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11월 10일 인권하루소식 제2934호>

 

11월 13일은 이 땅의 영원한 '노동자'가 태어난 날이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 두 살의 젊은 전태일은 스스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절규 속에서 그의 몸과 함께 근로기준법 화형식이 이뤄졌다. 속칭 '빼빼로 데이'는 알아도 11월 13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우울함에 세 번째로 『전태일 평전』을 샀다. 우리 사회의 독보적인 인권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손에 가졌을 때의 제목은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었다. 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한 사회분위기 때문에 그런 우회적인 제목을 가졌고, 저자(고 조영래 변호사)의 이름도 적히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특정 종교재단에 속한 학교라는 이유로 강제 수강해야 했던 종교개론 시간에 맨 뒤에 앉아 시간을 때우려고 이 책을 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수업시간인지라 코와 입을 막고 울먹임을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을 가졌을 때는 『전태일 평전』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저자의 이름도 분명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변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두 번째 책은 경찰의 압수수색에서 불온서적을 소지한 것으로 걸릴 것을 두려워한 친구들에 의해 깨끗이 치워졌다. 그렇게 이 책은 내 손을 강제로 떠났다.

세 번째로 가지게 된 책의 표지는 깔끔하고 세련되게 바뀌어 있다. 마치 전태일이 고발했던 모든 것이 옛일인 듯 시치미 떼고 있는 사회의 뻔뻔함을 반영하듯이 말이다.

"맑은 가을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깊었으며, 그늘과 그늘로 옮겨 다니면서 자라온 나는 한없는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서로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할 때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며 내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어렴풋이나마 진심으로 조물주에게 감사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갖은 돈벌이에 시달리던 전태일은 열여섯 살이 돼서야 야간학교에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생활고 때문에 1년도 채 다닐 수 없었다. 윗글은 그가 짧은 학창시절에서 경험한 체육대회를 마치고 쓴 글이다. 그늘에서 그늘로 옮겨 다니는 삶 속에서도 스스로의 생명과 존엄을 잘 알고 있는 '인간'을 여기서 대면할 수 있다. 스스로를 존엄한 인간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들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할 가치와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 인권의 교과서적인 선언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권 논의는 이런 선언문 아래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데 머물고 있다. 하지만 핍박을 당하는 사람은 압제자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가지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작업이 힘들게 작업시간이 길고 힘에 겨운 야간작업을 시키는 것이다. ...공장주인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인 우리 직공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직공들은 어린아이들 바지를 만들어내는 매수에 따라 월불 계산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우리 미싱사들의 다 같은 불만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1매당 얼마를 준다는 확고한 결정을 하지 아니하고 대목일이 끝난 다음에야 1매당 얼마를 지불한다는 것을 주인이 재단사와 적당히 타협해서 주는 것이다. 언제나 이 모양이기 때문에 일이 바빠 직공들이 매수를 많이 올려도 겨우 평균 월급보다 조금 나은 월급을 받을 뿐이다...나는 이런 계통에서 미싱사로서는 처음 당하는 일이었지만 너무 억울했다. 아무리 열심히 밤잠 못자고 많은 양의 바지를 만들어야, 피땀 흘린 대가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인권에서 말하는 '모든 인간'은 모두 똑같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따라서 대등한 인간이다. '형식'으로는 대등한 인간인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통적 인권에서 말하는 인간은 현실의 인간이 처한 부자유하고 불평등한 면, 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인권의 현실을 무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주인도 노동자도 자유롭고 평등한 대등한 시민일 뿐이다.

윗글은 전태일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며 처음으로 사회비판의식을 드러낸 글이다. 인권의 변화는 현실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구체적 인간의 얼굴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 변화는 인권주체의 구체화와 집단화로 나타났다. 구체적 인간은 누구인가. 자기 재산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누군가로부터 임금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들, 즉 재단사인 노동자이고 시다인 노동자이다. 이들은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이들이 사회적 조건을 얘기하려면 이들의 존재를 통해 얘기할 수밖에 없다.

"1개월에 첫 주일과 셋째 주일, 2일은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서는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버립니다. 일반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대부분 6년 전후의 경력자들로서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해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응당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시에는 필름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이것도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일 10시간-12시간으로 단축해주십시오. 1개월 휴일 2일을 늘려서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원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현재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그렇게 등장한 구체적 인권이 '노동권'이다. 노동권의 등장으로 인해 전통적 인권이 옹호했던 소유권의 신성불가침성은 깨졌다. 재산을 똑같은 재산으로 바라보지 않고 누가 어떤 것을 가졌느냐에 따라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보게 된 것이다. 자본가의 소유권은 그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소유권을 위해 제한될 수밖에 없고, 이 새로운 소유권은 '노동권'이라는 인권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자본가의 재산권에 대해 책임을 묻게 됐고, 사용자의 권리에 대한 제한 규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휴일과 적절한 휴식 없이 일 시켜선 안되고, 공정한 임금을 주어야 하고, 노동자의 자기 보호를 위해 조합을 조직하고 가입하고 활동할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노동자라는 인간집단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나의 직장, 나의 행위는 분명히 인간 본질을 해치는 하나의 비평화적·비인간적 행위이다.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인간을 비인간적인 관계로 상대함을 말한다. 아무리 피고용인이지만 고용인과 같은, 가치적(으로) 동등한 인간임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백 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 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종교는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법률도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더러운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부한 자의 생명처럼 약자의 생명도 고귀합니다. 천지만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다 고귀합니다. 죽기 싫어하는 것은 생물체의 본능입니다.
선생님, 여기 본능을 모르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저 빨리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미생물이 아닌, 짐승이 아닌, 인간이 있습니다. 인간, 부한 환경에서 거부당하고, 사회라는 기구는 그들 연소자를 사회의 거름으로 쓰고 있습니다. 부한 자의 더 비대해지기 위한 거름으로.
선생님, 그들도 인간인 고로 빵과 시간, 자유를 갈망합니다."

'빵과 자유'로 뭉쳐있지 않은 인권은 무용지물이다. 빵, 즉 '인간답게 생존할 권리'를 인권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인권이 아니다. 굶주리는 사람에게 신체의 자유, 사상·언론의 자유같은 자유는 의미가 없다. 사실상 누릴 수 없는 권리를 사람들에게 보장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음식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식권을 지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기이다. 한편 '빵'은 '자유'의 배척물이 아니라 자유를 기본 내용으로 한다. 전태일의 말대로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뭉칠 자유가 필요하고 뭉쳐서 행동할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빵은 자유 없이 실현불가능하다. 그래서 '빵에 대한 권리'를 담고 있는 '사회권'이란 인권은 '자유'의 고양이지 자유의 무시가 결코 아니다. 대표적인 사회권인 노동의 자유가 결사의 자유, 단결의 자유, 단체행동의 자유를 외쳤고 많은 정부가 탄압하는데서 보여지듯 자유없이 사회권의 진전이란 있을 수 없다.

사회권을 흔히 국가가 위로부터 베푸는 혜택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사회권은 노동권이라는 권리에 대한 승인으로부터 출발했고, 그를 통해 자본가의 재산권을 제한하고 재산의 사회적 책임을 추구한 것이다. 사회권은 노동자를 비롯한 당사자의 자주적 활동을 통해 일차적으로 도모되는 것이고 국가의 역할은 그런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전태일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빵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오늘날에는 '노동자'라는 이름도 아까워 '비정규직'이란 이름을 붙여서 노동자를 반토막 취급하고 있다. 이것이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고 또 읽어야 되는 이유이다.

[인용글의 출처] 전태일 평전, 도서출판 돌베개, 조영래 지음

 

 

[류은숙] <2005년 11월 10일 인권하루소식 제2934호>

작성일자 : 2007. 3. 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노동권에 대한 조항

제23조 1. 모든 사람은 노동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에 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3. 모든 노동자는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여 주며, 필요할 경우 다른 사회적 보호의 수단에 의하여 보완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제24조 모든 사람은 노동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의 23, 24조가 규정하고 있는 노동권을 잘게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은 9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① 일할 권리 ② 자유로운 직업 선택 ③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④ 실업에 대한 보호 ⑤ 차별 없이 동등한 노동에 대한 동등한 임금 ⑥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유리한 보수(필요하다면 보충되는) ⑦ 자기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⑧ 여가시간과 합리적인 노동시간을 가질 권리 ⑨ 유급 휴가를 가질 권리

이 모든 권리의 바탕에 깔린 핵심적인 생각은 인간의 노동은 착취되거나 가능한 한 가장 싼 값에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하나하나를 합의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권리를 실질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소위 ‘물타기’를 하려는 시도는 계속 갈등했다.

<국가 의무의 실종>
일할 ‘권리’는 선언에 있는데 일할 ‘의무’는 없다. 사회주의 국가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대부분이 “모든 사람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에 종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식으로 표현되는 ‘의무’ 조항을 갖고 있었으나 선언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구 선진국들은 그런 조항을 갖고 있지 않았고 노동의 의무가 특정 국가들에서 강제노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일할 의무를 선언에 넣지 않은 진짜 뜻은 다른 데 있다. 일할 의무는 곧 일할 권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일할 의무는 결과적으로 국가가 고용을 보장할 의무와 연결된다. 일할 의무의 삭제를 주장한 이들이 염려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당시 많은 국가들이 직면한 것은 세계 대전 직후의 높은 실업률이었다.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국내 노동 시장으로 돌아왔고 일하기를 원하나 일자리는 없었고, 실업이 곧 극복될 수도 없는 체제였다. 따라서 기본적 권리인 일할 권리를 언급하되 그것을 이행할 수단은 찾아봐야 하는 것이었다.

왜 일할 권리를 가진 사람에 대한 국가의 의무가 선언에는 언급되지 않느냐는 지적은 계속됐다.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비판은 거셌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특성상 완전고용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해도, “실업 방지를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정도의 의무는 명시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체코 대표는 실업을 방지할 국가의무에 대한 언급 없이 실업으로부터의 “보호”를 말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자선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노조 대표자들도 ‘실업 그 자체를 방지하는 것과 실업의 결과를 경감시키는 조치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모든 권리에 대해서도 그렇지만, 특히 새롭게 등장한 경제·사회적 권리에 대해서는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 국가의 명확한 의무를 언급하길 원했다.

미국과 영국을 주축으로 이에 반대한 국가들은 “선언의 임무는 개인의 권리를 정하는 것이지 사회나 국가의 의무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했고, “노동의 권리에 노동을 제공할 의무가 암시된 것 아니냐, 그거면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양쪽 입장을 버무린 결과물은 “실업으로부터의 보호”로 표현된다. 여기에 노동권에 대한 국가의 의무는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국가의 의무 부분은 노동의 권리 조항에서 언급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에 완전히 새로운 조항(22조)을 만들어서 의무를 언급했는데 구체적이 아닌 아주 일반적인 방식으로 표현됐다.

