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03 호  [기사입력] 2012년 06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문헌읽기] 여섯 개의 P (Six Ps)

빈민을 조직화하는 빈민에 관하여(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왜 사냐고 묻거든 (그냥) 웃지요”라는 구절이 시로 여겨지지 않는 시절이다. 이 시에서처럼 달관의 웃음이 아니다. 세상일에 어처구니가 없고 무기력감에 빠져서 생긴 얼버무린 표정이 피식 빠져나온 방귀처럼 얼굴에 ‘썩소’를 만든다.

배달시킬 때마다 몇 백 원씩 오른 새 가격표를 들고 오는 식당, 뉴스 창을 열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성적 비관‧생활고 비관의 자살기사들, 강정이든 쌍용차든 현장에선 끓어 넘치고 있는데 주요 뉴스 면에선 식어버린 문제들, 단식과 농성으로 스스로 뉴스를 만들고 있는 언론인과 가짜들이 판치는 거대 언론, 그 언론들이 즐겁게 챙기는 신구 공권력의 화신들과 양념치고 부채질해주는 소위 진보인사들…. 파국 앞에서 손 놓고 있는 무기력감의 ‘썩소’가 아니 나올 수 없다. ‘요즘 어떻게 사느냐’, ‘뭘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질문과 대답을 피하고 서로의 눈을 피하는 상황을 비를 잊은 하늘이 노여운 듯 내려다보고 있다.

지난 주말 쌍용차 ‘희망걷기’ 행사가 있었다. 주말에 식당 알바를 하는 나는 한밤중에야 대한문으로 향했다. 종일 흘린 땀으로 몸에서 쉰내가 났지만, 땡볕에 종일 걸은 사람들의 땀내에 묻힐 것이라 생각하고 안 씻고 그냥 갔다. 역시나 스치는 사람들마다 땀내가 쩔어 있고 무대에 서는 이들마다 한을 토하듯 말을 끊을 줄을 모른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잘렸고 용역과 경찰에게 얼마나 두들겨 맞았으며 지금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비슷한 사연들이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온 세상을 짊어진 무게이다. 그들의 등 뒤로 보이는 무대 현수막의 “연대할 권리”라는 말이 신선하다. 연대할 ‘의무’가 아니라 ‘권리’라고 하니 더 강한 느낌이 온다. ‘연대할 권리’란 말을 쓸 정도로 우리가 어느새 성숙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참가자들의 춤과 구호를 사진에 담아내고 있는 김진숙 씨가 보인다. 몸은 어떨지 모르지만 미소에는 건강미가 넘쳐 보인다. ‘저 사람이 살아있구나, 웃고 있구나’ 안도감이 밀려든다. 꼬리를 문 장례에 상복을 벗지 못한 쌍용차 노동자들도 간만에 웃으며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노점상들의 장터가 뒤편에서 열리고 있다. 매연과 먼지 섞인 김치부침개를 놓고 둘러앉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얘기꽃을 피운다. 아는 얼굴들이 스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한다. 용산 참사 유가족, 고문피해자를 위한 센터를 열었다는 이전의 고문피해자, 목소리 톤이 높아 단골 사회자인 장애인권 활동가, 싸가지 없는 언론사 사장 등의 이름이 적힌 걸레를 나눠주는 언론 노동자, 서울 나들이를 감행한 강정지킴이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공통으로 느끼고 영향받는 사람들의 행진이 꼬리를 문다. 잠시나마 ‘썩소’가 아니라 그냥 웃는다. 그저 같이 있는 게 좋아서 웃는다.

