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91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2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먹는 것 갖고 치사하게”란 말을 일상에서 흔히 쓰고 들을 수 있다. 이 말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은 곧 사회로부터의 ‘배제’라는 뜻과 통한다. “굶주림은 배제”라는 말은 식량권을 다루는 국제단체들의 성명과 보고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인용구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브라질 출신의 기아퇴치운동가 호세 드 카스트로인데 그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굶주림은 배제”라는 말은 1950년 그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서 한 연설에서 나온 것이다. 

결식아동은 곧 굶주리는 아동이라는 뜻이고, 저 멀리 아프리카 난민이 아닌 풍요한 대한민국 속에 굶주리는 아동이 있다는 점에서 입에 올리기 껄끄러운 말이다. 카스트로의 말처럼 굶주림은 ‘금기시’ 되는 단어이고 공적으로 토론하기를 꺼려하는 주제일지 모른다.

최근 보편적이고 건강한 무상학교급식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늦었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지만 말이다. 선별적으로 무상지원을 하는 상황에서는 낙인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상성 뿐 아니라 건강성을 생각하자면 학교의 식당 사업 같은 현재의 급식에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 따라서 논의의 강조점은 권리의 ‘보편성’과 아동의 ‘건강’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상’이란 부분에 비틀어진 방점이 찍힌 듯하고, 사회적 연대와 아동권 보장이라는 근본 철학에 대한 나눔보다는 ‘가짜(로 배고파하는 아이와 가족)색출’에 열이 오른 듯하다.

학부모나 교사들과 인권교육을 진행하다보면 급식지도의 어려운 점이 자주 제기된다.

“돈을 낼 형편이 되는데 아이가 일부러 급식비를 안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밥 먹는데 먹지 못하게 할 수는 없어서 고민이다.”
“어떤 학교에서는 급식비를 안낸 학생이 급식 줄에 서면 담당자가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해서 우리 학교에서도 고려중이라 한다.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우리 반에 형편이 어려워 식권을 지급받는 학생이 있는데 내가 업무에 바빠서 며칠 동안 챙겨주는 걸 깜빡했다. 그 학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창피하고 무안해서 교사에게 그걸 달라고 얘기하지 못하고 그냥 굶었을 아이의 심정을 생각하니 너무 서글펐다.”
“싸게 먹이려고 하는지 너무 자주 많이 인스턴트 튀김 류가 나오고 아이들도 그런 것만 먹으려 한다. 신선한 채소 같은 건 잘 나오지 않는데, 아이들이 채소는 거의 안 먹고 버린다. 그래서 급식을 같이 먹는 게 곤혹스럽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직거래하면 아이들 건강에도 좋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될 텐데, 대형유통회사 중심이라 그런지 그런 기미가 잘 안 보인다.”

이런 고민들 속에 바로 ‘보편적이고 건강한 무상학교급식’의 철학이 담겨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왜 학교 급식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여기서 학교 급식의 개념에는 학교에서 먹는 음식만이 아니라 학교를 중심으로 취약한 가정에 전달되는 식량배분도 포함된다.

첫째 ‘영양’이다. 학교 급식이 조화로운 식단을 이루면 중요한 영양의 혜택을 줄 수 있다. 둘째 ‘사회적 안전망으로서 사회적 보호’이다. 학교 급식은 굶주림, 빈곤, 아동 착취의 순환을 깰 수 있다. 셋째 ‘교육’이다. 어떤 아동도 배고픈 채 공부에 집중할 수는 없다. 학교 급식은 가난한 가정의 아동이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남녀평등에도 도움이 된다. 학교급식은 여아에 대한 차별에 특히 집중하여, 여자아이가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하고 교육과 미래를 가질 수 있게 한다. 넷째 지역사회의 증진이라는 부가적 효과이다. 가능하면 최대한으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량이 학교 급식에 사용될 때 지역의 발전과 소농에 도움이 된다. 학교는 많은 마을과 지역사회의 중심에 있다. 학교 급식은 교사, 학부모, 요리사, 아동, 농부, 지역 시장 모두를 연결시키는 아주 참여적인 프로그램이다. 어떤 사회에서는 학교 급식이 지역빈곤퇴치의 무대가 됐다.

