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307 호  [기사입력] 2012년 07월 1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최근 어떤 모임에서 40대 이상들 속에 20대가 단 한 명 끼어 있었다. 대화 중에 20대인 사람이 “아이고, 다 40대이네”란 말을 내뱉자, 나도 모르게 “우리도 모두 20대였거든요”란 말이 바로 튀어나왔다.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아이였고 젊은이였던 경험은 가질 수 있으나 모두가 노인이었던 경험을 가질 수는 없다. 나이주의는 늘 어려서 무시 받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이 듦에 따라 어떤 연령대이든지 나이에 의한 억압을 받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고령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행동구호가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인가 보다.

인권활동가들끼리 장래에 대한 얘기를 나눌 때면, 대개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노후대책이란 게 없다. 그렇게 아무 대비도 없이 어쩔 거냐는 물음에 이구동성으로 ‘노인인권운동할 거야’라고 한다. 노인인권단체 만들어 평생 현역으로 활동하겠다는 기세다. 자비로 저축하거나 사회적 지원을 앉아서 기다리기엔 막막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직접 나서는 게 최고의 노후대책이란 결론이다.

그런 게 나와 내 주변 사람들만의 맘은 아니었는지, 최근 뉴스에서 노인노조에 관한 것을 봤다. 노인노조가 추구하는 가치와 행동계획에 대한 자세한 얘기보다는 어버이연합과의 해프닝이 뉴스의 주를 이뤄서 아쉬웠고 궁금한 게 많았다. 청년유니온 결성에 이어 노인노조의 결성이라는 ‘세대’의 결집과 이들 간의 연대가 어떤 그림을 만들고 연대의 틀과 내용을 어떻게 짜갈 것인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된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걱정과 응당해야 할 일에 대한 기대라 할 수 있다.

고령화가 국제인권무대의 의제가 된 것은 30여 년 정도다. 1982년 고령화에 대한 비엔나 국제 행동계획이 채택된 이후, 변화하는 인구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생겼다. 1991년에 채택된 ‘노인을 위한 유엔 원칙’과 ‘2002년의 마드리드 행동계획’ 등 몇 개의 선언적인 문서들이 나이에 따른 차별과 노인의 인권문제를 다뤘다. 이런 선언들은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은 아니다. 또한, 기존의 국제인권법에서는 나이에 근거한 차별을 그다지 부각시키지 않았고 ‘기타의 지위’로 취급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최근에 발전된 국제인권보장 장치 중에 ‘보편적 정례 검토’(universal periodic review)라는 것이 있다. 유엔에 가입한 모든 회원국의 인권상황을 4년마다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것인데, 이제 한 번의 회전이 끝났다. 분석에 따르면 각국이 낸 인권보고서에서 다른 인구 집단에 비해 노인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여러 취약집단의 나열 속에 노인이 포함된 수준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최근에는 노인에 대한 포괄적인 인권의 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노인에 대한 국제조약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조약으로 만들면 국제법에 따른 당사국의 의무가 고려되고 실천에 대한 모니터링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다. 물론 이런 노력은 규범적인 차원의 공백을 메워보겠다는 것이고, 그것만이 유일한 대안인 것은 아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올 상반기에 노인의 인권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유엔총회에 제출했다. 실천방안보다는 노인이 당면한 인권문제의 항목들을 나열한 수준이지만, 그간 국제사회의 논의를 축약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래 내용은 이 보고서의 주요 부분만 요약한 것이다.

이 보고서의 맨 앞에서나 여타의 비슷한 문서들에서도 으레 시작하는 말은 노인 인구의 대폭 증가이다. 그러나 노인 인구가 다수가 됐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게 중요한 인권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다수가 겪는 고통이어도 안보이고 말하지 않는 문제인 경우가 많다. 소수의 문제이고 다수의 문제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리고 어떻게 보고 말하려 하는가가 중요하다. 규범으로나 실천으로나 너무 많은 공백과 격차가 있는 노인 인권문제는 단순히 나이 들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취약해졌다는 조건에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노인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들에 의해 노인 인권문제가 더 많이 규정된다는 것이 ‘왜 그리고 어떻게 보고 말하려 하는가’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다.

노인의 인권상황에 관한 유엔인권최고대표 보고서(E/2012/51, 2012년 4월 20일)

배경
고령화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인구변화 중 하나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세상에서 아이들이 노인보다 더 적은 순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지구적으로, 약 7억의 인구 또는 세계인구의 10%가 60세를 넘었다. 2050년까지는 두 배가 되어 20% 또는 20억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 이런 수치만으로도 노인에 대한 집중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강력한 이유가 된다.

