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35 호 [기사입력] 2013년 02월 27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살다 보면 “그림의 떡이야”란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보는 게 어디야. 보는 것만으로 좋은데”라고 위로하거나 자족하는 말도 으레 듣게 된다. ‘그림의 떡’에 대해 국어사전은 “탐스럽지만, 손에 넣을 수 없다는 뜻으로, 바라는 모습이기는 하나 실제로 이용할 수 없거나 이루어지기 힘든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인권에 대한 기준들을 들여다볼 때 드는 생각이 딱 이런 경우다.
내 정부가 돌아보지도 않는 인권 침해를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그것도 그냥 호소가 아니라 유엔의 전문기구에 정식으로 진정한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 같은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 국제사회는 그런 기준에 대한 도전을 또 하나 성취했다.
“선택의정서의 발효는 중요한 획기적 발전이다. 자신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들이 정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선택의정서는 국제적 차원에서 기댈 가능성이 전혀 없이 견뎌야만 했던 피해자들이 인권침해를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선택의정서는 고립되고 무력했을 개인들이 국제 사회에 자신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길을 제공할 것이다. … 선택의정서의 발효로 마침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여타의 모든 인권과 동등한 기반 위에 서게 됐다.”
최근 나비 필레이(Navi Pillay) 유엔인권최고대표가 사회권 규약의 선택의정서 발효를 기뻐하며 한 말이다. 지난 2월 5일 사회권 규약 선택의정서에 대한 10번째 비준이 이뤄짐으로써 3개월 뒤면 정식 국제법으로 발효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말이다.
사회권 규약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줄임말로서 노동권, 사회보장권, 교육권 등을 규정한 대표적인 국제인권법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사회권 규약을 비준하여 당사국이 됐고, 현재 이 조약의 전체 당사국 수는 160개국이다. 선택의정서는 이 규약의 이행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별도의 조약을 말한다. 선택의정서는 해당국가에 의해 사회권 규약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 또는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제삼자가 유엔 사회권위원회에 권리침해를 진정할 수 있는 방법과 절차를 담고 있다. 지난 200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후, 정식 국제법으로 발효되기 위해서는 10개국 이상의 비준이 필요했는데 그 10번째 비준을 지난 5일 우루과이 정부가 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20여 년 전 국제인권법이란 걸 처음 접했을 때였다. 한국 정부는 사회권 규약에 가입하고 난 후 당사국의 의무사항으로서 사회권을 얼마나 잘 보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1993년 처음으로 유엔사회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물론 언론도 알려주지 않는 그 소식을 파악한 인권단체들이 쫓기듯 부랴부랴 모여 대안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최종의견과 권고가 나온 것이 1995년이었다. 그때의 주요 지적 내용은 지금 들여다봐도 유효하다.
노동관계법을 사회권 규약에 합치되도록 즉각 개정할 것, 노조활동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해제할 것,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확대할 것 등이었다. 권고는 노동 관련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사회권위원회는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확대, 무주택자의 보호와 주거권의 실효적 보장, 장애인의 처우 개선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사회권? 그게 뭔데요?”라며 시큰둥해하는 언론사 전화를 붙들고 ‘이건 중요한 문제니 꼭 보도해야 한다’고 설득했던, 아니 매달렸던 일은 그냥 지나간 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때도 노동권을 행사했다 하여 맞고 쫓겨나고 붙들려가던 노동자들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 맞고 쫓겨나고 붙들려가고 있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가장 최근에 심사된 3차 보고서에 대한 유엔사회권위원회의 권고(2009년)에는 더 뼈아픈 지적이 있다. “노사관계 관련 노동자에 대한 빈번한 처벌 사례 및 파업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물리력 사용 등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노동조합권이 한국 내에서 적절히 보장되지 않음을 거듭 우려한다.”는 것이다.
선택의정서의 발효로 국가의 인권의무 이행에 관한 국제기준의 수준이 한층 높아진 이때에 하필이면 더 우울한 기록을 보게 된다. 선택의정서가 빛을 본 때와 같은 달 26일 재능노조는 1,895일의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을 기록했고, 27일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철탑 농성 100일을 맞았다.
