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정치경제를 위하여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공동대표
매일 눈을 뜨면 주가지수 보도를 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하냐 안하냐를 떠나, 그것의 수치가 전체 사회의 정치와 경제의 성적표이며, 추진 동력이자 목표인 듯하다. 수치상의 성장을 향한 돌진 앞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서성이는 질문이 있다. 어떤 삶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만들고 분배하며 어떤 관계를 조직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가령, 좋은 삶을 위해 돌봄이 필수라는 가치가 공유되고 있는지, 돌봄을 사회적으로 생산하고 분배하는 일에 진심인 정치·경제적 관계의 틀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주가지수가 ‘모든 시민에게 돌봄이 충분한 삶’의 지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빠졌다.
지난 3월 전국적으로 통합돌봄제도가 시행됐으나 제도를 움직일 재정이 없는 껍데기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4월 27일, 200여 개의 사회단체가 <돌봄 재정 획기적 확대 공동행동>을 출범했고, 2027년 통합돌봄 예산의 대폭 확대와 안정적 재정 구조 마련을 위한 국회 청원에 대한 동의를 받고 있다. 이런 공동행동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불평등이 증가하는 역설, 그리고 기후와 돌봄 위기로 대표되는 복합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저런 연대체를 구성해 대응해 온 게 사회운동이다. 돌봄의 사회화 및 공공성 확대, 공정한 재정부담 원칙 등을 내세운 2011년 <복지국가실현 연석회의>를 비롯해 다양한 조직화의 시도가 있었다. 이런저런 시도와 좌절을 거듭하면서 예산 규모만이 아니라 재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통합돌봄제도의 예산 부족을 말하는데, 이것은 인권의 지평과 맥락에서 정초되어야 할 문제다. 주식시세에 민감한 만큼이나 ‘공통의 곳간’, 보편적 인권으로서의 돌봄에 쓸 돈주머니의 마련과 지속가능성에 세심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유엔인권최고대표실의 지침서, <국가예산을 통한 인권의 실현>에 따르면, 예산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 문서이며, 정부의 예산 편성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인권이다. 예산 편성은 인권과 직접 관련된 예산만이 아니라 모든 예산을 인권의 렌즈를 통해서 편성해야 한다. 정부는 세수·할당·지출·감사의 방식에서 인권의 의무를 지켜야 한다. 세금을 걷는 방식, 배분과 지출이 차별적이어서는 안되며, 역사적으로 불이익을 겪은 집단에 우호적인 추가 기금을 할당해야 한다.
통합돌봄 재정의 새판을 짜려는 노력을 보며, 그간 사회운동의 행동방식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게 된다.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돌봄을 핵심 사회운동으로 세울 것인가, 둘째, 이때 운동의 방식은 어때야 하는가. 후자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현실이 눈에 띈다.
개별화된 영역에 갇힌 것이 아닌 정치·경제 영역을 포괄하는 조직화는 난망하며, 전환의 아이디어들은 시민의 일상에 침투하지 못하고 일부 집단의 정책 요구나 소송에 머물 뿐이었다는 비판이 있다. 소수의 가열차고 희생어린 투쟁 또는 전문가 집단의 정책 제안이나 소송에 기댄 실천은 조직화와 세력화에서 미끄러지곤 했다. 돌봄을 주고받는 주체로서의 시민들은 이상향으로 호명될 뿐, 개별화된 소비자 정체성의 낱알들로 국가 정책과 만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이 알기는커녕 오해하고 있는 이슈들이 참 많다. 보편적인 돌봄을 위한 제도들이 ‘사회적 연대’의 장치로 인식되기에 앞서,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에 따라 소비할 ‘상품’으로 여겨지며, 돌봄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세대·성별·지역·직역 등으로 갈라친 관계 내 착취나 갈등으로 호도하는 의견들이 공론장을 채우고 있다. 가령, 국민연금 개혁과 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금융시장의 큰 손인 연금기금의 자산시장 투자를 중시하는 보도는 넘쳐나는데, 아주 일부라도 돌봄 인프라에 투자하면 안되는 것이냐며, 공공사회서비스 공급체계에 투입하자는 주장은 흘려듣는다. 국민연금을 ‘용돈 수준’이라 폄하하면서 보편적 제도이자 연대의 장치로서의 가치를 갉아먹는 말은 함부로 하면서, 세대를 이어갈 공유하는 부와 책임의 장치로서 다루는 데는 소홀하다.
특히 노년 돌봄과 관련해 재정을 살필 때 중요한 게 연기금의 목적과 이해다. 연기금을 소득보장을 넘어선 돌봄 보장의 큰 맥락에 위치시킬 필요가 있다. ‘노후보장’에서 연금으로 대표되는 소득보장은 중요하지만, 소득만으로 돌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노후보장은 돌봄보장’이란 명제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돌봄의 ‘사회적 책임’에 저항하는 시장화된 돌봄경제, 수용시설에 치중하며 서비스 제공주체가 민간이고, 국가는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원할 뿐 지방자치체의 권한과 책임이 왜소하고 시민의 목소리가 빠진 돌봄정치를 총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돌봄을 생산과 분배의 문제로, 즉 정치경제로 이해할 것을 요청한다.
돌봄의 생산과 분배는 긴밀하게 얽혀있으며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정치경제와는 다른 새판을 짜는, 돌봄의 정치경제를 필요로 한다. 생산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재생산으로서의 돌봄을 넘어, 돌봄을 생산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으로 경제적인 것에 대한 접근을 바꿔야 한다. 돌봄을 함께 생산하고 나누는 것을 공론화하고 돌봄을 위한 동맹을 조직하는 돌봄의 정치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이자 단번에 이룰 수 없는 인내를 요구한다. 돌봄이 인간의 보편적 취약성에 대해 응답하는 인내이듯이, 돌봄의 생산과 지속가능성을 가능케하는 돌봄의 정치경제는 주가지수의 일희일비가 아닌 근본적인 사회적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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