<자유로운>
원래는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도 없고 타인에 대한 노예상태에 두어서도 안된다”는 제안이 있었으나 선언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노예상태에 해당하는 노동이건 아니건 그런 노동을 수락하는 건 그 사람의 맘이니까 괜찮다’는 취지는 전혀 아니었다. 선언의 다른 조항에서는 “그 누구도 노예나 예속상태에 놓여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와 겹치기도 하거니와 상세한 규정은 국제조약을 만들 때 하자는 취지로 빠진 것이다. 결국 남은 것은 “자유로운”이라는 표현이며, 직업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자유로운”의 의미는 사람을 자기 인생의 창조자로 바라본 것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선언의 다른 부분에는 이미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다룬 조항(20조)이 있었다. 따라서 이 조항에서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다. 결사의 자유의 예를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노동조합 결사권을 옹호한 편에서는 이런 주장을 펼쳤다. “다른 형태의 결사들은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지만 노동조합은 많은 반대를 겪어 왔고 결사의 자유의 형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노동조합 인정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돼야 한다”, “현대 경제생활에서 노동조합활동의 특별한 중요성 때문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등이다.

이런 논쟁만으로 노동조합 결사권이 선언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노동조합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권리를 세계인권선언에 넣자고 촉구하는 캠페인(“The Campaign for Trade Union Rights")을 강력히 펼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노동조합연맹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전후 노조의 곤경을 분석·보고한 장문의 비망록을 보냈다. 경제사회이사회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곤란을 느껴 국제노동기구(ILO)의 조언을 구했고, 국제노동기구는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조합결사권을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선언에서 노동조합결사권을 다루기로 하면서 또 논란이 된 것은 ‘클로즈드샵’이냐 ‘오픈샵’이냐의 문제였다(‘클로즈드샵’은 고용조건으로 그 회사와 단체협약권을 갖고 있는 노조에 가입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으로, 그 조합에 가입을 거절하는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고용돼 있다면 해고되거나 차별받을 수 있다. ‘오픈숍’은 앞에서 말한 조건을 이유로 인한 차별적 처우가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결론은 노동조합 결사와 가입의 권리만을 인권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클로즈드샵이냐 오픈샵이냐의 선택의 문제는 지역 상황에 따라 다른 것이고 노동자들이 결정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최상의 정책이라 보고 선언은 이 문제를 남겨두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파업권에 대해서도 선언은 무간섭주의 접근을 택했다. 파업권을 지지한 국가들은 많았지만 이 문제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선언에서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강력하게 파업권을 지지한 대표적인 국가는 스웨덴이었는데, 그 입장은 이랬다.

“파업권은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 가져야 할 도구이다. 모든 사람은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으로는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노동을 그만둘 권리를 갖는다.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에서 일해선 안된다고 느낄 때 개별 노동자가 일하는 것을 그만 둘 자유에 의해 완성될 때에야만 결사의 자유는 시민의 자유로서 중요하다. 노동조합의 권리가 정당한 보수와 노동시간의 권리를 이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파업권은 노동조합의 권리를 이행하는 수단이다. 파업권 없이는 노동조합의 권리가 무의미하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은 계속 존재를 허용 받았지만 파업권이 없었다. 파업권 없이는 노동조합의 자유는 환각이었다.”

ILO가 정교화시킬 문제이며 선언에서 다루기는 어렵다는 반대에 이 제안은 철회됐고, 선언의 파업권 논의는 거기서 멈췄다.

<노동조건>

노동조건에 대해 다룬 23조 3항은 원래 “인간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로 시작됐다. 이 문구는 비록 삭제됐지만 지금 있는 조항이 전하는 메시지는 마찬가지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조항에서 처음으로 “모든 사람”이 아닌 “모든 노동자는”이란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조항(25조)에 있는 ‘사회보장의 권리’는 자신의 통제할 수 없는 이유들(질병, 장애, 노령 등)로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다루는 반면, 이 조항에서는 이미 고용된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노동자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여 주며”, “필요하다면 다른 사회적 보호의 수단에 의해 보완되는” “정당하고 우호적인 보수”가 노동조건의 내용이다. 이 내용에 대한 반대표는 단 두 표였는데, 미국과 영국의 표였다. 미국의 반대 근거는 ‘임금은 노동자의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해진 노동을 판단하여 정해진다’는 것이었다. 노동조건에 대한 이 조항은 이후 노동권 전체에 대한 부결로까지 이어지는 수난을 겪은 후에야 살아남게 된다.

<노동 시간의 합리적인 제한, 휴식과 여가의 권리>
‘노동시간의 합리적인 제한’을 다룬 독립적인 조항에 대한 삭제 요망이 강력했다. 그 이유는 ‘노동시간이란 계약에 의한 것인데, 사법적 가치가 없는 선언에서 그걸 제한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다. 선언의 가치 자체를 휴지처럼 만드는 이런 주장에 대한 반발은 물론 거셌다. 하지만 이 조항은 결국 삭제됐다가 나중에 별도의 조항이 아닌 “휴식과 여가의 권리” 조항이 만들어지면서 그 첫 문장에 붙이는 식으로 살아남게 됐다.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의 권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행되느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선언에서 이를 모두 포함시킬 수는 없었기에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라는 말만 남게 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조건, “유급”이라는 것은 반드시 포함돼야 했다. 임금 없는 휴식의 권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의미였다. 선언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그 배경에서 논해진 휴식에 대한 도덕적 요구는 자본의 ‘강탈’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 외국인이나 사회취약계층을 배제하지 않는 휴식, 휴식이 요구될 때 사회의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여건으로 인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이다.

세계인권선언에 노동권 조항이 만들어질 당시에 노동자들이 유엔에 제출했다는 비망록에는 노동조합의 기반을 파괴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성토가 가득 담겼다고 한다. ‘노조의 모임 장소를 대여할 수 없게 한다’, ‘단체협약을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동자에게 강요된 불의를 고칠 수단이 없다’ 등, 정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세계인권선언의 노동권 조항은 노동자들 손아귀에 잡힐 때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423 호 [기사입력] 2015년 01월 22일 17:46:0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두 명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굴뚝에 오른 지 40일이 넘었다. 스타케미컬 노동자의 굴뚝 생활은 무려 240일이 넘었다. 다행히 쌍용차에선 교섭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또 다른 굴뚝들이 도처에 있다. 연일 터지는 노동자에 대한 모욕과 멸시의 사건들, 추락하고 깔리고 폭발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실업의 우울과 불안, 다가올 실업의 공포가 도처의 굴뚝들이다.

이전에도 노동자들은 송전탑이며 광고탑이며, 극한 곳으로 수시로 올라갔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말했다. “이전엔 지나가면서 송전탑을 의식한 일이 없어. 근데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올려다보게 돼.” 그렇다. 사람이 둥지 틀 수 없는 곳으로 사람이 내몰리고 있다. 날이 궂거나 바람이 불면 가슴이 답답하고 조마조마하다. 영어의 ‘염려, 고통, 분노’는 모두 같은 어원을 갖는데 그게 협심증의 어원이란 말이 실감난다.

가슴이 죄이는 듯 하는 것은 송전탑이나 굴뚝같은 극단적인 곳을 볼 때만이 아니다. 예외가 아닌 일상이 문제다. ‘수퍼갑질’이 아니곤 문제시조차 되지 않는 일상 속의 존엄성 유린은 자각증세가 없는 만성질병 같다. 특히 일상적으로 노동하는 사람을 멸시하는 일이 어느 때부턴가 공공연한 일이 되었다.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정당한 자존감과 자부심 대신에 비뚤어진 우월감과 열등감을 경합시킨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존중하고 존중받는 것인데, ‘존중? 그건 어디서 파는 거에요? 얼마에 살 수 있어요?’ 식의 엉뚱한 접근이 퍼져있다.

현대 인권의 초석은 ‘인간 존엄성’이다. 초석이란 타협 불가능한 원칙이란 의미다. 인간 존엄성은 개인의 업적이나 성취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이 존엄성은 단지 ‘인간임’으로 해서 누구나 갖는 것이다. 이 존엄성은 인간의 ‘평등성’에 기반한 것으로 자연적‧세습적인 위계와 귀족주의‧엘리트주의 이데올로기라 할 것을 일체 거부한다. 모든 인간의 존엄한 가치는 비교하여 따지거나 경쟁으로 획득하는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절대적 가치이다. 인권의 핵심 가치인 ‘자유, 평등, 우애(연대)’는 이런 인간 존엄성에서 도출한 것이다. 자유란 ‘소비의 자유’가 아니라 위계적 제도가 양산해 낸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정신’을 말하고, 우애(연대)는 공동체적 삶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회적 관계의 질을 말한다. 평등은 이런 자유와 연대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인간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 사회의 제반 활동에서 인간 존엄성을 척도로 삼는 것이다. 가령 인간을 한낱 자원이나 교체 가능한 부품처럼 다룰 때 그것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원칙은 국제인권법과 헌법 등 법질서 전체에 적용될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행하는 제도나 정책 등 모든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간 존엄성’을 정초한 대표 문서로 흔히 ‘세계인권선언’을 꼽는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인권선언(1948)보다 한 발 앞선 존엄성의 전령이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적을 담은 필라델피아 선언(1944)이다.

ILO는 일찍이 1919년의 창립 헌장에서 “항구적인 평화는 사회적 정의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류는 그런 정의를 추구하는데 실패했고 또 한 번의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다. 인간을 사물처럼 취급하고 경제성장의 수단으로만 대하는 질서가 계속되는 한 전쟁은 언제나 일어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었다”. ILO는 전후의 삶과 국제질서를 이끌어 갈 원칙을 재확인해야 했다. 그 재다짐의 내용은 인간 존엄성을 모든 것의 정초원리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의 실현은 시장의 횡포를 사회 정의에 무릎 꿇도록 만드는 제반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재확인‧재천명한 원칙을 담은 것이 ‘ILO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이다. 필라델피아에 모여 만들었기에 그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그 도시의 이름이 ‘우애’를 뜻한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반가운 것이다. 우리가 형제애와 자매애, 즉 우애의 정신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란 것을 이름 자체가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필라델피아 선언의 으뜸 원칙이다. 인간을 존엄하게 대한다는 게 한마디로 뭐겠는가? 사람을 사물 취급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를 ‘인력’이 아니라 ‘인간’으로, 노동력의 거래를 다른 물건처럼 ‘사고 파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는 ‘인력’으로서 ‘경제적 보상’만 받으면 되는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이다.

물질적 존중은 그때그때 일한 만큼의 대가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의 안정과 지속을 위한 생활의 보장으로 실현돼야 한다. 정신적 존중은 구성원으로서의 자존감, 소속감,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의 보장이다. 자신의 일에서 통제력과 재량을 발휘할 수 있고, 동료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노동자 개인과 조직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더 넓은 사회와의 연대감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물건과 달리 인간은 말을 하고 저항한다. 노동자의 물질적‧정신적 권리의 충족은 결과적으로 ‘그냥 주어지면’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참여 속에서 추구할 권리이다. 단순한 혜택과 권리로서의 보장은 다르다. 권리로서 향유하기 위해선 노동자의 개인적 및 집단적 자유가 중요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런 내용들을 ‘사회 정의’의 구체적 내용으로 규정했다. 이런 사회정의의 추구가 목적이라면 경제는 그것의 실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선언을 유념한다면, 목적과 수단의 뒤집힘을 지적하고 경계하는 것이 실천과제이다.

