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55 호  [기사입력] 2013년 07월 2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요즘 늘 그렇듯이, 그날도 후덥지근하다 못해 숨이 턱턱 막혔다. 울산으로 ‘희망버스’가 가는 날이었다. ‘오래도 참 많은 사람을 불법으로 써왔으니 이제 고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대법원 판결 좀 이행하라고, 이제 그만 좀 괴롭히라고, 그렇게 단순 정당한 요구를 하려고 철탑위에 사람이 올랐다. 그들의 목이 조이고 있었다. 회장은 나 몰라라 하고, 동료 노동자는 자살하고, 날씨는 겨울에서 한여름으로 바뀌고, 언론은 침묵이고 인정은 차가운 듯하니, 그 노동자들의 숨이 얼마나 죄어들까? 그런 염려에 전국에서 주말을 반납하고 무더위에 시달릴 걸 각오하고 버스에 오른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말에는 꼼짝없이 식당 알바를 해야 하는 나는 틈틈이 인터넷으로 소식을 확인하면서 숨을 골라야 했다. 찜통 같은 주방 안에서 이렇게 땀 흘리다간 탈진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들려온 소식은 공포였다. 소화기와 최루액이 뿜어지고 암흑 속에서 사람들이 다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만있어도 숨이 막힐 공기 속에 그런 걸 뿜어댄다니, 이것저것 쏘고 던져 댄다니, 구급차가 몇 번이나 등장했다니, 사람들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속의 열이 탈진을 부를 지경이었다.

세상 일이란 게 철탑위에까지 오른 사람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돌아봤다면 벌어질 일이 아니었다. 물론 그랬다면 철탑 위에 올라갈 일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철탑 위 사람들이 제발 살아 내려왔으면 하는 심정으로 달려간 사람들을 죽창과 쇠파이프를 든 폭도란다. 굳게 닫힌 회사 문을 열려고 시도한 일, 회사가 동원한 직원과 용역깡패, 관망과 방조적 폭력과 적극적 폭력을 배합해 구사한 경찰과 맞장을 뜬 일이 ‘폭력’이라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난리의 주범은 언제나 그렇듯이 주류 언론의 입이다.

희망버스 일부 참가자의 행동이 거슬렸다고 치자. 사실대로 보도해라. 하지만 같은 자리에 있었던 자들(현대차 직원, 용역, 경찰)의 행위, 그들을 동원하고 사주한 기업 책임자의 행위, 그 모든 일을 있게 한 배경도 같이 보도해라. 적어도 사실 보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혼자서 과장 억측 소설 쓰고, 인쇄하고 방송해서 유통시키고, 판결하고 사법적 처단까지 하는 재주를 부리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니라면 말이다.

노동자들을 자살로 철탑으로 몰아댄 것은 그들 언론의 침묵이었다. 해야 될 보도를 안 하는 행태를 보면, 꼭 휴일이나 명절 다음날 시험날짜를 잡아놓던 학교가 떠오른다. 학생은 휴일이나 가족과 함께 해야 할 명절에도 공부만 하라고 일부러 그렇게 날짜를 잡았다고 훈계하던 교사가 떠오른다. 탐사보도까지는 못하더라도 억울하다고 부당하다고 공공연히 외치는 목소리마저 제거해버리는 행태가 그런 심보가 아닐 수 없다. 기본적 인권이니 하는 것 찾을 생각 말고 부당하다 여기지 말고 입 다물고 일만 하라는 훈계가 언론의 침묵에 담겨 있다.

강요하고 조장한 침묵 속에서도 막지 못한 사건이 터져 나오면 언론은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과장, 왜곡, 날조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바꿔치기 한다. ‘그동안 어디 계셨어요?’ 고통 속에서 찾고 헤매던 법의 정신과 공정함을 언론이 갑자기 들먹거린다. 그런데 표적이 다르다. 권리의 회복을 위해 찾아 헤매던 법이 저쪽 손에 들려져 있다. 법의 힘은 강제력이다. 약한 자를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힘 있는 자의 편에서 동원된 법이 달려온다. 채증하라! 체포하라! 벌금 물려라! 손배가압류 해라….