노인들이 처한 인권상황을 검토해 볼 때 그 영향력은 확대된다. 노인의 인권은 국가 및 국제적인 법률과 정책 입안에서 흔히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중요한 인구변화를 노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 방지 캠페인이나 서비스와 편의시설에 대한 적절한 접근 보장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만든 정부는 거의 없다. 방임, 고립, 학대에 대해 노인이 아주 취약하다는 광범위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인권상황은 국제적 차원에서 거의 반향이 없었다. 기껏해야 한 줌에 불과한 국제인권장치가 관심을 기울여왔을 뿐이고, 정부들과 이해당사자들에게 제공된 지침과 구체적인 도구도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노인이 인권침해에 직면한 집단으로 목록에 올라있고 분명하게 정의된 보호를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인 구제책과 보장책이 드물다는 것이다.

국제사회가 노인을 인권의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한 것은 겨우 최근 들어서이다. 2010년 12월, 유엔총회는 노인의 인권을 강화할 목적으로 고령화에 관한 개방형 실무집단을 만들었다. … 마찬가지로 일부 지역에서도 대응이 나타났다. 인권과 인민의 권리에 관한 아프리카 위원회가 노인과 장애인에 관한 실무집단을 만들었고 2012년에 다룰 아프리카 헌장에 대한 선택의정서를 기초하는데 상당한 진전을 봤다. 미주 기구도 최근에 노인의 인권에 관한 협약의 초안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의회도 비슷한 초안에 착수했다.

2011년 유엔사무총장의 제2차 고령화에 관한 세계총회 후속보고서는 처음으로 노인의 현재 인권상황 전반에 초점을 뒀다. 이 보고서는 4가지 주요 사안을 강조했는데 빈곤과 부적절한 생활 조건, 나이와 관련된 차별, 폭력과 학대, 특별한 조치・장치 및 서비스의 부족이다. 이런 다양한 사안 중에서도 사무총장이 강조한 점은 빈곤과 부적절한 생활 조건이다. 즉 홈리스상태, 영양부족, 돌보는 이 없는 만성 질환, 안전한 물과 위생에 대한 접근의 결여, 감당할 수 없는 의약품과 치료, 소득 불안을 노인에게 가장 압박을 가하는 인권 문제로 봤다. 사무총장의 보고서가 주목한 바는 남성과 여성, 도시와 농촌 인구, 교외거주지와 빈민 지역간의 격차를 포함하여 노인집단의 생활 수준이 타 인구집단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더 낮다는 점이다.

인권을 지향할 때, 나이는 단순히 숫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관습, 관행 및 사회에서의 사람의 역할에 대한 인식에 기초하여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기대수명의 엄청난 증가에 직면하여 많은 사회들은 사람이 나이 듦에 따라 할 수 있는 중요한 기여에 대한 사회의 이해를 아직 재조정하지 못했다. 60, 70 혹은 80대인 사람의 삶의 질과 사회적 역할은 다양한 법적・사회적 개념의 기초를 이루는 표시에 따라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가령 의무적인 은퇴 연령, 생산적 자원 또는 보험에 대한 접근의 나이 제한, 자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법적 능력 등이다. 이런 맥락에서 질병, 위험 또는 의존성의 대리어로서 더 이상 나이만을 사용할 수는 없다.

노인을 정의하기가 복잡한 것은 부분적으로 이런 요인들 때문이다. 고령에 특수한 취약성은 신체적 및 정신적 상태의 결과일 수도 있고, 고령화에서 오는 손상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사회적 인식이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으로 인해서도 취약성이 생긴다. … 오늘날, 노년의 존엄한 삶은 연대기적인 나이에 의해서보다는 모든 인권을 행사하고 누릴 것을 보장하기에 적합한 조치와 정책들에 의해 더 많이 결정될 수 있다.

나이 차별
“나이주의” 또는 노령화에 따른 개인에 대한 차별과 낙인이 광범위하다. 나이주의는 때론 편견과 부정적인 태도와 관행의 형태로 표현되고, 때론 고용이나 법적 능력 등 법과 정책으로 표현된다. 흔히 나이주의는 고립과 배제의 원인으로, 노인은 비생산적이고 따라서 무관하다고 간주된다. 이는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의 폭력과 방임으로 연결된다. 또한, 나이 차별은 성, 장애, 건강 또는 사회경제적 조건, 거주지, 결혼 상태, 인종적 또는 종교적 배경 등 다른 종류의 차별에 의해 악화된다. … 나이 차별에 관한 논쟁은 가령 어떤 직업에서 일할 권리처럼 특정 권리의 행사에 대한 나이 제한 문제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바는 인권에 대한 제한은 그것이 객관적이고 균형적일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이에 기초한 일반적인 배제는 그런 제한과 수행돼야 할 일의 성격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없다면 수용될 수 없다.

