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12월 8일 인권하루소식 제2954호> 

 

다가오는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1948년 이날의 세계인권선언 채택을 기념하며 거기 담긴 약속의 실현을 온 인류가 다짐하는 날이다. 그러나 인권의 날을 눈앞에 둔 지금, 서울의 거리에는 스산한 바람만 몰아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선 소위 '북한인권대회'라는 것이 열리고 있고 이라크파병재연장동의안의 국회통과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인권보장의 필수조건인 평화와 정의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연일 죽어나가고 있고 매서운 바람이 가난한 이들의 신음소리를 할퀴고 있다. 이들을 위한 인권대회는 어디에 있고 언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참담한 물음 속에 우리보다 앞서 같은 일을 겪었던 사람이 떠올랐다.

그 사람은 "침묵은 곧 배반을 의미하는 때"임을 절감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이다. 킹 목사는 잘 알려진 대로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였다. 그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갈채를 보냈던 사람들이 그의 생애 말년에는 그를 외면한다. 그건 베트남 전쟁에 대한 그의 입장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 백인 자유주의자들, 유명 흑인 인사들의 압력으로 베트남전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던 그는 "자신의 양심이 다른 선택을 허락지 않기 때문에" 발언하기 시작한다.

1967년 4월 4일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에서의 "베트남 너머"라는 연설을 통해 그는 미국의 부도덕성을 질타하며 미국이 자국내의 불공정을 외면하고 세계 평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신의 저주와 분노가 떨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 연설이 있은 지 꼭 1년 후인 1968년 4월 4일에 그는 암살당했다. 의문에 싸인 죽음이지만 그의 목소리를 두려워하고 싫어한 자들의 소행이라 여겨지고 있다.

양심 있는 인간으로서 우리도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범죄의 증거가 속속 들어났는데도 파병연장안을 통과시키려 하고 한반도 한복판에서 대북적대선동행위가 벌어지도록 좌시하는 일은 정신 나간 짓이다. 인권을 빙자하여 무고한 어린이들을 포함한 시민을 학살한 이라크 침략전쟁의 당사자가 북한을 상대로 한반도 한복판에 와서 소위 인권대회를 갖는 것은 위선이다.

북한과 이라크가 처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둘 다 인권을 빌미로 한 미국의 전쟁책동의 희생물이고, 그에 동조하는 세력은 가난한 이들에게 필요한 자원을 이러한 선동에 동원하고 있다. 북한인권대회와 이라크파병연장동의안이 출현하고 있는 이 현상을 눈앞에 보는 듯이 킹 목사는 말하고 있다. 왜 우리가 이 둘에 대해 반대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베트남에서의 전쟁과 우리가 미국에서 전개해 오고 있는 시민권 투쟁 사이에는 아주 명백하면서도 알기 쉬운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의 시민권 투쟁은 빛나는 순간을 맞았습니다. 그때는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통해서, 흑인과 백인을 불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약속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러다가 베트남에 군대가 파병되면서, 저는 이 빈곤퇴치 프로그램이 마치 전쟁에 미쳐버린 사회의 정치적 노리개마냥 무산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베트남 전쟁과 같은 모험들이 일종의 마력을 지닌 파괴적인 흡혈귀처럼 사람들과 기술과 돈을 계속적으로 빨아들이는 한, 미국은 가난한 사람들의 재활에 필요한 자금이나 에너지를 결코 투자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점점 이 전쟁을 가난한 사람들의 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 전쟁에 반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인구의 나머지 집단들과 비교해 볼 때, 전혀 비율이 맞지 않게 턱없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아들들과 형제들과 남편들을 전쟁터로 보내서 싸우다 죽게 하는 행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던 흑인 젊은이들을 8천 마일이나 떨어진 동남아시아로 보내, 그들에게 남서부 조지아나 동부 할렘 지역에서도 찾지 못했던 자유를 수호하라고 하고 있습니다.…저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토록 잔인하게 조종당하는 현실 앞에서 도저히 침묵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전쟁은 인권을 송두리째 날려버린다. 경제제재는 피를 흘리지 않지만 무고한 어린이와 여성과 노인과 시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에너지를 비롯한 필수자원에 대한 접근을 가로막는 총성없는 전쟁이다. 그리고 그런 책동에 동원당하는 사람들 역시 가난한 사람들이다.

