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08. 11. 1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7조

1.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재산권은 오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 17조를 대하는 사람들은 처지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거봐, 재산권은 세계인권선언도 보증하는 당연한 인권이쟎아. 그런데 왜 우리보고 뭐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소위 ‘강(남)부자’들이 뛸 듯이 좋아할 수 있다. 반대로 “뭐, 재산을 인권으로 인정한다고? 그럼 재산의 횡포에 시달리는 우린 어쩌란 말이야, 세계인권선언이라구? 뭐 이런 엉터리가 있어?”라고 펄쩍 뛸 수도 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재산’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고, 저마다 ‘재산권’에 대해 뭔가 단단히 착각하거나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소득과 불로 소득의 경쟁?

재산권은 ‘재산’과 ‘권’이라는 말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재산이 뭘까? 재산이 뭔지에 대해서 어떤 합의를 하느냐는 사회에 따라 다르다. 그 합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성원들이 넉넉한 삶을 이루기도 하고 ‘모 아니면 도, 네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 식의 삶이 펼쳐지기도 한다.
도대체 재산이 뭔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 예금 통장이나 적금 통장이나마 유지하는 사람, 주식·증권·배당금·신탁·채권·선물·옵션·스왑·펀드·주식 등을 이해하고 굴릴 수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재산’이 같을 수 있나?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사람이 가진 재산과 누군가의 생사를 갈랐다 붙였다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재산이 같을 수 있나? 토지소유를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와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에서의 재산이 같을 수 있나?

어쨌든 사람들이 흔히 받아들이기 쉬운 재산은 피땀 흘려 일군 결실일 것이다. 반대로 짜증스러운 재산은 부동산 투기 등으로 만든 불로소득일 것이다. 운동경기도 체급을 맞춰서 하는데, ‘노동 소득’과 ‘불로 소득’이 같이 경쟁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고, 두 재산을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좀 이상하다. 한편 재산권은 물(物)에 대한 권리라기보다는 사람간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에 대한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타인의 삶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재산권이다. 아무도 지배하거나 수탈하지 않는 재산권과 지배하는 재산권은 엄청나게 다르다. ‘재산권’을 말할 때 이런 성격을 구분하지 않고 한통속으로 취급하여 ‘인권’이라 할 수는 없다. 재산권을 인권이라 할 때는 ‘조건’이 필요하다.

재산권은 인권의 선배 중에서도 최고참에 해당하는 권리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그렇다거나 그래야만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기에 재산권이 인권의 초기 역사에서 주연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재산권이 인권의 선두주자가 된 배경은 사람의 권리와 의무란 것이 누구의 침상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신분제 세상이었다. 악역은 제 영토의 모든 것은 제 것이라고 우기는 절대 권력이었다. 신분질서와 절대 권력에다가 유일절대의 진리로서의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나의 것’,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의 ‘자유’를 주창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다.

인권의 최고참

절대 권력은 걸핏하면 돈을 걷고 거부하면 잡아들여 주리를 틀었다. 생필품 등의 거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만 독점시키고 무역도 그렇게 했다. 새로 등장한 신진세력도 처음엔 권력의 비위를 맞추어 그 독점의 대열에 낄 수만 있으면 잘 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버티려고 했는데 도무지 앞날을 계획할 수가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그만큼 변덕도 심했기 때문이었다. 예측 가능한 정치와 경제구조가 절실했다. 불가침의 절대적 교리 앞에서 합리적 사고는 탄압 받았다. 이런 것이 다 자유롭게 재산을 추구하는데 방해거리였다.

재산에 대한 인정 요구는 인권 사상의 모태가 되고 다른 인권의 성장을 자극했다. 모든 인간은 국가 권력 이전에 생명, 자유, 재산을 가졌다고 외쳤다. 이건 사회나 국가가 준 권리가 아니라 자연적 권리고 인간에게 본래 고유한 것이라 했다. 현실속의 질서가 그렇지 않으니 옛날 말씀도 끌어들이고 종교상의 교의도 끌어들이고 그게 싫으면 과학적으로 논리를 세워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자유롭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유권이 없이는 이런 자율성을 꿈꿀 수 없다. 내 생명이 담긴 내 몸이 한 노동으로 재산을 일구었다. 그런 재산에 함부로 손대는 것은 곧 내 몸에 손대는 것과 같다. 내 몸과 내 소유, 어느 것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 내 몸과 소유에 대해 공격해오면 저항은 정당하다. 저항은 맨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

종교적 자유를 모태로 한 사상의 자유는 독선적이고 전제적인 정치 체제에 맞서는 힘이 됐을 뿐더러 자신을 유일한 진리로 여기는 종교적 권위를 깨고 인간성의 해방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왔다. ‘생명, 자유, 재산’은 삼위일체가 되어 '인신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소유의 자유'라는 인권으로 피어났다.
이런 이유로 신분제 사회에서 절대왕권과 특권층에 맞장 뜬 인권의 요구가 ‘재산을 존중하라’고 할 때 그 말은 ‘내 인격을 존중하라’는 말과 같았다. 재산권의 요구는 개인을 국가로부터 해방시켰다. ‘국가는 개인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하고, 자유로운 시장에 간섭하면 안된다’가 핵심 요구였다. 마찬가지로 ‘사상·언론·종교 등의 자유 시장에도 국가는 일체 끼어들거나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은 점에서 근대의 인권을 ‘국가로부터의 자유’라 하는 것이다.

재산권의 변화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소유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고 노동의 성과이며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담고 있기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재산권을 정당화한 논리였다. 하지만 근대시민혁명을 통해 불가침의 권리로 자리 잡은 재산권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예전의 절대군주의 모습보다 더 무서운 게 자본가라고 느꼈고, 대다수 사람들의 처지는 자유와 평등으로부터 멀어졌다.

근대시민혁명의 이론가들은 노동의 결실로서 소유권을 옹호했지만, 사실상 진짜 밑천이 될 만한 재산은 엄청난 폭력을 통해서 모였다. 땅에서 농사짓던 농민을 유랑민으로 내몰았고, 가난한 이들을 가두고 부려먹거나, 3세계를 식민지로 수탈하는 등 부정의의 역사는 넘쳐났다. 가난한 이는 자립할 수 없는 인간이라며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다. 식민종주국 백인들의 재산권은 자연적 권리라면서 3세계와 그 주민들을 공격·수탈하면서는 재산권 침해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돌봄으로써 재산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라 우겼다.

절대왕권에 맞서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을 주창할 때의 재산권이 제도화되자 재산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무’권리를 당연시하는 근거가 되어 버렸다. 재산이 법과 제도로 보호된다는 것은 곧 사회가 보호받을 재산의 범위와 한계를 정한다는 뜻인데, 재산을 여전히 사회와 국가이전의 ‘자연적’ 권리로 떠받드는 것은 이상하다. 타인의 인격과 자유를 해치고 대다수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요구를 압박하는 재산권이라면 인권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인간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재산권의 본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고, 현실에서 재산의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폐해가 심각하다면 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하다.

신성불가침성과 국가 이전의 자연권이라는 레테르는 이제 재산권에 어울리지 않는다. 생존권보장, 인권보장을 위해서 보호받아야 할 재산의 범위를 정하고 재산권자의 내맘대로의 영역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사회가 당연히 취해야 하는 조치이다.

재산권엔 친구가 필요하다

‘프랑켄슈타인’의 아주 옛날 흑백영화판을 보면 “친구가 필요해”라고 애절하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인간과 생존과 존엄에 대한 고려 없는 재산권은 인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프랑켄슈타인이고, 친구를 필요로 하고 가질 때에만 인권의 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 친구라 함은 ‘노동기본권, 주거권, 건강권, 교육권’ 등의 인권을 말한다.

선언 17조는 무엇이 재산이고 무엇이 재산에 대한 자의적 박탈인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데, 이걸 알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인권과의 관계 속에서 읽는 것이다. 선언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타인의 건강에 위험에 빠뜨리거나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적절한 휴식의 권리 보장,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다. 재산권은 이런 인권과의 관계 속에서 내재적 제약을 받는다.

재산권의 실현이 단지 재산을 획득할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런 기득권을 보호하는 걸 의미한다면, 그것이 실정법으로 아무리 강력하게 보장돼 있다 할지라도 보편적 인권으로 정당화하긴 어렵다. 재산권은 사회적 권리를 포함하여 여타 권리의 효과적인 향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런 재산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고, 그 권리의 보장 자체만으로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에 어떠한 피해자 부담도 주지 않는다는 모든 인권에 보편적인 속성을 가진 재산권이다.

선언 17조의 구상

선언 17조를 구성하고 있는 생각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재산의 소유는 인간 생활에 기본적인 것이다. 둘째, 재산은 단독으로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동으로 가질 수 있다. 셋째,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

선언을 만든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생각은 이러했다. 인권으로서 생각한 재산의 의미는 공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적(private) 소유’가 아니라 ‘개인적(personal) 소유’였다. 즉 사는 집, 소지품, 가구, 프라이버시를 보장받는 통신 등에 대한 개인적 소유를 생각한 것이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소유자가 될 권리를 인권으로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선언 문구는 그렇지 않지만, 토론 중에 사용된 문구에는 “존엄한 삶과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존엄한 삶에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개인과 가정의 존엄성 유지를 돕는 그런 재산을 가질 권리를 가지며”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까지의 개인 소유가 기본적 권리인지, 개인 재산 말고 기업의 사적소유권을 왜 언급해서는 안되는지 등의 문제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다른 그 무엇이냐는 체제의 문제 속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언은 어떤 체제도 배제해서는 안되는 표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선언 기초자들이 ‘무제한적’인 재산소유권을 옹호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재산권에 대한 ‘제한 요건’을 충족시킨다는 조건 하에서 자본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간에 중도를 유지하려 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들조차 순수자본주의 체제란 게 설령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권의 관점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언 기초자 중 누구도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이 인간존엄성에 요구되는 재화를 전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선언 29조에 권리의 제한과 규제(“공동체에 대한 의무”,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심, 공공질서, 일반의 복지를 위하여”)를 둔 이유이다. 29조에 덧붙여 더 중요한 제한 요건은 노동권 관련 조항이다. 재산을 만들어내는 노동자의 권리에 의해 기업의 재산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언 기초자들은 분명히 인식했다. 재산권이 자의적 박탈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합의 한편에는 재산권의 사회적 기능 때문에 그 범위가 규제돼야 한다는 합의도 있었던 것이다.

선언 이후 유엔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재산권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이란 주제 속에서 다뤄왔고, 주된 논의는 재산권을 여타 인권과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엔인권위가 임명한 재산권에 관한 독립전문가는 그 보고서에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문제를 다룬 바 있다. 그는 재산의 다양한 형태와 그것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도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사적 소유’를 보편적인 인권으로 설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사적 소유의 이용은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집중되는 것을 촉진해왔을 뿐 아니라 소수가 무제한적으로 부를 축적하게끔 했다. 이는 엄청난 부의 소유자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간의 계급 분화의 근본원인이다. 집단적 재산이 이런 결점들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왔으며 재산의 사적 이용은 국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지금껏 알려진 어떤 경제체제에서도 절대적으로 사적인 생산수단의 소유현상은 결코 없으며, 공공의 이용, 안보, 건강 등의 필요성에서 법으로 제한이 부과돼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언 기초 당시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재산권에 대해 가장 대조적이라 할 쿠바 정부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유엔회의에서 어떤 설전을 펼쳤는지를 예로 살펴보자.

쿠바와 미국의 대립

쿠바 정부는 재산권은 여타의 기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인권과 더불어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결권, 자연적 부와 자원에 대한 주권, 신 국제경제질서의 수립, 개발도상국들의 피폐화된 경제에 부과되는 과도한 외채 문제 등과의 관계 속에서 재산권을 검토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권으로서 재산권 문제를 취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모든 사람의 생명·노동·주거·교육·의료 등에 관계된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권리, 경제운영에 참가할 권리에 반하는 의미를 가진 재산권에 대해서는 그것을 권리로 설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빈곤퇴치, 실업, 인종적·사회적 차별, 기타 모든 형태의 불평등을 취급하지 않으면서 재산권을 고립적으로 선언하게 되면 대다수 인류와 국가들에게 재산권이란 공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반면 미국 정부의 입장 또한 단호하다. “재산권은 사회조직의 기본 장치이며, 시민·정치적 권리의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시민의 자유는 재산권을 보장하는 사회에서라야 번성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권논의에서 재산권이 홀대받아 온 것은 불만스런 일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 당신들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는 뭐냐고 물어보게 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 ‘재산권이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를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의 어느 노동단체 사이트에서 본 사례이다. 노동조합결성과 활동을 이유로 해고당한 노동자가 있었다. 해고와 동시에 임금은 당연 끊겼고 조합주택에서도 쫓겨날 상태이다. 아이들은 굶주리고 있다. 이 사람은 이동식 식탁과 요리도구를 가지고 동네의 대형 수퍼마켓에 갔다. 그리고 고기가 가득차 있는 정육점 코너 옆에 이동 식탁을 차리고 거기서 고기를 꺼내 굽기 시작했다. 관리인이 달려왔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역방송 카메라도 달려왔다.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 노동자는 “아이들이 굶주리는 걸 내버려둘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분명 이 사람이 취한 행동은 재산에 대한 탈취라고 일반적으로 말할 것이고 그렇게 처벌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 경제·사회 체제 내에서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필수물을 제공받아야 할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작성일자 : 2008. 11. 1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6조

1. 성년에 이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여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 이들은 혼인 기간 중 및 그 해소 시 혼인에 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2. 결혼은 양 당사자의 자유롭고도 완전한 합의에 의하여만 성립된다.
3.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며 기초적인 구성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요즘처럼 살기 힘든 때에는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식의 생각이 도드라지는 한편 ‘가정의 위기’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도 높다. 둘 다 문제가 되는 생각이다.

