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79 호 [기사입력] 2007년 11월 1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 탄생한 근대의 인권개념은 모든 인간의 평등을 핵심으로 한다. 흔히 알려진 사회계약 사상과 달리 신학적 인권개념은 절대자인 조물주로부터 인권개념을 끌어낸다. 절대자 앞에서 모든 인간은 그 피조물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조물주의 눈에는 똑같은 존재니 평등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조물주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기에 그 형상을 지키고 본받기 위해 모든 인간은 존엄성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침해는 조물주의 권능에 대한 침해이다. 그래서 인권은 절대불가침이고 양도불가능한 것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천부인권’이란 말을 즐겨 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권이 지구화되고 문화와 국경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오늘날에는 이런 방식으로 인권을 얘기하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인권론과 인권비판론이 존재하지만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인권의 핵심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많은 사람들이 존엄하다고 여겨지지 못하고 온갖 모욕과 배제와 괴롭힘을 당한다. 그래서 가장 초보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그런 행위들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법을 만든다고 해도 사람들은 뒤편에서 얼마든지 차별적 행위를 할 수 있고, 사람들 속에 깊이 뿌리박힌 편견과 혐오 같은 것을 일소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법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초보 중의 초보적 조치에 해당한다. 법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은 엄청 많다.
그런데 이런 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차별적 공격을 받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 ‘성적지향, 학력 및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이 차별금지의 근거규정에서 무더기로 잘려나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란 문구를 들어 “--등”이 있으니까 이번에 빠진 차별의 근거들도 얼마든지 차별금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예시되는 근거 목록에 들어가느냐 안들어가느냐에 따른 사회적 인식과 사법적 대응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등을 이유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들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고 법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등”에 만족하라는 건 존엄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국제인권법 전문가들이 2006년 인도네시아 요그야카르타에 모여 채택한 원칙이다. 초대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을 지낸 전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을 비롯하여 유엔인권조약기구들의 위원, 유엔독립전문가, 판사, 민간단체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2007년 3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 원칙을 발표하면서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인권고등판무관 등에게 이 원칙을 보증하고 유엔 인권 활동의 모든 영역에 흡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 원칙을 만들 필요성은 전세계에서 목격되고 보고돼온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에서 제기됐다. 예를 들어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비사법적 살인, 고문과 학대, 성폭력 강간, 프라이버시 침해, 자의적인 구금, 고용과 교육 기회의 부정 등이 전세계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다. 이에 현재 존재하는 국제인권법의 내용을 망라하여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적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고, 각 원칙마다 국가들에 대한 상세한 권고사항이 첨부돼 있다. 35쪽에 달하는 분량이기 때문에 일부 내용만 요약해 소개한다. [류은숙] <2007년 11월 14일 인권오름 제79호>
요그야카르타 원칙(요약) 우리, 국제인권법과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관한 국제적 전문가들은 |
인권오름 제 79 호 [기사입력] 2007년 11월 1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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