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95 호 [기사입력] 2014년 06월 12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문헌읽기] "이곳에 저항할 다른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나는 저항할 겁니다." - 마더 존스(Mother Jones)의 연설(1912)
류은숙 씀
슬픔 위에 슬픔이 분노 위에 분노가 계속 포개지는 날들이다. 한 겨울 고 최종범의 영정을 들고 삼성본관을 찾았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이번엔 뙤약볕 아래 고 염호석의 영정을 들고 한 달 가까이 노숙을 하고 있다. 노동권도 뺏겼고 그에 항의해 죽어간 동료의 시신마저 도둑질 맞았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입막음과 타작이 가해지고 유가족들은 서명지를 들고 거리를 헤맨다. 밀양 할매들은 쇠사슬로 몸을 묶고 알몸이 되면서 질질 끌려 내려와 통곡을 한다. 이게 다 얼마 전에 표 받아간 정치권과 세금 내서 키운 공권력과 모든 곳에 군림하는 ‘초일류기업’이 만든 일들이다.
‘우리는 국민도 시민도 아니냐’는 울부짖음을 내동댕이치며 유유히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 앞에서 인권은 조롱거리다. 그들은 공민권, 정치권, 사회권이란 인권의 표지들을 다 잡아뜯어냈다. 표현의 자유도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도, 정치권력의 행사에 참여할 권리도, 경제적 복지와 안전에 대한 권리도 찢겨져 나뒹군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되돌려줄 건 조롱이 아니라 엄중한 비판이며 저항이라 말하는 할머니가 있다.
처참한 오늘, 우리를 응원해줄 것 같은 그 할머니를 모셔봤다. 1830년에 태어나고 미국에서 활동했던 할머니인데, 나는 오늘 그녀의 얘기를 ‘밀양 할매들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하는 말’로 바꿔 읽어봤다.
얘기의 주인공은 마더 존스(Mother Jones)다. 본명은 따로 있지만, ‘미국 노동운동의 어머니’란 뜻으로 ‘마더 존스’라 불렸다. 미국 상원에서 그녀를 “모든 선동가들의 할머니”라고 조롱하자 그녀는 언젠가는 “모든 선동가들의 증조할머니”로 불리고 싶다고 받아쳤다 한다. 마더 존스는 쉰이 넘은 나이에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밀양 할매들 말마따나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이다.
그녀의 젊은 시절은 굶주림과 노동과 질병으로 채워졌다.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으나 대기근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멤피스에서 교사와 재봉일을 하다 철공 노동자를 만나 결혼해 네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황열병이 도시를 덮쳤고 부자들이 도시를 탈출할 때 가난한 노동자들은 병으로 쓰러져갔다. 그녀 또한 남편과 아이들을 그 병으로 모두 잃었다. 그 후 시카고로 이주한 그녀는 부잣집의 재봉일로 생계를 꾸렸다. 거기선 대화재가 일어났고 그녀는 홈리스가 됐다. 이런 비극들을 겪으며 그녀는 가난한 자에게 전가되는 사회적 위험과 불의를 온 몸으로 느꼈다. 결국 그녀는 노동자야말로 “돈으로 된 문명”을 “미래 세대를 위한 더 고귀한 문명”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창하는 운동가가 됐다.
그녀는 실업자 운동에 결합한 것을 시작으로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부정의를 까발리고 정치권에 일자리 창출을 요구했다. 이 운동은 미국 철도 조합 그리고 광부 조합과 연결됐다. 그녀가 ‘마더 존스’란 명칭을 얻게 된 것은 잘못 기소돼 교수형에 처하게 된 철도조합의 젊은 활동가 구명을 위한 활동 때문이었다. 온갖 곳을 쫓아다니고 항의한 활동 끝에 결국 그 활동가의 생명을 구했다. 아동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당시 처참했던 아동노동의 문제를 공론화한 것도 ‘마더 존스’의 이름을 다진 활동이었다.
노동운동 조직화와 파업으로 점철된 삶에서 그녀는 숱하게 총검의 위협에 맞서고 금지명령을 어기고 구속되고 강제 이송됐다. 그런 일을 하면서 그녀는 노동조합에서 아무런 공적 지위를 갖지 않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노동자의 편에서 싸웠다. 그런 그녀가 주창한 것은 지도자가 아닌 평 조합원들의 운동을 강조한 민주적 노동조합주의였다. 그녀는 그런 노동조합운동의 기초로서 가족과 지역사회 조직화를 내세웠다. 여성들에게 남성으로부터 독립적인 조직화를 권했고 노동조합운동에서 백인지상주의를 비난하며 인종적‧민족적 분열에 다리를 놓았다.
오늘 읽어 볼 인권문헌은 마더 존스가 1912년(그러니까 80세가 넘어서였을 것이다), 웨스트 버지니아의 파업 광부들을 지지하기 위한 집회들에서 한 연설이다.
“이곳에 저항할 다른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나는 저항할 겁니다.” 이 말은 “밀양 싸움은 끝이 아니다. … 연대의 손길을 놓지 않는 ‘밀양 송전탑 시즌2’를 열어젖힐 것”이라는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의 말로 들린다. ‘침실 담당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우리는 천국에서도 잠자리를 얻지 못할 것’이란 마더 존스의 농담은 삼성노동자들의 노동이 곧 삼성 자본을 만들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 같다. 자기 안에 있는 노동을 보지 못하는 삼성을 향해 “그들은 노예 제도의 지속을 원한다”고 비판한다. “여러분이 내건 기치는 역사입니다”라는 말은 땡볕 또는 폭우 속에서 “독재기업 삼성을 바꾸자! 이 사회를 바꾸자!”는 함성을 멈추지 않는 삼성전자 서비스 노동자들을 향한 응원으로 들린다.
“여러분, 이 싸움은 계속됩니다. … 나는 이 생애를 통해 오직 한 번의 여행을 합니다. 여러분은 이 생애를 통해 오직 한 번의 여행을 합니다. 우리 모두 여기 있는 동안 인간애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시다.” 이 말은 밀양 할매들이 삼성 노동자들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하고픈 말로 들린다. ‘우리 여기 있어요. 우리는 돈이 아니라 인간애를 위해 최선을 다할게요.’로 화답할 때 우리는 틀림없이 자유인일 것이다.
<파업 광부들에게 한 연설, 1912) 여기 오늘밤 이렇게 많이 모인 것은 이 나라에 쓸어 버려야할 질병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사람들은 이 질병을 참을성 있게 앓아왔습니다. 모욕과 억압과 폭력행위를 견뎌왔습니다. 당국에 호소했고 법원에 호소했고 법무장관에게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거절당했고 무시 받았습니다. 우리의 소리는 들을 리가 없는 것이고, 기업의 소리는 들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
인권오름 제 395 호 [기사입력] 2014년 06월 12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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