‘가족밖에 믿을 수 없다’는 건 ‘사회’가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이고 가족외의 사회적 관계들을 이해타산으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와 국가가 맡아야 할 사회복지의 부담을 가족에게 떠맡기기 딱 좋은 생각이다.

‘가정의 위기’라고 할 때는 소위 ‘정상가정’의 해체를 운운하면서 다양한 가정의 형태와 그 구성원들을 ‘위기의 소산’으로 낙인찍는 수가 있다. 버젓이 구성원의 정서적 유대로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주류로 여기는 가정형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당신들의 가정은 가정의 위기 내지 해체의 증거’라고 손가락질 한다면 심각한 차별일 것이다. 또한 사회가 제공하는 가정생활과 관련된 권리로부터 그들 가정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이다.

나아가 특정 사람들을 아예 가정을 구성할 수 없는 사람들로 낙인찍는 문제가 있다. 장애인의 이성교제와 결혼·출산을 바라보는 눈, 해외토픽감 식으로 다뤄온 동성애 혼인과 부모됨의 권리 문제 등이 적극 제기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혼인과 가정생활과 관련된 권리를 규정한 선언 16조는 빈 구석이 많은 조항이다. 만들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많이 변화된 가족관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어떤 생각으로 선언 기초자들이 16조를 만들었는지부터 살펴보자.

여성의 평등한 접근 등이 제외된 기초과정

선언 16조를 기초할 당시 “결혼과 무관하게 평등한 시민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제안은 누락됐다. 이 내용은 최근에 와서야 후속국제조약에서 강조되게 된다.
‘민법상 결혼은 선택의 자유, 아내의 존엄성, 일부일처, 결혼 해소에 대한 동등한 권리, 동등한 양육권, 자신의 국적을 유지할 권리, 계약을 맺을 권리, 재산을 가질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선언을 기초할 당시 유엔여성소위원회의 제안이었고 ‘유급출산휴가, 교육에 대한 여성의 평등한 접근’ 등의 사회적 권고들도 있었다. 세계인권선언 16조에는 이 중 일부만이 반영돼 있다.

결혼과 관련하여 주로 논쟁이 된 문제는 타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결혼이나 이혼에 관한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이었다. 타종교와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거나 종교적 이유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많은 나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소될 수 없는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정부들이 16조에 찬성표를 던진 배경은 이렇다.

종교와 국가는 분리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인권 문제가 논의돼야 하고, 인권문제가 종교적 근거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들에서 관련 입법이 대개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점이 지적됐고 그런 여성의 불리함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혼의 성립이나 해소 시에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1항에서 “성년”을 언급한 것은 아동혼을 방지하기 위한 구상이었다. 신체적 성숙이 됐다 할지라도 조혼은 권할만하지 않은 것이고, 혼인에서는 단지 출산 능력이 아닌 더 중요한 요인들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에서였다.
2항에서 ‘결혼에 대한 동의’를 언급한 것은 강요나 위협 하에서 계약된 결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항에서 언급한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의 구체적 내용은 끊임없이 논쟁되고 변화해왔다. ‘모성보호’를 예로 들어보자. 선두주자는 ILO이다. ILO는 1919년 창설하자마자 채택한 규범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보호규정을 만들었다. 1919년 모성보호조약(Maternity Protection Convention)과 야간노동(여성) 조약(Night Work(Women) Convention)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는 모성휴가와 고용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갖는다. 이후로 오랫동안 모성보호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보호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여성을 어머니 또는 장차 어머니가 될 사람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자가 어머니일 수 있듯이 남성 노동자가 아버지일 수 있다는 관점을 ILO가 공식적으로 취하기까진 60여년이 걸렸다. 1981년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노동자에 관한 조약’과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노동자에 관한 권고’에 와서야 부모의 의무를 남성과 여성 모두가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하게 됐다.

성차별 방지 노력이 처음에는 모성보호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50년대 이후에는 고용에 대한 평등한 접근, 고용에 있어서의 평등한 처우가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양해야할 사람이라는 것, 남성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자기 부양의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부양이 ‘가장’으로 간주돼온 남성의 의무(동시에 권리)인 것이 이전에는 당연시 돼왔다면 한 가정의 부양을 남녀가 공유해야 하는 문제로 다루기까지 또 수십 년이 걸린 것이다.

가정생활과 관련된 차별
유엔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특별보고관’을 두고 있는데, 그 보고서에서 ‘가정생활과 관련된 차별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보고관은 크게 세가지 유형의 차별을 지적했다.

· 결혼에 근거한 차별
기혼 여성은 여성으로서 차별받을 뿐 아니라 기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수 있다. 혼인에 근거한 차별은 기혼여성이 남편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에서 기혼여성은 가정의 부양자로서의 권리를 청구하기 전에 자신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걸 먼저 증명해야 한다. 그 결과 기혼여성은 사회보장제도에서 공개적으로 차별받을 수 있다. 많은 경우에 기혼여성은 남편이 확보할 수 없었던 권리라는 걸 증명해야만 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고, 취업을 하게 되면 피부양자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에 대해 유엔시민·정치적권리위원회는 비차별에 관한 일반논평 18에서 “혼인 기간 중 및 혼인 해소 시에 혼인에 대한 배우자간의 권리 및 책임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사국의 의무로 확인했다. 또한 동 위원회에 통보된 사건에 대한 결정에서는 기혼여성이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에서 배제되는 법률은 규약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이 사건을 통보한 여성은 기혼여성이라고 해서 자신이 “생계책임자"였다는 걸 증명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조건은 기혼남성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해당 정부는 결혼과 사회속에서의 남녀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통념을 따른 법률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통념에 따르면 기혼 남성은 언제나 생계책임자이고 반면에 기혼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 모성에 근거한 차별
앞서 말한 것처럼 모성보호는 인권기준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ILO에 의해 규정됐다. 문제는 모성보호가 성평등에 반작용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보호의 목표가 아동이지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성보호’로부터 ‘부모보호’로의 개념 진전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현상이다. ILO의 관련 조약에 따르면 정부는 “남녀노동자에 대하여 기회 및 처우의 실질적인 균등을 창출하기 위하여, 현재 고용되어 있거나 또는 취업하고자 하는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사람이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또한 가능한 한 그들의 고용과 가족부양책임 사이의 갈등 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임신한 여성, 어린 아이를 둔 여성, 나아가 자녀를 양육할 연령의 모든 여성을 노동시장이 차별하는 것에 비하여 그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어머니가 되는 것, 부모가 되는 것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모성 휴가(양육휴가)에 충분히 보상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권의 관점에서 여성은 어머니가 된다는 이유로 사회적 인정이나 보호를 획득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여성의 동등한 권리에서 모성보호가 의미하는 것은 여성이 자녀를 낳고 남성은 그렇지 않다는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모성에 대한 사회적·법적 보호는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보상과 보호를 부여하는 데 있다. 출산과 양육은 사회적 기능이므로, 단지 여성이라는 사실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보상을 얻는 것이다.

· 부모됨에 근거한 차별
제도적 혼인은 많이 변했다. 서유럽과 북미에서는 결혼과 가정간의 연계가 없어졌다. 결혼과 가정간의 직접 연계를 상정했던 국제인권기준도 그런 변화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결혼과 부모됨이 직접 연계되지 않게 되면서 출산의 권리는 부부나 한 쌍의 권리라기보다는 개인의 권리로 요구되고 있다. 불임치료술, 대리임신 등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문제들도 제기되고, 출산과 관련된 권리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 여기서도 인권의 원칙은 부모됨이 성별에 근거한 것이 아닌 남성과 여성 둘 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만 임신을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임신했거나 임신가능성이 있는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에 대한 차별이 된다. 따라서 국제규약은 임신과 양육을 이유로 한 차별을 성차별의 형태로서 금지하고 있다. 여성차별철폐조약 11조(2)(a)에 따르면 “임신 또는 출산휴가를 이유로 한 해고 및 혼인 여부를 근거로 한 해고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위반시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것”을 결혼 또는 모성을 이유로 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임신과 출산휴가를 이유로 한 차별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이나 직업상실의 위협으로 인해 여성이 고용이냐 모성이냐간에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됨에 관련된 인권기준은 어머니가 될 가능성만이 아니라 부모가 될 가능성을 다뤄야 한다.
또한 가족계획과 출생률에 대한 선택에서 대부분 여성이 남편의 의사에 반하거나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여성의 낙태권과 가족계획과 관련된 선택권에 관련된 논쟁은 모든 곳에서 여전히 뜨거운 이슈이다.

혼인과 가족관계에서의 평등

1979년 유엔에서 채택된 여성차별철폐협약은 성역할과 가정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와 관습에 초점을 맞춘 유일한 국제인권조약이다. 이 협약에 기초하여 설치된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논평과 권고를 통해 협약의 내용과 그에 따른 국가의 의무에 대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정생활과 관련된 내용에는 1994년 ‘혼인과 가족관계에서의 평등’, 1992년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일반논평이 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취해야 할 의무적 조치의 주요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문제영역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논평과 권고
국적 국적은 완전한 사회참여를 위해서 결정적인 것으로 국적은 성인여성에 의하여 변경 가능하여야 하고 혼인이나 혼인 해소 혹은 아버지나 남편의 국적 변경을 이유로 하여 임의적으로 변동되어서는 안된다. 
법 앞의 평등 법률로써 또는 개인이나 기구를 통해 여성의 법적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남녀평등의 권리에 대한 부정이자 여성이 자신과 피부양인을 부양할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국적과 유사한 개념으로서 주소는 여성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성인 여성의 의지에 따라서 변경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타국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하고 일하는 이주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배우자, 파트너, 자녀를 동반할 수 있는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혼인과 가족관계 · 가족의 형태와 개념은 국가마다, 심지어 한 국가내의 지역 간에도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든, 국가의 법적 체계, 지역, 관습 혹은 전통이 무엇이든 간에 가족내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는 법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과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 일부다처혼은 중지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 관습, 종교적 믿음, 특정 인종집단의 민족적 기원등에 근거한 강제결혼, 강제재혼, 금전의 지급이나 신분상승을 위한 여성 혼인, 재정적 안정을 위하여 외국인과 결혼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에 위배된다.
여성의 혼인 시점, 혼인 여부, 혼인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법으로 보호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 사실혼 관계에 놓인 여성은 가정 생활 및 수입과 자산을 공유함에 있어서 법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 피부양자녀와 가족 구성원들을 양육하고 돌보는 일에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
· 자녀를 양육하고 보호, 부양하는데 있어서 부모는 공동의 책임을 진다. 부모가 혼인하지 않은 경우나 어머니가 이혼하거나 별거중인 경우 많은 아버지가 그 자녀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혼인의 지위 및 자녀와의 동거여부에 상관없이, 양쪽 부모 모두가 자녀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지도록 국내법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 여성은 자녀들의 수와 터울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안전하고 믿을만한 피임 수단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를 결정할 수 있도록 피임수단과 그 용법, 성교육에 대한 접근 보장, 가족계획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 재산을 소유, 관리,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이 재정적 독립을 향유하도록 하는 여성 권리의 핵심이다. 여성의 재산권은 여성의 혼인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 부부간 평등, 혼인 최소 연령, 중혼과 일부다처혼의 금지 및 아동의 권리 보호수립을 위한 모든 혼인의 등록을 요구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 공적이든 사적이든간에 모든 형태의 성에 근거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여기에는 공무원에 대한 성인지성 훈련, 폭력의 범위·원인·영향과 폭력을 방지하고 취급하는 조치들의 실효성에 대한 통계와 조사의 편찬, 여성에 대한 존중을 위한 매체들의 효과적 조치, 인신매매와 성적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예방 및 징벌 조치, 효과적인 청원절차와 배상을 포함하는 구제방안 마련, 성희롱 및 기타의 직장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성에 근거한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위한 피난처 제공, 숙련된 보건 인력, 재활 및 상담을 포함하는 서비스의 수립과 지원, 여성할례 등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 출산과 생식에 관한 강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 시골 여성 및 격리된 공동체에 대한 특별 서비스, 가정 내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들.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다. 가정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그중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식대로’의 가정만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가족을 평가절하하거나 다른 가족과 갈등한다면, 누구에겐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라는데 누구에겐 지옥 같은 곳이 가정이라면, 사회적 유대와 연대와는 담쌓은 가족 사랑이라면 인권으로서의 ‘가정생활에 대한 권리’가 작동할 수 있을까? 누구를 가족이라 할 것이며, 가족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만들고 보듬어야 하는 문제이다.

