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11월 10일 인권하루소식 제2934호>

 

11월 13일은 이 땅의 영원한 '노동자'가 태어난 날이다.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 두 살의 젊은 전태일은 스스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절규 속에서 그의 몸과 함께 근로기준법 화형식이 이뤄졌다. 속칭 '빼빼로 데이'는 알아도 11월 13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우울함에 세 번째로 『전태일 평전』을 샀다. 우리 사회의 독보적인 인권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손에 가졌을 때의 제목은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었다. 그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시한 사회분위기 때문에 그런 우회적인 제목을 가졌고, 저자(고 조영래 변호사)의 이름도 적히지 않은 책이었다. 나는 특정 종교재단에 속한 학교라는 이유로 강제 수강해야 했던 종교개론 시간에 맨 뒤에 앉아 시간을 때우려고 이 책을 펴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수업시간인지라 코와 입을 막고 울먹임을 참아야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이 책을 가졌을 때는 『전태일 평전』이라는 제목과 더불어 저자의 이름도 분명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변한 것이 아니었다. 나의 두 번째 책은 경찰의 압수수색에서 불온서적을 소지한 것으로 걸릴 것을 두려워한 친구들에 의해 깨끗이 치워졌다. 그렇게 이 책은 내 손을 강제로 떠났다.

세 번째로 가지게 된 책의 표지는 깔끔하고 세련되게 바뀌어 있다. 마치 전태일이 고발했던 모든 것이 옛일인 듯 시치미 떼고 있는 사회의 뻔뻔함을 반영하듯이 말이다.

"맑은 가을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깊었으며, 그늘과 그늘로 옮겨 다니면서 자라온 나는 한없는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인 서로간의 기쁨과 사랑을 마음껏 음미할 때 내일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며 내가 살아 있는 인간임을 어렴풋이나마 진심으로 조물주에게 감사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갖은 돈벌이에 시달리던 전태일은 열여섯 살이 돼서야 야간학교에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생활고 때문에 1년도 채 다닐 수 없었다. 윗글은 그가 짧은 학창시절에서 경험한 체육대회를 마치고 쓴 글이다. 그늘에서 그늘로 옮겨 다니는 삶 속에서도 스스로의 생명과 존엄을 잘 알고 있는 '인간'을 여기서 대면할 수 있다. 스스로를 존엄한 인간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그 누구도 노예로 만들 수 없다. '모든 인간은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할 가치와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 인권의 교과서적인 선언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권 논의는 이런 선언문 아래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데 머물고 있다. 하지만 핍박을 당하는 사람은 압제자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한가지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한 것은, 너무 작업이 힘들게 작업시간이 길고 힘에 겨운 야간작업을 시키는 것이다. ...공장주인보다 경제적으로 약자인 우리 직공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직공들은 어린아이들 바지를 만들어내는 매수에 따라 월불 계산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우리 미싱사들의 다 같은 불만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1매당 얼마를 준다는 확고한 결정을 하지 아니하고 대목일이 끝난 다음에야 1매당 얼마를 지불한다는 것을 주인이 재단사와 적당히 타협해서 주는 것이다. 언제나 이 모양이기 때문에 일이 바빠 직공들이 매수를 많이 올려도 겨우 평균 월급보다 조금 나은 월급을 받을 뿐이다...나는 이런 계통에서 미싱사로서는 처음 당하는 일이었지만 너무 억울했다. 아무리 열심히 밤잠 못자고 많은 양의 바지를 만들어야, 피땀 흘린 대가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전통적 인권에서 말하는 '모든 인간'은 모두 똑같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따라서 대등한 인간이다. '형식'으로는 대등한 인간인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전통적 인권에서 말하는 인간은 현실의 인간이 처한 부자유하고 불평등한 면, 개인이 사회와 맺는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인권의 현실을 무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장주인도 노동자도 자유롭고 평등한 대등한 시민일 뿐이다.

윗글은 전태일이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며 처음으로 사회비판의식을 드러낸 글이다. 인권의 변화는 현실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구체적 인간의 얼굴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 변화는 인권주체의 구체화와 집단화로 나타났다. 구체적 인간은 누구인가. 자기 재산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누군가로부터 임금을 받아서 살아가는 사람들, 즉 재단사인 노동자이고 시다인 노동자이다. 이들은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이들이 사회적 조건을 얘기하려면 이들의 존재를 통해 얘기할 수밖에 없다.

"1개월에 첫 주일과 셋째 주일, 2일은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서는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버립니다. 일반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대부분 6년 전후의 경력자들로서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해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응당 근로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시에는 필름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이것도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일 10시간-12시간으로 단축해주십시오. 1개월 휴일 2일을 늘려서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원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현재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그렇게 등장한 구체적 인권이 '노동권'이다. 노동권의 등장으로 인해 전통적 인권이 옹호했던 소유권의 신성불가침성은 깨졌다. 재산을 똑같은 재산으로 바라보지 않고 누가 어떤 것을 가졌느냐에 따라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보게 된 것이다. 자본가의 소유권은 그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소유권을 위해 제한될 수밖에 없고, 이 새로운 소유권은 '노동권'이라는 인권으로 등장했다. 그래서 자본가의 재산권에 대해 책임을 묻게 됐고, 사용자의 권리에 대한 제한 규정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휴일과 적절한 휴식 없이 일 시켜선 안되고, 공정한 임금을 주어야 하고, 노동자의 자기 보호를 위해 조합을 조직하고 가입하고 활동할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노동자라는 인간집단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도 지켜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보는 나의 직장, 나의 행위는 분명히 인간 본질을 해치는 하나의 비평화적·비인간적 행위이다.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인간을 비인간적인 관계로 상대함을 말한다. 아무리 피고용인이지만 고용인과 같은, 가치적(으로) 동등한 인간임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을 증오한다.
어떠한 인간적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 할 인간적인 문제이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박탈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대에서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인간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무엇부터 생각하는가? 인간의 가치를? 희망과 윤리를? 아니면 그대 금전대의 부피를?"

"업주들은 한 끼 점심값에 2백 원을 쓰면서 어린 직공들은 하루 세 끼 밥값이 50원, 이건 인간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각할 줄 알고, 좋은 것을 보면 좋아할 줄 알고, 즐거운 것을 보면 웃을 줄 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 즉 인간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 자는 부한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빈한 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종교는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법률도 만인이 다 평등합니다.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더러운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사회의 현실입니까? 빈부의 법칙입니까?
인간의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부한 자의 생명처럼 약자의 생명도 고귀합니다. 천지만물 살아 움직이는 생명은 다 고귀합니다. 죽기 싫어하는 것은 생물체의 본능입니다.
선생님, 여기 본능을 모르는 인간이 있습니다. 그저 빨리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기를 기다리는 생명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미생물이 아닌, 짐승이 아닌, 인간이 있습니다. 인간, 부한 환경에서 거부당하고, 사회라는 기구는 그들 연소자를 사회의 거름으로 쓰고 있습니다. 부한 자의 더 비대해지기 위한 거름으로.
선생님, 그들도 인간인 고로 빵과 시간, 자유를 갈망합니다."

'빵과 자유'로 뭉쳐있지 않은 인권은 무용지물이다. 빵, 즉 '인간답게 생존할 권리'를 인권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은 인권이 아니다. 굶주리는 사람에게 신체의 자유, 사상·언론의 자유같은 자유는 의미가 없다. 사실상 누릴 수 없는 권리를 사람들에게 보장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음식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식권을 지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기이다. 한편 '빵'은 '자유'의 배척물이 아니라 자유를 기본 내용으로 한다. 전태일의 말대로 "어떠한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주목하고 시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에는 뭉칠 자유가 필요하고 뭉쳐서 행동할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빵은 자유 없이 실현불가능하다. 그래서 '빵에 대한 권리'를 담고 있는 '사회권'이란 인권은 '자유'의 고양이지 자유의 무시가 결코 아니다. 대표적인 사회권인 노동의 자유가 결사의 자유, 단결의 자유, 단체행동의 자유를 외쳤고 많은 정부가 탄압하는데서 보여지듯 자유없이 사회권의 진전이란 있을 수 없다.

사회권을 흔히 국가가 위로부터 베푸는 혜택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사회권은 노동권이라는 권리에 대한 승인으로부터 출발했고, 그를 통해 자본가의 재산권을 제한하고 재산의 사회적 책임을 추구한 것이다. 사회권은 노동자를 비롯한 당사자의 자주적 활동을 통해 일차적으로 도모되는 것이고 국가의 역할은 그런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전태일 이후에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빵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오늘날에는 '노동자'라는 이름도 아까워 '비정규직'이란 이름을 붙여서 노동자를 반토막 취급하고 있다. 이것이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고 또 읽어야 되는 이유이다.

[인용글의 출처] 전태일 평전, 도서출판 돌베개, 조영래 지음

 

 

[류은숙] <2005년 11월 10일 인권하루소식 제2934호>

[정리/범용] <2007년 1월 30일 인권오름 제39호>

그동안 집회의 불모지였던 삼성 본관 앞 집회를 지난 19일 사상 최초로 성사시켜 언론의 주목을 한껏 받았지만, 정작 이들이 어떤 이유로 해고됐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저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또 하나의 해고노동자 집단으로만 인식될 뿐. 이들의 정직 명칭은 ‘전국 삼성에스원세콤 영업전문직 노동자연대’.

지난 해 8월 8일 삼성에스원은 ‘하도급 형식으로 경비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내용의 경찰 공문을 보여주면서, 전날까지 멀쩡하게 일을 했던 영업전문직 노동자 1,700명을 하루아침에 해고해 버렸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영업행위가 경비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경찰의 견해를 반박하고, 나아가 경찰과 삼성 측과의 드러나지 않은 밀월관계를 제기해 왔다. 이에 삼성에스원노동자연대 오세권 조직부장과 원영기 홍보실장을 만나, 삼성에스원 영업노동자들의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아래 오세권-오, 원영기-원)

 

영업 ‘사원’이 아닌 ‘전문직’

오: 에스원에서는 크게 영업직군과 기술직군, 출동을 받는 CS직군이 있습니다. 저희들은 영업을 담당했던 직군입니다. 저희들이 하는 업무는 일반 매장이나 인테리어 하는 오픈 매장이나 이런 데를 찾아다니면서 설치 권유를 해서 계약을 따오는 오다(order) 역할만 했습니다. (저희 영업전문직 말고도) 에스원에 영업하는 데가 있습니다. (근데) 영업사원만으로는 경쟁이 너무 심하니까 많은 오다를 창출할 수 없잖습니까? 그래서 지금 현재 있는 이우희 대표가 영업력을 더 늘리기 위해서 외부에 있는 영업력을 많이 끌어들이면서 영업전문직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영업사원이 있지만, 영업전문직을 별도로 만들어서 이렇게 같이 영업을 하다 보니까, 영업전문직을 만든 이후로 회사는 급성장을 하게 되었던 거죠. (그게) 2002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 일단 영업사원들은 기본급을 줘야 되고, 유지비도 줘야 되고, 그리고 필요한 물품도 대 줘야 되고. 이러한 영업사원들 1명을 데리고 있을려면은, 그냥 영업사원이 아무 일 안 하고 돌아다녀도 비용이 2백5십만 원 정도가 들어가고, (이외에) 영업사원들한테 월급을 줘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럼 이 영업사원이 회사에 벌어가지고 들고 와야 하는 돈이 1달에 5백 얼만가 그런 금액이 돼요.
근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계약을 한 건이 하나도 없다, 그러면 안 줘요. 들어가는 비용이 제로입니다. 10만 원짜리 계약을 1건 해왔으면, 어, 너 고생했으니까, 35만 원을 줍니다. (회사에서 저희한테) 35만 원을 주고 3달 반 지나면 준 돈은 뽑지 않습니까? 그럼 그 다음부턴 계속 회사의 이득으로 가는 거죠. (그 이후에는 저희한테) 한 푼도 안 줘요, 백년이 가든, 천년이 가든. 그러니까 가장 싼 인력이죠.

오: 제가 저번에 계약한 물건을 다 뽑고, 중지나 해약된 물건, 미개시된 물건 다 빼 보니까, 지금까지 영업을 해서 회사에다 벌어다 주고 있는 비용이 연간 한 1억8천(만원) 정도를 벌어주고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저같은 사람 10명만 하면은 연간 18억 정도를 계속 벌어다 주고 있는 겁니다. 거기서 쌓이면 쌓일수록 회사는 더 많은 돈을 가져가게 되지만, 저희들이 실질적으로 받는 거는 처음에 받는 거 이상 주는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는 저희들을 쓰면서 비용 지출되는 거는 거의 없다고 보셔야죠.

원: 약 2년 정도까지는 지금의 특수고용 형태가 아닌 그냥 계약직 형태로 고용을 하다가, 2003년 중순부턴가, 갑자기 사업자를 내라 종용을 해가지고, 면세사업자라는 걸 내면 세금 3%를 떼고 나머지는 다 수입으로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사업자를 내라고) 제시를 한 거죠. 그게 저희는 좋았다 라고 생각하지, 속였다라고 생각은 못했죠. 그런 게 특수고용직이고 언제든 자를 수 있고, 뭐 이런 얘길 들은 바가 없어요. 계약서 상에도 1년마다 항상 갱신하게 되어 있고, (그만 두려면) 한 달 전에 미리 서로 통보하게 돼 있고.

