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63 호  [기사입력] 2013년 09월 25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추석이 지났다. 여기저기서 기름진 명절 음식으로 찌운 살 걱정이 들려오지만 마냥 허기진 느낌이 든다. 허한 느낌이 아침저녁의 찬 기운과 함께 깊어간다. 없는 것들에 대하여 찾아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너무 허기가 진다.

추석날 아침, 서울 대한문 앞에서 장기농성장 합동차례가 있었다. 명절이라 제각기 농성장을 지킬 사람도 부족하다 하여 많이 모이진 못했다. 간단한 의식을 마친 후 상에 올렸던 음식을 나누는 자리가 있었다. 단식자들은 나머지 사람들이 맘 편히 먹으라고 덕수궁 안으로 산책을 핑계 삼아 몸을 숨겼다. 그 중 한사람은 단식에 들어가기 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전 명절 기름진 음식을 정말 좋아해요.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아요. 제 고향에선 전을 종류별로 잔뜩 부쳐서 정말 좋아요.”라고 말이다. 그런 사람이 명절에 전 한 조각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쌍용차 문제해결을 위한 집단 단식이 보름을 지났다. 허기는 대한문 단식농성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노동을 무시 받고 단결을 부인당하고 약속을 배신당한 사업장들이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민망할 정도다. 밀양에선 은근슬쩍 한전이 공사를 다시 한다니 노인들이 관 자리를 파놓고 싸움에 나선다신다. 강정에선 안부전화에서조차 ‘우리 강정 좀 살려줍쇼’라 한다. 진주의료원 폐업 이후 오갈 데 없는 환자들은 어찌됐는지 천막농성을 이어간다는 노동자들 상황은 어떠한지 언론에 한 줄도 안 나온다. 그런데 집권자의 정치는 제 말만 하고 ‘이하 생략’과 ‘안면몰수’로 이어지고 있고 아동의 인권조차 아랑곳 않는 언론권력이 코치와 길안내를 하고 있다. 야당은 ‘저들 때문에 못한다.’는 닳고 닳은 핑계 속에 진짜 싸우는 것인지 시늉인지 애매한 행동을 가늘게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왜 굶느냐?’고 ‘그것밖에 방법이 없느냐?’고 질책과 원망을 들어도 ‘이것밖에 할 수가 없어요.’로 답하는 심정을 이해하려 애쓸 수밖에 없다. 단식투쟁은 직접 실행하는 사람이나 곁을 지키는 사람에게나 고역중의 고역이다. 생명을 거는 행위인 만큼 논란도 많다. 그 유명한 간디조차 ‘목숨을 담보로 한 자기 신념의 강요’라는 비판을 받았다. 간디가 한 여러 차례의 단식 중에서 어떤 경우는 불가촉천민의 정치적 권리요구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찜찜한 것이었다. 그런데 걱정과 비난, 논란과 강한 의지가 교차되는 그런 단식투쟁을 많은 사람들이 실행해왔다. 그렇게 하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첫째 이유는 권리를 부인당한 사람들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고자 함이다. 역사 속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대표적 사례는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의 단식투쟁이다. 참정권 운동가들의 행동을 정치적 행동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은 당국은 그저 사소한 위반 행위로 취급하려 했다. 이에 운동가들은 벌금형 대신 감옥을 택했고, 수감된 후에는 형사범이 아닌 정치적 수인의 대우를 요구하면서 단식투쟁을 했다. 처음 단식투쟁을 한 여성은 1909년의 던롭이었다. 던롭은 국회의사당 담벼락에 권리장전의 구절을 쓴 혐의로 수감됐다. 91시간의 단식 끝에 그녀는 일단 풀려났다. 당국은 던롭이 권리를 위한 ‘순교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형기를 마치기도 전에 서둘러 석방했던 것이다. 이후 그녀의 뒤를 따라 다른 운동가들도 줄줄이 단식투쟁을 택하자 당국은 ‘강제급식’이란 방법을 개발했다. 사지를 붙들고 목구멍에 호스를 넣어 강제로 죽을 들이붓는 것은 사실상 고문이었다. 그로 인해 발작을 일으키고 목숨에 위협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야 강제급식은 폐지됐다.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부인하는 당국에 복종하지 않는 행위가 단식투쟁이었고 그런 행위 자체가 이미 정치적 권리의 행사였다.

Marrion Wallace-Dunlop(메리온 던롭)
정치적 행위로 수감된 사람은 (형사범으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수인으로서의) 일차적 구분에 따른 처우를 받아야 한다는 모든 문명국가가 인정한 권리를 나는 주장한다. 그리고 원칙의 문제로서, 나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이 문제가 내가 만족할 만하게 해결될 때까지 지금부터 모든 음식을 거부하겠다.

