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고,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화씨 451’이란 미래 공상 소설이 있다. 이 소설 속 시대의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들 집의 방마다에 있는 커다란 TV 화면으로 지루하고 시시한 드라마를 보면서 상당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처형당한다. 국가가 고용한 소방관의 임무는 모든 책을 추적해서 불태우는 것이다. 온도를 따질 때 섭씨와 화씨가 있는데, ‘화씨 451’이란 이 책의 제목은 바로 종이가 불타는 온도를 말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체포되어 투옥되고 처형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방관인데 자기가 태워버려야 할 책을 읽으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결국 당국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고, 시골에 숨어사는 지하 집단 속에서 피난처를 구하게 된다. 이 지하집단은 문학 유산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즉 세계 고전 문학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각자 맡아서 외우는 임무를 나눠 갖고 있다. 간단한 줄거리지만, 역사상 실제 벌어졌던 표현의 자유 억압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설이 쓰인 시기가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판친 1950년대였기에 더욱 그렇다.

책이 불타는 온도 화씨 451도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자유(freedom)의 상실이 자유(liberty)의 대가”라 했다. 각 시대는 그것만의 지배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고, 그 세계관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정하곤 했다. 의견과 표현을 승인할 때는 ‘의견’이라 불렀지만, 지배적인 세계관이 그것을 싫어할 때는 ‘이교, 이단, 반역’ 등으로 불렀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의 역사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목이 잘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자유 상실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은 항상 소수자로 인식되고 소수자 지위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더 큰 목적을 성취하리라 생각되는 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다른 자유들과 인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표가 됐다. 흔히 표현의 자유가 부정될 때는 ‘뭔가 더 큰 폭력과 독재의 위험이 닥치리라’는 전조인 것이다.

인권에서 중시하는 자유가 세상의 모든 자유를 다 긁어모은 것은 전혀 아니다. ‘뭐든지 내 맘대로’식의 자유도 아니다. 인권에서 옹호되는 자유는 모든 사람의 권리 존중과 어울릴 수 있는 자유이다. 그래서 많고 많은 자유들 중에서도 아주 특수한 자유들만이 인권의 목록에 올라있다. 각자의 자유를 일종의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특정하여 구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인권으로서의 자유이다. 의견과 표현의 자유가 바로 그런 자유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표현의 자유가 전체주의의 첫 번째 표적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정부와 국가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만 생각한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단지 억압을 반대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좋은 거버넌스의 기초이며 전 사회의 문화적 풍요를 능동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고 봤다. 그래서 19조는 ‘정보의 자유’로서의 표현의 자유 또한 강조하고 있다.

정보의 자유로서 표현의 자유

정보와 언론의 자유가 유엔헌장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유엔창립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회의의 토론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유엔은 1946년 제1차 총회 결의안에서 정보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으로 선포하고 유엔이 존중하는 기타 모든 자유의 초석이라 했다. 덧붙여 정보의 자유에 관한 유엔회의를 가질 것을 경제사회이사회에 요청했다.

정보의 자유에 관한 유엔회의는 1948년 3월과 4월 사이에 제네바에서 열렸으나 전후 냉전 속에서 회의의 분위기는 아주 정치적이었다. 한쪽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에 초점을 두고 다른 한쪽은 ‘균형 잡힌’ 정보의 흐름과 정보의 교환을 주장했다. 이후로도 국제사회는 의견과 표현, 정보의 자유 개념을 다듬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유엔 총회 의제에 정보의 자유에 관한 국제협약의 초고가 등장했지만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세계인권선언 19조에서 부딪친 문제는 표현의 자유 제한에 관한 것이었다. 소련 측은 “미국 언론과 유럽의 모방적인 언론이 침략정책을 옹호해왔으며 심리전을 수행해왔다. 이들 언론은 국내에서는 민주세력을 분쇄하고 다른 국가들을 위협한다”면서 ‘침략의 선전’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소련안은 부결됐다. 통제되는 언론을 만들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19조에는 어떠한 권리의 제한요소도 붙지 않았다.

