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00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22일
흔히 인권은 의무와 책임에 소홀한 것처럼 오해받곤 한다. 권력을 가진 쪽은 ‘의무’라는 이름을 빌어 권력을 오남용했고 인권은 그것을 막으려고 했기에 의무라는 말을 제한적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비뚤어진 권리관이 인간의 사회에 대한 의무를 회피해온 측면도 있다.
비뚤어진 권리관
비뚤어진 권리관이란 ‘나홀로 권리’의 찬송가라 부를 수 있다. 동료인간과의 공통점과 공감을 찾기보다는 나만 분리하려 든다. 확실하고 현실적인 것은 개인의 이익뿐이지 사회 공동의 이익 같은 건 없다고 본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만 보고, 타인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다루는 경향을 보인다. 개인을 내버려두면 알아서 자기이익을 추구할 테니 그를 통해 사회전체의 이익도 증진될 것이라는 단순한 계산법에 근거해 만사를 판단한다. 욕망의 폭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의지는 없고 욕망의 해방만을 꿈꾼다.
이런 권리관에서 인간은 물질적 자기 이익을 판단과 행동의 핵심요소로 삼는다. 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으면 그게 의료나 교육 같은 기본적 인권을 표현한 제도라 해도 내 돈 내고 내가 사고 싶은 데서 사겠다는 소비자 정신만이 투철하다. 따라서 사회적 연대의 표현이어야 할 의료·교육·주거·환경 등과 관련된 제도들을 개인의 구매력에 기반을 둔 제도들로 바꾸려 든다.
안타깝지만 우리 사회를 주무르는 권리관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운하 건설의 망상, 광우병 소고기 수입, 잠 안 재우기 고문식의 교육 비틀기, 환자를 메치는 공공의료의 후퇴, 집값 올려주겠다는 공약에 대거 당선되는 선거풍토 등에서 팽창하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은 이기적 권리의 폭정을 본다.
폭정이 있으면 저항과 대결이 요구된다. 여기서 인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의무가 나온다. 어떤 의무인가?
질서에 대한 권리, 공동체에 대한 의무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제시된 권리와 자유가 완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며 “모든 사람은 그 안에서만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한다”고 했다.
선언에서 말한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무엇인지는 많은 국제인권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화를 존중할 의무, 전쟁을 선동하지 않을 의무, 민족적·인종적·종교적 증오를 고취하지 않을 의무, 국제인권법을 지킬 의무, 만인의 복지를 존중할 의무, 사회진보와 발전을 성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무 등이다. 또한 여기서 말한 공동체란 나와 가까운 가족 또는 민족·종교·문화 공동체를 넘어서서 가능한 한 넓게 해석돼야 한다.
인권을 가진 인간의 의무에 대해서 유엔전문기관 중에서는 유네스코가 유일하게 ‘책임’에 관한 선언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는데, 오늘 읽어볼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에 관한 선언’이 그것이다. 이 선언은 9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됐는데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현세대가 가져야 할 행동지침을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책임’에 관한 선언
선언은 전문에서 “다가올 천년의 사활이 걸린 도전들을 맞게 될 미래 세대의 운명을 우려”하고 “역사적인 이 시점에서 인류와 환경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고 밝히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이에 미래 세대를 보호할 수 있는 필수적인 기초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상에 대한 충분한 존중”이며 “새롭고 평등하며 지구적인 협력관계와 세대 간 연대를 수립”하는 것이라 강조하고 있다. “빈곤, 기술적 및 물질적 저발전, 실업, 배제, 차별, 환경에 대한 위협을 포함하는 현재의 문제들”은 “현 세대와 미래 세대 모두를 위해” 해결돼야 하며, “미래 세대의 운명은 오늘 우리가 취하는 결정과 행동에 상당 정도 달려있다”고 했다.
선언의 본문에서는 우리 시대의 연대가 지향해야 할 가치들을 열거하고 있다. 국경과 세대와 종을 넘어 생명의 동등한 가치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그에 근거한 관계를 다질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연대해야 할 우리는 사실상 이해타산도 다르고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의 정도와 수준도 다를 때가 많다. 그러하기에 인권의 상상력이 요구된다. 인권에서 연대해야 할 대상은 권리가 없거나 약한 사람이다. 또는 이 선언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직접 겪지 못할 ‘미래 세대’이기도 하고 우리와 종이 다른 자연의 모든 생물종이기도 하다. 사회에서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바꾸는 일, 사이코패스가 돼가는 사회적 무관심 또는 냉정함과 대결하는 일을 계속하려면 인권에 대한 상상력과 실천이 끊임없이 만나야 할 것이다.
미래 세대에 대한 현 세대의 책임에 관한 선언 (Declaration on the Responsibilities on the Present Generations towards Future Generations, 1997년 11월 제 27차 유네스코총회에서 채택) |
인권오름 제 100 호 [기사입력] 2008년 04월 22일
'인권문헌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권문헌읽기 27]독재자의 첫 번째 행위는 자유로운 표현의 파괴 W. 더그러스 ‘민중의 인권’ 중 표현의 자유 (0) | 2019.05.29 |
---|---|
[인권문헌읽기 26]참을 수 없는 악이 ‘시민불복종’을 정당화한다 시민불복종의 고전들 (0) | 2019.05.29 |
[인권문헌읽기 24]아이들에게 꼭 맞는 세상(A World Fit for Children) “당신들은 미래라 부르지만 우리들은 현재랍니다” (0) | 2019.05.29 |
[인권문헌읽기 23]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유엔 글로벌콤팩트 UN Global Compact (0) | 2019.05.29 |
[인권문헌읽기 22] 인권 옹호자 선언(The Declaration on Human Rights Defenders) (0) | 2019.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