반면 힘 있는 자들과 그 기관에 대해서는 엄호의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유엔의 표현의 자유특별보고관이 방한했을 때 미행하다가 걸렸던 그 기관, 심지어 시민의 기본권 중의 기본권인 참정권을 유린한 국정원에 대해서 싸고돈다. 그런 권력의 범죄를 보도하려고 애쓴 동료 언론인들을 내모는 데 앞장선다. 촛불집회나 시국선언 얘기는 그야말로 ‘풍문으로 들었소’ 시늉을 한다.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질문은커녕 찬양고무에 여념이 없다. 이쯤 되면, 주류 언론의 행태는 단순히 권력의 충견이나 공범 수준이 아니라 주범의 수준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빈트후크 선언>이다. 앞서 지적한 주류 언론의 추태를 ‘언론 자유’의 이름으로 고발하고 싶어 골랐다. 이 선언이 보호하고자 하는 언론의 책임과 그 때문에 겪게 되는 수난이 그들 주류언론의 것이었던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독립적’이고 ‘다원적’인 언론을 위해 노력한 일이 있는지 압력에 ‘저항’한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이 선언이 보호하고 칭송하는 것은 그들 주류언론이 솎아내고 쫓아낸 언론인들의 몫이다. YTN의 노종면, MBC의 최승호 피디 등이 쫓겨날 때, 그들이 무엇을 침묵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는지 알면서 당신들 주류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그 해직 언론인들이 이 더위에 3주 동안 전국을 걸어서 당신들이 외면한 현장을 찾아 취재한 것을 아는지, 당신들이 취재증 차고도 첨단 장비로 무장하고도 못하고 안하던 취재와 보도를 문전박대와 내쫓김을 당하면서도 해내고 있는 뉴스타파를 곁눈질이라도 하는지, 쌍용과 현대차 노동자들,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등 해직 언론인들이 만난 현장과 사람들을 당신들은 한번이라도 들여다볼 생각을 했는지, 그러고도 펜을 놀리고 마이크를 잡는 게 괜찮은지 정말 묻고 싶다. 그리고 ‘밥은 먹고 다니는지’ 묻고 싶다.

빈트후크 선언은 1991년에 아프리카의 언론인들이 나미비아의 빈트후크에 모여 확인한 언론의 자유 원칙이다. 언론인에 대한 위협을 염려하며 언론의 독립성과 다원성을 증진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세미나를 열었고, 그 결과로 채택한 것이다. 이 선언이 채택된 5월 3일을 기념하여 유엔은 ‘세계 언론 자유의 날’(World Press Freedom Day)로 선포했다. 왜냐면 이 문서는 그와 같은 조류의 문서 중 첫 번째의 것으로, 중앙아시아의 알마아타선언, 중동의 사나나 선언, 라틴아메리카의 산티아고 선언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험한 항해에는 언론이 늘 동반한다. 빈트후크 선언 채택 10주년을 맞았을 때, 유엔은 정치적 폭력과 권위주의를 맞아 언론의 자유가 위태롭다는 성명을 냈다. 2011년에는 20주년을 맞아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란 주제 하에 언론인들이 또 한 번 빈트후크 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요구사항들을 발표했다. 또한 같은 해, 나비 필레이(Navi Pillay)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세계 언론 자유의 날’을 기념하여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아랍의 봄’을 비롯하여 정치적 봉기에서 미디어는 중대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무거운 대가를 치른다. ……
인민의 권리가 실현되지 않고 인민의 목소리가 침묵될 때, 어떤 지점에 이르면 인민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떨쳐 일어설 수밖에 없다. 인권은 국가에 의해 박해‧처벌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며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가 그러하다.
…… 언론은 사건들을 알리기 위해 지속적이고 용기 있는 노력 속에서 살해, 고문, 폭력, 모욕, 구금, 실종, 추방, 위협, 취재와 보도 방해 등의 대가를 치러왔다. 그런 언론인들의 용기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려는 결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 일을 함으로써 언론인들은 나머지 우리들이 인권의 실현을 감시하고 지킬 수 있도록 해준다.
…… 빈트후크 선언이 지적한 문제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도처의 문제이다. … 표현의 자유는 미디어를 위해서는 열린 공간이 아니라 전체 사회를 위한 것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은 인민들이 공적 영역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역량을 강화한다. 정부에게 불리한 정보를 억압하고 배포를 방해하더라도 용감한 사람들은 늘 길을 찾아왔다.”

