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4월 12일 인권하루소식 제2788호>
우리는 흔히 '가진 것이라곤 몸밖에 없는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 말은 자기 몸 말고는 밑천이 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무산자의 처지를 일컫기도 하지만 '몸'의 중요성을 따져보는 말로 새롭게 해석해보고 싶다. 무릇 어떤 시대에도 어떤 사회에서도 몸의 자유를 완전히 빼앗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법을 어기지 않으면 인신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오늘 살펴볼 문헌은 인신의 자유의 기원이 된 1679년 영국의 헤이비어스 코퍼스법, 정식으로 말하자면 '신민의 자유를 보다 잘 보장하고, 해외에서의 구금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An Act for the better secruing the Liberty of the Subject, and for Prevention of Imprisonments beyond the Seas)'이다.
기본적 인권으로서의 신체의 자유
구금, 즉 자유로운 인간이 '갇힌다'는 것 자체는 엄청난 인권침해이다. 신체의 자유는 근대국가의 인권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속하는 자유이다. 아무런 또는 적절한 설명 없이 사람을 잡아넣을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모든 자유가 침해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옛날 기억이 있다. 엄혹한 시절이었다. 학교 앞 복사집에 인쇄물을 맡겼다. 나와 몇 몇 친구들이 만든 '미국 바로 알기' 자료집이었다. 시중에 나온 책들과 우리의 토론을 기반으로 만든 몇 십 쪽에 불과한 소책자였다. 그 자료집을 찾으러 간 날, 복사집 앞에 형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들은 우리를 경찰차도 아닌 자신들이 타고 온 택시에 실었고, 우리는 그대로 택시에 실려 경찰서 보안과로 갔다. 3박 4일간의 취조는 그렇게 시작됐다. 처음에는 강압으로 택시에 실렸지만 경찰서에 도착해서는 끌고 온 이유가 뭐냐고 당연히 물었다. 그들은 전혀 대답해주지 않았다. 하얀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취조실에 앉아서 조사를 받기 전(한밤중이 되기 전)까지 한마디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를 끌고 온 단서는 복사집 쓰레기통에 있었다. 보안과 직원들이 학교 앞 복사집들의 파지함(곧 쓰레기통)을 정기적으로 뒤지면서 문제소지가 될 문건을 찾아낸다는 걸 그때 알았다. 며칠 간의 조사가 끝난 후 불구속 기소로 풀려나올 때까지 아무도 내 혐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문제소지'가 있어서 조사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기막힌 일에 대한 항변이 헤이비어스 코퍼스가 제기된 17세기에 이미 있었다는 것은 더욱 기막힌 일이다.
오늘 읽어볼 문건은 1679년 영국의 인신보호법(Habeas Corpus Act, 1679)이다. '몸(신병)을 제출해야 한다(thou must have the body)'는 뜻의 헤이비어스 코퍼스(habeas corpus)는 타인의 신병을 구속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 그 신변을 재판소 또는 재판관 면전에 구금의 이유와 함께 제출할 것을 명하고 구금의 이유가 불충분한 경우에는 재판소 또는 재판관이 피구금자를 석방할 수 있는 영장이다.
국왕과 신흥중산계급의 갈등
헤이비어스 코퍼스의 기원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다. 다만 애초부터 그것이 인신의 자유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고 피고의 출두를 강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는 것, '국왕의 특별한 명령에 의한'과 같은 매우 전횡적인 구금 이유를 인정하는 전 근대적인 것이었다는 기원을 여기서 말해둘 수는 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 영국의 국왕과 의회의 대립항쟁을 거쳐 국왕의 전횡적인 체포·구금을 부정하는 근대적 의미의 헤이비어스 코퍼스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겠다. 왕권신수설을 신봉한 국왕 중의 하나인 찰스 1세가 전쟁수행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강제공채를 구매하도록 했으나 이에 대한 지불을 거부한 기사들이 있었다. 옥에 갇힌 그들의 변호인은 구금의 이유가 "국왕의 특별한 명령에 의하여"인 것은 어떤 종류의 명령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따졌다.