오늘도 우리는 도처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저항과 고난을 본다. 우리의 눈은 목적과 수단의 전도에 착시현상을 일으켜선 안된다. 사회정의를 굴뚝 삼아야 한다. 시장 우위의 폭력성과 인간 존엄성 유린의 연기를 빼내야 한다. 그 연기에 눈물콧물 쏟고 있는 노동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왜 극한투쟁을 하느냐? 그것밖에 방법이 없느냐?’는 말은 안 듣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무릎 꿇려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폭력적인 구조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왜 말로 하지 않고 극한투쟁을 하냐’는 공격을 자주 받았다. 킹 목사는“협상이야말로 우리의 행동이 원하는 궁극 목표”라고 답했다. “비폭력 직접행동은 위기와 긴장감을 조장시켜, 협상을 거부하는 사회를 곤경에 빠뜨리고 더 이상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즉 사회의 쟁점들을 본격적으로 부각시켜 더 이상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직접행동의 추구하는 바이다”

6년여가 되어서야 가능해진 쌍용차의 노사 협상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서럽다. 숱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이 만든 결과여서 기쁘지만, 노동자는 ‘말’에 낄 수 없는 존재, 대화와 협상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 사회의 잔인함에 입은 상처들 때문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의 말이 말로서 존중돼야 하며 정책과 조치들의 잣대가 돼야 한다. 오늘도 숱한 노동자들이 온 몸으로 말을 걸고 있다. 나는 처분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나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라고 말이다.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ILO Declaration of Philadelpia, Declaration concerning the aims and purposes of ILO, 1944)

국제노동기구(ILO, 아래 ILO) 총회는 필라델피아의 제 26차 회기에서, 1944년 5월 10일, ILO의 목적에 관한 이 선언과 회원국의 정책 기조가 되어야 할 원칙들을 채택한다.

I
총회는 ILO가 근거하고 있는 기본 원칙들, 특히 다음 원칙들을 재천명한다.

a)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b)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c)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
d) 결핍과의 투쟁은 각국에서 불굴의 의지로, 그리고 노동자 대표와 고용주 대표가 정부 대표와 동등한 지위에서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인 결정에 참여하는 지속적이고도 협조적인 국제적 노력으로 수행돼야 한다.

II
총회는, 항구적 평화는 사회 정의에 기초해서만 가능하다는 ILO헌장속의 선언의 정당성이 경험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확신하며, 다음을 확언한다.

a) 모든 인간은 인종, 종교 또는 성별과 상관없이 자유와 존엄, 경제적 안전 속에서 그리고 평등한 기회 속에서 자신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발전 둘 다를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b) 이를 가능케 할 조건의 실현은 모든 국내 및 국제 정책의 핵심 목적이 돼야만 한다.
c) 모든 국내 및 국제적 정책과 조치들, 특히 경제‧금융 영역에서의 그것들은 이런 관점에서 판단돼야만 하며, 이 근본 목적을 달성하는데 방해가 아니라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만 채택돼야 한다.
d) 이 근본 목적의 견지에서 모든 국제적인 경제‧금융 정책과 조치들을 검토하고 심의하는 것은 ILO의 책무이다.
e) ILO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관련된 경제‧금융 요소 일체를 고려한 후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규정들을 결정과 권고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III
총회는 다음 사항들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전 세계의 국가들에서 촉진되도록 하는 것이 ILO의 엄숙한 의무임을 인정한다.

a) 완전 고용과 생활수준의 향상
b) 노동자들이 최대한의 기술과 조예를 발휘하고 공동선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는 만족을 가질 수 있는 일자리에 고용되도록 할 것
c) 이 목적의 성취를 모든 관련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장을 통해 달성하기 위하여, 고용과 거주를 위한 이주를 포함하여, 직업 훈련과 노동자의 이동을 원조하기 위한 시설들의 제공
d) 임금과 소득, 노동시간과 기타의 노동조건과 관련하여, 모두가 진보의 과실을 정당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모든 고용 노동자와 그런 보호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최저 생활 임금을 보장하는 정책
e) 단체교섭권의 실질적인 인정, 생산 효율성의 지속적인 향상에서의 관리자와 노동자의 협동, 그리고 사회적 및 정치적 조치들의 마련과 적용에서의 노사협력
f) 사회적 보호와 충분한 의료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기 위한 사회보장 조치들의 확대
g) 모든 직업에서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위한 적절한 보호
h) 아동복지와 모성 보호의 제공
i) 적절한 영양, 주거, 여가와 문화 시설의 제공
j) 교육과 직업 기회의 평등성 보장

(IV, V 생략)

인권오름 제 423 호 [기사입력] 2015년 01월 22일 17:46:0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399 호 [기사입력] 2014년 07월 10일 14:41:26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늦게 까지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시계를 안 봐도 몇 시쯤인지를 아는 순간이 있다. 청소차가 골목을 누비며 쓰레기를 싣는 시간이다. 내 동네는 새벽 3시경이다. 새벽 첫 버스를 타본 사람 또는 늘 타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첫 버스는 의외로 만원이다. 승객의 대부분은 묵직한 가방을 메고 어디론가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제일 먼저 길을 나서는 그들의 일이 최하위 대우를 받는 노동이란 걸 대개 짐작할 수 있다. 그 다음이 흔히 러시아워라고 불리는 시간대이다. 애써 차려입은 정장이 무색하게 문을 닫으려는 버스에 매달리다시피 한 사람들 천지다. 분주한 낮이 지나고 또 저녁이 온다. 방송에서 말하는 퇴근 시간대라는 것도 현실과는 다르다고 느낄 때가 많다. 밤이 늦을수록 붐빈다. 얼마나 늦게까지 일하는지를 경쟁하는 것 같다. 그렇게 24시간 숨차게 노동이 돌아가고 있다.

그 숨찬 노동이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고 자신과 타인의 삶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권리에서 아랫목 차지는커녕 윗목으로만 밀려난다. 윗목도 아쉬울 만큼 맨 몸이다시피 방밖으로 내쫓기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형편에서 ‘인간은 자유다’란 말과 ‘노동’을 연결 짓기는 어렵다. 인간이 자유면 인간이 수행하는 노동도 자유여야 하는데 ‘노동은 자유다’란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내몰린 계약이 내 자유의사에 의한 것이라 하니 속 터질 일이다. 자유로운 계약으로 받아들인 것이니 무슨 조건이든 받아 삼키라는 환경에서 노동권은 외계인의 소리다. ‘써먹을 수 없는 권리, 실행 불가능한 권리의 선언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원망을 제일 많이 듣는 게 노동과 관련된 권리들이다. 누구는 노동권의 요구에 욕을 해대고 누구는 그 권리들을 공상이라 비웃는다.

참 이상하다. 욕과 비웃음을 먹어야 하는 쪽은 엄연한 권리를 부인하고 조소하는 쪽이지 엄연한 권리를 부르짖고 보장을 요구하는 쪽이 아니다. 오히려 후자를 손가락질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강자에게 억압받는 것도 억울한데 강자의 논리까지 정당화해주는 것은 할 일이 못된다.

‘노동할 권리’는 세계인권선언 23조를 비롯한 여러 국제인권법과 헌법이 ‘엄연히’ 보장하고 있는 권리다. ‘엄연’하다는 말은 누구도 감히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것이라는 의미다. 세계인권선언의 ‘노동권’에는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권리, 공정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일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인간적으로 존엄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노동권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휴식과 여가에 대한 권리 등이 속한다. 여기서 무엇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는지 나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물론 해가 된다고 여기는 세력들이 있다. 노동권의 요구는 경제를 위기로 몰고 가고 소유와 경쟁에 반대되는 것이고 국가의 개입을 부름으로써 자유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노동권’은 애초에 이런 갈등 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모든 사람’의 가면에 은폐됐던 계급의 격차가 맞붙은 대표적 사건이 프랑스의 1848년 혁명이었다. 정치적 질서에서는 주권을 가지는데 경제적 질서에서는 일종의 노예상태로 떨어지는 모순이 맞붙었다. 굶어죽거나 싸우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싸움이 그냥 피억압자나 민중이란 두루뭉술한 이름이 아니라 ‘노동자’란 명백한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 ‘모든 시민’이란 말은 노동자가 친 바리케이드와 정부군의 총탄 속에서 부르주아와 노동자로 분리됐고, 그제까지의 민주주의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지적한 것이 ‘노동권’의 구호였다.

‘노동할 권리’란 용어 자체는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이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는 <노동의 조직>이란 글을 진보신문에 연재했는데, 거기서 노동자의 삶이 시장 경쟁체제에 내맡겨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노동자가 안정된 최소한의 일자리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 국가의 힘과 노동자의 연합이 조직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런 취지를 담아 그가 제안한 것이 ‘사회사업장’의 설치였다. 공상적 사회주의자,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은 게 루이 블랑의 입장이었다.

루이 블랑의 활동 배경이 바로 1848 혁명의 프랑스였다. 1789년 프랑스 인권혁명은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이란 가치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속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철저한 구분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그 드러남이 폭발적으로 터진 것이 1848년이었다. 그해 2월 노동자들의 봉기로 루이 필립의 입헌군주제를 타도하고 공화정을 쟁취했다. 2월 봉기로 생겨난 임시정부의 각료 대다수는 부르주아지의 대표였고 노동자 대표는 단 두 명뿐이었다. 그 중 하나가 루이 블랑이었다. 보통선거권이 확장됐지만 허울뿐이었고 벼랑에 몰린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사업장이 설치됐다. 하지만 그 사회사업장은 루이 블랑의 구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거리에 설치된 노역장’에 불과하다는 악평을 받았다. 그마저도 6월에 폐쇄가 결정됐다. 사회사업장 폐쇄를 접한 노동자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봉기에 나섰고 그 내용은 노동권에 대한 요구였다. 정부군은 총공격을 강행했고 노동자 수천 명이 죽고 만여 명 이상이 재판 없이 유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이 때 노동권을 요구하는 이들을 때려잡는 일에 동의하지 않는 쪽을 지목하려고 ‘빨갱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다고도 한다.

노동권에 대한 요구가 공상이고 순진하다는 비웃음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그러나 1848년 이래로 노동자의 투쟁은 그 ‘순진’한 입장을 ‘진짜’로 요구했다. 노동자의 순진함은 ‘만인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 믿음을 저버린 것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약점인 것을 지적했다. 말뿐이 아니라 진짜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의 실현에는 노동권이 당연히 요구된다는 것을 바리케이드에서 흘린 피로 증명했다. 인권의 대전환은 그런 순진한 믿음과 실천 속에서 이뤄졌다. 계약과 영업의 자유, 소유의 자유에 안주하려던 인권이 오늘날 교육권, 건강권 등 ‘사회권’이란 인권으로 전환한 데에는 앞장선 노동권이 있었다.

‘노동’이란 프랑스어 단어(travail)의 어원은 tripalium으로 징을 박기 위해 짐승을 고정시키는 다리 셋 달린 기구였으며 고문 기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런 단어였기에 18세기까지 가장 천하다고 간주되는 인간의 활동만을 가리켰다. 물론 오늘날 노동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니다. 각기 다른 입장에서 노동을 찬양하는 한편 노동을 독려하고 이용한다. 하지만 실제 노동에 대한 대접에서는 18세기의 자취를 지워냈다고 말하기 어렵다. 노동자가 길거리 잠을 자며 농성하고 굴뚝에 올라야 하고 급기야 목숨을 끊어도 유명인의 공항패션보다 못한 언론의 대접을 받는다. 노동의 요구가 다급하고 당연한 민주주의의 의제가 되지 못한다. 그냥 시민이 아니라 ‘노동자-시민’의 목소리가 진지하게 여겨져야 인권은 ‘말 뿐’이라는 굴레를 벗을 수 있다. 노동의 의미를 무엇으로 만들고 노동을 어떻게 대접하느냐가 우리 사회 인간다운 삶의 척도가 아닐 수 없다.

