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시월도 중순이 지났다. 바람이 매서워졌다. 이맘때면 라디오 음악 채널에서 유독 자주 나오는 노래가 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잊혀진 계절>이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란 가사가 마음을 덥혀 준다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 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는 야릇한 추억과 슬픔을 부채질한다. 저마다 시월에 관한 사연을 터뜨릴만한 애틋한 계절…, 같이 기억하고 나누어야 할 사연 또한 적지 않다.
주말마다 일하러 가는 식당의 동료 한 사람은 나를 볼 때마다 “그 아줌마 아직도 못 내려왔어?”라고 묻는다. 그 물음에 나는 한숨으로 답할 뿐이다. 그리곤 생각한다. ‘벌써 일주일이 또 지났구나.’ 묻는 이가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안’ 내려온 것과 ‘못’ 내려온 것의 차이는 크다. 김진숙 씨는 ‘안’ 내려온 것이 아니라 ‘못’ 내려오고 있는 것이 맞고, 그것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었던 그 질문은 한 사람이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그리도 오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같은 사람으로서의 안타까움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주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더 무거웠을 것 같다. 8년 전 동료 김주익 씨가 그 크레인에서 목을 맨 날이 이번주 월요일이었다. 2003년 10월 17일 아침 9시경 129일째 홀로 고공농성 중이던 한진중공업노조 김주익 위원장이 목을 맨 채 발견됐다. 한진중공업은 2002년 3월부터 인력체질개선이라며 전체 노동자 가운데 25%인 650여 명을 강제사직시켰고 그때부터 시작된 임단협 투쟁이 해를 넘겨 계속됐다. 2003년 6월 노동부 중재로 임금교섭과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의 원만한 처리 등이 잠정 합의됐지만 사측의 불이행으로 물거품이 됐다. 이에 김 위원장은 홀로 크레인 위로 올라가 항의 농성을 시작했던 것이다.
한진 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측은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노조에게 15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고, 노동자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미복귀 조합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을 묻겠다고 했다. 이미 앞서 수차례에 걸쳐 손배소송이 제기됐던 터라 노조는 조합비 전액을, 조합원들은 임금의 절반을 가압류 당한 상태였다. 게다가 김 위원장 등 노조간부들은 살고 있는 집까지 가압류 당한 상태였다. 손배‧가압류를 통해 사측은 이미 김 위원장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김주익 씨의 사망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는 9월 9일자로 되어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유서를 품은 한 사람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 자기 소리를 듣고 달려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이다. 같은 시월에 떠난 이는 또 있다. 23일에는 대구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했고, 26일에는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전남본부장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고 외치면서 비정규노동자 대회에서 분신했다. 두 분 다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다 운명했다. 이해남 씨는 어렵게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과 해고와 수배에 쫓겨야 했고 사측의 노조파괴공작에 노조원들은 손배와 가압류에 시달려야 했다. 이용석 씨가 고발한 비정규직 차별은 동료들의 증언에서 터져 나왔다. ‘정규직의 60%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다’, ‘정규직은 다 받는 식대나 출퇴근 교통비도 받지 못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부서 회의 때 부르지 않고 손님 오면 커피를 타는 것에서 사무실 걸레질까지 비정규직의 몫’, ‘정규직은 최고 90일까지 받을 수 있는 병가가 비정규직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아파서 병원에 가려면 임금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끝없는 차별의 사슬이었다.
그렇게 시월에 떠난 그들이 세상에 맞설 때는 사람들이 세상을 가리켜 ‘20 대 80’의 세상이라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금융가를 점령하고 있는 시위대들은 1% 대 99%의 싸움을 말하고 있다. 20 대 80이 1 대 99로 변한 것은 돈과 권력이 어디로 쏠렸으며 인간존엄성이 얼마나 황폐해졌는가를 한마디로 증언해준다. 저마다 다양성은 있다 할지라도 99인 사람들이 오늘날 외치는 것은 ‘함께 살자’가 아닐까? 함께 살지 않으면 그건 1인 저들이 100을 전부 가지게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이고 그건 끝이란 마지막 경고가 아닐까 한다. 김진숙 씨의 크레인은 함께 살아야 할 삶의 가치를 먼저 차지했고 점령했고 수많은 삶을 거기로 불러 모았다. 그에 화답하는 것은 김진숙 씨를 ‘못’ 내려오게 하는 장벽을 철수시키는 것이고 그게 ‘함께 살고픈’ 사람들이 점령해야 할 첫 번째 고지라는 걸 시월에 떠난 이들의 목소리에서 확인한다.
시월에 떠난 사람들의 유서 고 김주익 님의 유서 |
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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