법적 능력과 법 앞에서의 동등한 인정
후견인과 대리인에 의한 의사결정이 전통적으로 고려돼왔다. 하지만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것은 장애인권리협약의 12조에 의한 것으로, 이 개념은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중심에 두었다. 이 조항을 만들게 된 논쟁과 그에 따른 적용은 노인의 법 앞의 평등에도 확대될 수 있고 특수한 상황에 따라 더 정교화돼야 한다.

많은 노인들의 증언이 반복적으로 주목하는 점은 수십 년에 걸친 독립적인 일, 생산적인 삶과 자율성에 대한 정당한 고려 없이 자신들이 무능하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걷거나 말할 수 없거나 빨리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들을 “아이처럼 다룬다”는 것이다. 학대를 방지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어책을 포함하여 노인이 자신의 법적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원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가 채택돼야만 한다.

장기간 돌봄
기관에서 받건 집에서 받건 장기간 돌봄과 관련하여 상당히 중대한 인권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장기간 돌봄 영역에 대한 개입은 전통적으로 복지, 사회보장 및 보건 체계의 조합 속에 정초돼왔고 자원봉사자와 친척 또는 책임성이 덜한 자선 부문과 사적 부문의 대응에 과도하게 의존해왔다. 장기간 보호가 흔히 분산됨에 따라, 중앙 정부와 지역 정부 사이에서 정부 부문의 책임성은 희석될 수 있다. 증대되는 돌봄 요구에 부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통계가 지적하는 바는 돌봄 기관, 적절한 모니터링 절차, 훈련된 요원(사회복지사, 간호사, 노인의학 및 보건 전문가 등)의 부족, 서비스의 부적절한 조건이다.

폭력과 학대
지구적인 노인학대방지에 관한 토론토 선언은 노인 학대를 “노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고통 받게 만드는 것으로, 신뢰의 기대가 있는 곳에서의 어떤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한 번의 또는 반복적인 행위, 또는 적절한 행위의 결여”라고 정의한다. 차별과 마찬가지로, 노인학대는 흔히 숨겨진 현상이다. 가장 심각한 학대 사례는 물리적 폭력이며, 노인은 또한 재정적인 착취에도 직면한다.

사회적 보호와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국제노동기구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80%가 어떠한 종류의 사회보장에도 접근할 수 없으며 그중 상당수는 노인이다. 이런 발견에 자극받은 상당수 유엔 기구들은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social protection floor)으로 알려진 정책 구상의 틀을 만들었다. ‘사회적 보호의 최저선’은 기본적인 노령 및 장애 연금과 필수적인 보건서비스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을 통해 기본적인 소득 안전의 보장을 국가적 우선순위로 정해두려는 시도이다. 이 정책은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소득 수준과 기본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건강권과 생의 마감에 대한 돌봄
건강과 생의 마감에 대한 돌봄의 상황에서 존엄성과 인권존중은 노인 복지의 핵심이다. 과도한 고통(욕창 등)의 경감 또는 방지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과 그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안내가 필수적이다.

노인은 치료, 서비스, 돌봄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사전에 고지된 정보를 통해 노인 자신의 자유로운 동의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와 시간과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일이 흔하다. 때로 수년 전에 서면으로 생의 마감 치료와 돌봄에 대해 특별한 당부를 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이 무시될 수도 있다. 건강권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은 돌봄 제공자가 노인의 동의를 보장하는데 있어서 중대할 역할을 한다는 점과 노인과의 의사소통과 관련된 훈련의 부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노령과 장애
노령화는 장애 그 자체와 동일시될 수 없지만, 노령은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노령과 장애는 분리되거나 또는 결합되어 일련의 인권침해에 대한 취약성을 만들 수 있다.

