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3월 28일 인권하루소식 제2779호>
보편적 인권을 선언했다고 하는 근대 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인간이 아닌, 부르주아 남성의 권리가 보장되었을 뿐이었다. 이 문서는 프랑스 혁명의 대표적 문서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을 다시 쓰는 방식을 취하면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간과와 모멸을 비난한 것이다. 남녀평등의 관점에 선 발언은 구즈 이전에도 존재해 있었지만, 그녀는 여성의 권리를 확립하는 관점에 서서 사람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에서 여성이 배제 당하고 있었던 현실과,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보편적 인권'을 선언했던 인권선언(및 당시의 제정자들)의 기만성을 비판한 것이다.
구즈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의 프랑스 혁명과 인권선언 비판에 반대하여 '인간의 권리 옹호'(1790년)을 쓴 메리 울스톤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가 1792년에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쓰고 남성과 동등한 여성의 권리를 요구했다. 또 이들 여성의 권리 요구의 흐름은 1848년에 미국에서 1776년 독립선언을 기초로 한 '여성 소신선언'으로 이어진다.
구즈가 이 선언을 쓴 1791년은 프랑스에서 최초의 헌법이 제정된 해였다. 당시에 모든 여성은 재산 없는 남성 시민과 더불어 2등 시민 또는 수동시민으로 간주되어 투표권과 정치적 참여를 부인 당했다. "적어도 현 상황에서는 여성, 어린이, 외국인, 그리고 공적 시설의 유지에 하등 공헌할 수 없는 자는 공적 문제에 하등 능동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었다. 그 결과는 인구의 80%가 넘는 사람들이 수동시민으로 분류되어 선거자격을 갖지 못하는 것이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당연히 여성과 남성도 평등하다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가부장제나 노예제, 식민통치, 계급 차별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근대 인권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고, 공적영역에서 국가가 법을 평등하게(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과 사적영역에 대한 불개입을 강조했다. 공적영역의 참가자가 될 수 없는 여성이 소위 사적영역에서 겪는 폭력과 박탈은 애당초 인권문제가 될 수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다른 유럽의 나라들보다 훨씬 상황이 좋았다는 영국 여성의 권리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이렇다. 여성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남성과는 다른 처벌을 받아야 했다. 교회에서는 남편들과 같은 의자에 앉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흔히 구타당해야 했다. 일부 사회계약 이론가들은 자연상태에서의 여성의 동등성을 일부 인정하더라도 사회계약에 들어갈 때 여성은 보호를 받는 대가로서 남편 또는 남성의 정치적 권위에 대해 동의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성들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의 권위가 신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왜 군주의 권리는 그렇지 않은가?"라고 말이다.
동등한 인간이기를 요구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은 컸다.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들의 선언'에서 교수대에 설 권리만이 아니라 연단에 설 권리를 주창했던 구즈 자신은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소수자로서 취급받으면서 실제로는 결코 소수자가 아니었던 여성의 권리에 대해서는 프랑스 인권선언 직후부터 세계 최초의 여권선언 등을 통해 계속 주장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의 일부에 불과한 참정권의 실현에만도 1백 50여 년에 가까운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
인권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관점에 선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성의 인권 배제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선주민족·장애인·이주자 등과 또한 이들 사회적 약자가 중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여성장애인, 여성이주자 등)의 인권 배제에 관한 비판과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침해'란 원래 권리가 있었을 때 침해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배제'란 애초에 권리가 있기나 했는가의 문제이다. 인권의 주체라는 면에서 볼 때 침해라 말하기에 앞서 배제의 문제가 가슴에 와 닿을 수많은 사람들이 인권의 주체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여성과 여성시민의 권리선언(1791) 전문 |
[류은숙] <2005년 3월 28일 인권하루소식 제2779호>
'문헌으로 인권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헌으로 인권읽기 7] 르샤플리에법 (0) | 2019.06.05 |
---|---|
[문헌으로 인권읽기 6] 헤이비어스 코퍼스 Habeas Corpus Act, 1679 (0) | 2019.06.05 |
[문헌으로 인권읽기 4]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0) | 2019.06.05 |
[문헌으로 인권읽기 3] 미국 독립선언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0) | 2019.06.05 |
[문헌으로 인권읽기 2] 발전권 선언 "발전은 경제성장의 동의어가 아니며, 인권의 보장이 발전의 필수조건" (0) | 2019.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