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415 호 [기사입력] 2014년 11월 13일 17:43:4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줄지어 서있는 큰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그걸 볼 때 갖은 생각이 든다. 오지 않는 버스 등을 기다리는 줄이라면 모두가 경쟁자로만 보이고 귀찮기만 하다. 배고플 때 밥을 위해 늘어선 줄이면 화가 치솟기도 한다. 토론회나 공연 등에 간 것이라면 나와 통하는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 반갑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알아서 각자 사는 소위 ‘자율적’인 개인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때론 그 무리가 나를 쳐다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다. 뭔가 나를 겨냥하여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꾸미는 것 같다. 나를 향한 무리의 시선이 두렵고 신경 쓰인다.

아주 어쩌다 나와 같은 하늘아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나의 생계, 일, 건강 등 삶의 중요한 문제들이 저들과의 관계에 있다. 밥이 되고 지붕이 되고 약이 되는 관계들, 내 삶의 불안을 함께 책임져야할 생각과 실천이 그 관계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한국 사회가 과연 사회인가’란 질문이 자주 나오는 걸 보면 후자의 생각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사회적 시선과 평가는 혹독하기만 한데 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공통의 해결책을 구하는 시도는 궁색하기 때문이다.

인권에서 ‘사회적 권리’라 일컫는 것은 개인 단위로 대처하기 어려운 삶의 불안을 공통의 문제로 여기고 대처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회적 권리는 미끼이면서 낚시를 끝낸 후에는 입을 닦는 용도로 이용되는 일이 많다. 선거 때의 화려한 공약들은 사회적 권리를 동원한 그럴듯한 수사로 채워지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권리보장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택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경제적 선택으로 정당화한다.

필립 알스턴(Philip Alston) 교수는 사회적 권리의 대표적 연구자이면서 유엔의 인권 전문가로 활약해왔다. 올해 중순에는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을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은 기본 소득 보장과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접근 보장을 목표로 한다. 이 보고서에서 특별보고관은 사회적 보호가 경시된 이유를 검토하고 이 개념의 전개를 추적한다. 또한 사회적 자원의 할당에 관한 의미 있는 토론에 인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들이나 북반구의 힘센 기구들이 인권의 언어를 회피하는 것은 보편적이 아니라 선별적인 제공, 권리의 보장이 아닌 완충제로서의 시혜에 치중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따라서 ‘사회적 보호는 인권이다’란 것을 정부 책임자 등에게 명백하게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치라고 한다. 인권이 빠진 위기관리수준의 대응은 사람을 솎아내려는 복잡한 시스템을 낳고, 극히 낮은 수준의 보호에 머물고, 법적 보호가 아닌 변덕스런 정책 경향에 휘둘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알스턴은 10월에 세계은행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알스턴은 장밋빛 번영을 전망하는 세계은행 총재(한국인인 김용이다)의 연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재분배의 필요성도, 공정하고 공평한 과세 제도의 필요성도, 국제적 조세 회피를 차단할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걸 말하는 대신에 경제 성장을 통해 개인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 했다. 그렇게 되면 “성평등, 음식, 주거, 깨끗한 물, 위생, 건강보호, 교육과 직장에 대한 저소득 사람들의 접근권이 향상될 것”이라 했는데 알스턴의 비판 요지는 ‘결론은 인권보장이면서 그걸 위한 방법은 하나도 얘기 안 한다’는 것이었다. 알스턴의 세계은행에 대한 비판을 한국 정부에 대한 것으로 바꿔 생각해도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바람이 매서워졌다. 사람들의 온기를 모으는 일이 절실한 때이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 보고관 보고서(2014년 8월, A/69/297)

3. 사회적 보호 최저선 이니셔티브(The Social Protection Floor Initiative)의 기원과 개념의 발전 경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꾸민, 헌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의 또다른 사례가 아니냐고 생각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보호 최저선은 새롭고 중요한 것이다. 첫째, 그것은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와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 인권의 구조 안에서 시들했던 이 두 권리를 잘 작동하게끔 종합했다. 둘째,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정부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국제정책사회와 남반구에서 떠오른 실제적인 실천들의 반성적 학습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 인권규범과 경제적 현실간의 격차 또는 불친화성을 생각하기보다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적 보호는 감당성을 고려하고 경제적 생산성 증진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됐다. 넷째, 다른 어떤 사회적 인권의 경우보다 훨씬 이것은 인권 영역 바깥에서 왔고, 실현 증진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훨씬 광범위한 행위자들의 연대를 기대한다.