경찰공문의 진실과 거짓

오: 저희들이 회사에서 잘릴 때, 각 지방 경찰서에서 에스원 각 지사에다 공문을 다 보냈습니다. 어떤 식의 내용이냐면, 이게 [경비업을 하도급 주는 것이] 불법이라 하니 (하도급 형식의 영업전문직에 대해) 조치를 해라, 조치하지 않을 경우에 영업전문직 사원은 3천만 원 이하의 벌금과 징역 3년 그리고 회사는 영업정지 3개월에 처한다, 빨리 조치를 하라는 공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그거를 근거로, 자 봐라, 읽어 봐라, 경찰청에서 이렇게 나왔으니까 너 지금부터 영업하면은 벌금이다, 명함 다 내고 나중에 회사에서 다시 정직원을 채용할 때 우선권을 너한테 줄 테니까 (사직서에) 싸인을 해라 (라고 했던 겁니다).
이제까지 저희들이 조사해본 결과, 지금 저희가 유추해 보는 거로는, 에스원에서 치밀하게 변호사랑 다 이 내용을 가지고 문구를 만든 다음에, 질의건과 회신문건까지 (경찰청에) 같이 줬고, 경찰청에서는 다시 그거를 되돌려준 것밖엔 없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여기에 있는데요, 저희가 해지를 당했을 때 마포에 있던 영업전문직 최희준이라는 사람과 박우식이라는 사람이 너무 억울해 가지고 남대문 경찰서로 찾아가서 왜 이렇게 해고를 했는지 질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서에서) 자기는 내용을 잘 모른다, 알아본 다음에 연락을 주겠다, 그게 오전이었는데, 오후에 손경식이라는 분이 최희준 씨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그 사람 얘기가 뭐냐면, 우리는 여러분들을 자르기 위해서 이렇게 (경비업을 하도급 주는 것이 불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먼저) 내리지 않았다, 이 질의는 에스원에서 한 것이다, 그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근데 남대문경찰서에서 담당하던 손경식이라는 그 분은 ‘자기는 처음에는 그런 적이 없다’고 하다가, 지금에 와서는 ‘나 개인적인 주관으로 얘기했다’ 이렇게 또 말 바꾸기를 하거든요.
저희가 경찰청에 1인 시위를 쭉 해오면서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우정식 경위를 만나봤습니다. 근데 그 사람이 유권해석을 내렸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내용도 몰라요. 경비업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에스원의 현 상태가 뭔지도 모릅니다. 정작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에스원이었거든요. 근데 그 내용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고. 그래서 저희들이 따지고 들었죠. 전혀 답변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청 생활안전과에 있던 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 경비업이라고 경비업법에 정해져 있는 부분은 어떤 부분이냐면, 감지기를 설치해서 감지신호를 받고 출동을 가서 사고대처를 하고 사후에 보상하는 것이 경비업이다라고 돼있습니다. 그럼 실지로 순수 영업행위, 경비업을 하기 이전에 영업행위, 거기에 대한 최초분 수금이 끝난 상태에서 경비가 개시가 되기 때문에 그 경비업이 들어가기 이전까지의 활동만이 저희의 활동이기 때문에, 저희는 경비업하고 상관이 없기 때문에, 경비업 위반이 아니라고 하는, 1월 5일자로 법제처의 판결까지 저희는 받은 상태입니다.

대량해고의 진짜 이유는?

오: 냄새가 좀 나는 부분이 어떤 부분이 있냐면, 경비3사에서 요 건에 대해서 대응하는 방식에 좀 문제가 있었습니다. 2007년도부터 특수고용직도 4대 보험을 의무적으로 나라에서 들게 해주게 되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요 부분이 이제 자기들한테 입맛이 맞아떨어진 거죠.
예전에 저희들이 500%의 페이(pay)를 지급받았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10만 원을 계약을 하게 되면 50만 원을 줬거든요. 근데 (최근 영업전문직을 영업사원으로 전환하려는) 다른 회사의 새로운 계약직 고용 형태를 보게 되면, 4대 보험을 회사에서 줘야 되고 기본급도 줘야 되니까, 예전에 지급하던 페이의 한 300% 정도밖에 (영업사원들에게) 안 주거든요. 최대 3.9배수까지 주는데, 실질적으로 이걸 계산해 보니까 급여는 오히려 줄어들고요, 우리 비용 가지고 4대 보험을 드는 꼴이예요.
한 회사는 정규(영업)직원이 20~30%고, 저희 같은 영업전문직이 70%였거든요. 그러면 회사에서는 당장 영업을 못하게 되고 엄청난 손해를 볼 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업전문직이 불법이라는 경찰 공문에 대해) 아무런 법적 조치들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와가지고는 새로운 계약형태를 제시를 하니까, 저희들이 의심을 하는 겁니다. 냄새가 조금 난다. 담합하지 않았나! 저희들이 요런 부분은 언론에다 얘기를 못합니다. 그냥 생각만 추론만 할 뿐입니다. 근데 돌아가는 상황은 저희가 생각하는 부분대로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원: 지금 회사에서는 자르고 나서 바로 손해라고는 얘기를 하지만, 영업이란 게 계속 저희가 광고를 하고 다니는 거 아닙니까? 아, 그래도 저희 거 써주십쇼, 광고를 하고서 지나간 게 그 동안 몇 년인데, (저희들을) 잘랐다고 해서 그 광고 효과까지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실질적으로 절 자르고 나서 한동안은 저희 광고 효과를 보겠죠, 그걸로 인해서 회사는 당장간은 손해볼 게 없는 거고. 몇 개월이 지나면 (수익이) 좀 떨어지겠지만, 그때까지 영업사원들이 채워 놓으면 되니까, 저희들한테 나갈 작은 비용을 아끼겠다는 거죠.

삼성에스원연대의 시작

원: 저희가, 실제 조직부장님하고 저하고 지금 이렇게 같이 다니고 얘기하고 하지만, 서로 살고 있는지도 몰랐던 사이죠. 왜냐면 각 지사에서 따로 따로 일했던 사원들이기 때문에. 지사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 외에는, 그 근처 지사나 가끔 알 수 있을까 거의 모르고 지내고 있는 사이들이니까 뭉치지 않을 거다라고 하는 아주 단순한 (회사의) 판단! 저희도 솔직히 뭉칠 생각도 못했죠. 

근데 인터넷에 까페를 한 사람이 만듦으로써, 어! 까페 만들었대, 이게 잘못됐대 라고 하는 게 뭉치면서, 서로서로 따로 알아본 사람들이 그 쪽으로 합세를 하면서, 내가 알아보니까 이게 회사가 장난친 거 같더라,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 변호사한테 물어봤더니 이거는 눈에 뻔히 보이는 속임수다 라고 얘기를 한다더라, 아무리 이 법이 맞다고 할지라도 회사는 우리를 계약해지할 아무런 이유가 안 된다, 계약서가 있기 때문에, 이런 근거들이 나오면서 저희들이 뭉치기 시작을 한 겁니다.

회유와 협박은 삼성이 초일류

원: (사직서의) 서명 형태가 그냥 내가 활동하기 싫어서 그만 두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만들었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문제를) 걸어도 본인이 그만두지 않았냐 이런 식으로 발뺌을 하려는 게 눈에 뻔히 보이는 그런 계약[사직]서.
첫 계약[사직]서가 나왔을 때, 이딴 계약[사직]서에다가 누가 싸인을 하겠냐, 이건 완전히 우리한테 불리한 것만 나와 있지 않았냐 라고 했더니, 조금 완화를 시켰습니다. 그게 1주일도 안 돼서 바뀌었어요, 사직서 형식의 양식이. 그거 보고서도 이런 거 이런 부분이 또 잘못됐지 않았냐, 왜 너네한테 유리한 부분만 넣냐, 이런 거에 누가 싸인을 하냐 라고 했더니, 또 바꿨습니다. 어느 회사 사직서 양식이 1~2주 사이에 수시로 3번, 4번 바뀌겠습니까?

오: 협박과 회유. 쉽게 얘기해서 싸인만 해 주면 나중에 타결될 때 동일한 조건으로 해 주겠다(는 겁니다). 문구도 불리한 조건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지우면서까지 자기 이름 이렇게 서명해 주면서 이렇게 회유를 하면서……. 그러니까 저희들이 받을 적립금하고, 투쟁할 때 넣었던 비용이랑, 그 다음에 약간의 향응을 제공하면서 많은 회유를 해 왔죠. 그래 지금은 저희들이 19명만 있습니다.

원: 추석이 끝나면서부터 계속 이 인원이 더 이상 줄지 않으니까 회사 측에서는 좀 뜸해졌죠. 회유 작업은 뜸해지고, 이제 협박으로 들어가는 거죠. 경찰에 고소하고 고발하고 하면서, 가족들 찾아가서 말로는 분신할 계획이 있다(고 하는 거죠). 계획은 자기들이 세운 거죠. 저희가 누구를 죽이겠습니까? 서로 살자고 지금 투쟁을 하는 사람들인데, 자기네들이 계획을 세워가지고 자기네들이 얘기를 하는 거죠. 그런 회사가 지금 대한민국의 초일류기업이고 대표기업이라고 하는 회사입니다.

도급 현실과 법대로 한다면?

원: 경찰청에서도, 아까 생활안전과 담당자도 말씀을 하셨는데, 그 사람도 자기 직무유기입니다. 실질적으로 자기가 관리해서 자기가 유권해석을 내릴 정도의 회산데, 그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라요. 공사팀들이 정식 직원이 한 명도 없습니다, 3개 경비업체가. 도급의 하도급을 받고 있어요, 또. 그런 불법적인 형태로 계속 사용을 하고 있는데, 여태까지 그걸 몰랐다는 거예요. 그건 영업전문직이 생기기 이전부터도 있었던 건데도.
그리고 1588도 실제로 도급입니다. 오토바이 근무자, 실제로 출동을 가는, 그것도 은행에 키를 가지고 있는 이 친구들이 정식 직원이 아니예요. 도급을 받은 직원들이예요. 이런 것들을 다 무시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완전히 저희들만 잘라 내기 위한 질의였었고, 저희들을 잘라 내기 위한 회시였었다 라는 거죠.

그 답변대로라면 (지금 경비업을 하시는 분들까지도) 문제가 됩니다. 그리고 법제처 답변대로 해도 문제가 되는 소지들이 있습니다. 법제처 답변대로 하면 저희는 (경비업이 아니기 때문에 하도급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데) 법제처의 새로운 답변이 나왔어도 문제가 되고, 경찰청의 질의 회시 답변으로도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고용 상태가 지금 현재 그 상태대로 가고 있습니다. 왜? 그 사람들이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니까! (답변대로 하면) 정직원을 빼놓은 나머지 외부 직원들은 다 잘라야 됩니다.

법적 대응이 아닌 투쟁을 선택

오: 저희들 같은 경우 처음에는 법으로 하려고 했거든요. (투쟁과 법적 대응을) 같이 병행을 하려고 했습니다. 근데 법으로 해 가지고는 삼성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엑스파일 이상호 기자나 많은 그런 사건이 있었지 않습니까? 핸드폰 위치추적 사건. 그거는 증거가 명백한데도, 수사할 의지도 없고. 저희들이 아무리 법적으로 해 봐야, 이거는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이기 때문에 저희들이 힘든 투쟁으로 가게 된 거지요. 그런데 저는 (고소가) 다섯 개 정도 걸려 있습니다. 우선 명예훼손, 업무방해, 폭력, 뭐뭐 여러 개를 걸어놓고, 저희들한테 심지어 노동자, 해고자란 표현을 할 때마다 100만 원씩 부과하는 뭐 이런 것도 다 걸고요. 악랄합니다, 악랄해.

원: 저희가 요구하는 부분이 굳이 법보다는 진실을 밝혀달라는 거거든요. 질의한 자가 누군지, 왜 이런 질의를 했는지? 생각을 해 보십쇼. 길을 가다가 갑자기 문득 경비업이 생각나서 물어보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이거를 법적으로 밝혀라 그래도 경찰청에서 알려줄 수 없다, 그냥 그게 법입니다. 재판이고 뭐고 갈 필요가 없이, 이거는 개인정보 상 누출할 수가 없다, 그냥 딱 그래 버리기 때문에, 더 이상 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그럼 양심선언을 하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계속 투쟁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거고, 그래서 스스로 잘못한 거를 인정하라는 거죠, 회사 측에서. (그리고) 저희가 해고될 사유가 아니라는 법제처의 답변까지 나왔고, 어느 자문변호사한테 물어 봐도 계약서 자체가 위법이 아닌데 왜 잘랐냐 이거죠. 그것이 위법이라 할지라도 자를 사유가 안 되는데……. 그러니까 도로 원직복직 시켜 달라는 거죠.

