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223 호  [기사입력] 2010년 10월 20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을 강도당한 노동자들의 호소(1978년 동일방직 노조) 류은숙

며칠 전부터 핸드폰 기계가 먹통이 됐다. 꼬박 6년을 쓴 기계다. 전화를 무지 싫어하는 나는 생활필수품이란 핸드폰을 장만하지 않고 버텼는데, 이를 보다 못한 아빠가 ‘사회생활 하는 사람이 그것도 없이 어찌 사냐’면서 억지로 만들어준 물건이었다. 지인들에게 악명 높은 통화습관으로 알려진, ‘응, 알았어, 끊어’외엔 별말 안하고, 번호 노출 안하고 너무 안 써서인지 한 기계로 6년을 버텼다. 기계가 다된 김에 아예 핸드폰을 없앨 것인가, 남들처럼 최신 폰을 장만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 중이다. 주변 사람들은 6년이나 한 기계로 버텼다는 걸 신기하게 여긴다. 뭐 그게 대수로운 일이라고. 그런데 말이다. 조심조심 쓴 기계도 닳아버리는 6년여 세월동안 한 자리에서 같은 소리를 외쳐온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구로디지털 산업단지에 자리 잡고 디지털위성방송기술의 선두주자임을 자랑해온 기륭전자를 상대로 6년여 다윗의 싸움을 펼쳐온 여성노동자들이 있다. 2005년 비정규직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분노해서 노조를 만들고 처우개선을 요구했다가 200여명이 해고됐다. 그때 비정규직 파견노동자들이 받던 임금은 그해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만 1850원이었다. 밥벌이도 밥벌이지만 인간대접을 받아봐야겠다고 싸움에 나선 게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요 며칠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인간의 극한을 시험하는 행동을 할 때만 잠깐 주목받을 뿐, 사람들의 시야밖에 있을 때가 더 많았다. 94일 씩이나 단식을 하기도 했고 서울광장의 16미터 무대 조명탑, 구로역 광장의 25미터 감시카메라(CCTV) 철탑 등에 오르기도 했다. 굶는 일이라면 진저리가 쳐질 텐데 얼마 전 다시 세 번째 단식을 시작했다. 협상이 또 깨졌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회사와 그걸 방치하는 정부에게 물러서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들이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굶고 밟히고 협박받고 손해배상 두들겨 맞으며 6년여 한 자리에서 외친 요구는 억울하게 해고됐으니 ‘일자리를 돌려 달라’는 것이고, 파견노동자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로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다. 내가 그 회사 다니면 그 회사 직원인 것으로 아는 일반인의 상식을 존중해 달라는 것이다. 자기들이 물러서면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견노동과 무노조, 무권리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기에, 강자는 언제나 이기고 챙기며, 약자는 언제나 지고 잃는다는 패배감을 벗어날 수 없기에 계속 가야한다고 말한다.

국제적으로 강조하는 ‘핵심’ 노동 기준이라는 게 있다. 시장에서 강자들의 횡포가 심해질수록 노동규범이 위협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런 가운데 결코 이것만은 건드려서는 안 되고, 이걸 지켜야만 다른 노동기준들이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취지로 세계정상들이 합의한 ‘핵심’ 기준이다. 여기에 속하는 항목은 달랑 네 가지다. 이걸 또 압축하여 두 개만 추려 보면, 그중 하나가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가 고용에서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이다. 세상의 노동인권기준을 압축하고 압축하여 남은 단 두 가지 핵심기준도 못 지킨다면 노동자의 다른 권리상태는 볼 것도 없이 빤한 것이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요구는 이 ‘핵심’에 해당한다.