‘떠오르는 인권에 대한 바르셀로나 헌장’이라는 것에서는 선언 16조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바꿔 쓰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개인적 유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선택한 사람과 정서적으로 결합(결혼한 권리를 포함하여)할 개인의 권리를 인정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모든 유형의 자유롭게 동의한 개인적 유대는 어떠한 장애도 없이 동등한 보호를 받는다.

모든 가족 공동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가족의 형태와 무관하게 교육과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공공당국으로부터 가족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작성일자 : 2008. 11. 1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5조

1.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거나 그의 국적을 바꿀 권리를 부인당하지 아니한다.

무국적이라는 것

“나의 조국은 세계이다”, “세상을 무국적자처럼 떠돌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하거나 들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때는 자신의 국적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의 사람 누구와나 함께할 자세가 되어 있을 때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조국으로 인류를 가족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에게도 엄연히 국적과 시민권이 있을 것이다.

좁아진 세계와 타국에서의 취업, 국제결혼 등의 증가로 이중국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무국적’의 문제는 주목받지 못하는 인권문제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훨씬 더 지구화된 요즘 세상에서 무국적자가 여행하는 것은 1930년대보다 훨씬 더 어렵다. 무국적으로 태어나는 아동은 평생 무국적이기 쉽다. 무국적 상태에서는 학교에 가거나 합법적으로 일하거나 재산을 소유하거나 결혼하거나 여행을 할 수 없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고소를 할 수 없다. 법적으로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사를 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내가 어떤 국가의 시민도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만들 자격이 없는 겁니까?”
“내가 사는 나라에서도 ‘안된다’고 하고, 내가 태어났던 나라에서도 ‘안된다’고 하고, 내 부모의 출신 국가에서도 ‘안된다’고 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무국적이라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감정에 언제나 휩싸여 사는 것이다.”
무국적 문제를 다루는 한 인권단체와의 인터뷰에서 무국적자들은 이렇게 호소한다.

아인슈타인도 무국적자였다

무국적자란 어떤 국가의 국내 법률에 의해서건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1954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 1조)이다. 각국의 법률에서 국적과 시민권은 반드시 동의어는 아니다. 하지만 둘 다가 의미하는 바는 한 국가와 개인을 한데 묶는 끈으로서 양자 간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리 뿐 아니라 책임을 포괄한다.

무국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서로 중첩되기도 한다. 정치적 급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표적 삼은 차별과 배제, 국가들간의 국적법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틈, 영토 변경과 관련된 혼란, 결혼과 출생신고와 관련된 법이 간과한 문제, 다른 국적을 얻기 전에 국적을 포기한 경우, 부계혈통만으로 시민권을 인정하는 경우 등으로 인해 무국적이 발생한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인한 물과 자원 분쟁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지역에서 마찰과 추방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다 알만한 유명한 무국적자의 경우를 보자. 한국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이 닮기 원하는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무국적자였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1896년 국적을 포기했고 그 후 5년간 무국적자였다. 1901년에 스위스 시민이 됐고, 프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된 1914년에 독일 시민권을 다시 얻었으나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된 후 아인슈타인은 아카데미를 사임하고 두 번째로 독일 국적을 포기했다. 이번에는 난민이 됐다. 스위스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국적자는 아니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40년에 미국시민이 됐다. 평생에 걸쳐 이런 난관을 겪으면서 그는 말했다. “민족주의는 소아기적 질병이다. 민족주의는 인류의 홍역이다.”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 앞에서 연주한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첼로연주자 로스트로포비치도 무국적자였다. 1978년 그는 프랑스 TV 뉴스를 보다가 자신과 아내가 “소련의 위신에 해로운 행위”로 인해 소련국적을 박탈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훗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제거됐다.…‘가치 없는 시민’이 된다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지 당신들은 모른다. 그들은 우리를 몰아냈다.”고 말했다. 1990년에야 그의 소련 시민권은 회복됐다.

유명 영화감독, 마가렛 본 트로타도 무국적자였다. 그녀는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1942년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독일인이 되고 싶지 않아 무국적이었고, 비혼의 무국적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녀도 자동으로 무국적이었다. 공부를 하러 파리로 갈 때 그녀에게는 비자와 신분증명서가 없었다. 한밤중에 기차에서 끌려 내려진 그녀는 국경 가운데서 오도갈 수 없었다. 훗날 결혼으로 국적을 취득한 그녀는 “나는 국적을 갖고 싶었다. 그게 프랑스던 독일이던 상관없었다. 난 단지 여행의 어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무국적자가 되어 타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작가는 자서전에서 ‘무국적’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 자신이 내 자아에 정말로 속한다는 느낌이 멈췄다. 내 타고난 정체성의 일부가 내 원래의 본질적인 자아와 더불어 영원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국적의 고통은 유명인들의 ‘과거’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재’로 계속되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면서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민족들, 상당수가 난민이면서 무국적이기도 한 수백만의 팔레스타인들은 현재 무국적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주여성과 그 자녀의 문제는 특히 취약한 무국적 사례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사례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팔레스타인, 그리고 조선적

한 베트남 여성이 고령의 대만인과 국제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예상보다 경제사정이 열악했고 사업의 실패와 더불어 이 여성이 아들이 아닌 딸을 낳자 아내와 아이를 같이 버렸다. 이 여성은 국적취득과정에 있었다. 새 국적을 얻으려면 원래의 국적을 포기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했다. 남편과 상의하여 베트남 국적을 포기했으나 아직 새 국적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버림받은 그녀는 고향에 돌아와서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자신이 무국적자이며 따라서 아무런 권리가 없음을 깨닫게 됐다. 아이는 베트남인에게 허용된 무상교육을 받을 수 없고 의료 혜택도 없으며, 자신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국적회복을 위한 절차를 알아보자니 변호사는 5천 달러의 수임료를 요구했다. 자신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돈이었다.

일본 패망 후 귀환하지 못하고 어떤 국적도 취득하지 않은 채 귀환을 그리며 무국적자로 버틴 동포들, 북한 국적도 남한 국적도 취득하지 않고 사실상 무국적자인 ‘조선적’을 고집한 동포들, 남북한 각각이 국제사회에서 각각의 국가이고 국적법이 있는 상황에서의 북한 출신 이주자의 문제,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의 국적 문제 등 ‘무국적’은 한국 사회와도 결코 먼 문제가 아니다.

난민 뿐 아니라 무국적자도 수임사항으로 다루고 있는 국제기구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다. UNHCR은 2006년 말 현재, 공식적으로 49개국에 걸쳐 5백 8십만 정도의 무국적자가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무국적자에 대해 믿을만한 통계를 내는 국가는 거의 없기 때문에 UNHCR은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1천 5백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무국적 문제를 다루는 UNHCR의 인력과 재원은 형편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차 대전 간 초기의 국제적 합의들은 난민과 무국적 문제를 한데 다루었고, 무국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목표를 두기 보다는 당장 닥친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국한됐다. 가령 무국적자들로 하여금 당장에 필요하니까 여행서류로 소위 ‘난센여권’을 사용하게 하는 식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무국적자의 법적 지위를 규율하고 무국적 사례를 줄일 필요성에서 채택된 기준이 세계인권선언 15조이다. 선언은 개인의 인권으로서 국적을 가질 권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적을 주거나 말거나 빼앗거나 하는 문제는 국가의 권리이다. 각 국가는 자국의 법에 따라 국적법을 제정할 수 있고, 이 법이 국제법과 타국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국가들은 대개 이를 승인한다. 선언 15조는 국적에 대한 권리를 말했지만, 어떤 국가가 어떤 상황에서 국적을 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무국적을 방지할 국가들의 의무, 아동을 출생 시에 등록하고 무국적이 될 상황이면 국적을 제공할 의무 등이 명시된 것은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국제조약에서다.

가령 1954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은 무국적자에 대해 난민에 대한 처우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고, 1961년 무국적자의 감소에 관한 협약은 달리 국적이 없으면서 가입국의 영토에서 출생한 자에게 그 국가의 국적을 인정함으로써 주로 출생 시 무국적을 피할 목적을 가진다. 국가들에게 권고되는 바는 최소한 무국적자에 관한 두 개 협약을 존중하라는 것인데, 양 협약 모두 가입국 수가 아주 적다. 그밖에 1966년의 시민·정치적 권리 규약과 1989년의 아동권리협약 7조는 아동이 출생 시 즉시 등록될 것과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적어도 당사국에서 태어나는 아동이 무국적이 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가입국에 촉구하고 있다.

너무도 미약한 국제사회의 대응

무국적과 관련된 활동 단체들이 유엔과 정부들에게 촉구하는 바는 민망할 정도의 기본적 수준이다. 무국적과 관련하여 수임사항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 가용할 수 있는 기존 인권 메커니즘을 모두 활용할 뿐 아니라 무국적 문제에 집중하는 단위를 만드는 것, 식량과 의료 등 긴급한 필요에 지원하는 것, 무국적과 관련된 정보의 공유, 무국적과 관련된 국제기준의 당사국이 될 것 등이다.

여러 국가들에서 시민권은 새로운 권리를 추구함으로써 이전의 특권을 권리로 변형시키고, 권리의 주체를 확장해왔다. 새로운 권리는 이전 권리의 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고 이전에 법률로나 관습으로 분리됐던 집단들간의 장벽을 제거해왔다. 그런데 무국적자에게는 그런 시민권이 없기에 권리의 변화와 생성도 없다. 어느 국가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국제적으로는 미약한 협약과 기구가 있을 뿐이다. ‘시민권과 인권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고, 시민권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인권이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는 인권의 생명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작성일자 : 2008. 9. 26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14조

1.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하여 타국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비호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2. 이 권리는 비정치적인 범죄 또는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만으로 인하여 제기된 소추의 경우에는 활용될 수 없다.

맨 손으로 서 있는 사람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 오래전 발행한 포스터가 있었다. 이 포스터에는 연장을 들고 서있는 사람, 땅을 파는 사람, 트럭을 모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림 밑에는 “누가 난민일까요?”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그림 속의 수많은 사람들을 훑어보면 답이 드러난다. 저마다 뭔가 쓸 만한 도구를 갖고 있는데 맨 손으로 서있는 사람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이 난민이다. 아무것도 없이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난민이라고 포스터는 설명해준다.

세계인권선언은 “박해를 피하여”란 표현으로 난민을 설명하고 있다. 1951년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사람,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공포 때문에 국적국의 보호를 원치 않는 사람, 국적국 또는 상주국으로 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길 원치 않는 사람을 난민이라 한다.

그런데 이 협약은 1951년 이전에 발생한 사건의 결과로 인한 난민에게만 적용되었고,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에 집중했다. 이미 발생한 난민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예상할 수 없는 미래의 난민문제에 대해서는 책임지려 하지 않았기에 이런 제한을 둔 것이었다. 이런 시간적·지리적 제한은 곧 문제가 됐다. 1950-60년대 특히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난민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1951년 협약의 시간적·지리적 제한을 제거한 것이 1967년의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이다. 또한 난민 상황의 변화를 반영하여 1951년 협약에 담긴 정의를 기본으로 하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추가됐다.

1969년 아프리카통일기구협약(OAU협약)은 “출신국 또는 국적국의 일부 또는 전부에서의, 외부침략, 점령, 외국의 지배나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는 사건을 이유로 강제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야만 했던 사람”을 1951년 난민협약의 정의에 덧붙였다.

1984년 미주기구 난민선언(카타헤나선언(Cartagena Declaration))은 “보편화된 폭력, 외부침략, 국내소요, 대량의 인권침해 또는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해치는 기타 상황으로 인하여 자신의 생명, 안전이나 자유가 위협받음으로 인하여” 자국을 탈출한 사람을 추가했다.

변화하는 상황

난민에 대한 정의의 변화가 보여주듯이 난민의 발생요인과 결과, 난민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태도와 대응양식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이런 속에서 세계인권선언 14조는 20세기 난민 정책의 전환점에 놓여있다고 말한다.