 

[정리/범용] <2007년 1월 30일 인권오름 제39호>

[정리/류은숙] <2006년 8월 2일 인권오름 제15호>

<수십년 만의 폭우가 몰아치던 날, 서울 강남의 아셈타워를 찾았다. 프랑스계 다국적 기업인 라파즈 한라 시멘트 하청업체(우진)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바로 위장폐업의 철퇴를 맞은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백일 가까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었다. 그 곳에서 화학섬유노조 ‘우진산업지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최철규 씨를 만나봤다.>

 

2004년 1월에 라파즈 한라 하청업체인 우진산업에 들어와서 일을 했다. 입사를 할 때는 진공청소차라고 라파즈 한라 내에 분진이나 시멘트 가루 청소하는 차가 있는데, 그걸 운전하러 들어갔다. 실질적으로 사장이나 소장이나 처음에 면담할 때는 임금문제에 대해서는 책정을 안 해주는 상황이었고 “일을 하게 되면 최소한 150, 170(만원)은 가져갈 수 있다. 노력만 하면은 가져갈 수 있으니까 열심히 해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그런데 과다근무가 많아서 8시에 출근해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까 그 다음날 12시에 퇴근하든가, 아니면 32시간 계속 일을 해서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노사협의회에서도 얘기했고 조정해달라고 했는데 사장님은 앞으로 개선하면 되고 지금 실정이 회사가 많이 바쁘고 어려우니까 현 상황에서 유지를 해야 한다, 만일 힘들다고 하면 대체인력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6개월 되고 7개월이 되어도 개선이 안되었다.

노조설립 안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교통사고가 나 3~4개월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근무에 복귀했을 때에는 또다시 다치면 회사에 마이너스가 되니까 다른일을 하라고 해서 노면청소차를 시작했다. 그런데 따로 각서를 써야 했다. ‘일을 하다가 다치게 되거나 불상사가 생겼을 때 회사는 책임을 못 진다’는 각서를 써야 됐다. 각서를 쓰고 업무복귀를 해서 노면청소차를 했는데…거기도 모두가 자격증이 3~4개 되니까 노면청소차 업무 끝나고 가려 하면 “네가 덤프 자격증이나 용접자격증이나 있으니까 연장근무 좀 해라, 저쪽에 가서 정비 좀 해라”라며 일을 시켰다.…들어올 때는 과로나 불상사에 대해 회사가 책임 못 진다는 각서까지 쓰고 노면청소를 하는 것인데 과다근무를 하는 거는 똑같은 거다. 하던 일을 계속하는 과다근무도 아니고 해당 업무가 끝나고 나서 다른 업무를 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든 직원들 실정이 비슷했다. 그래서 그런 실정을 바꿔보기 위해서 노사협의회가 있으니까 반장, 소장 만나서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게 노사협의회 자체는 법적 근거도 없고 사장이 말로만 운영되는 것이라 아무런 효과가 없는 거다. 업무조정, 과다업무 시간조정, 대체인력 문제, 업무분담 등과 같은 문제들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수차례 얘기를 했는데도 안 들어주니까 어쩔 수 없이 2006년 3월 7일, 26명의 직원이 모여서 이래서는 안된다, 힘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그 땐 임금도 시급 1350원, 최저임금 1300원에서 50원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더 많아봤자 250원, 350원을 더 받고 있었다. 투표를 해서 한 명의 반대도 없이 3월 7일 노조를 설립했다.

이런 움직임이 사장 귀에 들어갔다. 사장이 불러서 “노동조합을 왜 만들려고 하느냐”고 물어서 “노사협의회에서 업무개선, 임금이랑 얘기 많이 했지만 안 들어주니까 노동조합 만들려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노사협의회가 형식적이었다고 사장님도 인정했고 앞으로 대화를 열어보겠다고도 했는데, 더 이상 대화도 없었고 임금도 최저임금에서 안 올라가는 상황이다. 2년 동안 임금이 동결됐고 4년 동안 거의 150원, 200원밖에 안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사장은 “노동조합을 만들지 말고 기다려라. 그러면 내가 노동조합을 만들어주겠다. 임금 문제는 할 수 없다. 라파즈 내에서 임금을 동결했고 임금인상을 안 해주기 때문에 내가 올려줄 수가 없다. 업무시간 조절은 회사가 어렵기 때문에 너희들이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정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 집에 가서 쉬는 게 편하지 않겠냐”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사장님, 그거 말에 어거지가 있습니다. 저희 업무는 기본 8시간이고 연장근무란 게 보통 하고 싶으면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했다. 사장은 계속 “임금문제 거론하지마라. 나는 라파즈의 심부름꾼밖에 안된다. 임금을 올려주고 싶어도 라파즈에서 동결시켰고, 업무조정도 라파즈에서 업무지시를 하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없는 거니 말할 수 없다. 노동조합의 문제는 조금 기다려라. 지금 라파즈랑 업무조정 같은 것 얘기중이니까…노동조합 하면 우리 회사가 라파즈랑 계약도 못할 테니까 업무조정이 끝났을 때 제일 마지막에 노조설립을 해라”고만 말했다.

과다 업무를 하다 보니 안전사고가 많이 난다. 졸리니까 무감각해지고 사고도 많이 나고…사고 나면 ‘편한 걸로 끝내자’며 사고를 무마하기 위해 라파즈에 보고를 안하고 자체 내에서 알아서 보험처리 하려고 한다. 그렇게 무마해서 ‘무재해 1000일’.

노조 설립하자마자 위장폐업

3월 7일 노조 설립하자 바로 회사가 갈라진다고 했다. 설립과 동시에 사장 귀에 들어가 10일 바로 전직원들을 호출해서 업무 중단시키고 회사대기실로 모아 회사 얘기를 하는 거다. “회사가 갈라지게 된다. 노조를 깰 것이냐 말 것이냐 여기서 찬반투표를 해라. 노조를 깨라. 투표는 유기명으로 해라”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다.

임단협 하겠다고 공문을 띄웠다. ‘노조를 설립했으니 지회장, 사무국장과 상견례를 하자’고 공문을 띄웠는데 사장은 계속 거절했다. 3월 28일 3차 협상에 사장이 나와서 “나는 3월 31일자로 회사를 폐업할 테니까 당신들하고는 단협을 할 것도 없고 만날 필요도 없다. 알아서 해라. 노조를 탈퇴하고 다른 회사로 가든가 노조를 하든가 당신 맘대로 해라. 나는 회사를 폐업할 테니까.”라며 5분도 안되는 시간에 사장은 나가버렸다.

31일 게시판에 회사원가 절감 문제 때문에 페업을 하겠다고 공고만 내고…회사 측은 31일 폐업 전에 직원을 개인적으로 만나 “노조탈퇴하면 다른 회사 보내준다. 사직서를 쓰면 새 직원으로 하는 일 그대로 받는 임금 그대로 해주겠다. 사직서, 탈퇴서 써라.”고 회유했다. 그 와중에 많은 인원이 다른 회사로 이전해서 전화연락을 끊었다.

그 외 사람들에게는 핸드폰 문자로 31일자로 우진산업과 계약해지가 됐다는 문자메시지가 와서 황당했다. 그래도 4월 1일 출근을 하니까 라파즈 내에서 경비들하고 정직원들 100여 명이 정문 앞에서 출근 저지하려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출근도 못하고 4월 5일부터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라파즈의 반응

5월부터는 힘들지만 라파즈 상대로 상경투쟁을 하게 됐다. 라파즈 사장이 영업사가 있는 아셈타워 18층에서 업무를 보기 때문에 아셈타워 앞에서 1인시위를 한다. 우리는 적은 인원이라 할 수 있던 것은 1인시위 밖에 없었다. 5~6명이 로테이션으로 올라와서 하고 나머지 인원은 동해에서 천막시위를 한다. 회사는 처음에는 신경 안 쓰더니 회사 이미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면담에 응했다. 회사 측이 “무엇을 요구하느냐”고 하기에 “하던 업무 그대로 그 자리에 넣어 달라, 노동조합을 인정해 달라, 과다업무시간을 조정해 달라, 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라파즈는 “당신들의 요구에 대해 할 말 없다. 당신들이 여기 와서 왜 그러는지 알고 싶어서 만나자고 한 것이지 요구를 듣고자 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 왜 폐업을 시켰느냐”고 물어봤더니 “폐업하란 얘기 안했다. 나는 우진 사장이 계속 끌고 갈 줄 알았다. 내가 그만두란 얘기 한적 없다. 당신들에게 책임질 일 없다. 하청업체 일은 하청에서 해결하는 거다. 회사 이미지 있으니 1인 시위 접고 내려가라”고만 했다. 두차례 정도 면담했는데 그런 식으로…

마지막으로 7월 초에 만났는데 그쪽 최종안이 5명은 받아준다. 나머지 4명은 어쩔 수 없다. 2명은 하청업체 일자리로, 나머지 3명은 단계적으로…노동조합 문제도 거론됐는데 깨야한다고 했다.…이것은 우리가 받을 수 없는 안이었다. 지금까지 같이 투쟁했는데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안 들어갈 수 없다. 노조자체를 깰 수도 없고…라파즈에서는 아직까지 대화의 창을 안 열고 “개인적으로 만나자, 노조를 끼지 말고 개인적으로 만나자”고만 했다. “그건 노조를 깨자는 얘기고 그건 안된다. 우리는 만날려면 공통문제를 갖고 안건을 갖고 좋은 방안이 있으면 그걸 갖고 나올 때 대화를 하자. 그러면 우리는 응하겠다”고 대응했다.

하청에 하청

우진산업은 아웃소싱이고, 그 외에 보통 사내하청이란 게 라파즈 한라 관리직들이 계속 인원 줄여가니까 라인을 줄이면서 그 사람들에게 협력업체를 만들어준다. 그게 15개 정도다. 50명이 넘게 되면 주5일 근무제가 되니까 인원을 제한한다. 우진산업도 48명으로 시작했는데 한 1년 지나니까 주5일 근무제 얘기가 많이 되니까 총무과에 있던 젊은 사장을 내보내서 청소용역 11명을 빼서 다른 회사를 만들어버리더라. 그래서 사내하청이 또 사내하청을 만드는 거다. 그래서 15개 정도가 사내하청인거다. 우진만이 아니라 다른 회사들도 다 하청이다. 정규직만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있고, 협력업체에 3개 정도의 노조 외에 다른 하청회사들은 노동조합을 만들 수 없는 처지다. 사내하청들도 노조를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우리 처지를 봤듯이 만들자마자 회사가 폐업을 해버리니까 어려워서 못 만드는 거다.

사내하청 직원들이 천막농성장에 오가면서 많은 얘기를 한다. “직접적으로는 못 도와주지만 뒤에서 돕겠다. 너희들이 이겨서 들어오는 것이 우리가 살길이다”라고 얘기한다. 택시로 음료수 배달이나 라면박스 배달이나 전화를 해주거나 구좌에 후원금을 내준다. 그러면서 “너희들 때문에 우리에게 도움이 된 것 있다. 임금이 300원 이상 올랐다” 우리가 (투쟁을) 시작하면서 최저임금에서 50원 정도 더 주다가 우리가 투쟁하는 몇 달 동안에 300원이 뛴 것이다. 그렇게 싸우니까 하청노동자들 문제가 나오고 우리가 뭐라 할까봐 미리 임금을 올려주는 게 있다.

진작 알았더라면

이 싸움 이전에는 노동조합을 몰랐다. 우리 모두에게 이번이 첫번째 경험이다. 우리 모두 기본적인 노동3권이라던가 근로기준법, 이런 거에 대해 몰랐었다. 계약서 쓰면서도 회사 사람들은 꼭 밑에를 가린다. 시급이라던가 밑에 조항은. 이번에 근로계약서를 보면서는 왜 그걸 가렸어야 했는지를 알게 됐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모르니까. 최저임금 3,150원 받으면서, 연장근로를 하면서도 한 달에 150만원도 못 찾아가면서 말 한마디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일했으니까 지금은 후회를 하는 거다.

왜 내가 몰랐나. 그때 처음에 우리가 알았으면 이렇게 됐을까. 우리가 근로기준법 알고 노동법을 알았다면 우리의 과다업무시간에 대해서 분명히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시키는 대로 지시한 대로 안하면 소장은 욕부터 나오고 ‘때려치워라. 집에 가서 애나 봐라’ 그런 식으로 얘기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회사에서 나가면 일자리가 없는데 월급이 그렇게 적더라도 고정적으로 나오니까 감지덕지라고 불만이 있어도 욕먹어가면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한거다.

다친 마음 어떻게 아물까

우리는 동해시에서 5분밖에 안되는 거리에서 일한다. 강원도에서는 시멘트업체가 주인데 정규직은 거의 없고 모든 게 사내하청이다. 여기서 (상경농성하면서) 자금이 쪼달리다 보니 하루 두 끼를 먹는다. 잠은 농성장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동해에서의 천막농성은 100일이 넘었고, 서울 상경 농성은 5월부터 했다. 1인시위는 오전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고 있다. 상공회의소, 프랑스대사관, 아셈타워에서…

서울의 강남, 너무 낯설고…여기 땅값도 모르는데 근처에서 근무하는 경비가 여기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데란다. 임대료가 몇 억씩 하는 데 라파즈가 있는데 우리가 일해서 벌어준 돈 갖고 얘네가 이거 하는 거 아닌가?

