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71 호 2009년 09월 2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세계의 인권보고서] 유럽회의 인권판무관, ‘주거권, 모두에게 주거를 보장할 의무’

(Council of Europe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Housing Rights: The Duty to Ensure Housing for All, 2008. 4. 25.)

<역자 주>
유럽회의 인권판무관은 2007년 9월 부다페스트에서 ‘주거권: 적극적 의무와 이행가능한 권리’라는 주제로 전문가 워크숍을 열었다. 이 보고서는 이 워크숍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 보고서의 원문은

http://www.internal-displacement.org/8025708F004CFA06/(httpKeyDocumentsByCategory)/DBA57972F78E1FCAC12574510039AABC/$file/europe_commissionerforhumanrights_housingrights.pdf 에 있다.

1. 도입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서는 주거를 구할 수 없다. 어떤 이는 살 곳이 없고, 어떤 이는 집에서 사는 것이 두렵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살만 하다 할 수 없는 곳에서 웅크리고 잠을 잔다. 반면에 주택은 시장성이 높은 가치 있는 자산이 됐다. 동시에 사회주택과 국가주택은 줄었다. 이런 맥락에서 주거권의 관련성이 높아가고 있다. 주거권은 의미 있고 효과적인 대응을 자극할 수 있고 주택 시스템에서 평등과 비차별을 증진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유엔과 유럽연합의 기구들에서 생겨나 유럽회의에 속한 국가들이 수용한 주거권을 개괄한다. 주거권을 효과적으로 누릴 수 없는 난관을 고려한다. 유럽회의와 유럽연합이 주거권의 승인을 위해 취한 중요한 노력과 인민이 주거권을 정의하고 주장하는 프로젝트들에 주목한다. 마지막으로 주거권의 증진을 위한 권고들을 붙였다. 국제법에서 유래한 주거권을 지역 차원에서 의미 있고 유용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 도전과제이다.

2. 주거권의 배경

2.1. 주거권 접근의 어려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거 위기를 겪고 있다. 금융시장과 기업들은 국가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움직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전 유럽적으로 국가들은 주택을 직접 제공하는 것에서 후퇴해왔다. 국가들은 대규모 주택 제공자의 역할로부터 주택 시장을 지원하는 새로운 “권능 부여” 역할로 이동했다. 이런 국가 역할의 변화는 경제사회적 성공의 가시적 표시인 자가 소유의 지속적인 확장과 일치한다. 국가들은 낮은 소득 때문에 시장에 접근할 수 없는 가구들이 “가격 격차”를 메우는데 공적 재정을 사용하도록 내몰렸고 따라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높은 가격에 집을 사는 게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주택 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쓸 것을 요구받고 이런 주택시장은 국가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물론 이런 시장에서는 주택 금융에 대한 접근이 주거에 대한 접근과 일치한다. 상환액이 가처분 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더욱 늘어가는 숫자의 사람들이 이런 시장에 의존할 것, 즉 저소득이나 불안정 고용에 낮은 신용등급을 가진 사람들을 겨냥한 높은 이자의 ‘서브 프라임’ 대출에 의존할 것을 강요받는 것이 공통적이다. 돈을 못 갚으면 주택은 회수되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최대의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서브 프라임 대출은 이전 시대라면 국유 주택을 받았을 사람들을 겨냥하고 있다. 서브 프라임 대출은 또한 경솔한 대출과 주거권에 대한 존중과 관련된 질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유’로 주거가 변환한 것의 한 가지 결과는 사회주택을 특정 지역에 제한하는 사회적 통합(social mix)의 개념이 되었다. 빈민이 게토화 되는 걸 막으려는 정책은 바람직하지만 다양한 사회집단과 사회적 다양성간의 부당한 분리를 막으려는 사회적 통합 개념은 불분명할 수 있고 실제로는 빈민이 나쁜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사회주택을 부정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럽 홈리스 조직 연맹(FEANTSA)은 현재 유럽에서의 홈리스의 점증하는 위험성을 이렇게 기술한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택시장이 가하는 끔찍한 압력은 사회적 배제를 초래했고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비상사태의 상황, 즉 사람들이 자원 없이 거리에서 잠을 자는 데까지 떨어진 상황을 낳았다.”

2.2. 주거권 보호에서의 격차

주거권은 이들 권리를 자국의 시민과 타인들에게 보장하겠다는 국가들 간의 합의에 기반한 국제법제도에서 나왔다. 정말로 모든 유럽 국가들은 유엔의 주거권 의무를 받아들였고 대부분은 유럽사회헌장을 채택했다. 국내법에 통합되지 않는다면 이들 국제기준이 개인에게 이행 가능한 권리를 항상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들 기준은 주거권에 대한 영감을 주며 분명하게 정의된 법적 기준과 규범의 국제적 발전을 제공한다. 하지만 법적 시스템과 주택 시스템은 서로 다른 구조와 관점과 용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주거권이 아주 명료한 방식으로 주택 시스템에서 다루어지고 있지는 못하다.