투옥 중인 노인과 사법정의에 대한 접근
감옥에 있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도전이다. 안전하고 적절한 구금조건이 요구되는 것과 아울러 또 다른 문제는 노인을 계속 구금하는 것이 부적절하게 가혹한 처벌은 아닌지와 인도주의적 고려가 일정 연령의 수인에게 적용돼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처벌의 목적을 고려할 때, 노령의 수인의 지속적인 감옥 수용에는 정당성이 적을 수 있다. 대신에 재정과 수행성 및 인권을 고려하여 대안적인 형태의 처벌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감옥 체제를 넘어서 더 광범위한 사법체계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노인의 법적 권리, 법적 지원, 효과적인 구제책의 가용성 증대에 의한 인식의 강화가 요구된다. 노인은 흔히 학대자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사실을 드러냈을 때 돌아올 반향에 대한 걱정, 신뢰할 만한 장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지원이 없는 것에 대한 분노로 폭력이나 학대를 보고하길 꺼려한다. 정부는 필요한 보호에 대한 접근을 위해 나이에 민감한 법과 정책의 개발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결론과 권고
노인은 대규모로 늘어나는 인구 부문을 대표하며 노인의 존재는 세계 전 지역에서 사회구조의 주요 변화이다. 나이에 특유한 인권의 도전에 직면한 권리 보유자로서 노인은 더 이상 무시될 수 없다. 국가 및 국제적 차원에서 노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현재의 준비는 부적절하다. 노인을 위한 국제적 보호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집중된 조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요구이다.

인권오름 제 307 호  [기사입력] 2012년 07월 1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23 호 [기사입력] 2006년 09월 26일 17:44:15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내가 사는 곳 골목 모퉁이 평상에는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우두커니 앉아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버스를 타고 지나다 보면 대문 앞에 박스를 깔고 쪼그려 앉아 계시는 할머니도 자주 보게 된다. 종이상자를 힘겹게 주워 모으는 허리 굽은 노인들은 거리의 흔한 풍경이다.

고령화 시대는 분명 우리 시대의 화두다. 그런데 이 문제가 경제적 문제로만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지금 성년의 사람들은 한 두 분의 어른에게 용돈을 드리면 되지만, 더 어린 세대는 여섯 분(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에게 용돈을 드려야 한다는 말도 있다.

경제적 문제 말고도 고령화 시대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혼란스럽다. 인터넷 검색어에서 ‘동안’이 유행어로 떠오르듯이 나이 먹는 일은 달갑지 않은 일이고, 가족회의를 당당하게 소집하고 경제력과 집안의 대소사에 막강한 발언력을 가진 연속극 속의 노인들은 노인학대나 소외 등의 문제를 외면한다. 사회면 뉴스 속에서는 무슨무슨 궐기대회에 단골 출연진인 노인들의 모습이 부각되지만 정작 노인 자신들의 문제를 드러내는 의견을 찾아보긴 어렵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돌봄에 대한 논의보다는 치매까지 다 보장한다는 내용의 사보험 광고들이 극성을 부린다. 노년을 위해 최소한 몇 억을 준비해야 한다는 재무 설계 조언이 나이 듦에 대한 모든 대비를 일괄 지시해준다.

그럼, 노인에 대한 인권의 관심은 어떠할까? 장애인, 여성, 아동 등과 같은 프리즘을 통해 이들 집단의 특수한 인권문제에 집중해온 것에 비해 노인의 인권에 관련된 논의는 이제 갓 발동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노인의 권리와 관련해서는 타 집단과 달리 포괄적인 국제조약도 없고 전문기구도 없는 상태이다. 최근 일련의 국제회의를 통해 논의된 노인의 인권 관련 원칙들이 있을 뿐이다.

국제 사회는 지구적 차원에서 고령화 문제를 고려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모였다. 1982년 비엔나 회의와 2002년 마드리드 회의가 그것이다. 비엔나 회의가 선진국의 고령화 문제를 주로 다뤘다면 마드리드 회의에서는 고령화가 선진국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한 가운데 고령화 문제를 다뤘다. 선진국들은 사회보장정책을 중심으로 사회경제정책을 노인 인구에 맞춰 조정할 과제에 직면해 있고, 사회보장이 없거나 결핍된 많은 국가들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대거 이주와 그로 인한 노인의 주요 부양원인 가족의 전통적 역할의 약화로 노인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 진단이다.