많고 많은 노동자들이 이 핵심 노동기준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1978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절규를 담은 <인권을 강도당한 노동자들의 호소>이다.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소수의 남성들이 장악해서 기업주에 순응하는 어용노조에 맞서 자신들의 손으로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 만든 노조를 지키려 싸웠다. 이에 노조를 파괴하려는 사측은 깡패들을 동원해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세례까지 퍼붓고 공장 밖으로 내쳤다. 여공이라 불리던 그녀들은 부당함에 맞서 끈질기게 싸웠고 동일방직 투쟁은 서슬 퍼런 유신체제의 폭압에 맞선 대표적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이 호소문을 읽다보면 기륭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일들이 30여 년 전 선배들이 겪었던 일들과 겹쳐진다. 용역깡패들이 성적인 폭언과 폭력을 가하고 경찰은 폭력을 방관하고 사회불순세력의 사주를 받아 저런다는 회사 측의 선전과 정부의 외면까지 꼭 닮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닮은 게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이렇게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기륭노동자의 말이 “아무리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도 인간이다”는 동일방직 노동자의 선언과 만난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고 냉장고가 커지고, 티브이가 평평해져 화려해질수록 우리 일하는 사람들은 일회용 휴지보다 못한 처지로, 김치마저 먹지 못하는 서러운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는 지적은 “100억불 수출의 도구로 사용된 저희들은 1,000불 소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는 고발을 이어간다. 진짜 닮은 것은 이것이다. “비정규노동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있기 위해 싸운다.”며 “탄압 때문에 포기했다면 지금의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기륭 노동자들의 의지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와 같이 고통당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는 동일방직 여공들의 다짐을 빼닮았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핸드폰이 존재의 근거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디지털 세상이다. 인간과 세상의 소통을 돕는다는 디지털 세상을 만드는 디지털산업단지 노동자들의 태반이 비정규직이란다. 무소통과 무권리위에서 소통의 기쁨과 권리를 말하는 것이 참 이상해 보인다. 핸드폰 없이 살아볼까 생각하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는 대신 이런 걸 이상하게 봐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과 함께 자기 몸을 불사른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기륭여성노동자들에게는 새로운 장이 열리는 해가 됐으면 정말 좋겠다. 

인권을 강도당한 노동자들의 호소(1978년 동일방직 노조)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왔어도 똥을 먹고 살지는 않겠다.”
이 울부짖음은 지난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깡패들에게 당한 우리 근로자들이 똥물을 뱉으며 통곡하던 말입니다.

가죽장갑을 끼고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이 몇몇 깡패근로자들은 똥을 바께스로 들고 와 머리부터 뒤집어씌우고 손으로 찍어 투표하러 오는 저희들의 입속에 쑤셔 넣고 걸레에 묻혀 얼굴에 문대고 가슴에 집어넣었으며 똥으로 뒤범벅이 되어 눈도 못 뜨는 우리들 머리채를 나꾸어채 끌고 다녔으며 이빨로 입술을 물어뜯기도 했습니다. 이 기막힌 만행은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처하는 경찰들과 근로자의 고통을 대변한다는 섬유노조 본조 그리고 회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공공연하게 자행된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저희 동일방직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1972년에 어용노조를 우리의 손으로 선거를 통해 정상을 회복한 후 탄압, 감시, 징계 그리고 채찍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1976년 2월 대의원 선거 때부터 관의 노동조합 말살계획은 표면화되었으나 우리는 위협, 매수, 모략에도 굴하지 않고 이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30도가 넘는 땡볕아래서 물조차 마시지 못하며 밤낮없이 만 3일을 단식농성을 했고 경찰과 회사 측 깡패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질에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 저항을 했고 노조를 지키기 위해 수치심도 버렸으며 회사 밖에서 농성하던 우리의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채 72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50여명은 기절하고 14명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한 동료는 난폭한 경찰의 만행에 쇼크로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6개월을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저희들은 인권을 위해 구둣발에 짓밟혔고 경찰차 바퀴 밑에 드러누웠으며 휘두르는 몽둥이에 쓰러졌습니다. 경찰은 회사와 결탁하여 지부장을 공금횡령으로 뒤집어씌우는 공작을 하다가 실패를 하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우리들을 취조하고 빨갱이 년들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21일 아침 투표장인 조합사무실은 몇몇 술 먹은 회사 측 남자조합원들이 몽둥이로 다 때려 부숴놨고 투표하러 온 우리들을 구타하고 탈의장에 벗어놓은 옷도 모두 똥을 부어 놓았으며 회사 측 지부장 입후부자 박복례는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저년에게 똥을 먹이라고 지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눈도 못 뜨고 귀와 입으로 온통 똥을 먹은 우리는 영하의 새벽공기를 잊고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며 “아무리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도 인간이다. 우리는 똥을 먹을 수는 없다.”라고 가슴을 쥐어뜯었습니다. 치안유지를 위해 동원된 경찰들은 도와달라고 외치는 우리들에게 “야! 이 썅년들아 입 닥쳐 있다가 말릴 꺼야”하며 욕설만 퍼붓고 구경만 하였습니다. 이래도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일까요?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100억불 수출의 도구로 사용된 저희들은 1,000불 소득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똥을 먹어야 하는 인권유린의 현장에서 신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는 설움이며 고통입니다.

