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5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01일 21:33:55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잔인한 7월이었다. ‘평화로운 빗소리’라는 식의 표현을 7월의 집중호우 속에서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빗속에 생존권을 떠내려 보낸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가 그치고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지만 여전히 또다른 ‘비’를 내리는 세력들이 있다. FTA와 평택미군기지의 강행, 노동자 때려잡기,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대한 학살 등 빗줄기는 그치지 않고 있다.
빗소리의 느낌이 맥락에 따라 다르듯이 평화의 개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입으로는 ‘평화와 공존’을 외치지만 그것이 억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일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 가짜 평화에 맞서 평화를 규정하려는 노력들은 많다. 좁고 넓게 혹은 길게 가깝게 평화를 ‘이런 것’이라 규정하는 노력 속에서 바라보는 평화는 참 평화롭다.
“평화는 삶에 대한 존중”, “평화는 인간의 가장 값진 소유물”, “평화는 무장 갈등을 끝내는 그 이상의 것”, “평화는 인간과 환경의 조화로운 공존”,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빈곤과 기아 등 구조적 폭력이 없는 상태”, “평화는 먼 훗날의 이상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한 방식으로 창조되고 확대되는 행위양식”, “평화는 자유, 정의, 평등 및 인류 간 연대의 원칙에 대한 뿌리 깊은 헌신”…
“평화적 생존은 모든 인권의 출발점”이란 말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결코 평화롭지 않다. 기본 중의 기본을 무시당한 심정이기 때문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유엔이 1984년 채택한 ‘인류의 평화에 대한 권리선언’이다. 이 선언은 인류의 평화적 생존권이 모든 인권의 기초임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강조하고 있다. ‘전쟁위협의 종식’, ‘국제관계에서의 무력 사용의 포기’, ‘평화적 수단에 의한 국제분쟁의 해결’이 가장 기본적인 요구조건이란 것도 분명히 하고 있다. 평화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가장 좁은 의미의 평화에 대한 약속의 재확인이다.
이 선언이 채택된 것은 유엔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1985년을 ‘세계 평화의 해’로 선포하기 위한 합의에서 나온 것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 더 큰 피를 불렀다는 역사적 교훈은 넘쳐난다. 평화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전쟁을 선택한 것의 결과가 어떠하지를 잘 아는 속에서 출발한 유엔은 그 헌장 첫머리에서 “우리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기” 위해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들의 힘을 합”한다는 것을 결의했다.
그 연장선에서 1949년 ‘평화의 본질에 관한 선언’은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삼가고” “어떤 국가에 대해서든지 그 인민의 의지를 파괴하려는 모든 직간접적 위협이나 행위를 삼갈 것”을 가장 엄숙한 평화 협정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1978년 ‘평화로운 삶을 위한 사회들의 준비에 대한 선언’에서는 “침략전쟁, 침략전쟁의 계획·준비·추동은 평화에 반하는 범죄로서 국제법에 의해 금지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1984년 선언은 앞서 원칙들을 반복·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달력에 기념할 날짜를 채워가고 평화에 대한 선언문을 쌓아가는 것이 평화의 존재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현실은 아프게 보여준다. 이 모든 국제인권법을 백지화시키고 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표정은 이런 선언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 선언이 채택되기 얼마 전인 1982년에도 이스라엘은 남부 레바논을 침략하여 약 1만8천여 명의 생명을 학살했고, ‘세계평화의 해’에는 튀니지의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본부를 폭격하여 수십 명을 살해했다.
평화에 대한 말을 실천으로 번역해 내기 위해서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반평화와 반인권의 현실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기본권이 제한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전쟁위험과 실제 군사적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봐야 한다. 성차별, 인종차별, 경제적 압력, 실업, 저발전, 기상의 변화, 사막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위협하는 인간이 유발한 환경파괴 등을 그 누구의 것이 아닌 자기 것으로 알아야 한다.
평화에 대한 또 다른 선언문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전쟁을 창안한 바로 그 종(인류)이 평화도 고안할 수 있다. 그 책임은 우리 각자에 있다.” [류은숙] <2006년 08월 01일 인권오름 제15호>
유엔, 인류의 평화에 대한 권리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 of Peoples to Peace, 1984년 11월 12일 유엔총회 결의 39/11) 유엔총회는 |
인권오름 제 15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01일 21:33:55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