해직언론인들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대가를 치르며 싸워왔다. 희망버스에 대한 왜곡보도 앞에서 새삼 그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물대포의 조준사격을 받으면서도 카메라가 망가지는데도 현장에서 취재를 멈추지 않은 독립 언론인들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당신들이야말로 길을 만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을 만든 희망버스 승객들에게 머리를 조아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남에 대한 걱정은 집어치우고 네 살길만 찾으라는 권력과 사이비 언론의 훈계와 보복에 아랑곳 않고 동행해준 당신들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들 때문에 계속 인권을 말할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빈트후크 선언

빈트후크 선언(1991)

나미비아 빈트후크에서 1991년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열린, 독립적이고 다원적인 아프리카 언론을 증진하기 위한 유엔/유네스코 세미나에 참여한 우리들은
세계인권선언을 기억하며,
정보의 자유는 기본적 인권이라 한 유엔총회 결의안 59(1)(1946년 12월 14일)과 인류애에 헌신하는 정보에 관한 유엔총회 결의안 45/76(1990년 12월 11일)을 기억하며,
……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세계인권선언 제19조에 부합되는, 독립적이며 다원적이며 자유로운 언론의 설립과 유지와 증진은 한 국가에서 민주주의의 발전과 유지 그리고 경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이다.

2. 독립적인 언론이란 의미는 정부나 정치적 또는 경제적인 통제로부터 독립적이며, 신문과 잡지와 정기간행물의 생산과 배포에 필수적인 물질 및 기반에 대한 통제로부터 독립적인 언론이란 것이다.

3. 다원적인 언론이란 의미는 어떤 종류가 됐건 독점의 폐지, 그리고 사회 속의 최대 가능한 범주의 의견을 반영하는 신문과 잡지와 정기간행물이 가능한 최대수로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
5. 민주주의, 그리고 정보와 표현의 자유를 향한 세계적인 경향은 인류의 열망 실현에 대한 근본적인 기여이다.

6. 오늘날 아프리카에선, 일부 국가들의 긍정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에서 언론인, 편집인, 발행인들이 억압의 희생자이다. 그들은 살해되고 구금되고 검열당하며, 신문발행의 제한, 발행기회를 제한하는 허가제 시스템, 언론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는 비자 제한, 뉴스와 정보의 교환 제한, 국가 안에서와 국경을 넘는 신문 유통의 제한 등의 경제적‧정치적 압력으로 압박당하고 있다. 일부 국가들에서는 일당 국가 통제가 정보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

7. 오늘날, 적어도 17명의 언론인, 편집인 또는 발행인들이 아프리카의 감옥에 있으며 48명의 아프리카 언론인들이 1969년과 1990년 사이에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다 살해당했다.
……

빈트후크 선언(2011)

아프리카 연합의 모든 회원국 정부들에게 촉구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9조에 대한 정부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이행하라.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정보에 대한 접근에 대한 정부의 약속을 재확인하고 이행하라.
다양하고, 다원적이며, 편집에서 정치적‧경제적 개입으로부터 독립적인 미디어 환경을 보장하라.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여 시민적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면서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의 잠재성을 이용하라.
……
자유로운 표현에 대해 불법적이고 남용하는 제한을 가하는 일을 삼가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정당성이 있어야 하고, 엄격하게 (그 목적에) 비례해야만 한다(협소하게 정의해서,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수준으로만, 세계인권선언 19조에 반하지 않는 조건에서)는 것을 유념하라. 제한은 일례로, 정치적‧상업적 또는 여타의 외부적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이행돼야만 하고, 자의적이지 않고 차별적이지 않게 이행돼야만 하며, 제한의 남용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법원에 대한 접근을 포함하여 독립적이고 투명한 항의 장치의 제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보완돼야만 한다.
……
정부가 보유한 정보에 대한 접근에 적절한 자원을 제공하라. 그리고 정부 활동의 투명성을 보장하라.
언론인, 블로거,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에서 표현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 이들을 위협, 협박, 신체적 공격, 생명 위협의 시도 등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행동을 취하라.
저널리즘의 전문적인 실행의 요건으로서 허가제를 삼가라.
……

아프리카의 언론인, 언론사, 언론인 연합, 광범위한 언론계에 촉구한다:

1. 사회적 네트워크와 여타의 새롭게 출현하는 미디어 형태를 통해 정보가 유포될 때 전문적인 언론인의 가치와 실천이 적용돼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라.

2. 저널리즘의 높은 기준과 미디어 종사자와 신생 미디어 사용자들의 윤리적 행위를 장려하며, 뉴스 미디어는 공적 서비스임에 유념하라.

