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12월 25일 제2964호>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이 돌아가신 잔인한 겨울이다. 두 분 다 지난달 15일에 열린 농민대회에 참석했다 경찰폭력에 변을 당했다. '뇌손상', '전신마비 후 사경을 헤매다 운명'이라는 짧디 짧은 사망경과에 담기지 못한 폭력의 실상을 밝히는 일,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 등이 꽁꽁 얼어붙어있다. 현장 지휘자 정도 갈아 치우고 끝내려는 당국의 무책임함 때문이다. 평생 갈던 땅과 같은 골이 패인 두 분의 영정은 이런 사태를 물끄러미 내려보고 있을 뿐이다.
멀리는 일제시대 가깝게는 군사독재 시대에 권력의 하수인으로 지탄받아온 경찰은 '인권경찰'을 표방하는 오늘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어떤 점에서 달라진 바가 없냐하면 합법이 아닌 공권력의 행사는 곧 범죄이며 반드시 법에 따라 처벌돼야 한다는 점에서이다. 생명을 빼앗았는데, 즉 살인을 저질렀는데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법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것은 장례도 치르고 있지 못한 두 분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소위 인권경찰을 표방한다는 우리 경찰을 독려하기 위함인지 유엔에서는 '경찰이 지켜야 할 인권 기준과 실천'이라는 지침서를 2004년 발간했다.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20여개의 국제인권기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지침서에는 경찰이 존중해야 할 인권과 그것을 위해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등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60여 쪽에 달하는 내용 중에서 경찰의 폭력 사용에 대한 부분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생명권에 대하여는 어떠한 예외도 허용되지 않는다" 했는데 두 명이나 생명을 잃었다. 경찰 자신의 방어를 위해 사용돼야 할 방패가 "보증되지 않은 상해, 손상 또는 위험을 야기하는 무기"로 돌변했다. "불법적인 상급자의 명령을 거부한 경찰관에겐 면책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농민 때려잡는 일에 동원돼야했던 경찰은 알고 있었을까? "상급자는 자신들의 명령 하에 있는 경찰의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하고 "모든 경찰은 상급자의 명령을 따랐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하는데 책임지는 경찰이 없다. 문제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 특정 시기마다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자는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노동자, 농민 등 사회의 차별과 불평등에 이미 폭력당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경찰 폭력은 물리적 상처일 뿐 아니라 이들이 응당 보장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침해이다.
경찰 폭력이 문제될 때마다 '과도한 물리력 행사'에 대한 '유감'표시로 넘어가면서 한편에선 현장경찰관의 고충을 헤아려달라고 읍소한다. 경찰 처우의 개선을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경찰이 안전한 상황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전체 시민의 안정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표시로 자기 잘못을 넘기려는 경찰의 존재는 시민에겐 위험하고 경찰 자신에겐 독이 된다. 처벌 받을 건 받고 대우 받을 건 대우 받아라.
이 지침서 앞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법 집행 공무원은 항상 그들에게 법으로 부과된 의무에 충실해야"하며 "그 직업에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책임성으로 일관해야"한다고 말이다. △허준영 경찰청장 파면 △현장지휘 책임자와 가해자의 구속 처벌 △서울경찰청 1기동단 해체 △노무현 대통령의 공개사과로 경찰의 충실함과 책임성을 확인하고 싶다.
경찰이 지켜야 할 인권 기준과 실천-일부발췌(유엔, 2004) ○ 모든 경찰관은 "상부 명령에 대한 복종"이 불법적 살해나 고문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
[류은숙] <2005년 12월 25일 제29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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