우리는 노동조합을 통해서 민주주의도 배웠으며
적어도 우리의 지도자는 우리의 손으로 뽑아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
회사 측의 꼭두각시에게 우리 노동조합을 넘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끝까지 싸워 승리할 것입니다.
정의는 쓰러지지 않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가 무릎을 꿇는다면 우리와 같이 고통당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권리를 포기하게 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힘찬 격려와 협조를 바랍니다.

전국 섬유노조 동일방직 지부. 1978.3.

인권오름 제 223 호  [기사입력] 2010년 10월 20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163 호 2009년 07월 29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역자 주>
2009년 7월 대한민국에서는 생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물도 밥도 변소도 의약품도 의사도 협상도 막혔다. 뚫린 것이란 최루액과 테이저 건, 비처럼 쏟아 붇는 공포이다. ‘노동자의 인권’이란 단어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 스스로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노동권을 인권으로서 고찰한 연구 보고서를 요약, 소개한다. 이 보고서의 원문은 http://www.du.edu/gsis/hrhw/working/2006/36-adams-2006.pdf 에서 볼 수 있다.

노동자의 인권: 핵심 노동권의 인권으로서의 성격과 구조에 대한 고찰

Labor's Human Rights: A Reveiw of the Nature and Status of Core Labor Rights as Human Rights(Roy J.Adams, McMaster University, 2006)

도입
인권은 모든 사람이 단지 인간임으로서 해서 갖는 권리이고 본질상 보편적이다. 설령 인권이 억압되거나 방임될 수 있을지라도 국가 또는 비국가 행위자가 법적으로 인권을 부여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빼앗아갈 수도 없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표현에 따르면 인권은 모두가 모두에게 진 의무이다.

권리의 종류로서 노동권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두 개의 의미를 지닌다. 넓은 의미에서 노동권은 국제인권장전에 포괄된 노동자의 권리를 포함한다. 좁은 의미에서는 흔히 노동조합의 권리로 언급되며, 이것은 노동조건의 수립에서 집단적 목소리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에 집중한다.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협상할 권리로서의 결사의 자유와 고용 영역에서의 결사의 자유의 명시는 현대의 세계적인 인권 체제의 수립보다 앞선 일이다. 지구적 관심사의 초점인 인권의 유산은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결사의 자유는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의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보편적 권리로 분명하게 인정돼 있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훗날의 세계인권선언에 영감과 지침을 제공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일부 국가에서 결사의 권리와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가 인권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정치 체제의 변화에 따라 확대되거나 줄어들 수 있는 제정법적 권리로 취급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고용 영역에 결사의 자유로 명시된 단체 협상의 인권적 성격

결사의 권리와 자신의 고용조건을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가 왜 인권으로 선포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정치경제적 제도의 발전을 고찰해야 한다.

노동권은 재산권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18, 19세기 산업혁명 동안 자본을 공급하고 기업을 시작한 자본가 기업가가 생산과정의 최종 산물을 소유한다는 관례가 일반적으로 수립됐다. 이속에서 개별 노동자는 임금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거나 자본가에게 고용되는 노동계약 시스템이 존재하게 됐다. 관례적으로 기업가가 최종 산물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1800년경까지 일반적으로 인정된 바는 원자재를 보다 가치 있는 산물로 변형시키는 일차적 요소는 노동이라는 점이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누군가가 나무로 시작하여 의자로 마쳤다면 나무의 가치가 증가된 것은 무엇보다도 최종 산물에 녹아든 노동 때문이다.

산업혁명 과정에 농민들의 땅에 머물 권리와 거기서 먹고 입으며 살만한 양의 산물을 받을 수 있는 봉건 규범은 깨졌다. 자유노동이란 스스로 하는 것이며, 그것의 유일한 의무란 임금 계약을 이행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개별 노동자의 협상력은 자본가의 그것에 비해 아주 열악하기 때문에 임금 협상은 흔히 빈곤과 불안의 상태로 귀결됐다.