노동의 조직(루이 블랑, 1840)

질문이 제기돼야만 한다. 경쟁이 빈민에게 일을 보장하는 수단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노동자에게 경쟁이란 뭘 의미하는가?
경쟁이란 일을 최고 입찰자에게 주는 것이다. 계약자는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세 명이 지원한다. “보수를 얼마나 받길 원하나요?” “3프랑, 아내와 아이가 있어요.” “2.5프랑이요. 애는 없고 아내만 있어요.” “훨씬 낫군. 아, 그리고 당신은요?” “난 2프랑이면 돼요. 난 독신이에요.” “이 일은 당신 꺼요.” 이로써 문제는 해결됐고 거래는 끝났다. 그럼 이제 나머지 두 명의 프롤레타리아는 어찌 되는가? 그들은 굶주릴 것이다. 그게 바라는 바다. 하지만 그들이 도둑이 된다면? 염려마라. 왜 우리에게 경찰이 있겠는가? 그게 아니라 살인자가 된다면? 흠, 그들에겐 교수대가 마련돼 있다. 운 좋은 이는 세 사람 중 하나 뿐인데, 그의 승리(일자리)도 단지 일시적일 뿐이다. 네 번째 노동자가 나타난다. 이틀에 하루는 굶어도 될 정도의 노동자다. 임금을 줄이려는 욕망은 최대한으로 행사될 것이다. 새로운 부랑자, 아마도 노예 노동의 신입자가 …

자유 경쟁의 지배 밑에서 임금의 지속적인 삭감이 예외 없는 일반법이 돼가는 것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나? … 얼마간의 노동자의 제거로 귀결되는 체계적인 임금 저하는 자유 경쟁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정부는 생산의 최고 감독자로서 간주돼야만 하고 그 의무 때문에 큰 권력을 부여받았다.

정부의 과제는 경쟁과 싸우고 마침내는 경쟁을 극복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그것으로 국가 산업의 가장 중요한 지점들에 사회사업장(social workshops)을 세워야만 한다. …

도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모든 노동자는 이들 사회사업장에서 일할 것을 요구받는다. … 사회사업장의 모든 구성원은 재량에 따라 자기 노동의 이익을 사용할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런 공동체적 삶의 명확한 경제와 명백한 우수성은 노동자의 필요와 즐거움에 따른 노동자들 간의 자발적인 연합(association)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자본가들도 또한 연합에 들어가고 투자금에서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이자는 예산으로 보장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노동자인 한에서만 이윤에 참여할 수 있다.

사회사업장이 이런 원칙에 따라 일단 설립되면, 결과가 어떨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견직이나 면직 산업 같은 모든 대 산업에서, 인쇄기 같은 기계류에서 사회사업장은 사적 기업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싸움이 오래가겠는가? 아니다. 사회사업장은 다른 산업을 능가할 이점이 있다. 더 비용이 안 드는 공동체적 삶의 결과와 모든 노동자가 예외 없이 훌륭하게 빨리 일을 해내는데 관심을 가지는 조직을 통한 이점이다. 싸움이 파괴적이겠는가? 아니다. 정부는 사회사업장의 생산품 가격이 너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노력할 것이다. 오늘날 아주 부자가 덜 부유한 자와 경쟁을 한다면, 그런 불평등한 싸움의 결과는 재난이 될 것이다. 사적인 사람은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보기 때문이다. …

같은 사업장의 모든 노동자의 공통된 이익으로부터 우리는 같은 산업의 모든 사업장의 공통된 이익을 추론할 수 있다.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산업의 연대를 수립해야만 한다. 따라서 각 산업이 낳은 이익을 떼어 비축하여 그것으로 국가가 예외적이고 예측 못한 상황으로 고통 받은 모든 사업에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게다가 우리가 제시하는 시스템에서는 위기가 드문 것이 될 것이다. 무엇이 위기를 오늘날 그렇게 자주 일으키는가? 실제로 살인적인 이익간의 경쟁, 정복당한 자들을 전장에 내버리지 않고는 어떤 승리자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경쟁이다. 경쟁은 모든 전쟁과 마찬가지로 승자의 전차에 노예들을 매단다. 경쟁을 파괴하는 동시에 우리는 경쟁이 낳은 악을 없앤다. 더 이상의 승리도 더 이상의 패배도 없다. …

우리가 사는 산업 세계에서 모든 과학의 발견은 재난이다. 첫째는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필요로 하는 노동자를 기계가 대체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것들은 그런 권리와 권력을 갖지 못한 모든 이를 향해 기계를 사용할 권리와 능력을 가진 산업에 제공된 살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계”라는 게 경쟁 시스템에서 뭘 의미하는가? 독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합과 연대의 새 시스템 속에서는 발명가에게 어떤 특허도 어떠한 개인적 착취도 없다. 발명가는 국가에게 보상받을 것이고 그의 발견은 모두를 위한 서비스에 배치될 것이다. 오늘날 전멸의 수단인 것이 보편적인 진보의 도구가 될 것이다. 오늘날 노동자를 굶주리게 하고 절망하게 하고 봉기로 몰아가는 것이 노동자의 과제를 더 가볍게 하고 지식과 행복의 삶을 영위할 충분한 여가를 만드는데 복무할 것이다. 한마디로 폭정을 관용했던 것이 우애의 승리를 원조할 것이다. …

인권오름 제 399 호 [기사입력] 2014년 07월 10일 14:41:26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작성일자 : 2008. 12. 22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23조

1. 모든 사람은 근로의 권리, 자유로운 직업 선택권, 공정하고 유리한 근로조건에 관한 권리 및 실업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고 동등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3. 모든 근로자는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을 보장하여 주며, 필요할 경우 다른 사회적 보호의 수단에 의하여 보완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4.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 제24조

모든 사람은 근로시간의 합리적 제한과 정기적인 유급휴일을 포함한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파업의 이유

몇 해 전 한 건설노조가 파업을 했다. 요구사항은 이런 것이었다. ‘근로조건을 개선해 달라’, 그 내용은 하루 8시간 노동, 유급휴일, 주휴, 월차수당을 보장해 달라는 거였다. ‘산업안전보장’, 그 내용은 가스실 들어갈 때 가스마스크를 달라는 거였다. ‘뭐, 이런 걸 갖고 파업을 하나, 파업을 안 하면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 안 되나’ 생각이 드는 순간 다음 요구사항에선 기가 막혔다. ‘중식 및 휴게시설 확보’, 그 내용은 화장실이 없어 노상방뇨를 하는 형편이고, 도로 담벼락에 붙어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일마치고 씻을 세면장이 없고, 밥 먹을 식당이 없어서 먼지 풀풀 날리는 길거리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 그걸 시정해 달라는 거였다. 마지막 요구사항은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는 거였다.


이거 뭐야, 8시간 노동제 요구는 1886년인가에 내걸었던 요구고, 폐병 걸려 피를 토한 여공이 ‘손 씻을 곳이 없어요.’라고 울부짖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본 게 10년도 넘었다. 노동조합이 아직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해야만 가능한 조직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나는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몇 해 전 이라크 파병철회를 내걸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반전․평화수업에 나섰다. 이에 정부는 이라크 파병철회를 내건 파업은 불법이라며 엄단하겠다고 했다. 한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도 앞장서야 한다”며 파병반대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같이 외쳤다. “노동자들은 모든 전쟁을 반대하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원한다. 이라크 파병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노동부 장관은 “파병반대라는 정치적 목적을 관철할 의도로 파업을 벌이는 것은 책임 있는 노동운동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보다 훨씬 이전 이라크 침공이 있기 전에 수백만 명의 유럽 노동자들이 미국 주도하의 이라크 군사공격 가능성에 항의하여 일시 파업을 했다. 자동차 공장이 멈추고 열차 운행이 중단된 곳도 있었다. 노동자가 전쟁반대를 위해서는 파업을 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은 당시 보도에서 볼 수 없었다.

이 사례에서 엿볼 수 있는 고질적인 생각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노동자만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면 ‘밥그릇 투쟁’이니 ‘이기주의’라 욕하고, 다른 사회적 목적을 위해 투쟁하면 노동운동이 ‘정치화’됐다면서 원래 생존권 투쟁으로 돌아가라고 윽박지른다. 노동권은 시민으로서의 노동자가 생존에 필수적인 자기 일터에서 이를 지배하는 규범을 자율적으로 형성할 뿐 아니라 더 큰 사회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노동권의 역사와 의의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있는데 노동인권은 뭐야, 노동자만 특별 취급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맞다. 노동인권은 노동자를 특별 취급하는 인권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라는 표현이 유일하게 등장하는 것이 노동권 관련 조항이다. 그런데 이 특별취급의 이유가 노동자를 더 잘 대접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노동자도 시민이며 시민으로서 기본적 인권을 갖는다. 그런데 노동자의 처지가 하도 취약해서 개별 노동자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기본권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즉 노동자로서의 시민은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가와 대항하여 싸우기에 힘이 부치고 그 결과 기본권을 누리기 어려우므로 단결을 통해 거래능력의 취약함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로서 성취하는 것은 뭔가 노동자에게만 허용된 특수한 권리를 덤으로 더 얻는 게 아니라 원래 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인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노동권은 임노동관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와 더불어 등장한 근대인권체계는 모든 사람을 신분제의 예속에서 해방시켰다. 그래서 노동자도 자유를 얻었지만 이 자유는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부자유를 내포한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신분제도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토지 등 생산수단으로부터도 분리됐다. 이제 자유의사에 의해 근로계약을 맺고 살아가라 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자유계약이라 했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상 부자유한 종속관계가 임노동관계이다. 그리고 경제적 독립성은 시민에게 허용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사상․표현의 자유도, 정치활동의 자유도 부자유한 노동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노동자는 자립할 재산이 없다하여 참정권도 주지 않았고, 노동자의 불리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맺은 노동계약은 인간다운 생활을 허용치 않는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노동을 강요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소득으론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 어린 자식과 부녀자도 위험한 노동에 내몰려야 했다. 여기서 여성의 노동은 자기실현을 위한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멀었다. 참다못해 노동자들이 단결을 하면 불온한 행위라 하여 처벌을 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대표가 하나도 없는 의회도 그런 의회가 만들어낸 법도 노동자들의 편은 아니었다. 이에 노동자들은 필사적으로 단결을 했고 사회경제적 권력에 도전을 했다. 그런 도전이 하도 광범위하여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자, 법원도 처벌하기를 단념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자에 대한 처사가 너무 심하다는 현실에 대한 공감도 깔려 있었고,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인권을 누릴 가능성이 없다는 인정도 깔려 있었다.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없기에 노동자는 단결하여 집단적으로 권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 노동인권으로 표현된 것이다.

인권의 역사가 이러하니 노동인권은 노동자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노동자의 열악한 권리상황의 증거인 것이다. 노동인권에 대한 인정에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주효했지만 자본주의 자체 내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 농촌에서 농부들의 땅을 빼앗아 내몰았던 때가 있었고, 쫓겨나 방황하는 사람들을 우악스럽게 붙잡아 강제노동 비슷하게 일 시킬 때도 있었다. 노사의 자유로운 거래에만 노사관계를 맡겨뒀다가 개별 고용주의 횡포가 전체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판단이 들자, 국가가 나서서 최저임금제나 각종 안전장치를 통해 노사관계의 최소규범을 만드는 시도도 있었다. 노동운동이 본격화되고 대내외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거세졌다. 여기에 양차대전을 치르면서 노동자를 다독일 필요성 등이 합쳐져 노동권은 사회보장권과 함께 인권의 새로운 양상으로 떠올랐다.