촌에서 순진하게 욕 한마디 못하고 말 한마디 못했는데 여기 와서 사람들이 막 대하고 ‘시끄럽다. 조용히 해달라’면서 욕부터 나오니까 우리도 감정이 쌓인다. 왜 저 사람들이 우리한테 욕을 해. 저 사람이 내 심정을 안다면 과연 그랬을까. 내가 설명을 해줘야겠구나. 그런데 설명을 해줘도 쉽게 와닿는 게 아니니까…

나도 여기 와서 많이 거칠어졌다. 그래서 진짜 안좋다.…살아가려고 하는 것이지만 마음이 많이 다쳤기 때문에 이거 끝나고 시골로 내려갔을 때 옛날의 순진했던 마음이 다시 돌아올까 걱정이다. 여기 와서 진짜 고생도 했지만 다친 마음이 옛날 마음으로 돌아갈까가 제일 걱정이 된다. 그 마음을 다스리고 내려가면 좋은데…이게 길어지면 더 거칠어질 것만 같고…내려가면 정말 마음을 다독여서 옛날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깨지더라도 당당하게

5월 13일에 결혼했다. 처음 만날 때는 ‘라파즈’라고 하면 크니까 사람들이 월급 많은 줄 안다. 내 아내도 그랬다. 내 월급이 110~120만원밖에 안되는 걸 알고 이 월급 받고 어떻게 살았냐고 하더라. 그래서 노동조합을 설립했다고 하니 아내가 “만들어라. 요구할 수 있는 건 해라. 이렇게 부당한 것에 대해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건 하라”고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가다보니 그 사람도 힘들어한다. 언제쯤 끝나냐고. 그래도 이 싸움을 멈춰서는 안되니까 시작을 했으니까 끝을 보고, 어떤 결과가 나와도 당당할 수 있어야지. 깨지더라도 당당하게 깨져야지, 나중에 우리 자식에게 당당하게 얘기해줄 수 있다. 중간에 그만두면 내 자식에게 뭐라 할까? 나도 하다가 중간에 포기했으니까 너도 하지마라? 조합원들이 다 힘들어 한다. 앞으로 당당하게 나갈려면 힘들어도 싸워야 한다.

* 덧붙이는 글

어려운 여건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라파즈 한라 시멘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랍니다. 후원 계좌번호 335096-51-143041 농협(예금주/최철규)   

<편집자주> [외침]은 한국사회의 인권현장, 바로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공 없이 그대로 담는 기획이다. 지식인이나 활동가 등은 글쓰기 등을 통해 자기 얘기를 남기지만 인권현장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고스란히 삶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외침’은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한다.

 

[정리/류은숙] <2006년 8월 2일 인권오름 제15호>

< KTX 여승무원들의 투쟁이 8일로 100일째를 맞는다. 7일에는 KTX 승무원 해고 철회와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이들의 동조단식과 선언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철도공사는 꿈쩍도 않고 있다. 서울역에서 농성중인 조합원 이도경 씨를 만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쌓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



2년 전에 KTX 개통과 함께 저희가 뽑혔을 때 정말 주위의 모든 부러움을 받았어요. 처음 시작되는 KTX 사업이었고, 정부나 (철도)공사에서나 크게 언론에 홍보하면서 저희 KTX 승무원들을 뽑았고, 뽑는 과정도 다 뉴스에 나오고, 교육받고 하는 과정들도 다 나오고, 저희들이 정말 공사소속인양 공사에서는 저희들을 앞에 내세워서…. 지금 생각할 때는 저희들을 상품화해서, 여성들을 앞에 내세워서 지상의 스튜어디스처럼 이 사람들을 키우고 KTX만 타면 이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서비스하고 친절하게 대해줄 거란 그런 광고를 계속 해대면서 저희들을 실컷 부려먹었다고 생각돼요.


온갖 부러움 속에 입사했지만…

제가 응시했을 때, 주변에서는 ‘어떻게 들어갔냐, 정말 대단하다, 나도 좀 가르쳐주지’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고,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 저희 집에서는 아버지가 정말 저를 업고 덩실덩실 춤을 추셨어요. 그 정도로 정말 “아, 우리 딸이 철도청에 준공무원 대우를 받으면서 들어가는구나. 1년 후에는 정말 철도공사에 정규직이 되는구나. 우리 딸은 정말 열심히 잘하니까 1년 후에 정규직 정말 될 것이다. 열심히 해라.” 부둥켜안고 정말 많이 감격했었구요. 주변 친구들을 만나면 다들 정말 축하한다, 잘됐다, 월급도 많이 받겠고 준공무원 대우도 받겠고 사회보장 제도도 다 잘 됐겠고 4대 보험도 다 받겠고 정말 잘됐다….

실상은 그게 아니었지만, 이렇게 공개되기 전에는 저희들의 자존심 문제였기 때문에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보건휴가도 제대로 못써가면서 근무교번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부분이 많았어도 그런 말들을 못했어요. 정말 주위에서 부러움과 시기와 그런 눈총을 다 받았기 때문에 정말 좋은 직업이고 좋은 직장이고 그렇게 보이기만을 바랐던 것 같아요. 제 자신도….

고정급을 받거든요 전원이 다. …200시간을 승무했든 180시간, 160시간을 승무했든 똑같은 고정급으로 받았구요.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저희들이 대무를 뛰어가며 쉬는 날을 반납해 가면서까지 그렇게 일했거든요. 보건휴가도 저희는 제비뽑기 했어요. 인원이 모자라 대무까지 뛰어야 하는데, 정말 여성이라면 써야하는, 법으로 정해져있는 보건휴가조차도 보장받지 못했을 때, 그리고 인력충원을 해달라고 요구할 때, 그리고 급여가 이상하다고 물을 때, 급여체계를 개선해달라고 얘기할 때, 항상 유통 소속이기 때문에 먼저 말하면 유통에서는 자신들은 인력충원에 대해서 월급에 대해서 권한이 없다, 다 도급받아서 하고 공사 측에 다 권한이 있기 때문에 공사에서 인력충원도 한다고 해야지만 뽑을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권한이 없으니 공사에 말하라고…. 그럼 정작 저희는 소속인 유통에 말해도 소용이 없어서 공사에 가면 공사에서는 너네들하고 우리하고는 소속 자체가 다르고 너네들이 우리한테 와서 얘기할 게 아니다, 너네들은 유통에 가서 얘기를 하는 게 맞다….

월평균이 170(만원) 된다고 사회에 알려졌지만, 솔직히 실상은 120, 130 그 정도였거든요. 저희들을 외주 주면서 직접고용의 비정규직.정규직과는 정말 차이가 나더라구요. 똑같은 KTX 내에서 일하지만 제대로 된 보장과 임금을 못 받는 게 정말 불합리하게 느껴졌어요. 저희는 정말 무임권 하나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외주 파견, 또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저희들은 못준다는 그런 부분, 정말 그런 차별들이 크게 와 닿는 거예요. 사소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저희들을 소속감 없게 만들었고…. 직접고용과 간접고용의 극심한 차별을 겪으면서 정말 120, 130만어치만 일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1기지만 2기, 3기, 4기들은 정말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거든요. 저희 1기 월급이 올라가야 하고 2기, 3기, 4기들은 저희가 받았던 임금을 받아야 하는데…. 호봉을 따지자면 올라가야 하는 게 맞는데 오히려 더 깎이고,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은 더 낮아지는 그런 부분들…. 정말 우리나라 사회가 그런 것 같아요. 여성들은 근무하고 경력이 쌓이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여성들은 오히려 더 낮아지고 결혼하고 임신하고 애기를 낳고 돌아오면 더 낮아진 임금에 아니면 아예 잘리거나 다른 회사로 옮겨가야 하는 문제, 다른 회사로 옮겨가면 결혼했다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게 되는, 남성들은 점점 더 경력이 쌓여서 계속 올라가고 직위도 올라가고 승진도 하고 임금도 올라가는데 여성들은…. 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들 KTX 승무원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여성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과 사용자 측에서 여성들을 그렇게 낮게 대우하고 그렇게 해도 된다라는 인식 때문에 저희들도 그런 사회의식 속에서 저희들이 그런 희생당하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요.

맘에 안 들면 딴 직장을 찾으라는 말 많이 들었는데, 저희는 KTX 승무원이 되고 싶어서 왔거든요. 정말 KTX 발전과 함께 저희가 그렇게 많은 고객님들을 웃으면서 내리실 수 있게 하게끔, 정말 다시 KTX를 타시게끔 만들고 그렇게 노력해왔던 사람들이고…. 정말 사회초년생으로서 첫 직장을 가진 그런 승무원들이 많은데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싶었고…. 저희들은 정말 KTX 승무원이 되고 싶어서 들어왔어요.


우리 존재를 계속 변질시켜 가요

고객님들에게 최선을 다할 만큼 제반 조건이 마련이 안 되니까, 저희만 노력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닌데…. 조건들이 갖춰져야 저희도 일할 맛이 나고 힘이 나고 한사람이라도 더 웃고 싶고 더 서비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잖아요. 사람이 다 그렇잖아요. 이런 부분 이렇게 고쳤으면 좋겠다는 고객 건의를 받아서 저희가 공사측이라든지 미팅자리에서 항상 얘기하고 그러니까, 우리들도 KTX에서 일하는 2년동안 똑같이 일을 한 거잖아요. 많은 고객님 마주치면서 일을 하고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느끼면서 의견도 전달하면서 그렇게 지낸 승무원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희 존재가 크다는 걸, 상시 업무라는 것들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냥 저희들이 승무원이라는 것을 계속 변질시켜 나가려고 하거든요. 사측이나 레저측은.

처음에는 안전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승무원이라 해서 뽑았는데, 지금은 점차 그 수도 줄이려고 하고 내년에는 판매권까지 관광레저(또 다른 자회사)에서 넘겨받거든요. 빠르면 하반기부터 판매 승무원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거예요. …공사 측에서는 승무원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제대로 뽑아서 정말 열차 내에서 같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열차를 승격시켜야 하는데, 저희를 계속 떨어뜨리려 하고 있고, 그러니까 우리 정부기관과 정부가 정말 욕을 들어먹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싸게 싸게, 더 작게 줄이려고 하고…. 그렇게 됐을 때 공사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는 걸 저 사람들은 모르는 건지, 알기는 알지만 그냥 높은 자리에 있을 때 돈 많이 벌고 일 대충대충하고 퇴직금 받고 연금 많이 받아서 나가면 땡인 건지…. 정말 KTX와 철도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인지 의문이 갈 정도로 그러니까…. 내부 직원들, 직원들이 열심히 해줘야지만 철도공사가 살고 철도가 사는 거잖아요. 그러게 정말 내부고객이라 하잖아요? 직원들을, 그런 내부고객들을 어떻게 잘 다루느냐에 따라서 공사의 발전과 균형을 이룬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하고 있어서 정말 안타까워요.


열심히 일한 우리들을 내치고…

열심히 열차에서는 일을 하지만 항상 집에 오며는 우울하고, 그렇게 그 사람들과 일을 해야 하는데도 우리는 딴 소속이고 돈도 제대로 못 받고 차별받고…. 그런 현실들이 일을 열심히 다하고 와서 정말 버스에 타는 순간 정말 이렇게 과연 살아야 하는가 그런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그냥 지금까지 일해왔던 것이 다 생각이 나네요, 이렇게 인터뷰 하면서(울먹이며)….

정말 열심히 일한 우리들을 정말 내치고…. 이제 5월 19일자로 잘렸기 때문에 이제는 소속도 없고, 철도공사는 유통과도 레저와도 정말 끝이라고 하고 있는데, 정말 이 많은 280여 승무원들을 이렇게 한 번에 단칼에 해고할 수 있는 것인지…. 이철 사장,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렇게 하고 마음이 편한지, 본인들도 자식이 다 있을 거잖아요. 우리나라 딸들이 이렇게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비참하게 살아가고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그래도 그 급여라도 받으면서 일해야 하는 조건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요. ‘너희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나와서 정규직 대기업 들어가면 되잖아’ 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정말 우리나라 비정규직 문제 없애고, 한 번에 없애는 게 힘들다면 점차적으로 바꿔나가는 게 맞잖아요. 저희 전에도 비정규직을 타파하기 위해서 싸우셨지만 저희들도 이 시대의 비정규직, 특히나 여성들에게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저희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노동자로서 보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점차로 비정규직을 없애나간다고 한다면 정말 저희들을 시발로 해서 공사측에서는 먼저 저희들을 해결함으로써 다른 부분에서도 점점 더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없애나가기 위해서 노력을 해나가야 하는 부분이고….

저희들이 일어나면 다른 철도내의 3천여명 비정규직 다 해줘야 하고 전국에 비정규직 다 정규직으로 해줘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면서 끝까지 저희들을 해결 못해 준다고 하는데, 다 해줘야죠. 언젠가는 다 해줘야 할 사람들이고, 우리나라 비정규직 다 없애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는 거고.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노무현이랑 뭐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국무총리라든지 그런 사람들, 그 밑에 정책을 담당하는 국회의원들이나 이 사람들은 정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고 없애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말만, 말뿐이라는 거죠. 행동으로 옮기지도 않고. 공부 잘해서 정규직 되라고 하는데 그 정규직 분들도 언제 어떻게 내쳐질지 몰라요. 정규직 그분들도 힘들 거라구요. 사람이 먼저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사용자측은 노동자를 써먹고 자기 사업 이익 불리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정말 자기가 부리는 사람들, 자기 내부고객들을 어떻게 이끌어서 정말 보장 다해 주면서 하고, 사람 죽을 만큼 일을 시켜서는 안 되는데….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집에도 한 달 이상 못 갔어요. 집에 가면 부모님도 힘들고 저 보는 것도 힘들고 집에서 나오는 것도 힘들 것 같아서 저는 안 가는데(울먹)…. 그냥 저희들, 정의는 승리한다고 배워왔는데….