선언 이후 만들어진 시민․정치적 권리규약에는 “전쟁을 위한 어떠한 선전”이나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다”는 규정이 들어갔다. 여기서 ‘전쟁’이란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침략전쟁’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그밖에도 규약에는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도덕 등의 제한 요소가 들어갔는데 하나같이 정의하기가 어렵고 권리침해에 오․남용될 소지가 큰 개념들이다. 이에 국제법률가 위원회는 이들 제한 규정을 해석하기 위한 회의를 갖고 1984년 ‘시라쿠사 원칙’(Siracusa-principles)을 채택했다. 또한 1995년에는 국제법 전문가들이 ‘국가안보와 표현의 자유 및 정보접근에 관한 요하네스버그 원칙’을 채택했다. 여기서 기본 원칙은 "누구도 자신의 의견이나 신념으로 인해 어떠한 강제, 불이익이나 제재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평화적인 행사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 되며, 어떠한 규제나 형벌도 과해져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흔히들 금기시 여기는 '정부를 바꾸자는 표현, 국가나 국기를 모욕하는 표현, 징병반대, 전쟁반대' 등의 표현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아니하는 표현"이다. 이런 걸 다 제하고도 제약할 의사표현이 있다할 경우라도 정부가 지켜야 할 전제조건과 정부가 져야 할 입증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반대자에 침묵 강요는 안 돼

국제사회의 최근 논의와 관련하여 ‘의견과 표현의 자유 권리보호와 증진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Ambeyi Ligabo)이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자.

보고관은 ‘명예훼손, 중상, 모욕’ 혐의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현상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명예훼손, 중상과 모욕의 혐의가 공적 인물, 특히 국가 당국으로부터 기인할 때는 어떠한 형태의 사전 검열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명예훼손은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국가정체성, 종교, 국가 상징, 기관, 국가의 수장’ 등 주관적 가치나 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했다. 명예보호를 명목으로 탐사 저널리즘을 억압하고 비판을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

특별보고관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제한에 대해 조건을 언급했다. 첫째 제한은 법으로만 수립되며, 둘째 그 법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 목적을 추구해야 하며, 셋째 목적의 성취에 비례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유형의 제한이건 사전 검열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며, 비판을 제한하거나 반대자를 침묵시키기 위해 이용돼선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예방 구금을 하고, 언론인의 소득에 부합되지 않는 과한 벌금을 부과하고, 언론자격의 유예, 미디어 송출의 유예 또는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형사법적 명예훼손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제한이 아니다. 모든 형사법적 명예훼손은 철폐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별보고관이 특히 촉구한 것은 인터넷에서의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조치의 확대이다. 특히 웹사이트 투고자와 블로거들에게 다른 유형의 미디어와 같은 수준의 보호가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특별보고관의 결론은 간단하다. “지속적인 사상의 대결은 민주사회의 디딤돌이다.”

표현의 자유는 상호교통의 권리이자 의무

(아래 내용은 전규찬 한국예술종합대 영상원 교수의 인권연구소 ‘창’ 강좌 내용 중 일부를 재구성했다. 전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교통(communication/intercourses)의 권리’라 표현했다.)

세계인권선언 18-20조는 떼어낼 수 없는 한 덩어리이다. 앞서 살펴본 18조는 생각의 자유(사상․양심의 자유)를, 19조는 표현의 자유를, 20조는 생각과 표현을 타인과 더불어 함으로써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집회와 결사의 자유)을 말한다. ‘생각+표현+행동’의 권리라 할 수 있다.

인간 간의 상호교통 없이 사회가 존속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개인의 자유일 뿐 아니라 타자와 만나고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의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개인을 억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의 붕괴와 해체를 획책하는 야만이다.

말하거나 쓰는 표현은 막을 수 있어도 생각하는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표현’을 통해 다른 사람과 상호교통하지 않는 생각이 잘될 리도 없고 정확할 리도 없다. 표현을 통해 자유롭고 공개적인 검토가 가능해야 진짜 자유로운 생각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롭고 공적인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권력은 생각할 자유 또한 박탈하는 것이다.

