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251 호  [기사입력] 2011년 05월 1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5․18 광주민주화항쟁 31년이다. 억눌린 공포 속에서 광주를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이 길었고 많은 이들이 광주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라며 제 몸을 불사르거나 감옥에 갔다. 5․18은 자국의 군인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향해 곤봉과 대검, 급기야 총탄을 날린 사건이다.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고문 받고 옥에 갇혔다. 하지만 발포 책임자는 규명되지 않은 채 국가지정기념일이 됐다. 명백한 학살자는 27만원이 전 재산이라고 우기는 속에 호의호식하고 있다.

5․18이 강요된 침묵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온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날이 되면 라디오에서 ‘오월의 노래’를 틀어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꽃잎처럼 뿌려진 너의 붉은 피’라는 가사의 노래를 틀어주는 건 아니다. ‘오월의 노래’의 원곡이라는 프랑스 샹송을 틀어준다. 비장한 ‘오월의 노래’와는 달리 감미롭게 들리는 원곡이다.

학살자와 그 동조세력은 5․18 같은 사건이 빨리 잊히고 혹여 기억되더라도 박제된 과거로 남기를 바랄 것이다. 그게 아니고 살아 꿈틀되는 기억이고 추모이려면 어찌해야 할지가 오늘을 사는 이들의 숙제이리라. 숙제를 푸는 한 가지 방법은 광주와 같은 고통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기억을 나누고 간직하고 잊지 않았음을 확인하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광주와 같은 일을 60여년이 넘도록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에도 총탄에 수백 명이 다치거나 죽었다. 총탄 앞에서 외치는 그들의 요구는 원래 살던 땅,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이야기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려는 유대인의 오랜 움직임은 강대국을 등에 업고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원래 살던 사람들을 무력으로 내몰고 그 땅을 제 것으로 삼는 일이었기에 ‘인종청소’라는 무시무시한 인권침해가 주요 전략이었다. 1948년 유대인 무장세력은 수백 개의 마을을 불태우고 불도저로 밀어버리며 사람들을 내몰았다. 무장하지 않은 시민, 여성과 아이, 노인들을 살해했다. 인종청소로 인해 팔레스타인은 자기 국가에 대한 정치적 자결권을 잃었을 뿐 아니라 물리적인 땅에 대한 소유까지 잃었다. 그렇게 1948년 5월 14일은 이스라엘 건국일이 됐고, 난민이 돼버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5월 15일을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의 날로 기념한다.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1948년, 유대인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개인적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유대인이 나치와의 경험에서 배운 교훈이라는 것이 유대인을 향한 나치의 악마적 행동을 삼간 것이 아니라 모방이었다는 것이야말로 유대인 최고의 비극이었다.”라고 쓴 적이 있다.

학살자는 광주에서의 학살을 얘기하면 ‘유언비어’라 했고, 유언비어 유포에 대해선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했다. ‘유언비어’는 사실이자 진실로 밝혀졌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의 어법을 구사한다. 팔레스타인 땅을 빈 곳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7세기 이래로 그 땅에서 살아왔는데 말이다. 이것은 전형적인 식민화 관점으로 빈곳이고 쓸모없고 야만인 땅을 문명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팔레스타인’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이 취해온 입장이다. 이스라엘의 수상이었던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입단속을 했다.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이 땅이 팔레스타인의 것이라는 것이고 이스라엘 땅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정복자인 것이지 이 땅의 경작자가 아닌 것이다. 이스라엘은 침략자이다. 이 땅이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면 이스라엘이 오기 전에 여기 살았던 사람들에게 이 땅이 속하게 된다.” 그러니 ‘팔레스타인에 대해선 말하지도 생각하지도 말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버려진 황무지였다고 학교에서 가르쳐왔다. 황무지에 꽃을 피운 게 자신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황무지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은 풍부한 문화와 사회를 가졌다. 팔레스타인의 삶을 파괴하고 숱한 인간의 생명을 비용으로 치르고 지은 집이 이스라엘이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의 고향지역에 따라 모여 산다고 한다. 같은 언어를 말하고 같은 음식을 만들고 같은 수를 놓으며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한다. 그렇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팔레스타인의 마을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의 미래는 같이 꾸는 꿈속에 있을 것이다. 무력으로 자기들만의 국가를 고집하지 않고 기독교인이나 무슬림이나 선주민인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비 선주민인 유대인이나 피 흘리지 말고 한 땅에서 섞여 사는 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삶을 이어가는 꿈 말이다.

이스라엘의 첫 수상 다비드 반 구리온(David Ben-Gurion)은 나크바에 대해 “늙은 자들은 죽을 것이고 젊은 자들은 잊을 것이다”라 말했다. 하지만 나크바는 잊혀지지 않고 팔레스타인과 그들과 연대하는 세계인들의 좌표가 돼왔다.

국제인권법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와 외면, 정착촌과 분리장벽의 계속적인 확대, 난민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하려던 국제지원선단에까지 총격을 해대는 이스라엘의 인권침해가 기억을 기억에 머물지 않게 하는 부채질이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5․18영령과 팔레스타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정의의 회복 속에 부활하시길 기도한다.

나크바(Al-Nakba)

임시천막이 건물로 바뀌었네
하지만 난민은 여전히 난민
기다림과 방임의 세월은
온갖 역경에 맞서 움켜 쥔
단호한 결단력으로 바뀌었네
고대의 사랑하는 땅에 대한
계속되는 기억들을 위해
노래와 얘기들은 계속 살아왔네
오랜 추방 속에서도 귀환의 희망으로
쫓겨난 이들의 캠프에서
삶은 재로부터 피어오르며
때때로
단호한 저항의 의지를 드러내네
부당한 취급을 당한 사람들, 이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
작디작은 땅에 대한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잃어버린 땅에 대한
고통과 애도의 반세기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갈 곳은 여전히 한 곳뿐
팔레스타인의 고향뿐

- 스테벤 카트시네리스(팔레스타인을 위한 호주모임)

 

나크바(Al-Nakba)

데이르 야신(Deir Yassin; 대학살이 있었던 마을 이름)
아몬드와 선인장,
기억의 뿌리에 달라붙은
학살의 유령들

아인 카렘(Ein Karem; 예루살렘 남서부의 마을 이름, 그리스도교의 성지)
초록 벨벳속의 아몬드,
팽창하는 암적색 봉오리는
지금은 더욱 쓰라리게 자란다

하와라(Hawara; 요단강 서안지대 이스라엘군의 검문소가 있는 곳)
어머니의 꿈은
검문소에서 사산되네
팔레스타인의 희망이

- 마리 퓨만(이스라엘정의평화위원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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