국회, 강금실.오세훈 선거본부, 노동부, 여성가족부, 정부청사, 헌정기념관, 국가인권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그런데 저희들이 가는 곳곳마다 경찰이 가로막고, 다 묵묵부답이고 관심없고, 그냥 다 유통에 가라 레저에 가라 그럼 되겠네라고 생각하는 윗분들이 너무 많고…. 과연 이 나라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있는지 정말, 말과 행동이 일치되지 않는 모순적인 사람, 집단, 기관들이고 그런 것에 정말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을 정도로 많은 비참함과 억울함을 느꼈어요. 정말 우리나라는 극한 상황에 치닫지 않으면 해결해줄려고 하지 않는구나, 사람이 하나 죽어야 하나, 자살을 하거나 기차에 치어 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정말 많이…. 정말, 아휴, 그렇게 목숨을 바쳐도 안 해줄 거잖아요. 저희는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게는 못하겠구요.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했고, 자라면서도 그냥 부유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난하지도 않은 가정에서 부모님 밑에서 오빠, 여동생 5식구가 오순도순 단란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행복이라 생각했어요. 정말 인간의 권리 그런 것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저는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이에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했고, KTX 승무원이 돼서 행복했고, 승무원으로서 예쁘게 유니폼을 입고 고객을 맞이하고 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고 재밌고 즐거웠어요. 그런데 인간이란, 국민이란 것을 우롱하고 있는 이런 정부 공공기관의 행태에 맞서서 이제는 가만히 못 있겠다…. 정말 사회에 나와 봐야 큰다는 말처럼 사회에 나오니까 그런 부분들이 정말 다른 분들이 애기하셨던 부분들이 제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저희들이 들고 일어나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그런 권리들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정말 정부와 윗대가리들을 깡그리 바꾸고 싶고…. 그게 힘드니까 점차적으로라도 바꿔나가는 것이 저희의 몫이라고 생각되고 그래서 저희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배들, 다른 비정규직에게 힘이 되었으면…

나가서 그냥 쪼그만 회사에 100만원이라도 받으면서 일하자, 그런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안 들고 어떻게 해서든 이 싸움을 이겨서 지금 저희 밑의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들이 사회에 나올 때는 제대로 된 직장․직업 틀 속에서 일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지금 나이 드신 분들, 선배들이 일했던 노동현실이 이렇게 힘들었구나라는 것을 이제 알겠고, 정말 KTX의 꽃인 줄 알고 의기양양 했었는데 저희도 한낱 여성노동자에 불과했다는 것…. 비정규직, 다른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저희들이 이겨서 힘을 얻으시고 그분들이 조직을 만들고 우리가 연대해서 힘이 돼줬으면 좋겠다는 것, 그게 지금은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 분들도 힘차게 일하고 투쟁하고 계신데 저희가 뭘 못하겠어요. 더 열심히 해야죠. 어리다고 못한다고 생각하면 이제 안 될 것 같아요. 정말 여자면 약하고 어리고 안된다는 생각, 저희들 자체가 이제는 버려야 될 것 같고, 서로서로 그것을 깨어나가고 의식을 바꿔나가고 정말 남성 여성 동등한 입장에서 모든 게 다 이뤄지길 정말 바라고 여성도 정말 당당하게 살려면…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언제 바뀔까요?

[편집자주] 외침은 한국사회의 인권현장, 바로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공 없이 그대로 담는 기획이다. 지식인이나 활동가 등은 글쓰기 등을 통해 자기 얘기를 남기지만 인권현장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고스란히 삶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외침’은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한다.

[정리/류은숙] <2006년 6월 8일 인권오름 제7호> 

인권오름 제 423 호 [기사입력] 2015년 01월 22일 17:46:0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두 명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굴뚝에 오른 지 40일이 넘었다. 스타케미컬 노동자의 굴뚝 생활은 무려 240일이 넘었다. 다행히 쌍용차에선 교섭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또 다른 굴뚝들이 도처에 있다. 연일 터지는 노동자에 대한 모욕과 멸시의 사건들, 추락하고 깔리고 폭발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실업의 우울과 불안, 다가올 실업의 공포가 도처의 굴뚝들이다.

이전에도 노동자들은 송전탑이며 광고탑이며, 극한 곳으로 수시로 올라갔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말했다. “이전엔 지나가면서 송전탑을 의식한 일이 없어. 근데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올려다보게 돼.” 그렇다. 사람이 둥지 틀 수 없는 곳으로 사람이 내몰리고 있다. 날이 궂거나 바람이 불면 가슴이 답답하고 조마조마하다. 영어의 ‘염려, 고통, 분노’는 모두 같은 어원을 갖는데 그게 협심증의 어원이란 말이 실감난다.

가슴이 죄이는 듯 하는 것은 송전탑이나 굴뚝같은 극단적인 곳을 볼 때만이 아니다. 예외가 아닌 일상이 문제다. ‘수퍼갑질’이 아니곤 문제시조차 되지 않는 일상 속의 존엄성 유린은 자각증세가 없는 만성질병 같다. 특히 일상적으로 노동하는 사람을 멸시하는 일이 어느 때부턴가 공공연한 일이 되었다.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정당한 자존감과 자부심 대신에 비뚤어진 우월감과 열등감을 경합시킨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존중하고 존중받는 것인데, ‘존중? 그건 어디서 파는 거에요? 얼마에 살 수 있어요?’ 식의 엉뚱한 접근이 퍼져있다.

현대 인권의 초석은 ‘인간 존엄성’이다. 초석이란 타협 불가능한 원칙이란 의미다. 인간 존엄성은 개인의 업적이나 성취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이 존엄성은 단지 ‘인간임’으로 해서 누구나 갖는 것이다. 이 존엄성은 인간의 ‘평등성’에 기반한 것으로 자연적‧세습적인 위계와 귀족주의‧엘리트주의 이데올로기라 할 것을 일체 거부한다. 모든 인간의 존엄한 가치는 비교하여 따지거나 경쟁으로 획득하는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절대적 가치이다. 인권의 핵심 가치인 ‘자유, 평등, 우애(연대)’는 이런 인간 존엄성에서 도출한 것이다. 자유란 ‘소비의 자유’가 아니라 위계적 제도가 양산해 낸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정신’을 말하고, 우애(연대)는 공동체적 삶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회적 관계의 질을 말한다. 평등은 이런 자유와 연대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인간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 사회의 제반 활동에서 인간 존엄성을 척도로 삼는 것이다. 가령 인간을 한낱 자원이나 교체 가능한 부품처럼 다룰 때 그것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원칙은 국제인권법과 헌법 등 법질서 전체에 적용될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행하는 제도나 정책 등 모든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간 존엄성’을 정초한 대표 문서로 흔히 ‘세계인권선언’을 꼽는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인권선언(1948)보다 한 발 앞선 존엄성의 전령이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적을 담은 필라델피아 선언(1944)이다.

ILO는 일찍이 1919년의 창립 헌장에서 “항구적인 평화는 사회적 정의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류는 그런 정의를 추구하는데 실패했고 또 한 번의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다. 인간을 사물처럼 취급하고 경제성장의 수단으로만 대하는 질서가 계속되는 한 전쟁은 언제나 일어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었다”. ILO는 전후의 삶과 국제질서를 이끌어 갈 원칙을 재확인해야 했다. 그 재다짐의 내용은 인간 존엄성을 모든 것의 정초원리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의 실현은 시장의 횡포를 사회 정의에 무릎 꿇도록 만드는 제반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재확인‧재천명한 원칙을 담은 것이 ‘ILO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이다. 필라델피아에 모여 만들었기에 그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그 도시의 이름이 ‘우애’를 뜻한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반가운 것이다. 우리가 형제애와 자매애, 즉 우애의 정신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란 것을 이름 자체가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필라델피아 선언의 으뜸 원칙이다. 인간을 존엄하게 대한다는 게 한마디로 뭐겠는가? 사람을 사물 취급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를 ‘인력’이 아니라 ‘인간’으로, 노동력의 거래를 다른 물건처럼 ‘사고 파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는 ‘인력’으로서 ‘경제적 보상’만 받으면 되는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이다.

물질적 존중은 그때그때 일한 만큼의 대가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의 안정과 지속을 위한 생활의 보장으로 실현돼야 한다. 정신적 존중은 구성원으로서의 자존감, 소속감,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의 보장이다. 자신의 일에서 통제력과 재량을 발휘할 수 있고, 동료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노동자 개인과 조직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더 넓은 사회와의 연대감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물건과 달리 인간은 말을 하고 저항한다. 노동자의 물질적‧정신적 권리의 충족은 결과적으로 ‘그냥 주어지면’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참여 속에서 추구할 권리이다. 단순한 혜택과 권리로서의 보장은 다르다. 권리로서 향유하기 위해선 노동자의 개인적 및 집단적 자유가 중요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런 내용들을 ‘사회 정의’의 구체적 내용으로 규정했다. 이런 사회정의의 추구가 목적이라면 경제는 그것의 실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선언을 유념한다면, 목적과 수단의 뒤집힘을 지적하고 경계하는 것이 실천과제이다.

오늘도 우리는 도처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저항과 고난을 본다. 우리의 눈은 목적과 수단의 전도에 착시현상을 일으켜선 안된다. 사회정의를 굴뚝 삼아야 한다. 시장 우위의 폭력성과 인간 존엄성 유린의 연기를 빼내야 한다. 그 연기에 눈물콧물 쏟고 있는 노동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왜 극한투쟁을 하느냐? 그것밖에 방법이 없느냐?’는 말은 안 듣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무릎 꿇려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폭력적인 구조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왜 말로 하지 않고 극한투쟁을 하냐’는 공격을 자주 받았다. 킹 목사는“협상이야말로 우리의 행동이 원하는 궁극 목표”라고 답했다. “비폭력 직접행동은 위기와 긴장감을 조장시켜, 협상을 거부하는 사회를 곤경에 빠뜨리고 더 이상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즉 사회의 쟁점들을 본격적으로 부각시켜 더 이상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직접행동의 추구하는 바이다”

6년여가 되어서야 가능해진 쌍용차의 노사 협상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서럽다. 숱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이 만든 결과여서 기쁘지만, 노동자는 ‘말’에 낄 수 없는 존재, 대화와 협상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 사회의 잔인함에 입은 상처들 때문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의 말이 말로서 존중돼야 하며 정책과 조치들의 잣대가 돼야 한다. 오늘도 숱한 노동자들이 온 몸으로 말을 걸고 있다. 나는 처분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나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라고 말이다.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ILO Declaration of Philadelpia, Declaration concerning the aims and purposes of ILO, 1944)

국제노동기구(ILO, 아래 ILO) 총회는 필라델피아의 제 26차 회기에서, 1944년 5월 10일, ILO의 목적에 관한 이 선언과 회원국의 정책 기조가 되어야 할 원칙들을 채택한다.

I
총회는 ILO가 근거하고 있는 기본 원칙들, 특히 다음 원칙들을 재천명한다.

a)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b)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c)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
d) 결핍과의 투쟁은 각국에서 불굴의 의지로, 그리고 노동자 대표와 고용주 대표가 정부 대표와 동등한 지위에서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인 결정에 참여하는 지속적이고도 협조적인 국제적 노력으로 수행돼야 한다.

II
총회는, 항구적 평화는 사회 정의에 기초해서만 가능하다는 ILO헌장속의 선언의 정당성이 경험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확신하며, 다음을 확언한다.

a) 모든 인간은 인종, 종교 또는 성별과 상관없이 자유와 존엄, 경제적 안전 속에서 그리고 평등한 기회 속에서 자신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발전 둘 다를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b) 이를 가능케 할 조건의 실현은 모든 국내 및 국제 정책의 핵심 목적이 돼야만 한다.
c) 모든 국내 및 국제적 정책과 조치들, 특히 경제‧금융 영역에서의 그것들은 이런 관점에서 판단돼야만 하며, 이 근본 목적을 달성하는데 방해가 아니라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만 채택돼야 한다.
d) 이 근본 목적의 견지에서 모든 국제적인 경제‧금융 정책과 조치들을 검토하고 심의하는 것은 ILO의 책무이다.
e) ILO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관련된 경제‧금융 요소 일체를 고려한 후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규정들을 결정과 권고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III
총회는 다음 사항들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전 세계의 국가들에서 촉진되도록 하는 것이 ILO의 엄숙한 의무임을 인정한다.

a) 완전 고용과 생활수준의 향상
b) 노동자들이 최대한의 기술과 조예를 발휘하고 공동선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는 만족을 가질 수 있는 일자리에 고용되도록 할 것
c) 이 목적의 성취를 모든 관련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장을 통해 달성하기 위하여, 고용과 거주를 위한 이주를 포함하여, 직업 훈련과 노동자의 이동을 원조하기 위한 시설들의 제공
d) 임금과 소득, 노동시간과 기타의 노동조건과 관련하여, 모두가 진보의 과실을 정당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모든 고용 노동자와 그런 보호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최저 생활 임금을 보장하는 정책
e) 단체교섭권의 실질적인 인정, 생산 효율성의 지속적인 향상에서의 관리자와 노동자의 협동, 그리고 사회적 및 정치적 조치들의 마련과 적용에서의 노사협력
f) 사회적 보호와 충분한 의료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기 위한 사회보장 조치들의 확대
g) 모든 직업에서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위한 적절한 보호
h) 아동복지와 모성 보호의 제공
i) 적절한 영양, 주거, 여가와 문화 시설의 제공
j) 교육과 직업 기회의 평등성 보장

(IV, V 생략)

인권오름 제 423 호 [기사입력] 2015년 01월 22일 17:46:0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351 호  [기사입력] 2013년 06월 2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국정원의 선거 유린과 국정조사, NLL(북방한계선) 논란이 얽히고설켜 돌아가고 있다. 국가최고정보기관이 직원들에게 아이디를 돌려가며 댓글을 달게 했단 것도 놀라운데 제 기관의 명예를 위한답시고 할 말, 안할 말 죄다 뱉어내고 있으니 민주 국가의 기본에 분탕질이 아닐 수 없다. 위기를 모면하려는 쇼가 아니라 제대로 된 국정조사 해야 하는 것 당연하다. 그런데 그보다 오래됐고 절박성에 모자람 없는 쌍용차 국정조사와 24시간 인권에 대한 전쟁이 선포되고 있는 대한문의 상황은 어찌하겠단 말이 없다.