북한인권대회를 위해 안락한 신라호텔에 머물고 있는 미국 시민들에게 자신들의 조국을 사랑했고 동시에 인권을 사랑했던 킹 목사의 말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대들이 북한적대정책을 선동하려고 쳐들이는 돈은 가난하고 일자리가 없는 미국 시민들을 위해 쓰여져야 할 돈이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쓰여져야 할 돈이다. 그대들이 외치는 북인권을 진정 위한다면 미국 정부의 반평화 공세를 중단시키는 일이 먼저이다. 당신 정부의 정책 때문에 북한의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다. 그대들이 주입시키고 싶은 자유는 '주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결권 존중과 안전보장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 이라크에 침략군을 계속 두면서 재건을 말하지 말고 차라리 그 비용을 이라크인들이 재건비용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장 큰 폭력의 행사자인 바로 우리 정부를 향해 분명히 말하지 않고서는, 흑인 거주 지역에서 억압받고 있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비판하는 저의 목소리를 결코 높일 수가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들을 위해서, 이 정부를 위해서, 우리의 폭력 아래 떨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저는 침묵할 수가 없습니다.…전 세계인들의 가장 깊은 희망을 파멸시키는 한, 미국의 영혼은 구제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야흐로 미국이 되리라'라고 결심한 우리는 저항과 반대의 길을 감으로써, 이 나라의 건강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힘없는 이들, 발언권이 없는 이들, 우리 나라에 의해 희생된 이들, 이 나라가 '적'이라고 부르는 이들, 인간이 기록한 어떠한 문서에도 우리의 형제가 아니라고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들을 위해서 말하고자 저는 이곳에 온 것입니다."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수행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스스로 선언한 것은 '생명·자유·재산'의 권리도 '자결권'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었다. 식민지 예속 하에서 참된 인권은 없다는 것을 스스로의 역사가 증명했다. 그런데 베트남의 자결권을 부인했듯이 오늘날 이라크와 북한의 그것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베트남)이 미국 독립선언서의 내용을 자신들의 선언에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이전의 식민지를 다시 정복하려는 프랑스를 지지하고 나섰습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베트남인들이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꼈고, 그래서 우리는 그토록 오랜 세월 세계의 정서에 치명적인 독을 입혀왔던 서구의 오만함의 희생자로 또다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우리는 베트남인들에게 그들이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했습니다.…재식민지화하려는 이러한 비극적 시도에 따르는 거의 모든 비용을 우리는 머지않아 치러야만 할 것입니다."

진실한 인권 기준은 상대방에게 적용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약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선'으로 주장하는 것은 지배와 다를 바 없다. 공동선의 관점에서 자신을 먼저 고치는 것이 진정한 인권의 주장이다. 상대방의 차이에 대해서 '존중' 수준까지는 못가더라도 적어도 '인정'하고 '관용'하는 것이 인권대화와 인권증진노력의 출발점이다.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지 않는 인권은 힘의 횡포요, 강자의 위선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비폭력적 공존이냐? 폭력적 공멸이냐? 우리는 과거의 우유부단함을 떨치고 행동으로 옮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베트남의 평화와 함께, 우리와 이웃하고 있는 모든 개발도상국들에 있어서의 정의의 확립을 위해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분명히 동정심이라고는 없는 힘, 도덕성이 결여된 힘, 통찰력을 갖추지 못한 힘을 소유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길고 어둡고 수치스러운 시간의 복도를 따라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다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란스러운 불협화음들을 형제애의 아름다운 교향곡으로 바꿔 연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녕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미국과 전 세계에서 정의가 홍수처럼 흐르고 공의가 힘찬 물살로 흐르는 그날을, 우리는 그날을 앞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 ◎ 이 연설의 전문은 http://www.stanford.edu/group/King/publications/speeches/Beyond_Vietnam.pdf (영어)에서 볼 수 있다. 한국어판은 위드북스에서 출판된 『마틴 루터 킹의 양심을 깨우는 소리』에 실려있다.

