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31 호  [기사입력] 2013년 01월 2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지난 연말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젊디젊은 노동자가 자살했다. 가슴이 꽉 막혀와 혼자서 조문을 갔다. 부산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인데 체증에 갇혀 택시미터기 요금만 하염없이 올라갔다. ‘휴일인데 왜 이리 막히는 것이냐’는 내 물음에 운전사는 ‘대기업 백화점과 문화센터가 들어선 이후 사람들이 죄다 그리로 몰려들어 그런다’고 했다. 그곳을 벗어나자 ‘골목상권 다 죽는다’는 초라한 현수막들이 인적 없는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죽은 이의 아내는 젊다 못해 앳된 얼굴이었고, 두 아이를 챙기고 헤쳐가야 할 삶을 담아내야 해서인지 그녀의 소복 자락은 너무 넓었다. 슬픔의 두터운 장막이 덮인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다시 부산역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앞에 궁색한 차림의 모녀가 섰다. 여인은 한파임에도 겨울 외투조차 입지 못했다. 그나마 아이에게는 모자 달린 외투를 입혔지만 어디서 얻은 것인지 아주 낡아 보였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나갈 무렵 여인이 갑자기 아이 손을 놓았다. 제 몸 가눌만한 나이가 아닌 어린아이는 위태롭게 균형을 잃고 빙빙 돌았다. 깜짝 놀라 나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어! 어!’하고 소리를 냈다. 그때 뒤를 돌아본 여인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성난 눈이었다. “내 새끼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들은 신경 꺼!”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내 뒤를 향해 계속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이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여인의 분노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듯 말 듯한 가운데도 아이에게 그러는 건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녀를 바라본 눈길이 그녀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을까 하는 생각은 잠깐이었다. 어른들의 소동과 상관없이 방글거리기만 하던 아이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해 기차에 오르면서 중얼거렸다. 온 천지가 레미제라블이구나!

유엔의 특별인권절차 중에 특별보고관이란 게 있고, 그중에서도 ‘극빈과 인권’을 전담하는 특별보고관이 있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빈곤의 형벌화>에 관한 보고서(<인권오름> 제271호 참조) 등을 통해 빈민을 처벌하고 분리하고 통제하는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그간 노력의 결실이 2012년 9월에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원칙>이다. 2001년부터 십 년 이상의 협의를 통해 채택된 이 원칙은 국제인권법에 따른 당사국의 의무를 각국의 정책 수립자들이 빈곤 정책에 반영토록 할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특별보고관은 이 원칙이 빈민의 인권에 초점을 둔 빈곤정책을 다룬 “최초의 지구적 기준”이라고 그 의의를 밝혔다.

“극빈자의 고유한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모든 공공정책을 통해 알려져야만 한다”는 것이 원칙 중의 원칙이기에 “낙인화와 편견을 피해야” 하고 국가는 “빈민의 권리에 적대적으로 편향된 법과 규제를 폐지하거나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런 대원칙에 근거해서 국제인권법에 규정된 구체적 권리들을 빈민의 입장에서 상술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국가의 책무만이 아니라 기업의 책임을 콕 짚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기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외면하고 사회적으로 한 약속에 대한 무시를 일삼는 기업에 “인권에 상당히 유의해야” 하며 “기업 활동이 인권에 끼치는 악영향을 방지하고 완화해야 한다”는 이 원칙이 어떻게 스며들 수 있을까 난망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런 원칙의 존재 의의는 최선의 인권을 향해 나아갈 방향탐지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원칙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늘 반복적으로 재연되던 현상이지만 대선을 전후로 ‘안전’과 ‘복지’가 특히 강조됐다. ‘안전’은 불안과 걱정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제는 누구의 입장에서 무엇을 불안과 걱정으로 정하느냐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안’에 속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밖’으로부터의 안전을 추구하면 문을 닫아걸게 된다. 상대적으로 ‘밖’에 속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꼭꼭 닫힌 문이 생계의 불안뿐 아니라 불신과 무시와 편견으로 뭉친 차별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더 나아지리란 삶의 전망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될 대로 되란 식이 되어도 탓할 수가 없다.

