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243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2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지난 3월 20일은 미영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이라크 전쟁이 일어난 지 8년이 된 날이었다. 구실이 됐던 대량살상무기는 없던 것으로 일찌감치 밝혀졌다. 인권을 명분으로 한 전쟁이라는 형용모순으로 석유에 대한 탐욕을 위장하여 지탄받은 전쟁이었다. 4천4백 명 이상의 미군이 죽었고 3만 명 이상이 심각하게 다쳤다. 9․11로 3천여 명이 사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희생이었다. 더 큰 고통을 받은 것은 미국이 ‘해방’시키겠다고 했던 이라크인들이었다. 정확하게 헤아려지지조차 않은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은 엄청난 것으로 추측된다. 이라크 침공의 직접적인 결과로 적어도 십만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총격으로 사망한 이들도 많지만 의약품과 깨끗한 물의 부족으로 죽어간 이들의 숫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폭격과 경제제재로 인해 전기 시설, 하수처리장, 수도시설, 병원 등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4백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이 고향을 떠나야했고 여전히 피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8년이 지난 지금, 이라크의 생활 조건은 사담후세인 시절보다 더 악화됐다고 평가된다. 이라크 포로에 대한 잔인한 고문으로 온 세계가 가슴 데인 기억이 있고, 이라크 땅은 우라늄과 방사능으로 오염되는 등 남겨진 상처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문후유증과 유아사망률과 암발생률의 증가는 이라크인들이 평생 짊어질 짐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미군 철수 약속에도 불구하고 완전철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부끄러운 8년의 기억 위에 비슷한 사건이 재연되고 있다. 등장인물이 달라졌을 뿐 비슷한 시나리오다.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그렇다. ‘인도주의적’ 폭격이란 형용모순, ‘독재’의 축출을 명분으로 한 ‘개입’과 리비아 시민들의 투쟁과의 ‘연대’는 얼마나 미묘하게 다른 것인가. 그 차이 때문에 폭격에 나선 이들의 말도 행동도 이리 새고 저리 새고 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살인에는 꾹 감은 눈이 왜 카다피에 대해서는 그리 불끈 떠지는 것인지 대답해 보면 갈팡질팡의 원인을 알게 될 것이다.
정치경제, 국제외교, 군사 전문가 등이 이런 저런 소리를 쏟아낸다. 하지만 그걸 통해 판단할 기회와 통로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멀 뿐 아니라 그걸 일방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내가 전쟁을 겪은 이라크인이라면, 내가 폭격 앞에 놓인 리비아인이라면, 내가 핵 앞에 놓인 일본인이라면, 내가 비정규직으로 쫓겨난 그이라면, 내가 꽃샘추위의 칼바람 한가운데 크레인위의 농성자라면, 내가 직업병으로 고통받다 죽은 젊은이라면……. 우리는 이런 물음 속에 고통을 한 호흡 들이마시며 느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호흡에 어떤 행동을 같이 토해낸다.
1958년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들의 고통을 마음으로 느끼고 행동으로 옮긴이가 있었다. 그해, 앨버트 비즐로우(Albert Bigelow)란 평화운동가와 그 동료들이 작은 배를 타고 태평양 한복판 비키니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미국의 핵실험 장소였다. 핵실험에 반대하는 서명운동과 당국자 면담 시도가 별반 효과가 없었기에 ‘비폭력직접행동’이 필요하다고 여겨서 내린 결단이었다. 몇 차례의 항해 시도가 당국의 체포와 투옥으로 실패한 끝에 그가 탄 배 ‘불사조 히로시마’는 핵실험에 반대하여 실험지역에 들어간 최초의 배가 됐다. 비즐로우는 미 해군 장교로 2차 대전에 복무했다. 하지만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여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평생 연금을 탈 수 있는 자격을 불과 한 달 남겨두고 해군에서 사임하고 평화운동가로 변신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호흡을 위해 두 개의 글을 소개한다. ‘당신이 이라크인임을 아는 것은 이런 때입니다’라는 이라크에서 온 편지는 ‘평화를 위한 여성들’(CODEPINK)사이트에 올려져 있는데 발신자는 이라크의 오마르이고 발신일은 2007년 12월 12일이다. ‘핵실험 장소에 내가 배를 저어가는 이유’란 비즐로우의 글은 앞부분에서 자신의 생에 대한 얘기와 청원과 서명운동 끝에 직접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된 경과를 적고 있다. 아래 소개하는 부분은 이 글의 후반부이다. 지진은 불가항력의 자연재해라면 전쟁과 핵의 위험은 우리가 알면서 저지르는 잘못이라는 것을 일찍이 경고한 사람들을 기억할 이유는 오늘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라크인임을 아는 것은 갑자기 뜻밖의 무장집단이 급습할까봐 집에서 잠옷차림으로 지낼 수 없을 때입니다. 핵 실험 장소에 내가 보트를 저어가는 이유(Albert Bigelow) 나는 갑니다. 세익스피어가 말했듯이, “행동은 웅변”이기 때문입니다. |
인권오름 제 243 호 [기사입력] 2011년 03월 23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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