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55 호 [기사입력] 2009년 06월 0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귀농한 후배들이 있다. 농사일도 버겁지만 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땅이다. 부재지주들이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땅을 잘 빌려주지 않는단다. 용케 땅을 빌리더라도 지대를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지난 농사는 수지가 맞지 않았고, 서울에 올라와 겨울 내 품팔이를 해서 간신히 지대를 모아 올 농사를 지으러 갔다.
별 비싼 재료를 쓰는 것 같지도 않은데 값은 만만치 않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음식 가격에 입이 비죽 나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주인 편을 드는 사람이 있다. "임대료를 생각해보라고, 이 지역에서 장사해서 월 임대료라도 뽑겠냐고,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인권단체를 운영하면서 제일 힘든 날은 월세 내는 날이다. 임대료를 내고 나면 통장에 잔고가 거의 남지 않는다. 그렇게 한 달을 버티다 보면 또 월세가 돌아온다. ‘앉아서 돈 버는 주인은 좋겠네’라는 생각이 물씬 밀려든다.
세계인권선언 등 많고 많은 인권기준에 대해서 혹평하는 의견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땅’에 대한 권리를 얘기하지 않는 권리선언은 종권선언일 뿐이라고. 땅은 만인의 것이고 누구의 것도 될 수 없다는 주장은 인권의 역사에서 끊이지 않는 주장이었고 가장 혹독한 탄압을 받은 인권침해 사건을 기록해왔다.
땅 없는 농업노동자들의 토지점거 투쟁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땅을 위한 투쟁 속에서 학살된 농민들의 비극을 담은 노랫말이다. 브라질의 ‘땅 없는 농업노동자 운동’(MST: The Movement of the Landless Rural Workers, 이하 MST)의 땅을 위한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 농업노동자의 희생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1996년 4월 17일에 벌어진 엘도라도 카라자스 학살의 충격은 컸다. 이 학살의 참상은 노랫말에 잘 담겨져 있다. 요약하자면, 경작되지 않는 대농장을 점거한 농민들이 합법화를 요구하기 위해 주의 수도로 행진하고 있는데 경찰이 이들에게 총질을 한 것이다. 이미 쓰러진 사람에게 확인사살까지 했다. 19명이 죽고 60여 명이 심각하게 다쳤다. 그러나 학살에 참여한 경찰 155명은 여전히 자유이다. 6년 전의 마지막 재판 이후 단지 두 명이 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한 후 자유의 몸으로 지내고 있다. 결론은 오늘날까지 학살에 대한 처벌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배경이 된 MST 운동에 대해 살펴보자. MST는 1985년 설립됐다. 땅 없는 농민과 농촌노동자의 투쟁을 내세운 이 운동이 요구하는 것은 거대 자본가들의 투기자산으로 놀고 있는 땅을 정부가 적절한 보상으로 인수하여 땅 없는 농민에게 분배하라는 것이다. 이들의 직접행동은 그런 놀고 있는 땅을 점거하고 정부에 공식적인 점유권의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2백만 헥타르의 땅이면 브라질 농촌의 2십만 가족이상이 살아갈 수 있다.
남미에서 가장 큰 나라인 브라질에선 인구의 1%인 거대지주가 땅의 44%를 소유하고 있다. 농지는 4억 헥타르 중에 단지 6천만 헥타르가 경작되고 있고, 경작되는 대부분도 지역민의 먹거리가 아니라 돈 벌리는 커피, 면, 대두, 과일 같은 수출작물을 재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촌지역 농민들의 상황은 도시지역보다 훨씬 열악하다. 브라질의 기대수명은 60살인데, 농촌지역에서는 47살로 낮아지는 반면 유아사망률은 두 배이다. 성인인구의 26%가 문맹인데 비해 농촌지역의 문맹은 42%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초국적 기업농과 대토지 자본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농민들을 파산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에 토지 점거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농업노동자, 소작농, 차지농, 실업노동자들이다. 자본가 지주들은 무장 폭력배와 경찰을 동원해 농민들을 강제 퇴거시키려 한다. 연방 경찰에는 무토지 농민을 점담하는 부서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 가톨릭 인권단체에 따르면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 간 거의 천명에 달하는 농민과 이 운동의 지지자들이 강제퇴거과정에서 살해됐다. 하지만 MST는 깨지지 않았고, 수천가구를 정주시키는데 성공했다. 점거 토지는 점유권 합법화를 기다리고 있다. 점거토지의 합법화 이후 정착지는 수출작물이 아닌 기본 작물을 기를 수 있다.