많은 국가들이 국제적 차원에서는 주거권을 지지하지만 국내의 법률, 행정 시스템, 모니터와 정책에서는 이들 권리에 따른 의무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주거권에 관한 정보는 빈약하다. 언어와 문화적 문제가 주거권에 대한 이해를 방해할 수 있다. 낮은 자존감, 정보와 지식의 부족,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기술의 부족, 심리적 및 사회문화적 문제, 제한적인 사회적 접촉(민간단체와의 접촉을 포함하여) 등이 주거권에 대한 접근성의 발전에서 다뤄져야 한다.

주거권 침해는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에 따르면 여성은 대개 가정을 유지하는데 우선적인 책임을 지므로 여성의 중요한 역할이 인정되고 여성의 권리가 향상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여성과 관련하여 적절한 주거에 대한 이해가 고려돼야한다. 대출과 금융에 대한 동등한 접근, 상속에서의 동등한 권리, 성 편견에 기반한 관습과 전통의 철폐가 중요하다. 대다수 여성들에게 점유의 법적 안정성 확보는 아주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 차원에서 주거권을 정의하고 주장해야 하며, 이 관점에서 주거권 침해의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주거에 대한 접근은 여타의 기본적 인권 행사와 완전한 사회 참여의 전제조건이다.

3. 국제법의 주거권 법적 보호

3.1. 유엔 조약, 협약, 결론적 의견과 권고들

세계인권선언(1948),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1966), 림버그 원칙(1986), 마스트리트 가이드라인(1997), 비엔나 세계인권대회 선언(1993) 등이 있다.

3.2. 유럽사회헌장과 유럽 인권 재판소의 법리와 결정

유럽회의 차원에서는 유럽사회헌장과 수정사회헌장, 유럽인권협약이 주거권을 담고 있다.

유럽사회헌장은 신체적․정신적 장애인, 아동과 청소년, 이주 노동자, 노인과 관련한 주거의 의무 수립, 가족 주택을 제공할 국가의 의무를 포함하여 가족의 사회적․법적․경제적 보호에 대한 권리, 적절한 자원이 없는 이들의 사회적 및 의료적 원조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다.

수정사회헌장 30조는 빈곤과 사회적 배제로부터의 보호에 대한 권리에 관한 것으로 주거를 포함한 일련의 서비스에 대한 효과적인 서비스를 증진할 국가의 의무를 포함한다. 31조는 주거권을 규정하고 있다. 헌장의 당사국들은 적절한 기준의 주거에 대한 접근을 향상하고 홈리스의 예방과 감소, 적절한 자원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택 가격을 이용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구체적인 주거권은 2003년의 결론적 의견에서 이탈리아, 프랑스, 슬로베니아, 스웨덴에 대해 검토됐다. 유럽 사회권위원회는 31조에 대해 적절한 주거, 강제퇴거, 주거 감당성 등의 기본적인 개념을 정의하고 주거권의 효과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수행해야 할 일을 정했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은 적절한 가격의 통제, 건설 정책, 사회주택, 주거 급여, 사법적 구제 및 홈리스를 위한 비상 주택이다.

사회헌장의 법리는 또한 집단제소 의정서를 통해 발전되고 있다. 이 의정서에 따르면 사회헌장에 대한 침해가 있으면 승인된 민간단체들이 유럽사회권위원회에 제소를 할 수 있다.

유럽인권재판소의 2007년 10월 결정에 따르면 공공당국에 의한 퇴거가 다른 요건을 충족시켰다 하더라도 대안적 주거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사생활과 가족생활 및 가정에 대한 존중의 권리에 부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4. 결론 - 주거권을 국내 차원에서 이행하기

4.1 유럽회의 권고


• 2000년, 장관위원회는 ‘극도의 곤란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물질적 필요 충족에 대한 권리에 관한 권고’를 채택했다. 이 권고는 “기본적인 인간의 물질적 필요(최소한의 것으로서 음식, 옷, 주거, 기본적인 의료 보호)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내재된 필요조건이고 모든 인간의 존재와 복지를 위한 조건을 구성한다.”고 인정했다.

• 2005년, 장관 위원회는 유럽의 집시와 여행자들의 주거조건 증진에 관한 권고를 채택했다. 여기에는 일반원칙, 법적 구조, 차별 방지, 기존 주택 보호와 개량, 주거정책 구조 등에 관한 52개항의 권고가 담겨있다.

• 2006년, 의원 총회는 ‘유럽의 사회적 결속요소로서의 역동적인 주거 정책을 채택했다. 이에 따르면 주거권이 모든 회원국에서 기본적인 사회권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수정사회헌장을 비준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주거권에 대한 감시기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차별의 경우와 퇴거, 기준미달 주택이 계속 존재하는 경우에 주거권의 진정한 이행을 우선순위로 다룬다. 또한 회원국의 통계 지표에 반영된 주거 상황에 대한 지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주거권의 효과적 실현을 위한 잘된 실천과 프로젝트에 관한 교환을 증진해야 한다.

• 2006년 의원총회는 인간존엄성을 보장하는 적절한 주거와 쉼터가 비정규 이주자와 가정 폭력의 여성 피해자에게 제공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 유럽회의의 주거접근에 관한 전문가 집단(CS-LO)은 2001년 취약한 범주의 사람들의 주거접근에 관한 정책 가이드라인을 채택했다. 여기 담긴 권고는 시장의 제약과 기회를 고려하고 국제기준을 존중하는 속에서 취약한 범주의 사람들의 주거접근에 관한 포괄적인 법적 구조를 발전시킬 방법을 조언하고 있다.