선언을 전후한 국면의 특징이라 하면, 난민 문제를 ‘일시적’이고 ‘특별한’ 상황으로 봤고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가졌다는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정권을 피해 떠나온 사람들을 비호하지 못한 실패가 역력했던 경험을 안고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졌다. 더 이상의 협상이나 조약 없이 개별 사례별로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대응방식을 취했고, 본국 귀환이 이상적 해결책이며 유엔이 더 이상 난민 문제에 관여하지 않기를 원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을 설립하면서도 3년 시한의 임시기구로 생각했을 뿐이다. 또한 냉전의 시작과 더불어 정치적으로는 공산정부의 박해로부터 피해온 난민들에게 이익을 부여한다는 의도가 있었다. 옛날 영화 속에 흔히 등장하듯이 자유의 다리를 건너 자유세계로 넘어오는 정치적 망명자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난민은 양차 대전과 그 결과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님이 곧 드러났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은 현재까지 임기가 연장되고 있고 난민 문제가 일시적일 뿐이라는 생각은 바람에 그쳤다. 또한 그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정확한 수를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으나 60년대 2백만 명 수준에서 현재는 2천만 명 수준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난민에 대한 태도는 ‘냉정’으로 변화했다. 소련의 붕괴와 냉전의 종결로 난민의 정치적 근거가 상당부분 상실된 면도 있고, 9·11 이후에는 미국의 난민수용 급감과 유럽 국가들의 입국허가규범 강화로 나타났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의 정부 폭력이 곳곳에서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난민을 내쫓는 나라들

분쟁의 성격이 ‘내전’이 되면서 상황은 더 나쁘게 됐다. 국내실향민수가 난민의 두 배에 달하고 이들의 처지가 난민보다 더 나쁜 경우도 많다. 무력분쟁의 결과로 실향민이 발생할 뿐 아니라 살던 곳에서 대량의 인구를 쫓아내는 것이 교전 당사자들의 분명한 목적이기도 하다. 내전과 인종청소, 대량의 인권침해, 경제적 불평등과 극빈, 여기에다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재앙까지 가세했다. 가난한 나라들이 수천수만의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반면 부자 나라들은 자신의 영토에 난민이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은 지구적 불평등의 또 하나의 얼굴이다.

이렇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난민과 다른 유형의 이주자(가령 경제적 이유의)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가 논란이 된다. 하지만 많은 정부들은 난민과 경제적 이주자를 구분하려 들고, ‘문’(door)으로 들어온 난민이 아니라 ‘창문’(window)으로 몰래 들어온 경제적 이주자라 비난하면서 난민 신청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내쫓는다.

난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에서 핵심 원칙은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 원칙이다. 어느 누구도 박해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되돌려 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민 지위를 구하러 들어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은 핵심원칙을 써먹을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인권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난민에 대한 대응이다. 인권에는 냉혹한 국경이 있다.

체약국은 난민을 어떠한 방법으로도 인종, 종교,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그 생명 또는 자유가 위협받을 우려가 있는 영역의 국경으로 추방하거나 송환하여서는 아니된다.(난민협약 제33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정부는 난민협약에 1992년 가입한 이후 2000년까지 단 한명의 난민도 인정하지 않다가 2001년에야 처음으로 1명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이후 조금씩 난민인정 자체에 있어서는 개선을 보여 왔다고 하지만, 한국의 난민 신청자가 1천 명을 넘어선 현실에 비해 난민정책은 빈곤하다고 할 수 있다. 전문공무원이 너무 부족하고, 난민정책을 생산하고 실무를 지도할 정책단위 없이 출입국관리법과 출입국관리국이 관리하며, 이의신청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등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외 인권단체들은 난민문제를 국가 안보 혹은 치안유지적 시각으로 접근하지 말고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요구를 해왔다. 유엔의 인권조약 관련 위원회들은 난민정책을 재고할 것을 한국 정부에 권고해왔다.

한국에서 최초로 난민 인정을 받았던 데구(Degu)씨는 한 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인종적 박해 때문에 자신이 사랑하던 땅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것은 결코 한 인간이 추구하는 삶이나 꿈이 아닙니다.”
“저는 한국정부와 민간단체가 보다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논의하고 이들에 대한 국제적 보호에 기여하기를 기원합니다.”

난민=인권의 종말?

세계 곳곳에서 난민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인류의 양심을 짓밟는” 것이다. 가령 바다에서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불문법이다. 해상에서의 인명 구조는 전시의 적에게도 해당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난민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항해를 견딜 수 없는 보잘것없는 보트에 몸을 싣고 음식도 물도 없는 상황에서 애타게 도움을 청해도 버리고 가버리거나 오히려 해안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민간어선들이 구조해서 데려오면 받아주지 않거나 오히려 구조한 사람들에게 불법밀입국을 도운 혐의로 처벌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탈출을 위해 브로커들에게 전 재산을 넘겨주고 길을 나선 이들을 영하의 산속이나 벗어날 수 없는 사막 가운데 버려두는 일 등이 난민에 관한 보고서들에는 넘쳐난다.

난민의 국제적 보호를 천명한 원칙들은 다음의 경우를 인권침해라 한다.

· 선박으로 도착하는 난민을 해변으로부터 내쫓아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는 경우
· 어느 곳에서도 비호를 구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국경선 지역에서 입국이 거절되는 경우
· 박해를 받을 공포가 있는 국적국 혹은 기타 국가로 강제송환되는 경우

앞서의 사례들을 보면 ‘사문화’된 기준이란 힐책을 받아도 대꾸할 말이 없다. ‘난민의 세기’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가진 20세기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인권의 종말”까지 거론되는 결과를 낳았다.

세계인권선언은 무엇보다도 ‘국가’를 중심으로 한 인권개념에 기초해 있다. 즉 자유권은 국가에 의한 권리침해로부터의 자유에 중점을 두었고, 사회권은 국가에 의한 복리의 보장과 증진을 강조했고, 국제인권법의 의무당사자는 국가이다. 난민에 대한 국제적 보호에 관해서도 비호국이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이 제공하는 보호가 자국 정부로부터 받아야 할 보호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난민은 이 의무당사자와 관계가 없다. 어느 국가도 내 사람이라 하지 않는 사람, 내 사람이라 하는 국가로부터는 보호는커녕 공포와 박해밖에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 난민이기 때문이다. 난민의 존재는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의 주체가 된다는 인권의 기본 설정을 비웃는다. 난민은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사실상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난민은 인권의 주체로서 권리를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처분 대상이고, 정치조직이 아니라 인도주의 기관들의 수중에 있다. 기존의 ‘국가-국민-영토’의 구조 속에서 사고되는 인권 틀로는 난민의 존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없으며, 기존의 인권틀 내에서의 ‘비호 받을 권리’는 잘못된 접근이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응답하느냐는 현재 인권의 큰 과제이다.

작성일자 : 2008. 9. 26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13조

1. 모든 사람은 각국의 영역 내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로부터도 출국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

당연한 자유?

80년대 민주화 요구 시위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시위에 반대하는 한 아저씨가 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난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있다구. 그러면 민주주의고 자유지, 이전과 거주의 자유 말고 뭔 놈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더 필요해?”라고 목청을 높이시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분의 말처럼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필수적인 권리로 여겨진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가 없으면 다른 권리들이 위협받는다. 직업이나 교육의 기회가 막힐 수 있고, 정치적·경제적 억압으로부터 피난처를 구할 수 없으며, 스스로 선택한 종교를 신봉하지 못하거나 여타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동을 할 수 있어야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직장도 구할 수 있으며,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라는 장애인 이동권의 외침이 공감을 얻은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에 담긴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성격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모든 사람의 인권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오늘날 심각한 인권문제를 유발하는 주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이전과 거주의 자유’의 제약성이다. 선언 13조는 이어지는 14조(망명의 권리), 15조(국적을 가질 권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13-15조를 연결하는 요소가 무엇인가하면 소위 ‘비시민’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13조의 침묵

그런데 13조를 들여다보면 ‘비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이전과 거주의 자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먼저 1항에서는 “각국의 영역 내”에서의 이동을 말하고 있다. 2항에서는 ‘자국민’이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말할 뿐이다. 즉,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한 국가 영역 내에서의 권리이며, 자국민은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은 안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권문제로 중요시되는 문제, 즉 누구든지 어떤 나라에든지 들어갈 권리(immigration)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들어가는 것이 봉쇄돼 있기 때문에 설령 들어갔다 할지라도 그 국가 영역 내에서의 자유로운 이전과 거주는 실현되기 어렵다.

선언 기초자들이 생각한 13조에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자국 정부와 개인 시민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는 옛날에 땅에 속박됐던 농노처럼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일이 있을 수 없고, 이전과 거주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강제하는 일은 독재정권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도로 이동의 자유를 바라봤기에 13조의 내용은 선언기초자들에게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떠날 자유는 약간 논란이 됐다. 당시에 베를린 장벽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는 편의 논거가 됐다. 그러나 대다수 나라에서 떠날 자유는 당연시 됐기에 통과됐다. 떠날 경우에는 여권을 요구하지도 않는 나라들도 있다. 돌아올 자유는 폐위된 왕족, 이전 정부의 수반이나 그들의 측근, 추방됐거나 정치적 이유로 쫓겨난 사람, 외국에서 태어난 국민이 대규모로 돌아오는 것 등이 문제시됐다. 어쨌든 결론은 자국민이 떠나고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해당 정부가 이유를 묻지 않고 제약도 가하지 않겠다는 것이 13조의 원칙이다.

누구에게나 ‘떠날 자유’가 있다면, 그리고 그 자유가 의미가 있으려면 ‘떠나서 어디에나 갈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디에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각 국가는 국경을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다. 결국 현실에서 갈 곳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떠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내몰림이고 재난이 될 수 있다. 선언은 앞서 말한대로 자국민이 아닌 사람의 입국의 권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고, 선언 이후 13조와 관련된 국제기준은 대개 난민과 무국적자에 대한 것이다. 여전히 입국의 권리를 말하는 국제기준은 전혀 없지만, 가장 밀접한 것은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 원칙이다. 어느 누구도 박해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14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끝없는 수난

이전과 거주의 자유 제약으로 인한 인간 수난을 보기 위해 멀리 타국의 난민촌을 봐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숱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 둘러쳐지는 재개발과 뉴타운의 깃발은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더욱 더 나쁜 거주지로 옮겨갈 자유가 자유라면 그런 자유는 넘쳐나고 있다. 단속에 쫓기던 이주노동자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사경을 헤매고, 짐 챙기고 작별 인사를 할 기회도 주지 않을뿐더러 국가인권위의 권고도 무시하고 강제 출국시키는 일이 매일의 뉴스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이유로 수많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반강제적으로 수용생활을 해야 한다. HIV/AIDS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앞뒤 따지지 않고 출입국을 봉쇄한다.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씨가 정치적 탄압 때문에 20여년을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나, 37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송두율 교수가 ‘해방 이후 최대간첩’으로 매도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외국에 있는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과거 숱한 조작사건의 관련자라는 이유로, 소위 반정부 활동(지금은 민주화운동이라 부른다)을 이유로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박탈당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선적이란 이유로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할 수 없는 재일동포들이 부지기수고, 북한출신 이주자나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의 국내에서의 처지는 13조에 담긴 소극적인 수준의 권리조차 아까워하는 냉대에 가깝다.

인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

‘시민권’속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둘의 외관은 비슷하지만,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시민권은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주는 것이고, 인권은 구성원 자격과 권리를 떼어내는 것이다. 즉 특정 사회(국가)에서 갖는 지위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대접을 하는 것이다.

시민권이나 인권 모두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확장돼온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민권은 특권이다. 특정 국가의 구성원만 써먹을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누가 국민이고 외국인인가를 정하는 조건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국민 중에서도 누구를 권리로 대접하고 누구를 무권리로 팽개치는 지도 달랐다. 그리고 이건 앞으로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과거 생계를 잃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상황이나 오늘날 가난한 나라에서 산업국가로의 이주는 비슷한 상황이다. 맨몸 맨주먹으로 도시로 상경했던 사람들은 소유한 것이 없었기에 시민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금도 재산은 시민권의 주요한 근거이다. 이들이 시민 대접을 받기 위해 어떤 수난과 싸움을 겪었는지를 기억해 보자.

앞서 살펴본 ‘수난’의 예에서처럼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자국민과 외국민을 구분하지만 자국민 내에서도 끊임없이 구분을 한다. 정치적·영토적·경제적·문화적 배타성에 근거한 시민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도대체 누구에게 득이 되는 것일까를 생각해보자. ‘구성원이 될 자격을 꼭 지금 같은 구분선속에서 그어야 할까’ ‘상품과 서비스는 자유롭게 왔다갔다해야한다고 하면서 왜 사람은 안된다고 하는가’는 현재 인권 논의의 주요한 쟁점이다. 자본과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사회보장제도 등에 있어서 차별을 없애는 것, 내외국인 노동자가 같은 지위를 누리는 그런 모습을 그려볼 수는 없는가,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민주사회의 기본’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본은 아닐까.

