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12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책을 불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사람을 불태운다”고 시인 하이네는 읊었다. 인권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인권이 대규모로 침해될 때 그 전령사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것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이 하는 짓은 맘에 안 드는 표현을 불태워 없애버리거나 혹은 그전에 불태울만할 표현을 할 사람들부터 때려잡는 것이다. 창작물이 나오기도 전에 싹을 없애버리는 것이니 효율적이기 그지없다. 누구 말마따나 그야말로 ‘실용적’이다.
표현의 자유의 역사에서 ‘치욕’으로 기록돼 있는 것이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이다. 매카시라는 상원의원이 내 손에 공산주의자 명단이 있다고 떠들어댔고, 근거도 없는 그런 주장에 사회가 발칵 뒤집어져 빨갱이 색출에 나섰다. 영화인 등 수많은 표현의 생산자들이 애국심을 심사받는 청문회에 서서 양심을 까뒤집어 보이거나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W. 더그러스는 1939년부터 1975년까지 무려 36년간 미국의 연방대법원 판사를 지낸 사람이다. 그가 유명한 것은 그렇게 오래 그 자리에 있어서가 아니라 미국사회의 지배계급에게 눈에 가시 같은 소수의견을 일관되게 냈다는 데 있다. 그의 별칭은 ‘길들여지지 않는 더그라스’, ‘위대한 반대자’, ‘고귀한 소수 의견자’였다. 오늘 읽어볼 ‘민중의 인권’은 다름 아닌 매카시즘이 판치던 때에 쓰인 글이다.
인권의 역사에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조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찍이 프랑스 인권선언은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들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인쇄할 수 있다”고 했고, 올해로 60주년을 맞은 세계인권선언도 시민들이 사상·양심·표현의 자유를 행사함으로써 정부와 국가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자유주의자 밀은 사상의 자유로운 표현을 허용해야 할 근거로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묵살되고 있는 어떤 의견은 진실일 수 있다. 둘째, 만약 그 의견에 다소 거짓이 있더라도 일말의 진실을 담을 수 있다. 지배적인 의견 하나가 전체의 진실을 담을 수는 없기에 반대의견과의 충돌은 남아있는 진실이 공급될 기회를 보장한다. 셋째, 지배적인 의견이 총체적 진실이라고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지배적인 의견이 치열하게 논쟁되지 않는다면, 그 의견은 합리적 근거에 대한 이해나 느낌보다 편견에 의해 받아들여질 것이므로 가치가 떨어진다. 넷째, 독트린 자체로는 의미를 잃거나 사람들의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빼앗길 것이다.
나치즘이 책을 불태우고 결국에는 사람까지 불태운 야만을 저지른 후에 한 철학자는 “열린 사회는 사상의 개방과 기타 기본적 자유를 막으려는 세력들에 대해 영구적인 감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며 “자유의 대가는 영원한 경계”라 부르짖었다.
이런 표현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공통되는 주장은 자유로운 표현의 파괴는 언제나 독재자와 전체주의 국가의 첫 번째 행위라는 것이다. 글쓰기와 인권의 관계는 불가분적이다. 표현의 자유는 잠재적인 인권침해의 지표일 뿐 아니라 올바른 거버넌스의 기초이기도 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기에 ‘함량미달’, ‘용량부족’이란 별칭을 단 통치자가 있었다. 이 자는 수시로 사고를 치면서도 무대책일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비판을 끔찍이 싫어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엄중 대처하라’, ‘단호하게 대처하라’를 반복했다. 그래서 유권자 인민 사이에는 ‘무대책이 엄중대처’요, ‘난 아무것도 할 줄 몰라’가 ‘단호한 대처’라는 말이 떠돌았고, 그걸 참지 못한 통치자의 언론통제로 ‘엄중’하고 ‘단호한’이란 단어를 쓴 사람들이 표현의 세계에서 추방당했다. 가택수색, 출국금지, 구속 등 표현의 세계에 들이닥친 통치자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에 모두들 놀랐고, 인권침해의 전조를 느꼈으니 근본대책을 마련하자며 똘똘 뭉치게 됐다. 이후 이야기의 결론은 잘 모르겠지만 해피엔딩이길 바란다.
W. 더그러스 ‘민중의 인권’ 중 표현의 자유(출처: 도서출판 물레, 박홍규 역 『민중의 인권』, 1987) … |
인권오름 제 112 호 [기사입력] 2008년 07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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