이런 조건에서 터져 나온 것이 ‘노동운동’이었다. 노동운동은 19세기의 공통되고 점증하는 현상이었다. 이 운동의 지배적인 흐름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주요 목적을 가졌다. 정치 영역에서의 민주주의는 피지배자에게 선출되는 정부와 피지배자에게 책임지는 정부를 의미하게 됐다. 사회주의는 사회의 생산역량을 자본가를 위한 이윤 생산의 장치가 아니라 인민의 이름으로 국가가 소유하고 만인의 이익이 되도록 운영하는 것이었다.

서유럽에서는 노동과 자본 간의 국가적 타협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작동했다. 이런 타협의 가장 공통된 형태는 노동측이 자본 측의 생산을 조직하고 주도할 권리, 소유권과 이윤을 취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반면 자본 측은 노동자의 결사의 권리, 노동자 스스로가 선택한 대표자를 통해 계약 사항을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었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적 및 사회적 정책에 대해 자본과 국가와 함께 결정할 권리의 인정이었다. 노동과 자본은 사회적 동반자가 될 것이라 말하게 됐다.

ILO의 지도를 통해 유사한 지구적 타협이 발생했다. 노동, 기업, 정부 대표자들이 ILO 연례 노동 회의에서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 협약에 합의하게 됐다. 그 후로 이들 협약에 담긴 원칙은 거의 모든 국가에 의해 인준됐고 ILO는 적극적으로 이를 증진했다. ILO 기준에 따르면 노동은 조직할 권리, 노동의 조건을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 경제사회정책의 결정과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이들 기준이 완전히 존중된다 할지라도 노동자에게 인권을 제공하는지는 여전히 문제이다. 적어도 두 개의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조직하고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는 조직과 단체협상을 안 할 권리도 포함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되고 따라서 집합적 대표성의 부재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둘째, 생산을 조직하고 지도하며 생산과정의 결과를 소유할 자본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협약은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노동자의 권리가 완전히 존중되려면 단체협상을 넘어서 경제적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로 나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첫 번째 부류의 해석은 잘못됐다고 본다. 단체 협상은 노동조합주의와 긴밀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권리가 단체 협상을 안 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으로 결론짓기 쉽다. 하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면 두 권리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다수의 유럽 국가들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단체협약에 의해 포괄되는 상황이지만 큰 비율의 사람들이 노동조합원이 아니다. 공통적으로 협상권을 부여받은 노동조합들은 관련 협상 상황에서 ‘가장 대표성’있는 것으로 지명된 노조들이다. 결사에 참여할 권리 또는 하지 않을 권리는 자유를 강화하는 반면에, 단체협약을 자제할 권리는 자유, 민주주의,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작업장에서의 노동자 대표성이 없는 기업에서는 고용주는 명령하고 노동자는 해고의 고통 때문에 그것들을 실행해야 한다. 복종을 위해 고용된다는 바로 그 사실이 노동자에게서 일종의 자율성 또는 책임성을 빼앗는다.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복종할 것이 요구되는 고용주의 도구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의 상황은 자유의 심각한 축소로 나타난다. 요약하면 고용주는 자율성, 책임, 자유 없이 지내겠다는 약속을 노동자에게 받아내는 것이고, 이런 자질 없이 존엄성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유지를 옹호하는 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노동조건이 단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고용주가 개별적으로 협상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전형적인 노동자의 협상력이 고용주의 그것에 비해 아주 열악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결과는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의 양자택일’일 뿐이다. 또한 어떤 규모의 기업에서든지 임금지불시스템 등 광범위한 노동조건은 집단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지 개별 협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혹자는 이런 힘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가치란 노동자가 그런 제안을 수락하는데 있어 자유롭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인권에 대한 존중이 외관상의 자유가 축소되는 걸 필요로 한다. 가령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노예로 팔수는 없다. 왜냐하면 노예의 조건은 인간의 기본적인 인간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고용과 자발적인 노예간의 유사성은 강력하다. 두 시스템 모두에서 인격의 존엄성에 대한 인권에 상반되는 조건에서 사람이 자기 자신을 타인의 통제 하에 둔다. 결과적으로 19세기의 노동권 옹호자들은 일방적인 고용주 통제하의 고용을 일컬어 ‘임금 노예제’라 했고, 그런 지위에 강제로 들어가든 자발적으로 들어가든 간에 노예제에 대한 반대처럼 윤리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지위로 봤다. 노예는 그럴 수 없는 반면에 고용 상태에서는 개인이 계약을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안적인 고용기회라는 것이 자신을 또 다른 자본가의 일방적 통제 하에 두는 것밖에 없는 경제 체제에서 둘 사이의 차이성은 구조적으로 사라진다. 계약이 자유이고 자발적이냐와 무관하게 ‘X가 Y의 도구가 될 것에 동의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틀렸다’.