기나긴 수난과 투쟁, 억압과 용인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노동인권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노동권은 개인의 자유의 회복을 의미한다. 근대 자유방임의 인권체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계약자유의 원칙 하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했다. 형식으로는 시민일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노동자인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은 자유의 상실을 또한 의미한다. 노동자가 시민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자유방임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권이다. 흔히 노동권이라 하면 물질적 재화의 분배시정만을 떠올리는데 노동권의 진짜 의미는 자유의 평등한 분배를 꾀하는 데 있다. 사람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종류의 삶을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자유를 갈구한다. 이 자유를 누리는 데는 물적 조건이 필수적이다. 이 물적 조건을 수동적인 수신자로서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단결하여 개개인이 갖는 취약성을 극복하고 사회경제적 권력에 대항하여 구체적인 자유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다. 노동자의 자유로운 의사가 생존의 기초이며, 노동자의 자유의사를 표출하는 몸뚱이가 결사의 자유다. 노동자의 의사는 영리활동을 위한 자유에 자유를 가둬둘 수 없다는 것이었고, 갇힌 자유에 대한 부정은 기본적 생존요구를 포함하는 구체적 자유의 실현을 추진했다.

둘째 노동권은 사회진보의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노동자의 결사와 집단적인 의사표시, 특히 파업은 정치적 및 경제적 권력에 대한 저항수단이다. 노동자의 의사표시가 집약되는 것이 노동자의 집단행동이요 그 절정이 파업이다. 앞서 살펴본 예에서처럼 노동자의 집단적 의사표시는 전쟁반대를 외치기도 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방송사 노조 때문에 방송사가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나마 유지하는 것이고, 병원노조 때문에 병원을 사기업과 똑같이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나마 가능한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에 고쳐야 할 사회의 환부가 드러나는 것이다. 노동권을 세계적으로 기본적인 권리라 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어디에서나 독재정권이 먼저 때려잡는 것은 진보적 지식인이나 학생만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였다. 한 국가에서 노동자의 권리지위는 일반적인 인권의 지위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첫째 신호는 흔히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인 결사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다. 억압적인 체제는 불가피하게 노동조합을 억압하고 통제하려 한다.

결사의 자유는 기본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권에 관한 조항은 앞서 살펴본 20조의 결사의 자유, 그리고 23조와 24조이다. 결사의 자유는 노동권의 핵심이다. ILO 헌장(1919) 서문에서는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를 기초로 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으므로, 생산에 참여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결사의 자유 원칙의 승인 등이 급선무이므로”라 했고, ILO헌장의 부속서인 필라델피아 선언(1944)에서도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라 했다.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1948년에 국제노동기구(ILO)도 대표적인 협약을 만들었는데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 87호)이다. 노동자의 단결권이 두 기념비적인 국제문서에 포함된 것은 사회정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결권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20조에서 뿐만 아니라 23조에서도 다시 한 번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말한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도 있었다. 선언에서 이미 결사의 자유를 언급했는데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또 명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었다.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옹호한 편에서는 이런 주장을 펼쳤다. “다른 형태의 결사들은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지만 노동조합은 많은 반대를 겪어 왔고 결사의 자유의 형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노동조합 인정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돼야 한다”, “현대 경제생활에서 노동조합활동의 특별한 중요성 때문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등이다.이런 논쟁만으로 노동조합 결사권이 선언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노동조합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권리를 세계인권선언에 넣자고 촉구하는 캠페인(“The Campaign for Trade Union Rights")을 강력히 펼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노동조합연맹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전후 노조의 곤경을 분석·보고한 장문의 비망록을 보냈다. 경제사회이사회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곤란을 느껴 ILO의 조언을 구했고, 국제노동기구는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조합 결사권을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선언의 기초자들은 이런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가 음모로 간주되던 시기는 지나갔다. 노동자의 결사를 음모로 보는 것은 20세기가 아닌 19세기의 개념이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사수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가 선언기초자들의 합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 87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단결을 19세기식의 음모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비준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ILO 회원국이다. ILO는 모든 회원국에게 필수적으로 챙겨야할 종합선물세트를 안겼다. 1998년 6월 ILO총회는 ILO가 제정해온 수많은 협약과 권고 중에서 8개 협약을 모든 회원국이 지켜야 할 기본협약으로 선언했다. 즉 한국이 87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 회원국이라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이 기본협약에 내포된 원칙들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이 기본협약 가운데 비준하고 있는 것은 절반이다. 아동노동철폐와 관련된 것으로 한국정부가 부담 느끼지 않을 소위 만만한 것들만 비준했다. 노동권의 보장과 직접 관련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제98호), ‘강제노동협약’(제 29호), ‘강제노동철폐협약’(제105호)은 어느 것도 비준하지 않았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23조와 24조가 규정한 권리는 일할 권리, 자유로운 직업선택,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실업에 대한 보호, 차별 없이 동등한 노동에 대한 동등한 임금,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여가시간과 합리적인 노동시간을 가질 권리, 유급휴가를 가질 권리이다. 이 모든 권리에 깔린 핵심 생각은 인간 노동은 착취되거나 가능한 한 싼값에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선언을 만들 때 이 조항은 “인간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로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 문구는 삭제됐지만 지금 있는 조항이 갖는 메시지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23조와 24조에 담긴 권리를 총체적으로 부정당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쓰다 버린다, 더 싼 것으로 바꾼다, 빌려 쓴다, 잡음이 없을수록 좋다’는 게 인간의 노동에 적용되고 있다. 노동권이란 게 노동자라는 존재를 인정해야 가능한 것인데, 노동자를 노동자라 하지 않고 사용자를 사용자라 하지 않는 관행이 판치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이란 말은 법조문에도 없다. 단기 계약직 노동자, 외주화로 인한 파견․용역 등 간접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가 있는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기존 정규직도 이런 비정규직이나 영세빈곤자영업자로 전락해가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실상은 감원과 인건비 절약을 통한 돈벌이에 푹 빠져 있지는 않은가. 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려 노동자를 고용하지도 못하고, (매일 가족처럼 일하자고 해놓고)있는 식구도 내쫓고, 일시키면서 노동자 취급을 안 하고 어디서 빌려온 연장쯤으로 여기고, 법을 악용해 2년마다 갈아치우는 식으로 돈벌이 한다. 여기에 인간으로서 노동자가 저항하는 것이 노동권의 행사인데 국가는 이를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속, 수배, 형벌, 손해배상, 가압류 등 손톱을 세우고 할퀴어 댄다.

파업은 노동자가 그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주를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파업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토론이 없었던 건 아니다. 파업권을 지지한 국가들은 많았지만 이 문제를 추상적인 선언에서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뿐이다. 강력하게 파업권을 지지한 대표적인 국가는 스웨덴이었는데, 그 입장은 이랬다. “파업권은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 가져야 할 도구이다. 모든 사람은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에서는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노동을 그만둘 권리를 갖는다.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에서 더 이상 일해선 안 된다고 느낄 때 개별 노동자가 일하는 것을 그만 둘 자유가 있어야만 결사의 자유는 시민의 자유로서 의미를 갖는다. 노동조합의 권리가 정당한 보수와 합리적 노동시간의 권리를 이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파업권은 노동조합의 권리를 이행하는 수단이다. 파업권 없이는 노동조합의 권리가 무의미하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은 계속 존재를 허용 받았지만 파업권이 없었다. 파업권 없는 노동조합의 자유는 환각이었다.” 선언에는 없지만 ILO 협약이나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협약에는 파업권이 명시돼 있다. 또한 한국처럼 파업 자체를 이유로 노동자를 체포하거나 구금하는 예는 거의 없다. 노동자가 가진 건 노동력뿐이고 자기 의사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 파업을 형벌로 처벌하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자유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사회경제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지배 권력의 무능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입만 열면 법치주의를 강조한다. 법대로는 파업이 불가능하고 법대로는 그냥 직장에서 내쫓겨야 하고 법대로는 항의조차 할 수 없는데 그런 법을 지키라는 것은 고장 난 신호등이 파란불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서 차에 치어죽을 줄 알면서 파란불이니까 무조건 건너야 한다는 것과 같다.

노동자를 상시고용하고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 비정규직 고용의 고용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라는 요구, 파견․용역회사 뒤에 숨지 말고 사용자면 사용자답게 처신하라는 것, 노동자는 노동자이지 정규직․비정규직이 그 본질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노동권은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하고 그 기본은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은 상식적 요구다. 상식을 무시하는 기업과 정부, 그리고 사법당국에게 상식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든 시민이 노동인권에 대해 깨인 눈과 연대의 정신을 갖는 것이다. 노동인권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금전적 이윤이라는 목적아래 종속시킬 때 정부는 절대왕정의 모습을 띠게 되고 진짜 주권적 힘을 갖는 것은 기업총수와 금융총수가 될 것이다.

휴식의 권리

“우리는 노동하는 사람들로서 우리 자신의 노동, 건강, 시간과 삶을 스스로 통제할 권리를 되돌려 받으려 한다. 우리의 핵심 요구는 모든 사람이 생활임금을 받는 주 40시간 노동의 권리다. 우리가 요구하는 바는 우리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4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주당 40시간 노동의 일부로서 보상을 받으면서 집에서 다음 세대를 양육할 시간을 가질 권리다. … 금융 자본가들과 고용주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다운사이징, 하청, 아웃소싱, 일시적이고 불안정적인 노동을 이용하여 우리에게서 거대한 부를 쥐어짜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긴 시간을 노동하고 있고 그로 인해 부상과 직업적 질병이 초래된다. 의료적 치료, 보상, 휴식과 회복에 대한 우리의 인권은 점점 더 침해당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착취 체제는 우리가 직업 외에 하는 일, 예를 들어 아이를 기르는 일 같은 고된 노동에 대해 보상하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의 자유와 삶을 강탈하며, 우리를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기계로 바꿔놓고 있다.”(노동착취공장에 저항하는 전국행동 The National Mobilization Against Sweatshops 성명 중에서)