‘노동자’란 단어조차 껄끄럽게 여겨지는 까칠한 사회라서, 노동자의 요구는 ‘투박’하고 ‘과격’한 것으로 외면된다. 그런데 ‘세련’되고 ‘온건’한 것들이 지배적인데 왜 그 속엔 곪디 곪은 문제들의 처방전이 들어있지 않은 것일까? 부당하고 조작가능성이 짙은 ‘정리해고’에 ‘노동유연화’니 ‘구조조정’이니 ‘경영효율성’같은 말을 쓰면 ‘해고는 살인’이란 고통이 완화되는가? 자본가와 노동자란 관계는 껄끄럽지만 이 사회에서 대부분이 맺어야 하는 기본관계다. 이 관계조차 인정하길 거부하면서 ‘너는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다’, ‘내가 널 고용한 게 아니고 단순 사용자일 뿐’이라 손사래 치는 댁들을 그럼 ‘가짜 자본가’라고 불러야 할까?

민주주의는 평등한 관계의 시민을 전제로 하고, 그 시민들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로 먹고사는 노동자이다. 이들 노동자가 시민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건 시민의 평등성에 대단한 문제가 생겼다는 적신호이고, 노동자란 단어에 경기를 일으킨다는 것은 노동자란 천대받는 신분의 따로 존재를 용인한다는 의미다. 민주주의를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 지붕만 바라보는 곳에 놓고 관망하며 내가 일하며 사람과 직접 부딪치는 삶의 무대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가끔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설 수도 있겠지만 광장을 벗어나는 순간 삶의 무대엔 불빛이 없고 캄캄하다.

그 어둠 속에서 최근 서울구치소 수인번호 111번으로 불리게 된 노동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김정우, 쌍용자동차 노조의 지부장이다.

구속 전 마지막으로 본 그의 표정은 소풍 나온 아이 같았다. 시청광장에서 쌍용차 해고자들이 만든 자동차를 선보이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없이 하이파이브를 청해왔고 나도 말없이 힘껏 손바닥을 마주쳐주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차를 배경으로 무릎을 꼬고 머리를 돌려 젖히는 등 노동자들이 한껏 자세를 취했다. ‘우와! 정말 자동차 모델 같다. 광고 많이 봤나봐?’ 터지는 웃음 속에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가 노래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

그와 동료들이 모처럼 웃어본 지 불과 이틀 만이었다. 노동자 잡으려고 부러 날 잡았는지, 6.10민주항쟁 26주년을 맞는 날 아침이었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도 그 건너편 재능 농성장도 박살이 났다. 이미 여러 차례 철거를 겪어 천막도 없고 길바닥에 몸뚱어리로 버티고 있을 뿐인데 그마저도 밀어버렸다. “쓰레기 치우라”는 폭언과 함께 사람의 몸으로 만든 분향소가 짓이겨졌고 저항하는 이들은 사지 들려 끌려갔다.

숱한 탄원과 비판에도 아랑곳없이 김정우에게는 덜컥 구속영장이, 원세훈에게는 딸랑 불구속이 떨어졌다. 김정우는 부당한 정리해고의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비명에 간 24명의 죽음을 추모하는 노동자이고, 원세훈은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해괴한 일들을 벌인 전직 국가최고정보기관의 수장이다. 이 사건이나 그 책임자는 안개에 싸인 국정조사 전망 속에서 ‘아직까지는’ 무사 항해 중이고, 배에 구멍 났다 소리치며 제 몸으로 물 퍼내던 이들은 패대기쳐졌다.

김정우에게 구속영장이 떨어졌다는 그 밤은 참 무더웠다. 겉은 끈적거리고 속도 답답하여 창문을 열고 자리라 맘먹었다. 그런데 웬걸, 발자국 소리·말다툼 소리·경적 소리…. 새벽이 되도록 도시의 소음은 잠들지 몰랐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신경질적으로 창문을 걸어 잠그다 멈칫했다. “악취와 소음 속 비닐움막생활 참 처참하지. 그래도 포기 못해 우리가 이길 거니까”라던 김정우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이기려고 하는 구호는 “함께 살자”이고 그것을 위해 그는 41일을 굶었고, 그의 동료들은 171일을 송전탑 위에서 보냈다. 쌍용차 해고자들뿐 아니라 재능, 현대차 비정규직 등 길바닥 잠을 자온 사람들이 숱하다. 지금도 경찰의 괴롭힘 속에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거리에서 밤을 보낼 사람들, 도시의 소음과 경찰 폭력은 잠도 꿈도 앗아갔을 터, 낮에 본 그들의 퉁퉁 부은 얼굴이 떠올랐다. 신이 될 수 있다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과 잠의 신을 꿈꿀 것이다. 잠까지 빼앗는 지금의 정치는 참 무능하고 썩었다.

그렇게 한밤중에 서성이는 데 한 글귀가 눈에 꽂혔다.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인권변호사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조영래 변호사의 유고집 제목이었다. 그가 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아주 나중에야 『전태일 평전』으로 알려진)이 워낙 강렬한 것이어서, 다른 글을 유심히 본 적은 없었다. “박해를 각오하고 발언할 수 있는 국민은 민주주의를 하기에 필요·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며 “요사이 얼마 동안의 우울한 일들에만 사로잡혀 지나치게 낙담할 것은 없다. 원래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 아닌가.”라고 토닥여준다. 하나 같이 요즘 우리 심정을 정말 잘 알고 쓴 글 같았다. 뒤적이다 보니 변론문과 칼럼만 있는 게 아니라 시도 있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바로 이 시, “노동자의 불꽃”이다. ‘노동자의 어머니’인 이소선 어머니마저 잡혀가고, 노동자들의 처지가 몰릴 대로 몰린 지경에서 쓴 시라고 한다. 제목이나 문투나 오늘의 세련되고 온건한 기준으로 보면 참 투박하고 과격하다. 하지만 수 십 년의 시차가 난다는 게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이 시의 구절마다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그대로 대입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청년들은 시급 5천원도 못 되는 시간제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라 외치다 끌려가고, 소상인들은 포식의 끝을 모르는 재벌 때문에 골목귀퉁이에서 신음하고, 국정원 선거개입 논란을 보도조차 안하는 언론에 맞서 쫓겨난 언론인들이 동분서주하고, 강정부터 밀양까지 소위 국책사업에 절규하는데, 4대강 사업이나 부정축재와 세금도피자들의 뒤치다꺼리까지 우리가 떠안아야 하고 책임져야 할 정치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침묵도 그렇거니와 불난집을 앞에 놓고 장판 밑에 숨겨놓은 제 돈 걱정만 하는듯한 야당의 태도 또한 역겹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시에서 느낀 현재성은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이 비슷해서만은 아니다. 그 현실을 묵인하지도 침묵하지도 않고 계속 맞서는 삶이 있다는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이 노동자의 ‘절망’이 아니라 노동자의 ‘불꽃’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도 실천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 식으로 노동자 전태일과 지식인 조영래의 구분 없이, 그리고 또 다른 구분을 앞세우지 않고도 “악에 대한 공통인식”으로 우린 만날 수 있다. 노동자들의 투박한 구호가 불편하더라도 그들이 내미는 하이파이브에 손 마주쳐 줄 박수의 내용은 다양할 수 있다.

숱한 시민들의 후원 속에 쌍용차 해고자들이 차를 만든 과정을 돌이켜본다. 우리가 해야 할 정치를 그 과정에 비춰 상상해본다. 우리는 그냥 돈을 위해 일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료와 관계가 필요한 사람들이란 것, 삶의 무대에 불을 밝히기 위해 서로 대화해야하는 존재라는 것, 그런 관계에 대한 인정이 우리가 할 정치의 시작이란 걸 말이다. 일을 위해 가지런히 도구들을 정리해놓고 서로의 호흡을 느끼며 작업을 했다. 그렇게 차를 만드는 과정처럼 지금 수많은 현장에서 곳곳의 거리에서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의 멈춘 시동을 걸려고 맨손으로 힘 모아 미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도 언론도 법원도 대통령도 다 뛰어나와 같이 밀던가, 아니면 열쇠를 내줘야 한다. 우리의 삶에 시동을 걸게.

그러니 국정원 국정조사에 합의한 여야 정치인들은 노동자 시민들의 질문의 범위를 왜곡․축소하거나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왜곡과 축소는 질문에 아니, 대답한 것보다 못하며 진실의 공개를 가로막는다는 것, 침묵은 문제해결의 의지가 없는 오만임을 우린 너무 잘 알고 있다. 특히 오래전에 약속한 쌍용차 국정조사를 빼먹고 갈 생각 마시라.

이 시의 출처는 다음과 같고, 부분 발췌했다. 조영래 변호사를 추모하는 모임 엮음, 『조영래변호사 남긴 글 모음, 진실을 영원히 감옥에 가두어 둘 수는 없습니다』, 창작과비평사, 1991, 286-301쪽

노동자의 불꽃노동자의 불꽃
- 아아, 전태일



처절한 불길을 보라
저기서 노동자의
아픔이 탄다
저기서 노동자의 오랜
억압과 죽음이 탄다
아아, 노예의 호적은 불살라지고
끝없는 망설임도 마침내 끊겨버린
저기서
노동자의 의지가
노동자의 저항이
노동자의 자유가
불타오른다
……
하늘 땅 열리실 제 삼라만상 생겨나니
모든 생명 귀한 중에 사람이 으뜸이라
한덩어리 지구 위에 한핏줄 타고나니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네
사람이 사람을 학대할 권리 없고
사람이 사람을 억누를 수 절대 없어
이를 두고 예로부터 자유‧평등 일컬었네
땀흘려 일하는 자 일한 몫을 거두고
뜻밖에 불행한 자 모두 도와 함께 사니
인류의 오랜 꿈인 정의‧사랑 참뜻일세

어둡다, 이 땅 위의 오늘 현실 바라보라
민주주의 파괴되니 약자 인권 짓밟히고
자유‧평등‧정의‧사랑 공염불로 타락하네
천하는 천하의 것 1인의 것 아니건만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제멋대로 결정하니
법률도 제멋대로 재판도 제멋대로
언론자유 탄압하고 학원 교회 억누르며
약한 자를 대변하면 반공법에 묶어가고
강자 횡포 비판하면 긴급조치 묶어가니
진리는 철창 속에 거짓은 옥좌 위에
거짓이 진리보고 “뉘우치라” 조롱하고
총칼이 양심에게 침묵을 강요하니
온세상이 캄캄한 어둠 속에 휩싸이고
어용야당 어용노조 어용신문 어용방송
어용종교 어용예술 어용학자 어용교수
제세상 만난 듯이 온갖 잡귀 판을 치며
이 속에서 약육강식 온갖 비극 일어난다