20세기 사회적 보호의 소외

12. 20세기의 대부분, 일반적으로 사회적 보호와 특수하게는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가 중요한 취급을 받지 못했다. 첫째,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인권 개념의 이분법적 구분이 있었다. 아주 다른 가정으로 두 개의 다른 범주의 권리로 나누고 경제사회적 권리에 이등급의 지위를 매겼다. 둘째, 흔히 두 범주의 권리간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이 주장됐지만, 극빈상태의 개인들이 자신의 시민‧정치적 권리의 상당수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실제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셋째, 시민‧정치적 권리는 대개 비용이 안 들고 경제‧사회적 권리는 불가피하게 많은 비용이 든다는 잘못된 개념이 사회보장을 전형적으로 돈 드는 권리이고 따라서 부자 나라들에서만 적절하다는 가정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됐다. 넷째, 사회보장이 공식적으로 수용된 곳에서, 사회보장은 공적 부문과 공식 부문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서 대개 개념화됐다. 따라서 공식‧비공식 구조와 과정 둘 다에서 모든 사람이 일종의 보장 장치에 포함되도록 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을 만들려는 노력은 단지 최소한이었다. 다섯째, 이런 많은 문제들은 냉전이 인권의 구조에 끼친 영향 때문에 강화됐다. 여섯째, 유엔의 개별 기구들은 다양한 이슈들을 자기 소관으로 주장하고 독점적인 관할권의 형태를 추구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회보장은 ILO에 “속했다.” 나머지 유엔 기구들은 사회보장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했고, 그것의 의미는 공식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유엔의 인권 체계가 다수 전문 기구들과 밀접히 연결된 업무여야 하는 것들로부터 상대적 고립 속에 발전돼왔다는 것이다.

사회적 보호 최저선 개념의 출현

15. … 1990년대 후반 이래, 남반구의 다양한 나라들이 사회적 보호를 위한 개혁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것은 북반구에서 발전된 보다 전통적인 접근과는 아주 다르게 보였다.

17.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적 보호 정책들은 상당히 다르기는 하지만, 최근 연구는 몇 개의 공통된 정책 특질들을 찾아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불평등을 줄이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실현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시장의 불균형 시정에 대한 정부 역할을 인정하기, 경제 위기에 대응하여 사회적 투자를 늘리고 유지할 필요성, 포괄적인 빈곤 감소 정책의 채택, 젠더‧나이‧민족성에 따른 격차에 유의하기

20. 아주 많은 사회적 보호 이니셔티브가 남반구에서 출현했다는 사실, 그리고 사회적 보호 최저선이 남반구 나라들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다는 사실의 중요성은 상당수 나라들이 보인 초기 거부감-사회보장에 대한 서구식 접근을 무분별하고 부적절하게 치환한 것이라고 간주-에 비춰보면 훨씬 크다.

사회적 보호 정의하기

21. “사회적 보호”란 일반적 용어는 광범위한 과거와 현재의 정책 접근을 표현하는데 사용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안전망”이란 용어의 접근을 옹호하는 쪽과 “사회적 포함”을 추구하고 “사회적 시민권”을 인정하려는 쪽 사이에 주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의 긴축재정과 구조조정정책에 대한 반발에 세계은행의 주요한 대응이 사회안전망 옹호였다. 사회적 위기관리라는 개념이 특히 두드러졌다. 가장 취약한 이들 또는 만성 빈곤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기초생계를 보호할 수단으로서나 경제적 쇼크 등에 대한 보다 나은 위기관리로서나 그랬다. 그러나 안전망 접근은 구조적 빈곤과 불평등에 충분한 관심을 쏟지 않고 지원이 필요한 집단을 아주 좁게 겨냥하려 강조했기에 널리 비판받았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권리에 기반한 접근이 증진됐다. 인권 영역에서뿐 아니라 광범위한 개발 학자와 기구들도 그랬다. 하지만 일반적인 논의는 합의와는 거리가 멀다. 사회적 보호에 대한 오늘날 상당수 접근들은 “더 개량적이고 변화는 덜한 편향”을 계속 보이고 있고 이 점이 “만연한 불의의 근본적인 원인”일 것 같다.