카라자스 학살과 세계농민투쟁의 날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카라자스 학살은 전 세계 농민운동 속에서 기억되고 있다. 국제적인 소농 조직인 비아 캄페시나(Via Campesina)는 이 날을 ‘세계 농민 투쟁의 날’로 선포했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전 세계 농민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도시로 이주하고 싶지 않다(우루과이 시인 Zitarroza의 표현)”며 농업의 중요성과 그와 관련해 추구할 가치를 외친다. 또한 2000년부터는 ‘농민의 권리선언’ 채택을 추진해왔고, 올해 내에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이 선언을 채택할 것과 이후에는 ‘농민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을 채택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비아 캄페시나에 따르면 농민의 권리선언을 추구하는 배경은 이렇다. 전 세계의 거의 절반이 농민이고 소농이며 그들이 생산하는 식량이 사람들의 생활을 지탱하고 있다. 농업은 단지 경제활동이 아니라 삶, 문화,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농민들은 먹고살 권리를 사수하기에 싸워야 한다. 해마다 수천여 농민 지도자들이 땅, 물, 자연자원을 지키려 했다는 이유로 체포당하고 있다. 학살, 비사법적 살해, 자의적 체포와 구금 등이 흔하게 벌어진다.
가난한 농촌의 가족들은 구조적인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의 75%다. 문맹률은 증가하고 있고, 건강보호와 공공서비스는 사라지고 빈곤은 늘어나고 있다. 여성과 아동의 고통은 더 크고 여성을 향한 차별은 어깨에 지워진 짐을 배가시키고 있다. WTO, IMF, 자유무역협정 등은 수출을 위한 작물을 생산하도록 강요하는 농업자유화와 기업농 형태의 생산을 강요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난 수십 년간 세계의 농민들은 대규모로 사라졌고, 한줌밖에 안되는 대규모 초국적 기업이 식량생산과 무역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 정부와 국제기구들은 기업농을 지원하는 정책을 발전시켰고, 그 결과 투기꾼의 손에 맡겨진 식량이 현재의 식량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재산권을 인권의 제일로 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재산의 성격을 불문하고 ‘권’으로 옹호하는 경향이 있다. 재산의 성격을 불문한다는 것은 큰 기업의 재산이나 노동자의 재산을 같은 것으로, 초국적 기업농이나 대지주의 토지재산을 일 개 촌부의 재산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격을 불문하고 같은 것으로 취급할 때 큰 재산이 공룡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공익과 무관하게 또는 공익을 해치면서 제 맘대로 재산을 운영하는 것을 통제하지 못한다. 통제하려는 시도 자체를 권리의 이름으로 막아주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
재산의 성격을 구분하지 않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차별적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약한 사람들이 재산권을 주장하면 ‘밥그릇 싸움’이라 폄하하면서 큰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주장하면 정당한 ‘권’이 되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옹호해야할 권리로 떠받드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 한겨레 신문에서 박수정 르뽀작가는 카라자스 학살과 용산을 같이 다루어 ‘용산학살’이라 지칭한 바 있다. 피해자들의 요구사항, 그에 대한 자본가와 정부의 대응, 경찰 폭력, 사법정의의 왜곡과 여론의 무관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의 미완 등 닮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카라자스 학살을 전 세계 농민 운동이 기억하듯이 땅에 매여 생존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와 기본적인 생존권을 귀히 여기기에 용산 학살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엘도라도 카라자스 1996년 |
인권오름 제 155 호 [기사입력] 2009년 06월 0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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