4.2 주거권 이행을 위한 국가 전략

국제인권문서와 권고들에 따라 주거권을 이행하기 위한 국가 전략은 다음의 요소를 포함해야만 한다.

• 국가는 일련의 주거권에 관한 문서를 차별 없이 채택하고 효과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적절하고 비용을 감당할 만하며 접근성 있는 주거에 대한 권리가 법원에서 재판 가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적 및 공적 부문의 모든 영역에서 주거 최소 기준이 수립돼야 한다.

• 주거권 침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적절하고 충분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는 주거권 침해의 피해자를 위한 제도적 지원을 수립해야 하고 개인적으로나 집단적 차원에서나 구제를 보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거권 침해의 피해자들이 주거권의 내용과 범위를 정의하는데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일은 모니터하고 감시하는 체계의 모든 차원에서 민간단체의 더 많은 관여와 결합돼야 한다.

• 미등록 이주자, 소수자(인종적 및 언어적 소수자 포함), 특수한 필요를 가진 사람들(특히 이해력에 곤란이 있는 사람들)에겐 자신의 주거권에 대한 정보가 제공돼야 하며 이 정보는 교육수준 또는 언어 역량, 시각 장애에 적합한 것이어야 한다. 주택 시장에서 비정규적인 이주자들이 착취되지 않도록 방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서면 형태보다는 미디어를 통한 주거권 정보의 유포가 인권 기구에 의해 발전돼야 한다.

• 주택 시장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충분하고 접근가능하며 비용을 감당할 만한 적절한 사회 주택이 제공돼야 한다. 사회주택은 저소득․실업 인구가 지불을 못했을 때 홈리스가 되고 퇴거당할 위험을 무릅써야 할 비싼 임대와 형벌적인 주택 대출을 강요받는 걸 방지할 것이다. 운영비와 공과금을 포함해 주택 비용은 그 주택이 위치한 사회에서 정의한 최소한의 생활수준 향유를 위한 가용자원을 감소시켜서는 안 되며 여타의 권리향유와 사회참여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 주거권의 이행은 취약하고 배제된 사람들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포함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적절한 독립주거와 보호주택의 제공, 특히 장애인의 독립생활 증진이 포함된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은 학대를 끝내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옮겨야만 하는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 주거권의 실현은 정기적으로 모니터되어야 한다. 옴부즈퍼슨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역할이 있다.

 

<인권오름 제 171 호 2009년 09월 2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235 호  [기사입력] 2011년 01월 19일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2009년 1월 20일, 서울 한복판에서 6명의 생명이 불길에 쓰러졌다. 잘못된 재개발을 바로잡아달라고 외치던 철거민과 그를 진압하던 경찰이었다. 뉴스를 듣고 달려가 본 현장은 박살난 유리가루와 매캐한 그을음으로 난장판이었다. 그곳은 눈에 익은 골목이었다. 10여 년 전 사무실이 있던 곳 근처 시장골목이었던지라, 찬거리며 군것질 거리를 사러 자주 드나들던 곳이었다.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사는 사람, 살고자 하는 사람을 함부로 내쫓는 법은 없다는 것이 주거권이라는 인권의 제일 원칙이다. 그 제일 원칙이 무너진 곳에서 사람은 살아갈 도리가 없다.

집 잃고 가게 잃은 사람들은 영혼이 쉴 집도 얻기 힘들었다. 장례는 355일만에야 치러질 수 있었다. 그래서 올 1월은 용산참사 2주기지만 장례를 치룬지는 1년이 되는 이상한 산수가 적용되는 때이다.

용산참사가 있기 몇 달 전(2008년 8월), 지구 저쪽 편 남아공에서 먼저 떠난 영혼이 있었다. 아이린 그루트붐(Irene Grootboom), 그녀 역시 집 없는 이였다. 모든 부고기사가 마음 저미는 것이겠지만, 그녀의 부고기사에는 “집 없이 무일푼으로 죽다”란 제목이 붙어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무일푼이었을지 모르나, ‘그루트붐 판례’란 큰 재산을 전 세계 이웃들에게 남겼다. 그루트붐 판례란, 사람은 헌법상 보장된 주거권을 가지며, 국가가 취약 계층의 주거권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헌법상 국가의 의무 위반이라는 남아공 헌법재판소의 판결이다. 이 판결을 이끌어낸 싸움에 앞장선 이가 그루트붐이었다. 그루트붐 판례는 강제퇴거와 철거가 벌어지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인용되고 있고, 이 사건에 대한 연구물은 경제사회적 인권의 핵심주제를 차지하고 있다. 주거권의 전설, 주거권의 영웅이라는 호칭이 이런 연구물들의 제목으로 쓰이고 있다.