국제인권법에서나 한국의 주요 법에서나 기초교육단계에서의 무상교육을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왜 ‘무상교육’이냐 하면, 부모 또는 가족의 경제력 때문에 좌지우지 된다면 보편적 권리라 할 수 없고, ‘무상’이 아니라면 모든 아동에게 의무교육을 강제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배경(가족의 경제적 지위, 사는 지역, 종교, 장애 등)을 가졌든 상관없이 모든 아동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속에서 살아갈 기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본 교육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들, 즉 수업비는 물론 교복, 교재와 준비물, 주식과 간식 등은 사회 공동의 창고(공적 재정)에서 제공돼야 한다. 겉으로는 무상교육이지만 학교생활을 하는데 자부담할 요소가 많고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아동에게 부담과 차별의 요소가 된다면 그건 ‘무상교육’으로 위장한 ‘상품’(돈 주고 살 수 있는)이지, 아동의 교육권을 진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롯한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이다.

먹는 것 갖고 치사하게 굴지 말고,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았으면 정말 좋겠다.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굶주림에 대한 호세 드 카스트로(Josué de Castro)의 어록

굶주림은 배제이다. 땅으로부터 배제, 소득으로부터 배제, 일으로부터 배제, 봉급으로부터 배제, 삶과 시민권으로부터 배제이다. 한 사람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했다면 그건 나머지 모든 것이 부정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심각하고 철저한 굶주림이 만성적이거나 또는 치우친 현상이라는 점이다. 세계의 무수한 사람들을 조용히 해치는 그것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효과 때문이다.

나는 굶주림이란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고안해낸 저주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굶주림은 사회적 측면의 악이 생물학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굶주림은 경제적 왜곡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이걸 일컬어 “저발전”이라 한다.

굶주림은 지리적으로 보편적 현상으로 어떤 대륙도 벗어날 수 없는 파국적인 결과를 낳는다. 인류에게 속한 모든 땅은 오늘날까지도 굶주림의 땅이다. 세계적으로 수행된 과학적 연구는 세계 인구의 2/3가 고질적으로나 유행적으로나 굶주림의 분쇄 효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굶주림은 과잉인구의 산물이 아니다. 굶주림은 전후 인구 폭발 이전에도 대규모로 존재했다. 차이점은 3세계의 전체 인구를 파괴한 굶주림은 산재했고 침묵에 묻혔고 감춰졌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굶주림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수치로 여겨졌다. 굶주림은 금기사항이었다.

참 이상하고 놀라운 일이다. 저술과 출판이 넘치는 세계에서 굶주림 현상과 그것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게 말이다.

굶주림에 대한 이런 침묵의 음모에 감춰진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우리 문화의 본질에서 나오는 고의적 침묵이다. 소위 서구식 문명화의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 성격의 이해와 편견이 굶주림을 금기사항으로 만들었거나 적어도 공적으로 다루기엔 부적절한 문제로 간주하도록 했다.

세계 인구를 먹이기 위한 해결책을 적절하게 계획하려면, 굶주림에 대한 싸움에서 주요한 방해물 중 하나를 극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것은 굶주림에 대한 깊은 지식-굶주림이란 동시적으로 생물학적이자, 경제적이자 사회적일 수 있는 복합적인 표현이란 개념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한 가지는 전혀 먹지 않고 죽을 때까지 급격하게 쇠진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부적절하게 먹어서 궁극적으로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특수한 결핍의 순환을 시작하는 것이다. 부분 기아나 만성 기아는 총계된 기아보다 더 절박하다. 만성 기아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충격을 주지만 부분 기아는 무수한 인구를 조용히 파괴하고 해친다.

다각화되고 충분한 식량 공급이 세계 인구의 섭식 필요를 해결하지 못할 것은 명확하다. 굶주림은 단지 불충분한 식량 생산의 문제가 아니다. 굶주림에 영향 받는 사람들은 식량을 살 수 있는 구매력을 가져야만 한다.

굶주림은 피해자들의 신체에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굶주림은 또한 사람들의 영혼, 정신 구조, 도덕 행위를 파괴한다. 다른 어떤 재난도 굶주림만큼 심각하고 해롭게 인간의 인격을 해체하지는 못한다.