두 번째는 ‘말’을 차단당한 사람들이 사회에 온 몸으로 ‘말’을 걸려는 행위가 아닐까한다. 한국에서 양심수들의 단식은 아주 많았고 감동적인 명문들이 외부로 전달되곤 했다. 하지만 이름 없는 이들의 단식투쟁은 그렇지 않았다. 한 예로 청송 보호감호소에서 여러 차례 단식투쟁이 있었다. 그 네 번째로 제일 큰 규모였던 2003년 집단단식에는 6백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처우 개선의 요구가 아니라 반인권적이고 부당한 사회보호법(형기를 마친 후에도 감호소에 수용을 강제했던 법률)을 폐지해달라는 요구였다. 이름 없는 이들이고 사회에서 격리된 이들이었기에 그 흔한 성명서나 단식 결의문 같은 것도 없다. 그 흔적은 외부에서 인권단체들이 내놓은 지지성명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번으로 벌써 네 번째다. 청소 피감호자들이 사회보호법 폐지를 요구하며 벌써 일주일째 집단단식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보호법에 의한 보호감호제도의 악랄함을 바깥 세상에 고발하고자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돼있는 피감호자들이 택해야 했던 길이 바로 곡기를 끊어버리는 것이었을 게다. … 국회도 국가인권위원회도 곡기를 끊은 채 인권침해를 호소하는 피감호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사회보호법 폐지를 위한 법률안 발의는 차치하고라도, 진상조사 활동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는 일은 가능할 텐데, ‘표’가 되지 않으니 움직일 생각조차 않고 있다. 지금 청송의 피감호자들은 몸뚱아리 하나로 사회보호법의 야만을 고발하고 있다. 정녕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고자 하는가? (2003년 5월 31일 인권하루소식)

이주노동자들의 단식투쟁도 상황이 그러했다. 일제단속과 강제추방에 항의하며 단식을 하다가 외국인보호소로 끌려가고 보호소 안에서 단식을 이어가거나 단식으로 망가진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상태에서 강제 출국된 사례가 숱하게 많다. 그들 또한 자기 언어로 단식투쟁에 대해 말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끌려가기 전에 집회 등에서 파편적으로 남긴 말이 남아있을 뿐이다. 분명 말을 했을 것이나 한국사회가 듣지 않거나 알아듣지 못한 말들이었을 것이다.

노동권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당당하게 싸워왔다. … 농성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노예처럼 사는 것보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사는 게 더 좋다. … 이주노동자가 죽어나가도 한국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단식을 하다가 사람들 앞에서 죽어도 좋다. 그래서라도 한국과 세계에 이 상황을 알리고 싶다. (2004년 ‘이주노동자 단식투쟁 선포대회’에서 한 단식자의 말)

세 번째로 생각되는 것은 흔히 전형적으로 제시되는 이유일 것이다. 연대에 대한 호소 그리고 지배적 악에 대한 협력거부를 비폭력불복종으로 표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식투쟁 사례는 미국농업노동자조합을 만들었던 노동운동가 세자르 차베스의 말인 것 같다. 그는 생애에 걸친 노동운동 속에서 각각 25일, 24일, 36일에 걸친 여러 차례 단식투쟁을 했다.

Cesar Chavez(세자르 차베스)
단식은 우선은 가장 개인적인 것입니다. 나 자신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 단식입니다. 또한 단식은 농업 노동자 운동에서 나와 활동하는 모든 사람들의 정화와 강화를 위한 절실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또한 단식은 도덕적으로 권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무엇이 옳고 정의인지를 알고 있으며 자신들이 할 수 있고 또 더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남녀 활동가들에게 고행입니다. 마지막으로 단식은 캘리포니아 포도를 홍보하고 팔아서 이익을 얻는 대형매장에 협력하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우리의 땅과 식량을 덮친 전염병과 살충제에 대해 공부해왔습니다. 악은 내가 그러리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그 악은 우리들 삶을 목 조르고 또한 우리 모두를 지탱하고 있는 생태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치명적인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권력자들의 오만 속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약하고 무력한 사람들의 연대 속에 있습니다. 나는 이 단식이 정의를 위한 다수의 간단한 행동을 준비하는 것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심장이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향한 사람들, 우리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열망하는 남녀들이 수행하는 행동 말입니다. 함께라면 모든 일은 가능합니다.

세자르 차베스는 비폭력 투쟁에 대해서도 여러 말을 남겼다.

비폭력행동의 첫째 원칙은 모욕을 주는 모든 것에 대해 협력을 거부하는 것이다.
비폭력은 행동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비폭력이 굉장히 많은 조직화로 가는 길이란 걸 이해해야만 한다.
비폭력은 행동하지 않는 게 아니다. 비폭력은 토론이 아니고 겁쟁이나 나약자에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비폭력은 고된 활동이다. 비폭력은 기꺼이 희생하려는 것이고 승리하기 위한 인내이다.
폭력은 이미 다친 사람들을 해칠 뿐이다. 폭력은 억압자의 잔인성을 폭로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시켜준다.