국제체제에서 ILO는 결사의 권리와 단체협상의 권리의 구체적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구로서 지명돼왔다. 특히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다음을 포괄하는 권리를 수립했다.

1. 노동자의 조직을 결성하거나 가입할 권리
2. 스스로 선택한 지도자를 선출할 권리
3. 노동자 조직이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개발할 권리
4. 노동자 조직을 통하여 고용주에게 집단적 항의를 할 권리
5.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조직을 인정하고 단체협약에 도달할 목적으로 선의로 협상할 고용주의 의무
6. 교착상태의 경우 노동자의 파업권

ILO 원칙과 규범에 따르면 국가는 가능한 최대수의 노동자가 이런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표를 갖고 이런 개념의 단체협상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책임을 진다. 또한 국가는 상호관심사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 목적으로 경제사회정책에 관해 노동자 조직 및 고용주 조직과 협의할 적극적인 책임을 진다.

국제인권규범에 대한 준수 이끌기

국제인권장전에 규정된 권리 중에 노동자의 권리로 간주될 수 있는 권리의 범주는 아주 넓다. ILO의 1998년 ‘인권으로서의 노동에서의 기본원칙과 권리선언’에 규정된 다섯 개의 ‘핵심적인 노동권’은 인권장전에서 언급된 것들이다. 다섯 개의 핵심 권리란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아동노동․노예제․기타 형태의 강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소극적 권리)와 결사의 자유의 권리, 조직할 권리, 단체협상을 할 권리(적극적 권리)이다. 국제인권장전에 규정된 추가적 권리는 공정한 임금과 존엄한 생활을 제공하는 임금에 대한 권리,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 유급휴가의 권리, 합리적인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임산부 유급휴가의 권리, 파업권이다.

적절한 상황에서 노동권으로 간주될 수 있는 또 다른 권리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로부터의 자유,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옥되지 않을 자유이다. 이들 권리는 강제노동이나 아동노동과 결합돼 흔히 위반된다. 평화적 집회의 권리는 파업권과 긴밀히 연관된다.

앞서 말했듯이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를 증진하는 주요기관은 ILO다. 핵심 노동권에 대한 1998년 ILO의 선언은 1995년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의 결과이다. 정상회의는 핵심노동권의 인권적 성격을 선포하고 그에 대한 준수를 촉진할 것을 ILO에 촉구했다. 1996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생겼고 노동권 옹호자들은 회원 자격으로서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조항’을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WTO는 핵심 노동권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 문제를 ILO에 위탁했다. 골칫거리는 기업을 규제하는 문제이다.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 등 여러 지침은 ‘자발성’을 요구할 뿐이다. 최근 몇 년간 보다 강제적인 규제를 향한 움직임이 있으면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은 아동노동, 강제노동, 고용 평등을 서둘러 기구의 결정에 포함시켰지만 노동조합의 권리를 수용하는 데는 느리게 움직였다. 한편 민간단체들은 기업들의 ‘자발적’ 선언에 만족하지 않고 외부의 조사자들이 기업의 관행을 조사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국제노동기준에 기반한 규범 형성을 과제로 삼거나 기업행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토록 하거나 투자 결정에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를 반영토록 하는 등의 일을 과제로 삼는 독립 기구들이 급성장했다. 이런 실험들이 지난 이십 여 년 간 상당히 있었지만 이런 노력의 영향을 평가하는 기술은 아직 개발 단계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과 인권문제 전문가들은 핵심 노동권이 기본적 인권이란 것에 대한 강력한 합의에 도달했다. 또한 핵심 노동권의 인권적 성격은 철학적으로나 종교이론에서나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다.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과 기업, 사회의 여타 단위는 이들 권리를 준수하기 위해 도덕적 및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인권오름 제 163 호 2009년 07월 29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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