23. 국제적 차원에서, 정의를 둘러싼 문제는 계속 논쟁적이다. 특히 사회적 보호 최저선을 인권의 문제로 볼 것이냐 그것이 보편적이고 무조건적이어야 하느냐에 대해서 그렇다. 먼저 국제노동기구(ILO)의 제202호 권고를 참조하는 게 적절하다. 제 202호 권고는 사회적 보호 최저선의 계획, 이행, 평가에 대한 주요 기준이 됐다. 제202호 권고의 주 요소는 다음과 같다.

(a) 이 권고는 국제인권법의 강한 기초를 두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여러 조항을 구체적으로 참고하면서, 이 권고는 국가들에게 “사회보장을 보장함으로써 인민의 권리와 존엄성”을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b) 사회적 보호 최저선은 참여적 방식으로, 비차별‧성 평등‧사회적 포함 등의 원칙을 존중하면서 국가의 우선순위를 반영하여 국가적으로 정의된다.

(c) 보호는 선별적이기보다는 보편적이어야 하고 “빈곤, 취약성, 사회적 배제를 방지하거나 경감”하는 것으로 목적으로 해야 한다.

(d) 사회적 보호 최저선은 적어도 건강 보호를 보장하고 아동‧노인‧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소득 보장, 특히 질병, 실업, 출산과 장애 시에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적인 사회보장을 포함해야만 한다.

(e) 기본적인 보장은 법으로 수립돼야만 한다.

(f) 이행은 정규적으로 모니터하고 정기적으로 평가돼야만 한다.

(g) 사회적 보호 최저선은 국가 자원으로 재정이 처리돼야만 하고, 필요하다면 국제적 지원이 이용가능해야 한다.

26. ILO 사회적 보호 최저선 자문단의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주목했다.
“사회적 안전망 접근에서, 사회 정책들은 경제 개발에 대해 잔여적인 것으로 생각됐다. 그런 조치들의 이행은 구조 개혁 동안에 구조조정의 효과에 완충재를 대고 구조조정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촉진하려고 빈민과 취약자들에게 구제를 제공할 필요성 때문에 추진됐다. 그런 조치들은 대개 임시적이고, 파편적이며, 욕구에 기반한 틀에서 빈민과 취약자들을 겨냥했다.”

29. 세계은행의 입장은 “정치적”이 되지 않고도 인권 존중을 옹호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한 오랜 거부감에 끌려가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이 선호하는 처방은 인민의 역량강화보다는 경제학자와 행정가들이 감독한 것들이고,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한 경고나 안전장치가 없는 가운데 보편적인 적용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들이고, 경제 정책 입안가들의 선택을 구속할 사회적 보호에 대한 권리의 법적 확립에 대한 반감이다.

30. 그런 접근방식의 결과는 엄청나다. 첫째, 보편적인 적용을 성취하려는 열망보단 선별성을 위한 복잡한 시스템이 우세할 것이다. 둘째, 보호의 수준이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 것이다. 셋째, 사회안전망은 일반적으로 법으로 보호되지 않으며 따라서 극빈자들은 변덕스런 정책 경향에 아주 취약할 것이다. 넷째, 인권의 차원은 사실상 사라진다. 사회적 보호는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성과 생산성을 이유로 옹호되는 자선 사업에 머물 것이다. 따라서 역량강화의 차원은 사라지고 권리에 기반한 접근틀의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결국, 시간이 가면,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은 점차 주변화되고 그것의 힘은 파괴될 것이다. …

사회적 보호와 인권의 연결 보장

34. 국제인권법의 어느 것도 “사회적 보호에 대한 권리” 그 자체를 언급하고 있지 않기에 이것을 기존의 인권으로 간주할지 아니면 새로운 권리로 간주할지의 문제가 생긴다. … 국제사회의 기준이 된 접근은 “사회적 보호는 다수의 국제법에 담긴 인권”이란 정식으로 가장 잘 요약된다. … 사회적 보호에 대한 권리는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와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두 권리를 하나의 개념으로 묶었다는 것은 중요하다. 두 권리간의 상승효과를 고양하고 공유하는 목표 성취를 위한 조치들의 일괄적인 발전을 쉽게 하기 때문이다.

