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87 호 [기사입력] 2010년 01월 20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요청한다(A Call for Human Rights-Based Approach to Humanitarian Assistance for Haiti, IJDH 등, 2010년 1월 15일)
몇 년 전 어느 뒤풀이 자리였다. 사학과 대학원생이 자리를 같이했다. 마침 논문을 쓰던 때라 석사 논문 주제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아이티 혁명에 대해 쓰려고요.” 순간 모두들 멈칫 했다. “사학과에서 왜 아이티 혁명에 대해 써요?”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모두들 동의의 눈빛을 보냈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아이티(IT) 혁명, 즉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혁명이었던 것이다. 순간 눈치 빠른 한 명이 “아, 아이티!, 프랑스 혁명 때 노예혁명을 일으켜서 독립한 나라, 그거 말하는 거죠?” 그제서야 다른 사람들이 “아아, 그래서 사학과 논문 주제였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이티(Haiti)는 모르는 존재였고, 아이티(IT)는 핸드폰으로 모두의 손안에 있었다.
그런 아이티가 새해 초, 모두의 눈 안에 들어왔다. 그러나 처참한 비극과 고통을 안고 날아들었다. 누가 얼마를 냈다더라 식의 재난보도의 전형적인 기사유형에 짜증이 나면서 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믿을만한 구호단체에 기부를 하는 일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읽던 것들을 제쳐놓고 아이티 사람들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당신들에 대해 알고 싶어요”, “당신들이 이렇게 오랜 세월 어떤 식으로 고통 받는 줄 지금껏 몰랐어요”라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는 잊지 않고 죽 관심을 가질게요.”라고 약속해야 할 것 같았다.
출간 직후 사놓고 책장에 모셔두었던, 아이티 혁명에 대한 기록(『블랙자코뱅, 투생 루베르튀르와 아이티 혁명』시엘 아르 제임스 지음/우태정 옮김/필맥/2007)을 빼어들었다. ‘자유, 평등, 우애’라는 인권의 원칙이 서구 백인의 성공 뒤에 나머지 세계와 인종에게 낙숫물처럼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당대에 흑인 노예 혁명 속에 이미 담겨 있었다는 기록이다.
19세기 최초의 노예 해방 혁명으로 독립한 나라가 아이티이다. 2004년은 아이티 독립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식민주의자들은 가장 풍요하고 이득이 되는 식민지 아이티에 대한 탐욕을 놓지 않았고, 독립 후에도 주인행세를 하는 자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그 야욕은 계속됐다. 그 결과는 정치적 불안과 지독한 가난이었다. 허리케인과 지진 등 연이은 재난은 이런 인재와 겹쳐져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한 후배는 아이티의 전직 대통령 아리스티드(네 번이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으나 쿠데타와 미국의 개입으로 번번이 물러나야 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아주 엇갈린다.)가 지은 책을 권했다. 제목부터가 가슴에 와 닿았다. 『가난한 휴머니즘, 존엄한 가난에 부치는 아홉 통의 편지』(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지음/이두부 옮김/이후/2007)였다.
“글조차 쓸 수 없는 아이티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이 기록들을 쓰게”되었다는 편지글에는 아이티 사람들의 가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오랜 식민지 착취와 노예제의 상처 위에서 국제금융기구와 신자유주의로 인해 자생력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정치혼란을 야기하여 이익을 챙긴 세력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조용하지만 굵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그런 고통 속에서도 제 3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아이티 사람들의 연대의 힘과 희망을 강조한다. 특히나 필자가 지켜본 아이티 아이들, 가사노예로 시달리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교육과 친교활동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인간역량을 보여주는지를 통해 그 희망을 얘기한다.
“우리들이 분노와 좌절, 자포자기를 폭력으로 분출하는 것보다 평화를 위해 결집하도록 해 주십시오. 체념하면서 죽는 방법과 폭력적 폭발을 통해 죽는 방법, 이 두 가지 죽음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집단적 결집이 바로 제 3의 길입니다. 이것은 인간 에너지의 어쩔 수 없는 집중입니다. 우리에게 돈은 충분하지 않지만, 사람만은 충분합니다.”(‘나는 주스가 더 좋아요’ 중에서)
“우리는 평화를 위해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뱃속에 평화가 없다면, 머릿속에도 평화는 없다.” 아이티 같은 나라의 경우, 말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만 주고 그들을 말하지 못하게 놓아둔다면, 그것은 위선적인 일입니다. 같은 이유로 그들에게 단지 말만 들려준다면, 그것은 선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적 참여가 없는 정치적 참여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뱃속 평화와 머릿속 평화’ 중에서)
“아이티 정부가 국제기구의 지시를 계속 따른다면 우리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프로그램에 따라 그저 여기에서 저기로 맴돌 뿐,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반면 민중들에게 전략을 구하는 시민사회 사이에서 아이티의 조직들을 본다는 것은 한밤중에 촛불을 만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절망의 암흑에서 만난 희망! 우린 대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 대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를 굶주림에서 꺼내어 ‘존엄한 가난’으로 이끌 것이라 봅니다.”(‘우리는 존엄한 가난을 원한다’ 중에서)
“당신께 우리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도 우리는 아이티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념 덕에 도전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신념, 이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전 세계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수출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신념을 나눠 가지도록 당신께도 초대장을 보냅니다. 저와 당신은 함께, 같은 손의 손가락처럼 이 새로운 세기에 더 인간다운 세계를 만들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당신에게 보내는 아이티의 특별한 초대장’ 중에서)
책장을 덮고 나니 “여기 사람이 있어요”라는 외침이 생생히 들려온다. “우리도 여기 있어요”라는 화답이 절실한 때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아이티 참사 직후 ‘아이티의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연구소’(Institute for Justice and Democracy in Haiti) 등 6개 인권단체가 내놓은 긴급성명이다. 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초한 접근이 필수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장 급한 지원금과 구호대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장기적인 관심과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지도 당장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쓰나미처럼 몰려왔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관심으론 아이티의 고통이 오래 계속될 터이다. 앞서 인용한 아리스티드의 편지글에서는 “결국 이 작은 행성에 사는 우리 모두는 똑같은 물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다”고 했다.
아이티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에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요청한다 아이티의 정의를 위해 일하는 인권단체들로서 우리는 기부국 정부, 국제조직, 민간단체들에게 재난에 처한 아이티의 필요에 부응함에 있어 국제인권의 원칙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 |
인권오름 제 187 호 [기사입력] 2010년 01월 20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문헌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권문헌읽기 42] 쿠리티바 선언(The Curitiba Declaration, 1997년 3월 14일) (0) | 2019.05.30 |
---|---|
[인권문헌읽기 41] 굶주림에 대한 호세 드 카스트로(Josué de Castro)의 어록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39] 도시권에 관한 세계헌장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38] 아프간 인민은 미국 점령의 즉각적인 종식을 원한다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37] 인권, 인간 발전, 인간안보를 연결하기 (0) | 2019.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