‘생각․표현․행동’의 자유를 합친 것이 언론의 자유다. 언론은 생각을 말로써 논한다는 것이며, 세계인권선언에서 이들 권리를 모든 사람의 권리로 얘기한 건 곧 인간 자체가 언론인이란 뜻이다. 그래서 언론하면 무슨 신문과 방송부터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언론으로부터 소외됐다는 증거다.

소위 ‘찌라시’라고 불리는 신문들은 언론이 아니다. ‘매체’라고는 할 수 있다. 매체인 건 맞는데 논하는 것, 즉 토론을 방해하기 때문에 선전매체이지 언론이 아니다. 오직 우리가 대화를 할 때에야 선전은 멈춘다.

표현의 자유는 상호대화이고 교통이다. 권력자가 ‘소통의 부재’를 불평하는 것은 그가 말의 의미를 몰라서이다. 교통은 상호적으로 더불어 하는 것인데, 소통은 ‘네가 오해했다. 오해를 풀어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의사교통을 하는 사람들이 의견교환을 통해 공개적으로 잘못을 검증했고 비판을 했다. 공동행동에도 나섰고 대안도 제시했다. 언론의 자유를 제대로 구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소통의 부재’를 탓하고, 의사교통을 방해하기 위해 언론 때려잡기에 나섰다.

언론의 자유는 진실을 향한 용기, 두려움 없는 발언이다.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진실에 기초해 권력을 솔직하게 비판할 의무를 수행한다. ‘PD수첩’이 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권력과 충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모두가 진실이라 우겨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에 화답하는 것은 생각․표현․행동의 자유를 가진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인권오름 제 147 호 2009년 04월 08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역자 주>
이 보고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세계적인 운동단체인 영국 런던의 ‘19조(ARTICLE 19: 표현의 자유를 위한 지구적 운동)’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민권연합(ADC)이 함께 만든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정보 접근권과 사회적 권리간의 관계를 제시하고, 정보접근권의 주장을 통해 사회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려 한다. 보고서 출처:http://www.article19.org/pdfs/publications/ati-empowerment-right.pdf

공적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란 무엇인가?

“정보의 자유는 기본적 인권이며, 유엔이 신성시하는 모든 자유의 초석이다.”(1946년 유엔총회 결의안 59(1)) 공적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란 모든 사람의 알 권리이다. 사람은 스스로가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자율적인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있다.

정보의 자유는 민주공화제 체제의 정부 원칙이다. 즉 공공행정의 공개와 투명성이다. 이속에서 정보는 정부 기관을 지배하는 민주적 통제 수단으로서 참여민주주의와 기본적 권리에 대한 존중과 긴밀히 연관된다.

정보에 대한 권리는 고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더 큰 범주의 시민․정치적 권리의 일원으로서 이해될 수 있는 한편, 기타 다른 모든 인권의 보호와 긴밀히 연관된 필수적인 권리이다.

‘ARTICLE 19’은 정보의 자유에 관한 어떤 법률이든지 토대로 삼아야 할 원칙을 만들었다.

• 원칙 1 - 최대한의 공개: 정보의 자유 법률은 최대한의 공개원칙을 지침으로 삼아야한다.
• 원칙 2 - 공표의 의무: 공공기구는 핵심 정보를 발표해야 할 의무가 있다.
• 원칙 3 - 열린 정부의 증진: 공적 기구는 열린 정부를 적극적으로 증진시켜야 한다.
• 원칙 4 - 예외의 한계 범위: 예외는 명확하고 좁게 설정돼야만 하며 엄격한 “위해”와 “공공이익”의 검증을 받아야만 한다.
• 원칙 5 - 쉬운 접근 과정: 정보에 대한 접근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진행돼야 하며 정보공개거부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심사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 원칙 6 - 비용: 지나친 비용으로 인해서 개인이 정보요청을 망설이게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 원칙 7 - 열린 회의: 공공 기구의 회의는 대중에게 공개돼야 한다.
• 원칙 8 - 발표는 선행돼야 한다: 최대한의 공개에 부합되지 않는 법률은 수정 또는 폐지돼야 한다.
• 원칙 9 - 내부고발자 보호: 범죄에 관한 정보를 유출한 개인(내부 고발자)은 보호받아야만 한다.