불안의 원인이 차별적으로 선택되고, 모두의 자유가 아니라 일부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선호되는 안전의 선택이 이뤄진다. 그런 선택 속에서 누구에게는 이동이 자유롭고 누구에게는 이동이 가로막힌다. 누구는 생활보장을 말하지만, 누구에게는 생계보장도 감지덕지다. 선택에 따른 이해당사자의 구분은 심해지고 사회 공동체의 연대감은 희박해진다. 그런 사회일수록 불안의 근본원인은 커져가고 걸어 잠가야 할 문의 자물쇠만 늘어간다. 그럴 때 ‘안전’은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치안’으로 후퇴해버린다. 타자, 그중에서도 가난하고 권리를 침해당한 타자로부터 내 수준의 소유와 생활을 지키려는 치안은 결사의 자유나 근본적인 사회보장 같은 것을 촉진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복지’도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더 이상의 추락을 방지한다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다. 이 둘의 결합이 ‘치안복지’라는 간판이 되어 동네방네 경찰서와 관공서에 내걸리고 있는 게 두렵다.

‘치안복지’의 눈으로 부산역에서 만난 여인을 투시해본다. 한겨울에 외투도 갖추지 못한 여인, 상처 입은 짐승처럼 신음하는 그 여인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능력은커녕 의욕도 없어 보이는 인간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녀는 감시와 치안 관리의 대상이 돼야 마땅해 보인다. 가난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 당선자가 4대악으로 규정한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 불량식품’의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인 동시에 그것의 온상으로 보여진다. 그녀의 가난은 반사회성과 범죄 가능성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게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니 미리 조치를 취한다는 측면에서 관리될 것이다. 그녀의 행색으로는 공공역사 출입이 어렵게 될 수도 있고 대규모 상업시설 같은 데서는 경비한테 걸러질 수도 있다.

그런 그녀가 눈에 안 띄면 안 띌수록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입장에서는 ‘치안이 곧 복지다’는 말이 당연하게 들릴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이 된다면 ‘치안이 복지’란 말은 나한테 해준 것도 없으면서 날 비난하고 공공영역에서 아예 쫓아내겠다는 말로 들릴 것이다.

어릴 적 동생들 중 하나가 도벽이 심했다. 도벽이 발각 날 때마다 나는 하루 종일 일 나간 엄마 대신에 맏이라는 이유로 이웃에게 불려 갔다. 나를 부른 이웃들이 내게 안긴 것은 서슬 퍼런 추궁이 아니었다. “네 엄마 걱정하실 테니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으마. 네가 맏이니까 동생 잘 돌봐줘라. 어릴 때 잠시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주셨다. 한번은 호떡 파는 아주머니가 길 가던 나를 부르더니 호떡을 공짜로 잔뜩 안겨주셨다. “언제든지 공짜로 줄 테니 네 동생 갖다 주고 동생 건사 잘하라.”고 하셨다. 동생의 도벽은 외제 상표가 박힌 잠바를 몰래 숨겨두고 입은 것으로 결국 엄마에게 발각이 났고, 한밤중에 혼이 난 동생은 컴컴한 개천에 뛰어들어 죽겠다고 했다. 그런 동생을 찾아 개천가를 헤매던 밤은 참 추웠다. 참 아픈 기억이지만 ‘한때 그러는 것이니 잘 돌봐주라’던 이웃들의 인정이 함께 떠오르기에 나쁘지만은 않다. ‘잠시 한때’일 뿐이고 ‘관심으로 돌보면 괜찮아진다’던 이웃들의 인정과 믿음이 내가 받은 최고의 복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 원칙을 기초한 특별보고관은 빈민의 권리에 초점을 둔 빈곤 정책을 강조했다. 빈곤정책이라 이름 붙였다고 해서 죄다 빈곤정책이 될 수는 없으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그 안에 담겨야 한다고 했다. “빈곤을 범죄시하는 정책은 빈곤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그들이 고통받고 있는 광범위한 차별과 그로 인해 상호 재강화되는 불이익에 대한 무지를 반영한다.”던 특별보고관의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원칙(Guiding principles on extreme poverty and human rights, 2012년 9월 27일 유엔인권이사회 채택)

I. 전문

1. 경제 발전, 기술 수단, 재정 자원이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른 세계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극빈 상태로 사는 것은 도덕적 폭거이다. 이 원칙은 극빈 퇴치가 도덕적 의무일 뿐 아니라 현존하는 국제인권법에 따른 법적 의무라는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인권법의 규범과 원칙들은 빈곤을 저지하고 빈민에게 영향을 끼치는 모든 공공정책을 지도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해야만 한다.