결론

50.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에 대한 옹호는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첫째, 현실은 많은 국가들에서 빈곤을 철폐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없다는 것이고, 우선순위에 있어서의 큰 변화가 없으면 상황은 기껏해야 양적으로만 나아질 것이다. 재정적 한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비극이기는커녕, 극빈의 지속은 다른 목표를 우선시하기로 선택한 핵심 행위자들의 고의적이고 의식적인 결정의 결과이다. 각한하게 사는 사람들은 영향력이 없고 그들의 경제적 지위는 정치적 소외를 반영한다. …

51. 둘째, 필수불가결한 조치는 사회적 보호에 대한 인권이 있다는 것을 핵심 행위자들이 명백하게 인정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

52. 셋째, 기술적인 해결책들은 얼마나 혁신적이고 통계에 따른 것이든 간에, 그것들이 돕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역량을 진정으로 강화하는 게 아니라면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 빈민에 대해 우리는 너무 자주 정치가들이 하는 말을 듣는다. 게으름, 무능력, 거짓이 됐건 뭐가 됐던 간에, 정치인 등은 대개 빈민을 비난한다. 그런 부당한 선입견은 빈민을 판단하고 어떻게 하면 최소로만 제공할 것인가를 고안하는 기술적 접근을 선호하는 또 다른 정당화의 구실이 된다. 케인스가 상기시키듯이, 결국 우리 모두는 죽는다. 극빈상태의 사람들은 훨씬 빨리 죽을 것이고, 장기간의 해결책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기간의 역량강화와 존중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공통의 인간성, 공유하는 책임, 그리고 인간 존엄성의 중심성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인권오름 제 415 호 [기사입력] 2014년 11월 13일 17:43:4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271 호 2011년 10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역자 주]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이 올해 8월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발췌 소개한다. 이 보고서에서 특별보고관은 빈민을 처벌하고 분리하고 통제하는 법과 규제와 관행들을 분석한다. 이런 조치들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증가해왔고 경제 위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강화되고 있다. 빈민을 범죄시하고 처벌하는 국가와 사회세력의 방식은 상호연결된 다차원적인 것이다. 특별보고관은 이런 방식을 크게 네 가지로 분석한다. a) 빈민이 공적 공간에서 생계유지행위를 하는 걸 부당하게 제한하는 법과 규제와 관행, b) 공적 공간의 고급주택화와 민영화와 관련된 도시계획 규제와 조치들, c) 빈민의 자율성, 프라이버시 및 가족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조건의 강화, d) 빈민의 자유와 개인적 안전을 위협하는 구금과 투옥을 과도하고 자의적으로 이용. 보고서의 원문은
http://www.ohchr.org/Documents/Issues/Poverty/A.66.265.pdf
에서 볼 수 있다.

I. 도입

이 보고서에서 “형벌화 조치”란 빈민을 처벌하고 분리하고 통제하며 빈민의 자율성을 해치는 정책, 법 및 행정 규제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다.

II. 빈곤의 현실: 낙인찍기, 차별, 형벌, 배제

형벌화 정책은 빈곤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그들이 고통 받고 있는 광범위한 차별과 그로 인해 상호 재강화되는 불이익에 대한 무지를 반영한다.

형벌화 조치는 빈민이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자녀들의 건강과 교육에 무관심하며 부정직하고 가치 없으며 심지어 범죄자라는 차별적인 편견에 따른 것이다. 빈민은 스스로의 불운을 자초한 이들로 그려지며 단지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상황을 치유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편견과 선입견은 편향되고 선정주의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강화된다. 그런 언론들은 홀어머니, 인종적 소수자, 이주자 등 복합적인 차별형태의 피해자들을 특히 표적으로 삼는다. 이런 태도들은 아주 뿌리 깊어서 정책입안가들로 하여금 빈민이 빈곤상황을 극복할 수 없도록 저해하는 구조적 요인들을 다루지 않게 한다.

차별과 낙인의 결과로 빈민은 공공당국에 대한 공포와 심지어 적개심을 갖게 되며 빈민을 원조해야 하는 제도들에 대해 거의 신뢰를 가질 수가 없다. 흔히 정책입안가, 공무원, 사회복지사, 법집행공무원, 교사와 보건 종사자들은 빈민을 불신하거나 생색내는 태도로 다루며 빈민 스스로의 생활증진 노력을 무시하고 지원하지 않는다.

낙인과 편견적 태도는 수치감을 양산하고 빈민으로 하여금 공무원에게 접촉하는 걸 꺼리게 만들고 필요로 하는 지원을 구하지 않도록 만든다. 사회가 낙인을 찍은 서비스에 접근하여 더 큰 사회적 차별에 노출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에 빈민은 식권, 보조금, 공공주택, 무상보건 등에 대한 청구를 삼가게 되고 그로 인해 분리는 더 강화되고, 빈곤이 세대를 통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강화하게 된다.