권력은 돈을 낳고 돈은 다시 권력 낳아
힘센 자와 살찐 자가 부패 속에 총화단결
역대정권 경제정책 한마디로 표현하면
서민대중 고혈 빠는 특권경제정책이라
……
특혜받는 대재벌들 반사회적 거동 보소
신문에 이름 내는 성금낼 땐 후하면서
노동자 임금에는 어찌 그리 박하던가
……
수단방법 안 가리고 부당폭리 추구하니
아이스크림 화장품에 호텔까지 손을 뻗쳐
중소기업 목조르고 자원낭비 조장하기
은행이란 은행돈은 모조리 제 차지라
싼 이자로 융자받아 비싼 이자 사채놀이
국내시장 독점하여 초과이윤 거저 먹기
중소기업 해외시장 덤핑으로 가로채기
부동산에 투자하여 집값 땅값 올려놓기
하청기업 농락하여 도산시켜 잡아먹기
수입하며 외화도피 수출하며 외화도피
밤낮으로 생각느니 탈세와 외화도피
……
형제자매 노동자여 억울하다 우리 실정
멸시와 핍박 아래 기계취급 당해가며
노예처럼 혹사받고 병들어가면서도
경제정책 모든 실패 우리에게만 전가되니
수출상품 경쟁력도 저임금 바탕 위에
물가인상 억제책도 저임금 바탕 위에
불경기 땐 대량해고 실업자 신세 되고
호경기 땐 철야작업 삭신이 병이 드네
……
민중의 몽둥이 경찰권력 거동 보소
노동자들 몇이 모여 수군수군했다 하면
사냥개 냄새맡듯 정보형사 떠다니고
임금인상 요구하며 농성 한번 했다 하면
개밥에 보리알 튀듯 기동경찰 끼여드네
어느샌가 나타나는 사복 입은 형사님네
밥 먹고 사람 패는 연습만 하였던지
유도 당수 태권도로 노동자를 후려치니
가뜩이나 중노동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이
골수에 병이 들어 폐인이 되어가네
……
노동자를 위한 법률 그 얼마나 된다기에
그나마 단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서
노동자 잡는 법은 수도 없이 만들고서
꼬투리만 있다 하면 제까닥 묶어가니
이 나라의 법질서는 누굴 위해 있는 건가
돈 없고 배경 없는 우리네 노동자들
기업주 하나만도 상대하기 힘겨운데
국민의 혈세로 유지되는 국가권력
기업주들 편들어서 노동운동 억누르니
이 정권은 과연 누굴 위한 정권인가
……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하기 마련이고
참새가 죽을 때도 짹소리는 하고 가니
하물며 만물영장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토록 짓밟히고 어찌 조용할까보냐
70년도 11월에 평화시장 앞길에서
노동자의 불꽃 하나 폭탄처럼 튀어나와
“노동자도 사람이다. 기계취급 하지 말라”
땅속에 울부짓는 전태일의 핏소리가
억눌린 억만 가슴 뒤흔들고 울려퍼져
노동자의 생존투쟁 곳곳에서 일어나니
이 위대한 역사흐름 그 무엇이 막을소냐
……
우리를 거부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자!
우리 생존 거부하는 저임금을 거부하자!
젊디젊은 우리 목숨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시간 중노동과 살인환경 거부하자!
가진 자의 오만과 횡포를 거부하고
노예사상 강요하는 저들 손길 뿌리치자!
노동자의 인간다운 존엄성을 파괴하는
욕설들과 폭행들과 인권유린 거부하자!
노동운동 탄압하는 업주횡포 경찰폭력
해고와 체포 앞에 굴복하길 거부하자!
노동자를 짓밟는 특권경제 거부하고
외국자본, 대재벌의 횡포를 거부하자!
우리를 얽어매는 모든 법률 모든 조치
모든 거짓 모든 위선 모든 구호 모든 선전
그 앞에서 무릎꿇는 노예 되길 거부하자!
……

인권오름 제 351 호  [기사입력] 2013년 06월 2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323 호  [기사입력] 2012년 11월 2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요 며칠 평소에 없던 두통이 일었다. 하도 신경을 써서 그런 것이라 ‘지나가겠지’라고 무시한다. 뭘 그렇게 신경 쓸 일이 있냐고 묻는다면 한숨부터 나올 것 같다.

엊그제 41일째 단식을 하던 노동자가 병원에 실려 갔다. 차가운 농성장에 누워 굶다가 그나마 따뜻한 병원으로 갔다니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새벽 3명의 노동자가 공장 앞 철탑에 합판 달랑 들고 올랐다 한다. 아침이면 영하가 되는 날씨인데 말이다.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그들에 대한 소식만 검색하다가 인권 강연을 갔다. 평소라면 몇 차례는 참여자들을 크게 웃게 만들었을 텐데 내가 침울해서인지 강연 분위기가 축 가라앉았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 입구에서 종이박스 한 장 깔고 앉아 껌을 파는 장애인을 만났다.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해 차갑게 얼어있었다. 지하철 종이박스 위의 그와 철탑 위 합판에 걸터앉은 노동자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알량하게 껌 한 통 산 나는 정신을 놓았는지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가 되돌아왔다. 그리고 24시간이 지나니, 전기세를 못 내 촛불 켜고 자다 변을 당했다는 할머니와 손자의 소식, 마치 겨울의 전령이 돼버린 듯한 낯설지 않은 소식이 아침을 연다. 내 두통은 지나가겠지만 이런 고통은 사회적인 대책이 없는 한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철탑 위 노동자와 관련된 얘기 중에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란 말이 여럿 오갔다. 무슨 얘긴가 하여 그 근거가 되는 보고서를 찾아봤다. “구조조정에서의 건강”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그렇지, 아프지, 당연히 아프지’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보고서에서 다룬 사례연구를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소외되고 해고된 노동자들, 또 요행히 남아서 소위 ‘산자’가 된다 하더라도 그들 대부분이 만성적인 불안과 스트레스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된다는 분석에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자살, 과도한 스트레스에 의한 심근경색 등으로 이미 23명이 세상을 떠난 쌍차 사례가 우리 사회에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건강 피해는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관련 사업장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구조조정과 연관된 지역사회와도 관련된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작년 겨울인가, 정치권의 무대응과 무대책을 질타하는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서 갔다. 그때 기자회견을 준비한 쌍차 노동자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울먹이다가 다시 멍해지곤 했다. 그는 아팠다. 쌍차 노동자의 죽음이 꼬리를 물던 때였다. 동료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그는 분명 아주 아팠다. ‘내 몸에서 죽음의 향냄새가 나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다음 차례가 저 사람인 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보고서가 제시하는 답은 “사회적 호위”이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보디가드가 되자는 말이다. 전 지구화된 경쟁과 위기가 끼치는 영향을 개인의 자원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전 사회 구성원이 같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쌍차 노동자들이 내건 구호 중에 간판을 차지하는 것이 ‘같이 살자’였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앞서 말한 노동자를 요즘 보면 눈빛이 살아있다. 거리에서의 한뎃잠과 잦은 단식에 힘들겠지만 그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참 튼튼해 보인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응원한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뚜벅뚜벅 걸어갔고, 대전의 유성기업에서 굴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천막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를 응원하기 위해 자기네 농성장을 몽땅 비우고 그곳에 연대하러 갔다. 활동보조인이 없어 화재로 사망한 고 김주영 씨의 영정 앞에서 쌍차 노동자 대표들이 큰절을 올렸고 30일 넘게 단식 중인 노동자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자기네 집회에서 쌍차 문제만 얘기하지 않고 밀양의 할머니들이나 강정마을의 수난에 대한 얘기 등을 빼먹지 않는다. 그렇게 ‘같이 살자’를 몸으로 옮기면서 정말 아프지만, 사람답게 살아있다. ‘아픈 사람에게서 배우는 건강함’이란 역설을 그들을 볼 때마다 느낀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 대한 ‘사회적 호위’는 초라하기만 하다. 이 보고서는 구조조정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고 고용주가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그중에서도 ‘정의와 신뢰에 대한 경험’이란 부분에 눈이 간다. 이 보고서가 지적한 바대로 고용주가 노동자를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는 믿음을 한 번이라도 준적이 있는지, 시기적절한 정보를 내놓고 대화하려 했는지, “사회적으로 세심한” 접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는지 묻고 싶다.

보고서는 단기적 이익에 목맨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같이 살기 위한 장기 전략적 사고를 주문한다. 장기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으려면 노동자를 백열전구처럼 갈아 치울 수 있고 처분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보는 경영철학으론 안된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위기를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적 파국”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선 혼자만 살 수도 없을뿐더러 혼자의 자원으론 감당할 수 없고 혼자의 역량을 초과하는 문제를 다뤄야 한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걷고 굶고 거리에서 자고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탑에 오르는 사람들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적 호위”의 대열에 끼어서 같이 고통을 맞들어야 하지 않을까?

국회의원으로 뽑아 놓고 세금으로 세비 주는 것은 부당하고 석연치 않은 정리해고에 대해 소상하게 파헤치는 국정조사 하라고 그런 것이다. 대선공약이라고 만들기 힘든 일자리 새로 만들겠다는 풍선 남발하지 말고 원래 일하던 자리에서 부당하게 쫓겨난 사람들을 복직시키는 ‘쉬운’ 일부터 하라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겠다고 현수막마다 써 붙이지 말고 지금 철탑 위에 매달려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부터 들어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광고 대사처럼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참 좋은걸’ 왜 안 하시나?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구조조정에서의 건강: 혁신적 접근과 정책 권고(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고용·사회문제·기회균등국, 2009)

(발췌번역한 것으로, 보고서 원문은 아래 싸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ipg.uni-bremen.de/research/hires/HIRES_FR_090518_english.pdf)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고용‧사회문제‧기회균등국의 지원을 받은 <구조조정에서의 건강>에 관해 전문가 집단은 이런 질문에 답하고자 했다. 구조조정은 연관된 개인의 건강과 조직의 수행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조직과 피고용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행위자 집단은 어떻게 해야 최상의 협력을 할 수 있는가?

구조조정에 대한 가장 지배적인 생각은 현행 노동조건을 압박하고 고용을 위태롭게 하는 위기라는 것에 머물러 있다. 조직에 늘 있기 마련인 변화로부터 기인하는 도전과 투쟁에 더하여, 이런 식의 구조조정에 대한 생각은 일자리가 생각한 것보다는 사실상 훨씬 덜 불안한 상황에서조차 반신반의와 초조함을 야기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일자리 불안 문제를 줄일 수 있도록 다음 두 가지 전략이 영구적으로 구조조정 의제에 담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a) 지속가능한 고용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개별 노동자와 조직의 합동 노력, 이런 노력은 잠재적 일자리 상실의 혹독함을 제한한다.
b) 불확실성을 제한하기 위한 조직의 구조조정 준비와 그 과정에서의 투명하고 공정한 결정 과정

이 보고서가 보여주듯이,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감원의 직접적인 피해자, 회사에 남는 소위 ‘산자들’, 구조조정 과정의 운영자들, 피해자와 산자들의 가족과 구조조정이 벌어지는 지역사회)은 공적인 관심과 지원을 필요로 한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이런 직업에서의 변화가 그것을 감당할 만한 개인적 자원을 초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 호위”(social convoy)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전체로서의 사회와 관련된 모든 행위자가 이 과정(구조조정으로 인한 직업 변화 과정)을 평탄하게 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검토한 증거들은 구조조정 과정이 소위 ‘산자’를 포함하여 영향받는 노동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또한, 명백한 점은 고용주와 여타 사회적 행위자들이 구조조정의 부정적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된 경쟁이라는 새로운 요구에 직면하여 고용의 (유럽)사회적 모델이라는 특성을 보존하는 데 목적을 둔 기업 구조조정의 개념은 기업의 건전성을 경제적 지표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개별적 영향을 고려해야만 한다. 덧붙여 이런 개념은 경제의 장기적인 경쟁성에 대한 중대한 영향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의 새로운 이해는 일방적인 한쪽만의 이해당사자 관점으로부터 ‘관련된 모든 당사자의 이해’라는 보다 균형적인 견해로 관점을 확장한다.

‘사회적으로 세심한 구조조정’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개인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이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사례가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의도한 경제적 이익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이해에 집중하는 것이 노동자에게나 회사에게나 구조조정 과정을 원만하게 한다는 것이다.

감원의 직접적인 피해자: 해고자들
일자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고용의 상실은 건강 손상과 사회적 배제라는 심각한 위험의 근본적인 스트레스 요인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구조조정의 결과로서 해고될 이들의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며 건강에 끼칠 악영향을 제한하는 데 집중해야만 한다.

지구화된 경쟁에 대한 경제적 적응은 변화를 감당할 개인적 자원을 초과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무엇보다도 개인적인 문제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 그 대신에 이 과정은 “사회적 호위” 같은 개념과 동반돼야만 한다. “사회적 호위”란 국가, 기업, 지역기구 등 다양한 사회적 차원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현재의 위기는 “전염병적 파국”(세계보건기구(WHO)에서 쓴 용어)을 피하기 위하여 개인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정의와 신뢰에 대한 경험
신뢰란 고용주가 노동자를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고 노동자가 생각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이런 맥락에서의 공정함이란 세 가지 차원의 정의-분배적 정의, 절차적 정의, 상호작용의 정의-에서 경험된다. 구조조정으로 야기된 불확실성의 기간 내내 노동자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고용주, 사회적 협력자들, 정책입안자들은 세 가지 차원의 정의를 모두 체계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 ‘상호작용의 정의’는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계획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았는지 그리고 대안적 선택에 관한 노동자의 견해가 얼마나 경청 되었는지에 대한 노동자의 인식과 관련된다. 고용주는 구조조정에 대하여 투명하고 정직할 필요가 있다. 시기 선정이 아주 중요하다. 언론을 통해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노동자들은 고용주의 후속 발표를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노동자의 견해와 노동자 대표가 참작되고 있다는 걸 노동자가 보는 게 중요하다.