마지막으로 내게 떠오르는 것은 절박함이다. 나와 경험을 같이하는 인권활동가들이 으뜸으로 공유하는 기억은 2000년 말과 2001년 초에 걸쳐 연말연시 혹한기에 했던 13일간의 노숙단식투쟁이다. 인권을 국정지표로 내건 정부였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록 간을 졸이게 하더니, 국가보안법 폐지도 대표적 공약사항이었던 국가인권위원회 설치와 소위 개혁입법들도 물 건너가는 상황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회는 공전이고 여야는 상대방 핑계만 댔다. ‘지금’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된다는 절박함이 20년만의 폭설과 여론의 외면을 뚫고 단식투쟁을 강행하게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글이 인권활동가 유해정의 단식일기였다. 지금 대한문의 단식자들 심정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한다.

유해정(인권활동가)

단식 6일째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내 뺨이 눈물로 젖었다는 것 이외에는 … 사람들은 우리들이 그들의 마음을 울린다고 말했지만, 우리 역시 울고 있다.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하고 투쟁하고 있지만 이렇게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슬퍼, 그들을 울릴 수밖에 없는 우리가 미워 우리는 매일 눈물을 머금고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닫는다.

배고픔이 힘들지 않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어주긴 할까? 단식이 일주일째 접어들다보니 위장도 지쳤는지 때때로 꼬르륵 소리를 내긴 하지만 음식을 넣어달라는 투정은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그럼 힘든 것은? 물론 추위다. …

단식 7일째
살을 에는 듯한 날씨에 자고 일어나니 물이 다 얼어버렸다. 따스한 물이라도 마셔야 몸이 조금이나 풀릴 듯 한데 온기란 찾아볼 수 없다. 아침 일찍부터 찾아온 단식단 도우미들이 서둘러 버너를 켜보지만 부탄가스도 얼어버려 부탄가스를 켜는데만 10여분이 걸렸다.
… 왜 그렇게 고행을 자처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람들을 자극하거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본래부터 우리의 조건이 그러했고 절박한 것이 있었다면 설명이 될까?
… 우리는 절박하다. 1월과 2월을 넘기면 언제 또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절박함과 처절함이 이곳에서의 하루를 버티게 하는 것이다. 추위에서 몸을 돌보거나 내일의 내 몸을 생각하게 하는 여유를 잃게 하는 것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투쟁에 나서는 것만이 지금 우리에겐 소중하게 느껴질 뿐이다.
… 오늘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분들이 농성장을 찾았다. … 그들의 방문을 받으며 우리는 잠시나마 행복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방문이 우리가 딱하고 안쓰러워서가 아니라 국보법 투쟁과 국가인권위원회 설치투쟁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 밤이 지나면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 내일은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을지 하는 의구심으로 하루의 농성을 접으며 진흙 같은 하늘에 든 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본다. 내일 역시 모두들 일어설 수 있기를, 그리고 우리의 투쟁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길.

지금 한국 사회는 정치의 작동에 허기져 있다. 정치가 없다. 삶의 경제가 아니라 숫자놀음의 경제만이 우리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이 조임에서 빠져나가려면 방향전환과 행동이 필요하다. 그걸 의논하고 길을 내는 것이 정치이다. 그런데 기존 정치세력은 경제를 핑계로 숨거나 도망 다니기만 한다. 인권의 가치는 공작 정치의 놀음에 팔아먹은 지 오래다. 그런 공백 때문에 거리의 정치가 더 절박하고 힘들어진다. 바람이 차가워졌다. 배고픔만이 아니라 이제 추위가 단식자들을 괴롭힐 것이다. 허기짐이 깊어간다. 그만큼 분노도 커간다는 것, 당신들의 정치의 공백과 횡포가 클수록 저항의 힘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허기진 뱃속에서 ‘꼬르륵 꼬르륵’ 신호가 온다. 몇 해 전 성명서의 문구처럼 ‘불통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는 절규를 언제까지 들어야할까?

기륭전자 노조

… 오늘도 신문에서는 비정규직 파견 노동을 확장하겠다는 소리만 넘쳐납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고, 냉장고가 커지고, 티브이가 평평해져 화려할수록 우리 일하는 사람들은 일회용 휴지보다 못한 처지로, 김치마저 먹지 못하는 서러운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 우리는 30, 90일 넘는 단식투쟁을 통해 우리의 결의를 이미 보여준 바 있습니다. 우리 몸이 부숴지고, 많은 분들께 우려와 걱정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투쟁은 우리의 자율적 선택을 넘어 부득이한 선택입니다. … 우리의 투쟁은 가장 낮은 요구마저도 가장 높은 투쟁을 요구하는 대한민국의 불통과 절망에 맞선 것입니다. … 기륭투쟁의 핵심은 파견법에 있습니다. 기륭문제 해결은 현대판 노예제도 파견노동 간접고용 노동을 없애는 길의 첫 단추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 길을 위하여 다시 목숨을 걸고 단식투쟁에 돌입하는 것입니다.(2010년 제 3차 단식 투쟁에 돌입하며)

인권오름 제 363 호  [기사입력] 2013년 09월 25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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