III. 국제인권의 틀

국제인권체계의 핵심 요소는 비차별과 평등이다. 이들 원칙은 동등한 환경의 사람들을 법과 관행에서 동등하게 처우할 것을 요구한다. 인권법 하에서 처우에 있어서의 모든 구분이나 차이가 차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구별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당성이 있을 때는 평등 원칙과 양립가능하다. 정당한 구별은 정당한 목적을 추구해야만 하고 채택한 수단과 추구된 목표사이에 균형적인 합리적 관계가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빈민에 대한 차별적 처우(구별, 배제, 제한 또는 선호)는 인권법 하에서 정당화될 수 있도록 앞서 언급한 기준을 따라야만 한다.

이 보고서에서 검토한 형벌화 조치를 묶는 공통 요소는 그것들이 앞서 언급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형벌화 조치들은 빈민의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향유와 행사를 무효화하거나 손상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빈민을 차별하고 있다.

IV. 인권의 향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형벌화 조치들

A. 공적 공간에서의 빈민의 행위를 제한하는 법, 규제, 관행

이들 조치들의 공통분모는 공적 공간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거나 “폐가 된다”고 간주되는 행위들을 형벌화하는 것이다. 국가는 위험하고, 공공의 안전이나 질서와 갈등하며, 그 공간이 의도한 정상적 활동들을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형벌화 조치를 정당화한다.

노숙인과 구걸을 불법화하고 있다. 이런 법들은 야간 구걸을 금지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로 구걸하는 걸 금지하거나 더 나아가 공연이나 춤, 상처나 기형적인 신체를 보이는 것 등을 금지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구걸의 현저한 수단을 전혀 보이지 않았더라도 단지 공공장소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법이 되기도 한다. 구걸과 배회의 금지는 평등과 비차별의 원칙에 대한 심각한 차별을 대표한다. 이런 조치들은 법집행공무원들에게 폭넓은 재량권을 줌으로써 모욕과 폭력에 대한 빈민의 취약성을 증대시킨다. 이들 조치들은 극빈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향한 차별적인 사회적 태도의 확산에 기여할 뿐이다.

국가는 또한 공공장소에서의 취침, 앉아있기, 누워있기, 쓰레기 버리기, 소유물 보관하기, 노상 음주, 노상 배뇨, 무단횡단 등 거리 생활과 결합된 행위들을 형벌화하고 있다. 이런 조치들이 빈민만을 향한 것은 아니지만, 빈민에게 불균형하게 영향을 끼친다. 집이 없기 때문에 빈민은 일상 활동을 공공장소에 과도하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거리에서 사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들이 형벌로 제재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비록 이런 유형의 조치들이 외관적으론 중립적이지만, 연구조사들이 보여주는 바는 당국이 가난한 사람들, 특히 노숙인을 표적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점상으로 생계를 도모하는 사람들을 형벌화하는 조치가 우려된다. 많은 국가들에서 거리행상은 심각하게 제한되거나 불법이며 거리행상에게서 물건을 사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연구에 따르면 노점상은 다른 수입원이 없고, 교육수준이 낮고, 구직 기회가 없기 때문에 행상을 하게 된다. 노점상은 생계를 도모하기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생계수단이다. 국가가 이를 엄격하게 금지하면 극빈자의 생존권을 심각하게 해치게 된다. 또한 노점 시간과 구획 등을 정하는데 관계 공무원의 재량권이 크기 때문에 노점상들은 법집행공무원, 조직폭력배 등의 위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B. 도시 계획 규제와 조치들

