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31 호 [기사입력] 2013년 01월 2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지난 연말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젊디젊은 노동자가 자살했다. 가슴이 꽉 막혀와 혼자서 조문을 갔다. 부산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인데 체증에 갇혀 택시미터기 요금만 하염없이 올라갔다. ‘휴일인데 왜 이리 막히는 것이냐’는 내 물음에 운전사는 ‘대기업 백화점과 문화센터가 들어선 이후 사람들이 죄다 그리로 몰려들어 그런다’고 했다. 그곳을 벗어나자 ‘골목상권 다 죽는다’는 초라한 현수막들이 인적 없는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죽은 이의 아내는 젊다 못해 앳된 얼굴이었고, 두 아이를 챙기고 헤쳐가야 할 삶을 담아내야 해서인지 그녀의 소복 자락은 너무 넓었다. 슬픔의 두터운 장막이 덮인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다시 부산역으로 향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 앞에 궁색한 차림의 모녀가 섰다. 여인은 한파임에도 겨울 외투조차 입지 못했다. 그나마 아이에게는 모자 달린 외투를 입혔지만 어디서 얻은 것인지 아주 낡아 보였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나갈 무렵 여인이 갑자기 아이 손을 놓았다. 제 몸 가눌만한 나이가 아닌 어린아이는 위태롭게 균형을 잃고 빙빙 돌았다. 깜짝 놀라 나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이 ‘어! 어!’하고 소리를 냈다. 그때 뒤를 돌아본 여인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성난 눈이었다. “내 새끼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들은 신경 꺼!”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내 뒤를 향해 계속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이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느냐는 내용이었다. 여인의 분노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듯 말 듯한 가운데도 아이에게 그러는 건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녀를 바라본 눈길이 그녀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을까 하는 생각은 잠깐이었다. 어른들의 소동과 상관없이 방글거리기만 하던 아이의 얼굴이 눈에 밟혔다. 속이 상할 대로 상해 기차에 오르면서 중얼거렸다. 온 천지가 레미제라블이구나!
유엔의 특별인권절차 중에 특별보고관이란 게 있고, 그중에서도 ‘극빈과 인권’을 전담하는 특별보고관이 있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빈곤의 형벌화>에 관한 보고서(<인권오름> 제271호 참조) 등을 통해 빈민을 처벌하고 분리하고 통제하는 조치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그간 노력의 결실이 2012년 9월에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원칙>이다. 2001년부터 십 년 이상의 협의를 통해 채택된 이 원칙은 국제인권법에 따른 당사국의 의무를 각국의 정책 수립자들이 빈곤 정책에 반영토록 할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특별보고관은 이 원칙이 빈민의 인권에 초점을 둔 빈곤정책을 다룬 “최초의 지구적 기준”이라고 그 의의를 밝혔다.
“극빈자의 고유한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모든 공공정책을 통해 알려져야만 한다”는 것이 원칙 중의 원칙이기에 “낙인화와 편견을 피해야” 하고 국가는 “빈민의 권리에 적대적으로 편향된 법과 규제를 폐지하거나 고쳐야 한다”고 했다. 이런 대원칙에 근거해서 국제인권법에 규정된 구체적 권리들을 빈민의 입장에서 상술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국가의 책무만이 아니라 기업의 책임을 콕 짚고 있다는 점이다. 자기 기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외면하고 사회적으로 한 약속에 대한 무시를 일삼는 기업에 “인권에 상당히 유의해야” 하며 “기업 활동이 인권에 끼치는 악영향을 방지하고 완화해야 한다”는 이 원칙이 어떻게 스며들 수 있을까 난망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런 원칙의 존재 의의는 최선의 인권을 향해 나아갈 방향탐지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원칙과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일까? 늘 반복적으로 재연되던 현상이지만 대선을 전후로 ‘안전’과 ‘복지’가 특히 강조됐다. ‘안전’은 불안과 걱정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문제는 누구의 입장에서 무엇을 불안과 걱정으로 정하느냐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안’에 속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밖’으로부터의 안전을 추구하면 문을 닫아걸게 된다. 상대적으로 ‘밖’에 속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꼭꼭 닫힌 문이 생계의 불안뿐 아니라 불신과 무시와 편견으로 뭉친 차별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더 나아지리란 삶의 전망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될 대로 되란 식이 되어도 탓할 수가 없다.