남아공은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분리정책) 하에서 잔인한 철거를 자행한 것으로 유명했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를 물리친 후, 남아공에선 “모든 사람에게 주거를”이란 강령을 내걸고 주거권을 새겨 넣은 헌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그루트붐이었다. 그루트붐을 비롯한 4천명 명의 주민들은 공설운동장 윌러스덴의 끔찍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침수된 땅이었고, 수도도 하수구도 부족했고 쓰레기 수거도 거부됐다. 전체가구의 5%만이 전기를 공급받았다. 주민 대부분은 아주 가난했고 1/4은 전혀 수입이 없었다. 이들은 비용이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단지에 입주하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았지만 7년의 기다림에도 입주하지 못했다. 결국 390여명의 어른과 5백여 아동이 근처의 빈 사유지로 옮겨가 달동네를 이루고 살게 됐다. 그들은 이 마을을 뉴 러스트라 불렀는데, 그들 말로 “새로운 휴식처”란 뜻이었다. 이 마을로 옮긴지 3개월 후 땅 소유주는 퇴거명령서를 받아냈다. 갈 곳이 없다며 떠나기를 거부한 주민들에게 1999년 5월 18일 강제퇴거가 시행됐다. 이때는 남아공에선 막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였다. 뉴 러스트의 집들은 불도저로 밀리고 불태워지고 다른 소지품들도 파괴됐다. 주민들은 이전에 살던 공설운동장 근처로 가려 했으나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시당국에 호소했으나 이렇다 할 답을 듣지 못한 주민들은 집을 얻을 때까지 “기본적인 임시 주거”를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적절한 주거권에 대한 권리를 청구하려 시도한 것은 남아공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고등법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시의회 등에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적합한 주거를 제공할 수 있을 때까지 최소한의 거주를 구성할 수 있는 텐트와 화장실, 정기적으로 공급되는 물을 즉각 제공할 것을 명령했다. 정부는 항소했고, 결국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에서 크게 다뤄지게 됐다.

2000년, 헌법재판소는 “거처가 없는 사람에게는 우리 사회의 토대적 가치인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 같은 가치가 거부되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원칙적으로 주거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판결이 신청자들에게 즉각 주거 시설을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채울 내용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그루트붐 자신은 약속 이행을 기다리기에 지쳤다며 움막에서 죽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얻어낸 판결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모든 사람이 앞으로 나아가는 걸 두려워하지요. 우리는 가난했고 살 곳을 원했기에, 나는 전진하는 걸 선택했어요.”라는 게 그루트붐 판결에 대한 그녀의 소회였다.

그루트붐 사건에 함께했던 인권단체들은 주거권의 현실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그루트붐 사망 이후 그녀를 추모하는 연속 강좌를 열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오늘 읽어볼 제프 버들렌더의 강연이다. 제프 버들렌더(Geoff Budlender)는 그루트붐 사건당시 주장요지(http://www.escr-net.org/caselaw/caselaw_show.htm?doc_id=401409)를 썼던 인권변호사이다.

1990년대 주거권이란 말이 한국 사회에서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을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었다. ‘세계주거권회의’에서 한국을 남아공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인간적으로 철거를 하는 국가로 지목했다는 거였다. 아파르트헤이트 치하의 남아공의 행태와 비교됐다는 것 자체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비교도 그보다 덜 수치스럽지는 않다. 그루트붐 판결과 용산판결의 비교….

용산참사에서 살아남은 철거민들은 감옥에 있다. 하나같이 중형선고다. 참사이후 함께 했던 인권활동가에게도 재판 결과 어떤 선고가 떨어질지 모른다. 선고재판이 몇 차례 연기되는 사이 또 구속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만 깊어가고 있다. 약자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법원의 역할을 기대하는 버들렌더의 연설문을 읽어보면서, 이정도 바람은 아닐지라도 살인진압의 지휘자는 한 번도 서지 않은 법정에서 철거민들만 중형을 때려 맞는 상황만이라도 벗어나길 바라는 게 지나친 바램일까.

그루트붐 추모 강연; 법원, 책임성과 참여 민주주의(제프 버들렌더, 2010년 10월)

아이린 그루트붐은 헌법재판소에 사회경제적 권리사건을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은 사법부를 시험했습니다. 우리는 사회경제적 권리를 의도적으로 포함한 헌법을 채택했습니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투표권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에 그랬습니다. 그것은 또한 사회정의를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존엄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고 인간으로서의 잠재성을 성취할 수 있게끔 하는 생활의 기본적인 필수품에 대한 접근의 형태로 말입니다.

아주 분명하게, 법원의 첫째 할 일은 헌법과 헌법이 품고 있는 권리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집이 파괴당한 사람, 합법적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아무데도 없는 사람은 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필수품 중의 하나를 부인당한 것입니다. 법원은 이런 일에 대해 팔짱을 낀 채 다만 불운일 뿐이고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의 결과이고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법원이 뭔가를 해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는 법원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판사들은 흔히 이런 일이 어렵다는 걸압니다. 그들은 지적합니다. 사람들의 필요와 권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일이 대규모로 발생할 때, 대답해야 할 문제들 중 하나는 “누가 먼저냐?”라고 합니다. 동시에 모든 사람을 충족시킬 수 없다면 누구의 필요가 우선순위를 누려야만 하느냐? 그리고 또 “돈이 얼마나 드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적절한 주거 또는 교육에 대한 권리가 문제라면, 어떤 정도 질의 주거 또는 교육이 헌법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공돼야만 하는가? 누군가에게 더 많이 주는 것이 다른 이에게 덜 주는 것을 의미한다면 어떻게 그걸 판단할 수 있는가?