인권오름 제 191 호  [기사입력] 2010년 02월 2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191호 2010년 02월 24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잘 먹고 잘 하자 Eat Well Do Well(EWDW)’는 2004년 영국의 킹스톤 어펀 헐(Kingston-Upon-Hull) 시의회가 추진한 대담한 실험이었다. 이것은 초등학교 4-6학년의 아동에게 무상으로 건강한 식사(아침, 따뜻한 점심/저녁)와 방과 후 간식과 과일의 제공을 포함한 다양한 수준과 방식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2007년 9월 급식비의 재도입은 이 실험의 상당한 성과들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헐 대학 교육연구소의 조사보고서를 발췌․소개한다. 이 보고서의 원문은
http://www2.hull.ac.uk/ifl/PDF/IFL-R_finalreport.pdf
에서 볼 수 있다.(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주요 발견

이 연구조사에서 핵심 문제는 전통적으로 ‘적격성’을 따져서 무상급식을 먹을 자격이 있었던 아동과 그렇지 않았던 아동 간에 응답의 차이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먹는 습관과 무상학교급식에 대한 반응을 묻는 44개 항목간의 비교 중 40개에서 유의미한 통계적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의 의미는 뭘 먹고 어떤 걸 먹는 게 건강한지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서는 두 집단이 사실상 동질적이며 추정됐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학교 급식이 음식과 섭식에 관한 문제인 한, 한 집단 쪽의 아동이 먹을 자격이 있다면, 모든 아동도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통계가 보여준 바는 무상의 건강한 학교급식이 학생의 섭식 습관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아침을 안 먹는 일이 줄고, 낮 동안에 배고픔을 느끼는 일이 줄고, 통학 길에 먹는 일이 줄고, 상당히 더 많은 수의 학생이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영양적 측면

2005년과 2006년에 제공되고 소비된 식사의 영양가를 비교해봤다. 2005년 아동들은 채소를 싫어한다고 응답했고 채소는 흐물거리거나 ‘웃긴’ 천 같다고 했다. 아동들은 이 채소들이 냉동채소였다는 것을 모르고 답했고, 단지 싫어해서 안 먹는다고 했다. 2006년까지 메뉴가 개선(냉동이 아닌 신선한 채소, 직접 구운 빵, 스쿼시(과즙음료)가 아닌 과일 주스나 우유 등)되면서 아동의 섭식 태도도 변했다.

아동이 실제로 섭취하는 음식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아마도 하루 중에 유일하게 제대로 된 식사일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난한 학교의 아동이 학교 점심을 더 많이 먹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 아동들은 실제로 풍요한 학교의 아동보다 덜 먹었고, 덜 영양가 있는 걸 먹었다. 통계적으로 중요한 차이는 두 학교간의 철분 소비에서 나타났다. 철분 섭취가 낮으면 학습의 성취가 방해받을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

학습 태도에 대한 교사들의 의견

2007년 통계는 무상 학교 급식의 결과, 아동이 에너지를 더 많이 갖고 피로감을 덜 느끼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응답에는 상당한 증가가 있었다. 또한 아침식사 클럽에 참여하는 아동들은 오전 시간을 유지하는 동안 더 높은 수준의 집중성을 보여주었다.

질적 통계는 응답자들이 무상학교급식을 우선적으로 아동을 위한 건강 계획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계획의 효과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들이 더 광의의 상을 지적해줬다. 많은 응답자들이 사회적 이익, 교육적 이익(아동이 학습에 더 준비돼있다), 낙인의 제거와 부모와 가족 지원을 말했다. 좀 더 양면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시의회를 놓고 경쟁하는 재정적 요구를 강조하는데 예민했다. 이것은 조사 시기에 공론화된 예산 부족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해할 만하다. 예산을 염려하는 응답자들은 또한 부모의 책임성을 강조했고 아이를 먹이는 것이 세금납부자의 책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제안했다. 흥미롭게도 무상학교급식 계획이 성공적이라고 간주하면서도 무상성의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응답자들이 있었다.

