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207 호 [기사입력] 2010년 06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1963년 6월 11일, 팃쾅둑(Thich Quang Duc)이란 불교 승려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베트남 사이공의 번잡한 거리 한가운데서 가부좌를 한 채 자기 몸을 불살랐다. 몸이 타들어가는 동안 그는 깊은 명상에 잠긴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 당시의 광경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기자는 이렇게 썼다.
“난 그 광경을 다시 보려했다. 하지만 한번으로 충분했다. 불꽃이 인간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그의 몸은 천천히 사그러 들었고, 쭈그러들었고, 그의 머리는 검어지고 있었다. 공기에서는 인간의 살을 태우는 냄새가 났다. 인간은 놀랍게도 빨리 탔다. 내 뒤에서는 이제 모여들고 있었던 베트남 사람들의 흐느낌 소리가 났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울 수도 없었고, 너무 혼란스러워서 메모를 하거나 질문을 할 수도 없었고, 너무 당황해서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 불에 타면서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기에, 그의 평정은 그 주변의 통곡하는 사람들과 극명하게 대조됐다.”
그를 이어 스물아홉 명에 이르는 비구와 비구니들(그중에는 세 명의 미국인도 포함됐다)이 팃쾅둑의 소신공양을 뒤따랐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이 자기 몸을 불살랐는지를 설명하는 글이 오늘 읽어볼 팃낙한 스님의 편지이다. 소신공양이 이어지던 와중에 팃낙한 스님은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공개편지를 쓴다. 편지를 쓴 목적은 또 있었다. 저명한 인권운동가요, 휴머니스트인 킹 목사에게 전쟁에 대해 침묵하지 말라고, 시민권 운동 밖으로 떨치고 나와서 전쟁반대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라고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킹 목사는 고심 끝에 침묵을 끝냈다. 그는 <베트남 너머>라는 유명한 연설로 화답한다(이 연설문은 <인권문헌읽기>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침묵은 곧 배반을 의미하는 때가 온다.”는 표어에 완전히 공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킹 목사는 베트남전에 대한 반대, 미국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단호하게 낸다.
이 연설에서 킹 목사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는데 “평화적 혁명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폭력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하루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재물 중심의 사회로부터 인간 중심의 사회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기계와 컴퓨터, 수익 동기와 재산권을 사람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면, 인종차별주의와 극도의 물질주의, 군국주의라는 세쌍둥이 거인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 연설을 한 후 정확히 1년 후에 킹 목사는 살해된다.
2010년 5월 31일 대한민국, 문수 스님이 낙동강 둑방에서 자기 몸을 불살랐다. 남긴 유서와 가사에는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포기하라”, “이명박 정권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라. 이명박 정권은 재벌과 부자가 아닌 서민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분신했던 수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특히 단 시간 내에 많은 분신이 이어졌던 때가 91년이었다. 당시 모 대학의 선전부장이었던 난, 맡은 역할 때문에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분신소식과 그들이 남긴 유서와 영정사진을 받아들게 되는 원치 않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들의 장례식 영구차에 붙일 이름 석 자를 붓글씨로 써야 했던 것도 나의 일이었다. 추모제를 하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죽음의 소식이 전달되는 날도 있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듣게 된 분신, 소신공양이란 단어는 세월을 되돌리는 느낌을 줬다.
그들은 하나같이 원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즐거워하길, 더 공감하고 더 사랑하길, 민주주의와 인권의 적들에 대해 더 각성하고 깨어있기를, 생명을 만끽하길, 더 나은 생활을 누리길,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하되 되풀이하지 않기를….
사회적으론 어땠을까? 한편에선 끝없는 의도적 침묵이 이어졌고, 한편에선 흐느낌과 다짐이 이어졌다. 문수 스님 소신공양 이후 추모제와 선거가 있었고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와중에 어디선가 수많은 이들이 ‘공개편지’를 썼다고 생각한다. 공개편지는 누구에게 수신됐을까, 답신은 누구에게서 어떻게 올까, 강변에서 연서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서를 뜯어보는 심정으로 우리 모두 기다리고 있다. 포클레인이 내려치는 강변에서 내가 이름도 모르는 뭍 생명들은 <4대강 너머>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팃낙한 스님이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An Open Letter from Thich Nhat Hanh to Martin Luther King, Jr., 1965년 6월 1일)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공양은 서구 기독교의 양심으로 이해하기에는 어쩐지 좀 어렵습니다. 언론들은 그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항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분신 전에 남긴 유서에서 그 스님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압제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세계의 관심을 호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인권오름 제 207 호 [기사입력] 2010년 06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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