2. 빈곤은 단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소득’과 ‘존엄하게 살 기본 역량’ 둘 다의 결여를 둘러싼 다차원적인 현상이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2001년 빈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빈곤은 적합한 생활 기준과 여타의 시민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및 사회적 권리의 향유에 필수적인 자원, 역량, 선택, 안전과 힘의 지속적이고 만성적인 박탈로 인한 인간 조건이다.”(E/C.12/2001/10, para.8) 또 빈곤은 “소득 빈곤, 인간 발전의 빈곤과 사회적 배제의 조합”(A/HRC/7/15, para13)으로서, 기본적인 보장의 지속적인 결여는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할 기회 또는 예견할만한 장래에 권리를 재획득할 기회를 혹독하게 망치면서, 사람들의 삶의 다양한 측면에 일제히 영향을 끼치는 것(E/CN.4/Sub.2/1996/13)으로 정의돼왔다.

3. 빈곤은 그 자체로 긴급한 인권의 문제이다. 빈곤은 인권침해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여타 침해를 낳는 조건이다. 극빈은 시민적‧정치적‧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대한 침해를 복합적으로 강화할 뿐 아니라 극빈 상태의 사람은 일반적으로 존엄성과 평등에 대한 정례적인 부인을 경험한다.

4. 극빈자는 자신들의 권리와 권한에 접근함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신체적, 경제적, 문화적 및 사회적) 장벽에 직면한다. 결과적으로, 극빈자는 상호연관되고 상호강화하는 많은 박탈을 경험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위험한 노동 조건, 위험한 주거, 영양가 있는 음식의 부족, 불평등한 사법접근, 정치적 힘의 결여, 제한된 건강보호접근 등이며 이로 인해 극빈자는 권리 실현을 방해받고 계속 가난하다. 극빈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무력함, 낙인화, 차별, 배제, 물질적 결핍 등 모두 서로를 상호 강화하는 것들의 악순환 속에서 살아간다.

5. 극빈은 불가피한 게 아니다. 극빈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국가 및 여타 경제 행위자들의 행위와 방임에 의해 만들어졌고, 가능했고, 지속된 것이다. 과거에 공공정책은 흔히 극빈자에게 도달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세대를 통해 빈곤이 전달됐다.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및 문화적) 불평등은 흔히 다뤄지지 않은 채로 남아 빈곤을 더욱 견고히 한다. 국내와 국제적 차원에서 정책 일관성의 결여는 흔히 빈곤 퇴치에 대한 약속을 해치거나 약속과는 모순된다.

6. 극빈이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는 것의 의미는 극빈을 퇴치할 도구가 손에 미칠 만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인권적 접근은 극빈자를 권리의 보유자이자 변화의 주체로서의 인정에 기초한 장기적 극빈 퇴치의 틀을 제공한다.

7. 인권적 접근은 극빈자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며, 공공정책 구상을 포함하여 공공의 삶에 의미 있고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책임성 있는 의무 담지자가 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한다. 국제인권법에 규정된 규범들은 빈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때 자국의 국제적 인권 의무를 고려할 것을 당사국들에 요구하고 있다.

II. 목적

11. 이 원칙의 목적은 빈곤과의 싸움에 대한 노력에 인권 기준을 적용할 방법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

12. 이 원칙은 빈민의 역량 강화란 빈민의 권리를 실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관계적이고 다차원적인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 ……

III. 기초 원칙들

15. 인간 존엄성은 인권의 기초 중의 기초다. 인간 존엄성은 평등과 비차별의 원칙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극빈자의 고유한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모든 공공정책을 통해 알려져야만 한다. 국가 기관과 사적 개인들은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하고, 낙인화와 편견을 피해야 하고, 빈민이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취하는 노력을 인정하고 지원해야만 한다. ……

17. 빈곤을 극복하려는 공공 정책은 빈민의 모든 인권을 동등하게 존중하고, 보호하고, 실현하는데 기반해야만 한다. 어떤 영역에서든 어떤 정책이든지 빈곤을 악화시키거나 빈민에게 불균형한 부정적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