공적 정보에 대한 접근권은 왜 우리의 일상생활과 관련되는가?

아마티야센(Amartya Sen)은 자유언론과 개방된 정부가 있는 나라에서는 기아가 있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보와 권력의 관계는 깊다. 정보 없이는 인민이 자신들의 정부에 대해 선택을 할 힘이 없다. 즉, 정보 없이는 인민이 의사결정과정에 의미 있는 참여를 할 수 없고, 정부의 책임성을 유지할 수 없고, 부패를 방지하거나 빈곤을 줄이는 일을 할 수 없고, 궁극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 속에서 살 수가 없다.

• 민주주의와 참여
민주주의의 핵심은 인민의 참여 능력이다. 즉, 공개적으로 표현된 여론을 통해 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정보에 대한 접근 없이는 가능한 선택의 여지에 대한 토론이 있을 수 없고, 최상의 이익과 신념에 부응하는 투표를 할 수 없고, 의미 있는 공공정책에 대한 토론이나 정보에 근거한 정치적 논쟁이 없다.

• 책임성
가령 연례보고서 또는 정책과 법률 검토에 대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어야 정부의 수행활동을 모니터할 수 있다. 정부가 책임성을 증명해야 정부와 시민간의 건강한 관계가 만들어지며 정부에 대한 신뢰가 자랄 수 있다.

• 반부패와 경제적 효과
정보를 이용할 수 없으면, 정부는 투명성이 없고 인민은 악성소문, 음모, 부패가 꼬이는 비밀사회에서 살게 된다. 그렇게 되면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고 외국의 원조를 방해함으로써 부패가 경제활동을 해친다. 부패는 “사회의 도덕적 성격을 갉아먹으며 가장 큰 비용을 빈민에게서 취한다.” 따라서 부패는 빈민이 가난에서 스스로 벗어날 능력을 좌절시킨다.

• 발전
정보접근권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집단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구상에 관여할 수 있기 위한 강력한 도구다. 정보의 부족은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이들 자신의 발전을 방해하며 취약한 처지에 놔둔다. 그럼으로써 공공정책에 대해 어떠한 통제력도 행사할 수 없도록 만든다.

공적 정보 접근권에 대한 공통된 예외는 무엇인가?
국제법 및 국내법은 일반적으로 이 권리에 대한 몇 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 가장 공통된 예외에는
• 타인의 권리 또는 명예에 대한 존중
•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의 보호
• 공중보건 또는 도덕의 보호를 위한 것이다.
추가로, 유럽인권협약은 비밀리에 받은 정보의 공개 방지, 사법부의 권위와 공명정대함을 유지하기 위한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국제법은 이들 예외가 권리에 반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권리를 옹호하는 속에서 일반규범에 대한 협소한 예외로서만 적용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가령 유럽재판소는 이런 취지의 결정을 한 바 있다. 정책결정가가 직면한 것은 권리 대 예외라는 두 개의 갈등하는 원칙 중에서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정책결정가가 직면한 것은 표현의 자유의 원칙이며, 이 원칙 속에 협소하게 해석돼야만 하는 예외가 있을 뿐이다. 정보접근권의 실현과 관련된 또 다른 도전은 정보를 요구했는데 행정부가 실제로 갖고 있지 않은 정보의 생산이 요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가공된 정보와 총체적 자료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특정 문제에 관한 총체적 자료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에 대한 가공을 요청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총체적 자료 자체가 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정부가 정부정책 또는 행위를 보다 우호적으로 보이도록 조작하는 방식의 정보가공이 언제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보 접근권을 실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소극적 의무로서, 정부는 입법․정책․사법 결정 또는 공무원 또는 국가기관의 행위가 직접적으로 정보접근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이 권리를 존중해야만 한다. 적극적 의무로서, 정부는 타인이 이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입법, 정책 또는 사법결정으로 이 권리를 실현하도록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를 취해야만 한다. 따라서 정부는 사적 집단 또는 개인들이 적법한 정보의 소통을 방해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특별한 공익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권리를 실현해야 한다.

