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91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2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먹는 것 갖고 치사하게”란 말을 일상에서 흔히 쓰고 들을 수 있다. 이 말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은 곧 사회로부터의 ‘배제’라는 뜻과 통한다. “굶주림은 배제”라는 말은 식량권을 다루는 국제단체들의 성명과 보고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용구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브라질 출신의 기아퇴치운동가 호세 드 카스트로인데 그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굶주림은 배제”라는 말은 1950년 그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한 연설에서 나온 것이다.
결식아동은 곧 굶주리는 아동이라는 뜻이고, 저 멀리 아프리카 난민이 아닌 풍요한 대한민국 속에 굶주리는 아동이 있다는 점에서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말이다. 카스트로의 말처럼 굶주림은 ‘금기시’ 되는 단어이고 공적으로 토론하기를 꺼려하는 주제일지 모른다.
최근 보편적이고 건강한 무상학교급식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늦었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지만 말이다. 선별적으로 무상지원을 하는 상황에서는 낙인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상성 뿐 아니라 건강성을 생각하자면 학교의 식당 사업 같은 현재의 급식에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따라서 논의의 강조점은 권리의 ‘보편성’과 아동의 ‘건강’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상’이란 부분에 비틀어진 방점이 찍힌 듯하고, 사회적 연대와 아동권 보장이라는 근본 철학에 대한 나눔보다는 ‘가짜(로 배고파하는 아이와 가족)색출’에 열이 오른 듯하다.
학부모나 교사들과 인권교육을 진행하다보면 급식지도의 어려운 점이 자주 제기된다.
“돈을 낼 형편이 되는데 아이가 일부러 급식비를 안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밥 먹는데 먹지 못하게 할 수는 없어서 고민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급식비를 안낸 학생이 급식 줄에 서면 담당자가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해서 우리 학교에서도 고려중이라 한다.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우리 반에 형편이 어려워 식권을 지급받는 학생이 있는데 내가 업무에 바빠서 며칠 동안 챙겨주는 걸 깜빡했다. 그 학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창피하고 무안해서 교사에게 그걸 달라고 얘기하지 못하고 그냥 굶었을 아이의 심정을 생각하니 너무 서글펐다.”
“싸게 먹이려고 하는지 너무 자주 많이 인스턴트 튀김 류가 나오고 아이들도 그런 것만 먹으려 한다. 신선한 채소 같은 건 잘 나오지 않는데, 아이들이 채소는 거의 안 먹고 버린다. 그래서 급식을 같이 먹는 게 곤혹스럽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직거래하면 아이들 건강에도 좋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텐데, 대형유통회사 중심이라 그런지 그런 기미가 잘 안 보인다.”
이런 고민들 속에 바로 ‘보편적이고 건강한 무상학교급식’의 철학이 담겨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왜 학교 급식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 학교 급식의 개념에는 학교에서 먹는 음식만이 아니라 학교를 중심으로 취약한 가정에 전달되는 식량배분도 포함된다.
첫째 ‘영양’이다. 학교 급식이 조화로운 식단을 이루면 중요한 영양의 혜택을 줄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사회적 보호’이다. 학교 급식은 굶주림, 빈곤, 아동 착취의 순환을 깰 수 있다. 셋째 ‘교육’이다. 어떤 아동도 배고픈 채 공부에 집중할 수는 없다. 학교 급식은 가난한 가정의 아동이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남녀평등에도 도움이 된다. 학교급식은 여아에 대한 차별에 특히 집중하여, 여자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하고 교육과 미래를 가질 수 있게 한다. 넷째 지역사회의 증진이라는 부가적 효과이다. 가능하면 최대한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학교 급식에 사용될 때 지역의 발전과 소농에 도움이 된다. 학교는 많은 마을과 지역사회의 중심에 있다. 학교 급식은 교사, 학부모, 요리사, 아동, 농부, 지역 시장 모두를 연결시키는 아주 참여적인 프로그램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학교 급식이 지역빈곤퇴치의 무대가 됐다.
국제인권법에서나 한국의 주요 법에서나 기초교육단계에서의 무상교육을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왜 ‘무상교육’이냐 하면, 부모 또는 가족의 경제력 때문에 좌지우지 된다면 보편적 권리라 할 수 없고, ‘무상’이 아니라면 모든 아동에게 의무교육을 강제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가족의 경제적 지위, 사는 지역, 종교, 장애 등)을 가졌든 상관없이 모든 아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속에서 살아갈 기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본 교육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들, 즉 수업비는 물론 교복, 교재와 준비물, 주식과 간식 등은 사회 공동의 창고(공적 재정)에서 제공돼야 한다. 겉으로는 무상교육이지만 학교생활을 하는데 자부담할 요소가 많고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아동에게 부담과 차별의 요소가 된다면 그건 ‘무상교육’으로 위장한 ‘상품’(돈 주고 살 수 있는)이지, 아동의 교육권을 진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롯한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이다.
먹는 것 갖고 치사하게 굴지 말고,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굶주림에 대한 호세 드 카스트로(Josué de Castro)의 어록 굶주림은 배제이다. 땅으로부터 배제, 소득으로부터 배제, 일으로부터 배제, 봉급으로부터 배제, 삶과 시민권으로부터 배제이다. 한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면 그건 나머지 모든 것이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
인권오름 제 191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2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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