19. 국가는 빈민의 권리, 이익 및 생계에 대해 적대적으로 편향된 법과 규제를 폐지하거나 고쳐야 한다. 경제적 상황 또는 여타의 빈곤과 결합된 이유에 근거한 직간접적인 모든 형태의 입법적‧행정적 차별은 규명되고 철폐돼야 한다. ……

32. 극빈자의 대부분은 아동이며 유년기의 빈곤은 성인기 빈곤의 근본 원인이기에 아동의 권리에 우선성을 부여해야만 한다. 아주 짧은 기간의 박탈과 배제조차도 아동의 생존과 발전의 권리에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칠 수 있다. 빈곤퇴치를 위해 국가는 유년기 빈곤과 맞설 즉각적인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

35. 국가는 아동의 삶과 관련된 의사결정과정에서 아동의 의견이 청취될 수 있는 권리를 증진해야만 한다. ……

45. 극빈자는 흔히 정부 부조 또는 자선의 수동적인 수혜자로 비춰진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정책수립자와 여타의 공무원들이 그들에게 설명책임을 져야 할 권한을 가진 권리 보유자들이다. ……

V. 구체적 권리들

63. 경제적 독립성이 거의 없는 극빈자는 안전과 보호를 구할 가능성이 훨씬 더 적다. 법집행기관은 흔히 극빈자를 분류하고 고의적으로 표적으로 삼는다. 빈민 여성과 소녀는 특히 성에 근거한 폭력에 영향 받는다. ……

64. (a) 국가는 극빈자의 생명권과 신체적 존엄성이 동등하게 존중‧보호‧실현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특별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법집행공무원에 대한 훈련, 치안 방법에 대한 재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한 명확한 책무성 체계의 수립 등이 포함된다.
(b) 국가는 가정 폭력의 피해 여성을 위한 쉼터 제공을 포함하여 빈민을 대상으로 자행되는 성폭력에 제동을 걸 구체적 전략과 체계를 개발해야 한다. ……

65. 차별을 포함하여 다양한 구조적 및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빈민은 불균등하게 높은 빈도로 형사 사법 체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빈민은 또한 형사 사법 체제를 벗어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결과적으로 불균등하게 많은 수의 극빈자와 가장 배제된 사람들이 체포, 구금, 투옥된다. 상당수가 보석 또는 심사에 대한 의미 있는 수단 없이 장기간의 공판 전 구금에 처한다. 흔히 적합한 법적 대리인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빈민은 유죄선고를 받기 쉽다. 구금된 동안 빈민은 위험하거나 비위생적인 조건, 학대나 늘어지는 지연 등 권리 침해에 항의할만한 수단을 갖지 못한다. 극빈자에게 부과되는 벌금은 그들에게 불균등한 영향을 끼치고 상황을 악화시키며 빈곤의 악순환을 지속시킨다. 특히 홈리스는 이동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자주 받으며 공공장소를 이용했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간주된다.

66. (a) 국가는 빈민에게 불균등한 영향을 끼치는 형사적 제재와 투옥 절차를 평가하고 다뤄야 한다. ……
(c) 공공장소에서의 생존 활동, 가령 잠자기, 구걸, 먹기, 개인적인 위생 활동의 수행 등을 범죄화하는 법을 철폐 또는 개혁해야만 한다.
(d) 극빈자, 특히 구걸, 공공장소 이용, 복지 사기 등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불균등한 벌금 납부를 요구하는 제재 절차를 재고해야 하고, 벌금을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벌금 불이행에 대한 구금형을 폐지하는 것을 고려해야만 한다. ……

84. (a) 국가는 존엄한 노동 조건에 대한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엄격한 노동 규제를 채택해야 하고, 적합한 역량과 자원을 가진 노동감시관을 통해 그것의 이행을 보장해야만 한다.
(b) 국가는 자신과 가족의 적절한 생활 수준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기에 충분한 임금이 모든 노동자에게 지급될 것을 보장해야 한다.
(c) 국가는 공정하고 우호적인 노동조건에 관한 법적 기준이 비공식 부문 경제에도 확대되고 존중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며 비공식 노동 부문을 평가할 수 있는 산재된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
(h) 국가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정체성과 목소리와 대표성이 노동 개혁에 대한 사회적 및 정치적 대화 속에서 강화될 수 있도록 결사의 자유를 존중하고 증진하고 실현해야 한다. ……