• 정보의 소통을 금지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 정보 제공에 있어 차별을 하지 않는다.
• 공적으로 지원되는 학교와 미디어 등 공공 포럼에서 반대 견해를 표현할 기회를 보장한다.
• 공적 기금을 받는 프로그램이 정보를 알리지 않는 일이 없도록 보장해야 한다.
• 사적 집단 또는 개인이 정보의 소통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 사회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을 위해 필수적인 적절하고 접근 가능한 정보, 교육 및 자문을 제공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보호와 증진을 위해 공적 정보 접근권은 어떤 방식으로 행사될 수 있는가?

정보접근권은 그 자체가 권리일 뿐 아니라 여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도구이다. 정보는 사회적 권리의 존재와 보호에 대해 알기 위해 중요하다. 정부의 사회정책 개발을 통제하기 위하여 정부가 사회적 권리와 관련하여 취한 공공정책과 조치에 대해 사람들은 알아야만 한다. 또한 예산에서 어떤 조치들이 고려되며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분석하기 위해서 언급된 정책 내용에 대해 알아야만 한다. 반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특정 정보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것은 국가가 실현하기로 동의한 의무의 위반이다.

예를 들어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은 건강권과 관련하여 정보에 접근가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여기에는 건강 문제와 관련된 정보와 사상을 찾고, 받고, 전하고 나눌 권리가 포함된다. 더욱이 정부는 이 규약에서 약속된 의무를 성취하기 위해 취한 조치들과 진전 사항에 대해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

사례 연구• 인도(노동에서의 권리)
MKSS는 서인도의 가난한 주, 라자스탄에 있는 풀뿌리 조직이다. 가난한 농업․농촌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빈곤경감계획의 수혜자격도 받지 못했다. 도로, 운하, 건물, 학교 등을 짓는 공공임금대장 상의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기위해 점호장부라 부르는 것에 매일 서명을 한다. 사람들은 지방 공무원이 부패에 연루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점호장부에 대한 접근 없이는 그것을 증명하기가 불가능했다. MKSS는 점호장부에 대한 접근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지역 당국은 점호장부가 “비밀 문서”라고 주장했다. MKSS는 이에 집회, 단식, 연좌시위로 맞섰다.
1994년 MKSS는 청문회(Jun Suinwayi)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마을 사람들, 정부 공무원, 중립적 중재자들(언론인, 변호사, 학자 등)을 초대했다. 대개 정부 공무원들은 참여하지 않았고, 나타날 경우에는 위협적인 폭력으로 청문회를 짓누르려 했다. 점호장부를 큰소리로 읽었고 마을 사람들은 일어서서 불일치를 지적했다. 가령 같은 날 이름이 두 번 등장하고,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랑 마을을 떠난 사람들의 이름이 끼어있었다. 한번은 결코 실제로 건설된 적 없는 운하와 관련하여 공식 문서에 건설노동이 기록돼 있는 게 지적됐다.
공청회는 사람들에게 들어야 할 근거를 줬고, 정부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마을 사람들에게 힘을 줬다. 어떤 경우에는 뇌물을 받았던 부패 공무원이 청문회에서 폭로된 이후 돈을 되돌려주기도 했다.
이 청문회가 있기 전까진 이 지역에서 정보에 대한 권리란 도시 엘리트의 사안이며, 지적 분야에서는 쓸모 있을지 모르나 거리 모퉁이에선 아니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청문회는 변호사, 언론인, 사회활동가들의 상상력을 고무했고, MKSS는 사회적 행동이 부패를 폭로한다는 점을 입증하며 회계감사원으로서 역할을 했다. 부패에 대한 형사소송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이 운동으로 인해 라자스탄 당국은 정보에 대한 권리를 입법하게 됐다.