권리의 당사자들만 홀대받는 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사회권 규약은 다른 국제조약에 비해 탄생부터 엄청 홀대를 받았다. 우선 세계인권선언을 만들 당시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진통을 겪었다. 한 예로 노동조합의 결사권에 대해 선언 기초자들이 미적거리자, 세계의 노동조합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권리를 세계인권선언에 넣자고 촉구하는 운동을 강력히 펼쳐야 했다. 세계노동조합연맹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전후 노조의 곤경을 분석·보고한 장문의 비망록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영향으로 경제사회이사회와 국제노동기구가 협력하여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조합 결사권을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결국, 선언의 기초자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가 음모로 간주되던 시기는 지나갔다. 노동자의 결사를 음모로 보는 것은 20세기가 아닌 19세기의 개념이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사수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가 선언기초자들의 합의였다.
세계인권선언 속에 사회권이 간신히 자리를 잡았더니, 이번엔 국제조약으로 만들면서 사회권을 불편해하고 떼놓고 가려는 움직임이 컸다. 결국, 한 개가 아니라 ‘자유권’과 ‘사회권’ 두 개로 쪼개진 규약이 만들어지게 됐다. 그다음에는 규약 이행을 심사할 기구도 문제였다. 자유권 규약에 대해서는 담당하는 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를 처음부터 두었는데, 사회권 규약에 대해서는 담당 기구를 두지 않고 경제사회이사회에 떠넘겼다. 그런 상태가 10여 년 이어지다가 1987년에 와서야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더 큰 차이는 개인 진정에 대한 ‘선택의정서’였다. 앞서 말했듯이 선택의정서란 해당 국제조약의 이행을 보완하기 위해 만드는 독립된 조약을 말한다. 현재 주요 국제인권조약은 대부분 개인 진정 절차에 관한 선택의정서를 두고 있다. 선택의정서가 발효되면 해당 국제조약이나 의정서를 비준한 국가를 대상으로 모든 사람이 진정을 제출할 수 있다. 국내의 모든 구제절차를 거친 후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나, 예외적으로 국내 구제 절차가 불합리하게 지연되거나 그 효과성이 없음이 명백하거나 당사자가 그런 절차를 이용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제출할 수 있다. 자유권 규약은 개인 진정에 대한 선택의정서를 일찌감치 만들었다(1966년 채택, 1976년 발효). 반면 사회권 규약은 그보다 40여 년이나 늦은 2008년에 와서야 선택의정서를 채택했고, 그 발효를 위한 10개국을 채우는데 또 4년이 걸린 것이다. 늦은 감도 있고 미진한 감도 있겠지만 ‘사회권은 사법기구나 조약기구에 의해 적용될 수 없으며 개인 진정 절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오랜 반대주장을 해묵은 것으로 만든 진전이다.
한국 정부는 아직 이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진정절차를 지금으로선 이용할 수 없다. 또 비준하여 이 절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국제 절차가 국내의 절차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 국회도 있고 정부도 있고 법원도 있다. 국제기준과 유엔 사회권위원회 등의 역할은 당사국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입법, 정부의 결정과 집행, 법원의 판단 등 모든 분야에서의 의사결정과 특정 행위가 기본적 인권에 합치되는지에 대해 가능한 최대한의 감시와 협의의 길을 열어놓자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면 새 정부에 바라는 대표적 인권 과제 같은 걸 국내외 인권 단체들은 의례적으로 발표하곤 했다. 이번에는 그런 형식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온몸으로 외치고 요구하는 몸의 언어가 전국에 넘치기 때문이다. 지하도, 철탑, 굴다리, 영하의 길거리에 제 몸을 묶은 이들이 넘쳐난 지 오래고 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새삼 물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 살아갈 권리를 외치는 몸의 언어를 홀대하는 한, 제아무리 좋은 국제기준이든 장밋빛 공약이든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회권 규약 선택 의정서(The Optional Protocol of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전문 |
인권오름 제 335 호 [기사입력] 2013년 02월 27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문헌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권문헌읽기 79]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성소수자 차별 반대 발언들 (0) | 2019.05.30 |
---|---|
[인권문헌읽기 78] 잊혀진 유럽인, 잊혀진 권리 -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의 인권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76]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 원칙(2012년 9월 27일 유엔인권이사회)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75] MB정권 5년 동안의 외침들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74] 구조조정에서의 건강: 혁신적 접근과 정책 권고(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고용·사회문제·기회균등국, 2009) (0) | 2019.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