문득 잊고 있었던 낱말들이 떠오른다. 단결하고 조직하고 계획한다는 말, 이 말들은 서로 같은 말이다. 같은 문제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말들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그 조직화와 계획에 대한 것이다. 어느 날인가 빈민의 사회경제적 인권을 열쇠말로 하는 사이트들을 뒤지다가 거기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6P’란 걸 발견했다. 뭘 말하는 것인가 했더니 ‘흑표범당(the Black Panther Party)’의 역사에서 따와 오늘날의 현실에 적용하려는 시도들이었다. ‘흑표범당’이란 196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가 FBI의 파괴공작으로 와해된, 흑인의 권리를 주창한 정치조직을 말한다. 흑표범당의 ‘6P’를 가져다가 단체마다 다양하게 고쳐 쓴 것들이 많았는데, 그 원조에 해당하는 글은 빈민운동가인 윌리 뱁티스트(Willie Baptist)의 것이었다. 뱁티스트는 그 자신이 홈리스 출신으로서 40여 년 이상 빈민 조직화와 교육활동을 벌여왔다. 그는 얼마 전 <빈민의 페다고지(빈민교육론)>를 출간하기도 했다. 뱁티스트는 연설이나 글 등에서 “빈민을 조직화하는 빈민”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데, 같은 제목의 연설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나는 홈리스였다. 나는 평생을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 사람들은 타이타닉 호에서 제일 좋은 의자를 잡으려고 싸우고 있다. 사람들은 그 의자들을 어떻게 타이타닉을 벗어날 수 있는 구명보트로 만들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나는 더 좋은 의자를 원한다’는 것에 고정돼 있다. … 상황을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다. 우리는 해체된 가족, 거대한 세계적 규모로 빼앗기는 일터를 보고 있다. ‘다운사이징’(감량경영)이란 그럴듯한 단어는 사람들이 해고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직업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더 나은 자리를 찾겠다는 것이 아니라 타이타닉을 벗어날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접근하려는 방법이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각 시기마다 불거진 문제들에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직면한 문제의 뿌리를 건드릴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대해 말해야 한다. 오늘날 빈부격차를 중대한 문제로 본다면, 가장 가난하게 된 사람들이 운동의 지도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빈민은 게으르고 제정신이 아니고 구제불능이며 도와야 할 사람들이라는 모든 편견과 반대되는 것이다. … 이 싸움은 동정을 구하는 싸움이 아니라 권력을 구하려는 싸움이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동정을 느끼는 관점을 갖고 있다면 뭔가 성취할 수 없다. 관계는 서로 간에 동료여야지, 불평등한 관계 속의 온정주의여서는 안 된다. 이 나라는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고, 동정심의 영역에서는 엄청난 발전을 누려왔다. 자선사업, 사람들을 돕는다는 관념, 자조주의의 관념이 미국인의 정신에는 풍부하다. 이런 생각들은 인간에 대한 진지한 고려에 기초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통제를 위한 원천이자 수단이 되어왔다.”

그가 ‘6P’를 발굴하고 강조하게 된 배경 설명이 이 연설에 녹아있다. ‘6P’란 것은 간단하다. 우리가 뭘 해야 하는지를 모아내는 것이 프로그램(1. Program)이고, 안이하고 타성에 젖은 방식이 아니라 심사숙고하며 지속적으로 저항(2. Protest)한다. 서로의 기본적이고 긴급한 필요를 채워줄 방법을 일상적으로 만드는 것이 생존프로젝트(3. Survival Project)이고, 주류 언론을 신뢰하지도 의지하지도 않으며 스스로의 목소리를 만들어 알리는 언론작업(4. Press Work)을 한다. 우리가 왜 무엇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이 정치교육(5. Political Education)이고, 몇 몇 인물의 인품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기획과 계획을 통해 힘을 모으는 집합적인 지도력을 기르는 운동(6. Plans Not Personalities)을 한다.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것의 실천은 간단하지 않다. 계속 만나고 움직이고 부대끼며 썩소와 미소의 차이, 무기력과 생동감의 차이, 고립과 연대의 차이를 배울 수밖에 없다. ‘연대할 권리’란 말을 찾아낸 사람들은 그것의 작동법도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여섯 개의 P (Six Ps) , 윌리 뱁티스트

대개의 미국인들은 흑표범당을 생각하면 백인을 죽이려고 검은 총을 가지고 다니는 과격 집단을 떠올린다. 그런 이미지는 언론과 미연방수사국(FBI), 그리고 FBI의 대(對)파괴자첩보활동(COINTELPRO, 국가안보에 위험이 있다고 간주하는 개인이나 조직에 대한 FBI의 비밀파괴활동)이 만들고 부채질한 이미지이다. 그런 이미지를 부채질해서 그들은 흑표범당을 고립시키고, 흑표범당에 잠입하여 파괴했다.