외국의 한 웹사이트에서 본 문구이다. 이들의 캠페인이 장기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것 중에는 시간에 대한 통제를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잠재성의 증진을 최우선으로 삼는 새로운 가치를 가진 문화를 창조하는 것, 어머니의 노동을 포함하여 여성의 노동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 등이 들어있다.
여기서 우리는 휴식과 여가의 권리란 것이 단지 일을 했으니까 ‘쉰다’, 다음 노동을 위해 ‘준비’한다는 의미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노동시간의 제한을 둘러싼 투쟁은 노동자 편에서는 노동착취를 깨려는 투쟁이고 자본가 편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취하려는 투쟁이다. 노동절의 유래도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한 파업에서 유래됐고 많은 생명과 자유가 희생됐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오늘날 노동권의 처지가 열악하다보니 노동과 연계된 휴식과 여가의 처지도 딱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주 40시간 노동을 도입하고도 전체 노동시간이 줄지 않고 있다 한다. 그 이유는 임금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는 게 진짜 휴식과 여가의 의미를 가지려면 임금이 보전되는 시간단축이어야 한다. ILO 협약 중 주 40시간 관련 규정에는 생활수준 저하를 동반하지 않은 주 40시간 노동을 말하고 있다. 즉 임금을 줄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측은 시간과 함께 임금을 줄이려 들고 노동을 둘러싼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는 사실상 임금이 삭감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줄어든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사실상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다. 소위 ‘자발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잔업이다 특근이다 해서 제 몸 망가지는 줄 모르고 일을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기본급 수준이 엄청 낮을뿐더러 간접임금이라 할 사회보장 수준도 열악하다. 그러니 더 오랜 시간 일을 해서 수당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을 만들면서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의 권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행되느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선언에서 이를 모두 포함시킬 수는 없었기에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라는 말만 남게 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조건, “유급”이라는 것은 반드시 포함돼야 했다. 임금 없는 휴식의 권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의미였다. 선언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그 배경 토론에서는 휴식이 갖춰야 할 도덕적 요구가 있었다. 자본의 ‘강탈’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 외국인이나 사회취약계층을 배제하지 않는 휴식, 휴식이 요구될 때 사회의 잘못되고 불충분한 여건으로 인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이다. 세계인권선언에 노동권 조항이 만들어질 당시에 노동자들이 유엔에 제출했다는 비망록에는 노동조합의 기반을 파괴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성토가 가득 담겼다고 한다. ‘노조의 모임 장소를 대여할 수 없게 한다’, ‘단체협약을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동자에게 강요된 불의를 고칠 수단이 없다’ 등, 정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세계인권선언의 노동권 조항은 노동자들 손아귀에 잡힐 때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파업의 이유

몇 해 전 한 건설노조가 파업을 했다. 요구사항은 이런 것이었다. ‘근로조건을 개선해 달라’, 그 내용은 하루 8시간 노동, 유급휴일, 주휴, 월차수당을 보장해 달라는 거였다. ‘산업안전보장’, 그 내용은 가스실 들어갈 때 가스마스크를 달라는 거였다. ‘뭐, 이런 걸 갖고 파업을 하나, 파업을 안 하면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보장 안 되나’ 생각이 드는 순간 다음 요구사항에선 기가 막혔다. ‘중식 및 휴게시설 확보’, 그 내용은 화장실이 없어 노상방뇨를 하는 형편이고, 도로 담벼락에 붙어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일마치고 씻을 세면장이 없고, 밥 먹을 식당이 없어서 먼지 풀풀 날리는 길거리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 그걸 시정해 달라는 거였다. 마지막 요구사항은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는 거였다.

이거 뭐야, 8시간 노동제 요구는 1886년인가에 내걸었던 요구고, 폐병 걸려 피를 토한 여공이 ‘손 씻을 곳이 없어요.’라고 울부짖는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본 게 10년도 넘었다. 노동조합이 아직도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해야만 가능한 조직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나는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몇 해 전 이라크 파병철회를 내걸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전교조 소속 교사들은 반전․평화수업에 나섰다. 이에 정부는 이라크 파병철회를 내건 파업은 불법이라며 엄단하겠다고 했다. 한 집회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도 필요하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도 앞장서야 한다”며 파병반대와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같이 외쳤다. “노동자들은 모든 전쟁을 반대하며 민주주의와 평화를 원한다. 이라크 파병은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노동부 장관은 “파병반대라는 정치적 목적을 관철할 의도로 파업을 벌이는 것은 책임 있는 노동운동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보다 훨씬 이전 이라크 침공이 있기 전에 수백만 명의 유럽 노동자들이 미국 주도하의 이라크 군사공격 가능성에 항의하여 일시 파업을 했다. 자동차 공장이 멈추고 열차 운행이 중단된 곳도 있었다. 노동자가 전쟁반대를 위해서는 파업을 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은 당시 보도에서 볼 수 없었다.
이 사례에서 엿볼 수 있는 고질적인 생각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노동자만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서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면 ‘밥그릇 투쟁’이니 ‘이기주의’라 욕하고, 다른 사회적 목적을 위해 투쟁하면 노동운동이 ‘정치화’됐다면서 원래 생존권 투쟁으로 돌아가라고 윽박지른다. 노동권은 시민으로서의 노동자가 생존에 필수적인 자기 일터에서 이를 지배하는 규범을 자율적으로 형성할 뿐 아니라 더 큰 사회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기능과 역할을 수행한다.

노동권의 역사와 의의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있는데 노동인권은 뭐야, 노동자만 특별 취급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맞다. 노동인권은 노동자를 특별 취급하는 인권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라는 표현이 유일하게 등장하는 것이 노동권 관련 조항이다. 그런데 이 특별취급의 이유가 노동자를 더 잘 대접하겠다는 취지는 아니다. 노동자도 시민이며 시민으로서 기본적 인권을 갖는다. 그런데 노동자의 처지가 하도 취약해서 개별 노동자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기본권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즉 노동자로서의 시민은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자본가와 대항하여 싸우기에 힘이 부치고 그 결과 기본권을 누리기 어려우므로 단결을 통해 거래능력의 취약함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결과로서 성취하는 것은 뭔가 노동자에게만 허용된 특수한 권리를 덤으로 더 얻는 게 아니라 원래 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누릴 수 없었던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인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에서 말하는 노동권은 임노동관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와 더불어 등장한 근대인권체계는 모든 사람을 신분제의 예속에서 해방시켰다. 그래서 노동자도 자유를 얻었지만 이 자유는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부자유를 내포한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신분제도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토지 등 생산수단으로부터도 분리됐다. 이제 자유의사에 의해 근로계약을 맺고 살아가라 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자유계약이라 했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상 부자유한 종속관계가 임노동관계이다. 그리고 경제적 독립성은 시민에게 허용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이 됐다. 사상․표현의 자유도, 정치활동의 자유도 부자유한 노동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노동자는 자립할 재산이 없다하여 참정권도 주지 않았고, 노동자의 불리한 처지에서 어쩔 수 없이 맺은 노동계약은 인간다운 생활을 허용치 않는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노동을 강요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소득으론 입에 풀칠하기 어려워 어린 자식과 부녀자도 위험한 노동에 내몰려야 했다. 여기서 여성의 노동은 자기실현을 위한 사회참여와는 거리가 멀었다. 참다못해 노동자들이 단결을 하면 불온한 행위라 하여 처벌을 했다. 하지만 노동자의 대표가 하나도 없는 의회도 그런 의회가 만들어낸 법도 노동자들의 편은 아니었다. 이에 노동자들은 필사적으로 단결을 했고 사회경제적 권력에 도전을 했다. 그런 도전이 하도 광범위하여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자, 법원도 처벌하기를 단념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노동자에 대한 처사가 너무 심하다는 현실에 대한 공감도 깔려 있었고,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인권을 누릴 가능성이 없다는 인정도 깔려 있었다.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시민에게 보장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없기에 노동자는 단결하여 집단적으로 권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 노동인권으로 표현된 것이다.
인권의 역사가 이러하니 노동인권은 노동자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노동자의 열악한 권리상황의 증거인 것이다. 노동인권에 대한 인정에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주효했지만 자본주의 자체 내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일단 노동력을 만들기 위해 농촌에서 농부들의 땅을 빼앗아 내몰았던 때가 있었고, 쫓겨나 방황하는 사람들을 우악스럽게 붙잡아 강제노동 비슷하게 일 시킬 때도 있었다. 노사의 자유로운 거래에만 노사관계를 맡겨뒀다가 개별 고용주의 횡포가 전체 체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판단이 들자, 국가가 나서서 최저임금제나 각종 안전장치를 통해 노사관계의 최소규범을 만드는 시도도 있었다. 노동운동이 본격화되고 대내외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거세졌다. 여기에 양차대전을 치르면서 노동자를 다독일 필요성 등이 합쳐져 노동권은 사회보장권과 함께 인권의 새로운 양상으로 떠올랐다.
기나긴 수난과 투쟁, 억압과 용인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노동인권의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노동권은 개인의 자유의 회복을 의미한다. 근대 자유방임의 인권체계에서는 모든 사람이 계약자유의 원칙 하에서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했다. 형식으로는 시민일지 모르나 현실에서는 노동자인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존조차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은 자유의 상실을 또한 의미한다. 노동자가 시민적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자유방임을 교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노동권이다. 흔히 노동권이라 하면 물질적 재화의 분배시정만을 떠올리는데 노동권의 진짜 의미는 자유의 평등한 분배를 꾀하는 데 있다. 사람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종류의 삶을 선택하고 영위할 수 있는 자유를 갈구한다. 이 자유를 누리는 데는 물적 조건이 필수적이다. 이 물적 조건을 수동적인 수신자로서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단결하여 개개인이 갖는 취약성을 극복하고 사회경제적 권력에 대항하여 구체적인 자유의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다. 노동자의 자유로운 의사가 생존의 기초이며, 노동자의 자유의사를 표출하는 몸뚱이가 결사의 자유다. 노동자의 의사는 영리활동을 위한 자유에 자유를 가둬둘 수 없다는 것이었고, 갇힌 자유에 대한 부정은 기본적 생존요구를 포함하는 구체적 자유의 실현을 추진했다.
둘째 노동권은 사회진보의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노동자의 결사와 집단적인 의사표시, 특히 파업은 정치적 및 경제적 권력에 대한 저항수단이다. 노동자의 의사표시가 집약되는 것이 노동자의 집단행동이요 그 절정이 파업이다. 앞서 살펴본 예에서처럼 노동자의 집단적 의사표시는 전쟁반대를 외치기도 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시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방송사 노조 때문에 방송사가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나마 유지하는 것이고, 병원노조 때문에 병원을 사기업과 똑같이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나마 가능한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 또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에 고쳐야 할 사회의 환부가 드러나는 것이다. 노동권을 세계적으로 기본적인 권리라 하는 것은 그것이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어디에서나 독재정권이 먼저 때려잡는 것은 진보적 지식인이나 학생만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였다. 한 국가에서 노동자의 권리지위는 일반적인 인권의 지위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첫째 신호는 흔히 가장 기본적인 노동자의 권리인 결사의 자유에 대한 침해이다. 억압적인 체제는 불가피하게 노동조합을 억압하고 통제하려 한다.

