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15 호 [기사입력] 2012년 09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드라마에서 자주 변주되는 소재 중의 하나가 ‘키다리 아저씨’이다. 어렸을 적 나의 애독서 중 하나였기에, 불우하지만 씩씩한 여주인공과 그녀를 은밀하게 돕는 부자 남성의 관계로만 그 내용이 소비되는 게 탐탁치가 않다. 제목은 ‘키다리 아저씨’이지만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키다리 아저씨가 아니라 고아원 출신 소녀 ‘주디’이다. 주디는 결코 후견인의 일방적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할뿐더러 사회의 편견과 배제를 날카롭게 뚫어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고아원의 후원자로서 글재주가 있는 소녀 주디를 대학에 보내준다. 주디는 대학생활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에 대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편지에 담는다. 그 편지로 채워진 것이 소설 ‘키다리 아저씨’이다.
아주 어려서 읽었지만, 요즘 나는 사회보장에 대한 얘기를 꺼낼 때 이 소설 속 주디의 말을 인용하곤 한다. 가령 대학 예배에서 설교를 들은 주디는 분노한다. “가난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 자비심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말하자면 유용한 가축이라는 식이더군요.” 덧붙여 주디는 어린 시절 학교에 구호품 옷을 입고 갔는데 그 옷의 기증자가 옆자리에 앉은 급우였던 일을 회상하면서 “저는 동정심을 갖고 다가와서 위로의 말을 하는 그 애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미워했어요. 특히 동정심이 있는 체하는 아이들은 더 미워했습니다.” 자선과 시혜 또는 구제라는 것들이 주는 자의 입장에서의 표현이지 받는 자의 입장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는 걸 주디는 지적한다.
주디는 호기심이 많고 모험을 즐기며 상상력이 풍부하다. 하지만 자신의 상상력의 한계에 대해 토로하는 대목이 있다. 고아원이 아닌 ‘보통’의 ‘집’으로 들어가는 공상을 하는데, 그 공상이 집의 문 앞에 이르면 희미해진다고 슬퍼한다. “보통집에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들어가려는 집의 현관 안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통집”이라 말한 것을 나는 제법 살아야 맛볼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라 생각해본다. 직장이 안정되고 좋을수록 덩달아 든든한 사회보장이 있고, 불안정하고 권리가 취약한 일자리일수록 사회보장을 꿈꿀 수가 없다. 흔히 복지경험이 부족해서 복지에 대한 안정된 지지와 기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우리는 문 앞에 서서 집안을 도저히 상상해볼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밝은 성격의 주디가 우울해하는 것은 사회적 배제를 절감할 때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주디는 다른 학생들이 읽은 것, 먹어본 것, 보고 즐긴 것을 직접 겪어본 일이 없다. 18년 동안 고아원에서 최저수준의 생존의 권리만을 보장받아온 삶이었기에 그런 삶에는 필요 없다고 여겨진 것들의 필요가 한꺼번에 몰려든 것이었다. 그래서 외계인 취급을 받게 된 주디는 학과 공부 대신에 타인과 어울리기 위한 남몰래 교양 쌓기 학습에 몰두한다. 그럴 때 쓰는 편지의 내용은 “아저씨, 대학생활에서 어려운 것은 공부가 아니더군요. 노는 것이 힘들어요. 저는 다른 학생들이 말하는 것 중의 반은 무슨 얘긴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그들의 농담은 저만 빼고 누구나 알고 있는 과거의 일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세계에서 생소한 외국인이에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요. 참 비참한 느낌이 들어요.”
