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59 호 [기사입력] 2009년 07월 0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국제사회가 정한 인권의 원칙 중에 ‘퇴행적 조치의 금지’란 게 있다. 주로 사회권 분야에서 얘기되는 원칙인데 현재 보장되는 권리의 수준을 감소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뒷걸음치는 조치를 채택하는 것은 국가의 직접행위 또는 개입에 의한 인권침해가 된다는 것이다. 먹는 것, 일하는 것, 공부하는 것, 언론 활동을 하는 것 등에서 퇴행적 조치가 범람하여 홍수가 날 지경이다. 즉 국가의 직접행위에 의한 인권침해가 도가 넘어섰다는 말이다.
사방에서 인권이 뒷걸음치는 소리에 통증을 느끼는 때에 더 이상 뒷걸음쳐서는 안 된다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국선언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본역량이자 인권 중의 인권이다. 소리와 말을 구분하는 것은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흔한 잣대이다. 그런데 현 정권은 말을 하지 말라고 한다. 곧 인간의 역량을 포기하고 말 못하던 때로 퇴행하라는 말이다. 퇴행이 아니라 전진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표현의 자유에서 전진이란 무엇일까? 지식인이나 전문인 또는 그럴만한 경제적․문화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누구나 표현의 수단에 접근할 수 있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차별이나 증오에 찬 시선에 주눅 들지 않고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것, 사회 속에서 그 소리가 무시당하고 청취되지 않는 개인 또는 집단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그로 인해 일부 개인이나 집단의 독주가 아니라 다양한 소리가 합창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오늘날 표현의 자유의 과제인데, 정권의 억압과 선전선동의 적나라한 노출에 맞서야 하는 것은 서글픈 퇴행의 과제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이다. ‘표현의 자유’와 ‘평등’이 나란히 자리한 것이 이 원칙의 핵심이다. 이 원칙은 2008년 12월과 2009년 2월 두 차례 런던에서 열린 논의의 결과이다. 국제인권법 전문가와 유엔 관계자, 시민단체가 함께 자리해 표현의 자유에 관한 국제인권기준의 진보적 해석을 고민한 결과이다. 이들의 고민의 핵심은 그동안 표현의 자유와 평등간의 긴장관계에만 지나치게 주목해왔다는 점이다. 흔히 표현의 자유와 평등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원칙은 둘 간의 긍정적인 관계를 주장하며 인간존엄성의 보장과 확보에 이 둘이 보충적이며 필수적인 기여를 한다는 점, 따라서 둘 간의 관계가 인권의 불가분성의 핵심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 원칙의 서문에 담긴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현의 자유의 실현은 다양한 견해에 목소리를 주고, 특정한 목소리에 대한 배제로 귀결되는 불평등은 이를 훼손한다.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청취될 권리, 말하고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평등에서 중요하다. 공적인 참여가 부정당하고, 자신들의 목소리, 문제, 경험, 관심이 안 보이는 것으로 치부될 때 사람들은 편견, 맹신, 소외에 취약하게 된다.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존중은 민주주의와 국제평화와 안보 증진에 기여한다. 반테러리즘과 이주 영역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조치들은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찍기를 낳았다. 이 원칙은 안보를 위해 인권이 타협될 수 있다는 견해를 거부하며 대신에, 인권존중이 진정한 안보를 성취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이 원칙은 국가의 의무를 강조한다. 다양성을 증진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것,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할 것, 표현의 자유와 평등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 것 등이다. 이와 동시에 우려하는 점은 국가의 역할이 가져올 남용의 잠재성이다. 강력한 민주주의만이 남용을 방지하고 이 원칙이 추구하는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더불어 언론 독점을 우려한다. 미디어의 다양성이 미디어 소유권의 집중과 여타의 시장의 실패로 위협받고 있다.
다양성의 존중을 강조하지만 이 원칙은 ‘증오 발언’에 대해서는 제한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신중하게 사례별로 접근되어야 하며, 개인과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이용돼야 한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와 평등에 관한 캄덴 원칙 I. (앞에 서술했으므로 생략) |
인권오름 제 159 호 [기사입력] 2009년 07월 0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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