불안의 원인이 차별적으로 선택되고, 모두의 자유가 아니라 일부의 자유가 우선적으로 선호되는 안전의 선택이 이뤄진다. 그런 선택 속에서 누구에게는 이동이 자유롭고 누구에게는 이동이 가로막힌다. 누구는 생활보장을 말하지만, 누구에게는 생계보장도 감지덕지다. 선택에 따른 이해당사자의 구분은 심해지고 사회 공동체의 연대감은 희박해진다. 그런 사회일수록 불안의 근본원인은 커져가고 걸어 잠가야 할 문의 자물쇠만 늘어간다. 그럴 때 ‘안전’은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치안’으로 후퇴해버린다. 타자, 그중에서도 가난하고 권리를 침해당한 타자로부터 내 수준의 소유와 생활을 지키려는 치안은 결사의 자유나 근본적인 사회보장 같은 것을 촉진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복지’도 ‘인간다운 삶의 보장’이라는 차원에서 더 이상의 추락을 방지한다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다. 이 둘의 결합이 ‘치안복지’라는 간판이 되어 동네방네 경찰서와 관공서에 내걸리고 있는 게 두렵다.
‘치안복지’의 눈으로 부산역에서 만난 여인을 투시해본다. 한겨울에 외투도 갖추지 못한 여인, 상처 입은 짐승처럼 신음하는 그 여인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될 능력은커녕 의욕도 없어 보이는 인간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그녀는 감시와 치안 관리의 대상이 돼야 마땅해 보인다. 가난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 당선자가 4대악으로 규정한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 불량식품’의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인 동시에 그것의 온상으로 보여진다. 그녀의 가난은 반사회성과 범죄 가능성이기 때문에 앞으로 그게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니 미리 조치를 취한다는 측면에서 관리될 것이다. 그녀의 행색으로는 공공역사 출입이 어렵게 될 수도 있고 대규모 상업시설 같은 데서는 경비한테 걸러질 수도 있다.
그런 그녀가 눈에 안 띄면 안 띌수록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입장에서는 ‘치안이 곧 복지다’는 말이 당연하게 들릴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입장이 된다면 ‘치안이 복지’란 말은 나한테 해준 것도 없으면서 날 비난하고 공공영역에서 아예 쫓아내겠다는 말로 들릴 것이다.
어릴 적 동생들 중 하나가 도벽이 심했다. 도벽이 발각 날 때마다 나는 하루 종일 일 나간 엄마 대신에 맏이라는 이유로 이웃에게 불려 갔다. 나를 부른 이웃들이 내게 안긴 것은 서슬 퍼런 추궁이 아니었다. “네 엄마 걱정하실 테니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으마. 네가 맏이니까 동생 잘 돌봐줘라. 어릴 때 잠시 그럴 수 있다.”고 다독여주셨다. 한번은 호떡 파는 아주머니가 길 가던 나를 부르더니 호떡을 공짜로 잔뜩 안겨주셨다. “언제든지 공짜로 줄 테니 네 동생 갖다 주고 동생 건사 잘하라.”고 하셨다. 동생의 도벽은 외제 상표가 박힌 잠바를 몰래 숨겨두고 입은 것으로 결국 엄마에게 발각이 났고, 한밤중에 혼이 난 동생은 컴컴한 개천에 뛰어들어 죽겠다고 했다. 그런 동생을 찾아 개천가를 헤매던 밤은 참 추웠다. 참 아픈 기억이지만 ‘한때 그러는 것이니 잘 돌봐주라’던 이웃들의 인정이 함께 떠오르기에 나쁘지만은 않다. ‘잠시 한때’일 뿐이고 ‘관심으로 돌보면 괜찮아진다’던 이웃들의 인정과 믿음이 내가 받은 최고의 복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 원칙을 기초한 특별보고관은 빈민의 권리에 초점을 둔 빈곤 정책을 강조했다. 빈곤정책이라 이름 붙였다고 해서 죄다 빈곤정책이 될 수는 없으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그 안에 담겨야 한다고 했다. “빈곤을 범죄시하는 정책은 빈곤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심각한 오해와 그들이 고통받고 있는 광범위한 차별과 그로 인해 상호 재강화되는 불이익에 대한 무지를 반영한다.”던 특별보고관의 말을 곱씹어보게 된다.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원칙(Guiding principles on extreme poverty and human rights, 2012년 9월 27일 유엔인권이사회 채택) I. 전문 |
인권오름 제 331 호 [기사입력] 2013년 01월 2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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