3. 특히 가난한 농촌 여성 등 소외된 집단에 대한 정보 접근을 증진하라.
……
6. 뉴스 취재와 모든 미디어 형태에서 특히 여성과 청소년의 목소리 등 목소리의 다원성을 증진하라.
……
8. 결사의 자유와 여타의 보편적 권리의 원칙을 존중하라. 언론인과 여타 미디어 종사자들의 안전과 작업 조건을 증진하라. 충분한 전문적인 훈련과 안전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라.
……
10. 인터넷과 신생 미디어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고 부인하며 제한하는 국가 및 기타 행위자들의 압력에 저항하라. ……

인권오름 제 355 호  [기사입력] 2013년 07월 2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335 호  [기사입력] 2013년 02월 27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살다 보면 “그림의 떡이야”란 말을 자주 하게 된다. “보는 게 어디야. 보는 것만으로 좋은데”라고 위로하거나 자족하는 말도 으레 듣게 된다. ‘그림의 떡’에 대해 국어사전은 “탐스럽지만, 손에 넣을 수 없다는 뜻으로, 바라는 모습이기는 하나 실제로 이용할 수 없거나 이루어지기 힘든 경우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인권에 대한 기준들을 들여다볼 때 드는 생각이 딱 이런 경우다.

내 정부가 돌아보지도 않는 인권 침해를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그것도 그냥 호소가 아니라 유엔의 전문기구에 정식으로 진정한다? 그야말로 ‘그림의 떡’ 같은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 국제사회는 그런 기준에 대한 도전을 또 하나 성취했다.

“선택의정서의 발효는 중요한 획기적 발전이다. 자신들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들이 정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 선택의정서는 국제적 차원에서 기댈 가능성이 전혀 없이 견뎌야만 했던 피해자들이 인권침해를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선택의정서는 고립되고 무력했을 개인들이 국제 사회에 자신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길을 제공할 것이다. … 선택의정서의 발효로 마침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가 여타의 모든 인권과 동등한 기반 위에 서게 됐다.”

최근 나비 필레이(Navi Pillay) 유엔인권최고대표가 사회권 규약의 선택의정서 발효를 기뻐하며 한 말이다. 지난 2월 5일 사회권 규약 선택의정서에 대한 10번째 비준이 이뤄짐으로써 3개월 뒤면 정식 국제법으로 발효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한 말이다.

사회권 규약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줄임말로서 노동권, 사회보장권, 교육권 등을 규정한 대표적인 국제인권법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사회권 규약을 비준하여 당사국이 됐고, 현재 이 조약의 전체 당사국 수는 160개국이다. 선택의정서는 이 규약의 이행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별도의 조약을 말한다. 선택의정서는 해당국가에 의해 사회권 규약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개인이나 집단, 또는 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제삼자가 유엔 사회권위원회에 권리침해를 진정할 수 있는 방법과 절차를 담고 있다. 지난 200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후, 정식 국제법으로 발효되기 위해서는 10개국 이상의 비준이 필요했는데 그 10번째 비준을 지난 5일 우루과이 정부가 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20여 년 전 국제인권법이란 걸 처음 접했을 때였다. 한국 정부는 사회권 규약에 가입하고 난 후 당사국의 의무사항으로서 사회권을 얼마나 잘 보장하고 있는지에 대한 보고서를 1993년 처음으로 유엔사회권위원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물론 언론도 알려주지 않는 그 소식을 파악한 인권단체들이 쫓기듯 부랴부랴 모여 대안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최종의견과 권고가 나온 것이 1995년이었다. 그때의 주요 지적 내용은 지금 들여다봐도 유효하다.

노동관계법을 사회권 규약에 합치되도록 즉각 개정할 것, 노조활동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해제할 것,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확대할 것 등이었다. 권고는 노동 관련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사회권위원회는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확대, 무주택자의 보호와 주거권의 실효적 보장, 장애인의 처우 개선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여러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사회권? 그게 뭔데요?”라며 시큰둥해하는 언론사 전화를 붙들고 ‘이건 중요한 문제니 꼭 보도해야 한다’고 설득했던, 아니 매달렸던 일은 그냥 지나간 일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그때도 노동권을 행사했다 하여 맞고 쫓겨나고 붙들려가던 노동자들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매 맞고 쫓겨나고 붙들려가고 있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가장 최근에 심사된 3차 보고서에 대한 유엔사회권위원회의 권고(2009년)에는 더 뼈아픈 지적이 있다. “노사관계 관련 노동자에 대한 빈번한 처벌 사례 및 파업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물리력 사용 등에 대해 매우 우려한다. 노동조합권이 한국 내에서 적절히 보장되지 않음을 거듭 우려한다.”는 것이다.