‘최저선’이라는 것이 사회적 배제를 줄이고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리의 벽을 두껍게 하는 것이라면, 그 최저선으로 보장되는 생계에 대한 권리란 인권이 아닌 굴욕에 대한 적응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나의 주디는 당당하게 덧붙인다. “제가 딴 애들과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안 그래요?” 사회보장이 보장해야 하는 것은 주디의 말처럼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는 인간의 존엄성이며 최소한의 생계 보장은 그 수단인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보인다.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평등과 포함의 것으로 바꿔나가면서 주디는 “내가 묵인을 받아 이 세상에 끼어든 것이 아니라 진실로 이 세상에 속해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주디는 자기 발로 서게 되며 적극적으로 타인들의 고통에 관심을 갖게 된다. “저는 누구에게 있어서나 가장 필요한 건 상상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만 있으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 처해볼 수도 있어요. 상상력이 사람을 상냥하고 공감하고 이해심이 많게 하지요.”라고 말하는 주디의 상상력의 힘은 공상이 아닌 사회적 포함의 경험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난 6월 14일, 국제노동기구(ILO)는 사회보장 최저선에 대한 새로운 권고를 발표했다. 이 권고는 사회보장 최저선을 조속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며 특히 공식 경제 부문에 고용된 사람들뿐 아니라 비공식 부문에 고용된 사람들 또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ILO가 사회보장에 대한 기준을 제시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권고를 발표하는 기자회견문에서도 밝혔듯이 50억이 넘는 인류, 사실상 대부분의 인간에게 적절한 사회보장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ILO가 만들어온 사회보장 관련 기준의 초석으로 작용하는 일명 ‘필라델피아 선언’(1944년)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기본원칙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노동이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면 인간의 생존 또한 상품을 팔았느냐 말았느냐에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이 구절을 볼 때마다 사회보장을 임금보조 장치로 국한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사회’라는 말이 ‘경제’에 먹힌 지 오래됐지만, 진짜 사회보장을 추구하려면 경제회복이나 발전이 아니라 사회를 복원해야 한다는 말로도 읽힌다. ‘사회’가 빠진 생존 보장이란 것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가를 알기 때문이다. 사회가 빠진 생존 보장이란 흔히 ‘있는 쪽에서 베푸는 시혜’로 여겨진다. 호의를 베푸는 것이니 적당히 상대방의 자존심이나 자율성을 침해해도 된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생존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구차하게라도 살아야 할 굴레가 돼버린다. 그래서 사회보장을 임금 보조로서가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를 구성하는 것, 서로에게 보장하고 북돋아 주기로 한 약속이자 의무로 생각한다. 그 구체적인 실현의 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차별 없고 배제 없는 기본소득과 의료의 보장이다.
선거를 앞두고 사회보장에 대한 논란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한다. 그럴 때마다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과 실천에 관계없이 숱한 삶들이 도마 위에 올려진다. 받는 사람 내지 받아야 할 사람과 상관없이, 주지도 않고 생색내는 쪽의 관점에서 누군가의 삶이 비늘 벗겨지고 잘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설 속의 주디를 떠올린다. 사회보장을 ‘범국민특별안전기간 선포’로 바꿔치기하려는 시도나 ‘기업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며 갑옷부터 챙겨 입으려는 시도를 볼 때 주디라면 뭐라고 맞받아칠까 궁금해진다.
사회보장 최저선에 관한 권고문은 딱딱하고 원칙적인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이런 문구에 구체적인 사람의 얼굴을 입혀본다. 그것은 소설 속 주디의 얼굴이 아니라 매일 부딪히는 사람들의 얼굴이다. 한 골목에서 폐지를 줍는 십여 명의 노인들, 같은 골목에서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한잔 술에 빠진 고단한 장년들, 고시원에서 슬리퍼 차림으로 나와 배회하는 청년들, 껌과 초콜릿을 파는 장애인, 간판이 자주 바뀌는 고만고만한 점포의 주인들, 그런 우리가 모여 사는 골목에서 ‘사회’의 ‘보장’을 경험할 수 있는 상상력이 발휘됐으면 한다.
사회보장 최저선에 관한 ILO 권고(2012년 6월 14일) ILO 총회는 사회 보장에 대한 권리가 인권임을 재확인하며,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는 고용 증진과 더불어 발전과 진보를 위해 경제‧사회적으로 필수임을 확인하며, 사회보장은 빈곤과 불평등‧사회적 배제‧사회 불안을 줄이고 예방하며, 평등한 기회와 성‧인종의 평등을 증진시키며, 비공식 고용에서 공식 고용으로의 전환을 지원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인정하며 … 이 권고를 채택한다. |
인권오름 제 315 호 [기사입력] 2012년 09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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