의사소통 계획의 변화
적절한 의사소통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요하다. 고용주는 어떠한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적절한 의사소통계획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구조조정은 관련된 운영자들에게조차 불확실성의 시기일 수 있다. 바로 그 불확실성이 구조조정의 영향을 받는 이들에게 중대한 스트레스 요인이다. 양호한 의사소통이 없다면 노동자들은 소외되고 배제되고 무력하다고 느끼기 쉽다. 의사소통은 신뢰 유지에 아주 중요하다. 양호한 의사소통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 정보의 질: 즉 정보의 접근성, 정확성, 유용성이다.
* 시기 적절성: 정보는 수신자가 자신들의 정당한 관심이 고려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도록 적시에 있어야 한다.
* 정보의 방향성: 노동자와 노동자 대표 조직이 단지 수동적인 정보의 수신자이기만 하면 노동자 자신들의 역량이나 주인된 의식을 느낄 수가 없다. 적극적인 경청과 반응에 의한 쌍방향 정보의 흐름이 최상이다. 다른 말로 하면, 고용주는 노동자의 견해에 대해 건설적인 행동을 취함으로써 노동자와 노동자 대표의 견해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만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파견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즉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노동의 성격이 장기간 주 고용주의 지시를 받아 이뤄진 것이라면, 그 주 고용주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구조조정에서 건강 증진에 대해 같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ILO의 ‘사회적으로 세심한 기업 구조조정’(SSER) 개념
이 보고서의 접근에 처음부터 상당한 영향을 끼친 개념은 ILO가 만든 ‘사회적으로 세심한 기업 구조 조정’(아래 SSER) 개념이다. SSER은 사례연구에 기반하여, 기업의 경제적 생존만이 아니라 구조조정에 연관된 개인들(피해자와 ‘산자’ 모두)의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비용을 포함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여 구조조정 과정을 순화시킨 요소들을 분석하려 했다. 이 개념은 유럽의 경험에 특화된 것이긴 하지만, 다수 기업들의 경험에 근거한 적어도 네 가지의 일반적인 교훈이 있다.

* 비용은 알려지지만, 혜택은 그렇지 않다: 기업들은 ‘사회적으로 세심한 기업 구조조정’에 돈이 든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 재정적 비용은 측정 가능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세심한’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수행했을 때의 경제적‧사회적 혜택을 측정하는 법에 대해선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
* 사회적 대화는 현실이 돼가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선 사회적 대화가 기존 법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유럽 국가들을 넘어서는 별로 그렇지 않고 특히 동유럽에서 그렇다.
* SSER의 도구는 약간이나마 기준규범의 꾸러미를 제시하고 있다: 좋은 소식은 구조조정에 직면한 기업들이 자신들이 선택할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그런 도구가 자기 회사에 관련이 있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심사숙고하지 않고, 남이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베낀다는 것이다.
* 장기적 전략과 구조조정 간의 연결은 여전히 드물다: 상당수 기업이 구조조정 전망이 자신들의 장기적 전략의 일환이 됐다고 선언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들 기업의 대부분은 단기적으로 사고한다. 기업에게 구조조정은 경제/부문/시장 변화에 대한 빠른 대응이다.

이 마지막 교훈이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결론일 것이다. 구조조정이 성공적이려면, 기업‧국가 또는 지역의 장기적 발전 전략과 연결돼야만 한다. 기업 차원에서 그것의 의미는 구조조정을 해고 싸움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장기 전략적 사고는 세심한 인권 계획을 요구한다. 가장 중요하게는 노동자를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다룰 것을 요구하는 경영 철학과 연관된다. 감원을 자행하는 쪽은 노동자를 마이크로 칩이나 백열전구처럼 필요하다면 갈아치울 수 있고, 대체할 수 있고, 처분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본다. 이와 대조적으로 책임성 있는 구조조정자는 노동자를 개혁과 쇄신의 원천으로 본다.

노동자를 자산으로 여기는 기업들은 사회적으로 세심한 구조조정으로 알려지기가 가장 쉬울 것이다. 그런 기업들은 성공적으로 증명된 다음과 같은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 도구들이란 상담, 기술 평가, 훈련, 안팎으로 일자리 찾기, 중소기업 창출, 이동성 지원, 조기 퇴직, 대안적 일자리 계획, 퇴직금 등이다.

인권오름 제 323 호  [기사입력] 2012년 11월 2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시월도 중순이 지났다. 바람이 매서워졌다. 이맘때면 라디오 음악 채널에서 유독 자주 나오는 노래가 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잊혀진 계절>이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휴일 아침이면 나를 깨운 전화 오늘은 어디서 무얼 할까”란 가사가 마음을 덥혀 준다면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 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는 야릇한 추억과 슬픔을 부채질한다. 저마다 시월에 관한 사연을 터뜨릴만한 애틋한 계절…, 같이 기억하고 나누어야 할 사연 또한 적지 않다.

주말마다 일하러 가는 식당의 동료 한 사람은 나를 볼 때마다 “그 아줌마 아직도 못 내려왔어?”라고 묻는다. 그 물음에 나는 한숨으로 답할 뿐이다. 그리곤 생각한다. ‘벌써 일주일이 또 지났구나.’ 묻는 이가 의도한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안’ 내려온 것과 ‘못’ 내려온 것의 차이는 크다. 김진숙 씨는 ‘안’ 내려온 것이 아니라 ‘못’ 내려오고 있는 것이 맞고, 그것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었던 그 질문은 한 사람이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그리도 오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같은 사람으로서의 안타까움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주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더 무거웠을 것 같다. 8년 전 동료 김주익 씨가 그 크레인에서 목을 맨 날이 이번주 월요일이었다. 2003년 10월 17일 아침 9시경 129일째 홀로 고공농성 중이던 한진중공업노조 김주익 위원장이 목을 맨 채 발견됐다. 한진중공업은 2002년 3월부터 인력체질개선이라며 전체 노동자 가운데 25%인 650여 명을 강제사직시켰고 그때부터 시작된 임단협 투쟁이 해를 넘겨 계속됐다. 2003년 6월 노동부 중재로 임금교섭과 해고자 복직, 손배‧가압류의 원만한 처리 등이 잠정 합의됐지만 사측의 불이행으로 물거품이 됐다. 이에 김 위원장은 홀로 크레인 위로 올라가 항의 농성을 시작했던 것이다.

한진 노동자들은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측은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노조에게 15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했고, 노동자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 미복귀 조합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손해배상을 묻겠다고 했다. 이미 앞서 수차례에 걸쳐 손배소송이 제기됐던 터라 노조는 조합비 전액을, 조합원들은 임금의 절반을 가압류 당한 상태였다. 게다가 김 위원장 등 노조간부들은 살고 있는 집까지 가압류 당한 상태였다. 손배‧가압류를 통해 사측은 이미 김 위원장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김주익 씨의 사망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는 9월 9일자로 되어있었다. 한 달이 넘도록 유서를 품은 한 사람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 자기 소리를 듣고 달려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을 것이다. 같은 시월에 떠난 이는 또 있다. 23일에는 대구 세원테크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했고, 26일에는 근로복지공단비정규직노조 이용석 광주전남본부장이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고 외치면서 비정규노동자 대회에서 분신했다. 두 분 다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다 운명했다. 이해남 씨는 어렵게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과 해고와 수배에 쫓겨야 했고 사측의 노조파괴공작에 노조원들은 손배와 가압류에 시달려야 했다. 이용석 씨가 고발한 비정규직 차별은 동료들의 증언에서 터져 나왔다. ‘정규직의 60%에 불과한 임금을 받는다’, ‘정규직은 다 받는 식대나 출퇴근 교통비도 받지 못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같은 업무를 하는데도 부서 회의 때 부르지 않고 손님 오면 커피를 타는 것에서 사무실 걸레질까지 비정규직의 몫’, ‘정규직은 최고 90일까지 받을 수 있는 병가가 비정규직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아파서 병원에 가려면 임금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끝없는 차별의 사슬이었다.

그렇게 시월에 떠난 그들이 세상에 맞설 때는 사람들이 세상을 가리켜 ‘20 대 80’의 세상이라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 금융가를 점령하고 있는 시위대들은 1% 대 99%의 싸움을 말하고 있다. 20 대 80이 1 대 99로 변한 것은 돈과 권력이 어디로 쏠렸으며 인간존엄성이 얼마나 황폐해졌는가를 한마디로 증언해준다. 저마다 다양성은 있다 할지라도 99인 사람들이 오늘날 외치는 것은 ‘함께 살자’가 아닐까? 함께 살지 않으면 그건 1인 저들이 100을 전부 가지게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이고 그건 끝이란 마지막 경고가 아닐까 한다. 김진숙 씨의 크레인은 함께 살아야 할 삶의 가치를 먼저 차지했고 점령했고 수많은 삶을 거기로 불러 모았다. 그에 화답하는 것은 김진숙 씨를 ‘못’ 내려오게 하는 장벽을 철수시키는 것이고 그게 ‘함께 살고픈’ 사람들이 점령해야 할 첫 번째 고지라는 걸 시월에 떠난 이들의 목소리에서 확인한다.

시월에 떠난 사람들의 유서

고 김주익 님의 유서

(…)
노동자가 한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
1년 당기순이익의 1.5배, 2.5배를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경영진들, 그러면서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어렵다고 임금동결을 강요하는 경영진들. 그토록 어렵다는 회사의 회장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는 거액의 연봉에다 50억 원 정도의 배당금까지 챙겨가고 또 1년에 3,500억 원의 부채까지 갚는다고 한다.
이러한 회사에서 강요하는 임금동결을 어느 노동조합, 어느 조합원이 받아들이겠는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만 21년, 그런데 한 달 기본급 105만 원, 그중 세금 등을 공제하고 나면 남는 것은 80여만 원.
근속연수가 많아질수록 생활이 조금씩이라도 나아져야 할 텐데 햇수가 더할수록 더욱 더 쪼들리고 앞날이 막막한데, 이놈의 보수언론들은 입만 열면 노동조합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난리니 노동자는 다 굶어 죽어야한단 말인가.
이번 투쟁에서 우리가 패배한다면 어차피 나를 포함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한사람이 죽어서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가 있다면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
그동안 부족한 나를 믿고 함께해 준 모든 동지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할 따름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 것, 40년의 인생이었지만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가는 것뿐,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무엇 하나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헤어지게 되어서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아이들에게 휠리스인지 뭔지를 집에 가면 사주겠다고 크레인에 올라온 지 며칠 안 되어서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조차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

고 이용석 님의 유서

(…)
32년 평생(일생)동안 우리 공부방 어린 학생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은 그들이 내 삶의 스승이자 등대였습니다. 내 어두운 미래와 긴 터널 속에서 나를 빛으로 깨우게 한 나의 동반자였습니다.
(…)
동지여러분!
우리가 모인 이 자체가 노동자로서 승리입니다.
직원을 탈피한 진정한 노동자로서 삶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자리 함께 하지 못한 동지들의 몫까지 우리가 싸워야 합니다. 노예문서 같은 비정규직 관리세칙을 파기하고, 고용안정을 외치는 우리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며 마땅히 쟁취해야 합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을 버리고 나만, 우리만 함께 한다면 반드시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오늘 이 모인 자리를 자축하며 즐겁게 투쟁합시다.
동지 여러분!
우린 정말 순수하고 자주적으로 일어섰습니다.
임금투쟁은 매년마다 할 수 있지만 기본 없는 노동조합은 결국 쉽게 어용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선 이 자리 이 시간들의 의미를 잃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짐을 챙겨 떠날 때 그 날 어머님이 시골에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도 차마 얼굴을 뵙지 못한 게 미안합니다.
(…)
동지여러분!
하나가 모여 둘이 되고 둘이 모여 넷이 되듯,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루려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100이 되지 않더라도 정당한 길을 간다면 그 뜻을 이룰 것입니다.
오늘 다 함께 하지 못함이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기약이라 생각하십시오.
오늘 동지들이 모여 있음이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하였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린 정당하고 새로운 길을 찾았음이 꼭 승리하였습니다.

고 이해남 님의 유서

노동자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도 없어 몸 하나에 인생을 의지하고 살면서 정말로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법에서도 보장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도 인간답게 살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투쟁했고 투쟁한 대가로 구속도 되었고 해고도 되었다. 노동자가 법에서도 보장된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구속되고, 수배되고, 해고되는 정말로 웃기는 나라에서 더 이상은 살아갈 희망을 갖지 못할 것 같다.
(…)
마지막 바램이 있다면, 내 한 몸 희생으로 노동탄압, 구속, 수배, 해고, 가압류라는 것들은 정말 없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
사랑하는 가족에게
(…)
여보! 나중에 인호, 경호가 크면 이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거야. 지금은 아직 어리니까 이 못난 아빠를 야속하게 생각하겠지. 힘들고 어렵더라도 두 아들이 있지 않소? 경호는 듬직하고 의젓해서 믿을 만하고, 인호는 개구쟁이지만 손재주도 많고 영특해서 나중에 잘 될 것 같고. 여보! 나 없더라도 우리 조합원들이 잘 챙겨 줄 거야. 1주일에 한 번쯤은 애들 목욕 부탁도 하고…
인호야! 경호야! 정말 미안해… 못난 아빠 용서해 주렴. 그리고 모레가 인호 생일인데, 같이 못해 미안하다. 인호야.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너희들 자라는 모습 지켜볼게. 안녕.
(…)
대통령에게
(…)
대한민국 헌법 1조에 이렇게 되어 있더군요. “법은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다” 정말로 웃기는 얘기 아닙니까? 돈 있고 빽 있는 놈들은 수천억을 해 쳐 먹고도 검찰에 출두해서 며칠 콩밥 먹고 나오면 그만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 농민들, 빈민들은 생존권 사수를 위해 투쟁했다는 이유로 몇 년씩 구속되고, 수배되고, 가정까지 파탄되는 지금의 이 나라 현실이 아닙니까?
(…)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이 나라의 노동정책이 바뀔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제가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합니다. 노동자들과 대화는 외면한 채 오로지 노동자 죽이기로 일관하고 있는 악질 기업주들에 대해서 반드시 정부 차원의 대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것만이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길이란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인권오름 제 271 호  [기사입력] 2011년 10월 19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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