작성일자 : 2008. 9. 26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12조

어느 누구도 자신의 프라이버시, 가정, 주거 또는 통신에 대하여 자의적인 간섭을 받지 않으며, 자신의 명예와 신용에 대하여 공격을 받지 아니한다. 모든 사람은 그러한 간섭과 공격에 대하여 법률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12조; 침해방지와 소극적 의무를 표현

선언에서 명시한 다른 권리들과 달리 12조에서는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표현이 사용됐다. 선언이 대개 “모든 사람은 ∼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표현을 택하고 있는데 12조는 “어느 누구도 ∼를 받지 아니 한다”는 식의 표현을 하고 있다.

프라이버시권이 보호하는 이익을 크게 두 가지로 말하면, 침해에 대한 통제와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를 들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와 타인이 개인을 홀로 내버려두면 되는 소극적 의무와 사람이 자기 생활의 모든 측면에 대해 선택할 권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모하는 적극적 의무 둘 다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선언이 표현한 프라이버시권은 침해방지와 소극적 의무에 쏠려있다는 느낌을 준다.

원래 “불가침”이란 단어가 사용됐으나 최종 토론에서 빠지게 됐다. 대표적으로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다른 자유들과 경합하는 경우 프라이버시권만을 절대적인 권리로 취급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명예와 신용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다수 대표자들이 걱정을 했다. 명예와 평판의 과보호가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릴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명예’를 빼야한다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명예에 대한 보호와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호가 보호하는 이익은 다르다는 시각이 있고, 여러 국가법에서도 이 둘에 대해 접근 방식을 달리하고 있다. 또한 보통 개인과 공인의 명예와 신용을 같은 정도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12조에서 사용된 “프라이버시”는 포괄적인 용어로서 12조에 언급된 다양한 권리들, 즉 가정, 주거, 통신 등에 대한 보호를 다 담고 있는 말이다. 선언의 시대적 한계상 ‘정보 프라이버시’를 담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정보 프라이버시에 대해 명시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12조의 취지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유추할 수 있다는 시각이 대다수이다.

프라이버시권 정의의 어려움

‘프라이버시’라는 단어는 ‘타인들과 사회로부터 물러나 있을 것’,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한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국제 인권 규범에 담긴 권리들 중에서 아마도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권리중의 하나가 프라이버시권일 것이다. “모든 인권은 프라이버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많은 권리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를 정의한다는 것은 국가와 사회가 개인사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느냐에 선을 긋는 문제이고, 그 선은 맥락과 환경에 따라 다르다. 노출시키지 말아야 할 것은 문화와 사람에 따라 다르고 동일한 내용이라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노출과 공유의 정도를 달리한다.
이에 대해 『사생활의 역사』의 한 필자는 “사생활은 태초부터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역사적 현실이다. 영원히 확정된 경계를 갖는 ‘사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경계선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생활은 공적 생활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갖는다…사생활과 공적 생활이 구분이 모든 사회계층에게 동일한 의미를 갖지 않았다”고 했다.

프라이버시는 정말로 포괄적인 용어다.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하나로 묶기 어려운 다양한 이해의 느슨한 혼합물이다. 홀로 있을 권리(방해받지 않고 살아갈 권리), 다른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발전시킬 권리, 익명성을 즐길 권리, 자신에 대하여 얼마만큼을 어느 때에 공표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 정확하게 기록될 권리, 개인의 비밀을 지킬 권리, 개인의 자율성, 광의의 개인적 자유권 모두를 포함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여행자유의 제한, 국기에 대한 경례나 선서를 강요하는 것,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강의의 자유, 동의 없는 사진 촬영, 도청, 의료 기록, 신체보전을 침해하는 체벌 문제, 성적정체성과 성생활, 결혼․이혼․출산․피임․교육․자녀양육 등에서의 선택의 자유 등 온갖 문제가 프라이버시의 이름으로 다뤄진다.

프라이버시를 느슨하게나마 영역별로 묶어서 다음과 같이 분류하기도 한다.

* 정보 프라이버시; 신용정보, 의료기록, 정부 기록 등 개인 정보의 수집과 취급을 다스리는 규범의 수립과 관련하여 자신과 관련된 개인정보의 생산․유통․활용․보존․공표 등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을 가질 권리
* 신체 프라이버시; 사람들의 신체적 자아를 유전자 검사, 약물 검사, 신체 수색 등 침해적인 절차로부터 보호
* 의사소통의 프라이버시; 감시나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견해를 형성해 나갈 수 있는 권리. 다른 자유의 기본전제가 되는 ‘권리를 위한 권리’. 우편, 전화, 이메일, 기타 형태의 통신의 안전과 프라이버시 포괄
* 영역 프라이버시; 가정, 작업장 또는 공공장소 등 기타 환경에 대한 침입을 제한하는 것

프라이버시권과 관련한 주요 발언*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오두막에서는 왕의 모든 지배력을 거부할 수 있다. 그 오두막은 빈약하고, 지붕이 흔들리고, 바람이 치고, 폭풍이 들이칠 수는 있어도 잉글랜드의 왕은 들어갈 수 없다. 왕의 모든 힘은 몰락한 집의 문지방이라도 그것을 감히 넘을 수 없다.”(영국의 캄덴경, 1765년)

* “인간을 위해 정부가 있지 그 반대는 아니다…자연권은 인간, 인간의 개성, 양심 등을 정부의 직접적, 간접적 개입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시민으로서의 인간은 기억할 수 없는 과거로부터 계속된 억압적인 법을 알아왔고 그것에 반항하여 존재해왔다…자유는 생활의 방식이어야 했다. 그것은 불가양의 것이고 정부의 침해로부터 자유로운 것이어야 했다…프라이버시는 자유의 근본이다. 우리가 자랑하고 있는 자유의 대부분은 프라이버시의 권리에서 유래한다. 나의 집은 내게 있어서 나의 성이다. 그러나 이러한 프라이버시의 권리는 인간의 가옥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신념, 양심을 통하여 방해받지 않는 권리에까지 미친다.”(미국의 W.더글라스 대법관)

* 개인 정보는
공정하고 적법하게 획득돼야 한다.
원래 특정한 목적에만 사용돼야 한다.
목적에 적합하고 연관되며 목적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고 최신이어야 한다.
정보 주체에게 접근 가능해야 한다.
안전을 유지해야 한다.
목적이 완수된 이후에는 폐기돼야 한다.
(OECD 프라이버시 보호와 개인정보의 국제적 유통에 관한 지침)

* 프라이버시권은 국가당국에 의한 것이건 자연인 또는 법인에 의한 것이건 모든 간섭 및 비난으로부터 보장되어야 한다. 컴퓨터, 데이터뱅크 및 기타 장치를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것은 공공기관 또는 개인, 사설단체를 불문하고 반드시 법률로써 규제되어야 한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정보 저장 및 관리에 대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러한 파일이 부정확한 개인 자료를 포함하거나 법률에 위반하여 수집․처리되었을 경우 모든 개인에게 수정 및 삭제를 요청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유엔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사적영역에서 프라이버시의 문제

근대민족국가의 형성은 인권의 형성과 궤를 같이 한다. 국가 권력은 사회가입의 목적이었던 자기보존이라는 근본적이고 신성한 법칙에 의해 구속되어 큰 한계를 갖는 것이며, 그 한계 너머에는 국가권력이 관여할 수 없는 인간의 ‘사적 자유’가 존재한다는 논리에서 프라이버시가 옹호됐다.

그러나 개인의 자율성의 실현과 평등이라는 자유주의 원리하의 프라이버시권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국민은 국가의 모든 행위를 감시하고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했지만 실상 근대국가는 국민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 기초한 국가였고 다른 말로 하면 감시사회이며 정보사회에 터잡은 국가였다.

또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구분 속에서 프라이버시권의 수혜자는 ‘개인’이 아닌 ‘가정 또는 가족’이었다. 여기서 가정은 사적인 영역이고 공적인 노동의 영역과 대립된 은신처였다. 가정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과 함께 은신처로서의 그 의미를 강화해나갔고,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철저히 자유로워야 되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경쟁이나 계약, 냉엄성을 피할 수 있는 곳, 긴밀한 인간관계와 애정을 토대로 성립하는 것이 사적영역의 대명사인 가정이었다. 그러나 그 은신처는 남성의 은신처였고, 여성에게는 은신처라기보다는 노동의 장소였다. 은신처로서의 사적 가정은 성 구분을 전제한 개념이었다.

이에 특정한 이분법(이성과 감성의 구분, 남성과 여성의 구분 등)에 의한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간의 통상적 구분을 부정하는 비판이 일었다. “공론화되기에 타당한 주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떠한 사회적 제도나 관습(가령 가정폭력, 성폭행, 가사노동의 성적 구분 등)도 공적인 토론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어떠한 개인, 어떠한 행동, 혹은 개인의 어떠한 생활의 측면도 프라이버시로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었다.

현대의 프라이버시의 문제

오늘날 우리가 미증유의 대중감시체제하에 살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정보는 제한된 물리적 공간에서 뿐 아니라 무한 확장된다, 설명책임 없이 부적절하게 비밀리에 남용될 기회가 너무 많다, 국가만이 아니라 기업과 개인에 의해서도 감시와 침해가 광범하게 이뤄진다, 완벽한 복사가 가능하고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등등 정보화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진단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정보화로 인해 프라이버시가 많이 침해되고 있고 침해될 수 있다는 어두운 진단에만 그쳐서는 안 될 것이기에 보다 적극적인 프라이버시권의 규정이 요구되고 있다. ‘정보 프라이버시’와 ‘역감시의 권리’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정보 프라이버시는 타인으로부터 감시당하지 않을 권리와 함께 감시당하지 않음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가나 제3자의 자신에 대한 정보수집활동과 그 이용을 감시할 권리이다.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권리로서 ‘역감시의 권리’는 단체나 집단 또는 개인의 식별 여부를 불문하고 생각과 활동에 대한 통제가 가해지는 모든 행위․계획․제도를 감시행위로 보고, 감시계획의 수립단계부터 참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보장을 추구한다.

생각해볼 문제들

#1. 프라이버시는 부자 또는 권력자의 문제, 배부른 소리?
1890년대 미국에서 ‘홀로 있을 권리(the right to be alone)’가 제기됐을 때부터 프라이버시권은 문제였다. 한편에선 황색 언론의 횡포에 대항하는 개인권으로서의 프라이버시를 역설했고 한편에선 돈 많은 상류층 인사의 대중매체에 대한 불만을 권리화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프라이버시권이란 이름으로 초상권, 명예훼손 등 부자들의 문제를 들먹거리는데 그게 특권이지 무슨 인권이냐?’는 비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프라이버시를 경제적 자산으로 보고 논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프라이버시권은 자신의 재산에 대한 권리행사의 관점에서 자신의 개인 정보에 대한 배타적인 통제권을 가질 의미가 돼버린다. 명성 있는 이름과 초상의 상업적 가치 같은 걸 인권의 이름으로 보호하는 꼴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만하다.

개인정보를 재산으로 바라보면 그 경제적 가치와 인권적 가치를 놓고 균형을 겨루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다. 흔히 사적자본과의 상업 거래에서 소비자는 개인정보를 일종의 거래비용으로 요구받고, 상품과 서비스를 얻기 위해 제공되는 소위 ‘자발적’인 것으로 오인 내지 용인될 수 있다. 사실상 자발적 동의란 없는데도 말이다.

정보소유가 권력의 차이를 극심하게 보여주는 사회 속에서 소위 재산적 관점에서 개인정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프라이버시의 침해는 흔히 상대적으로 크고 강력한 세력에 의해 사회의 가장 작고 약한 요소, 가령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고 소수집단의 구성원인 사람에게 가해지는 위해이다. 사회적 낙인이 은밀하게 찍히고 영구화되는 일, 어린이 등 취약자를 이용한 정보수집의 문제 등을 생각해보자.

#2. 프라이버시란 혼자 틀어박혀 있으면 되는 것?
프라이버시는 물론 외부와 단절된 개인 영역에서 간섭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지만 타인과 관계를 맺고 발전시킬 권리도 포함한다. 혼자 틀어박힐 권리는 본인의 희망사항과 달리 사회적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적인 상황은 공적인 상황 속에서 존재하며 사적인 영역을 관장하는 규범 역시 공적인 것이다”, “주권자로서의 사적 시민은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의 가능성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주권자들 사이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저항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만다. 권력은 곧 감시의 시선 방향과도 일치한다. 시민의 감시의 시선이 국가권력을 향해야지 거꾸로 국가권력의 감시의 시선이 시민을 향해서는 안 된다.”