 

[류은숙] <2005년 12월 8일 인권하루소식 제2954호> 

인권오름 제 407 호 [기사입력] 2014년 09월 18일 21:58:4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요즘 사람들의 표정에 꽉 찬 물음이다. 이 질문은 성찰일 수도 있고 초조함과 답답함을 뱉어내는 것일 수도 있다.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이 되는 질문일 수도 있고 ‘길은 없다’는 탄식일 수도 있다. 꽉 막힌 골목으로 내몰려 당황하고 불안해하는 낯빛들이 초췌해져간다. 엄청난 권력을 가진 이들은 ‘힘이 없다’는 엄살과 ‘너 때문’이란 회피로만 달아나고, 애써 방향을 잡으려는 이들에겐 무시와 모욕이 일상이다.

이런 때일수록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가능성과 응원을 담은 질문이 있고 빗장을 건 질문이 있다. 후자의 질문은 질문의 형식을 취한 명령문일 때가 많다. 불행히도 한국의 권력층은 후자의 화법만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회의 큰 분기점이 있을 때마다 응당 던지는 질문이다. 97년 IMF 구제금융의 폭탄을 맞으면서 87년 민주화의 내용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돈이 최고이고 돈 자랑이 수치가 아니다’란 노골성에 대해, ‘공공성이고 사회적 연대고 필요 없다. 알아서 각자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교리’에 대해 질문했다. ‘같이 살 수는 없는 것인가?’란 질문은 모욕 받았고 ‘더 많은 돈을 위해서라면 민주주의고 인권이고 사치’라는 ‘교리’가 강화됐다.

그리고 질문이 봉쇄된 바다 위에서 ‘세월호’가 터졌다. 한국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사회’로 뭔가 달라져야만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터져 나왔다. 돈에 대한 숭상의 교리가 우리 삶에 추상적인 위기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기를 언제든지 낳을 수 있다는 걸, 우리 눈으로 실시간 학습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질문 앞에 정치색과 입장을 떠나 모두가 몰두해야 할 책임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질문은 곧 오염됐다.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세력은 강자에 대한 저항을 무질서 또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무시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과 모욕을 자유나 권리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부추겼다. 심지어 약자의 고통과 존엄성에 대한 침해를 묘사하는 ‘모욕’이란 단어마저 제 것으로 뺏어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반세기 전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던졌다. 이 질문은 그가 암살당하기 몇 달 전에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 연례총회’에서 한 연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때 그는 시민권 운동의 2막을 열겠다면서 경제 정의를 위한 빈민의 운동을 기획하고 있었다. 앞서 펼쳤던 시민권 운동보다 빈곤에 대한 공격이 훨씬 어렵다는 걸 그는 예감했다. 앞서의 투쟁은 백인과 흑인이 어느 식당에나 들어가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인종분리를 강제하는 법을 깨뜨렸다. 그런데 흑인에게는 식당에 들어가 햄버거를 사먹을 돈이 없었다. 돈 없는 흑인은 여전히 백인과 나란히 식사할 수 없었다. ‘대개의 사람들이 가난에 내팽개쳐있는 한 결코 그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고 킹은 선언했다. 이제 시작하려는 투쟁은 경제적 평등을 위한 것이었다. 킹 목사를 영웅으로 떠받들던 사람들은 이제 그를 빨갱이라 욕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그것을 빌미로 킹 목사와 동료들을 사찰했고 죽음의 위협이 가해졌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킹은 아랑곳없이 나아갔다. 정부가 가난한 이들을 적대시하며 인색하기 그지없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주거와 생활임금의 보장, 특히 기본소득의 보장이라 할 것을 ‘경제적 권리장전’의 내용으로 요구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들이 담긴 것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란 연설이다. 가령 연설은 ‘빵바구니 운동’을 강조한다. 이 운동의 핵심은 기업이 지역사회에서 벌어들인 돈을 지역사회를 위해 쓰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킹 목사는 “나의 돈을 존중한다면, 나의 인격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즉 지역사회에 일자리를 창출하지도 하고 지역신문에 광고를 싣지도 않고 흑인금융기관에 자금을 예치하지도 않는 기업에겐 우리도 돈을 쓰지 않겠다는 거였다. 표적이 된 주요 낙농회사들은 지역 상점의 판매대에 자기 상품을 놓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 것에 하나 둘씩 굴복했다. 운동의 대표자들과 기업이 마주앉아 계약서를 작성하게 됐다. 기업들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의 저축은행과 대출협회에 돈을 예치하고 흑인신문사에 광고를 게재하게 됐다. 그것은 “채워지지는 않고 끊임없이 고갈되기만 하는 국내에 있는 식민지”를 벗어나 “우리에게서 벌어들인 돈을 우리가 사는 곳에 환원하라”는 당연한 요구였다. 이 요구에 포함된 정책 계획들은 다양했다. 가령 세입자연합을 조직하여 낡은 건물의 재개발을 건설 이익이 아니라 실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추진하는 것, 세금을 이미 충분히 낸 사람들로서 정부 사업과 정부 관련 계약들을 대기업만이 아니라 소수집단의 작은 사업체들도 따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가 “진보적인 정책을 기획해야 한다.”면서 제시한 것이 기본소득의 보장이었다. “경제적 지위를 개인의 능력과 재능의 척도”로 여기는 것을 비판하면서 “그릇되고 차별적인 시장경제의 운영”을 빈곤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열등하고 무능하다고 낙인찍음으로써, 우리의 양심으로부터 해고시키는 일이 없어지기를 바란다.”며 기본소득을 보장한다면 “개인의 위엄이 번성할 것”이라 주창했다.

