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9. 7. 1

작성자 : 류은숙

 

4시간 | 티모시 페리스 | 부키

티모시 페리스는 작은 회사를 만들었다. 제품의 생산이나 주문발주는 모두 외주회사에 맡겼다. 자녀를 위한 유치원 알아보기 같은 개인적인 일도 모두 외주 비서에서 맡겼다. 그 돈을 주고도 충분한 돈을 남겨먹는 그는 자신의 회사를 성장시킬 생각도, 그곳에 상주하며 모든 의사결정에 관여할 생각도 없이 자신이 ‘일주일에 4시간만 일해도 굴러가는’ 자신의 cashcow 왕국을 완성했다.
그리고 말했다. “따라해 보세요.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별건가요!”

그의 책 [4시간]이 전세계적으로 잘 팔린 이유를 알겠다. 더 비즈니스 잘하는 법(화폐경제 안에서의 노동)이나 더 윤리적으로 사는 법(화폐경제 밖에서의)이 아닌 “노동하지 않는 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진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소비가 대개 많은 비급여 노동을 수반한다는 것에 대한 나의 불만은 치워두고라도 (이건 기회가 되면 [그림자 노동] 편에서 이야기), 그가 자유를 얻는 지극히 이기적인 방식에 대해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주이다.

근무여건에 대한 협상이 가능한 프리랜서에 가까운 직장인으로 시작하라고 권하지만, 그가 도달한 목적지는 자신의 회사를 갖고 있는 경영자이다. 그의 텃밭에선 매년 꾸준한 양의 소작료가 발생한다. 그는 정치와 사교와 문화 향유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었던 산업사회 이전의 지주가 아닐까? 자신을 대신해 일해줄 누군가를 충분히 구할 수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자유라면 그의 삶을 새로운 게 아닌 셈이다.

그는 제국주의적이다.

그는 선진국에서 돈을 벌고, 인도 등의 개도국에 아웃소싱을 주며, 후진국에 있는 휴양지에서 많을 시간을 보내며 즐겁게 산다. 그것으로부터 얻는 것은 물가 차이로 인한 “지리적 차익”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물가 비싼 곳에서 높은 소득을 얻거나, 물가 싼 곳에서 낮은 소득을 얻으며 항상 빠듯하게 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그가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일터로부터의 물리적인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공간을 넘나드는 그의 생활은, 마치 한 사람의 삶 속으로 축약된 다국적 기업의 무역 같다.

그럼에도 그의 삶이 존경스러운 것은, 현재의 사회 속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어떤 패턴을 구현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인류의 오래된 숙제를 자신만의 해답으로 풀었고, 모두 함께 해방시키려다 아무도 못나가는 대신 자기 혼자만이라도 먼저 뛰쳐나갔다. 그리고 세계화와 아웃소싱 같은 가장 첨예한 이슈들을 자신의 삶 속에서 미니어처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의 삶은 확산을 꿈꾸는 1인 사회적 기업 같기도 하다. 하나의 민들레 홀씨처럼 자기 삶에서의 실천을 통해 모두에게 노동시간을 줄이는 (일주일에 4시간 수준으로) 영향을 주겠다는 그의 선한 의지를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그렇다면 그의 삶이 다수에게로 확대 가능한지가 질문이 될 것이다.

모두가 지주가 될 수 있을까? 내가 알기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규칙적이고 재미없는 일을 하고, 규칙적으로 적당한 수준의 급여를 받는 생활을 지주의 삶을 개척해나가야 하는 것보다 좋아한다. 이런 식이라면 “경영자는 수많은 직원에게 일자리를 주는 고마운 사람” 이상의 결론을 얻기 어렵다. 모두가 지주가 되기 위해서는 길거리에 늘어서있는 고만고만한 구멍가게들의 집합으로 가야 한다. 그 주인들은 대개 월급쟁이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면 저작권에서 꼬박꼬박 수입이 들어오는 창작자나 발명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한 명이 저작권으로 먹고 살려면 적어도 아홉 명 정도는 그 창작물을 향유하는 계층이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지리적 차익을 누릴 수 있을까? 모든 나라가 똑같이 잘 산다면 누구도 지리적 차익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 물가에 차이가 난다면, 싼 곳에 가서 돈을 많이 쓴다는 게 무슨 나쁜 점이 있겠나. 많은 공장을 짓고, 많은 사람들을 아웃소싱 콜센터 같은 곳에 고용하고, 휴양지에서 돈을 펑펑 써댄다면 그 돈이 흘러 들어가 차츰 선진국처럼 잘살게 되지 않겠나. 자유무역의 예찬론자 같은 결론이 난다. (이에 대한 논의는 역시 기회가 된다면 [NO LOGO] 편에서 이야기)

모두가 부재지주로서 지리적 차익을 누릴 수 있을까? 아니요. 나는 (근거 없는 수치로) 인구의 최대 1/10 정도까지만 가능하리라고 본다. 피라미드 사업에서 아무리 열심히 영업해도 전세계 인구에 한계가 있고 누군가는 자신의 트리 밑에 둘 절대적인 인구가 부족하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가 없냐면 그렇지도 않다. 어떤 것들을 일부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이 있다.

그렇다면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사회에 해를 끼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미룬다는 점에서 이기적이긴 하지만, 솔직히 사장이 하루 16시간 일하는 회사가 하루 8시간 일하는 회사보다 더 인간적이고 여유로운 것을 봤나? 일은 할수록 늘어나지,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노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쉼 없이 일한다고 세상이 더 좋아지진 않는다.

그래서 내 말은, 티모시 페리스는 좀 경박한 말투를 가지긴 했지만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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