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4월 26일 인권하루소식 제2798호>
단결을 금지한 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르샤플리에법'은 그 법을 입안한 의원(Issac-René-Guy Le Chapelier)의 이름을 딴 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개별적인 계약에 의존하지 않고 집단적으로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프랑스 혁명이 정한 새로운 원칙-개인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이 법을 만들어서 역사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었다.
이 법이 금지한 것은 노동자의 단결만이 아니라 기업가의 단결을 포함한 모든 직업적 결사와 쟁의 행위였다. 여기에는 구체제에서의 동업조합 등 유력한 사회단체가 모두 봉건적이며 부정의 대상이 되었던 배경이 있다. 그래서 단결권은 위험한 것이며 국가에 의해 엄밀하게 통제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혁명으로 이룬 새 세상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승인할 가치가 있지만, 그 개인의 자유와 이익을 방해하는 동업조합 등의 단체의 이익 또는 권리는 고려할 것이 못된다는 것이었다.
1791년 봄, 파리의 목수직 및 제철공의 운동 등이 크게 일어나자 그들의 고용주는 노동자들이 구체제의 동업조합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리고 의회에 노동자의 결사를 금지하는 입법을 제정할 것을 청원했다. 르 샤플리에 의원은 의회에서의 보고를 통해 "각자의 개별이익과 모두의 일반이익 사이에 중간단체가 존재하면서 중간이익을 선전하는 것을 용납돼선 안되며", "임금의 결정은 개인 대 개인의 자유로운 합의를 통하고, 자기를 고용하는 자와 이룬 합의를 노동자는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
르 샤플리에의 생각은 당시의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대변한 것으로 사용자와 노동자의 노동관계를 개인 대 개인의 계약관계로만 본 것이었다. 그는 노동자의 임금이 낮기 때문에 현 수준보다 조금 높게 책정될 필요성을 인정하기는 했다. 또 실업이나 질병으로 어려운 노동자를 구제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경쟁이 만인의 이익을 가져온다는 신념에 기초한 것이고 그것을 보충하는 것으로서 국가의 의무를 고려한 것에 불과했지, 경제적 자유권의 제한을 전제로 하고 생존권의 보장을 도모하는 국가의 의무를 생각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따라서 임금 결정을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 내맡겨야 적정한 임금액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노동자가 임금을 끌어올리기 위해 하는 단결이나 기업주가 임금을 끌어내리기 위해 하는 단결이나를 똑같이 방지한다는 것이 르샤플리에법이었다.
원칙상으로는 기업가들의 단결도 처벌받아야 했겠지만 표적은 당연하게도 노동자가 되었다. 19세기를 통해 사용자의 단결을 금지한 형법은 단 한번도 적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에 노동자들에 대한 형벌은 사용자에게 정해진 형벌보다 아주 셀 뿐 아니라 가중처벌되었고, 눈에 띄는 단결을 할 필요가 없는 사용주와 눈에 띄는 단결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 중에 적발대상이 되는 것이 누구인지는 뻔한 일이었다. '노동자수첩'이란 구체제의 수단이 부활되어 종전의 고용주가 노동자의 의무이행 증명을 수첩에 기입해주지 않으면 새 고용주 밑에서 일할 수 없었고, 당시 노동계약은 대부분 구두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다툼이 있는 경우 법원은 고용주의 주장을 믿는다는 법규정에 따라 고용주의 주장이 채택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르샤플리에법은 노동자의 단결활동이 금지되었던 매뉴팩처 시대의 대표적인 법이다. 매뉴팩처 시대를 지배했던 '개인이 자기 이익의 최상의 옹호자'라는 관념은 이후 산업혁명과 더불어 분명해져 가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힘의 실질적 불평등이라는 사실에 의해 깨져가게 된다. 자신들밖에는 믿을 존재가 없다는 노동자들의 각성은 새로운 사회사상의 등장과 보급을 통해 성장했고 노동력 시장의 변화에 대처하는 자본가와 국가의 대응방식도 변화하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의 단결은 금지로부터 소극적으로 형벌권에서 벗어나는 단계, 그리고 노동기본권이 적극적으로 용인되는 단계로 전개돼간다.
강자는 서부 영화 속의 영웅처럼 혼자 다녀도 겁날 게 없지만, 약자는 그렇지 않다. 인권선언의 형식적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다면 모든 사람(모든 노동자)은 자유롭고, 또 평등(자본가와 대등)하다. 이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거주이전,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지면서 자유의사로 좋아하는 공장이나 사업장을 마음에 드는 조건으로 선택하고 일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환상적 논리와는 동떨어진 것이다. 경제적 자유를 방임하면 경제적 우위에 서는 이들은 생활의 모든 장에서 지배자가 되는 반면 반대쪽에 선 이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은 뭉쳐야 하고 뭉쳐서 뭔가 행동을 해야 했다. 개개인으로는 취약하기 그지없는 거래능력을 단결로서 극복하고 집단의 거래력에 의존하는 방법을 도모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노동자의 단결 및 단결활동이 국가의 형벌권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1864년에 가서였고, 노동조합이 법률로 승인되는 것은 1884년에 가서였다. 오늘날 우리 국회에는 '르샤플리에' 의원이 너무도 많고, 노동자들에 대한 압박과 처벌을 청원하는 자들 또한 넘쳐흐른다. 그리고 국회 밖에는 노동자의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들, 단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을 위한 연대를 갈구하고 있다.
르샤플리에(Le Chapelier) 법(1791년 6월 14일) 제 1조. 프랑스 헌법의 근본 토대 중 하나가 동종의 업 또는 직업에 종사하는 시민의 길드를 어떤 종류이건 폐지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어떠한 명목 및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것의 재건은 금지된다. |
[류은숙] <2005년 4월 26일 인권하루소식 제27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