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415 호 [기사입력] 2014년 11월 13일 17:43:4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줄지어 서있는 큰 무리의 사람들이 있다. 그걸 볼 때 갖은 생각이 든다. 오지 않는 버스 등을 기다리는 줄이라면 모두가 경쟁자로만 보이고 귀찮기만 하다. 배고플 때 밥을 위해 늘어선 줄이면 화가 치솟기도 한다. 토론회나 공연 등에 간 것이라면 나와 통하는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 반갑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알아서 각자 사는 소위 ‘자율적’인 개인들이 모여 있을 뿐이다. 때론 그 무리가 나를 쳐다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다. 뭔가 나를 겨냥하여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꾸미는 것 같다. 나를 향한 무리의 시선이 두렵고 신경 쓰인다.
아주 어쩌다 나와 같은 하늘아래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나의 생계, 일, 건강 등 삶의 중요한 문제들이 저들과의 관계에 있다. 밥이 되고 지붕이 되고 약이 되는 관계들, 내 삶의 불안을 함께 책임져야할 생각과 실천이 그 관계들로부터 나와야 한다. ‘한국 사회가 과연 사회인가’란 질문이 자주 나오는 걸 보면 후자의 생각은 허약하기 그지없다. 사회적 시선과 평가는 혹독하기만 한데 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이고 공통의 해결책을 구하는 시도는 궁색하기 때문이다.
인권에서 ‘사회적 권리’라 일컫는 것은 개인 단위로 대처하기 어려운 삶의 불안을 공통의 문제로 여기고 대처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회적 권리는 미끼이면서 낚시를 끝낸 후에는 입을 닦는 용도로 이용되는 일이 많다. 선거 때의 화려한 공약들은 사회적 권리를 동원한 그럴듯한 수사로 채워지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권리보장과는 정반대의 방법을 택하면서 어쩔 수 없는 경제적 선택으로 정당화한다.
필립 알스턴(Philip Alston) 교수는 사회적 권리의 대표적 연구자이면서 유엔의 인권 전문가로 활약해왔다. 올해 중순에는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을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은 기본 소득 보장과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접근 보장을 목표로 한다. 이 보고서에서 특별보고관은 사회적 보호가 경시된 이유를 검토하고 이 개념의 전개를 추적한다. 또한 사회적 자원의 할당에 관한 의미 있는 토론에 인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들이나 북반구의 힘센 기구들이 인권의 언어를 회피하는 것은 보편적이 아니라 선별적인 제공, 권리의 보장이 아닌 완충제로서의 시혜에 치중하려는 시도라고 본다. 따라서 ‘사회적 보호는 인권이다’란 것을 정부 책임자 등에게 명백하게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치라고 한다. 인권이 빠진 위기관리수준의 대응은 사람을 솎아내려는 복잡한 시스템을 낳고, 극히 낮은 수준의 보호에 머물고, 법적 보호가 아닌 변덕스런 정책 경향에 휘둘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알스턴은 10월에 세계은행에서 연설하기도 했다. 알스턴은 장밋빛 번영을 전망하는 세계은행 총재(한국인인 김용이다)의 연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재분배의 필요성도, 공정하고 공평한 과세 제도의 필요성도, 국제적 조세 회피를 차단할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걸 말하는 대신에 경제 성장을 통해 개인 소득이 늘어날 것”이라 했다. 그렇게 되면 “성평등, 음식, 주거, 깨끗한 물, 위생, 건강보호, 교육과 직장에 대한 저소득 사람들의 접근권이 향상될 것”이라 했는데 알스턴의 비판 요지는 ‘결론은 인권보장이면서 그걸 위한 방법은 하나도 얘기 안 한다’는 것이었다. 알스턴의 세계은행에 대한 비판을 한국 정부에 대한 것으로 바꿔 생각해도 별 문제 없을 것 같다.
바람이 매서워졌다. 사람들의 온기를 모으는 일이 절실한 때이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특별 보고관 보고서(2014년 8월, A/69/297) 3. 사회적 보호 최저선 이니셔티브(The Social Protection Floor Initiative)의 기원과 개념의 발전 경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려고 꾸민, 헌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의 또다른 사례가 아니냐고 생각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보호 최저선은 새롭고 중요한 것이다. 첫째, 그것은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와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 인권의 구조 안에서 시들했던 이 두 권리를 잘 작동하게끔 종합했다. 둘째,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정부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국제정책사회와 남반구에서 떠오른 실제적인 실천들의 반성적 학습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셋째, 인권규범과 경제적 현실간의 격차 또는 불친화성을 생각하기보다는, 개념으로서의 사회적 보호는 감당성을 고려하고 경제적 생산성 증진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위해 세심하게 설계됐다. 넷째, 다른 어떤 사회적 인권의 경우보다 훨씬 이것은 인권 영역 바깥에서 왔고, 실현 증진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훨씬 광범위한 행위자들의 연대를 기대한다. |
인권오름 제 415 호 [기사입력] 2014년 11월 13일 17:43:4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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