그런 구상에 담긴 것은 찔끔 보조금을 늘리고 생색용 개발사업을 유치하자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감옥에 안전하게 감금시켜 놓은 채 음식의 질만 조금 높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킹 목사는 “정당한 자긍심”의 토대 위에서 경제적 권리가 추구돼야 함을 강조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일이 “우리의 존엄과 가치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 존엄성의 힘 위에서 “우리를 억압하는 가치관을 만들어내는 체제에 대해 끝까지 버티고 싸워야 한다.”고 했다.

‘빈민의 운동’은 수도 워싱턴으로의 행진을 계획했다. 정부 수도의 일상 기능을 흔들어 놓는 게 계획이었다. 백악관과 의회가 빈민의 사안을 진지하게 다룰 때까지 그 앞에서 농성하기로 했다. 빈민의 행진에 대한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 킹의 마지막 과업이었다. 워싱턴의 한 성당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 연설이 있었다. 그 연설에서 그는 “인종주의, 빈곤, 그리고 전쟁”을 미국 사회의 3대 악이라고 불렀다. “빈곤에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지만 빈곤을 제거할 기술과 자원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새로운 것”이라 했다. “진정한 문제는 우리에게 그럴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그 연설을 한 닷새 후 그는 살해당했다.

하지만 빈민의 행진은 취소되지 않았다. 3천여 명 이상이 전국에서 워싱턴으로 모였다. 흑인만의 운동이 아니라 존엄성의 가치에 동의하는 다양한 인종과 계급의 사람들이 모였다. 농성촌을 짓고 “부활의 도시”라 이름 지었다. 무자비한 비가 내리고 농성촌은 진창이 됐다. 언론과 정부는 그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절망과 혼란의 6주가 지나고 운동은 정리됐다. 빈민의 운동은 1968년 6월 19일 농성촌을 접었다. 누구는 철저한 ‘실패’라 평가했다. 또 누구는 ‘처음으로 다인종이 조직화된 경험을 맛봤다’고 했다. ‘우리들 자신의 해방 운동을 헤쳐 갈 만남을 경험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농성촌은 사라졌어도 참가자들은 영감을 받아 워싱턴을 떠났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에겐 몇 달이건, 몇 주건, 단지 하루건 그건 중요치 않다’고 했다. 그로부터 긴 세월이 흘렀다. 오늘 읽어 볼 인권문헌, ‘빈민 권리장전’은 2003년에 ‘빈민의 운동’을 재건한 사람들이 작성한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한 축은 ‘존엄과 안전 위원회’이다. ‘존엄’과 ‘안전’이 같이 가야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작명이다. ‘존엄 없는 안전’은 많다. 형사법과 공권력의 강화, ‘무전유죄 유전 무죄’의 차별적 사법체계 운영, 부자감세와 경제정책 등이 그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자기 돈 주고 사설경비 쓰고 폐쇄회로에 둘러싸인 특권지대에 사는 것도 물론 안전하다. 가난한 우리에게 안전이란 존엄과 같이 고려돼야 진짜 안전이 된다. 공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통제가 가능해야 안전하고, ‘경제적 권리장전’의 내용을 담은 것이어야 진짜 안전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난하면, 혹은 가난해지면 당장 맞닥뜨리는 건 사회적 지원이 아니라 경찰이다. 해고되거나 공장이 폐쇄되거나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나거나 만성적 고용불안과 생계비 상승에 시달리거나 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되거나 가난한 처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빌미를 제공했고 너의 책임이란’ 힐난을, 항의와 저항에는 ‘손 좀 봐주라’는 공권력의 폭력을 대면해야 한다. 우리의 안전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존엄과 안전 위원회’가 존엄과 안전의 권리선언을 기획한다고 한다. 선언을 만드는 것은 그냥 말을 짓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과 실천을 종합하는 것이다. 킹 목사의 말대로 “신조의 고혈압과 행동의 빈혈”에 걸리지 않도록 우린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무리 오래 걸린다고 해도 말이다.