비엔나 회의는 노인에 관한 최초의 국제문서라 할 ‘고령화에 관한 비엔나 행동계획’을 채택했고, 마드리드 회의는 ‘고령화에 대한 정치선언과 행동계획’을 채택했다. 이 두 회의 사이에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것이 ‘노인을 위한 유엔원칙’인데 이 원칙은 고령화와 노인의 인권에 관련된 논의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독립, 참여, 돌봄, 자아실현, 존엄’이라는 5개 군 18개 항으로 이뤄진 이 원칙 속에서 각각의 요소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고령은 사회로부터 분리된 삶이나 치료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삶의 지속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이 독립성을 누릴 수 있는 소득과 교육 등에 대한 접근이 보장돼야 한다. 노인의 사회참여는 단순히 임금 노동이나 생산성 그 이상의 의미로 간주돼야 한다. 노인의 지속적 고용과 그로 인한 사회통합은 물론 중요한 문제지만 노인의 참여는 임금 노동 그 이상의 것으로 일상생활의 영위, 자원 활동, 지역사회 참여 등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노인 자신을 위한 사회운동과 단체의 형성과 참여에 주목해야 한다.

‘돌봄’을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며 노인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 따라서 고령화 대책은 모든 노인을 포함해야 한다. 즉 상당히 약하고 돌봄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노인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에는 고령화 정책이 초고령층을 배제하고, 상대적으로 젊고 활동적인 노인에게 초점을 둘 위험성이 있다. 또한 육아, 가사, 돌봄과 관련된 여성의 노동이 생애전반에 걸쳐 제대로 된 가치평가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여성의 현실이 노후의 연금, 사회보장, 주거권 등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측면에서 여성 노인에 대한 특별한 유의가 요구된다.

이들 원칙에 기반하여 국제사회가 내세운 목표는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The Society For All Ages)이다. 사실상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일생에 걸쳐 나이 드는 과정을 겪는다. 따라서 고령화는 우리 모두의 미래에 관한 것이지 노인 인구만을 위한 것은 아니므로 모두가 당사자로서의 노력이 요구되며, 전 세대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응은 모든 연령과 세대를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 옹호된다. △노약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동하고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환경 △노인의 의사와 선택의 존중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돌봄이 필요한 노인을 가족의 부담에만 떠맡기지 않는 것 △고용‧교육‧여가‧조직 등에 대한 노인의 지속적인 참여 등이 ‘모든 연령을 위한 사회’의 요소들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원칙은 구호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령화 속도를 재며 계산기 두드리기에 바쁜 현실 속에서 노인의 인권을 경제·사회적 논의 속에 포함시키는 것 자체가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구체적 삶의 문제 속에서 이들 원칙에 살을 붙여나가려는 노력이 우리 사회가 제대로 ‘성년’이 되는 과정일 것이다. [류은숙] <2006년 09월 26일 인권오름 제23호>

노인을 위한 유엔원칙(1991년 12월 16일 유엔총회 결의 46/91)

독립 (Independence)
1) 소득, 가족과 지역사회의 지원 및 자조를 통하여 적절한 식량, 물, 주거, 의복 및 건강보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2)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거나, 다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3) 직장에서 언제 어떻게 그만둘 것인지에 대한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4) 적절한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5) 개인의 선호와 변화하는 능력에 맞추어 안전하고 적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6) 가능한 오랫동안 가정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참여 (Participation)

1) 사회에 통합되어야 하며, 그들의 복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정책의 형성과 이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젊은 세대와 함께 공유하여야 한다.
2) 지역사회 봉사를 위한 기회를 찾고 개발하여야 하며, 그들의 흥미와 능력에 알맞은 자원봉사자로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3) 노인들을 위한 사회운동과 단체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돌봄 (Care)

1) 각 사회의 문화적 가치체계에 따라 가족과 지역사회의 보살핌과 보호를 받아야 한다.
2)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안녕의 최적 수준을 유지하거나 되찾도록 도와주고 질병을 예방하거나 그 시작을 지연시키는 건강보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3) 그들의 자율과 보호를 고양시키는 사회적 법률적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4) 인간적이고 안전한 환경에서 보호, 재활, 사회적 정신적 격려를 제공하는 적정 수준의 시설보호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5) 그들이 보호시설이나 치료시설에서 거주할 때도 그들의 존엄, 신념, 욕구와 사생활을 존중받으며, 자신들의 건강보호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권리도 존중받는 것을 포함하는 인간의 권리와 기본적인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자아실현 (Self-fulfillment)

1) 자신들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전시키기 위한 기회를 추구하여야 한다.
2) 사회의 교육적, 문화적, 정신적 그리고 여가에 관한 자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존엄성 (Dignity)

1) 존엄과 안전 속에서 살 수 있어야 하며, 착취와 육체적 정신적 학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2) 나이, 성별, 인종이나 민족적인 배경, 장애나 여타 지위에 상관없이 공정하게 대우받아야 하며 그들의 경제적 기여와 관계없이 평가되어야 한다.

인권오름 제 23 호 [기사입력] 2006년 09월 26일 17:44:15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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