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23 호 [기사입력] 2012년 11월 2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요 며칠 평소에 없던 두통이 일었다. 하도 신경을 써서 그런 것이라 ‘지나가겠지’라고 무시한다. 뭘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있냐고 묻는다면 한숨부터 나올 것 같다.
엊그제 41일째 단식을 하던 노동자가 병원에 실려 갔다. 차가운 농성장에 누워 굶다가 그나마 따뜻한 병원으로 갔다니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새벽 3명의 노동자가 공장 앞 철탑에 합판 달랑 들고 올랐다 한다. 아침이면 영하가 되는 날씨인데 말이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그들에 대한 소식만 검색하다가 인권 강연을 갔다. 평소라면 몇 차례는 참여자들을 크게 웃게 만들었을 텐데 내가 침울해서인지 강연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입구에서 종이박스 한 장 깔고 앉아 껌을 파는 장애인을 만났다.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해 차갑게 얼어있었다. 지하철 종이박스 위의 그와 철탑 위 합판에 걸터앉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알량하게 껌 한 통 산 나는 정신을 놓았는지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가 되돌아왔다. 그리고 24시간이 지나니, 전기세를 못 내 촛불 켜고 자다 변을 당했다는 할머니와 손자의 소식, 마치 겨울의 전령이 돼버린 듯한 낯설지 않은 소식이 아침을 연다. 내 두통은 지나가겠지만 이런 고통은 사회적인 대책이 없는 한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철탑 위 노동자와 관련된 얘기 중에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란 말이 여럿 오갔다. 무슨 얘긴가 하여 그 근거가 되는 보고서를 찾아봤다. “구조조정에서의 건강”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그렇지, 아프지, 당연히 아프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보고서에서 다룬 사례연구를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해고된 노동자들, 또 요행히 남아서 소위 ‘산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이 만성적인 불안과 스트레스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된다는 분석에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자살,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심근경색 등으로 이미 23명이 세상을 떠난 쌍차 사례가 우리 사회에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건강 피해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관련 사업장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연관된 지역사회와도 관련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작년 겨울인가, 정치권의 무대응과 무대책을 질타하는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서 갔다. 그때 기자회견을 준비한 쌍차 노동자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울먹이다가 다시 멍해지곤 했다. 그는 아팠다. 쌍차 노동자의 죽음이 꼬리를 물던 때였다.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그는 분명 아주 아팠다. ‘내 몸에서 죽음의 향냄새가 나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다음 차례가 저 사람인 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보고서가 제시하는 답은 “사회적 호위”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보디가드가 되자는 말이다. 전 지구화된 경쟁과 위기가 끼치는 영향을 개인의 자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전 사회 구성원이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쌍차 노동자들이 내건 구호 중에 간판을 차지하는 것이 ‘같이 살자’였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앞서 말한 노동자를 요즘 보면 눈빛이 살아있다. 거리에서의 한뎃잠과 잦은 단식에 힘들겠지만 그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참 튼튼해 보인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응원한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뚜벅뚜벅 걸어갔고, 대전의 유성기업에서 굴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천막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자기네 농성장을 몽땅 비우고 그곳에 연대하러 갔다. 활동보조인이 없어 화재로 사망한 고 김주영 씨의 영정 앞에서 쌍차 노동자 대표들이 큰절을 올렸고 30일 넘게 단식 중인 노동자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자기네 집회에서 쌍차 문제만 얘기하지 않고 밀양의 할머니들이나 강정마을의 수난에 대한 얘기 등을 빼먹지 않는다. 그렇게 ‘같이 살자’를 몸으로 옮기면서 정말 아프지만, 사람답게 살아있다. ‘아픈 사람에게서 배우는 건강함’이란 역설을 그들을 볼 때마다 느낀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 대한 ‘사회적 호위’는 초라하기만 하다. 이 보고서는 구조조정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고용주가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정의와 신뢰에 대한 경험’이란 부분에 눈이 간다. 이 보고서가 지적한 바대로 고용주가 노동자를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는 믿음을 한 번이라도 준적이 있는지, 시기적절한 정보를 내놓고 대화하려 했는지, “사회적으로 세심한” 접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는지 묻고 싶다.
보고서는 단기적 이익에 목맨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같이 살기 위한 장기 전략적 사고를 주문한다. 장기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를 백열전구처럼 갈아 치울 수 있고 처분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보는 경영철학으론 안된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위기를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적 파국”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혼자만 살 수도 없을뿐더러 혼자의 자원으론 감당할 수 없고 혼자의 역량을 초과하는 문제를 다뤄야 한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걷고 굶고 거리에서 자고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오르는 사람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호위”의 대열에 끼어서 같이 고통을 맞들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으로 뽑아 놓고 세금으로 세비 주는 것은 부당하고 석연치 않은 정리해고에 대해 소상하게 파헤치는 국정조사 하라고 그런 것이다. 대선공약이라고 만들기 힘든 일자리 새로 만들겠다는 풍선 남발하지 말고 원래 일하던 자리에서 부당하게 쫓겨난 사람들을 복직시키는 ‘쉬운’ 일부터 하라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겠다고 현수막마다 써 붙이지 말고 지금 철탑 위에 매달려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부터 들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광고 대사처럼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참 좋은걸’ 왜 안 하시나?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구조조정에서의 건강: 혁신적 접근과 정책 권고(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고용·사회문제·기회균등국, 2009) (발췌번역한 것으로, 보고서 원문은 아래 싸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ipg.uni-bremen.de/research/hires/HIRES_FR_090518_english.pdf) |
인권오름 제 323 호 [기사입력] 2012년 11월 2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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