고급주택화 정책, 사회주택의 민영화, 재개발과 토지이용제한법 등의 채택을 통한 도시 변형은 빈민을 도심지역으로부터 더 멀리 이전하게 함으로써 주거권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도시를 더 “안전”하게 만들고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겠다며 국가들은 빈민을 배제하는 토지 사용, 가령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마을, 호화 고가 주택, 대규모 스포츠 시설 등에 우선권을 주는 토지이용제한법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재개발”, “역사문화유산의 보존” 등의 목적으로 마을 전체를 철거하고 거주자들을 퇴거시키고 개발프로젝트의 여지를 만든다. 그 결과로 이런 지역은 원주민이 되돌아와 살기에는 너무 비싼 곳이 되어버리고 더 싸고 더 불편하며 더 외딴 지역으로 주거를 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많은 경우 빈민들은 사전 고지 없이 강제 퇴거되며, 폭력과 소유물의 손상과 파괴를 경험하게 된다. 이런 정책들은 도시의 포괄성과 다양성을 심각하게 손상할 뿐 아니라 빈민에 대한 분리와 사회적 배제를 증가시킨다. 또한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 뿐 아니라 일할 권리,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등에 심각한 장벽을 대표한다. 공적 공간으로부터의 빈민 배제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의 대규모 행사와 연관된 프로젝트로 인해 더 배가된다. 가령 서울에서는 2002년 월드컵 준비에 도시의 특정 장소들에서 노숙인 금지가 포함됐다. 88년 올림픽 동안에는 노숙인이 도시 외곽의 시설에 구금됐다. 이런 조치들의 실제적 효과는 빈민과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그들이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접근할 수 없는 호텔, 스포츠시설, 사무실 빌딩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C.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에 대한 조건 강화

국가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 급부에 대한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공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거나, 대상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는 이유, 의존성을 피하도록 하고 일하지 않으려는 동기를 해소해 시스템 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이유들에 유효한 우려가 있을지 모르나 그 영향은 흔히 추구하는 목적에 완벽하게 비례하지는 않는다. 과도한 자격요건과 조건을 부과함으로써 국가는 빈민을 처벌하고 수치감을 주며 빈민이 당면한 상황을 악화시킨다. 더욱이 공적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의 수혜자들은 미래에 대해 불확실한 상태이며 장기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이런 조치들은 그 효과성과 경제적 효율성에 대한 증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인 낙인과 편견에 의존하고 있다. 자격요건과 조건은 흔히 강력한 가부장제적 태도로 지지되고 있다. 정책입안가들은 자신들이 빈민들의 최상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으며 빈민들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조치들은 수혜자의 자율성을 해칠 뿐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막는다. 수혜자를 감시하는 정책은 수혜자를 범죄자처럼 취급하며 죄책감과 분노와 수치를 느끼도록 만든다. 사회복지 급부를 운영하는데 국가들이 채택한 광범위한 통제와 감시 메커니즘은 사회복지급여 속여타기에 분명히 비례하지 않는 것으로 증거가 드러났다. 수혜자의 사기에 의한 것보다는 국가의 행정적 실수에 의한 것이 더 흔한 것으로 드러났다. 설령 수혜자가 더 많이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대개 사기라기보다는 실수이며 사기라 해봤자 적은 돈의 생계비일 뿐이다. 하지만 정책입안가들은 복지급부사기를 만연한 문제처럼 여기며 그것과 싸우기 위해 상당한 자원을 쓴다. 세금 사기보다는 복지급부 사기를 더 강조하는 정치적 수사가 불공정하게 압도적이며, 이런 일의 비용이 국가에 더 큰 부담이 된다.

D. 과도하고 자의적인 구금과 투옥의 이용

법집행공무원들이 “빈곤”, “홈리스” 또는 “취약함”을 범죄성의 지표로 흔히 사용하기 때문에 빈민은 불공정하게 높은 빈도로 형사법체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빈민은 형사법체계 속에서 버텨내기에 상당한 장벽을 겪는다. 그 결과 불공정하게 많은 수의 빈민과 배제된 사람들이 체포, 구금, 투옥된다.

V. 결론과 권고

빈곤은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상황이며, 직간접적으로 빈민을 처벌, 분리, 통제하거나 해치는 조치들로서는 빈곤이 악화되고 만연될 뿐이다. 이런 조치들은 광범위한 인권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빈민의 능력을 크게 해치며 빈곤과 배제의 악순환을 심화하고 지속시킨다.

빈민이 처한 상황들로 인해 그들을 형벌화하기 보다는 국가는 빈민이 식량, 주거, 고용, 교육 및 보건 서비스에 접근하는데 당면한 법적, 경제적, 사회적 및 행정적 장벽을 제거하는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희소한 자원을 비용이 많이 드는 형벌화 조치에 바치는 대신에, 국가들은 최대한의 가용자원을 빈민이 모든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시민적 및 문화적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방향으로 돌려야만 한다.

 

<인권오름 제 271 호 2011년 10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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