그루트붐 사건은 이런 것들이 우선적인 질문이 아니란 걸 보여줬습니다. 첫째 질문은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가 있었느냐 입니다. 침해가 있었다면, 법원의 첫째 의무는 그렇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그럼으로써 청구자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정부의 실패를 드러내고, 우리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교육합니다.

법원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긴급 구제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은 정부의 실패가 헌법 위반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헌법은 정부의 주거 프로그램이 합당해야만 할 것을 요구합니다. 집 없는 누군가가 집 없는 채로 제대로 된 집이 제공될 때까지 20여년 기다려야만 한다면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법원이 이런 선언을 했어도 질문은 남아있습니다. “누가 먼저냐?” 그리고 “돈이 얼마나 드냐?” 이런 질문에 직면한 법원은 대개 두 가지의 답변을 내놓습니다.

첫째, 법원은 그런 질문에 대답할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법정 앞에 선 유일한 사람들은 청구자와 정부입니다. 다른 집 없는 사람들에게도 요구는 있지만 그들은 법정에 있지 않고 자신들의 사실과 요구를 법원에 제기할 수가 없습니다. 판사들은 사건에서 자신들 앞에 제출된 정보에만 제한돼 있고 다른 정보원에는 의존할 수가 없습니다. 판사들은 주택정책을 만들 기술이 없습니다. 판사들은 실제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게 뭔지,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지를 모릅니다.

둘째 답변은 그런 질문에 대한 결정은 그 결정에 대해 민주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에 의해 이뤄져야만 한다는 겁니다. 아무도 판사에게 투표하지 않고, 잘못된 결정을 한 판사가 투표로 밀려나지도 않습니다. 흔히들 이런 결정은 민주적으로 책임질만한 이들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답변들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 답변 중 어느 것도 완전한 답변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그루트붐이 집을 받아야만 하는지, 트란스케이의 진흙탕 학교의 아이들이 제대로 된 학교건물을 받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결코 선거 과정의 주제가 되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5년마다 두 번씩 투표하지만 그것은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투표입니다. 여당을 지지해서 찬성표를 던지지만, 긴급 주거에 대한 정책이나 학교에 대한 자원할당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표를 던진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앞서 말한 결정들이 민주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과정에 해당한다고 말하는 것은 민주적 과정이란 걸 과장하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간단한 질문을 자문해봐야 합니다. 언제 무주택자를 위한 긴급 주거의 제공에 반대해서 투표해봤습니까? 어떤 정당이 트란스케이의 아이들이 진흙탕 학교에서 계속 공부해야만 한다고 말한 적 있고, 어느 누가 그런 정책을 지지해서 투표했던가요?

이런 결정들에 대해 정부는 민주적으로 책임질 수 있다는 주장은 따라서 허구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세한 것에 대해 투표하지 않으며 결코 그렇게 할 기회를 가져본 적도 없습니다.
둘째로, 이런 결정들의 대부분은 선출된 공직자들에 의해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루트붐 사건의 경우, 정부는 긴급 주거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결코 한 적 없습니다. 단지 정책에 격차가 있었습니다. 주거 정책은 공무원들과 전문가들이 세우고, 아마도 시장이 승인합니다. 주거 정책은 결코 민주적으로 책임질만한 심의 기구에서 고려돼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 건물에 어떤 예산을 할당할지에 대한 결정도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에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결정은 사무실에 앉아있는 공무원들과 고위 정치인들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그들은 자원을 할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닫힌 문 뒤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합니다. 그들은 대개 자신들의 결정에 대해 공적으로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판사들은 공공연히 국민 앞에 앉아있습니다. 판사들은 주장에 귀 기울여야만 하고 결정에 대한 근거를 대야만 합니다. 이것은 강력한 형태의 책임성입니다. 저는 현직 판사로도 있어봤고 정부 공무원으로도 일 해봤습니다. 판사로서 느꼈던 책임성의 압박감이 정부 부처의 수장으로서 취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결정보다도 훨씬 더 컸다는 것을 저는 진심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판사들의 비책임성에 대한 주장은 귀담아듣지 말아야 합니다. 판사들이 선출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들을 하는 많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직접적인 책임성을 가졌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원할당을 놓고 경쟁하는 주장들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판사의 능력에 대한 질문은 유효합니다. 저는 분명히 판사들이 운영하는 국가에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권리의 침해를 발견했을 때 판사들은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판사들이 상세한 권리구제를 결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열쇠는 책임성을 증진하는 것입니다. 권력 행사에 대한 책임성의 원칙이 우리 헌법의 근본입니다.

일단 권리 침해를 발견했다면 법원이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정부로 하여금 침해를 구제하기 위해 무엇을 해왔고, 장차 무엇을 할 것이며, 언제 그 일을 할 것인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도록 명령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대중적으로 정부의 책임성을 물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집니다. 정부의 프로그램이 부적절하면, 대중적인 토론과 캠페인, 조직화의 공간을 만들어내고 이런 일들이 정부로 하여금 더 잘하도록 질책합니다. 국민들에게는 자신들의 공적인 대표들에게 책임성을 물을 수 있는 정보가 주어집니다.

