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의 시대에서 신용의 시대로, 피투자자의 전략
최홍조,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금융화를 떼어놓고 지금 시대를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돌봄 또한 예외가 아니다. 돌봄의 정치경제는 금융자본주의와 맞물려 돌아가며, 금융화가 요구하는 주체성과 돌봄 관계가 요구하는 그것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흔들고 있다. 새로운 주체성을 ‘피투자자’라 부르는 이 책은 ‘새로운 사회문제’ 속에서 금융화된 주체성을 어떻게 전유할 것이며 투쟁의 성격이 어떻게 다를 수밖에 없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지방 선거가 끝났다. 일부 지역의 선거 결과를 두고, ‘자산투표’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이번 선거만의 특징인 게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던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자산이 불평등의 악화에 기여한 바를 실증하며, 현대 금융자본주의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소득’이라는 경제 지표보다 ‘자산’이 ‘투표’라는 정치적 행위로 이어지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이 현상을 미시적 관점에서 개인의 삶과 투쟁의 방향성으로 분석해 낸 책이 미셸 페어의 『피투자자의 시간』이다. 그에 따르면 자산은 개인의 평판을 결정하는 신용의 지표다.
페어는 지금 좌파들에게 미래에 대한 낙담이 팽배해 있다고 말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의 낙담에 대비시킨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처방으로 ‘모두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확산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신자유주의자들에게도 녹록치 않다. 기업가는 주주의 눈치를 보는 경영인으로 전락했고, 정부는 시장과 유권자를 두려워하는 것을 넘어 채권을 둘러싼 투자자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며, 시민은 소득보다는 스펙을 쌓아 신용을 높여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제 자본주의의 무게중심은 이윤에서 신용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이윤을 둘러 싼 투쟁의 시대는 저물고, ‘신용’을 둘러 싼 전선이 무르익었다. 이 책의 주제는 개인과 국가와 기업의 ‘신용’이며, 가치에 기반한 평판이고, 이를 바탕으로 투자자에 대항하는 피투자자의 전략이다.
세 장으로 이뤄진 본론은 기업과 정부와 개인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가치를 둘러싸고 분투하는지 분석한다. 첫 번째는 기업이다. 전통적인 산업자본주의에서 기업은 대량생산과 이를 통한 이윤율 상승을 목표로 했다. 반면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기업은 더 많은 투자를 받는 것이 주요한 목표다. 문제는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기업은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어야 한다.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평판을 관리해야 하고, 이는 곧 주가와 주주 수익률처럼 ‘이윤’과 반드시 상관관계가 있지 않은 ‘신용’이 된다. 이제 기업은 장기적인 기업 성장 보다는 주주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경영한다. 단기적인 주가 상승은 기업의 가치 평가의 잣대가 되고, 이를 목적으로 자사주 매입 혹은 인력 감축 등의 결단을 내리게 된다. 철저하게 금융 시장과 투자자의 이해에 복무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업의 행태 변화가 새로운 변혁의 틈새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는 기업과 고용과 임금을 목표로 대립하지 않고, 투자자의 가치 평가에 직접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과거 노동자의 투쟁이 조직된 힘으로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 중 일부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피투자자의 시대에 노동자는 기업의 평판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노동자의 고용 안정이 기업의 신용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전술, 예를 들어 투자 철회 운동과 같은 방식이 그 사례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부다. 정부는 전통적으로 조세를 통해 재분배 정책을 실천해 왔다. 재분배 정책의 강도를 조절하며 통치 행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시민들은 투표 행위로서 정부의 통치를 위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부의 늘어난 부채 규모를 생각하면 조세를 통한 복지정책 중심의 통치 행위는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정부의 ‘신용 등급’이 복지 제도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고, 신용평가사를 포함한 금융자본주의의 시선에서 ‘안정적인 투자처’가 되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자연스럽게 국민의 삶이라는 가치는 수사로만 남고, 매력적인 투자처로서의 국가 위신을 강조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시민사회의 요구도 국가 신용 가치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고려의 대상이 된다. 페어는 ‘사회적 채권자’이자 ‘정당한 청구인’의 지위를 활용하여 피투자자 정부에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는 대중운동을 제안한다.
세 번째는 개인과 집단으로서 시민의 위치성이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시민은 개인의 신용 가치를 상승(appreciation)시켜야 한다. 이제 시민은 노동과 임금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고 신용을 얻어내야 하는 ‘피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내면화한다. 삼전닉스나 집값 상승에 대한 시민의 기대도 이런 정체성의 혼란이 낳은 결과다.
페어는 여기서 마르크스적 의미인 ‘자유로운 노동자’ 개념의 전회를 강조한다. 과거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해방)를 지향했지만 자본가의 통제에 소외되던 노동자의 현실은 신자유주의 이후 달라졌다.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 속에서 역설적으로 고용관계 앞의 ‘자유’를 강제당한다. 전형적인 임노동자도 아니고 자립적인 개인 기업가도 아닌 이들은 플랫폼 자본주의하에서 ‘자유 계약자’로 호명된다. 이는 노동 권력의 약화이고, 스스로가 투자 주체인 듯한 착시를 일으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신용 기준으로 평가받는 ‘피투자자’로서의 위치성이 분명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생산수단을 향한 투쟁에서 신용 평가의 기준을 뒤흔드는 ‘대항 투기’로 강조점을 바꿀 가능성이 있다.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기업과 정부를 상대하며 피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기업과 정부의 ‘신용’과 ‘평판’과 ‘가치 상승’의 기준을 바꾸는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기업과 정부가 얼마나 정의롭고 윤리적인지, 기후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지가 이들의 ‘신용’에 영향을 미치도록 투쟁할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파업’도 여전히 유효한 전술이지만, ‘신용’ 기준에 타격을 주는 것이 더 유효한 전술이 될 수 있다. 이는 자연스레 ‘지금의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는 누구인가?’ 하는 불필요한(?) 논쟁도 우회하게 해 준다. ‘투자자 대 피투자자’의 대립 구도에서 피투자자로서의 시민은 광의의 일하는 사람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페어의 논의를 따른다면, 돌봄은 정부의 ‘신용 등급’에 영향을 미치는 주제가 되어야 한다. 돌봄, 특히 생산의 가능성이 희박한 노년의 삶을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의 틀에서는 설명하기 어렵다. 낸시 폴브레가 말한 사회적 재생산 – 자본주의가 포착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노동과 비시장적 가치를 포함한 – 개념이 노년 돌봄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 준다면, 피투자자 개념이 그 빈자리를 조금 더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투자 논리에 포위당한 기업과 정부의 방향을 돌려세우기 위해 피투자자들은 더 정의로운 요구를 할 수 있고, 이는 기업과 정부의 가치 상승을 위한 충분조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지는 현재를 페어의 논리만으로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노동에 대한 자본의 소외와 착취는 공고하며, 이 모순이 많은 사회 문제의 근원이다. 페어 역시 노동자가 아닌 피투자자로서의 위치성이 아직 발아 단계라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기후와 돌봄 위기 등 복합 위기의 시대다. 바로 이점이 피투자자로서의 시민이 사회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실천적 개념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아닐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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