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11 호 [기사입력] 2012년 08월 22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는 판잣집이 많았고, 하루 종일 방치된 일부 아이들은 위험한 놀이를 벌였다. 위험한 놀이란 언덕배기에 올라앉아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을 겨냥하여 딱딱한 고무조각을 총알 삼아 딱총을 쏘는 것이었다. 나도 한번 종아리와 배에 그 고무탄을 맞았는데 너무 아파서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고 눈물이 절로 났다. 그 총을 맞아 실명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아프기도 했지만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고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다는 게 더 미칠 지경이었다. 그 아이들을 단도리할 어른들은 그 골목에 전혀 없었다. 선생님에게 호소할 수도 경찰을 찾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내돌리기만 한 불쌍한 아이들이었지만, 그때는 무섭고 징글징글하기만 했다. 먹는 밥도 공부도 사람의 손길을 타지 못한 그 아이들은 자라서 어디로 갔을까, 어떻게 됐을까가 가끔 궁금하다.
용역 폭력에 피투성이가 된 노동자들의 기사를 볼 때마다 그때의 통증이 떠오른다. 직장에서 잘리고 직장이 폐쇄된 것도 모자라 회사가 엄청난 돈을 주고 부른 폭력집단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쥐어터지고 욕설을 들어야 한다니 참 기막힌 심정일 것이다. 어렵게 번 돈으로 세금 내서 키운 경찰은 방관하거나 한통속이 되고, 정부는 노동자를 힐난하는 발표를 내놓고, 법은 폭력을 가한 자들을 너그럽게 대할 때 그야말로 인간샌드백이 된 느낌일 것이다. 한편으론 폭력에 동원된 용역들이 먹고 살기 위해 모여든 ‘이웃사람’이란 보도에 지옥도를 연상하게 된다.
현 정권 들어 더 자주 더 심하게 등장한 것이 용역폭력이다. 하지만 비슷한 일은 계속 있어왔다. 오래전 집회에서 경찰에게 맞아 한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 인권단체들은 규탄 기자회견을 하면서 “공정한 법집행이 아니면 공권력은 사적 폭력일 뿐”이란 표현을 썼다. 그와 유사한 기자회견들은 계속됐는데 아마도 일부 세력만을 위해서 봉사하는 공권력은 사적폭력과 마찬가지라고 여긴 것 같다. 용역 폭력이 기승을 부린 현 정권하에서는 트위터에 한 시민이 남긴 말이 큰 공감을 얻었다. “용역은 청부폭력인데 구매된 사적폭력이 공공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국가도 결국 사적폭력 청부집단”이란 지적이었다. 한 신문 사설에서는 그런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근원적 토대는 현 정권이 “국가를 사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란 표현을 썼다.
폭력에 대한 위기감은 크기만 하다. 인권이란 이름으로 나름 열외 취급을 받았던 인권활동가들도 얻어맞는 일이 늘었다고 자괴한다. 용역 폭력의 기승에 작년 말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워크숍을 가졌다. ‘공권력과 사적폭력을 나누고, 경찰이 아닌 사람들이 하는 걸 사적폭력이라고 편의상 말하는데 본질을 따지면 정말 사적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실제 폭력 행위를 수행하는 것은 민간 기업이고 그들에게 고용된 용역들이다. 하지만 계급적으로 편향된 국가기구들과의 끈끈한 교감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외관은 사적 폭력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공권력의 연장선에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용역 폭력이 아무리 날뛰어도 뭔가 의미 있는 반응과 대응이 없으면, 가해자들은 ‘괜찮다’는 신호로 인식하고 계속하게 되고, 그런 일은 계속 누적되게 된다. 누적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폭력의 정도가 계속 고조된다. 이런 문제 진단을 내리자 참석자들은 우울해졌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까지 놓이게 됐을까? 문제의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얘기가 나왔지만 내 귀에 들어온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대규모 정리해고, 직장폐쇄, 실업, 빈곤한 복지, 막무가내 국책 사업 등 공적인 무대에서 충분히 논의돼야 할 문제가 내쳐졌다. 그러면서 공공적인 것이 무엇이고 공공적으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들은 모호해졌다. 그런 가운데 사적영역의 용역들이 끼어들어 폭력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게 돼버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공적인 영역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채울 것인가이다. 