이런 조직적인 잘못된 정보에 맞서 흑표범당의 의장 바비 실(Bobby Seale)은 이렇게 말했다. “심문관이 우리더러 백인 반대자라 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서슴없이 백인 반대자라고 한다. 이건 뻔뻔한 거짓말이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를 피부색 때문에 증오하진 않는다. 우리는 억압을 증오한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살해를 증오한다. 우리는 대규모 실업을 증오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자유’를 약속하면서 인종주의에 푹 빠진 미국을 위해 싸우려고 흑인들이 군 복무를 하러 떠나는 것을 증오한다.”

사실은 흑표범당이 모든 민중의 경제적 안전을 위해 두려움 없이 싸웠고 쉴 새 없이 일했다는 것이다. 그 시대의 다른 어떤 조직들보다도 더 흑표범당은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란 요구를 옹호했다. 하지만 그들은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비난받았다.

그들의 효과적인 아동 무상 아침 식사 프로그램을 훗날 여러 주의 입법가들이 따라 했다. 무상 의료 진료소, 빈민이 감옥의 친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무상이동프로그램 등의 생존 프로그램들로 인해 흑표범당은 빈민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대파괴자첩보활동’은 이런 계획들을 위험하고 “사악한” 활동이라 비난했고, 지역의 FBI 요원들은 그것들의 파괴를 겨냥했다.

… 어떤 사회운동도 역사로부터 배우지 않고는 성공할 수가 없다. 이 풍요의 땅에서 만연한 빈곤을 끝내기 위해 오늘날 새롭게 떠오르는 운동은 지난 1960년대의 흑표범당의 역사적 경험에서 많은 교훈을 배울 수 있고 배워야만 한다. … 오늘날, 근본적인 경제적 조건은 경제의 모든 측면에서 기계화로부터 전자화로의 지속적인 팽창이다. 이런 변환의 결과는 구조적인 실업과 빈곤의 엄청난 증가이다. 이것은 단지 도시의 흑인 젊은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피부색, 모든 연령, 모든 지리적 영역의 문제이다. … 오늘날의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판단해야만 하고 오늘날의 상황에서 흑표범당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개념을 흑표범당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는 흑표범당의 조직화 방식에서 ‘6개의 P’를 찾아냈다. ‘6개의 P’란 프로그램(Program), 저항(Protests), 생존 프로젝트(Projects of Survival), 언론작업(Press work), 정치교육(Political Education), 인품이 아닌 계획(Plans not Personalities)이다.

1. 프로그램(Program)
흑표범당의 목적은 10개의 강령 프로그램에 기술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들이 기반한 지역민들의 핵심적인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요구를 표현했다. 가령 제2강령은 “우리는 우리 민중의 완전 고용을 원한다.”, 제4강령은 “우리는 인간의 쉼터로 적합한 존엄한 주거를 원한다.”이고, 제7강령은 “우리는 경찰 폭력과 흑인에 대한 살해를 당장 중단할 것을 원한다.”이다.

… 사람들은 쟁점이 되는 문제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행동할 동기를 갖게 된다. 사람들은 그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마찬가지로 영향을 받는 타인들을 찾게 된다. 이것이 조직화의 기초이다. 프로그램이란 그런 쟁점들을 요약하는 것이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을 이행할 계획을 설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이란 해결책을 향해 한 조직을 공통된 방향으로 결집시키며 그 모든 활동을 이끄는 것이다. 따라서 프로그램은 빈민이 빈민을 조직화하기 위한 필수적인 정치적 도구이다.