• 태국(교육권)
1998년, 정부가 지원하는 명문 초등학교에 자녀의 입학을 거부당한 부모가 비밀 입학 과정을 드러내기 위해 정보에 대한 권리에 호소했다. 학생 대부분이 소위 엘리트 가정 출신으로 구성돼 있는 그 학교의 입학 과정에는 입학시험이 포함돼있었다. 공식정보위원회는 입학이 허가된 120명 학생의 입학시험이 공적 정보라고 결정했다. 일단 정보가 공개되자,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38명의 학생이 뇌물(부모가 학교에 건넨)을 통해 입학허가 됐음이 드러났다. 문제를 제기한 부모는 그다음에 소송을 제기했고, 정부의 법률자문기구는 헌법의 평등 조항이 침해되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학교에 대해 부패와 차별정책을 그만둘 것을 요구했다.

• 미국(복지혜택에 대한 권리)
“내 집에서.” 미국 위스콘신에 사는 87살의 호레이스 지(Horace Gee) 씨는 말년을 어디서 보내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하고 장애가 있었다. 집에 살면서 필요한 일상적인 돌봄과 의료 조치를 감당할 돈이 없었다. 정부는 소위 의료보조 프로그램(MA)을 통해 이러한 돌봄을 제공했지만, 그의 집이 아닌 인간미 없는 시설에서만 제공했다. MA 프로그램속에 “특별” 복지 프로그램이 있어 그런 돌봄을 집에서 제공하지만 수천 명의 대기자가 있어서 호레이스는 수년을 기다려야만 했다. 따라서 그는 보호시설에 유치돼야만 했다. 정부가 그에게 제공하고 있는 생존의 유일한 선택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레이스는 소송을 제기했고, 그의 대리인은 이렇게 주장했다. MA는 수급권 프로그램이며, 호레이스가 MA를 받을 자격이 있다면 또한 즉각적으로 “특별” 혜택을 받을 자격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의 주장은 재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호레이스의 대리인은 연방의 정보자유법과 위스콘신 주의 정보공개법에 따라 연방 정부와 주 당국 둘 모두에게 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이 정보를 통해 정부 주장의 오류가 드러났다. 호레이스는 사건을 이겼고 집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아 말년을 자기 집에서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실현했다.

• 남아공(의약품에 대한 권리)
남아공에서 시민사회집단은 정부와 기업의 HIV/에이즈 치료제 가격 정책에 맞서기 위한 건강권 소송을 했다. 2002년 TAC(치료행동캠페인)가 보건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TAC는 출산을 통한 자녀에 대한 HIV 감염을 방지하기 위하여 HIV 양성반응의 모든 임신여성에게 AZT나 네비라핀(Nevirapine)같은 의약품을 보건부가 제공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당시에 정부는 연구를 위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병원에서 네비라핀을 제공하지 않는 정책을 승인했고, 복지부는 의사들에게 이 약을 처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TAC가 제안한 정책을 지탱할 만한 충분한 자원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소송 과정은 정부의 이런 주장을 무력화하는데 요구되는 투명성을 제공했다. 법원이 알아낸 것은 정부가 계획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코 자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계획이 있어야 자원을 구하려는 필요성이 생긴다.” 더욱이 TAC는 그 약의 안전성, 효과, 비용절감 및 인간적 혜택을 입증하는 일련의 증거를 제시했지만, 정부의 서류들은 정부를 지지하는 단 한명의 전문가도 찾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 또한 9명의 지방 보건 공무원이 가용자원에 관한 진술서를 냈다. 이들 문서를 비교하자 속임수일 것 같은 강력한 가능성이 드러났다. 문서들이 하도 똑같아서 틀에서 찍어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진술서들은 “전략적 요충지 밖에서는 이러한 개입을 제공할 역량이나 능력이 전혀 없다.”는 등 엉뚱한 말들을 포함했다.
법원의 결정은 정부가 점진적으로 헌법에 있는 사회경제적 권리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위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정책은 합리적이지 않으므로 병원과 진료소에서 네비라핀을 제공하기 위해 정부가 즉각 행동할 것을 지시했다. 이 결정의 더 큰 영향은 사회경제적 권리의 사법심사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였다는 점이다.

 

<인권오름 제 147 호 2009년 04월 08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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