정부가 장차 뭘 할 것이라고 말하면, 그것에 반하는 정부 행위가 검증될 수 있는 기준이 만들어집니다. 정부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실패를 정당화할 수 없다면, 법정에 재소환될 수 있거나 또는 여론의 법정에서 정부행위의 정당성을 입증해야만 할 겁니다. 또다시 참여와 민주주의는 깊어집니다.

법원이 할 수 있는 두 번째 일은 정부의 계획, 그 계획들의 이행여부에 관해서, 그것들이 헌법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지를 법원이 판단할 수 있도록 법원에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때로 구조적 금지명령(structural interdict)으로 일컬어집니다. 정부에게는 권리의 효력을 발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결정할 여지가 주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정부가 하기로 결정한 것이 헌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는가를 결정할 것을 법원에 묻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법원은 법원의 능력을 벗어난 문제를 결정할 것을 피하면서도, 되어진 일이 사실상 헌법의 기준을 충족시키는가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법원이 할 수 있는 세 번째 일은 “현장에서” 참여와 책임성을 증진시키는 명령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헌법재판소는 사람들의 퇴거를 원하는 지자체는 퇴거 절차를 진행하기 전에 주민들과 “의미 있는 약속”을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올리비아 로드(Olivia Road) 사건은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줬습니다. 이 사건에서, 요하네스버그 시내의 수백 명이 정말 끔찍한 사유 건물에 살고 있었습니다. 건물은 위험했죠. 화재위험이 아주 컸고 심각한 건강 위해요인이 있었습니다.

시당국은 사람들을 퇴거시키도록 법원에 청구했습니다. 주민들은 나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적은 돈벌이라도 하려면 시내에 살아야만 하고 갈 곳이 아무데도 없으니, 굶어죽을 도시 외곽으로 내쳐지느니 차라리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살던 건물에 머물겠다고 했습니다.

법원은 무엇을 해야 했을까요? 끔찍한 고통과 고난을 야기할 줄 알면서도 퇴거를 명해야 할까 아니면 그 역시도 큰 고통을 야기할 줄 알면서도 살던데 그냥 살도록 허용해야 했을까요?

법원은 둘 다 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양 당사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대하여 쌍방이 “의미 있는 약속”을 할 것을 우선 명령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시당국은 거주자들을 동등한 자격으로 다뤄야만 했습니다. 쌍방은 그들이 법원에 되돌아가야만 하고 스스로를 설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쌍방은 자신들이 부당하게 행동한다면, 법원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명령을 할 것이란 위험을 알았습니다. 모든 권력을 가진 시당국과 무력한 거주자들 간에 놓인 예전의 불평등성이 갑자기 변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시 당국은 화재 위험과 건강 위해성을 제한할 수 있는 몇 가지 응급 보수를 건물에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일단 건물 보수를 한 후에, 시에서 거주자들이 이주할 수 있는 다른 건물을 찾았습니다. 거주자들은 이주에 합의했습니다. 거주자들은 할 수 있는 한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분명히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 해결됐습니다.

법원이 한 일은 민주적 책임성을 증진시킨 것이었습니다. 법원의 결정은 시 당국으로 하여금 시의 조처에 대해 거주자들에게 책임을 지게 만들었고 정당화하고 설명하게 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법원에도 그것을 정당화하고 설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거주자들을 정부의 관대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아니라, 권리를 가졌기 때문에 정부와 협상할 위치에 있는 권리 소유자로 변화시켰습니다. 물론, 이것이야말로 권리의 목적입니다. 권리는 권력관계를 바꾸고 다스립니다.

우리의 최종 헌법을 채택한 후 14년, 깊은 불평등과 빈곤이 사회정의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건설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조롱해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참여, 권력의 책임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우리의 최상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법원이 도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인권오름 제 235 호  [기사입력] 2011년 01월 19일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139 호  [기사입력] 2009년 02월 10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내가 처음 철거민을 본 것은 초등학교 때였다. 바람고개라 불리는 언덕 주변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 아는 언니, 오빠,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터 집들은 눈에 띄게 사라져가고 돌무더기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비닐 천막이 한두 개씩 늘어갔다. 영문을 모르는 내가 단지 궁금했던 건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런 비닐집에서 옷은 어떻게 갈아입으며 용변은 어떻게 해결할까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의 눈물을 봤다. 비닐집에 사는 친구였다. 혼자서 비닐집에 앉아(너무 추웠다) 빨래를 개며 그 친구는 연신 중얼거렸다. “울 엄마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울 엄마가 뭘 잘못했다고….” 어린 나는 영문을 몰랐다. 나중에서야 그 눈물에 담긴 서러움을 짐작하게 됐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닥쳤기 때문이다. 철거는 아니지만 단칸방까지 빚쟁이에게 넘어가는 일이 흔했다. 몇 차례 같은 일을 겪으면서 알게 된 건 집달리는 꼭 새벽 4시경에 온다는 거였다. 잠에 취한 식구들이 정신 차릴 틈도 없이 그들은 살림을 밖으로 집어던진다. 차가운 새벽바람에 정신을 차린 식구들이 체념하고 주섬주섬 짐을 챙기기 시작하면 그들의 우악스럽던 손길이 좀 얌전해졌다. 엄마가 밥풀로 벽에 붙어뒀던 상장들이 찢기고 밥상이 깨진 후 길바닥에 나동거리는 초라한 살림을 주워 모았다. 이불보따리 위에 앉아 임시거처를 구하러 간 엄마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동생들은 창피하다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나 홀로 알량한 살림을 지키느라 이불보따리 위에 앉아 있으면, 나와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대학교 때 철거지역에서 잠깐 공부방을 했다. 거의 다 부서진 동네에서 역시 반쯤 부서진 집 이층을 청소하고 마련한 거처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같이 노는 활동이었다. 학년도 성별도 다른 아이들은 공부에는 집중하려 하지 않았고, 어쩌다 같이 간 남학생들은 아이들이 하도 말을 태워달라고 해서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학교 축제로 한 주를 건너뛰고 찾은 공부방은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이미 부서진 집이었음에도 공부방이 눈꼴셨는지 철거반원들이 공부방에 오르는 계단조차 아예 무너뜨렸다. 아이들과 작별인사도 못했고 다시 보지도 못했다.