결사의 자유는 기본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권에 관한 조항은 앞서 살펴본 20조의 결사의 자유, 그리고 23조와 24조이다. 결사의 자유는 노동권의 핵심이다. ILO 헌장(1919) 서문에서는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를 기초로 함으로써만 확립될 수 있으므로, 생산에 참여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결사의 자유 원칙의 승인 등이 급선무이므로”라 했고, ILO헌장의 부속서인 필라델피아 선언(1944)에서도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이라 했다.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1948년에 국제노동기구(ILO)도 대표적인 협약을 만들었는데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 87호)이다. 노동자의 단결권이 두 기념비적인 국제문서에 포함된 것은 사회정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단결권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세계인권선언에서는 20조에서 뿐만 아니라 23조에서도 다시 한 번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말한다. 이에 대해 반대 의견도 있었다. 선언에서 이미 결사의 자유를 언급했는데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또 명시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었다. 노동조합 결사의 자유를 옹호한 편에서는 이런 주장을 펼쳤다. “다른 형태의 결사들은 오랫동안 인정받아 왔지만 노동조합은 많은 반대를 겪어 왔고 결사의 자유의 형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이다”, “노동조합 인정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므로 노동조합에 대해 구체적 언급이 돼야 한다”, “현대 경제생활에서 노동조합활동의 특별한 중요성 때문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 등이다.이런 논쟁만으로 노동조합 결사권이 선언에 포함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노동조합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권리를 세계인권선언에 넣자고 촉구하는 캠페인(“The Campaign for Trade Union Rights")을 강력히 펼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세계노동조합연맹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전후 노조의 곤경을 분석·보고한 장문의 비망록을 보냈다. 경제사회이사회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곤란을 느껴 ILO의 조언을 구했고, 국제노동기구는 세계인권선언에서 노동조합 결사권을 다루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했다. 선언의 기초자들은 이런 제안을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가 음모로 간주되던 시기는 지나갔다. 노동자의 결사를 음모로 보는 것은 20세기가 아닌 19세기의 개념이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사수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가 선언기초자들의 합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 87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의 단결을 19세기식의 음모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비준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의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ILO 회원국이다. ILO는 모든 회원국에게 필수적으로 챙겨야할 종합선물세트를 안겼다. 1998년 6월 ILO총회는 ILO가 제정해온 수많은 협약과 권고 중에서 8개 협약을 모든 회원국이 지켜야 할 기본협약으로 선언했다. 즉 한국이 87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 회원국이라는 바로 그 사실만으로 이 기본협약에 내포된 원칙들을 준수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이 기본협약 가운데 비준하고 있는 것은 절반이다. 아동노동철폐와 관련된 것으로 한국정부가 부담 느끼지 않을 소위 만만한 것들만 비준했다. 노동권의 보장과 직접 관련된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 협약’(제98호), ‘강제노동협약’(제 29호), ‘강제노동철폐협약’(제105호)은 어느 것도 비준하지 않았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23조와 24조가 규정한 권리는 일할 권리, 자유로운 직업선택,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 실업에 대한 보호, 차별 없이 동등한 노동에 대한 동등한 임금,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 여가시간과 합리적인 노동시간을 가질 권리, 유급휴가를 가질 권리이다. 이 모든 권리에 깔린 핵심 생각은 인간 노동은 착취되거나 가능한 한 싼값에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선언을 만들 때 이 조항은 “인간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문구로 시작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 문구는 삭제됐지만 지금 있는 조항이 갖는 메시지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23조와 24조에 담긴 권리를 총체적으로 부정당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다. ‘쓰다 버린다, 더 싼 것으로 바꾼다, 빌려 쓴다, 잡음이 없을수록 좋다’는 게 인간의 노동에 적용되고 있다. 노동권이란 게 노동자라는 존재를 인정해야 가능한 것인데, 노동자를 노동자라 하지 않고 사용자를 사용자라 하지 않는 관행이 판치고 있다. 사실 ‘비정규직’이란 말은 법조문에도 없다. 단기 계약직 노동자, 외주화로 인한 파견․용역 등 간접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가 있는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기존 정규직도 이런 비정규직이나 영세빈곤자영업자로 전락해가는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것처럼 큰소리치지만 실상은 감원과 인건비 절약을 통한 돈벌이에 푹 빠져 있지는 않은가. 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려 노동자를 고용하지도 못하고, (매일 가족처럼 일하자고 해놓고)있는 식구도 내쫓고, 일시키면서 노동자 취급을 안 하고 어디서 빌려온 연장쯤으로 여기고, 법을 악용해 2년마다 갈아치우는 식으로 돈벌이 한다. 여기에 인간으로서 노동자가 저항하는 것이 노동권의 행사인데 국가는 이를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속, 수배, 형벌, 손해배상, 가압류 등 손톱을 세우고 할퀴어 댄다.
파업은 노동자가 그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주를 압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파업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한 토론이 없었던 건 아니다. 파업권을 지지한 국가들은 많았지만 이 문제를 추상적인 선언에서 다루기 어렵다는 이유로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 뿐이다. 강력하게 파업권을 지지한 대표적인 국가는 스웨덴이었는데, 그 입장은 이랬다. “파업권은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이익 보호를 위해 가져야 할 도구이다. 모든 사람은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에서는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길 때 노동을 그만둘 권리를 갖는다. 기존의 또는 제공되는 경제 조건에서 더 이상 일해선 안 된다고 느낄 때 개별 노동자가 일하는 것을 그만 둘 자유가 있어야만 결사의 자유는 시민의 자유로서 의미를 갖는다. 노동조합의 권리가 정당한 보수와 합리적 노동시간의 권리를 이행하기 위한 수단이라면 파업권은 노동조합의 권리를 이행하는 수단이다. 파업권 없이는 노동조합의 권리가 무의미하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서 노동조합은 계속 존재를 허용 받았지만 파업권이 없었다. 파업권 없는 노동조합의 자유는 환각이었다.” 선언에는 없지만 ILO 협약이나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협약에는 파업권이 명시돼 있다. 또한 한국처럼 파업 자체를 이유로 노동자를 체포하거나 구금하는 예는 거의 없다. 노동자가 가진 건 노동력뿐이고 자기 의사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데, 파업을 형벌로 처벌하는 것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자유조차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사회경제적 갈등을 해결할 수 없는 지배 권력의 무능함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입만 열면 법치주의를 강조한다. 법대로는 파업이 불가능하고 법대로는 그냥 직장에서 내쫓겨야 하고 법대로는 항의조차 할 수 없는데 그런 법을 지키라는 것은 고장 난 신호등이 파란불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서 차에 치어죽을 줄 알면서 파란불이니까 무조건 건너야 한다는 것과 같다.
노동자를 상시고용하고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 비정규직 고용의 고용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라는 요구, 파견․용역회사 뒤에 숨지 말고 사용자면 사용자답게 처신하라는 것, 노동자는 노동자이지 정규직․비정규직이 그 본질은 아니라는 것, 따라서 노동권은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돼야 하고 그 기본은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은 상식적 요구다. 상식을 무시하는 기업과 정부, 그리고 사법당국에게 상식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든 시민이 노동인권에 대해 깨인 눈과 연대의 정신을 갖는 것이다. 노동인권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금전적 이윤이라는 목적아래 종속시킬 때 정부는 절대왕정의 모습을 띠게 되고 진짜 주권적 힘을 갖는 것은 기업총수와 금융총수가 될 것이다.

휴식의 권리

“우리는 노동하는 사람들로서 우리 자신의 노동, 건강, 시간과 삶을 스스로 통제할 권리를 되돌려 받으려 한다. 우리의 핵심 요구는 모든 사람이 생활임금을 받는 주 40시간 노동의 권리다. 우리가 요구하는 바는 우리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40시간이 넘는 노동시간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 주당 40시간 노동의 일부로서 보상을 받으면서 집에서 다음 세대를 양육할 시간을 가질 권리다. … 금융 자본가들과 고용주들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다운사이징, 하청, 아웃소싱, 일시적이고 불안정적인 노동을 이용하여 우리에게서 거대한 부를 쥐어짜고 있다. 우리는 점점 더 긴 시간을 노동하고 있고 그로 인해 부상과 직업적 질병이 초래된다. 의료적 치료, 보상, 휴식과 회복에 대한 우리의 인권은 점점 더 침해당하고 있다. 이러한 노동착취 체제는 우리가 직업 외에 하는 일, 예를 들어 아이를 기르는 일 같은 고된 노동에 대해 보상하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의 자유와 삶을 강탈하며, 우리를 사용하고 버릴 수 있는 기계로 바꿔놓고 있다.”(노동착취공장에 저항하는 전국행동 The National Mobilization Against Sweatshops 성명 중에서)
외국의 한 웹사이트에서 본 문구이다. 이들의 캠페인이 장기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것 중에는 시간에 대한 통제를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잠재성의 증진을 최우선으로 삼는 새로운 가치를 가진 문화를 창조하는 것, 어머니의 노동을 포함하여 여성의 노동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 등이 들어있다.
여기서 우리는 휴식과 여가의 권리란 것이 단지 일을 했으니까 ‘쉰다’, 다음 노동을 위해 ‘준비’한다는 의미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노동시간의 제한을 둘러싼 투쟁은 노동자 편에서는 노동착취를 깨려는 투쟁이고 자본가 편에서는 더 많은 이윤을 취하려는 투쟁이다. 노동절의 유래도 하루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한 파업에서 유래됐고 많은 생명과 자유가 희생됐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앞서 살펴봤듯이 오늘날 노동권의 처지가 열악하다보니 노동과 연계된 휴식과 여가의 처지도 딱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주 40시간 노동을 도입하고도 전체 노동시간이 줄지 않고 있다 한다. 그 이유는 임금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이 줄어든다는 게 진짜 휴식과 여가의 의미를 가지려면 임금이 보전되는 시간단축이어야 한다. ILO 협약 중 주 40시간 관련 규정에는 생활수준 저하를 동반하지 않은 주 40시간 노동을 말하고 있다. 즉 임금을 줄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측은 시간과 함께 임금을 줄이려 들고 노동을 둘러싼 환경이 열악한 상황에서는 사실상 임금이 삭감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줄어든 임금을 보충하기 위해 사실상 더 많이 일할 수밖에 없다. 소위 ‘자발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잔업이다 특근이다 해서 제 몸 망가지는 줄 모르고 일을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기본급 수준이 엄청 낮을뿐더러 간접임금이라 할 사회보장 수준도 열악하다. 그러니 더 오랜 시간 일을 해서 수당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을 만들면서 노동자의 휴식과 여가의 권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행되느냐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선언에서 이를 모두 포함시킬 수는 없었기에 “휴식과 여가에 관한 권리”라는 말만 남게 된다. 하지만 단 하나의 조건, “유급”이라는 것은 반드시 포함돼야 했다. 임금 없는 휴식의 권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의미였다. 선언에 쓰여 있지는 않지만 그 배경 토론에서는 휴식이 갖춰야 할 도덕적 요구가 있었다. 자본의 ‘강탈’에 의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 외국인이나 사회취약계층을 배제하지 않는 휴식, 휴식이 요구될 때 사회의 잘못되고 불충분한 여건으로 인해 왜곡되지 않는 휴식이다. 세계인권선언에 노동권 조항이 만들어질 당시에 노동자들이 유엔에 제출했다는 비망록에는 노동조합의 기반을 파괴하려는 시도들에 대한 성토가 가득 담겼다고 한다. ‘노조의 모임 장소를 대여할 수 없게 한다’, ‘단체협약을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노동자에게 강요된 불의를 고칠 수단이 없다’ 등, 정말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세계인권선언의 노동권 조항은 노동자들 손아귀에 잡힐 때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인권오름 제 163 호 2009년 07월 29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역자 주>
2009년 7월 대한민국에서는 생존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물도 밥도 변소도 의약품도 의사도 협상도 막혔다. 뚫린 것이란 최루액과 테이저 건, 비처럼 쏟아 붇는 공포이다. ‘노동자의 인권’이란 단어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 스스로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노동권을 인권으로서 고찰한 연구 보고서를 요약, 소개한다. 이 보고서의 원문은 http://www.du.edu/gsis/hrhw/working/2006/36-adams-2006.pdf 에서 볼 수 있다.

노동자의 인권: 핵심 노동권의 인권으로서의 성격과 구조에 대한 고찰

Labor's Human Rights: A Reveiw of the Nature and Status of Core Labor Rights as Human Rights(Roy J.Adams, McMaster University, 2006)

도입
인권은 모든 사람이 단지 인간임으로서 해서 갖는 권리이고 본질상 보편적이다. 설령 인권이 억압되거나 방임될 수 있을지라도 국가 또는 비국가 행위자가 법적으로 인권을 부여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빼앗아갈 수도 없다. 국제사법재판소의 표현에 따르면 인권은 모두가 모두에게 진 의무이다.