2. 저항(Protests)
흑표범당은 “타성적”인 것이 아니었다. … 가령, 지역사회의 의견을 세심하게 기록‧분석하고, 경찰의 행동과 민중의 권리를 지배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조건과 법률들을 조사한 후에야 흑표범당은 그들의 유명하고 극적인 경찰 순찰대(경찰의 총에 맞서 총을 들고 흑인빈민가를 순찰한 활동을 말함)를 시행했다. 이런저런 저항들은 민중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그들의 의식을 건드렸다. 이런 정기적인 저항은 그들의 회원을 급격하게 늘렸고 여론에 대한 영향력을 높였다. 투쟁하는 조직만이 투사들을 조직화한다. 심사숙고한 지속적인 저항은 빈민이 빈민을 조직화하는데 필수적인 도구이다.

3. 생존 프로젝트(Projects of Survival)
흑표범당이 시행한 무상 아침 식사 프로그램, 무상 의료 진료소 등의 프로젝트들은 회원들에게 지역사회에 지속적으로 접촉하게 했고 민중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깊게 만들었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긴급한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회원들의 정치적 훈련과 발전을 도왔다. 이런 활동들은 또한 그 자체가 저항과 정치 교육의 효과적 형태였다. 왜냐하면 생존 프로젝트들은 엄청난 풍요의 한가운데서 극심한 결핍을 양산하는 시스템의 광기와 비인간성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계속 움직이는 조직에는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계속 움직이는 조직은 회원과 영향력을 모은다. 저항 활동은 시작과 멈춤, 들고 나는 성쇠가 있지만, 생존 프로젝트는 꾸준히 작동한다. 생존 프로젝트는 회원들을 서로 지속적으로 만나게 하고 조직의 능동적인 구성원으로 몰두하게 한다.

빈민은 시시각각 당장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생존의 문제에 사로잡혀있다. 생존 프로젝트는 이런 즉각적인 필요를 부분적으로 충족시킨다. 빈민은 생존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조직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고 조직가들은 정치교육과 투쟁활동을 정기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4. 언론 작업(Press Work)
흑표범당의 신문(The Black Panther)은 널리 알려져 높은 평가를 받았고 조직화와 소통과 교육의 도구가 됐다. 이 신문의 배포 범위는 십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흑표범당이 수행한 활동의 성격상 그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소통하기 위해 주류 언론을 신뢰할 수도 없었고 의지하지도 않았다. … 우리들 빈민 자신의 언론을 이용하는 것은 빈곤에 대한 싸움을 조직화하는 오늘날 특히 중요하다. 현재 존재하는 것은 의식을 잃은 언론과 우리의 처지와 싸움의 성격을 검열하는 언론이다. 목소리가 없는 운동은 고립되고 파편화되고 패배하는 운동이다.

5. 정치 교육(Political Education)
흑표범당은 자기들 구성원에 대해서나 광범위한 대중에 대해서나 지속적인 정치교육에 몰두했다. …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정치교육 없이는 운동을 조직하고 유지하고 훈련하는 일, 그리고 지도자를 발굴하는 일의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6. 인품이 아닌 계획(Plans Not Personalities)
흑표범당의 역사는 그들의 성취뿐만 아니라 단점에 대해서도 연구돼야만 한다. 흑표범당의 주요한 결점은 계획(정치교육 계획, 생존 프로젝트 개발 계획, 저항을 수행하는 계획, 언론작업과 배포 계획, 가장 중요하게는 이 모든 계획을 조직의 프로그램을 수행하려는 전반적인 계획에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인품에 너무 의존했다는 것이다.

FBI의 ‘대파괴자첩보활동’은 이런 약점을 이용했다. 서로 간에 개별적인 충성심에 기초해 형성된 내부 분파 집단들을 싸우게 함으로써 흑표범당을 찢어놓기 위한 목적이었다. FBI는 이 일을 스파이의 잠입과 기관원인 선동가를 통해서 거짓 흑색 정보 운동을 수행함으로써 해냈다.