조세권을 빼앗는 것은 국왕의 머리에서 왕관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긴 국왕측과 조세부담을 사업발전의 장애물로 여긴 신흥 중산계급은 이렇게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의회는 전횡적인 통치로부터 피해자를 석방할 것, 전횡적인 통치가 확립되도록 충고했던 자를 처벌할 것, 전횡적인 통치의 재확립을 불가능하게 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입법화해나갔다. 그 결과 헤이비어스 코퍼스 신청권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단순히 "국왕의 특별한 명령에 의하여"가 아닌 진정한 구금의 이유를 제시해야 할 의무, 답변의 심리기간을 3일 내로 한정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법률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크롬웰 정부를 거쳐 왕정복고가 되자 반동적인 분위기가 넘쳤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의 구금은 '다만 그렇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 주장됐을 뿐만 아니라 영장을 발부할 수 있는 재판소, 그 시기, 영장의 종류 등이 분명치 않아 절차적 문제도 심각했다. 이처럼 통일적 의견이 없고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인신의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비열한 수단이라 할 '돈으로 인한 매수'가 잦았다. 많은 돈이 부당한 구금에서 석방되기 위해 흔히 오갔던 것이다.
헤이비어스 코퍼스의 전진
신민의 자유를 보다 낫게 보장하기 위한 법률, 해외에서의 감금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로서 심의된 '헤이비어스 코퍼스법'은 이 법의 제정에 앞서 있었던 과거의 영장 발부권을 둘러싸고 결함이라고 여겨졌던 절차 문제의 해결에 중심을 두고 있다. 이 법의 통과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법의 통과 과정에서 정족수의 문제나 법안의 찬성자에 대한 불신 때문에 투표 계산자가 뚱뚱한 귀족을 10인으로 계산했다는 웃지 못할 농담도 전해지고 있다.
반혁명적 성격을 갖는 국왕 및 궁정파의 정치세력과 런던의 대상인을 중심으로 한 신흥 정치세력이 고강도의 긴장관계를 형성하면서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인신의 자유 문제는 그 관계 속에서 주목받은 사건의 주인공들(귀족과 의원들)과는 달리 민중의 소요를 배경으로 했다. 대중 소요의 그 주된 원인은 빵과 생필품의 등귀, 즉 가난과 고통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것이 노동자의 계급적 요인과는 연결되지 않았다.
인신의 자유는 인권헌장 혹은 혁명의 결과물이 인권선언들에 의해 명시됐다고 해서 완성된 것이 아니었고, 그 속에 담긴 권리들의 이행을 위한 밑그림에 불과했다. 법과 국왕 대권 사이의 대립의 결과물을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의 입장이 아닌 경우, 즉 초기 인신의 자유의 주체였던 영국의 상층계급을 제외하면 그 이익은 매우 희박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신의 자유가 실정법으로 보장되면 되어 갈수록 저항권사상은 희박해졌고, 그것의 한계는 실정법 틀 내에서의 문제해결이었다. 인신보호법에서 이해된 인신의 자유의 본질은 '법적 정당성'이 없는 그 어떤 방법으로서도 구금, 체포 혹은 그 밖의 육체적 강제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의 권리를 의미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측면은 '자유의 견고한 요새'로서의 '인신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극복되고 보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일 것이다. 그것의 성립이 국가권력과 권력의 지배를 받는 사람간의 대항관계에서 생성되어 왔듯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신보호법(Habeas Corpus Act, 1679) '신민의 자유를 보다 잘 보장하고 해외에서의 구금을 방지하기 위한 법률' 제1조 형사사건-근거가 있건 없건-으로 국왕의 신민을 수감한 주장, 형리 또는 기타 관리가 그들의 의무와 주지하는 국법에 반하여 제2, 제3 인신보호영장이나 때로는 그 이상 횟수의 영장에 승복하지 않고 그 영장에 대한 승복을 회피하기 위한 여러 수단을 사용하여 인신보호영장에 대한 답변을 몹시 지연시키고 있다. 이로 인해 국왕의 많은 신민들이 이제까지 법률적으로 보석이 가능한 경우에도 장기간 구치소에 구금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 신민에게 막중한 부담과 고통이 되고 있다. |
[류은숙] <2005년 4월 12일 인권하루소식 제27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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