인권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후 이런 문건을 접했다. ‘세계주거권회의’라는 게 있는 데 거기서 한국을 남아공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비인간적으로 철거를 하는 국가로 지목했다는 거였다. ‘참 안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라도 심각성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거권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국제법적 해석은 1991년에 발표된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적절한 주거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 4"이다. 이에 따르면 주거권은 물리적인 주거만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화롭고, 존엄하게 살 권리를 말한다. '적절한 주거'의 개념에는 여러 요소가 포함되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은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반드시 자기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집을 소유할 수도 있고, 임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소유하든 임대하든, 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에서 살든 간에 안정적으로 살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 임대했던 집에서 갑자기 쫓겨나거나 집이 철거되거나, 또는 그 집에 살 수 없도록 강한 협박․폭력에 시달리는 경우,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갑작스럽게 거주 공간을 빼앗기거나 위협을 받는 경우, 국가는 피해자들을 보호하거나 안정된 주거를 제공해주어야 한다.

유엔에서는 또한 이런 주거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대표적인 현상을 지목하였다. 그건 바로 땅 투기와 부동산 투기이고, 토지 몰수와 수용, 토지 소유의 불평등, 토지 파벌의 성장을 통제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이다. 또한 저소득자가 생계를 위해 필수적인 토지 및 부동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정부의 시장개입의 소극성을 문제로 지적했다.

용산 참사가 벌어지고 참 속상한 일들이 많이 이어졌다. 철거민을 옹호하거나 공격하는 측의 대립도 적지 않다. 인간의 죽음 앞에서 벌일 일이 아닌 일들이 많다. 그중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거슬렸다.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에 왜 경찰력이 끼어들었느냐’는 식의 말이다. 과연 그럴까? 이 일은 국가가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주거권에 소홀했기에 벌어진 일이다. 원인은 거기에 있다.

애초에 주거권이란 인권이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거리에 치우치지 못하도록 사회경제적 강자의 탐욕을 통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일에 국가가 나서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적 폭력인 용역이 와서 괴롭히면 공권력이 나서서 퇴거 대상인 사람들을 보호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손잡고 춤을 췄다. 사인과 사인간의 분쟁에 괜히 끼어든 게 아니라, 공권력은 고의적으로 늦게 왔고, 작정하고 저들의 편에 섰다.

법은 강자에게 엄하고 약자의 설움을 껴안아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강자도 약자도 법을 외면할 것이다. 강자는 굳이 법을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고, 약자는 ‘법에 호소해 봤자’라고 체념할 테니 말이다. 아니, 체념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됐다. 법이 있고 공권력이 있고 생계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당국이 있었다면 망루가 세워졌겠는가. 당신들의 세상과 당신들의 법과 당신들의 공권력에 대한 체념이 무엇으로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들이 감당 못할 그 무엇이 될 것은 확실하다. 

<철거민이 본 철거>,1998

철거반만 오면 아이들은 놀다가도 “엄마, 철거반 아저씨들이 곡괭이, 몽둥이 들고 와. 빨리 나와!”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허겁지겁 맨발로 뛰어나와 살림을 챙기고 판자조각이라도 부서질까봐 주섬주섬 뜯을 때는 정말 숨이 꽉 막히고 심장이 뛰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나마 판자조각이라도 없어지면 당장 한데서 자야 하는 저희들의 신세고 보니 사정도 해봅니다. “아저씨, 제발 우리가 뜯을 테니 부수지 말아요”하고 두 손 모아 애타게 애원하지만, “높은 사람이 위에서 보고 있으니 곤란하다”면서 사정없이 부숴버리는가 하면 방 구들까지 곡괭이로 마구 파버리고 갑니다.…(1975년, 중랑천변 철거민 ‘어머니의 호소’)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호화주택이나 고급 아파트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새끼들이 살 수 있으면 하는 땅과 집입니다. 하늘과 땅을 사람에게 준 하나님 왜 우린 한국에서 태어나 땅도 집도 없이 쫓겨다니며 살아야 합니까? 돈을 벌기 위해 양심가지고 하루종일 일해도 땅도 집도 살 수 없으니 어떻게 이 땅에서 살아야 합니까? 어디를 가도 땅도 집도 많은데 우리 집 땅은 하늘에나 있는지요. 잠시 살다가 갈 땅과 집이 없으니 어떻게 자식 새끼들하고 살아야 합니까? 63층 건물속에 살아있는 수족관 물고기들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까? 죽을까봐 수억을 들여 살게 합니다. 똑같은 1표의 투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도 왜 우린 쫓겨다니고 짐승취급도 못받고 소리치면 때리고, 목조르고, 감옥에 집어 넣는다고 호통을 칩니까? 하나님, 한국은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 그래서 세계에서 발전한 우방 대열속에 끼는 것이 됩니까? 우리도 도둑질하고 때리고 죽여서 잘 발전된 사회를 만들며 살라고 자식들에게 가르칠까요? 어떻게 해서든지 돈만 벌어 땅과 집을 마련하여 잘 살라고 가르치고 계속 투기, 투기, 투기해서 부자 되어 살라고 할까요? (1984년 목동. 신정동 ‘셋방살이 어머니 호소’)