#3. 기술발전과 법 제정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해 각국은 포괄적 또는 영역별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업의 자율규제를 유도하고 프라이버시 보호기술을 개발하는 등의 시도를 해왔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런 조치들이 단지 ‘정보 보호’에 대한 환상만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넘친다.

앞서도 말했지만 솟아날 구멍으로 제기된 것은 프라이버시권이 국가권력에 대한 사회적 역감시(counter-surveillance)를 실행시킬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권리로서 재구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정보는 ‘자기와 관련된 정보’로 확장돼야 하고, 개인정보의 ‘흐름과 유통’에 대한 통제를 넘어 정보 ‘수집과 생산’ 자체에 대한 통제로 나아가는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4. 난 숨길 것 없다. 잘못한 것이 없으면 숨길 것도 없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할지라도 ‘정보의 훼손, 침해, 도용’ 등의 문제가 엄연히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또한 개인정보에는 고정된 정보만이 아니라 가변적인 정보도 있다. 나아가 나의 정보만이 아니라 타인의 정보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작성일자 : 2008. 8 25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제9조

어느 누구도 자의적인 체포, 구금 또는 추방을 당하지 아니한다.

제10조

모든 사람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자신에 대한 형사상의 혐의를 결정함에 있어서, 독립적이고 편견 없는 법정에서 공정하고도 공개적인 심문을 전적으로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11조

1. 형사범죄로 소추당한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변호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장치를 갖춘 공개된 재판에서 법률에 따라 유죄로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행위시의 국내법 또는 국제법상으로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유죄로 되지 아니한다. 또한 범죄가 행하여진 때에 적용될 수 있는 형벌보다 무거운 형벌이 부과되지 아니한다.

선언의 9-11조를 짧게 말하면, ‘제멋대로 잡아 가두거나 쫓아낼 수 없다’, ‘재판은 공정하게’, ‘잡혀도 반드시 유죄라고 볼 수 없다’이다. 이들 권리는 인권의 역사 중에서도 그 역사가 깊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구금, 즉 자유로운 인간이 '갇힌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인권침해이다. 인신의 자유는 근대국가의 인권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권에 속하는 자유이다. 아무런 또는 적절한 설명 없이 사람을 잡아넣을 수 있게 된다면 다른 모든 자유가 침해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인권 사상의 기초를 제공하는 문서들에서 9-11조의 뿌리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마그나카르타에서 프랑스 인권 선언까지

다른 나라에서의 근대 '인권선언'에 해당하는 것이 영국에는 없다. 하지만 1215년의 마그나카르타, 1628년 권리청원, 1679년 헤이비어스 코퍼스(인신보호법), 1689년의 권리장전 등이 실질적으로 일종의 인권선언에 해당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들 문서는 '일반적인 원리'로서의 인권을 선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의 법률과 관습에 의해 승인받고 있는 신민의 권리와 자유를 국왕이 침해했다는 고충의 토로이다. 지배자와 귀족간에 합의하여 명시된 특권을 보호한다는 협정의 형식이었고, 이들 문서에서 말하는 ‘자유민’의 개념은 귀족, 왕국의 봉신들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이러한 영국의 권리선언에는 ‘절대적인’ 이른바 ‘기본적 인권’은 없지만 ‘각별히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몇가지 권리가 있는데 개인의 안전과 자유가 여기 포함된다.

개인의 안전이란 ‘생명, 사지, 신체, 건강 및 명예를 향유하는 것’이다. 법은 생명과 사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공급하고, 함부로 사형을 과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란 ‘정당한 법의 절차에 의하지 않는다면 구금 또는 억제, 강제이동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 표는 마그나카르타에서 권리장전까지 등장하는 관련 조항을 정리한 것이다.

마그나카르타〜권리장전

· 형벌비례의 보장 및 형벌의 내재적 한계
“경범죄를 범한 때에는 그 죄의 경미함을 고려해 벌금을 과하고, 중범죄를 범할 때에는 그 죄의 막중함을 고려해 벌금을 과한다. 생계유지에 필요한 재산은 벌금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마그나카르타 20조-여기서 ‘00조’는 훗날 편의를 위해 붙인 것이다.)
· 사법권의 독립
“민사소송은 짐의 궁정에 따라 이동됨이 없이, 일정한 장소에서 열린다”(마그나카르타 17조)
· 증거재판주의
“사건에 관한 신뢰할 만한 증인 없이, 진술만을 근거로 재판을 할 수 없다”(마그나카르타 38조)
· 적법절차의 권리 보장
“자유인은 동료들의 적법한 판결에 의하거나, 법의 정당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금되지 않으며, 재산과 법익을 박탈당하지 않고, 추방되지 않으며, 또한 기타 방법으로 침해되지 않는다”(마그나카르타 39조, 권리청원 3조)
·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정의와 재판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지 않는다”(마그나카르타 40조)
· 권리구제 및 그 절차의 보장
“적법한 판결없이 토지, 성, 자유, 또는 권리가 짐에 의해 탈취된 경우에는 이를 즉시 그 자에게 반환한다”(마그나카르타 52조, 61조)
· 변론권(소명권)의 보장
“신분이나 지위를 불문하고 어느 누구도 정당한 절차에 따라 답변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됨 없이, 토지 혹은 소유지에서 추방되거나 체포, 구금되지 않으며, 상속권이 부인되거나 살해되지 않는다”(권리청원 4조)
·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생명권 및 신체의 권리 침해’ 제한
“어느 누구도 대헌장과 국법의 규정에 반하여 생명이나 지체를 재판에 의해 박탈당하지 않는다”(권리청원 7조)
· 죄형법정주의 및 소송권의 보장
“어떤 종류의 범법자에게도 폐하의 왕국법률에 따라 적용되어야 할 소송절차에서 제외되지 않으며, 폐하의 왕국법률에 따라 과해야 할 형벌이외의 것을 받지 않도록 되었다”(권리청원 7조)
“나라의 법률에 따라 재판받고 처형될지언정, 다른 규정에 따라 재판되고 처형되어서는 안된다”(권리청원 8조)
· 보석권의 보장
“형사사건으로 구속된 모든 자들에게 신속한 구제를 주기 위해...다음과 같이 정한다...수감된 자를 위한 인신보호영장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건...관리에게 제시되고 송달되어...영장송달 후 3일 이내에 동 영장에 대하여 답변을 해야 하며, 구속된 당사자의 신병을 동영장이 명하는 바에 따라...재판관 앞에 송치하여...구금한 진정한 이유를 명시해야 한다.”(인신보호법 2조)
“지정기간 내 답변할 것을 태만하거나 거부하고, 수감자의 신병연행을 태만하거나 거부한 경우...벌금을 수감자에게 몰수당하여, 관직에 재임하여 직무를 수행할 자격을 상실하도록 한다”(인신보호법 5조)
“개정 시기의 최초 1주간 혹은 순회재판이나 일반수감자석방순회재판의 개정기 최초일에 공개법정에서 심리받기를 탄원 혹은 청원했음에도...소추되지 않은 경우에는...재판관이 수감자를 보석하는 것이 적법”(인신보호법 7조)
· 일사부재리의 원칙
“동일한 범죄혐의로 반복 수감되어 불공정한 고통이 가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인신보호영장에 의해서 해금되거나 자유롭게 된 자는 그 이후 어떠한 자에 의해서도 동일한 범죄혐의로 재감금되거나 재수감되지 않는다”(인신보호법 제6조)
· 소급적용의 금지
“본법에 상응되는 규정이 있을지라도 1679년 6월 1일(인신보호법 제정일) 이전에 집행된 감금이나 또는 그러한 감금과 관련하여 조언을 받고 초래된 일에 대해 효력이 미치는 것으로 간주, 해석 또는 양해될 수 없다.”(인신보호법 제15조)
· 공소시효의 부과
“피해자가 수감되어 있지 않은 경우 범죄가 있는 때부터 2년 이내에, 피해자가 수감중이면 수감자의 사망이나 석방 중 빠른 것에서부터 2년 이내, 가해자가 소추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그로 인해 소추되거나 고통받거나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인신보호법 17조)
· 무죄추정의 원칙
“유죄의 판결이 있기전에 그 자에게 과해질 벌금 혹은 몰수에 관해서 권리를 주거나 약속을 하는 것은 모두 위법이며 무효이다”(권리장전)



근대인권선언의 선두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의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은 이름에서 드러나듯 영국의 권리청원, 권리장전을 모방한 것이지만, 여기서 권리를 다루는 방식은 영국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특정한 제 권리를 ‘모든 인간’이 타고났고, 그 제 권리가 정치조직의 기초를 이룬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내재된 타고난 권리란 “재산을 획득하고 소유”하며 “행복, 안전을 추구”할 권리다. 같은 해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서도 폭정에 대한 자기 방어의 권리를 원초적인 “자연”계약으로부터 도출했고, 모국인 영국에 맞선 전쟁을 “자연적 정의”의 방패아래 두었다. 이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권리의 향유를 부인하는 정부를 ‘내쫓을 권리’도 있다.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그 목적에서나 효과에서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섰다. 1789년 선언의 체계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권을 가지며 그 권리는 사회 상태에서도 계속 유지된다는 선언이다. 둘째, 이 자연권을 보전하려는 목적을 위해 정치적 결사(국가)의 형성이 승인된다. 셋째, 국가에 의한 자연권의 보전을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국민주권·권력분립의 원칙과 주권자 국민의 구성원인 시민의 여러 권리가 선언된다.

이들 근대의 인권선언에서 9-11조의 기초가 되는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

버지니아 권리장전(1776)
8. 사형 또는 모든 형사 소송의 경우 당사자는 그 고발의 이유와 성격에 관한 (설명을) 요구할 권리, 고발자와 증인을 대면할 권리,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시할 권리, 공정 무사한 동네 배심원에 의한 신속한 재판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 배심원들의 만장일치의 결의 없이는 유죄가 되지 않는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 제시를 강요당하지 아니하며, 어떤 개인도 국법 또는 동료들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는 그의 자유가 박탈되지 아니한다.
9. 과도한 보석 요청은 없어야 하며, 이와 함께 과도한 벌금의 부과 또는 상도에 어긋난 형벌이 있어서도 안 된다.
10. 관리 또는 집달리(執達吏)로 하여금 범행 사실에 대한 증거 없이 의혹이 가는 장소를 수색할 수 있도록 하거나, 이름이 명시되지도 않고 또 범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이나 증거의 뒷받침도 없이 어떤 개인이나 다수의 사람을 체포하게 할 우려가 있는 일반 구속 영장은 국민들의 원망을 살 억압적인 것이므로 결코 발급되어서는 안 된다.
11. 재산에 관련된 분쟁이나 개인 대 개인의 송사에 있어서는 고대의 배심 재판 제도가 다른 제도들보다 더 바람직하며, 따라서 신성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들의 선언(1789)
제7조. 누구도 법이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또 법이 규정한 형식에 의하지 않고서는 고소,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없다. 자의적인 명령들을 간청, 발령, 집행하거나 또는 집행시키는 자들은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에 의해 소환되거나 체포된 시민은 모두 즉시 복종해야 한다. 그것에 저항하는 자는 유죄가 된다.
제8조. 법은 엄격하고 명백하게 필요한 형벌만을 규정해야 하며, 누구도 범법 행위 이전에 제정, 공포되고 또 합법적으로 적용된 법에 의하지 않고서는 처벌될 수 없다.
제9조. 모든 사람은 유죄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므로, 그를 체포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판단되더라도 그의 신체를 확보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모든 가혹행위는 법에 의해 엄격하게 억제되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과 그 이후

선언의 문구는 짧고 모호하다. 선언의 양식에 관해 토론한 결과가 “간략하고 단순한 일반원칙의 천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요소들은 선언에서 빠졌고 미래의 조약들의 과제로 남겼다. 따라서 선언 이후 등장한 인권문서들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표 참조)

 

세계인권선언 9조의 상세화
모든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누구든지 자의적으로 체포되거나 또는 억류되지 아니한다. 어느 누구도 법률로 정한 이유 및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그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9조 1항)

모든 개인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사전에 법률로 규정된 이유와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특히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체포되거나 구금당하지 아니한다.(아프리카 헌장 6조)

모든 사람은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다음의 경우에 있어서 법률로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는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a. 권한 있는 법원의 유죄결정 후의 사람의 합법적 구금.
b. 법원의 합법적 명령에 따르지 않기 때문이거나, 또는 법률이 규정한 의무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한 사람의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
c. 범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 또는 범죄의 수행이나 범죄수행 후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때, 그를 권한 있는 사법당국에게 회부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되는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
d. 교육적인 감독의 목적으로 합법적 명령에 의한 미성년자의 구금, 또는 권한 있는 사법당국으로 회부하기 위한 목적에 따른 합법적인 미성년자의 구금
e. 전염병의 전파를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정신이상자,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및 부랑자의 합법적 구금
f. 불법입국을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강제퇴거나 범죄인인도를 위한 절차가 행하여지고 있는 사람의 합법적 체포 또는 구금.(유럽인권협약 5조 1항)

당사국의 헌법이나 그에 따라 제정된 법률에 미리 규정된 이유와 조건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체적 자유를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미주인권협약 7조 2항)



* 구금의 적법성
구금이 적법해야 한다는 요건은 구금 및 후속 절차 둘 다의 근거가 된다. 적법절차에 대한 상세한 규정에 대해서는 국내법의 과제로 남겨두고 있지만 중요한 예외가 있다. 계약상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음을 이유로 한 구금의 금지이다.(“어느 누구도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구금되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1조)

* “자의적”의 의미
선언 기초과정에서 ‘불법’ 또는 ‘부당한’ 또는 ‘불법적이고 부당한 둘다’와 같은 의미라는 견해가 표현됐다. 1965년 선언 9조에 관한 유엔 연구는 “법에 정해진 절차가 아닌 절차나 근거에 따르거나, 사람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에 대한 존중과 양립할 수 없는 목적을 가진 법률 조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일 때 체포나 구금은 자의적”이라 정의했다.