핵심 통계
• 응답자들의 대다수(80%)는 무상학교급식을 지지했다.
• 2007년 응답자들의 대다수는 무상학교급식의 도입 이후 학생들에게서 차이점을 인식했다.
• 42% 응답자들이 학생들이 에너지를 더 많이 갖게 됐다고 느꼈고, 31% 응답자들은 아동이 덜 피곤해한다고 느꼈다. 이 수치는 2006년에는 22%와 18%, 2005년에는 16%와 20%였다.
• 아주 낮은 비율의 응답자들이 무상학교급식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느꼈다. 4%만이 그렇게 말했다.
• 교사들은 식당에서 교직원들보다는 아이들과 같이 먹는 걸 더 좋아했다.
•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응답자들이 무상학교급식을 더 지지할 것 같다. 식당에서 먹는 사람 중의 91%가 무상학교급식을 지지했고, 교무실이나 교실에서 먹는 사람들의 79%가 무상학교급식을 지지했다.
• 응답자의 47%가 급식비의 재도입에 반대했고, 28%가 찬성했으며, 24%는 모른다고 했다.
• 응답자의 56%가 무상학교급식의 도입 이후 시의회를 더 많이 신뢰하게 됐다고 했다. 왜냐하면 아동의 건강을 위해 옳은 결정을 했고, 아동을 우선순위에 두었기 때문이다.
• 교직원의 71%가 무상학교급식으로 이전보다 아동에게 부가된 낙인이 덜어졌다고 느꼈다.

반대 의견

무상급식을 반대한다는 응답자들의 의견은 전적으로 ‘무상성’이라는 요소와 관련이 있었다. 무상성 반대 의견에는 두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비용이다. 이 돈으로 교육을 위해 더 나은 목적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부모의 책임성에 관한 것이다. 아이를 먹여야 하는 부모의 책임성 결여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또한 학교 급식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을 위해 세금 납부자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불리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지 의견

지지 의견은 아주 다양한 근거를 표시했다. 이유들은 건강과 교육에 좋다는 것과 아동복지와 관련된다. 응답자들은 무상급식이 아동으로 하여금 건조식품과 초콜릿을 담은 도시락을 먹기 보다는 따뜻한 식사를 먹도록 고무시켰다고 느꼈다. 일부 응답자들은 무상급식이 더 많은 아동으로 하여금 과일과 채소를 더 먹도록 만들었다고 느꼈다. 응답자들은 많은 아동들이 따뜻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하루 중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때가 학교 점심시간이었다는데 주목했다. 많은 아동이 집에서는 건강하게 먹지 못하고 있거나 일부 아동은 아예 식사를 못했다. 흔히 이런 의견들은 불리한 처지, 저소득, 박탈 등의 관심사와 동반됐다.

무상급식의 영향

2007년 조사에서는 교직원에게 학교 급식의 사회적 성격(급식 환경, 식사시간에 학생들의 행동, 아동과 성인이 식사시간 동안에 얼마나 어울리는지 등)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아주 높은 비율의 응답자들이 무상급식 도입 이후 아동이 더 건강하게 먹는 것과 먹는 것의 사회적 성격에 대해 더 많이 배웠다고 했다(각각 86%와 67%의 동의 또는 강력한 동의). 교직원 상당수가 점심시간에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행동이나 문제 행동이 증가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또한 교직원들은 급식 시간이 학생과 교직원간에 상호작용의 기회를 늘렸다고 지적했다. 학생과 교사가 더 많이 섞이고 식당이 더 즐거운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7%의 교사만이 급식 때문에 점심시간에 더 많은 학부모들이 주변에 있다고 느꼈고, 8%의 교사만이 급식 때문에 점심시간이 더 스트레스를 주게 됐다고 답했다.

낙인

“아동은 균형 잡힌 음식을 받고, 불리한 처지의 부모는 뭘 도시락으로 쌀지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른 아동들은 식사를 즐기고 급식 등록이 무료이기에 어떤 낙인도 없다.”
“무상 급식을 받는 아동에게 낙인이 덜해졌다.”


2007년 통계에서는 학교 급식의 낙인효과에 대한 자발적인 의견이 포함됐다. 학교급식에서 ‘무상’ 요소가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일부 응답자들이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무상급식이 좋은 생각이라고 느낀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몇 응답자들은 과거에 적격성을 따져 무상급식을 받았던 아동에 대한 낙인이 제거된 것을 언급했다.

“그러니까 아이들 사이에 ‘내가 돈을 내니까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먹어야 돼’식의 어떤 차별도 없다.”
“급식을 먹는 비율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고, 소득조사방법에 근거한 ‘무상’ 급식 명령에 부착된 ‘낙인’이 재도입될 것이다.”