저희 세입자도 마찬가지로 주민세, 재산세, 오물세 등 주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내야할 세금은 다 내고 살아왔습니다. 지키라는 법 다 지켰고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지역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권리를 찾지 못하고 내쫓겨야만 합니까 아파트 입주권이 무슨 말입니까 입주권을 얻어서 그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더욱이 이 지역 주민 중 많은 사람들이 전세 월세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세입자들에게도 아무런 대책이 없이 그냥 나가라고만 하니 나가 죽으란 말입니까 이렇게 쫓겨 날 수는 없습니다. 도저히 우리는 못나갑니다.
각하! 남은 돈 벌 때 뭐하고 이제 와서 억지를 부리느냐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어려운 작업장에서 잘살아 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인 자식 놈까지 사회에 뛰어들어 가정을 도우고 있지만 우리는 좀처럼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감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가난도 부도 모두가 사회가 만들어 내었다고. 그래서 가난에 대해 사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장 갈 곳이 없으니까 세입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래서 구청에도 수십번 찾아가고 시청에도 갔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아 이 딱한 사정 좀 들어보라고 어쩔 수 없이 시위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갖은 수모와 구타 심지어 머리가 찢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살아보겠다고 살게 해달라고 아우성치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해야 합니까 정의사회 구현이 이런 겁니까 힘없고 가난하고 그래도 생명이라고 살아볼려고 바둥대는 우리들을 군화발로 짓밟고 부유하고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호화 아파트를 짓고 그 돈으로 공원 만드는 것이 정의사회란 말입니까? (1985년 목동, 신정동 지역주민)

재개발이 도대체 뭐 길래, 이렇게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듯 사람이 다치고 들것에 들려나가고 피눈물이 그치지 않는 겁니까?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투기꾼 복부인 그리고 재벌회사를 위한 사업이 아닙니까?
그러니 돈 많고 권력 있는 저들이 돈 벌기 위해 하는 짓이면 뭐든 그게 다 법인 세상입니다. 그거 반대하면 무조건 위법이 되는 거구요.
권력과 돈이 한통속이 되어 깡패를 내세워 폭력 청부를 주고 우리를 죽이러 오는데 그렇다고 우리라고 가만히 병신처럼 죽은 듯 엎드려 있어서야 어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 자식들 앞에서라도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싸워야겠습니다.

민주 애국 시민여러분!
근본적인 것은 가난한 국민이 집에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주택정책이 세워져야 하는 것인데 이 정부는 그 책임을 우리 같은 철거민들에게 뒤집어 씌워 무조건 우리더러 일방적으로 당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희생이 되고 쓰레기가 되어야 합니까?
이 나라 정부가 근본적으로 가난한 국민은 사람 취급도 안한다는 증거가 바로 살인 철거인 셈이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끼리 이 나라를 말아먹은 다른 증거가 바로 재개발 사업인 것입니다. (1985년 사당동 철거민)

어려운 교육여건 속에서도 올바른 2세를 키우기 위해 노심초사 애쓰시는 선생님께 드립니다.
부족하고 철없는 아이들이지만 항상 사랑으로 대해 주시는 선생님의 고마우신 마음 항상 마음속에 담고 있습니다.
찾아뵈고 아이들에 대해 상의도 드리고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었지만 여유 없는 생활에 쫓기다 보니 마음뿐이군요.
더구나 대비 없이 갑자기 당한 강제철거로 아이들의 학습준비는 물론 먹고 입는 것조차 챙기지 못해 학교에서 아이들 문제로 더욱 큰 걱정을 하시리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온갖 세상풍파 겪고 살아온 어른들이야 그럭저럭 참고 산다고 치더라도 잘못된 현실로 인해 어린 아이들까지 이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부모로서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문입니다.
…저희는 이런 현실 속에서도 싸워야 하고 앞으로도 싸워야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희의 삶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큼은 물려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저희가 이렇게 살다보니 혹여 또 다시 강제철가 들어와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경찰서 안이 될 런지. 저들의 말로는 난지도에 우리들의 짐을 버린다고도 하니 앞으로의 일을 예기치 못하게 되어,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등교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점 이해해주시고 저희들을 격려해 주십시오. (1990년 서초 3동 철거민 학부모 일동)

인권오름 제 139 호  [기사입력] 2009년 02월 10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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