“뱀의 머리 자르기”는 운동을 파괴하기 위한 오랜 교리이다. 지도자의 인품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운동은 적의 쉬운 먹잇감이다. 기획과 계획에 대한 헌신은 지도자들의 집합적인 발전을 허용한다. 계획을 통해 지도력을 통합하거나 집단화하는 많은 지도자를 가진 운동은 광범위하고 강력하며 심도 깊게 훈련된 운동이다. 그런 깨어있는 운동은 쉽게 잠입되거나 분열되거나 패배하지 않는다.

오늘날 모두가 “집합적인 지도력”의 필요성을 말하지만 정말로 그것의 발전을 보장할 수 있는 심사숙고한 계획 없이 말뿐인 채로 있다. 그 계획은 ‘6개의 P’에 대한 고려를 포함해야만 한다

인권오름 제 303 호  [기사입력] 2012년 06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31 호  [기사입력] 2006년 11월 28일 23:15:08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바람이 분다. 광풍(狂風)이 분다. 수시로 불었던 광풍이지만 온몸으로 바람막이에 나선 사람들의 몸과 가슴에는 피멍이 든다. 경찰에 의한 노동자·농민의 죽음, 떨어지는 농산물 가격, 천정을 모르는 집값 놀음, 세금폭탄 타령, 그래도 밀어붙인다는 한미 FTA, 이라크파병연장……. 더 이상 늘어놓기도 민망할 정도의 인권말살정책이 판을 치는데 가만있으라 한다. 따지려 들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다. 정작 ‘폭력’을 창조한 세력들, 생명을 죽이고 생존의 희망을 죽인 세력들, 얘기를 들으려고도 전달하려고도 않은 정치인들과 언론이 외치는 ‘평화’는 역겹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자기 방어를 방어하며”이다. 오늘날 언론이 시위대를 끔찍하게 몰아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극단주의자, 전복세력, 선동분자, 빨갱이’로 불린 사람들이 쓴 인권선언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민권법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경찰이든 법원이든 그 누구도 폭력과 불의로부터 사회적 약자인 흑인들을 보호할 의사가 없다는 증거가 쌓여만 갔다. 흑인 빈민가에서 터져 나온 전국적인 투쟁은 ‘반란, 폭동, 소요’로 표현됐고 경찰과 주방위군 뿐만 아니라 백인 민간인들도 총기를 사용했다. 소년·소녀, 임산부도 그런 총탄에 희생됐다.

이 문건 속에 ‘총’이 등장하는 것이 그리 놀랄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흑표범당은 이런 환경에서 탄생한 흑인좌파정당이었다. 우리에게는 사건 조작으로 사형수가 된 무미아 아부 자말(레게머리를 한 그의 사진은 사형폐지운동을 비롯한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어왔다)로 인해 알려진 조직이다. ‘우리를 대표하는 정부가 없으니 우리 스스로 정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흑표범당에 참여하고 지지하는 이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흑표범당의 당원들은 흑인들이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고 말하며 총을 소지하고 다녔다. 경찰의 총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그들은 총을 가지고 흑인빈민가를 순찰했다. 동시에 어린이들을 위한 무료 아침식사, 학교, 병원 등을 제공했다.

미국 정부가 이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은 치밀하고 가공할 공작으로 흑표범당을 파괴했다. 1969년 어느 날 새벽에는 흑표범당 당원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기관단총과 산탄총으로 무장한 경찰분대가 습격하여 흑표범당의 지도자들을 살해했다. 흑표범당은 1980년대 초까지 존속했다고 하나 상당수 당원을 구속과 사망으로 잃은 이후 당의 활동은 사실상 중단된다.