선택의정서의 발효로 국가의 인권의무 이행에 관한 국제기준의 수준이 한층 높아진 이때에 하필이면 더 우울한 기록을 보게 된다. 선택의정서가 빛을 본 때와 같은 달 26일 재능노조는 1,895일의 비정규직 최장기 농성을 기록했고, 27일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철탑 농성 100일을 맞았다.

권리의 당사자들만 홀대받는 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사회권 규약은 다른 국제조약에 비해 탄생부터 엄청 홀대를 받았다. 우선 세계인권선언을 만들 당시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진통을 겪었다. 한 예로 노동조합의 결사권에 대해 선언 기초자들이 미적거리자, 세계의 노동조합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권리를 세계인권선언에 넣자고 촉구하는 운동을 강력히 펼쳐야 했다. 세계노동조합연맹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전후 노조의 곤경을 분석·보고한 장문의 비망록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영향으로 경제사회이사회와 국제노동기구가 협력하여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조합 결사권을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결국, 선언의 기초자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가 음모로 간주되던 시기는 지나갔다. 노동자의 결사를 음모로 보는 것은 20세기가 아닌 19세기의 개념이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사수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가 선언기초자들의 합의였다.

세계인권선언 속에 사회권이 간신히 자리를 잡았더니, 이번엔 국제조약으로 만들면서 사회권을 불편해하고 떼놓고 가려는 움직임이 컸다. 결국, 한 개가 아니라 ‘자유권’과 ‘사회권’ 두 개로 쪼개진 규약이 만들어지게 됐다. 그다음에는 규약 이행을 심사할 기구도 문제였다. 자유권 규약에 대해서는 담당하는 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를 처음부터 두었는데, 사회권 규약에 대해서는 담당 기구를 두지 않고 경제사회이사회에 떠넘겼다. 그런 상태가 10여 년 이어지다가 1987년에 와서야 ‘유엔 사회권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더 큰 차이는 개인 진정에 대한 ‘선택의정서’였다. 앞서 말했듯이 선택의정서란 해당 국제조약의 이행을 보완하기 위해 만드는 독립된 조약을 말한다. 현재 주요 국제인권조약은 대부분 개인 진정 절차에 관한 선택의정서를 두고 있다. 선택의정서가 발효되면 해당 국제조약이나 의정서를 비준한 국가를 대상으로 모든 사람이 진정을 제출할 수 있다. 국내의 모든 구제절차를 거친 후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나, 예외적으로 국내 구제 절차가 불합리하게 지연되거나 그 효과성이 없음이 명백하거나 당사자가 그런 절차를 이용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제출할 수 있다. 자유권 규약은 개인 진정에 대한 선택의정서를 일찌감치 만들었다(1966년 채택, 1976년 발효). 반면 사회권 규약은 그보다 40여 년이나 늦은 2008년에 와서야 선택의정서를 채택했고, 그 발효를 위한 10개국을 채우는데 또 4년이 걸린 것이다. 늦은 감도 있고 미진한 감도 있겠지만 ‘사회권은 사법기구나 조약기구에 의해 적용될 수 없으며 개인 진정 절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오랜 반대주장을 해묵은 것으로 만든 진전이다.

한국 정부는 아직 이 선택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진정절차를 지금으로선 이용할 수 없다. 또 비준하여 이 절차를 이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국제 절차가 국내의 절차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진 국회도 있고 정부도 있고 법원도 있다. 국제기준과 유엔 사회권위원회 등의 역할은 당사국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입법, 정부의 결정과 집행, 법원의 판단 등 모든 분야에서의 의사결정과 특정 행위가 기본적 인권에 합치되는지에 대해 가능한 최대한의 감시와 협의의 길을 열어놓자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면 새 정부에 바라는 대표적 인권 과제 같은 걸 국내외 인권 단체들은 의례적으로 발표하곤 했다. 이번에는 그런 형식 자체가 무의미해 보인다. 온몸으로 외치고 요구하는 몸의 언어가 전국에 넘치기 때문이다. 지하도, 철탑, 굴다리, 영하의 길거리에 제 몸을 묶은 이들이 넘쳐난 지 오래고 그들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를 새삼 물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지 않을 권리, 살아갈 권리를 외치는 몸의 언어를 홀대하는 한, 제아무리 좋은 국제기준이든 장밋빛 공약이든 ‘그림의 떡’일 뿐이다.