‘빈민의 운동’의 ‘빈민 권리장전’(The Bill of Rights for the Poor, Poor People's Campaign)

1. 모든 형태의 인간 억압은 제거돼야만 한다. 모든 사람, 특히 빈민에게는 제도적 장벽 없이 생명, 자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빈민이 빈곤을 벗어나려면,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 계급주의, 제국주의가 다뤄져야만 하고 제거돼야만 한다.

2. 빈민에게는 비인간적인 상태에 투입되는 공공 정책 의제에 대한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역사적으로 방임되고 경제적 분리와 배제가 있어왔던 곳에 ‘기회의 공동체’를 창설할 것을 요구한다. 중앙과 지역의 자원들은 지역사회에서 경제적 기회를 만드는 지역사회 집단들과 시도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가장 없는 지역’에서 기회의 문을 열고 투자를 한 기업과 지역사회 집단 간 협력이 장려되고 보상받아야 한다. 기업의 탐욕스런 이익보다는 궁핍한 사람들의 이익을 우위에 두는 전국적이며 지역적인 차원에서의 포괄적인 경제정책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기업을 규제해야만 하고 일자리의 해외이전을 끝내야 한다. 공공의 의견 청취 없이 공장과 기업 본부를 폐쇄하는 일을 금지하며 일자리 상실로 고통 겪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과 재훈련, 대체 직업을 보장하는 법률이 통과돼야만 한다.

3. 미국에서 6명의 아동 중 1명은 빈곤의 피해자이다. 비-백인 아동 3명 중 1명은 가난 속에서 자란다. 모든 아동은 양질의 건강 보호, 교육, 주거에 접근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4. 모든 사람은 ‘법 앞에 동등한 보호’를 받아야 하며 빈민은 사법 체계의 부정의로부터 보호받아야만 한다. 빈민은 흔히 이 나라의 감옥 산업 단지 창고에 처박혀진다. 이것은 노예제의 21세기 버전이 됐다. 빈민은 적절한 변호와 평등한 사법을 보장받아야 한다. 빈민은 민사와 형사 법정에서 정의를 보장받아야 한다.

5. 빈민은 경찰 폭력의 형태로 국가가 지원하는 테러리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빈민은 학대받고 착취 받는 것과는 반대로 보호받고 대접받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역에 대한 분명한 민간의 통제, 그리고 경찰의 남용과 비행을 다스릴 힘을 가진 시민의 심사위원회를 요구한다. 빈곤 지역에서 경찰과 지역사회에 근거한 집단들 간에 범죄와 폭력 철폐를 위한 지역사회 협력이 수립돼야 한다.

6. 빈민은 완전 고용, 그리고 빈곤선을 넘어서도록 하는 보장 소득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만 한다. 우리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지역사회에 기반한 협동조합의 제휴에 대한 정부 투자를 요구한다. 실업이 집중된 지역이 있는 곳마다 일자리와 기회를 일으키는 집중된 노력이 있어야만 한다.

7. 빈민은 기회의 불평등에 희생돼서는 안된다. 여성과 비-백인에게 동등하게 지불하라. 여성은 직장에서의 성적 괴롭힘과 폭력, 또한 가정폭력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돼야만 한다.

8. 우리는 전 세계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과 힘을 믿는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장했듯이 “어느 곳에든 불의가 있다면 그것은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 우리는 미국의 외교 정책이 정의와 자유로 규정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신념에 뿌리를 둔 도덕적 권리 장전이다. 이 권리 장전의 이행은 “신 앞에,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정의를 가진,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나라”로 우리를 더 가깝게 데려갈 것이다.

인권오름 제 407 호 [기사입력] 2014년 09월 18일 21:58:4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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