* 체포의 이유를 고지 받을 권리
체포당하는 사람은 누구나 체포 사유와 혐의에 대해 고지 받아야 한다. 또한 고지는 신속하게 또는 체포와 동시에 돼야 한다. 두 경우 본질은 똑같다. 체포의 이유 고지는 실제적 체포와 연계되어 이뤄져야 한다. 체포 이유의 고지에 관해서는 형사 절차에 따른 체포와 다른 여타의 근거에 의한 체포간에 어떤 차이도 없다. 하지만 형사절차에 있어서는 수사를 완성하고 상세한 혐의사항을 고지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따라서 피구금자는 자신이 직면하게 될 피의 사실을 ‘신속하게’ 고지 받을 권리를 가진다.

* 체포와 구금의 사법적 통제에 대한 권리
형사절차에서의 체포와 구금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두가지 기본 요건을 가진다. 1) “판사 또는 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목적으로 권한을 가진 기타 공무원 앞에 신속하게 보내질” 권리, 2) “합리적인 시간 내에 재판을 받을 권리 또는 석방될” 권리이다.
주요 국제협약에서의 규정은 이점에서 동일하다.(유럽인권협약 5조 4항, 아프리카인권헌장7조6항,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9조 4항: 체포 또는 억류에 의하여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은 누구든지, 법원이 그의 억류의 합법성을 지체없이 결정하고, 그의 억류가 합법적이 아닌 경우에는 그의 석방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법원에 절차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
사법적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법적으로 권한을 가진 기타 공무원이라 함은 유럽인권재판소의 결정 등에 따르면 특히 행정부와 검사로부터 독립성을 가진 것을 말한다.

* 신속하게
사법적 심사에 앞서 구금되는 최대기한에 대해 유엔자유권위원회는 9조에 대한 논평에서 수일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했다. 법원은 지체 없이 체포 또는 구금의 적법성을 결정하고 구금이 적법하지 않는다면 석방을 명해야 한다.

유엔자유권위원회 일반논평 8, (2): 형사상의 죄의 혐의로 체포되거나 또는 구금된 사람은 즉각적으로 법관 또는 법률에 의하여 사법권을 행사할 권한을 부여받은 기타 공무원에게 인치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보다 정확한 시간적 제한은 대부분의 당사국에서 법률에 의해 정해져 있고, 본 위원회는 지체가 수일을 넘겨서는 안된다고 본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신속한”에 대한 더 명확한 해석을 내놓았는데, 4일을 초과하는 것은 수용될 수 없다.

* 자의적 추방의 금지
선언에서 논의한 ‘추방’이란 대개 자국에서 국민을 추방하는 걸 의미했다. 또한 ‘내부 추방’ 또는 ‘국경 내에서의 배제’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도 사용된다. 후자는 이동의 자유의 권리와 연관된다.
추방의 금지는 다른 인권 문서에서는 형사피의자·피고인의 권리 가운데 열거돼지 않고 ‘추방’이라는 단어조차 사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자국에 들어갈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이동의 자유의 권리를 다루는 조항이 있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2조 4항: 어느 누구도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유럽 제4의정서 3조, 아프리카헌장 22조 5항은 국민의 추방을 금지하고 있다.)

국적은 주권 국가의 국민과 국가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국적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일은 용인할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자의적 체포, 구금과 추방으로부터 자유로울 모든 사람의 권리에 대한 유엔 연구’는 ‘추방이 사실상 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관찰과 결론은 자국민에게 해당하는 추방만을 고려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선언에서 말하는 “추방”은 자국민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었기에 현재에 고려해야 할 심각한 인권문제에 미치지 못한다. 바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보호에 관한 국제협약 22조
1.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집단적 추방조치는 금지된다. 각 추방사건은 개별적으로 심리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2.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은 권한 있는 당국에 의하여 법률에 따른 결정에 의하여만 당사국의 영역으로부터 추방될 수 있다.
3. 추방의 결정은 그가 이해하는 언어로 통고되어야 한다. 본인의 요구가 없으면 의무적인 아닌 경우라도 만약 요구를 하면 결정은 문서로 통보되어야 하며, 국가안보에 의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정의 이유가 진술되어야 한다. 이러한 권리는 결정 이전 또는 늦어도 결정시에는 당사자에게 고지되어야 한다.
4. 사법당국에 의한 최종 판결이 발표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당사자는 자기가 추방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출할 권리가 있으며,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하여 그 사건이 심사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단, 국가안보상의 긴요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심사 기간 중 당사자는 추방결정의 집행정지를 요청할 권리를 가진다.
5. 이미 집행된 추방결정이 나중에 무효로 되었을 때, 당사자는 법률에 따른 보상을 청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전의 결정은 그가 당해 국가로 재입국하는 것에 방해사유가 될 수 없다.
6. 추방의 경우 당사자에게는 출국 전 또는 후에 임금청구권, 그에게 귀속될 다른 권리 또는 현행 채무를 해결하기 위한 합리적인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7. 추방결정의 집행을 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결정의 대상인 이주 노동자 또는 그 가족은 출신국 이외의 국가로의 입국을 모색할 수 있다.
8. 이주노동자 또는 그 가족이 추방되는 경우 추방 비용을 당사자에게 부담시켜서는 아니된다. 당사자는 자신의 여행경비의 지불을 요구받을 수 있다.
9. 취업국으로부터의 추방 그 자체로는 임금수령권과 그에게 귀속될 다른 권리를 포함하여 이주노동자 또는 그 가족이 그 국가의 법률에 따라 획득한 어떠한 권리도 손상시키지 아니한다.



또한 ‘내부에서의 추방’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흔히 ‘인권의 사각지대’로 불리는 시설로 강제 수용돼 10년이고 20년이고 사회로부터 단절돼 살아가는 사람의 얘기가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것이 한국 사회이다. 2007년 말 인신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자유로운 의사에 반하여 수용시설에 수용·보호 또는 감금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한가닥 길이 열렸다. 위법한 수용에 대하여 또한 적법한 수용이라 할지라도 수용의 사유가 없어졌는데도 계속 수용되었을 때 구제를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지적되고 있고, 특히 출입국관리법에 의해 보호된 자, 즉 외국인보호소의 경우는 이 법의 보호에서도 배제됐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세계인권선언 10조의 상세화
모든 사람은 재판에 있어서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그에 대한 형사상의 죄의 결정 또는 민사상의 권리 및 의무의 다툼에 관한 결정을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설치된 권한 있는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원에 의한 공정한 공개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보도 기관 및 공중에 대하여서는, 민주사회에 있어서 도덕, 공공질서 또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하거나 또는 당사자들의 사생활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공개가 사법상 이익을 해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법원의 견해로 엄격히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한도에서 재판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형사소송 기타 소송에서 선고되는 판결은 미성년자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당해 절차가 혼인관계의 분쟁이나 아동의 후견문제에 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개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1항)

모든 사람은 민사상의 권리 및 의무, 또는 형사상의 죄의 결정을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설립된 독립적이고, 공평한 법원에 의하여 합리적인 기한 내에 공정한 공개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판결은 공개적으로 선고되며, 다만 민주사회에 있어서의 도덕, 공공질서 또는 국가안보를 위한 경우, 미성년자의 이익이나 당사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또는 공개가 사법상 이익을 해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 엄격히 필요한 한도 내에서 보도기관 또는 공중에 대하여 재판의 전부 또는 일부가 공개되지 아니할 수 있다.(유럽인권협약 6조 1항)



선언 10조가 다루는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는 두 요소로 구분된다. 사법절차(공정하고 공적인 심문)와 사법부의 조직(독립적이고 공명정대한 법원)이다.

원래 제출됐던 선언의 1차 초고에는 ‘권리와 의무, 독립적이고 공명정대한 법원에 대한 접근보장, 공정한 심문, 자신이 선택한 자격 있는 대리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양식으로 설명을 들을 절차에 대한 권리, 그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할 권리’가 포함됐다. 그러나 이후 토론에서는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부터 뒷부분 내용이 모두 생략됐는데, 그 이유는 내용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조항을 간결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특히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를 빼는 것에 대한 강력한 우려가 제기되었지만, ‘공정한 재판의 질을 규정하는 자세한 내용은 이후 국제규약이 정할 일’이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공정한 재판의 개념을 규정하는 기본 요소들은 선언에서 10조 바깥에 위치한다. 예를 들어 국내법원의 권한에 대해서는 8조에, 피고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11조에 규정돼 있다.

* 공정한 재판의 구성요소들
이를 구체화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예를 들어 법원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에 사람은 우선 법원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법원’이라는 단어의 단순한 사용자체가 사법 절차에 내재돼야할 특정한 최소한의 보장을 내포하고 있다.

* ‘법원’은 ‘독립적’이어야 한다
다양한 사법체계가 존재하기에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철저한 목록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서비스와 재직의 조건, 임명과 해임의 방식, 안정성의 정도, 외부의 압력과 폭력으로부터의 물리적, 정치적, 법적 보호 등이 중요한 것들이다. 판사의 독립성과 연관된 문제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양해서 세계의 어떤 곳에서는 판사의 봉급을 단체 협상하는 체제가 있는가 하면 물리적 실종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유엔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등 국제인권법은 법원이 “법에 의해 설립”될 것을 요구한다. 즉 법원은 행정부의 재량에 의존해서는 안되며, 법원의 조직구조에 관한 한 법률에 의한 제정에 기초해야 한다. 특별 법원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용인될 수 있다.

* 법원의 ‘공정성’에 관하여
법원은 공정한 것으로 보여야만 한다. 공정성은 주관적 의미에서뿐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공정해야 한다. 판사의 공정성은 재판 당사자의 평등에 부응하는 것이다. 공정한 심사란 최소한 방어권을 보장하는 것을 당연 포함해야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포괄한다.

법정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많은 방식으로 판사의 그것과 연관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특정 상황 하에서 무료 법적 조력에 대한 접근은 민사절차에서조차 공정한 재판의 요소에 해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공개적’인 심문
심문은 ‘공개적’이어야 한다. 공개성의 문제는 복잡하다. 공개성은 소송당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고, 재판을 공적인 감시에 놓이게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법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강화한다. 반면에 공개성은 반대 방향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적대적인 언론의 보도는 어떤 상황에서는 피고인의 무죄추정의 권리를 침해하고, 재판의 공정성에 편견을 가할 수 있다. 공개성의 요건에 예외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 공개성의 종류와 정도는 결국 전반적인 공정성 평가와 연관된다.