사회권 규약 선택 의정서(The Optional Protocol of the International Covenant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전문
본 의정서의 당사국들은, … 공포와 빈곤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인간상은 오직 모든 이들이 시민 · 문화 · 경제 · 정치 · 사회적 권리를 누릴 때만이 성취 가능하다는 세계인권선언과 인권에 관한 국제규약의 주장을 상기하며, 모든 인간의 권리와 기초적 자유가 지닌 보편성, 불가분성, 상호의존성, 상호관련을 재확인하며 … 다음 사항에 동의한다.

2조. 통보
당사국의 관할권 하에 있으며, 해당 당사국이 사회권 규약에 규정된 권리를 침해하여 피해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개인 또는 집단이 진정을 제출할 수 있다. 제삼자가 대신 제출할 경우에 당사자의 동의는 없지만, 진정 작성자가 피해자의 편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당사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한다.

3조. 허용기준
1. 사회권 위원회는 모든 이용가능한 국내의 구제책이 소진됐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진정을 검토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구제책의 적용이 비합리적으로 지연된 경우에는 이 규정이 해당되지 않는다.
2. 사회권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진정이 불가함을 선포해야 한다.
(a) 국내 구제책의 소진 이후 1년 안에 진정이 제출되지 않은 경우. 그러나 기간 안에 진정을 제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음을 작성자가 증명할 수 있는 경우는 예외.
(b) 진정의 주제가 되는 사실이 해당 당사국에서 선택의정서의 발효 이전에 발생한 경우. 단 발효 이후에도 해당 사실이 계속되고 있다면 가능.
(c) 동일한 사안이 사회권위원회 또는 여타의 국제적 조사나 해결 절차 하에서 검토됐거나 검토되고 있는 경우.
(d) 사회권 규약의 조항에 부적합한 경우.
(e) 명백하게 근거가 잘못된 경우. 충분하게 구체적이지 않거나 대중 매체가 유포한 보도에 전적으로 기초한 경우.
(f) 진정을 제출할 권리의 남용인 경우.
(g) 익명인 경우 또는 서면이 아닌 경우.

5조. 임시 조치
1. 진정을 접수한 후 그리고 진위의 결정 이전에 어느 때든지, 사회권위원회는 피해자 또는 추정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가능성을 피할 목적으로, 예외적인 상황에서 필수적인 임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긴급 의견을 해당 국가에 전달할 수 있다.
2. 사회권위원회가 5조 1항에 따라 재량을 행사한 경우에, 그것이 진정에 대한 인정 또는 진위 여부에 대한 결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0조. 국가 간 통보
1. 이 선택의정서의 당사국은 언제든지 이 조항에 따라 다음 사항을 선언할 수 있다. 규약의 한 당사국이 볼 때 다른 당사국이 사회권 규약하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효력을 갖는 통보를 접수하고 심사할 사회권위원회의 권한을 인정한다고 선언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른 통보는 오직 그런 내용의 선언을 한 당사국이 제출한 경우에만 접수하고 심사할 수 있다. 그런 내용의 선언을 하지 않은 당사국에 관한 것이라면 사회권위원회는 어떤 통보도 접수하지 않는다.

11조. 조사 절차
1. 현 선택의정서의 당사국은 어느 때든지 현 조항에 대한 사회권위원회의 권한을 인정한다고 선언할 수 있다.
2. 사회권위원회는 사회권 규약에 규정된 어떠한 권리에 대해서든, 당사국에 의한 대규모의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나타내는 신뢰할 만한 정보를 입수하면, 해당 국가에 대해 정보 검토에 협력할 것과 관련 정보에 관한 의견을 제출할 것을 권할 수 있다.
3. 이와 관련된 이용가능한 여타의 신뢰할만한 정보 뿐 아니라 관련 국가가 제출한 의견을 검토하기 위하여, 사회권위원회는 한 명 이상의 위원을 임명하여 조사를 수행하고 긴급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할 수 있다. 해당 국가가 인정하거나 동의한 경우에는 조사 활동에 해당국 방문이 포함될 수 있다.
4. 이러한 조사는 비공개로 수행돼야 하며 모든 단계에서 당사국의 협력이 추구돼야만 한다.

인권오름 제 335 호  [기사입력] 2013년 02월 27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