VII. 기업을 포함한 비-국가 행위자의 역할

100. 기업을 포함한 비-국가 행위자에게는 최소한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존중의 의무란 기업의 활동, 생산 또는 서비스를 통해 반인권적인 영향을 야기하거나 그런 영향에 기여하는 일을 피해야 하고, 반인권적 영향이 발생하면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01. 기업은 빈민의 인권을 포함하여 인권 존중에 대한 명확한 정책 약속을 채택해야만 한다. 기업은 기업 자신의 활동과 사업 파트너들에 의해 야기된 인권에 대한 실제적‧잠재적 영향을 규명하고 평가하기 위하여 인권에 상당히 유의하는 과정을 취해야만 한다. 기업은 기업의 활동이 빈민의 권리에 끼치는 악영향을 방지하고 완화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그런 악영향에 직면하는 개인 또는 지역사회를 위한 경영차원의 고충처리장치 수립 또는 참여가 포함된다.
102. 제삼자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보호할 국가의 의무는 효과적인 정책, 입법, 규제 및 판결을 통해 인권침해를 방지, 조사, 처벌, 보상할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국가는 기업과 관련된 침해로 영향받은 사람들에게 신속하고 접근가능하며 효과적인 구제를 보장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사법적 구제, 비사법적 책무성, 고충처리장치 등이 포함된다.

인권오름 제 331 호  [기사입력] 2013년 01월 2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271 호 2011년 10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역자 주]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이 올해 8월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발췌 소개한다. 이 보고서에서 특별보고관은 빈민을 처벌하고 분리하고 통제하는 법과 규제와 관행들을 분석한다. 이런 조치들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증가해왔고 경제 위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강화되고 있다. 빈민을 범죄시하고 처벌하는 국가와 사회세력의 방식은 상호연결된 다차원적인 것이다. 특별보고관은 이런 방식을 크게 네 가지로 분석한다. a) 빈민이 공적 공간에서 생계유지행위를 하는 걸 부당하게 제한하는 법과 규제와 관행, b) 공적 공간의 고급주택화와 민영화와 관련된 도시계획 규제와 조치들, c) 빈민의 자율성, 프라이버시 및 가족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조건의 강화, d) 빈민의 자유와 개인적 안전을 위협하는 구금과 투옥을 과도하고 자의적으로 이용. 보고서의 원문은
http://www.ohchr.org/Documents/Issues/Poverty/A.66.265.pdf
에서 볼 수 있다.

I. 도입

이 보고서에서 “형벌화 조치”란 빈민을 처벌하고 분리하고 통제하며 빈민의 자율성을 해치는 정책, 법 및 행정 규제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다.

II. 빈곤의 현실: 낙인찍기, 차별, 형벌, 배제

형벌화 정책은 빈곤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그들이 고통 받고 있는 광범위한 차별과 그로 인해 상호 재강화되는 불이익에 대한 무지를 반영한다.

형벌화 조치는 빈민이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자녀들의 건강과 교육에 무관심하며 부정직하고 가치 없으며 심지어 범죄자라는 차별적인 편견에 따른 것이다. 빈민은 스스로의 불운을 자초한 이들로 그려지며 단지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상황을 치유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편견과 선입견은 편향되고 선정주의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강화된다. 그런 언론들은 홀어머니, 인종적 소수자, 이주자 등 복합적인 차별형태의 피해자들을 특히 표적으로 삼는다. 이런 태도들은 아주 뿌리 깊어서 정책입안가들로 하여금 빈민이 빈곤상황을 극복할 수 없도록 저해하는 구조적 요인들을 다루지 않게 한다.

차별과 낙인의 결과로 빈민은 공공당국에 대한 공포와 심지어 적개심을 갖게 되며 빈민을 원조해야 하는 제도들에 대해 거의 신뢰를 가질 수가 없다. 흔히 정책입안가, 공무원, 사회복지사, 법집행공무원, 교사와 보건 종사자들은 빈민을 불신하거나 생색내는 태도로 다루며 빈민 스스로의 생활증진 노력을 무시하고 지원하지 않는다.