공적인 영역이 재구성되고 정립되면 공권력과 사적폭력도 재구성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대응이 절실하다. 같은 시민이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고 생존권을 외쳤다는 이유로 두들겨 맞는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시민으로서의 무감한 정체성이야말로 진짜 위기이다.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것, 공분하기는 하지만 대응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폭력의 방관과 상승을 불러올 뿐이다. 사적 폭력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보편적 복지가 향상되면 상당히 해결될 것이다. 공적으로 대안을 주어야 폭력 용역으로라도 살 길을 찾는 비인간화를 막을 수 있다. 무대응을 비웃듯이 상승된 폭력이 쓰나미처럼 덮친 요즘, 작년에 나눴던 얘기들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이번에는 다행히 공분에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서 대응 활동이 생겨났다. 대응을 보여줘야 폭력의 연료 공급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국제적 차원에서의 용역 문제를 다룬 글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용역을 국제적으로는 용병이라 한다. 이름과 활동무대는 달라도 하는 일의 성격은 거기서 거기다.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폭력이 민영화’되면서 심각한 인권침해의 요인으로 떠올랐다고 판단한 유엔은 ‘용병 사용에 관한 실무 그룹’(UN Working Group on the Use of Mercenaries)을 2005년 설립했다. 이 실무 그룹에는 5명의 전문가가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프라도는 이 글을 쓸 당시에 이 실무 그룹의 의장이었다.
프라도의 글에 나타난 국제 용병의 문제점을 국내 용역의 문제점으로 바꿔 읽어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가난한 사람이 주로 선발된다는 것, 용역회사는 엄청난 돈을 빠른 시간에 벌어들인다는 것, 진짜 안전이나 평화가 아니라 돈벌이가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 하지만 용역들은 비인간적 처우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앞서 말했듯이 워크숍에 모였던 인권활동가들이 내린 진단과 여러모로 맥이 닿아 있다. 그 진단이란 ‘공권력과 사적폭력의 구분이 흐려지고 뒤얽힌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비호를 받는다는 것,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정부가 폭력을 민영화・외주화하여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일을 처리하려 한다’는 것이다. “오늘 여기서 벌어진 일은 오늘 우리만 안다”는 이라크에서의 용병들의 구호처럼 사적 용역 폭력은 인권 침해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결과적으로 폭력 앞에 인권이 실종될 것이란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한 한계선을 긋고 규제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은 국내외를 따지지 않고 당장 해야 할 일인 것이다.
민간 군사기업과 경비 회사의 활동이 인권에 끼친 영향 (호세 고메즈 델 프라도, 용병 사용에 관한 유엔 실무 그룹, 2008) 지난 20년간 민간 군사기업과 경비 회사(아래 약칭으로 PMSC)가 엄청난 확장을 해왔다. 이들 기업이 활동하는 곳은 아프가니스탄, 발칸, 콜롬비아, 콩고, 이라크, 소말리아, 수단 등 저강도 무력 분쟁지나 분쟁 후 상황 지대이다. 이들 초국적 민간 기업은 교전 지역의 한복판에서 전략적 군사 역량뿐 아니라 병참(*)・전투・전투와 관련된 경비훈련과 첩보를 제공할 수 있다. 세 부류의 국가들이 초국적 PMSC가 수행하는 활동과 연루될 수 있다. 즉 사병과 경비 용역을 공급하는 수출국들, 그런 용역을 요구하는 수입국들, 그리고 PMSC 직원들이 국적을 둔 출신국으로서 주로 싼 노동력을 초국적 PMSC에 제공하는 저발전국들이다. |
인권오름 제 311 호 [기사입력] 2012년 08월 22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문헌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권문헌읽기 73] ‘바보’들의 행진의 기록들 - 생명평화대행진에 부치는 글 (0) | 2019.05.30 |
---|---|
[인권문헌읽기 72] 사회보장 최저선에 관한 ILO 권고(2012년 6월 14일)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70] 노인의 인권상황에 관한 유엔인권최고대표 보고서(2012년 4월)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69] 여섯개의 P - 빈민을 조직화하는 빈민에 관하여 (0) | 2019.05.30 |
[인권문헌읽기 68] 기억할 의무 - 인권침해 가해자의 불처벌 문제 (0) | 2019.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