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 7. 24

작성자 : 엄기호

 

긴급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유도요노 대통령은 감정이 북받치는 듯 몇 차례 말을 잇지 못하였다. 60%에 달하는 지지로 그의 대통령 재선이 확실시 되는 시점이었다. 한쪽에서는 98년 독재자 수하르토를 몰아내고 혼미를 거듭하던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안정적인 제도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환호하던 중이었다.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도 비교적 큰 충격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런 시점에서 터진 2009년 7월 17일 아침에 자카르타 시내에 울려 퍼진 두 차례의 폭탄 소리는 온 국민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기에 충분하였다.

“폭탄 테러가 터진 두 호텔은 자카르타에서 가장 보안검색이 엄격한 호텔입니다. 이 호텔이 타겟이 되었다는 것이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폭탄 테러가 터진 메리엇트 호텔과 리츠칼튼 호텔은 인도네시아에 대한 외국 자본과 문화 침입의 상징이다. 따라서 과거에도 몇 차례 폭탄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 테러가 터진 동안에 인도네시아 방문 경기가 예정되어 있던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이곳에서 머물기로 되어 있었다. 그들의 경기는 이번 테러에 따라 취소되었다. 이런 이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이번 테러의 배후에 알 카에다 혹은 그의 동남아시아 연결망으로 알려진 자마 이슬라미아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겠지요. 그들은 인도네시아의 안정을 바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다른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항간에는 선거에 불만을 품은 메가와티 지지자들이 그런 것이라는 말과 반대로 그런 소문을 퍼트리려고 지금의 대통령이 벌인 자작극이라는 말도 퍼지고 있습니다.” 진보적인 연구단체에서 일을 하는 베로니카는 형식적 민주주의가 안착화 되고 있다는 믿음이 확산되는 그 시점에 아무 일이든지 아무개에 의해서 벌어질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퍼지고 있는 것에 주목할 것을 주문하였다.

“이런 이야기의 진원지가 다름 아님 정치권 자체임을 유심히 살펴보아야합니다.” 메가와티쪽을 의심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은 다름 아닌 유도유노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의 배후에 대선 결과에 불만을 품은 자기 반대 세력이 정국을 혼란시키기 위해 개입하였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이 말은 대통령 선거의 라이벌이었던 메가와티 전대통령과 그녀의 또 다른 대선 주자였던 유습칼라 부통령측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정치권 자체가 만들어내는 음모들 자체가 인도네시아에서는 누구에 의해서든 모든 일이 다 가능한 것처럼 만들어서 정치는 다시 예측불가능한 음모 비슷한 것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그 결과 이번 인도네시아 대선은 항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형식적 민주주의가 안착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를 증명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직 부통령인 유스칼라 후보 역시 K뉴스에 따르면 “결과적이긴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까 경찰과 정보사가 정작 자신들이 수행해야할 이번 폭탄테러와 같은 테러 방지대책 임무는 뒤로 제쳐두고 총선과 대선에 지나치게 개입한 결과가 아닌가 의심된다.”고 일격을 가했다.

사회적 현실과는 유리된 정치적 이번에 정착된 민주주의에 대해서 시들해하는 목소리는 작지만 곳곳에 있다. “저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는 투표하지 않았습니다. 지지하는 후보도 없었지만 저들만의 잔치를 정치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독립을 둘러싼 갈등으로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인도네시아령 파푸아에서 중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하리안또는 이건 정치가 아니란다. 정치란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시민들의 이해관계를 다투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들의 정치에서 완전히 빠진 것이 시민들의 이해관계라는 시각이다.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 이후에 시민들이 정치에서 구경꾼으로 전락해버린 것입니다.”

민주주의 이후에 시민들이 정치의 구경꾼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에 대한 자성은 정치권에서도 나오고 있다. 메가와티 정당의 국회의원의 법률자문을 역임한 현직 변호사인 니콜라스도 하리안또에 수긍한다.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근간은 국민주의Nationalism입니다. 네델란드의 식미지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수천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특징때문에 독립과 함께 국가Nation을 형성하고 수립하는 것이 인도네시아 정치의 가장 큰 목적이자 과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대다수의 정치 정당들은 사실 제가 몸담고 있는 메가와티의 정당을 포함하여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없습니다.” 국가nation를 위협하는 실제적인 것도 없는 상황에서 별로 차이도 없는 정당들끼리 마치 차이가 있는 것처럼 경쟁을 하면서 다른 정치적 견해가 정치권이 진입하는 것을 아예 원천 봉쇄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정치가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 따라 국민들을 조직하는 과정이 아니라 ‘미인 대회’ 비슷한 것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고 니콜라스는 고백한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당면한 또 다른 문제는 정치의 시장화다. 니콜라스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정당에서도 부정선거에 대한 여러 가지의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대세를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제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에서 돈이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선거에 나갈 수도 없고 이길 수도 없다.”고 토로한다. 부자가 지도자가 되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구경꾼으로 전락해버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정치가 가난한 사람들과 국민주의를 제외한 다른 정치적 견해를 정치의 영역에서 밀어내는 동안 그들을 삼키고 있는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이다. 인도네시아는 전세계에서 무슬림들의 숫자가 가장 많은 국가이지만 중동의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는 달리 세속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이슬람의 엄격한 규율을 따르기보다는 보다 더 자유롭고 근대적인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있다. 길거리를 난폭하게 운전하는 운전자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들을 낯설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인도네시아에 지금 가장 많이 생기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기숙사형 이슬람 학교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는 농촌지역에서 온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을 작게는 수십 명에서 크게는 수백 명에 이르기까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모아놓고 교육을 제공한다. 물론 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코란을 암기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교육도시인 족자카르타에 있는 한 기숙학교의 교장은 “아이들이 이곳에서는 24시간 코란을 암기하고 배우며 이슬람으로 커나간다”는 것이 가장 큰 자랑이라고 이야기한다. 베로니카는 이런 기숙학교가 잠재적으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양성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이슬람 기숙학교에 중동에서 엄청난 규모의 돈이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죠.” 이슬람 기숙학교의 급속한 성장에 대해 국제단체에서 일을 하는 부디는 경제적인 측면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양성하기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충실한 이슬람으로 성장한 후 이들이 평생의 소원으로 떠나는 성지순례에서 중동이 얻게 되는 경제적 정치적 이익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이 지역 모스크의 건축양식도 바뀌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족자카르타의 이슬람 사원은 중동의 돔 형식이 아니라 자바의 전통 가옥 형식을 따라왔다. 그런데 중동 자금의 유입 이후로 양철 돔 지붕을 올린 중동 양식의 모스크가 급속히 늘고 있다.

“사회가 배제된 정치가 정치 스스로의 밑바닥을 어떻게 갉아먹고 있는지를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로니카의 단언처럼 민주주의의 안착화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정치가 그들만의 잔치가 되면서 벌어지게 되는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내가 마지막으로 기대를 가지는 것은 젊은 세대들입니다. 이들은 형식이 되어버린 인도네시아의 국민주의를 넘어서 이미 몸으로 인도네시아 안팎에서 트랜스-국민주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해서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이슈를 포괄하는 새로운 보편적 패러다임를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도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것입니다.” 노회한 정치가의 희미한 희망은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위기를 겪고 있는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이 풀어야하는 과제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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