낙인과 편견적 태도는 수치감을 양산하고 빈민으로 하여금 공무원에게 접촉하는 걸 꺼리게 만들고 필요로 하는 지원을 구하지 않도록 만든다. 사회가 낙인을 찍은 서비스에 접근하여 더 큰 사회적 차별에 노출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빈민은 식권, 보조금, 공공주택, 무상보건 등에 대한 청구를 삼가게 되고 그로 인해 분리는 더 강화되고, 빈곤이 세대를 통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강화하게 된다.

III. 국제인권의 틀

국제인권체계의 핵심 요소는 비차별과 평등이다. 이들 원칙은 동등한 환경의 사람들을 법과 관행에서 동등하게 처우할 것을 요구한다. 인권법 하에서 처우에 있어서의 모든 구분이나 차이가 차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구별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당성이 있을 때는 평등 원칙과 양립가능하다. 정당한 구별은 정당한 목적을 추구해야만 하고 채택한 수단과 추구된 목표사이에 균형적인 합리적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빈민에 대한 차별적 처우(구별, 배제, 제한 또는 선호)는 인권법 하에서 정당화될 수 있도록 앞서 언급한 기준을 따라야만 한다.

이 보고서에서 검토한 형벌화 조치를 묶는 공통 요소는 그것들이 앞서 언급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형벌화 조치들은 빈민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향유와 행사를 무효화하거나 손상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빈민을 차별하고 있다.

IV. 인권의 향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형벌화 조치들

A. 공적 공간에서의 빈민의 행위를 제한하는 법, 규제, 관행

이들 조치들의 공통분모는 공적 공간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폐가 된다”고 간주되는 행위들을 형벌화하는 것이다. 국가는 위험하고, 공공의 안전이나 질서와 갈등하며, 그 공간이 의도한 정상적 활동들을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형벌화 조치를 정당화한다.

노숙인과 구걸을 불법화하고 있다. 이런 법들은 야간 구걸을 금지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로 구걸하는 걸 금지하거나 더 나아가 공연이나 춤, 상처나 기형적인 신체를 보이는 것 등을 금지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구걸의 현저한 수단을 전혀 보이지 않았더라도 단지 공공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법이 되기도 한다. 구걸과 배회의 금지는 평등과 비차별의 원칙에 대한 심각한 차별을 대표한다. 이런 조치들은 법집행공무원들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줌으로써 모욕과 폭력에 대한 빈민의 취약성을 증대시킨다. 이들 조치들은 극빈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향한 차별적인 사회적 태도의 확산에 기여할 뿐이다.

국가는 또한 공공장소에서의 취침, 앉아있기, 누워있기, 쓰레기 버리기, 소유물 보관하기, 노상 음주, 노상 배뇨, 무단횡단 등 거리 생활과 결합된 행위들을 형벌화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이 빈민만을 향한 것은 아니지만, 빈민에게 불균형하게 영향을 끼친다. 집이 없기 때문에 빈민은 일상 활동을 공공장소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거리에서 사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들이 형벌로 제재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비록 이런 유형의 조치들이 외관적으론 중립적이지만, 연구조사들이 보여주는 바는 당국이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숙인을 표적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점상으로 생계를 도모하는 사람들을 형벌화하는 조치가 우려된다. 많은 국가들에서 거리행상은 심각하게 제한되거나 불법이며 거리행상에게서 물건을 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연구에 따르면 노점상은 다른 수입원이 없고, 교육수준이 낮고, 구직 기회가 없기 때문에 행상을 하게 된다. 노점상은 생계를 도모하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생계수단이다. 국가가 이를 엄격하게 금지하면 극빈자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해치게 된다. 또한 노점 시간과 구획 등을 정하는데 관계 공무원의 재량권이 크기 때문에 노점상들은 법집행공무원, 조직폭력배 등의 위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B. 도시 계획 규제와 조치들