권리의 종류로서 노동권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두 개의 의미를 지닌다. 넓은 의미에서 노동권은 국제인권장전에 포괄된 노동자의 권리를 포함한다. 좁은 의미에서는 흔히 노동조합의 권리로 언급되며, 이것은 노동조건의 수립에서 집단적 목소리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에 집중한다.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협상할 권리로서의 결사의 자유와 고용 영역에서의 결사의 자유의 명시는 현대의 세계적인 인권 체제의 수립보다 앞선 일이다. 지구적 관심사의 초점인 인권의 유산은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결사의 자유는 1944년 국제노동기구(ILO)의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보편적 권리로 분명하게 인정돼 있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훗날의 세계인권선언에 영감과 지침을 제공한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일부 국가에서 결사의 권리와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가 인권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정치 체제의 변화에 따라 확대되거나 줄어들 수 있는 제정법적 권리로 취급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고용 영역에 결사의 자유로 명시된 단체 협상의 인권적 성격

결사의 권리와 자신의 고용조건을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가 왜 인권으로 선포되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정치경제적 제도의 발전을 고찰해야 한다.

노동권은 재산권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18, 19세기 산업혁명 동안 자본을 공급하고 기업을 시작한 자본가 기업가가 생산과정의 최종 산물을 소유한다는 관례가 일반적으로 수립됐다. 이속에서 개별 노동자는 임금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거나 자본가에게 고용되는 노동계약 시스템이 존재하게 됐다. 관례적으로 기업가가 최종 산물을 “소유”한다 할지라도 1800년경까지 일반적으로 인정된 바는 원자재를 보다 가치 있는 산물로 변형시키는 일차적 요소는 노동이라는 점이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누군가가 나무로 시작하여 의자로 마쳤다면 나무의 가치가 증가된 것은 무엇보다도 최종 산물에 녹아든 노동 때문이다.

산업혁명 과정에 농민들의 땅에 머물 권리와 거기서 먹고 입으며 살만한 양의 산물을 받을 수 있는 봉건 규범은 깨졌다. 자유노동이란 스스로 하는 것이며, 그것의 유일한 의무란 임금 계약을 이행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개별 노동자의 협상력은 자본가의 그것에 비해 아주 열악하기 때문에 임금 협상은 흔히 빈곤과 불안의 상태로 귀결됐다.

이런 조건에서 터져 나온 것이 ‘노동운동’이었다. 노동운동은 19세기의 공통되고 점증하는 현상이었다. 이 운동의 지배적인 흐름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개의 주요 목적을 가졌다. 정치 영역에서의 민주주의는 피지배자에게 선출되는 정부와 피지배자에게 책임지는 정부를 의미하게 됐다. 사회주의는 사회의 생산역량을 자본가를 위한 이윤 생산의 장치가 아니라 인민의 이름으로 국가가 소유하고 만인의 이익이 되도록 운영하는 것이었다.

서유럽에서는 노동과 자본 간의 국가적 타협이 대부분의 국가에서 작동했다. 이런 타협의 가장 공통된 형태는 노동측이 자본 측의 생산을 조직하고 주도할 권리, 소유권과 이윤을 취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반면 자본 측은 노동자의 결사의 권리, 노동자 스스로가 선택한 대표자를 통해 계약 사항을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었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경제적 및 사회적 정책에 대해 자본과 국가와 함께 결정할 권리의 인정이었다. 노동과 자본은 사회적 동반자가 될 것이라 말하게 됐다.

ILO의 지도를 통해 유사한 지구적 타협이 발생했다. 노동, 기업, 정부 대표자들이 ILO 연례 노동 회의에서 결사의 자유와 단체협상 협약에 합의하게 됐다. 그 후로 이들 협약에 담긴 원칙은 거의 모든 국가에 의해 인준됐고 ILO는 적극적으로 이를 증진했다. ILO 기준에 따르면 노동은 조직할 권리, 노동의 조건을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 경제사회정책의 결정과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이들 기준이 완전히 존중된다 할지라도 노동자에게 인권을 제공하는지는 여전히 문제이다. 적어도 두 개의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조직하고 집단적으로 협상할 권리는 조직과 단체협상을 안 할 권리도 포함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되고 따라서 집합적 대표성의 부재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둘째, 생산을 조직하고 지도하며 생산과정의 결과를 소유할 자본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협약은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노동자의 권리가 완전히 존중되려면 단체협상을 넘어서 경제적 기업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로 나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첫 번째 부류의 해석은 잘못됐다고 본다. 단체 협상은 노동조합주의와 긴밀하게 결합돼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을 권리가 단체 협상을 안 할 권리를 포함하는 것으로 결론짓기 쉽다. 하지만 인권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면 두 권리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다수의 유럽 국가들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단체협약에 의해 포괄되는 상황이지만 큰 비율의 사람들이 노동조합원이 아니다. 공통적으로 협상권을 부여받은 노동조합들은 관련 협상 상황에서 ‘가장 대표성’있는 것으로 지명된 노조들이다. 결사에 참여할 권리 또는 하지 않을 권리는 자유를 강화하는 반면에, 단체협약을 자제할 권리는 자유, 민주주의, 인간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작업장에서의 노동자 대표성이 없는 기업에서는 고용주는 명령하고 노동자는 해고의 고통 때문에 그것들을 실행해야 한다. 복종을 위해 고용된다는 바로 그 사실이 노동자에게서 일종의 자율성 또는 책임성을 빼앗는다. 노동자는 고용주에게 복종할 것이 요구되는 고용주의 도구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의 상황은 자유의 심각한 축소로 나타난다. 요약하면 고용주는 자율성, 책임, 자유 없이 지내겠다는 약속을 노동자에게 받아내는 것이고, 이런 자질 없이 존엄성은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유지를 옹호하는 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노동조건이 단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고용주가 개별적으로 협상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전형적인 노동자의 협상력이 고용주의 그것에 비해 아주 열악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결과는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의 양자택일’일 뿐이다. 또한 어떤 규모의 기업에서든지 임금지불시스템 등 광범위한 노동조건은 집단적으로 적용되는 것이지 개별 협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혹자는 이런 힘의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가치란 노동자가 그런 제안을 수락하는데 있어 자유롭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인권에 대한 존중이 외관상의 자유가 축소되는 걸 필요로 한다. 가령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노예로 팔수는 없다. 왜냐하면 노예의 조건은 인간의 기본적인 인간성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고용과 자발적인 노예간의 유사성은 강력하다. 두 시스템 모두에서 인격의 존엄성에 대한 인권에 상반되는 조건에서 사람이 자기 자신을 타인의 통제 하에 둔다. 결과적으로 19세기의 노동권 옹호자들은 일방적인 고용주 통제하의 고용을 일컬어 ‘임금 노예제’라 했고, 그런 지위에 강제로 들어가든 자발적으로 들어가든 간에 노예제에 대한 반대처럼 윤리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지위로 봤다. 노예는 그럴 수 없는 반면에 고용 상태에서는 개인이 계약을 자유롭게 철회할 수 있지 않느냐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안적인 고용기회라는 것이 자신을 또 다른 자본가의 일방적 통제 하에 두는 것밖에 없는 경제 체제에서 둘 사이의 차이성은 구조적으로 사라진다. 계약이 자유이고 자발적이냐와 무관하게 ‘X가 Y의 도구가 될 것에 동의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틀렸다’.

국제체제에서 ILO는 결사의 권리와 단체협상의 권리의 구체적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기구로서 지명돼왔다. 특히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다음을 포괄하는 권리를 수립했다.

1. 노동자의 조직을 결성하거나 가입할 권리
2. 스스로 선택한 지도자를 선출할 권리
3. 노동자 조직이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개발할 권리
4. 노동자 조직을 통하여 고용주에게 집단적 항의를 할 권리
5.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조직을 인정하고 단체협약에 도달할 목적으로 선의로 협상할 고용주의 의무
6. 교착상태의 경우 노동자의 파업권

ILO 원칙과 규범에 따르면 국가는 가능한 최대수의 노동자가 이런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표를 갖고 이런 개념의 단체협상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책임을 진다. 또한 국가는 상호관심사에 대한 합의에 도달할 목적으로 경제사회정책에 관해 노동자 조직 및 고용주 조직과 협의할 적극적인 책임을 진다.

국제인권규범에 대한 준수 이끌기

국제인권장전에 규정된 권리 중에 노동자의 권리로 간주될 수 있는 권리의 범주는 아주 넓다. ILO의 1998년 ‘인권으로서의 노동에서의 기본원칙과 권리선언’에 규정된 다섯 개의 ‘핵심적인 노동권’은 인권장전에서 언급된 것들이다. 다섯 개의 핵심 권리란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아동노동․노예제․기타 형태의 강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소극적 권리)와 결사의 자유의 권리, 조직할 권리, 단체협상을 할 권리(적극적 권리)이다. 국제인권장전에 규정된 추가적 권리는 공정한 임금과 존엄한 생활을 제공하는 임금에 대한 권리,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조건에 대한 권리, 유급휴가의 권리, 합리적인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임산부 유급휴가의 권리, 파업권이다.

적절한 상황에서 노동권으로 간주될 수 있는 또 다른 권리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로부터의 자유,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옥되지 않을 자유이다. 이들 권리는 강제노동이나 아동노동과 결합돼 흔히 위반된다. 평화적 집회의 권리는 파업권과 긴밀히 연관된다.

앞서 말했듯이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를 증진하는 주요기관은 ILO다. 핵심 노동권에 대한 1998년 ILO의 선언은 1995년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의 결과이다. 정상회의는 핵심노동권의 인권적 성격을 선포하고 그에 대한 준수를 촉진할 것을 ILO에 촉구했다. 1996년 세계무역기구(WTO)가 생겼고 노동권 옹호자들은 회원 자격으로서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적 조항’을 포함할 것을 촉구했다. WTO는 핵심 노동권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기는 했지만 이 문제를 ILO에 위탁했다. 골칫거리는 기업을 규제하는 문제이다. 글로벌 컴팩트(Global Compact) 등 여러 지침은 ‘자발성’을 요구할 뿐이다. 최근 몇 년간 보다 강제적인 규제를 향한 움직임이 있으면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은 아동노동, 강제노동, 고용 평등을 서둘러 기구의 결정에 포함시켰지만 노동조합의 권리를 수용하는 데는 느리게 움직였다. 한편 민간단체들은 기업들의 ‘자발적’ 선언에 만족하지 않고 외부의 조사자들이 기업의 관행을 조사할 수 있도록 관련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 결과 국제노동기준에 기반한 규범 형성을 과제로 삼거나 기업행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토록 하거나 투자 결정에 국제노동기준의 준수를 반영토록 하는 등의 일을 과제로 삼는 독립 기구들이 급성장했다. 이런 실험들이 지난 이십 여 년 간 상당히 있었지만 이런 노력의 영향을 평가하는 기술은 아직 개발 단계이다.

국제적 차원에서 노동과 인권문제 전문가들은 핵심 노동권이 기본적 인권이란 것에 대한 강력한 합의에 도달했다. 또한 핵심 노동권의 인권적 성격은 철학적으로나 종교이론에서나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다.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과 기업, 사회의 여타 단위는 이들 권리를 준수하기 위해 도덕적 및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인권오름 제 163 호 2009년 07월 29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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