* 신속성
시민·정치적 권리규약은 이에 대해 언급 안하고 있는 것과 달리 유럽과 아프리카 인권협약은 재판이 “합리적인 시간 내에”이뤄져야 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법의 지체는 정의가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특히 형사 범죄로 기소당한 사람에게는 운명의 불확실한 상태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형사 책임만이 아닌 권리와 의무의 결정
1948년 미주인권선언은 오직 범죄혐의의 사람과 연관해서만 공정한 재판의 권리를 언급했고,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유럽인권협약 또한 형사 책임에 관해서 더 상세하다. 대부분의 인권문서가 형사절차와 형법 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아마도 역사적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인권에 대한 관심은 초기에 형법의 맥락에서 더 현저했다. 반면에 다른 분야의 인권운동은 법적 투쟁에서 나중 무대에 출현했다. 현대의 복지 사회는 복잡한 법적 인프라를 가지고 있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의 범위와 영향이 더 넓어지고 있다.
미주인권협약 8조 1항은 공정한 재판의 권리를 민법의 권리와 의무의 결정뿐만 아니라 ‘노동, 재정 및 기타 성격’의 것까지 확대하고 있다.(“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한 형사기소를 확정함에 있어서나 자신의 민사상, 노동, 재정상 또는 기타 성격의 권리와 의무를 결정하기 위하여, 법률에 의하여 사전에 설립된 권한 있고 독립적이며 공정한 법원에 의하여 정당한 보장을 받으며 합리적인 기한 내에 심리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민사상 사항에만 제한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 대 공공당국이 당사자일 때도 공정한 재판은 요구된다. 사회보험의 급여에 대한 고려로도 확장되고 있다. 개인이 타인, 기업, 노조, 정부와 다투고 있는 어떠한 법적 청구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확대되고 있는 경향이다.

 

세계인권선언 11조의 상세화
11조 1항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2항, 유럽인권협약 6조 2항, 미주인권협약 8조 2항, 아프리카 인권 헌장 7조 1.b
11조 2항은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 유럽인권협약 7조, 미주인권협약 9조, 아프리카 인권 헌장 7조 2항
피고인이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에 관한 것;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 3항, 유럽인권협약 6조3항, 미주인권협약 8조 2항

이중 시민·정치적 권리규약만 살펴보면,
모든 형사피의자는 법률에 따라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받을 권리를 가진다. (14조 2항)
모든 사람은 그에 대한 형사상의 죄를 결정함에 있어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보장을 완전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가진다.
(a) 그에 대한 죄의 성질 및 이유에 관하여 그가 이해하는 언어로 신속하게 상세하게 통고받을 것
(b) 변호의 준비를 위하여 충분한 시간과 편의를 가질 것과 본인이 선임한 변호인과 연락을 취할 것
(c) 부당하게 지체됨이 없이 재판을 받을 것
(d) 본인의 출석하에 재판을 받으며, 또한 직접 또는 본인이 선임하는 자의 법적 조력을 통하여 변호할 것. 만약 법적 조력을 받지 못하는 경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대하여 통지를 받을 것. 사법상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및 충분한 지불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경우 본인이 그 비용을 부담하지 아니하고 법적 조력이 그에게 주어지도록 할 것
(e)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을 신문하거나 또는 신문받도록 할 것과 자기에게 불리한 증인과 동일한 조건으로 자기를 위한 증인을 출석시키도록 하고 또한 신문받도록 할 것
(f) 법정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말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무료로 통역의 조력을 받을 것
(g)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 또는 유죄의 자백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것(14조 3항)



11조를 핵심어로 정리하면,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무죄의 추정’, ‘방어의 권리’, ‘공개 심문의 권리’, ‘법률불소급의 원칙’이다. 이중 공개 심문의 권리는 10조와 관련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9-11조의 내용이 제기됐을 때 맨 앞에 왔던 원칙이다.

* 무죄추정의 원칙
인두비오프로레오(In Dubio Pro Reo),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결하라는 법언과 더불어 널리 인정된 규범이다. 유엔자유권위원회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죄를 입증할 의무는 기소자측에 있으며, 피고인은 유리한 해석에 의한 이익부여를 받는다. 피고인은 그 혐의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이 입증될 때까지 유죄로 추정되어서는 안된다. 더 나아가, 무죄 추정의 원칙은 이 원칙에 따라 대우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따라서 재판의 결과에 대해 예단하지 않는 것은 모든 공공기관의 의무이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4조에 관한 일반논평 13)

* 방어의 권리
형사절차에서의 공정한 재판의 개념은 한마디로 ‘무기의 평등’(equality of arms)이다. 피고인과 검사가 대면할 때 내재된 불리함을 절차적 평등으로 다루겠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의 사건을 법원에서 호소할 완전하고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정의는 완수돼야 할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이뤄진 것으로 보여야 한다는 목적에서다.

* 불소급의 원칙에 대한 문제제기
불소급의 원칙이란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없고, 법률이 없이는 형벌도 없다(nullum crimen, sine lege nulla poena sine lege)”이다.

늘여서 말하면 “어느 누구도 행위시의 국내법 또는 국제법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유죄로 되지 아니한다. 또한 어느 누구도 범죄가 행하여진 때에 적용될 수 있는 형벌보다도 중한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선언 기초자들을 괴롭혔다. 뉘른베르크와 도쿄재판이라는 전범재판을 치러냈기 때문이다. 이 재판에서 전범들은 자신들의 행위는 당시의 법률에 따라 한 것이며,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며 자신들의 대한 처벌이 불소급의 원칙을 어기는 불법임을 주장했다. 열강들은 훗날에도 전범재판에서 불소급의 원칙이 불법을 주장하는 근거로 쓰일 것을 우려했다. 이에 미국은 “범죄” 앞에 “형사”라는 말을 넣어서 “형사범죄”에만 이 원칙이 해당된다는 것을 확실히 하자고 했다. 2차 대전 후의 아주 예외적인 상항에서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등을 처벌하기 위해 통과된 법에는 이 조항이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그러한 법률에 대한 법적·도덕적 비난을 할 수 없다는 의도의 제안이었다.
시민·정치적 권리규약 15조 2항에서 “이조의 어떠한 규정도 국제사회에 의하여 인정된 법의 일반원칙에 따라 그 행위시에 범죄를 구성하는 작위 또는 부작위를 이유로 당해인을 재판하고 처벌하는 것을 방해하지 아니한다.”라고 한 것은 이 원칙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래의 범죄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처벌받은 자들과 유사하게 자행된다면 같은 원칙에 따라 처벌받게 될 것이란 의미다.

정의 구현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소위 ‘미드’(미국드라마)는 형사물 또는 재판물이 주를 이룬다. 인권교육을 받아서가 아니라 미드 덕분(?)에 사람들은 소위 미란다 원칙을 암기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의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며, 당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는 잦은 장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은 인권보장의 이미지라기보다는 범죄와의 전쟁에서의 승리선언처럼 보인다. 잡힌 자에 대한 조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수사팀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의 경우 형사와 검사의 이미지는 사회 안전의 수호자이고, 그들의 활동에 인권보호규정들은 거추장스러워만 보인다. 변호사는 대개 돈 많은 의뢰인의 치부를 싸고돌며 현란한 말솜씨로 해선 안되는 석방을 끌어낸다. 판사는 이런 저런 정황 속에서 관대함을 베풀거나 엄격함을 집행한다. 정작 용의자, 피의자, 피고인인 사람들의 인권은 이 무대에서 별 의미가 없다.

드라마를 떠나 현실로 와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자의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의 인권은 뒷전이냐’, ‘예외적 침해사례를 부각시키며 공익을 사수하는 검사나 경찰관을 인권을 침해하는 부류로 찍어놓고 손발을 묶으려 하느냐’, ‘툭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탓하면서 법원의 공정성을 깍아 먹으려 들지 말아라’, 심하게는 ‘흉악범에게 무슨 인권이냐? 사람도 아닌 것들을 왜 보호해주나? 인권은 인간에게 적용되는 권리이니 짐승에게 인권을 보호해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공격이 9-11조의 권리에 가해진다.

범죄자에 대한 보복이 과연 피해자의 인권과 감정을 보호하는 것인가? 피해자의 복수심을 국가가 대신 보복하는 것이 과연 건강한 국가인가? 정의는 회복·구현돼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은 또한 정의로운 방법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는가?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분노 속에서 잡아먹히기 쉬운 이런 목소리들이 선언 9-11조의 기초를 이룬다.

재판을 받고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키고, 죄를 지었어도 변명과 변호의 기회를 주는 것, 처벌보다는 잘못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방법을 강구해 보는 것 등은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제도들이 아니다. 만에 하나 있을 수 있는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제도이고, 경찰과 사법부 등 권력 집단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함부로 다루지 않도록 하는 보호 장치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이런 기본적인 인권 제도의 주인이고 수혜자이다. 흉악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여론에 편승해 이런 인권제도에 함부로 손을 대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지키겠다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것인지, 극약처방을 외치는 것으로 정작 범죄 예방과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빠져나가는 구실을 만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공포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 활동을 줄인다거나 공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거나 극단의 처벌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가두는 게 아닐까?

작성일자 : 2008. 7. 16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 8조

모든 사람은 헌법 또는 법률이 부여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담당 국가법원에 의하여 효과적인 구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을 다룬 애니메이션을 본 일이 있다. 8조를 묘사한 장면은 이러했다. 한 사람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정말 억울한 일을 겪었다는 게 그 눈물에 흠뻑 녹아있다. 법정과 판사에게로 다가가 눈물로 뭔가를 호소한다. 잠시 후 두 손을 흔들며 활짝 웃는다.

두말 할 것 없이 권리 침해를 받았을 때 구제를 받을 권리는 아주 중요하다. 8조는 선언을 완성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제안된 조항이다. 선언 기초자 중의 한사람은 “효과적으로 이행되지 않는 인권은 실체 없는 그림자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구제를 받을 권리’를 넣는 것에 대해 반대의견이 많았다. 반대자들은 다른 조항들은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을 얘기하고 있는데 그 사이에다 권리를 침해당했을 경우를 집어넣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선언의 목적 자체가 이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선언은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가를 얘기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이행의무를 부과하면 많은 국가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에서 ‘국제조약’이 아닌 ‘선언’의 형태를 취하기로 일찌감치 방향을 돌렸던 것이다.

어찌됐든 미약한 수준에서나마 선언에 구제 조항이 들어간 것은 다행이다. 선언 이후 다른 국제조약들은 구제 조항의 범위를 더 넓히고 구체화했다.

8조는 국가법원에 의한 구제, 즉 사법적 구제만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침해와 관련된 구제조치가 사법적 조치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이고 바람직한 구제 형태가 사법적 구제이고 그 가능성을 확대시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적 접근이 적절치 못할 때도 있다. ‘신속하고 효과적이고 비용이 덜 드는 구제절차’가 절실할 때가 있다. 선언 이후 다른 국제조약들은 사법 구제 말고도 ‘행정 또는 입법당국, 기타 권한 있는 당국’에 의한 조치를 말하고 있다. 인권침해를 부르지 않고 예방할 수 있는 또는 잘못된 입법행위를 뜯어고칠 수 있는 입법조치, 그리고 행정구제, 옴부즈만이나 국가인권위 등의 활동이 여기 해당한다.

8조는 “담당 국가법원에 의하여”라고 말한다. 즉 국내의 구제에만 머무르는 것인데, 자국 정부와 법률로부터 인권을 침해당한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말하지 않는다. 선언 이후 국제인권보장체계의 발전 속에서 국내의 구제절차를 통해 구제받지 못한 경우 유엔이나 지역인권기구에 청원할 수 있는 제도 등이 마련됐다.

8조가 보장하는 권리 범위는 “헌법 또는 법률이 부여하는 기본권”으로 되어있다. 대개 다른 국제조약들은 ‘그 조약에서 인정된 권리들’에 대한 구제를 말하고 있다. 이와 비교할 때 선언은 선언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뿐만 아니라 국내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들과도 관련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조적인 해석이 있다. 하나는 선언에 열거된 권리들보다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국내법에 열거된 권리범위가 훨씬 넓기 때문에 8조가 포괄하는 권리범위는 어떤 조항보다도 넓다고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른 하나는 기본적 인권과 관련해서는 국제인권법의 기준들이 각국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보다 더 넓다고 보는 입장이다.

사법적인 권리구제에 대해서는 크게 3가지 요소를 말할 수 있다. 첫째, 누구나 권리침해를 당했을 때는 법원에 다가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둘째, 법원에서는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공정한 재판의 권리가 여기서 도출된다. 셋째, 구제조치가 결정됐다면, ‘집행’이 보장돼야 한다.

누구에 의한 침해인가도 문제가 된다. 다른 국제인권조약들은 ‘그 침해가 공무집행 중인 자에 의하여 자행된 것이라 할지라도’ 실효적인 구제조치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즉, 국가에 의한 행위는 당연히 구제조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기업에 의한 침해이다. 가령 FTA의 ‘투자자 국가 제소권’ 같은 경우 정작 권리침해를 받은 사람들이나 그들이 속한 나라의 법과는 관계없는 데서 심판이 이뤄진다. 이는 선언 8조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구제가 있으려면 적어도 자기 권리를 주장하고 청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설명 또는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처벌부터 하고 쫓아내고 외면하는 사건이 많이 벌어진다. 학생의 소명권 같은 건 없이 징계부터 한다든가 자기 인권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고 단속‧추방해버리는 이주노동자 정책 등을 떠올려보자.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http://khrrc.org) 연구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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