고급주택화 정책, 사회주택의 민영화, 재개발과 토지이용제한법 등의 채택을 통한 도시 변형은 빈민을 도심지역으로부터 더 멀리 이전하게 함으로써 주거권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도시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겠다며 국가들은 빈민을 배제하는 토지 사용, 가령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마을, 호화 고가 주택, 대규모 스포츠 시설 등에 우선권을 주는 토지이용제한법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재개발”, “역사문화유산의 보존” 등의 목적으로 마을 전체를 철거하고 거주자들을 퇴거시키고 개발프로젝트의 여지를 만든다. 그 결과로 이런 지역은 원주민이 되돌아와 살기에는 너무 비싼 곳이 되어버리고 더 싸고 더 불편하며 더 외딴 지역으로 주거를 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많은 경우 빈민들은 사전 고지 없이 강제 퇴거되며, 폭력과 소유물의 손상과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정책들은 도시의 포괄성과 다양성을 심각하게 손상할 뿐 아니라 빈민에 대한 분리와 사회적 배제를 증가시킨다. 또한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 뿐 아니라 일할 권리,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등에 심각한 장벽을 대표한다. 공적 공간으로부터의 빈민 배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대규모 행사와 연관된 프로젝트로 인해 더 배가된다. 가령 서울에서는 2002년 월드컵 준비에 도시의 특정 장소들에서 노숙인 금지가 포함됐다. 88년 올림픽 동안에는 노숙인이 도시 외곽의 시설에 구금됐다. 이런 조치들의 실제적 효과는 빈민과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그들이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접근할 수 없는 호텔, 스포츠시설, 사무실 빌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C.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에 대한 조건 강화

국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 급부에 대한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공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거나, 대상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 의존성을 피하도록 하고 일하지 않으려는 동기를 해소해 시스템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이유들에 유효한 우려가 있을지 모르나 그 영향은 흔히 추구하는 목적에 완벽하게 비례하지는 않는다. 과도한 자격요건과 조건을 부과함으로써 국가는 빈민을 처벌하고 수치감을 주며 빈민이 당면한 상황을 악화시킨다. 더욱이 공적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의 수혜자들은 미래에 대해 불확실한 상태이며 장기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이런 조치들은 그 효과성과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증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인 낙인과 편견에 의존하고 있다. 자격요건과 조건은 흔히 강력한 가부장제적 태도로 지지되고 있다. 정책입안가들은 자신들이 빈민들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으며 빈민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조치들은 수혜자의 자율성을 해칠 뿐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막는다. 수혜자를 감시하는 정책은 수혜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하며 죄책감과 분노와 수치를 느끼도록 만든다. 사회복지 급부를 운영하는데 국가들이 채택한 광범위한 통제와 감시 메커니즘은 사회복지급여 속여타기에 분명히 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증거가 드러났다. 수혜자의 사기에 의한 것보다는 국가의 행정적 실수에 의한 것이 더 흔한 것으로 드러났다. 설령 수혜자가 더 많이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대개 사기라기보다는 실수이며 사기라 해봤자 적은 돈의 생계비일 뿐이다. 하지만 정책입안가들은 복지급부사기를 만연한 문제처럼 여기며 그것과 싸우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쓴다. 세금 사기보다는 복지급부 사기를 더 강조하는 정치적 수사가 불공정하게 압도적이며, 이런 일의 비용이 국가에 더 큰 부담이 된다.

D. 과도하고 자의적인 구금과 투옥의 이용

법집행공무원들이 “빈곤”, “홈리스” 또는 “취약함”을 범죄성의 지표로 흔히 사용하기 때문에 빈민은 불공정하게 높은 빈도로 형사법체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빈민은 형사법체계 속에서 버텨내기에 상당한 장벽을 겪는다. 그 결과 불공정하게 많은 수의 빈민과 배제된 사람들이 체포, 구금, 투옥된다.

V. 결론과 권고

빈곤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상황이며, 직간접적으로 빈민을 처벌, 분리, 통제하거나 해치는 조치들로서는 빈곤이 악화되고 만연될 뿐이다. 이런 조치들은 광범위한 인권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빈민의 능력을 크게 해치며 빈곤과 배제의 악순환을 심화하고 지속시킨다.

빈민이 처한 상황들로 인해 그들을 형벌화하기 보다는 국가는 빈민이 식량, 주거, 고용, 교육 및 보건 서비스에 접근하는데 당면한 법적, 경제적, 사회적 및 행정적 장벽을 제거하는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희소한 자원을 비용이 많이 드는 형벌화 조치에 바치는 대신에, 국가들은 최대한의 가용자원을 빈민이 모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시민적 및 문화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방향으로 돌려야만 한다.

 

<인권오름 제 271 호 2011년 10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