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7 호 [기사입력] 2006년 06월 08일 2:41:15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잘 알려진 프랑스 혁명의 1789년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신체제의 국가형성과 헌법제정의 원리를 밝힌 1791년 헌법 서문에 해당한다. 이 선언이 지향한 세상은 ‘구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는데,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전 세상을 지배했던 특권계급의 타도와 귀족제의 폐지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 중심이 되는 봉건적 소유관계와 경제활동에 대한 봉건적 규제를 폐지하는 각종 ‘자유’가 선포된다. 재산권은 이들 자유 중 하나로서 국가와 헌법에 선행하는 자연적 기본권으로 선언된다. 이러한 사람의 자연권 보전을 도모하는 것이 정치적 결합의 유일한 목적이며, 사회 속에서 갖게 되는 유일한 제한은 권리의 평등을 정한 법률에 복종한다는 것뿐이다. 법률상 평등하기만 하면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통해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 결과 평등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권리’가 돼버린다.
이로써 신체제는 재산의 자유를 토대로 한 체제이고, 재산의 자유는 여러 자유 중 하나가 아닌 사실상 다른 모든 자유들의 토대가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직 일정한 수준의 재산을 가진 자들만이 참정권 등 권리를 갖게 되는 체제였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 세력인 부르주아의 우위권을 보장하는 것이었지, 농민과 도시민중을 동반자로 받아들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국왕과 특권세력의 끈질긴 도발 속에서 위험을 느낄 때마다 민중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계속됐지만 말이다.
부의 축적을 제한하고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보장하자는 소수의 제안은 묵살된다. 그런 목소리 중의 하나가 로베스피에르의 제안이다. 왕국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공화국 헌법의 제정사업이 시작됐다. 1793년 국민의회는 새로운 헌법에 대해 논의했고, 로베스피에르는 새 헌법의 정신에 대해 먼저 논의하여 그것을 새로운 인권선언으로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작성한 38개항의 인권선언 초안(아래 인용구는 모두 로베스피에르 초안에서 따옴)을 제안했다. 오늘 읽어볼 “재산권에 대하여”는 인권선언 초안의 재산권 조항에 대해 로베스피에르가 덧붙인 해설이다.
소유는 자연권 아닌 사회적 제도
재산권에 대한 로베스피에르의 생각은 1789년 선언이나 여타의 헌법구상과 달랐다. 사람의 ‘생존’과 ‘자유’만을 기본적 인권으로 하고,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권리가 공허한 것이 되지 않고 평등이 환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하여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 힘의 남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유가 단순한 사회적 제도인 이상 그 모든 것은 인민의 의사를 자유롭고 엄숙하게 표명한 법률에 의해 그 한계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존재로서의 소유와 그것을 규제하는 법률을 적극적으로 사고한 것이 자연적 기본권으로서의 소유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관념과는 다른 점이다. “압제에 대한 저항을 법적 형식에 맞추는 것은 폭정에 최후의 미화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비합법의 저항을 정당화한 것이나, “재산권은 우리 동료 인간의 안전, 자유, 생존, 재산을 해칠 수 없다”는 주장은 탐욕스런 계급에게는 너무 간 큰 소리였을 것이다. 그의 제안은 동료 정치집단의 권리선언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민중의 인권구상과의 차이
로베스피에르와 그 동료들과의 격차가 컸다면, 또 다른 격차는 민중의 인권구상과의 관계에서이다. 당시 입법자들이 염두에 둔 재산권의 현실적 대상은 토지소유로서, 그들은 토지소유권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재산 소유권 일반을 ‘자유’로서 규정했다. 토지나 생산수단의 소유를 다른 소유와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원리에 따르게 할 때 아무리 법률상의 제한을 가하더라도 자본의 소유자와 몸뚱이 하나밖에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서로 다르게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민중의 인권구상에서는 생산수단을 사유화한 조건에서는 아무리 균등하게 분배된다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불평등이 야기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1789 선언이 말한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을 신랄하게 공격했지만,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이들과 노동하는 이들의 자유를 동일한 원칙에 따르게 한 점에서는 동료들과 같았다. 그런 이유로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포효대로 “지상의 주권자”들은 “자유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정신과 “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해결방법을 계속 찾아왔다.
우리 주변엔 그런 예들이 수없이 많다. 이라크에서의 학살에 아파하고 눈을 부릅뜬 사람들, 서울역 로비에서 밥 굶어가며 싸우고 있는 KTX 승무원들, 평화적 생존권을 염원하는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과 광화문에서 촛불을 맞든 사람들, ‘자유’로운 ‘생존’을 위해 ‘부자유’한 한미 FTA 협상에 맞서는 사람들…. 여기서 “살인자와 약탈자를 기소”하며 “사회 성원의 단 한사람이 억압된 경우라도 그것을 사회전체에 대한 압제”로 여기고,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는 자를 모든 국가의 국민들의 적으로 선포”하는 힘을 발견하자. [류은숙] <2006년 06월 08일 인권오름 제7호>
로베스피에르, “재산권에 대하여”(On Property Rights)(1793) 먼저 재산권에 대한 여러분의 이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조항들을 제안하겠고 이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 비열한 인간들, 가치를 재는 척도라곤 황금밖엔 없는 자들아, 그 재산들의 원천이 아무리 더럽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들의 재산에 손대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 |
인권오름 제 7 호 [기사입력] 2006년 06월 08일 2:41:15 류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