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불 빨래를 하려 합니다-윤석열 파면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며-
아침을 맞을 때마다 이불 빨래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 지가 오래됐습니다. 하지만 ‘탄핵소추 되면 해야지’, 또 그러다가 ‘파면되면 해야지’, 그렇게 시간이 오래 흘렀네요. 본의 아니게 위생 상태를 고백하게 됐지만, 이제는 정말 이불 빨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보낸 겨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감촉들이 너무 많은데 몇 개만 꼽을 수밖에 없는 게 아쉽습니다. 남태령의 눈물이 젤 먼저 떠오릅니다. 경찰이 봉쇄한 차벽이 뚫리는 순간 트랙터에 오르던 늙은 농민의 두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을 봤습니다. 그분이 눈물을 훔치던 무명 손수건이 흥건해진 느낌은 서러움이 승화된 기쁨이었습니다. 폭설이 내리던 한강진, 직접 만든 쌍화탕을 가방 가득 데워 와서 감기 들면 안된다고 이리저리 권하던 분, 삶은 계란 한판을 들고나와 낯선 이의 등을 두드리며 에너지 보충하라고 하던 분, 화장실 청소를 콕 찍어서 자원하러 나왔다는 분, 온 사방이 서로를 돌보는 이들이 때는 군불로 따뜻했습니다. 매년 농사지은 쌀을 ‘창’에 보내오는 농민이 새벽길을 달려온 광화문에서 ‘국민이 심판하자’는 깃발을 휘두르는 팔뚝에선 방금 지은 솥 밥의 뜨거움을 느꼈습니다.
광장에서 일군 저항과 돌봄의 정치를 이제 더 조밀하고 복잡한 광장에서 일굴 때입니다. 선명한 목표가 있는 저항보다 더 힘든 투쟁들이 이어질 것이고, 더 많은 의제를 치밀하게 다퉈야 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 돌봄과 연대의 감촉이 무뎌질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런 순간마다 우리가 공유했던 겨울의 촉각들을 되살리는 인권의 정치는 계속될 겁니다.
인권연구소 ‘창’이 준비하고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극우의 부상과 그들이 약탈한 인권의 언어를 새롭게 복원하기 위하여 파면 이후의 가치 지향을 점검하는 인권운동 연속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둘째,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때부터 계속해온 돌봄 연구와 실천입니다. 인권운동에서 추구하는 ‘전환적 가치’로서의 돌봄 이념 연구와 교육활동을 계속하는 한편 올해는 지역사회 돌봄 강화를 위한 전략에 집중합니다.
셋째, 인권의 가치를 다룬 기본 교재로 5년 전에 낸 책이 『사람을 옹호하라』였는데, 관계적 인권론과 돌봄의 가치 등을 보강하여 다시 쓰려 합니다.
밤새 서로의 형편을 걱정하여 몰래 볏단을 상대편으로 나르던 농부 형제의 얘기처럼 서로의 빈 곳간을 걱정하고 챙기기 바쁜 시절입니다. 그런 때에 ‘창’에도 힘을 나눠주시는 후원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에 신규 가입해주신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저마다의 한바탕 ‘이불 빨래’하고 다시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힘!’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2025년 4월 6일 인권연구소 ‘창’ 드림
'알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극우 포퓰리즘과 동시대성 읽기 세미나 I: 극우의 '열정'을 읽다 (0) | 2025.10.15 |
|---|---|
|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 학살 2년 규탄 집중행동에 함께 해요. (0) | 2025.10.10 |
| 추모합니다 (0) | 2024.12.30 |
| <돌봄의 상상력> 출간 (0) | 2024.12.11 |
| 한일 노년 돌봄의 현장-소수성들의 만남을 중심으로 (0) | 2024.05.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