물론 이들의 ‘자기방어’ 주장을 흑인이나 변화를 갈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찬동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화염병과 소총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비폭력 행동을 통해서만 의미 있는 사회변화를 얻을 수 있다’는 호소가 더 강력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비폭력 행동을 찬양하는 언론들이 고의로 빼먹은 중요한 부분이 있다. 킹 목사의 비폭력 행동은 그의 분명한 실천을 통해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킹은 분노하고 절망한 흑인들에 대한 비폭력의 호소가 가장 큰 폭력의 가해자인 자기 정부를 향해 말하지 않고서는 허위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탐욕을 베트남 전쟁이라는 가장 큰 폭력을 통해 채우려는 미국정부에 대해 말하지 않고서는, 그 전쟁으로 인해 가난한 흑인이 굶어죽고 또한 전쟁에 나가 죽어야 한다는 현실을 고발하지 않고서는 비폭력에 대한 자신의 호소가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는 그렇게 했다. 그 결과 그는 암살당했다.

이라크 파병이라는 크나큰 폭력, 생존권 박탈이라는 근원적 폭력을 말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호소하는 소리는 겨울철의 모기 소리마냥 뭔가 잘못된 것이다. 하물며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작정한 듯 난도질하는 것을 보니 예비된 공작의 수순으로 여겨질 뿐이다. 해놓은 것도 잘한 것도 없는 정권의 최후 발악을 보는 듯하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왜 기본적 인권이겠는가? 이것이 없는 표현의 자유는 일부 지식인과 언론인, 재산가들이 독점하는 여론이 돼버리고, 정작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의 문제를 드러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제는 집회·시위의 자유, 그것만이 아니다. 자기방어는 사활적인 인권이다. 지금 거리의 사람들은 죽지 않으려고, 자기방어를 위해 싸우고 있다. 한 줄이라도 이들이 싸우는 이유를 쓰고 나서야 ‘평화’를 입에 물 수 있지 않을까? [류은숙] <2006년 11월 28일 인권오름 제31호>

“자기방어를 방어하며”
- 휴이 뉴튼(Huey P. Newton) 흑표범당(The Black Panther Party) (1967.6.20)

법과 규범은 언제나 민중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 규범이란 민중에 의해 세워져야 조화로운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법률과 규범은 사회의 보편적 복지를 증진할 목적으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다. 규범이 인간을 섬겨야지, 인간이 규범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당국자들이 가난한 민중을 괴롭히려고 시도한 법률과 규범은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의 상태에 관해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섬기지 않는 규범을 민중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국자들은 외면한다. 자신들의 더 나은 이익을 위한 규범과 법률을 만들고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가난한 이들의 의무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류의 기본적 인권 중 하나이다.

착취하는 억압자들의 속임수와 기만적인 올가미로 만들어진 경로를 민중은 거부해야 한다. 민중은 억압자들이 지지하는 모든 것에 반대해야 하고, 억압자들이 반대하는 모든 것을 지지해야 한다.

억압자는 심판받을 때까지 시달려야 한다. 억압자에게는 밤이나 낮이나 어떤 평화도 없다. 노예들의 수는 언제나 노예주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억압자의 권력은 민중의 굴복에 달려있다. 흑인들이 정말로 단합해서 자신들의 엄청난 수로 일어설 때, 불의를 때려 부술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엄청난 수가 가진 힘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대륙과 서반구 도처에 있는 무수한 흑인 민중이다.

인종차별주의 머저리인 억압자는 무장한 인민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무기와 자기방어를 위한 흑표범당(the Black Panther Party)의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흑인들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한다. 비무장한 민중은 노예이거나, 어느 때건 노예제의 대상이 된다. … 자유, 방어의 총, 그리고 전략적 해방론으로 무장한 흑인민중과 비무장으로 굴복하는 흑인 민중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고장난 차 엔진을 고치고 싶은 정비사는 그 일을 하기 위한 필수적인 도구를 가져야만 한다. 민중이 해방을 향해 나아갈 때도 해방의 기본적 도구를 가져야 한다. 총을 가져야한다. 총의 힘으로만 흑인 대중은 무장한 인종주의자들의 권력 구조가 자신들에게 자행하는 테러와 만행을 멈출 수 있다. 어떤 점에서는 오직 총의 힘으로만 전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

인권오름 제 31 호  [기사입력] 2006년 11월 28일 23:15:08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