 통고받을 것
(b) 변호의 준비를 위하여 충분한 시간과 편의를 가질 것과 본인이 선임한 변호인과 연락을 취할 것
(c) 부당하게 지체됨이 없이 재판을 받을 것
(d) 본인의 출석하에 재판을 받으며, 또한 직접 또는 본인이 선임하는 자의 법적 조력을 통하여 변호할 것. 만약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하여 통지를 받을 것. 사법상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및 충분한 지불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 본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아니하고 법적 조력이 그에게 주어지도록 할 것
(e)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을 신문하거나 또는 신문받도록 할 것과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자기를 위한 증인을 출석시키도록 하고 또한 신문받도록 할 것
(f) 법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말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무료로 통역의 조력을 받을 것
(g)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 또는 유죄의 자백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것(14조 3항)



11조를 핵심어로 정리하면,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무죄의 추정’, ‘방어의 권리’, ‘공개 심문의 권리’, ‘법률불소급의 원칙’이다. 이중 공개 심문의 권리는 10조와 관련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9-11조의 내용이 제기됐을 때 맨 앞에 왔던 원칙이다.

* 무죄추정의 원칙
인두비오프로레오(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라는 법언과 더불어 널리 인정된 규범이다. 유엔자유권위원회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죄를 입증할 의무는 기소자측에 있으며, 피고인은 유리한 해석에 의한 이익부여를 받는다. 피고인은 그 혐의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이 입증될 때까지 유죄로 추정되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 원칙에 따라 대우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따라서 재판의 결과에 대해 예단하지 않는 것은 모든 공공기관의 의무이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에 관한 일반논평 13)

* 방어의 권리
형사절차에서의 공정한 재판의 개념은 한마디로 ‘무기의 평등’(equality of arms)이다. 피고인과 검사가 대면할 때 내재된 불리함을 절차적 평등으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사건을 법원에서 호소할 완전하고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의는 완수돼야 할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이뤄진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목적에서다.

* 불소급의 원칙에 대한 문제제기
불소급의 원칙이란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nullum crimen, sine lege nulla poena sine lege)”이다.

늘여서 말하면 “어느 누구도 행위시의 국내법 또는 국제법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유죄로 되지 아니한다. 또한 어느 누구도 범죄가 행하여진 때에 적용될 수 있는 형벌보다도 중한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선언 기초자들을 괴롭혔다. 뉘른베르크와 도쿄재판이라는 전범재판을 치러냈기 때문이다. 이 재판에서 전범들은 자신들의 행위는 당시의 법률에 따라 한 것이며,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며 자신들의 대한 처벌이 불소급의 원칙을 어기는 불법임을 주장했다. 열강들은 훗날에도 전범재판에서 불소급의 원칙이 불법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일 것을 우려했다. 이에 미국은 “범죄” 앞에 “형사”라는 말을 넣어서 “형사범죄”에만 이 원칙이 해당된다는 것을 확실히 하자고 했다. 2차 대전 후의 아주 예외적인 상항에서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을 처벌하기 위해 통과된 법에는 이 조항이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그러한 법률에 대한 법적·도덕적 비난을 할 수 없다는 의도의 제안이었다.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 2항에서 “이조의 어떠한 규정도 국제사회에 의하여 인정된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그 행위시에 범죄를 구성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당해인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라고 한 것은 이 원칙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래의 범죄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처벌받은 자들과 유사하게 자행된다면 같은 원칙에 따라 처벌받게 될 것이란 의미다.

정의 구현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소위 ‘미드’(미국드라마)는 형사물 또는 재판물이 주를 이룬다. 인권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미드 덕분(?)에 사람들은 소위 미란다 원칙을 암기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는 잦은 장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인권보장의 이미지라기보다는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승리선언처럼 보인다. 잡힌 자에 대한 조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수사팀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의 경우 형사와 검사의 이미지는 사회 안전의 수호자이고, 그들의 활동에 인권보호규정들은 거추장스러워만 보인다. 변호사는 대개 돈 많은 의뢰인의 치부를 싸고돌며 현란한 말솜씨로 해선 안되는 석방을 끌어낸다. 판사는 이런 저런 정황 속에서 관대함을 베풀거나 엄격함을 집행한다. 정작 용의자, 피의자, 피고인인 사람들의 인권은 이 무대에서 별 의미가 없다.

드라마를 떠나 현실로 와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자의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뒷전이냐’, ‘예외적 침해사례를 부각시키며 공익을 사수하는 검사나 경찰관을 인권을 침해하는 부류로 찍어놓고 손발을 묶으려 하느냐’, ‘툭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탓하면서 법원의 공정성을 깍아 먹으려 들지 말아라’, 심하게는 ‘흉악범에게 무슨 인권이냐? 사람도 아닌 것들을 왜 보호해주나? 인권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권리이니 짐승에게 인권을 보호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공격이 9-11조의 권리에 가해진다.

범죄자에 대한 보복이 과연 피해자의 인권과 감정을 보호하는 것인가? 피해자의 복수심을 국가가 대신 보복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국가인가? 정의는 회복·구현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은 또한 정의로운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는가?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분노 속에서 잡아먹히기 쉬운 이런 목소리들이 선언 9-11조의 기초를 이룬다.

재판을 받고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고, 죄를 지었어도 변명과 변호의 기회를 주는 것, 처벌보다는 잘못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 등은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제도들이 아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제도이고, 경찰과 사법부 등 권력 집단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하는 보호 장치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이런 기본적인 인권 제도의 주인이고 수혜자이다.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여론에 편승해 이런 인권제도에 함부로 손을 대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지키겠다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것인지, 극약처방을 외치는 것으로 정작 범죄 예방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빠져나가는 구실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공포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활동을 줄인다거나 공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거나 극단의 처벌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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