더욱이 일부 응답자들은 급식비의 재도입이 낙인을 재도입할 것이라 느꼈다. 일부 응답자들은 덜 부유한 아동에게 급식비가 끼칠 부정적인 효과를 지적했다. 예전에 무상 급식 자격을 가졌던 아동에 대한 특별한 언급에 대한 질문에서 71% 교직원들이 (보편적)무상급식의 결과로 이들 아동에 대한 낙인효과가 덜어졌다고 느꼈다.

아동의 행동

이전의 조사에서는 응답자들이 무상급식 도입 이후 아동 행동의 변화에 대해 감지한 바가 없었다. 그러나 2007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상당수가 아동 행동의 차이를 감지했다. 응답자들은 한 영역 이상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공통된 응답은 아동이 더 많은 에너지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상당히 높은 비율의 응답자가 아동이 피곤함을 덜 느낀다고 했다.

급식비의 재도입 이후

2007년 9월 자유민주당 행정부는 급식비를 재도입했다. 급식비 재도입 이후 학교 급식을 먹는 비율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통계화 하려는 시스템이 시 의회에서 없었기 때문에 연구팀은 정확한 통계를 기록할 수는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교장들에 대한 면접조사를 했다. 모든 교장들이 다양한 이유로 급식비 재도입에 대해 우려했다.

첫 번째 지적은 많은 학교 식당에서 ‘혼란’과 ‘엉망’이 되돌아올 것이란 우려였다. 더 많은 아동이 도시락을 먹게 될 것인데, 이 아동들은 급식을 먹는 아이들과 한편으론 분리될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먹기에 비좁은 환경이 초래될 것이다. 게다가 도시락은 대개 식당에 더 많은 쓰레기를 남긴다는 걸 의미한다. 흥미롭게도 일부 식당 종사원들은 도시락을 먹는 아동에게 ‘서비스’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 아니라고 본다. 한 학교에서는 종사원이 급식이 아닌 도시락을 먹는 아동이 식사한 후에는 청소하기를 거부했다. 심지어 종사원은 도시락 먹는 학생에게 식탁 준비해주기를 거부했다.

중요한 것은 급식비를 징수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이 들 것이란 우려였다. 한 교장은 징수비용으로 일주일에 100파운드가 들 것이라 했고, 학교 재정으로 이를 충당해야 한다고 했다. 몇몇 교장들은 급식비 재도입을 운영하기 위한 어떤 재정지원도 시의회로부터 받지 못한다고 불평했다. 별도로 급식비를 걷어야 하고 그걸 하는 과정은 가르침과 배움에 써야 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의미였다. 교장들에 따르면 급식비 재도입의 결과로 학교가 부채 비용 증가에 직면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직접적으로 급식비를 징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뿐 아니라 상당수 학부모가 내야할 때 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한 학교는 금요일마다 학부모를 접촉하여 급식비를 내야 할 때 내지 않은 학부모를 찾아내도록 하기 위해 직원을 고용해야만 한다고 했다.

교장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저질의 도시락을 먹는 학생 수가 늘어날 것을 우려했다. 한 교장은 이것을 “자파 케이크(Jaffa Cake-당도와 열량이 아주 높은 영국과자)의 귀환”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일부 도시락들은 단지 과자를 싸온 것이기 때문이다. 교장들은 도시락의 증가와 더불어 아동에 대한 동료 아동의 억압, 낙인, 행동의 악화가 증가될 것이란 점을 우려했다.

결론

3년 동안 헐 시의회가 추진한 ‘잘 먹고 잘 하자 Eat Well Do Well(EWDW)’는 전국적으로 지자체들의 부러움이 되었다. 2004년에 헐 시의회는 아동과 그 가족들의 미래에 투자할 비전, 야망, 행동을 보였다. 이 보고서는 이 시도가 학교, 가족, 아동에게 미친 감지할 만한 혜택을 보였다. 평가에서 분명한 것은 이 시도가 더 오래 유지되었다면 더 많은 영향과 혜택이 자리 잡았을 것이란 점이다. 평가가 제시하는 점은 모든 아동을 위한 학습 환경이 무상의 건강한 학교 급식의 제공으로 지지된다는 점이다. 교장들은 학교가 배움과 사회화가 이뤄지는 더 평온한 곳이 되었다고 말한다. 급식비를 재도입했으니 시의회가 교육환경을 지원하는 이런 혜택을 보지 못할 것이 안타깝다.

 

<인권오름 제 191호 2010년 02월 24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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